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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1장 번제의 제물과 제사장과 불

LNCK 2023. 1. 5. 09:36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1766070

◈번제의 제물과 제사장과 불           레1장              2015-09-20

※레1장의 번제의 제물, 제사장, 번제의 불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죠.
그러므로 레1장의 번제는 복음을 그림처럼 보여줍니다.

...............

레위기는 제사에 관한 책인데, 5가지 종류의 제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는 제사의 종류입니다.

또 화제, 요제, 거제, 전제와 같은 단어는 제사의 종류가 아니라,
제사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화제는 불로 제물을 태워 드리는 방법이고,
요제는 흔들어 드리는 것,
거제는 들었다 놓는 방법,
전제는 포도주와 같은 것을 쏟아 부어서 드리는 방법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네 가지고, 제사의 종류는 다섯 가지입니다.

레위기 1~7장까지는 5대 제사에 관한 규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위기 1~5장과 6~7장은 서로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강조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1~5장까지는 초점이 제사의 제물에 있는 반면,
6~7장까지는 제사장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7장까지는 5대 제사에 관한 내용이며,
“죄인 된 인간은 제물이 대신 희생되지 않고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대신 제물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5대 제사 가운데 첫 번째 제사는 ‘번제’입니다.
번제에는 중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제물’이고, 둘째는 ‘제사장’이고, 셋째는 ‘불’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제사장이 희생제물을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 할 수 있습니다.

1장에는 ‘제물’,
6장에는 ‘제사장’과 ‘불’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6:9절에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번제물은 단 위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규례’라는 단어는 유명한 히브리 단어 ‘토라’가 사용되었는데,
성경에서 토라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주1)

이제 번제의 3요소에 대해 살펴봅니다.


◑1. 번제의 첫 번째 중요한 요소는 <제물>

‘번제’(Burnt Offering)는 히브리어 ‘올라’로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제물을 불로 태워 향기가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 히브리어 ‘올라’ 입니다.

번제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8장과 22장에 나옵니다.
창8: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노아의 번제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후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만족을 드렸고,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이제 더 이상 물로, 홍수로 멸망하지 않습니다.
노아가 번제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로 망하지 않는 대신, 불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이 불로 망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그 때에 이 세상은 불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가 만든 원자폭탄을 보십시오.
그런 것들이 터지면 불로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로 다 망하게 되면 그 때는 방주도 소용없습니다.
불을 피할 배가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번제’라는 단어가 6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아들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태워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지만,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얼마든지 내게 또 아들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이끌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그를 칼로 찌르려 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수풀에 걸려 있는 어린 양을 데려다 번제를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번제할 수양을 준비해 주셔서 이삭의 생명을 살려주셨다는 내용이
창22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위한 희생
제사로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셔서 구원받게 되는 복음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1장은 번제의 제물에 관해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제물은 어떤 것을 드려야 할까요?

번제의 제물은 사람의 경제적 수준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들에 나가 잡아오면 됩니다.

그리고 중산층은 양이나 염소를 제물로 드립니다.
그리고 먹고 살만한 부유한 사람들은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눅2:24절에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은 후 결례의 날이 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로 제사를 드리려 하였습니다.

이는 요셉과 마리아가 갈릴리 지역의 아주 극빈한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아주 가난한 목수의 집에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 양이나 염소, 비둘기가 쓰였습니다.
그러면 번제의 제물이 사람의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사가 사람의 경제적 상태나 지위,
신분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갈3: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예외 없이 모두 구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차별을 두지는 않으십니다.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으십니다.

국적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 보면 수도 없이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온통 섞여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시는데 차별을 두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경제적 형편에 따라 자기에게 맞는 제물을 드릴 때,
송아지나 양 또는 염소의 경우에는 반드시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둘기의 경우, 수컷이나 암컷에 구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송아지나 양, 염소의 경우에는 흠이 없는 수컷으로 하라신 것입니다.

이것은 수컷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한다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염되지 않은 거룩한 인성을 가진 분이심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물에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흠이 있는 사람은 남의 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남의 죗값을 대신 갚아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남의 죗값을 갚아주려면 본인에게 죄가 없어야 합니다.
무흠한 제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다”는 말을 하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잘 통하니, 당신의 사정을 하나님께 잘 말해 주겠다”고 합니다.

약을 많이 먹어야 할 사람입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영혼의 문제도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이
도대체 누구의 말을 하나님께 전달하겠다는 것입니까?

제물은 반드시 무흠해야 합니다. 수송아지를 번제로 드리는 경우에는
제물을 가져온 사람이 수송아지 머리 위에 안수를 해야 합니다.
당사자가 안수를 해야 하는데, 이 안수는 살짝 손을 얹는다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누르는 것입니다.

시편 88:7절에 “주의 노가 나를 심히 누르시고
주의 모든 파도로 나를 괴롭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싸마크’는 ‘꽉 누른다’는 의미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는 송아지 머리 위에 손을 얹어 꽉 눌러서
자신의 죄를 모두 전가하는 것입니다. 양이나 염소, 비둘기의 경우에는
안수에 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송아지의 경우에만 안수를 하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리는 당사자는 자기 손으로 제물을 잡아야 하는데,
성막 뜰 북편에서 잡아야 합니다. 성막 뜰 서편으로는 ‘성막 본체’가 있고,
남쪽에는 화목제물을 함께 나눠 먹는 교제의 장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북편으로 가서 제물을 잡는 것입니다.

제물을 잡아 피를 받은 후, 그 피를 제사장에게 전해 주면
제사장은 번제단 사면에 그 피를 뿌립니다.
번제단은 가로 5규빗, 세로 5규빗, 높이 3규빗의 정사각형으로 된 기구
였는데, 1규빗은 약 45cm입니다.

당사자는 피를 뺀 나머지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 후에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어 제사장에게 전달해 줍니다.

그러면 번제단 안쪽에 있는 놋망 위에 고기를 올리고 벌여놓은 나무에
불을 붙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는 놋망 밑으로 떨어져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번제의 제물은 가죽이 다 벗겨지고, 피가 다 쏟아지고, 각을 뜨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죗값을 스스로 치르려 합니까?
“내 죗값을 왜 예수님이 대신 치러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직접 피를 흘리고, 자기 껍질을 벗겨내고 온 몸을 조각내야 합니다.

그리고 비둘기의 경우는 가죽을 벗기지 않고 제사장이 가져다가
목을 비틀어 몸에서 머리를 떼어냈습니다.
죗값을 지불하는 것은 이런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멱통(모이주머니)과 같이 더러운 것은 제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번제의 제물은 수송아지든, 양이나 염소든, 비둘기든 그 의미가 동일합니다.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죗값이 얼마나 심각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죗값은 목이 끊어지는 것이고, 가죽이 벗겨지고,
각을 떠야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번제의 제물이 갖는 의미입니다.


◑2. 번제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제사장>이다

레6:10~11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의 임무에 관해 규정입니다.
특별히 제사장이 입는 옷에 관한 규정이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물도 예수님을 예표하지만, 제사장도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제사장에 관해서는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의 의복은 세마포 옷입니다.
세마포는 마 재질로 된 하얀색 천입니다. 제사장은 세마포 고의를 입습니다.
고의는 속바지입니다.
그리고 세마포 겉옷을 입고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네 아들이 있습니다.
아론까지 포함하면 총 다섯 명이 제사장입니다.

원래 대제사장의 의복은 매우 화려합니다.
출28:2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대제사장은 흰 세마포 속바지를 입고 그 위에 세마포 옷을 입고
거기에 겉옷을 입습니다. 겉옷은 청색으로 된 옷입니다.
그리고 에봇이란 조끼를 입고, 그 위에 판결흉패를 걸칩니다.

판결흉패는 열 두 개의 보석이 달린 매우 화려한 대제사장 의복입니다.
또 머리에는 관을 쓰는데, 관 앞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패가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번제를 드릴 때만큼은
일반 제사장과 같이 세마포 옷까지만 입고 임무를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수수한 옷을 입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화려한 겉옷과 에봇, 판결흉패를 벗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속죄를 위해 낮아지신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목수의 집으로 오셨습니다.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Humiliation)라고 합니다.
대제사장이 세마포 옷을 입고 번제를 드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비를 예표합니다.

그런데 일 년 중 단 하루 대제사장의 의복을 그대로 갖춰 입고
임무를 수행할 때가 있습니다. 유대력으로 7월 10일 대속죄일입니다.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소 위에 피를
뿌리고 난 후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피 뿌림이 끝나고 나면 다시 영광을 차지하게 되실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속죄사역을 감당 하실 때는
낮고 비천한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모든 속죄 제사를 다 마치시고, 피 뿌림을 주신 이후에는
다시 영광스러운 우리의 구주가 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이 복을 받으려면 예수님께 잘 보여야 합니다.

최고 권세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인간 대통령에게만 잘 보여도 출세를 한다고
하는데, 최고 권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 겸비의 상태가 아니라
‘승귀’(Exaltation)의 상태에 계십니다.
모든 영광을 가지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분이십니다.

▲둘째, 제사장은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려야 했습니다.
출28:42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하체’는 허리부터 넓적다리까지를 가리킵니다.
하체는 ‘인간의 원죄’를 상징합니다. 인간의 원죄는 하체의 활동,
즉 생식의 과정을 통해서 후손들에게 계속 전수되기 때문입니다.

하체를 가렸다는 것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원죄가 없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실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자, 맹자, 석가모니가 아무리 훌륭하고 탁월한 사람들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원죄가 있기 때문에 남을 구원할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타인을 구원할 대속자가 되려면 원죄가 없는 존재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분밖에 없음을 믿으십시오.

▲셋째, 제사장은 세마포 옷을 벗고 평상복을 입은 후 재를 가져다가
진 바깥 정결한 곳에 둬야 했습니다.
그러면 왜 세마포 옷을 벗고 진 밖으로 나가야 할까요?

세마포 옷은 세속에 더러워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복한 후 재를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재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실 뿐만 아니라 그 육신이 죽으실 것이 예표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진 바깥 정결한 곳에 놓이게 될 것임이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언덕은 ‘골고다’라고 하고, ‘갈보리’라고도 합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받은 사람의 시신은 갈보리 언덕 아래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동물들이 와서 시체를 먹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시체를 요셉에게 넘겼습니다. 마27:60절에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자신이 죽으면 사용하려고 바위를 파서 만들어 놓은 새 무덤에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큰 돌을 굴려 입구를 막았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시신이
진 밖 정결한 곳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3. 번제의 세 번째 중요한 요소는 <불>이다

레6:9절과 13절에 반복되고 있는 내용은
“불이 꺼지지 말아야 하고, 끊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에 관한 한 중요한 핵심 메시지는 꺼지지도 말아야 하고,
끊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불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소멸하는 불’이라고 말씀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도 ‘불 침례’라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가리켜 불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단에 불이 꺼지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나님의 교회에 성령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고 해석하여
부흥회의 본문 말씀으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꺼지지 않는 불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셔도 절대 아무 대가없이 용서하지 않으시고,
죄인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을 바치고, 제물을 불에 태워 향기로
하나님께 올려 하나님이 만족하셨을 때에만
죄인의 죄가 용서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만족되어야 함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사람들이 가지고 오는 제물로 번제를 드리고,
특별한 절기에도 번제를 드리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소위
‘상번제’(Continual burnt offering)를 드려야 했습니다.

출29:38~39절에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릴지며” .. 아침저녁으로 끊이지 않고 번제를 드려
그 불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레1:9절에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를 통해 연기가 위로 올라가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 Sweet aroma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흠향하시면 그 제물을 드리는 죄인에 대한 공의가 만족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죄인을 반드시 죽여야 마땅하지만, 이 제물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은 증거로 연기가 올라와 내게 향기가 되었으니 나의 공의는 만족되었고,
죄인들의 죄는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지 않고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창8:21절에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이 만족하신 것입니다.

또 엡5:2절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속죄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이외의 다른 제물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받으시고 만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불, 다른 종교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마귀의 장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비진리입니다. 마귀의 소리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향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린 희생제사 뿐입니다.

▲둘째, 번제의 꺼지지 않는 불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지옥에서 영영히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서 꺼지지 않는 불은 언제나 지옥을 가리킵니다.
마3:12절과 눅3:17절에 보면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죗값은 영영히 타는 불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영영한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 꺼지지 않는 불이 갖고 있는 의미입니다.

 

정리하면,

번제는..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와 구원을 상징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5대 제사 모두의 공통적인 면이라고 보고요)

그와 아울러, 번제만의 톡특성, 번제가 가지는 의미는 

제사자의 전적 헌신을 뜻합니다.

그는 자기 가죽을 벗겨야 하고, 피를 흘려야 하며, 몸을 조각내야 합니다.
마치 목이 비틀어져야 하고, 머리가 떨어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해서, 자기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죠.
   
또한 다른 불로 드린, 흠 있는 제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외에 인간의 영혼이 죄 사함 받고 용서받고
천국가고 육신도 부활해서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 불에 들어가는 일이 없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남은 생애, 주님의 그 구원을 늘 생각하며, 감사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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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토라'가 사용된 3가지 의미

1) 첫째는 광의적 의미로, ‘성경 전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19편 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율법’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시1:2절에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토라는 성경 전체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중간적 의미로,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3) 협의적 의미로, ‘규율’, ‘규례’, ‘규칙’ 등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기 레위기 6장 9절에서 ‘규례’는 번제에 대한 ‘규칙’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좁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