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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21:18~19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삶

LNCK 2023. 1. 3. 06:19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삶        요21:18~19      2023.01.01. 녹취, 정리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뛰어넘어서 살기란 쉽지 않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를 인도하실 때가 있죠.
그때 우리는 그게 불편하지만, 지나고 보면 내 한계를 뛰어넘게 됨을 발견하죠.

금년 새해에도 우리가 마음으로 여러 가지 계획을 할지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주님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내 삶을 몰고 가실 수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최근에 세상을 떠나셨지요.  2022.09.08.
그의 아버지 조지 6세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버지 조지 6세는, 원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둘째 아들이었고, 그 형 에드워드 8세가 이미 영국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의 이혼녀인 심슨 여사와 결혼을 하기 위해 
왕의 자리를 재위 11개월만에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당시 42세
그 동생 조지가 별안간 어부지리로 왕의 자리를 승계하게 되었습니다. 

동생 조지 6세는 자기 자신이 왕이 되기에는 
성격적인 면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고 
또 사람들 앞에 말을 할 때, 심하게 말을 더듬는 그런 버릇이 있었는데 
너무 긴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영화 <킹스 스피치>에 묘사가 되었지요. 
그리고 그의 딸 엘리자베스는, 평범한 왕족으로 살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별안간 아버지가 왕이 되는 바람에, 동시에 왕세녀가 되었고 
아버지가 57세로 일찍 별세함으로써   *동맥경화 
자기 나이 25세에 어느 날 갑자기 영국 여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2세는, '자기가 원래 생각 하지 않던 의무가 
자기에게 부과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라고 믿고 
그 여왕 직을 믿음으로 감당했다.. 라는 말이 전해집니다. 

여러분, 이처럼 인생에는 
우리가 원래 기대했던 것, 우리가 원래 바랬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몰려가 지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어렸을 때는 
그저 평범한 소녀로, 평범한 왕족의 일원으로 살 줄 알았는데 

전혀 기대 하지 않던 일들이 발생하는 바람에, 15세 경에 왕세녀로 세워지고,
그런 일이 한 번 더 발생해서 (부친의 조기 사망으로) 25세에 여왕이 된 것이죠.
그 후 70년간 여왕직을 수행했습니다. 1952~2022

△아마 어떤 분들은 '그래도 왕이라는 것이니 손해 본 것 없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건 본인들이 지불해야 했던 대가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엘리자베스 2세를 평생 따라다녔던 비판의 말은 
'냉정하다. 사람이 차갑다. 엄격하다.' 

그래서 며느리 다이애나 에게만 엄격한 게 아니고 
자기 아들인 찰스에게도 엄격했다, 냉정한 엄마였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국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에요.
여왕의 의무가, 어머니의 역할이나 자신의 행복이나 
자신의 평안보다도 우선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남들이 자기를 냉정하다고 비판을 하든 말든
자신의 역할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라는 것입니다. 

▲영화 <대부 1편>에서 막내아들 알파치노가 주인공인데
아버지는 마피아 보스이고, 위로 첫째 형, 둘째 형이 있었고 
자기는 막내였어요. 

그래서 본인은 아버지(마피아 보스)를 계승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다트머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패밀리 일은 패밀리 일이고, 나는 다르다!'  *패밀리 : 마피아 조직을 뜻함  
그것이 알파치노가 젊었을 때 하던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저격을 당하고, 패밀리가 위험에 처하고,
형이 암살을 당하면서.. 나머지 가족도 위험에 처하자
막내 아들 알파치노는 자기가 가졌던 계획을 접어 놓고 
그 패밀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영화의 줄거리죠.

원래 그 마피아의 길을 가려고 한 게 아니고, 
아버지도 막내아들이 그 길을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형편과 처지가, 자기 원래 계획대로 살 수가 없었고 
원래 원치 않았던 인생이, 자기에게 요구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라는 거죠.

▲성경에도 이런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 
첫째 아들을 건너뛰고 둘째 아들이 유업을 승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가인 대신 아벨이, 
이스마엘 대신 이삭이, 
에서 대신 야곱이, 
다윗의 경우에는 막내인 여덟 번째 아들이었죠. 

첫째, 둘째, 일곱째 형님을 다 제치고 
막내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또한 사도바울이 아시아에서 전도하기를 원했으나, 그 길이 막히고

결국 마게도냐로  인도를 받은 것도..  자신이 원래 원하던 길이 아니었죠.

그러나 그 강권적 인도가,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삶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보여주는 것은 
사람이 자기가 원래 기대하고, 원래 생각했던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그 섭리를 받아들일 때 
비록 내가 원래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런 원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원래는 베드로의 죽음과 연관된 말씀이지만, 확장해서 해석하면

우리 삶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곰곰히 읽어보시면 
공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과,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이 
약간 좀 스타일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라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공관복음의 예수님의 어법, 공관복음의 예수님의 말씀과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이 뭔가 스타일이 달라요. 느낌이 달라요. 
  
공관복음은, 예수님이 수난당하기 이전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기록한 것이라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공생의 전체를 해석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하나님의 영광을 얻으신 그 관점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말씀 전체를 다시 해석하다 보니까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더 권위있는 말씀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나는 양의 목자니, 양의 문이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런 모든 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영광을 입으신 그 관점에서 예수님의 공생애를 해석하다 보니까 
훨씬 더 신적인 면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인데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요21:18
젊은이의 특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젊은이의 특권은 망아지와 같다는 거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달려갑니다. 
자기가 원하는 옷을 입고, 가고 싶은 데를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젊은 사람의 특권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모든 사람은 이렇게 살고 싶어 합니다. 
자기 삶을 살고 싶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원래 원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부인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젊었을 때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그런데 그 다음 구절,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여기서 '늙었다'는 말은 원래는 '죽을 때가 가까왔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확장해서 해석하면 '신앙이 성숙되었다'는 말도 되지요.

 

아이 일 때는 아이처럼 살지만 
어른이 되면,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은 
어른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니에요. 

자기가 가고 싶은 데가 아니지만, 가는 거예요. 
남이 내게 요구하는 게 있고, 남이 나에게 부탁하는 게 있고, 
남이 나에게 바라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을 정의한다.. 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말씀이죠. 

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은 
아이는.. 자기가 자기 삶을 정의 하려고 하는데 
어른이 되면.. 남의 내 인생을 정의하기 때문에 

내가 바라던 / 바라지 않던 
자의에 의한 것이든 / 타의에 의한 것이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타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스스로 결단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의 환경, 가정의 형편, 
내게 요구되는 사명... 이런 것은 내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원래 바라고 생각했던 길이 아니더라도 
원치 않던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점이 있고, 어른이 되면 그렇다는 거죠.
아마 어떤 분들은, '내게는 어른의 때가 더 일찍 찾아왔어요. 너무 일찍 왔어요.' 
소년소녀 가장이 그런 경우일 것입니다. 

아직 애들인데.. 가정형편 때문에, 가장의 역할을 해야 되었던 거죠. 
어른의 임무가 일찍 찾아오는 사람들도 간혹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요. 

우리가 어른이 되려고 하는 한, 
어차피 내가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드라마가 아닙니까. 
인생의 드라마! 

<벤허>의 주제도 그와 같죠.
영화 또는 소설 <벤허>의 주인공 벤허는
이스라엘의 왕족으로 태어나서 편안하게 살 줄로 기대했는데 

로마의 장군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고 
그래서 죄수로 끌려가서 로마함선 밑바닥 층에서 노를 젓잖아요. 

그러다가 로마제독이 전투 중에 물에 빠졌는데 
그를 구출해 줌으로써, 로마제독의 양아들이 돼 가지고 
그래서 결국 32살이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벤허>의 스토리죠.

<글레디에이터> 에도, 주인공 막시무스가 로마의 유명한 명장이었는데 
새로 등극한 젊은 황제에게 잘못 보이는 바람에 쫓겨가서 
노예가 되고, 검투사 신세가 돼서..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죠. 

많은 문학작품이 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상에 자기가 기대했던 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그렇고, 안 믿는 사람도 그런 것 같아요. 
예수님 말씀에,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기독교인의 삶은, 편안한 삶이 아니고 담대한 삶입니다. 할렐루야!

편안한 삶을 주님이 약속하신 게 아닙니다. 
'내 안에 있으면 편안하리라' 가 아니고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한다 그러나 담대하라!' 

여러분 중에 '나는 원래 이런 이런 사람이었고,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었고.. 
내 로망은 소녀.. 꿈도 많았고요. 그게 나의 원래 모습이었어요. 
꿈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의 환경 때문에, 내가 택하지 않았던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기대했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클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모임은 그런 사람들의 모임(클럽)입니다. 
'이전 일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네가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전토나 부모나 형제를 버리면... 

내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뭔가를 버릴 필요가 없었다면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닙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정도는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뭔가 버려야했던 것이 있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고려한 적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믿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버려야 했던 것은 아쉬워하지 마세요. 뒤돌아보지마세요. 
'아~ 옛날이여' 하고 뒤돌아 보지 마세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마세요. 
'나는 불쌍한 존재야!' 천만의 말씀,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원래 생긴 대로 살았다면 
지금까지 그렇고 그렇게 살았을 거에요. 
애 낳고 아들 낳고 딸 낳고 그렇게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그러나 주님이 나를 기대하지 않던 곳으로 끌고 가시는 바람에 
내 한계를 뛰어넘어서 
더 크고, 더 위대하고, 더 넓고 
믿음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됐어요.  
그게 내게 엄청난 축복이에요! 

 

성령의 바람을 타고 창공을 나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낯선 길이라서, 고난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지요.

 

주님이, 내가 기대하지 않던 쪽으로 끌고 가시는 바람에 
내가 믿음 없이는 살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거예요. 
사랑 없이는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축복받은 인생은 어떤 삶이냐?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는 인생, 그것이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 할렐루야!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사람들이 감동스러워 하는 
Climb every mountain 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인공 마리아가 자신의 갈 길에 대해서 고민할 때 
본 트랩 대령하고 결혼할 것이냐? 하며 고민할 때 

수녀원장이 Climb every mountain 이라는 아주 감동적인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 가사에 

A dream that will need
all the love you can give
everyday of your life for as long as you live

'사랑, 네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을 필요로 하는 
그 꿈을 쫓아가라'고 했어요.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맨 정신으로는 못 가고,

내 사랑을 쏟아부어야만 갈 수 있는... 터프한 길인 거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어떤 길이냐? 
믿음이 없이는 갈 수 없는 길,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할렐루야! 

 

그것이 왜 축복입니까? 만약에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나는 믿음도 필요 없고, 사랑도 실천할 필요 없고, 
자기 위주의 편협한 삶을 살았을 텐데 

내가 원래 기대하지 않던 쪽으로 하나님이 끌고 가시는 바람에 
이제 나는 믿음이 필요해요. 더 큰 믿음이 필요해요. 
그리고 사랑을 실천해야 돼요. 더 큰 사랑을 실천해야 돼요. 

그래서 더 큰 소망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대학에 떨어지라고 기도한 어머니

저희 어머니는 처음부터 저를 주의 종으로 키우시기를 원하셨지만
저는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반 대학교에 진학하였습니다.

대학 시험을 치는데 2교시 수학 시험을 망쳤습니다.
저는 재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정문 앞에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여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대학에 붙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음은 좀 달랐습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머니는 제가 대학에 떨어지기를 원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험 보러 가는 날, 일부러 미역국과 계란을 해 주셨습니다.
미끄러운 음식이라 그런 걸 먹으면 미끄러져 떨어진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 어머니께서 시험 당일 날 기도를 하신 이유는
제가 붙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라고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군대 가 있을 때, 집을 옮기셨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도 있듯이
어머니는 저를 주님께 바치기를 포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주의 종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처음부터 기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바람은 제가 26살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주의 종이 되기를 원하고 기도 해 주신 어머니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많이 배웠다는 부모님들이, 아이의 영혼은 뒷전으로 한 채
세상에서 돈 많이 버는 똑똑한 악마로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저희 어머니는 비록 못 배우셨지만
누구보다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계셨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이교집안에 시집와서
   난폭한 남편과 시어머니를 회개시켜 세례를 받게 하고
   방탕한 아들 어거스틴을 구해내어 위대한 신학자요, 
   성자로 만드신 분입니다.

   그 분이 어거스틴을 위해 기도한 증거는
   무릎에 1센티나 되게 박힌 굳은살입니다.
   어거스틴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의 강론을 듣고 회개하여
   마니교를 버리고 세례를 받습니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 모니카는
   모든 가족이 주님의 자녀가 된 모습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항구에서 기력이 소진되어 소천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원치 않는 결핍의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결핍과 한계점에 도달할 때, 인간의 정신력이 극대화됩니다. 
특전사 부대원이 되는 거죠.

인간은 자산을 넉넉하게 소유하게 되면 
일하는 과정에서 교만함, 방만함으로 연결됩니다. 

그러나 자산이 없음으로 인해 
긴장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결사적'이 되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돈이 없는 것이 행운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뒤돌아보면, 그때 없었던 것이, 한계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던 거죠. 
 
인간이 무한대에 가까운 힘을 발휘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풍요로울 때가 아닌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극대화됩니다. 즉 결사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핍과 위기는 
오히려 축복이라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