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레위기 3장과 7장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5대 제사 가운데 세 번째 제사인 ‘화목제’에 관해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5대 제사는 이스라엘의 예배입니다. 예배의 기본적인 원리들을 통해 죄인들이 제물의 희생을 근거로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제사에 관한 율법을 주셨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은혜를 예표로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번제는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의 ‘올라’, 소제는 ‘제물’이나 ‘예물’을 뜻하는 ‘민하’라고 했습니다. 화목제는 ‘보답’을 뜻하는 ‘쉘렘’이 사용되었습니다.
‘쉘렘’은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과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서로 ‘샬롬’이라고 인사하며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1. 화목제의 적용에 관한 두 가지 관점
이스라엘의 제사는 언제나 번제, 소제, 화목제 순으로 나옵니다. 성경 어디에도 화목제가 먼저 나오고 ‘소제와 번제’가 나오는 순서로는 기록된 적이 없습니다. ‘번제와 소제’죠.
그래서 우선 화목제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앞서 순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암5:22절에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선지자들이 말할 때도 번제, 소제, 화목제 순서로 언급하였습니다. 제사의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화목제가 갖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고, 2차적으로는 성도의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이웃에 증거하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 번제, 소제, 화목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속죄 제사 드린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그 몸을 다 찢기심으로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소제’는 고운 가루를 드리는 것으로,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죽고 싹이 나 열매 맺힌 후 곱게 갈아져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고운 가루가 될 때까지 겪은 수난의 전 과정을 계시해 주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주심으로, 죄인들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고, 죄인들 상호 간에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엡2:14~18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요일2:2, 4:10참조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도 화목할 수 있게 되었고, 죄인들끼리도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번제, 소제, 화목제는 2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는 자가 사죄와 칭의의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제는 칭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그 삶 속에 성령의 기름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유향, 그리고 세상의 방부제 역할을 하는 소금이 있어야 함과 동시에 죄를 상징하는 누룩과 사치와 방탕을 상징하는 꿀은 없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성도의 삶에 실제적인 지침이 될 만한 교훈을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이미 사죄와 칭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증거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성도들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과 화목을 얻고자 하는 목적에서 화목제를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화목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한 목적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목제를 다른 말로
‘감사제’(Thanksgiving offering), ‘찬미의 제사’(Offering of Praise), ‘교제를 위한 제사’(Fellowship offering)라고도 합니다.
▲또한 화목제의 의미를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레3:5절입니다. “아론의 자손은 그것을 단 윗불 위에 있는 나무 위 번제물 위에 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화목제물을 태우는 곳이 ‘번제물 위’라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화목제물은 번제물 위에서 불살라야 합니다.
성막 뜰에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 가운데 놋망이 있습니다. 놋망 위에는 나무를 벌여놓고 불을 붙여 번제 제물을 태웁니다. 그래서 재가 놋망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인데, 화목제물은 번제물 위에 불태웠습니다.
이것이 화목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화목제는 결코 번제 없이 드려질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번제는 제사장들이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양을 한 마리 씩 드리는 ‘상번제’(Regular burnt offering)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전제되어야만 인간이 그 공로 위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은 성도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히13: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찬미의 제사’는 화목제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제사는 예수로 말미암아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근거가 히13:12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사람이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전혀 없이 늘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은 바른 정신의 소유자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시는데, 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합니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고 지혜의 근본입니다.
화목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함을 계시해 줍니다.
◑2. 화목제를 드리는 절차에 관한 규례
화목제 제사 절차에 관한 규례는 레위기 3장, 7장, 17장, 19장까지 총 네 개의 장에 걸쳐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제사의 규례는 이렇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복잡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아무 생각 없이 무관심하게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은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제사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도들 중에도 어떤 사람은 무관심하게 예배에 임하는 방관자가 됩니다. 그런 사람의 예배는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예배자입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을까?” 를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나 뵙고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준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준비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헌금도 미리 정성껏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 사람들의 예배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에 대한 규례를 정신 차리고 잘 공부해서 똑바로 예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번제와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번제와 비슷한 점도, 전혀 다른 점도 있습니다.
먼저 번제와 비슷한 점 가운데
첫 번째는 제물입니다. 번제와 화목제 예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입니다.
그러나 야생동물을 잡아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동물들은 반드시 자기가 기르는 동물들 중 흠 없는 것을 취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제물을 드리는 경배자가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어 안수하여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동물에게 전가합니다. 그리고 성막 북편에서 제물을 잡아 피는 제사장에게 줍니다. 피를 받은 제사장은 번제단 사면에 뿌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제물을 불로 태워 여호와께 향기로운 향기가 되게 합니다.
이처럼 번제와 화목제는 경배자가 제물을 가져와 안수하고 잡은 후 제물을 태워서 드린다는 점에서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번제와 화목제는 차이점도 있습니다.
①첫째, 번제는 소나 양이나 염소가 반드시 수컷이어야만 하지만, 화목제는 암수의 구별이 없습니다.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예표하기 때문에 반드시 수컷을 제물로 사용해야 하지만,
화목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성별 또는 국적의 차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②둘째, 번제는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의 경우에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비둘기가 제물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태워도 먹을 고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는데 돈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거저 받으라는 것입니다. 돈이 있는 사람도 오고, 돈 없는 사람도 오고, 돈의 많고 적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감사(화목제)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주머니를 열어야 합니다. 노력이 좀 필요합니다.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갖다 드리면 되겠습니까?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고 수고와 노력이 담겨 있어야 감사입니다.
③셋째, 번제는 제물의 가죽을 벗겨서 제사장이 취합니다. 그리고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로 태워버립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제물의 기름만 태웁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의 내장 기름만 떼 내어 태우는 것입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이나 주변의 기름, 콩팥이나 간에 붙은 기름을 다 떼 내어 불로 태워 드리고, 소나 염소는 그렇지 않지만 양의 경우에는 꼬리에도 기름이 많이 있어서 꼬리까지 태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화목제물을 드릴 때, 기름을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감사할 때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름이 짐승의 깊은 곳에 있으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은 얼마나 감사한 분이십니까? 우리 생명을 지금까지 살려주셨고, 영혼을 구원해 주셨고, 영생을 주셨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정신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저 체면치레나 하듯 드려서 감사를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야 합니다.
둘째는 기름이 고기보다 사람을 살찌게 하는 생명의 본체라는 점에서, ‘기름을 태워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중동지방에선 살코기보다 기름 fat을 더 맛있는 부위로 인정함
성경에도 '기름'이 좋은 의미로 자주 쓰임. '기름진 것으로' 렘31:14등 )
최상의 것으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때는 최상의 것으로 해야 합니다.
④넷째, 번제는 경배자가 얻는 몫이 전혀 없는 반면, 화목제는 그렇지 않죠. 제사장의 몫도 있고, 경배자의 몫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고기를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오소리나 고라니 같은 고기는 먹을 수 있었지만, 소나 양, 염소와 같은 고기를 먹으려면 반드시 화목제를 드리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동물을 아무데서나 도살할 수 없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경배자는 성막 뜰 북편에서 동물을 잡고 하나님께 드린 후 제사장의 몫을 드리고 나머지를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두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루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런 규정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상숭배를 근절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막 뜰이 아닌 다른 곳에서 동물을 잡는 사람은, 우상숭배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피도 먹고 기름도 먹으며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을 바로 잡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에서는 이런 짓을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신 거죠.
물론 이 규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바뀌게 됩니다. 신12:15~16절에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과 같이 먹으려니와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각 성에서도 짐승을 잡아 피는 땅에 묻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화목제에는 하나님의 몫이 있고, 제사장의 몫이 있고, 경배자의 몫이 있습니다.
피와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고, 가슴고기(갈비)와 소의 네 다리 중에서 우편 뒷다리는 제사장의 것입니다.
제사장은 ‘요제’(搖祭)를 통해 가슴고기를 들어서 한 번 흔든 후에 취했고, 우편 뒷다리는 무겁기 때문에 들었다가 놓았다고 해서 ‘거제’(擧祭)를 한 후에 취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몫은 ‘흔든 가슴’과 ‘든 우편 뒷다리’라고 기록되어 있죠.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경배자가 먹을 수 있었습니다.
◑3. 화목제의 세 가지 종류
화목제는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감사제와 서원제와 낙헌제입니다.
감사제의 경우, 고기를 당일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서원제나 낙헌제의 경우는 이틀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삼일 째까지 남은 것은 모두 불로 태워 없애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철저한 위생관리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에 접촉한 것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정한 것에 접촉된 사람도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시며 모든 감염의 원인을 차단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철저하게 위생관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먹되 제물이 소 한 마리라면 그것을 어떻게 하루 이틀에 경배자가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가족, 친지, 이웃들과 나눠 먹어야 합니다.
화목제는 주변의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 있도록 하시는, 교제를 위한 제사죠.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는 이웃을 생각하고 좋은 것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외국 사람들은 자녀들 교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나눔’(Sharing)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누는 일을 했을 때, 많은 칭찬을 하고 격려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죔죔’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한 번 쥐면 놓지 말라고 가르치니 나눔을 모르는 것입니다. 움켜쥐기만 하는 아이들로 교육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는 “혼자 먹지 말고 나눠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받은 복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화목제는 감사할 때 드립니다. 이를 ‘감사제’(Thanksgiving offering)라고 합니다.
감사제를 드릴 때는 제물도 드릴 뿐만 아니라 무교병과 유교병을 한꺼번에 드립니다.
그러면 무교병은 하나님께 태워서 소제로 드리고 유교병은 고기 먹을 때 나눠 먹는 것입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누룩이 들어 있는 유교병을 먹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도 우리 속에는 여전히 죄가 남아 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서원을 했거나 서원을 성취했을 경우 제물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서원제’(Votive offering)라고 합니다. 그리고 ‘낙헌제’ 또는 ‘자원제’(Freewill offering)라고 합니다. 자원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헌물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소나 양이나 염소 고기를 먹고 싶으면 반드시 화목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화목제를 드린 사람은 고기를 먹을 수 있고, 고기를 먹으려면 화목제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미국 유학 후 신학교에서 교수로 생활했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목회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 보니까 복받는 사람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었습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무 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 속에 감사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감사가 있고 불평과 원망이 없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복을 받습니다. 화목제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최상의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항상 복을 받고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사장은 가슴고기를 요제로, 우편 뒷다리는 거제로 하나님께 드린 후에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레10:14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 희생 중에서 네 응식과 네 자손의 응식으로 주신 것임니이라.”
그런데 우리가 사무엘상 1장과 2장을 보면 부패한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가슴과 우편 뒷다리 말고도 다른 것에 더 욕심냈습니다.
갈고리를 만들어서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그 음식을 갈취해서 자기가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제사를 업신여겼죠.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전투에 나가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몫입니다. 제사 가운데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예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화목제 하나뿐입니다.
내장을 제외하고, 기름을 제외하고, 가슴과 우편 뒷다리를 제외하면 고기가 얼마나 많이 남습니까? 엄청나게 많이 남습니다.
화목제물은 빨리 먹어야 하는데, 그것은 종류에 따라서 조금 다릅니다. 감사제의 경우에는 하루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서원제라든가 낙헌제의 경우는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 많은 고기를 가족이 혼자 어떻게 다 먹습니까? 이웃도 불러다 먹이고, 평소에 원수같이 지내던 사람도 불러다 먹입니다. 그러니까 이 화목제는 결국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기쁨이 있고, 인간끼리도 화목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제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목하시면서 사람과도 화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로 제사의 목적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번제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한 번제 제물이 되어 주심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원죄와 자범죄의 덩어리를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번제의 기본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화목제의 경우는 레7:11-17절을 보면 세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제입니다. 화목제가 큰 범주이고 그 밑에 세 가지 이름을 가진 제사가 있는데 하나는 감사제(Thank offering)입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았거나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나게 되었다, 혹은 사업이 크게 성공하거나 목적한 일을 잘 이루었을 때에 하나님의 자비에 감동이 되어서 드리는 제사가 감사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삶 가운데 감사제를 드릴 일이 많이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서원제(Vow offering)입니다. 사람은 위기 시에 하나님께 서원을 드리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이 어려움에서 건져 주시면 내가 소 한 마리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그 서원한 것은 갚아야 합니다. 갚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서원제인 것입니다.
신23:21절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하고서 그 일이 이루어지면 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는 낙헌제(Freewill offering)가 있습니다. 이 낙헌제는 아무 이유가 없어도 마음에 감사해서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죠.
그러므로 이 화목제는 감사할 때나 서원 드린 것을 갚을 때나 마음이 즐거울 때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제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화목제의 제물을 먹는 데에는 3가지 경고가 있습니다. 레7:15-26절에 나와 있는데요,
1) 첫째, 제 삼일에는 어떤 종류라도 조금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과의 화목은 오래 두고 미뤄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오래 미뤄둘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가 있어서 용서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오늘 내일, 짧은 시간 내에 회개하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되죠.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문제는 오래 미뤄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년에 살아있을지 어떻게 보장합니까?
10년 뒤에 살아 있을지 어떻게 보장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은 미뤄두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몸이 부정한 자가 화목제의 고기를 먹으면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레7;20에 말씀했습니다.
시체를 만진 자와 몸에 유출병이 있는 자들을 부정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화목제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할 때는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의 피로 씻음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분은 “나는 예수는 안 믿고 하나님은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아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공자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닙니다. 부처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 아닙니다. 예수 이외에는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3) 세 번째로 레7:25절-26절을 보면 희생의 기름이나 짐승의 피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름을 너무 많이 먹으면 사람은 고혈압이 생기고 혈관이 좁아져 일찍 죽죠.
특히 내장의 기름은 통풍이라는 병을 야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못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의 피를 그대로 먹으면 그 세균으로 인해서 괴질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목제 제물을 먹을 때의 세 가지 경고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화목제의 특징
▲1. 이 화목제의 특징은 피가 있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3대 축복입니다. -의롭지 못한 자가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가 하나님과 화친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많은 죄를 지었고 앞으로도 죄를 지을 것이지만 그 죄에 대해 심판을 받지 않고 죄사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칭의와 화친과 사죄의 축복, 나아가서 성령을 마음속에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게 되면 천국이 예비 되어 있고, 영생을 얻었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여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동행하며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모든 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 피흘린 희생에 근거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런 축복의 하나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다면 기독교는 무능한 도덕일 뿐이요, 기독교는 아무 가치가 없는 이신론에 불과할 것입니다.
△유명한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이나 벤자민 프랭클린과 같은 사람들은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지만 신앙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신론자입니다.
이성이 신을 만들어 내고 인간이 신을 만들어 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신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신론 아닙니까? 그것은 못된 종교입니다. 피가 없는 신은 성경의 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그 다음에 감사할 일이 생기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무엇을 통과해야 합니까? 피를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가 없는 신은 참신이 아닌 것입니다. 피가 없는 신은 가짜신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리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의 피로 피뿌림 받아 죄사함을 받은 기쁨이 있어야 그 다음에 우리는 천국과 영생, 그리고 부활을 기대하고 확신을 가집니다.
기독교도 종교이고, 불교도 유교도 종교 아니냐? 아닙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피가 없는 종교입니다. 피가 없는 종교는 인간의 무능한 거짓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인간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과 영생과 천국의 복을 누립니다.
그 사실을 확실히 믿고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녀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이 없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화목제는 예수의 피뿌림으로 말미암은 죄사함 다음에 오는 기쁨을 말합니다.
▲2. 화목제의 두 번째 특징은 순서상으로 소제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다.
번제는 죄용서를 위한 것이고, 소제는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해서 헌신 봉사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는 예수님께 헌신 봉사한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기쁨은 언제 옵니까? 예수님께 헌신 봉사한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할 때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봉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면 마음속에 기쁨이 생겨날 것입니다. 기쁘면 헌신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헌신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 화목제는 짐승의 가장 내적인 부분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기름, 콩팥, 간과 같은 가장 부드러운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예배드릴 때 몸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부분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깊은 사랑, 부드러운 감성, 진실한 감사로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릴 때 그것이 참된 화목제가 되는 것입니다.
▲4. 네 번째로 화목제는 영적인 기쁨의 음식입니다. 기쁨은 세상에서도 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많이 읽을 때에도 기쁨이 오지 않습니까?
공부를 해도 즐겁고, 친구를 사귀어도 즐겁고, 여행을 가도 기쁘고, 꽃을 봐도 기쁘고, 음악을 들어도 기쁘고, 그림을 보아도 기쁘고, 스포츠를 해도 기쁩니다. 세상에도 얼마든지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화목제의 기쁨은 아닙니다. 신27:7절을 보면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앞에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목제의 기쁨은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요 하늘에서 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하나님을 아는데서 오는 기쁨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깨닫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내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아는 데서 오는 기쁨이요, 내가 죽어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아는 기쁨이죠.
이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 가운데 이런 화목제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예수 믿게 되면 세상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그저 회색빛깔을 띤 암울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결정적인 오해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기쁨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속에 성령으로 인해 엄청난 기쁨이 쏟아져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오는 화목제의 기쁨, 위에서 오는 기쁨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안에서부터 터져서 오는 기쁨이기 때문에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기쁨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제가 체험한 기쁨이요, 예수 믿는 여러분이 체험한 기쁨이요 화목제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쳐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기쁨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눅2:10절에 복음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빌4:4절에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 기쁨이 없으십니까? 시42:5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마음속에 불안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근거 없는 불안입니다.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낙망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근거 없는 낙망입니다. 오늘 낙망을 물리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마음속에 있는 불안을 깨끗이 예수의 피로 몰아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죄로 말미암아 기쁨의 샘이 가려 있으면 부정한 자는 화목제 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하셨사오니 하나님이여 내 죄를 예수의 피로 오늘도 씻어 주시고 내가 피를 지나 화목제의 기쁨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나이다. 내 영혼에 기쁨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이렇게 뜨겁게 기도하시고 영혼에 밝은 기쁨이 충만케 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죽지 마시고! 낙망하지 마시고! 절망하지 마시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기뻐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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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기쁨을 찾아가면...애 써서 가 봐도... 그 곳에 기쁨 없다. 세상에서 평안을 찾아가면...애 써서 가 봐도... 그 곳에 평안 없다. 세상에서 행복을 찾아가면...애 써서 가 봐도... 그 곳에 행복 없다. 세상에서 모든 축복을 찾아도... 애 써 찾아도... 그 곳에 축복 없다.
그런데 십자가를 찾아가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 곳에 축복있다. 내가 찾던 모든 축복이 십자가 뒤에 다 감추어져 있었다.
누구든지 마지막까지 예수와 동행하여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버릴 때, 진실로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으며 예수님만이 줄 수 있는 기쁨 안에 머무를 수 있다!
주1) 어떤 친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년 만에 반갑게 만났습니다. 둘 다 성공했습니다. 한 친구가 “내가 너희 집에 방문을 해야겠다” 하니까 다른 친구가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너는 우리 집을 올 때에 지하 주차장이 있는데 거기 문을 열 때는 반드시 발로 차서 열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누를 때에는 팔꿈치로 눌어야 하고 벨은 이마로 눌러야 한다.” 라고 말하니 얼마나 이상합니까?
그래서 묻습니다. “왜 손을 두고 발로 문을 열라고 하고 팔꿈치로 엘리베이터를 열라고 하고 이마로 누르라고 하는가?” 그러니까 “야 니가 20년 만에 우리 집에 오면서 빈손으로 오겠느냐? 손에 가득 선물을 들었을 텐데 네가 손을 쓸 수 있겠느냐?”했다는 이야기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빈손으로 오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