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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장, 소제물에 뺄 것과 넣을 것

LNCK 2023. 1. 7. 06:20

https://blog.naver.com/karamos/80050893613
 
◈소제물에 뺄 것과 넣을 것        레위기2장

서론

성경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양식도 있지만 단단한 양식도 있습니다. 
우유도 있고 고기도 있습니다. 

단단한 음식은 먹기는 어려워도 먹으면 맛도 있고 영양도 좋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우유를 먹고 자라지만, 신앙이 장성하면 단단한 음식도 먹고 
고기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의 말씀은 소화하기 쉬운 그런 음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꼭꼭 씹어 먹으면 감칠맛 있는 책이 바로 레위기입니다. 

번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흠이 없는 제물을 가지고 와서 
자기의 죄를 고하며 그 위에 안수해서 기도하서 자기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킨 다음 그 제물을 잡아서 피를 흘립니다. 
그런 후에 제사장은 그 피를 단의 사면에 뿌리거나 아니면 뿔에 바릅니다.

오늘은 소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제는 ‘Grain offering’ 혹은 ‘cereal offering' 이라고 합니다. 
소제는 무엇으로 드리는 제사입니까? 곡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영어를 하는 사람들은 잘못하면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제는 Grain offering이라고도 하지만 ‘Meat offering’ 
이라고도 말하기 때문입니다. ‘Meat’는 고기라는 뜻이 아닙니까? 
잘못 번역하면 고기제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meat’는 고기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곡물 중에서 먹을 수 없는 부분을 뺀 먹을 수 있는 부분을 ‘meat’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Meat offering’은 ‘Grain offering’과 같은 말입니다.

▲번제와 소제는 
네 가지 점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번제 소제
짐승이 제물 곡물이 제물
피 있는 제사 피 없는 제사
전체를 태움 일부만 태움
죄를 속죄함 속죄받은 것을 감사함

번제는 짐승이 제물입니다. 그러나 소제는 곡물이 제물입니다. 
번제는 피가 있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소제는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제라고 할 때에 이 ‘소(素)’자는 한자로 
‘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가 없기 때문에 흰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번제의 경우에는 가죽을 뺀 나머지는 제물 전체를 다 태워서 
여호와께 향기를 올려 드립니다. 전체를 태웁니다. 

그러나 소제는 일부분만 취하여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갖게 됩니다. 

번제의 경우는 그 효과가 사람의 죄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제는 번제를 드려서 죄를 속함 받은 사람이 
감사와 헌신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속죄제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아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칭의를 계속 기억합니다. 

번제를 통해서 칭의를 받는다기 보다는, 
번제를 드리는 사람들은 이미 다 구원 받은 신자들입니다.
그리고 상번제로 아침 저녁으로 드렸는데, 아침저녁으로 매일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 구원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는 것이죠.
목욕한 사람이 발을 매일 씻듯이요.

그러나 소제는 이미 예수 믿어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의 성화와 관련되죠. 

구원의 두 가지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칭의’와 ‘성화’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으면 ‘영화’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번제의 경우에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제물에 손을 얹어서 안수합니다. 
그 안수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소제는 안수하는 과정이 없습니다. 
이것은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형적인 면이나 신학적인 면에서 
번제와 소제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는 기본제사이고 소제는 부수제사인 것입니다. 
번제는 밥이요 소제는 반찬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반찬이 같이 가야합니다. 밥만 먹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번제와 소제는 병행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번제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소제의 제물도 가져가서 
제사를 드려야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출29:39-40절을 보면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매일 해야 할 일은 아침과 저녁으로 1년 된 어린양을 한 마리씩 잡아서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번제를 드릴 때에는 아울러 고운 밀가루 에바 1/10을 소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에바는 22ℓ입니다. 그러므로 십분의 일은 2.2ℓ입니다. 

또 민15:6절을 보아도 수양을 번제로 드리는 경우에는 
고운 가루 한 에바의 2/10 에다, 기름 한 힌의 1/3을 드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번제에는 반드시 소제가 따라가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는 모든 제사의 기본이요 소제는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의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중문제입니다. 

예수 믿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먼저 번제를 통과해야 소제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번제가 출발이요 기본입니다. 

그 위에 감사와 헌신과 의로운 삶이 첨가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칭의 없이는 성화가 없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거룩한 삶, 
의로운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기본자격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창4장을 보면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가지고 기름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무엇으로 드렸습니까? 
번제 없이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소제는 잘못된 제사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도 바른 제사입니다. 그러나 번제 없는 소제를 드린 것이 잘못입니다. 

번제 없는 소제는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번제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위에 안수함으로 회개하고 
그 피의 효력으로 죄사함을 받은 사람만이 감사와 충성과 헌신과 의로운 삶의 
소제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적으로도 바른 길이요, 우리의 체험을 통해 볼 때에도 바른 길입니다. 

여러분이 의로운 삶을 살고 싶으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예수 믿지 않고도 윤리 도덕을 가지고 의롭게 살 수 있다.’ 
그것은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번제 없는 소제는 받지 않으십니다.


◑1. 소제의 재료

그렇다면 이 소제의 재료는 무엇입니까? 2:1절을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1. 소제는 한 마디로 말해서 “고운 가루”입니다. 
이것은 밀가루도 되고, 보리가루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이삭을 소제로 드리는 경우에는 14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첫 이삭을 드릴 때에는 볶아서 찧어야 합니다. 
소제의 재료는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넣어야 하는 것이고 
그 기름 위에 유향을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가 된다는 말입니다.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곱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을 드리는 사람은 가장 최고의 것을 드려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데 거칠고 값싸고 맛없는 것을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쓰고 남은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지 마시고 
쓰기 전에 가장 최고의 것으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1986-91년도까지 미국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목회를 할 때 가끔 “교회에 TV가 없으니 헌물하실 분은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하면 사람들이 쓰다가 못 쓰는 것을 가지고 옵니다. 

여러분, 그런 것은 거친 가루입니다. 고운 가루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에는 먼저 드리고 나머지 것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먼저 최고의 것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 소제의 재료는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자아가 없어져야 합니다. 

자아가 깨지고 부서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100% 헌신하려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깨어지지 아니하고 부서지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을 가지고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도 그것입니다. 
예수님도 인성을 가지고 계시고 자신의 뜻이 있으셨지만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요6:38-39절에도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눅22:42절에도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완전히 고운 가루가 되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고운 가루가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고 감사하고 충성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바르게 사는 삶이요, 옳게 사는 삶인 것입니다. 

고운 가루가 되지 않고 “나는 내 멋대로 살겠다.”고 하면 
나중에 삶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후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망하게 하시려고 고운 가루가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른 인생길이요 
그것이 영혼을 지향하는 인생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2. 소제에 첨가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그런데 여기 소제에는 절대로 첨가해서는 안 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과 무엇입니까? 11절을 읽겠습니다.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하나는 누룩이고 또 하나는 꿀입니다. 누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로 누룩의 의미는 부패입니다. 
누룩이 들어가면 부패시키고 곰팡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룩의 의미는 교리적인 부패, 윤리적인 부패입니다. 
모든 부패는 다 누룩으로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질의 복이든 영의 복이든 받으려면 삶에 누룩이 없어야 합니다. 
똑같은 자본을 가지고 출발을 해도 누룩이 있는 사람은 망합니다. 
그러나 삶이 정결한 사람은 자꾸 복을 받고 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 8장 15절에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에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첫째로 누룩은 부패입니다. 둘째로 누룩의 의미는 교만입니다. 
누룩이 들어가면 밀가루가 부풀어 올라서 큰 빵 덩어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영혼에 누룩이 들어오면 사람의 마음이 부풀어 올라서 
자기가 거물이 된 것처럼 여기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에 빠지게 되는 거죠.

세 번째로 누룩은 악독함의 의미가 있습니다. 
누룩은 언제나 악하고 독한 것의 상징입니다. 고전5:8절에도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그러므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은 그 삶에서 부패와 교만과 악독을 
제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거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그 사람의 헌신과 감사를 받으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섞여 있으면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누룩을 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섞지 말아야 할 것은 꿀입니다. 꿀은 혀에 얼마나 달콤합니까? 
그러나 많이 먹으면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잠25:27절에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이 꿀을 많이 먹는다는 것은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이나, 이생의 자랑을 구하는 것이 
꿀을 먹는 것입니다. 

사람이 꿀을 너무 많이 먹게 되면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들은 모든 인간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지만 
바로 죄악의 3대 근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헌신해서 사는 사람들은 
지나친 육신의 정욕이나 탐욕이나 사욕이나 이런 것을 좇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꿀입니다. 그러므로 꿀이 섞인 소제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3. 소제에 첨가할 세 가지

그런데 소제에는 반드시 섞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름입니다. 기름은 거룩한 기름이요 하나님이 만들라고 하는 
방식대로 감람유를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명백합니다. 기름의 상징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자기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의로운 삶,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성령충만을 주시고 
바른길로 인도하실 때에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께 뜨겁게 부르짖는 기도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게 되고 성령의 보호하심 가운데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의로운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 의지로 살겠습니다!”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자신은 믿을 게 못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을 때 
우리는 바르게 살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유향(Frankincense)입니다. 유향나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나무에 흠을 내면 진액이 나오게 됩니다. 
그 진액을 받아서 가루로 말리게 되면 그것이 유향입니다. 

이 유향은 가나안 땅에서도 많이 나고 아라비아에서도 많이 나는데 
특별히 이것은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유향 가운데는 길르앗에서 나는 길르앗의 유향이 가장 피부병에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가 길르앗 유향으로 
치료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고 탄식한 적이 있었죠. 

이 유향은 불에 태우거나 가열을 하면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그것을 태우면 하얀 연기가 나는데 
이 연기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유향은 기름처럼 가루와 혼합이 안 되기 때문에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놓고 그 위에 얹어놓고 태우는 것입니다.

유향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 보좌 우편에 앉히시고 
그리스도의 간구를 들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유향은 그리스도의 중보기도를 의미합니다. 
벧전3:22절은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롬8:34절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유향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향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고 의롭게 살고 싶지만 자꾸 실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넘어져 계신 분은 다시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주시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시고 
우리를 넘어진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신앙에 넘어지고 기도에 넘어지고 윤리에 넘어진 분들은 
다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할 때에는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의 두 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고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 소제물에 첨가되어야 할 제일 중요한 것은 13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제일 중요한 것은 소금입니다. 소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소금은 첫째로 불변성을 의미합니다. 
소금의 맛이 오늘은 짜다가 내일은 달게 변한다면 그것은 소금이 아닙니다. 
소금은 맛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소금은 맛이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연약을 맺을 때 언제나 
‘소금언약’이라고 말했습니다. 

민18:19절에도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은 
소금언약(covenant of salt)이니라.”

언약을 맺을 때 이 언약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소금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소금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의 평강으로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2) 두 번째로 소금은 친밀한 교제(close fellowship)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할 때에 “내가 너희 소금을 먹겠다.” 하면 
이것은 내가 너와 친밀하게 지내겠다는 뜻입니다. 
교제성, 친밀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낼 때에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로 소금은 진지성, 성실성의 상징입니다. 
골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 소금으로 고르게 함과 같이 하라.”

사람의 말은 소금처럼 성실하고 진지하다고 느껴져야 합니다. 
사람의 말에 꿀을 타서, 말은 달콤한데, 말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성실하고 진지하게 해야 하고 
신앙생활의 봉사를 해도 성실하고 진지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즘 인기 있는 개그맨의 말처럼 “그까이꺼 대충!” 해서는 안 됩니다. 

4) 네 번째로 소금은 부패 방지성이 있습니다. 
소금이 들어가면 세균이 죽고 썩는 것을 방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제에는 반드시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결론

우리는 이런 말씀을 볼 때 ‘천지를 창조하신 광대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작은
규정들을 일일이 세세하고 섬세하게 말씀하신 것이 얼마나 놀라우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쫀쫀한 시아버지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이 살아야할 원리를 
지금 그림자처럼 그림책으로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고운 가루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고운 가루가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룩같이 부패한 것은 제거하고 
꿀처럼 세상의 달콤함도 제거하고 그런 것에 탐닉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기름같은 성령의 도우심과 유향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기도에 힘입어서 
세상의 소금처럼 살아야 합니다. 변함없는 신앙을 가지고 성실하고 
진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며 부패하고 썩어가는 세상에서 
소금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사회도 대단히 부패했습니다. 
교회도 같이 부패해서 썩으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소금처럼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친 소제물이 되시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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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장, 소제의 규례       레2장, 레6:14~23      2015-09-27

◑서론
 
레위기에 기록된 5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은 네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로 태워 드리는 것은 화제, 
흔들어서 제사하는 것은 요제, 
들었다 놓았다하여 드리는 것은 거제, 
포도주와 같은 것을 부어서 드리는 방법은 전제라고 합니다.

5대 제사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인간이 희생제사 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희생제사를 거쳐야 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소제는 히브리어로는 ‘민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제물’이라는 뜻도 되고, ‘예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죠.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을 ‘제물’, ‘헌물’, ‘선물’ 등으로 표현하죠.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경우는 ‘제물’이라고 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것을 ‘예물’이라고 합니다.

‘민하’는 창4:3절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단어인데, 
“가인이 제사를 드릴 때, 땅의 소산(민하)으로 여호와께 드렸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또 창32:13절에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드리는 ‘예물’의 의미로도 사용되었죠. 
야곱이 ...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민하)을 택하니” 
야곱이 형의 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드린 ‘예물’ 역시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죠.

▲소제에 관한 말씀은 같은 내용이 레2장과 6장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두 번씩이나 기록되었을까요? 

2장은 ‘제물’, 
6장은 ‘제사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강조점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두 본문을 모두 살펴봐야 합니다.

 
◑1. 소제와 번제의 유사점과 차이점
 
소제가 번제와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요? 네 가지 면에서 비슷합니다.

첫째, 번제의 제물이 흠 없는 수컷이어야 하듯이, 
소제의 제물도 고운 가루로 아무 흠이 없어야 합니다. 
밀가루든, 보릿가루든 맷돌로 곱게 갈아서 제물로 사용해야 합니다. 
제물에 아무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흠 없고 죄가 없는 분이심을 예표합니다.

둘째, 번제와 소제 모두 불로 태워서 드리는 화제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셋째,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밀가루에 유향을 섞어서 태우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하나님이 만족하시고 
죄인들에게 죗값을 묻지 않으시게 된다는 점이 공통적입니다.

넷째, 번제와 소제는 독립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항상 같이 치러집니다. 
번제가 밥이라고 한다면, 소제는 반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찬 없이 밥만 먹는 사람 없고, 밥 없이 반찬만 먹는 사람도 없습니다.

▲출29:38~40절에 상번제에 대한 규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양 한 마리, 저녁에도 양 한 마리를 매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번제를 드릴 때, 항상 가루를 가지고 소제를 함께 드려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고운 가루 한 에바의 1/10 (2.2L)을 아침저녁으로 한 번 씩 
소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듯 번제와 소제는 함께 드려져야 합니다. 

번제와 소제는 항상 함께 나오는데, 그 순서가 중요합니다. 
번제가 나온 후에 소제가 나옵니다. 

이는 번제의 피 뿌림으로 말미암아 회개를 하고 난 후에 
소제의 성화, 또는 헌신이 가능하게 된다는 기본 원리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소제와 번제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지만 5가지 면에서 차이점도 있습니다. 

첫째, 번제의 제물은 짐승이어야 하지만, 
소제의 제물은 반드시 곡식의 가루여야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둘째, 번제는 피가 있는 제사이지만, 소제는 피 뿌림이 없는 제사입니다. 

히9:22절에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제는 피 흘림이 있기 때문에 죄 사함을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소제는 피 흘림이 없기 때문에 죄 사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소제의 목적은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도록 만드는 데 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로 목축을 하는 백성들이기 때문에 
번제의 제물은 비교적 구하기가 쉽습니다. 
양이나 소는 항상 살 수 있는 동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제의 제물은 곡식이기 때문에, 광야에서 구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제의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소제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리는 제사입니다.

넷째, 번제는 제물의 전체를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소제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레위기 6장에 기록된 소제는 일반 백성들이 드리는 소제와 
제사장의 위임식 때 드리는 소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앞부분의 내용은 일반 백성들이 드리는 소제에 대한 규례이고, 
뒷부분은 제사장의 위임식 때 드리는 소제에 관한 규례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 때 드리는 소제의 경우는 모두 다 태워 드리라고 했습니다.

레6:14~16절에 “소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앞 여호와 앞에 드리되 그 소제의 고운 기름 가루 한 움큼과 
소제물 위의 유향을 다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그 나머지는 아론과 그 자손이 먹되 
누룩을 넣지 말고 거룩한 곳 회막 뜰에서 먹을지니라” 

일반 백성이 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한 움큼만 가지고 태워서 드린 후 
나머지는 제사장 몫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움큼 잡아서 태워 드리는 부분은 ‘기념물’이라고 했습니다. 
기념물은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취하는 것입니다.

레2:2~3절에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루 한 줌은 기념물이라고 했고, 나머지는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번제의 경우는 다 태워 드리지만, 소제의 경우는 무조건 다 태워드린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제사장들이 위임식을 할 때 온전히 불사르고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온전히 죽는 것을 예표합니다. 

요12: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다섯째, 번제의 경우 제물에 아무 것도 첨가할 수 없고, 
제사의 방식도 획일적입니다. 

동물의 머리에 안수한 후 죽여 피는 뿌리고, 나머지는 다 태워야 합니다. 
여기에는 더하거나 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에는 인간이 기여할 부분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의지해서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옥 갈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달리 인간의 공헌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 사함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밖에 없다고 성경이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루셨고, 우리는 그 분을 믿기만 하면 되는데, 
소제의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헌신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레2:1~3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고운 가루로 요리하지 않고 그대로 태워 드릴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화덕에 구워서 드릴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5절에는 번철에 부쳐서 드릴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삶거나 볶아서 드릴 수도 있습니다. 소제의 경우 고운 가루를 
사용하되, 다양한 요리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소제 제물의 4대 요소와 첨가할 수 없는 두 가지

번제는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그대로 다 태워 드립니다. 
거기에 인간이 첨가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소제는 제물에 인간이 첨가하거나 
첨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소제 제물에 첨가되어야 할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고운 가루’(Fine flour)입니다. 
밀가루든 보릿가루든 가루면 되는데, 거칠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성과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밀이든 보리든 곡식이라면 반드시 수순이 있습니다. 
땅에 씨가 묻혀야 하고, 자라야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고, 
추수해서 맷돌에 갈아야 합니다. 

고운 가루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한 알의 밀이 되어 
죽음의 수난을 겪어야 함을 예표합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고운 가루가 상징하는 바입니다.

둘째, ‘기름’(Oil)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감람유’, 
즉 올리브기름을 가리킵니다. 
고운 가루 속에 기름이 속속 배어 들어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00% 성령 충만을 받은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것임을 예표합니다.

그러면 기름을 부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는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여 하나님만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창28:18~19절에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자기 형 에서와 아버지를 속여 모든 복을 다 받고 도망가는데 
외삼촌 라반이 사는 밧단아람까지 가야 하니 길이 얼마나 멉니까? 

날이 저물어 잠을 자야 하는데, 
아무 것도 없이 광야에서 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놓인 
사닥다리와 그 끝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베고 자던 돌을 세우고 거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이제 이 장소(벧엘)는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소제 제물에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따로 구별하여 
성령의 지배 가운데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짐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충만함을 입고 우리 죄를 위해 구별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셋째, ‘유향’(Frankincense)입니다. 
유향은 유향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오는 진액을 고체로 만든 것입니다. 
유향을 불로 태우면 향기로운 냄새가 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2:11절에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며 3가지 진귀한 보배를 드렸습니다. 
바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입니다. 황금은 왕이 사용하는 것이고, 
유향은 제사장이 소제 때 사용하는 것이며, 
몰약은 선지자들에게 기름 부을 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황금, 유향, 몰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 제사장, 선지자 직분을 
한 몸에 지니신 분이심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향이 되셔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누그러지고 공의가 만족된 것입니다.

넷째, ‘소금’입니다. 소금은 짠 맛을 낼 때 사용하지만, 
썩음을 방지하는 방부제로도 사용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이 부활하여 썩지 않을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소제 제물에는 소금이 첨가되어 부패가 방지된다는 것입니다. 
행2:31절에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예수님의 육신은 죽었고, 장사 지낸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썩지 않는 육신을 가지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누구나 한 번 죽어 무덤에 들어가게 되고, 
화장을 하면 가루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 육신도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그 날이 되면 썩지 않는 육신이 되어 영생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독교는 적선을 많이 하라고 가르치는 차원의 종교가 아닙니다. 
물론 선행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슬람교처럼 선행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영생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영혼구원과 육신구원에 관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목적은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활과 영생이 없으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소제 제물에 소금이 첨가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이 썩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의 육신도 부활 후에는 썩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 소금을 ‘언약의 소금’(Salt of Covenant)이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2장 13절에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근동 지방 사람들은 상대와 친구관계를 맺을 때, 
서로 소금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서로 소금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소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이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소제 제물에는 4대 요소, 즉 고운 가루, 기름, 유향, 소금이 들어갑니다. 
이는 1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2차적으로는 성도의 삶을 예표합니다.

▲그러면 소제 제물에 첨가되지 말아야 할 두 가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누룩’입니다. 
레2:11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성경에 누룩은 대부분 죄와 부패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누룩은 악한 영향력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죄악을 가리킵니다.

고전5:6절에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아주 못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아내와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고린도교회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도 치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런 사람을 속히 징계하여 물리치라고 말했습니다. 

누룩은 죄의 상징이죠. 그러므로 소제 제물에 누룩이 첨가될 수 없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에는 조금의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키죠.

둘째, ‘꿀’입니다. 소제 제물에는 절대로 꿀을 첨가하지 못했습니다.  2:11
꿀은 사치, 정욕, 탐욕의 상징입니다. 

잠25:27절에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꿀을 너무 많이 먹는 사람은 당뇨병과 같은 병에 시달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꿀을 아침저녁으로 계속 먹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소제 제물에 꿀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자기 영예를 위해 살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들은 자기 삶에 누룩이나 꿀과 같은 죄악을 멀리 해야 합니다. 

탐욕, 사치, 향락에 눈이 멀어 죄와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제 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첨가할 수 없었습니다.

 
◑3. 소제가 증거하는 두 가지 진리
 
소제가 증거하는 진리를 예수님과 성도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죄나 오염이나 부패가 전혀 없으신 분으로 
희생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운 가루에 누룩이나 꿀이 첨가될 수 없다는 것은 
제물 되신 예수님께 아무런 흠이 없음을 가리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연애를 했다는 
괴이한 소리로 해를 가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런 누룩이나 꿀이 없는 분으로 조금의 부패도 없으십니다. 

벧전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천국 가는 것은 금이나 은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열납하셨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존해 
믿음으로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받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의로운 제물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도의 삶에 적용해 보면 번제로 말미암은 죄 사함을 받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과 화친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롬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소제 제물에 기름이 들어간 것처럼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구별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주고 사신 바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우리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고전6: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몸이 조금만 병들고 아파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진리입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음을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달라도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유향을 첨가하듯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의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또 우정을 상징하는 소금은 덕과 사랑을 베푸는 삶을 가리킵니다.

아울러 두 가지는 멀리해야 합니다. 
죄를 가까이 하지 마시고, 탐닉과 쾌락에 빠져 사는 인생이 되지 맙시다. 
누룩과 꿀을 제거하여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담백하게 헌신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