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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3:1~17 화해와 샬롬의 제사, 화목제

LNCK 2023. 1. 9. 04:19


◈화해와 샬롬의 제사, 화목제      레3:1~17        설교 녹취, 정리

레위기는 읽을 때 참 쉽지 않은 책입니다. 
오늘 본문 레3장에도 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인
'내장에 붙은 기름, 콩팥에 붙은 기름' 이런 여러가지 어려운 단어들이 나와서 
레위기를 읽다가도 '이게 도대체 뭔가?, 왜 성경에 이런 얘기까지 나오는가?' 
하고 참 마음에 시험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가 나랑 좀 살자!'라고 초청하는 초청장 이라는 것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너희는 나와 화목하자!'는 뜻이죠.

왜냐하면 레위기 안에 숨겨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가지 그림(모형)들이, 그림자처럼 이렇게 표현되어져 있거든요.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었던 그 약속, 또 시내산에서 맺었던 언약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관계를 회복시켜 가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레위기'입니다. *제사를 통해 회복되죠.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본문의 이 화목제를 자주 언급합니다. 
우리는 그걸 쉽게 눈치를 못 챕니다. 
'화목제' 라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요. 

구약에는 '화목제' 라는 말 대신에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 라고 나오는데, 
그게 다 본문 레3장의 '화목제'의 다른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역사서를 읽다 보면, 이 화목제 는 
제사의 측면보다는, 서로 이렇게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화목제를 밥을 함께 먹었던 식탁 교제로 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죠.
 
(※처음에 번제나 화목제는, 오직 성막 안에서만 드렸습니다.
이 규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바뀌게 됩니다. 

신12:15~16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즐기는 대로 생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과 같이 먹으려니와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각 성에서도 짐승을 잡아 피는 땅에 묻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땅 분배를 받아 12지파가 흩어져 살았는데, 
각 지파마다 성막이나 성전을 지을 수는 없었지만, 
번제단은 만들었을 것입니다. 돌로 쌓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12지파의 48 성읍에, 레위인들이 파견 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통해서, 중앙 성소까지 오지 않고도,

자기 지파의 '각 성에서 신12:15' 화목제를 드릴 수 있었고,
그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본문 1~2절에 '회막문 앞에서 잡을 것이요' 라고 했지만,

가나안 땅에 진입하고 나서는, 각 성에서 잡았기 때문에, 거기는 회막이 없었고

이 규례는 후에는 융통성있게 지켜졌던 것이죠.)


레위기에서 말하는 화목제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레3장은 화목제가 어떤 거다.. 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레7장, 17장, 19장에서 나중에 설명하고요)
본문 레2장은 그냥 '화목제 제사는 이렇게 드려라' 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화목제로 드릴 수 있는 제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소와 양과 염소입니다. 

화목제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다같이 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었죠. 

일부는 제사장의 취하고 (흔든 가슴과 오른쪽 뒷다리, 레10:14)
그 외 나머지 고기는 함께 나누어 먹었던 제사인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비둘기를 잡아서 화목제물로 드렸어요. 
근데 공동체는 1백명이에요. 
비둘기 한 마리 잡아가지고 나눠 먹을 수 있습니까? 없죠.

그래서 번제 제물에는 비둘기가 들어가지만, 화목제에는 그게 빠진 거죠.
소, 양, 염소로만 화목제물로 드렸죠. 뭔가 나눠 먹을 수 있는 제물들이었죠.

그리고 소 한 마리가 보통 1천근 (6백킬로) 고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걸 '하루나 이틀 사이에 다 먹고, 남겨두지 말라'고 했는데,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이웃들과 나눠먹지 않을 수 없었죠.
그래서 '하나님과도 화목하지만, 이웃과도 화목을 도모하는 것이' .. 화목제였죠.

▲레3:1~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5절까지는 소를 예물로 드릴 때 어떻게 해라.. 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자 먼저 어떻게 합니까? 

소를 드릴 때는,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리고 그 예물에, 예물을 드리는 헌물자가 안수합니다. 

그 후에, 그것을 회막 문 앞에서 잡고, 아론의 제사장들은 그 피를 
번제단 사방에 뿌리고 나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화제로 드리는 거에요. 

특별히 번제를 드렸던 그 번제물 위에, 이 화목제를 얹어서 드렸던 제사가 
이 화목제 입니다. 

그래서 화목제(쉘렘)의 어원을 '샬렘 peace'에서 찾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슬룸'에서 찾기도 하는데, 이는 '쌍둥이 두 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번제와 함께 드렸던 제사가 화목제' 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는,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두 콩팥과, 콩팥에 붙어 있는 기름, 허리 쪽에 있는 그 기름들을 다 떼고 
그래서 기름과 콩팥을 하나님 앞에 불살랐다는 거에요. 

레3:6~11절까지 방법은 똑같습니다. 근데 제물이 달라요. 입니다. 
3:12~16절까지도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은 똑같습니다. 제물만 다른데, 염소죠. 

그리고 나서 마지막 17절에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이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제사를 드리게 하고,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그랬습니다. 
그리고 기름과 피를 누구한테 드립니까? 하나님께 드렸던 거에요. 
   
'피를 먹지 말라'는 건 우리가 익히 들어왔어요.
레17장에 보면 '피는 곧 생명이다' 라고 하나님이 분명하게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래서 피는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기름 fat 까지도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콜레스테롤을 염려해서, 그들이 고지혈증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름을 먹지 말라고 그랬을까요?

본문 9절에 보면, 화목제의 제물 중에서 양을 드릴 때 
'그 기름 곧 미골에서 벤 기름진 꼬리' 라는 표현을 볼 때 
'기름진 꼬리'란, '가장 맛있는 부위'를 뜻합니다. 
요즘까지도 중동 사람들은 기름 fat을, 고기 meat보다 더 좋아합니다.
맛도 더 좋고요.

즉 가장 맛있는 부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린 것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피와 기름은 비위생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나머지 고기를 사람이 먹게 하셨다.. 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는, 가장 제물 중에 안 좋은 부위를 드린다는 뜻일까요? 
이런 주장은 뭔가 석연치 않아요.) 

구약에 보면 '기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좋은 것'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시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즉 기름 fat 이란, 육축의 제물 중에 가장 좋은 부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럼 '콩팥과 내장'은 그럼 무슨 뜻입니까? 
그 당시 문화에서 '콩팥과 내장'은, 사람의 감정의 중심 자리.. 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콩팥과 내장에 붙어 있는 기름을 불사른다' 이라는 얘기는  :9~10
예배자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좋은 것, 
그리고 자신의 깊은 감정 안에 있는 진실한 것들을 
하나님한테 바친다 .. 라는 것을 상징한다는 거예요. 

왜냐면 화목제 는요, 사실 우리의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드렸던 제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한다든지, 하나님께 감사한다든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하겠다... 라고 
나의 감정이 어느 정도 고조되었을 때 드렸던 예배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십시오' 라고 했던 제사가 
화목제 라는 겁니다. 

번제는.. 죄의 용서를 위해

소제는.. 자신을 말갛게 갈아서 드리는 헌신, 하나님께 기꺼이 드리는 선물

화목제는.. 감사, 서원, 자원

(번제→ 소제 화목제로 점점 더 감정이 고조되고, 더 큰 헌신으로 나아가죠)

(이렇게 세 가지 제사를 연속해서 하루만에 드리기도 했을 것이며,

화목제만 따로 드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화목제'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것,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 중에서 가장 귀한 것뿐만 아니라 

나의 감정, 나의 마음, 나의 생각, 
그리고 외적, 내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렸던 제사가 '화목제' 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드리고 난 다음에는, 뭐합니까? 
그 나머지를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던 제사가 화목제 에요. 

제가 이걸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바로 이런 거라는 거에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만 드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만 쓰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리고 나서, 그 외 것으로 하여금 어떻게 합니까? 
우리 공동체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나누는 예배.. 
이게 하나님께서 진짜로 우리에게 원하는 예배의 모습이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익숙합니다. 
교회 와서 예배드리고, 헌금하는 거는 굉장히 익숙해요.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굶고, 배고프고, 어려운 거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왜요? 
내 구원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오늘 화목제가 말해주는 분명한 제사, 분명한 예배는 
우리의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고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제사라는 거죠. 

▲이것을 조금 더 이해하려면, 언제 이 화목제가 드려졌는지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면 좋은데요. 

레7:15~18절까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16 그러나 그의 예물의 제물이 서원이나 자원하는 것이면 
그 제물을 드린 날에 먹을 것이요 그 남은 것은 이튿날에도 먹되

17 그 제물의 고기가 셋째 날까지 남았으면 불사를지니

18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화목제의 세 가지가 다른 형태(종류)가 나옵니다. 셋 다 화목제죠.

1) 15절은 '감사제'입니다. 
이때 드리는 고기는 '그날 다 먹어야' 되는 거예요. 

2) 16절은 '서원제' ..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서원할 때 드렸던 제사
또 '자원제(=낙헌제)' .. '자원해서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라고 
헌신하는 경우에 드렸던 제사로서의 화목제가 있습니다.

화목제는 드리는 제물의 양이 굉장히 큽니다. 소, 양, 염소거든요.
자기 혼자 다 못 먹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해주신 규정상
감사제는.. 당일에 다 먹어야 하고   7:15
서원제, 자원제는 .. 이틀 안에 다 먹어야 하는 겁니다.   7:16

소, 양, 염소를 잡아서 하루나 이틀만에 다 먹기는 힘들죠. 양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이웃과 나눠먹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내가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헌신하는 그것과, 

즉 화목제(감사제, 서원제, 자원제)를 드릴 때,
제물을 이웃과 나눠 먹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어떤 관계가 있냐는 거에요. 

이걸 생각해 보려면, 우리가 이 화목제가 어떤 제사인지 
한번 더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데 

사실 화목제는, 율법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제사 중의 하나입니다. 

마22:35~40절에 보면, 한 율법사가 와서 예수님께 물어요.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아주 분명하게 율법을 정리해 주십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사랑해라, 
네 목숨과 마음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라! 

그리고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굳이 첫째 둘째 서열을 따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동등하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해라!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라고 분명하게 
율법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이라는 거죠. 
(*가장 큰 계명, 둘째도 그와 같다고 하신 것을 볼 때)

그러니까 율법의 전부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어쩌면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해, 사람과 화해'

바울은 고후5장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주 큰 직분을 맡겨 주셨는데 
그 직분이 무엇이라고 얘기합니까? '화해의 직분'이라고 얘기해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하신 것처럼 
'너희는 가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해하는 직분을 가지고 살아가십시오' 

이 화해직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 
바로 화목제를 드리는 사람의 삶의 모습과 같다고 하는 겁니다. 

즉 이 말은, 형제자매에 대한 화해 없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고... 왜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감사를 드리는게 화목제 이기 때문이죠. 

화해 없이는 
하나님께 감사, 서원, 자원할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화목제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 서원, 자원하겠다는 것이고, 
이웃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화해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누군가와 갈등을 일으키고, 대립을 일으키고, 
나는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 으로부터 치유받고 회복돼야지...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에요. 

먼저 가서 그 사람과 화해하고 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게 맞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그러셨어요.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거든, 형제와 불화하거나 다툰 것이 생각나거든 
가서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그 다음에 와서 제단에 예물을 드리라'
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생각해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내가 회복되면, 
그 사람에게 가서 내가 용서를 구해야지... 아닙니다. 순서가 바뀐 겁니다.

우리가 먼저 해야 될 일은.. 
여러분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습니까? 
또는 누군가에게 불편하게 했습니까? 

그러면 가서 먼저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 형제와 완전히 회복된 그 기쁨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기쁨으로 
우리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그 기쁨과 감동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레위기를 읽으면서, 내일부터 또 속건제, 속죄제를 쭉 읽어가겠지만 
이 제사에 대한 걸 읽으면서 
사실 우리는 내 죄를 위해서 드려지는 제사에는 관심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내 죄를 속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러나 화목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의 화목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예배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큼 중요한 것은 
형제간의 사랑이고, 형제간의 화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알고 있어요. 
예배에 대한 정의를, 예전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바울이 말한 '예배의 정의' 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   롬12:1~2
여러분, 우리의 삶이 예배라면, 누군가한테 쉽게 상처 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예배라면, 어떻게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그리고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면서
어떻게 저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냐' 

우리는, 구약의 예배는 그냥 죄를 속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 
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요. 레위기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의 그 "관계 회복"이라는 예배를 
(화목제로) 명령하셨고 

그리고 그 예배가 신약에서 더 자주 언급되고 발전되는 겁니다. 
바울도 얘기하죠. '너의 삶을 예배로 드려라!' 롬12:1~2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 즉 예배를 기뻐하신다.. 라고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꼬인 관계는 내 힘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분 앞에 우리의 가장 좋은 것, 모든 것을 내어드릴 때 (화목제를 드릴 때)
그분께서 관계를 풀어가시는 거지, 내 힘으로 푸는 게 아님을 기억하시고 

오늘 혹 그런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화목제의 약속을 한번 믿고 기도해 보십시오. 

내가 내 중심을 다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받은 은혜의 힘, 성령의 힘으로.. 
이웃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서 화해의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그리고 제물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십시오! 화목제의 효력이 나타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