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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4장, 속죄제의 피뿌림

LNCK 2023. 1. 9. 18:56

https://blog.naver.com/karamos/80050893697

 

◈레4장, 속죄제의 피뿌림                  레위기 4장

 

※번제와 속죄제의 차이는 뭘까요?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만)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1) 번제는.. 제물의 모든 부위를 다 태워드리는 "제사자의 헌신"을 의미합니다.

    소제도, 화목제도.. 일부만 태워드리지만, 번제는 남김없이 다 태워드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헌신'을 의미함으로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번제를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5대 제사 모두가 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2) 번제는 가장 원시형태의 제사입니다. 창세기부터 나오죠.

속죄제는.. 모세 율법 이후에 시작된 제사 형식입니다.

이는 '대속죄일의 속죄제'로부터 시작해서, 신약적으로 말하자면 "회개"를 뜻합니다.

 

 

◑서론

 

레위기 1장에 나오는 번제는,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신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제사자의 "전적 헌신"을 의미합니다.  창8:20, 22:2, 3, 7, 8

창세기부터 번제가 나오는데, 문맥상 "헌신"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레위기 2장은 소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제는 곡물로 드리는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이 소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리는

헌신과 봉사를 의미합니다.

 

레위기 3장은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기쁘고 감사해서 기쁨의 표현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드린 사람, 즉 예수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헌신봉사하고 기뻐하면, 그것으로 끝날 것도 같은데

 

4-5장에는 계속해서 속죄제와 속건제에 대한 규정이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4장과 5장에는 온통 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스개 소리로 “왜 이렇게 많은 피의 이야기를 해서 공포감을 조성하느냐?” 하고

질문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는 피가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죄입니다.

우리는 죄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몇가지 대원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가운데 “심은 대로 거두리라”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원리는 바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느니라”는 말씀입니다.

 

히9:22절에도 이 말씀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피는 어떤 피입니까?

죄 있는 제물의 피가 아니라 흠 없는 제물의 피가 흘려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대원리인 것입니다.

 

레위기 4장을 보면 성막의 휘장도 피투성이요, 금 제단의 뿔도 피투성이요,

번제단 밑도 피투성이요, 제사장 옷도 피가 묻어서 피투성이입니다.

죄인들은 이 피를 볼 때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저 피로 말미암아 내가 죄사함을 받았고 내 양심의 고통에서 해방되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레위기 4장을 대하면서 ‘번제도 있고 소제도 있고 화목제도 있으면

그것으로 끝낼 만도 하신데 왜 속죄제와 속건제를 4-5장에 또 규정하고 계신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속죄제라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 또 필요한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속죄제가 필요한 이유

 

속죄제는 두 가지 때문에 필요합니다.

 

▲1. 첫째로는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도 죄를 짓기 때문에 필요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실로만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그 후에 또 죄를 짓고 연약해서 죄에 넘어집니다.

즉, 구원받은 이후에 지은 죄도 사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속죄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죄를 더 이상 짓지 않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요한일서 1장 8절에 사도요한은 분명하게 대답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 받았을지라도 “나는 이제 죄 안 짓는 사람이 되었다.”

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출애굽 역사를 봐도 이스라엘이 바로왕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거쳐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홍해를 맨땅처럼 지나서 건너왔습니다.

 

애굽의 모든 군대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홍해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15장에서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가 나의 하나님이시로다.”

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노래했습니다.

 

이 홍해를 건넌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백성 즉,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예표합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너온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아무런 죄도 없었습니까? 아무 적도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길을 지날 때에

내부의 적도 있었고 외부의 적도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대항하는 고라, 다단, 아비람, 온과 같은 적들이 내부에

있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아말렉 군대가 있었습니다.

혹은 발람, 발락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과도 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도 내부의 적, 외부의 적과 싸우며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헌신하고 기쁨을 표현한 성도가 되었고,

이제는 지옥가기 다 틀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도 두 가지 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는 내부의 적이요 또 하나는 외부의 적입니다.

 

내부의 적은 우리의 죄성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부패성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가리켜서 육신이라고 했습니다.

 

또 외부의 적도 있습니다. 외부의 적은 마귀요 그 졸개인 귀신들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성도들을 시기해서 어떻게 하든지 죽이고 멸망시키고

망하게 하려고 온갖 역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여러분의 가정이 원인도 모르게 당하는 일이 있다면

귀신의 역사를 의심하시고 믿음으로 대적해서 물리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내부의 적, 외부의 적들과 싸우면서 죄를 짓기도 하기 때문에

번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고 난 이후에 지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속죄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번제 제물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어 처음 구원 받을 때에도

예수님의 피가 필요하지만 예수 믿고 나서도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속죄제물이 된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째로는 죄 가운데에는 몰라서 지은 죄도 있습니다.

무지로 말미암아 혹은 부지중에 지은 죄도 있기 때문에 속죄제가 필요합니다.

속죄제가 필요한 이유를 레위기 4장 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여호와의 금령’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금지하신 명령입니다.

 

‘그릇 범하였다’고 할 때 ‘그릇’은 영어로 'unintentionally' 입니다.

이것은 고의성이 없이 부지중에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고의적으로 범한 죄는, 속제죄로 용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그런 죄를 위해서 속죄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지해서 죄를 범했는데

그것을 물질적으로 배상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속건제사가 되는 것이고

물질적으로 배상할 수 없는 경우에는 속죄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을 잘 몰라서 범죄한 경우에도 죄는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범죄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 가운데 우리가 모르고 짓는 죄가 더 많은 것입니다.

 

모르고 독극물을 먹었다고 하면 죽습니까? 죽지 않습니까?

모르고 먹어도 죽기는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모르고 죄를 지었어도 그 죄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한다고 생각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자기는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남에게 큰 상처가 되고

괴롭힘을 주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도 나쁜 습관을 가지고 부지중에

여러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죄를 위해서 속죄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 죄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이런 모든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예수의 피로 씻음 받게 되면

하나님은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번제로 충분한데 왜 속죄제를 또 정하셨느냐?” 하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들은 개신교를 향해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희들은 영세, 즉 침례를 받고 난 이후에 지은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느냐? 가톨릭에는 고해성사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성경을 그대로 믿습니다.

성경에는 번제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는 것도 말하고 있지만,

속죄제를 통해서 자백하면 그 피로 씻음 받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신부에게 가서 무엇을 잘못했다고

고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속죄제의 피로 우리의 죄를 씻으시고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여러분 죄를 가지고 계시지 마시고 속죄제의 피로 씻음 받고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2. 속죄제의 네 종류

 

레위기 4장을 보면 속죄제는 복잡합니다.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신분에 따라서 제물도 다르고 제사의 방법도 다릅니다.

 

3절 “만일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1) 제사장이 범죄한 경우에 드리는 속죄제도 있습니다.

이때는 흠 없는 수송아지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수송아지를 가져다가 안수기도를 하고 죽여서

그 피를 가지고 세 번 뿌립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휘장 앞에 일곱 번을 뿌리고,

한걸음 물러서서 향을 분향하는 분향단의 뿔에 피를 바르고,

나와서 번제단에 남은 피를 다 쏟고 내장의 기름과 콩팥과 간위에 덮인 꺼풀을

다 태워서 여호와께 화제로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진 밖에 가져가서 다 불태워 없애 버립니다.

그렇게 해야 제사장이 지은 죄를 사함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범하였을 때,

여호와의 금령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을 때 속죄제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온 백성의 속죄제도 제물은 수송아지로 같습니다.

단지 안수만 장로들이 합니다.

 

3) 세 번째로 4:22절에 보면 족장의 속죄제가 있습니다.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족장은 그 당시의 통치자들을 말합니다.

국회의원, 정치가들과 같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게 되면

수염소를 제물로 잡게 되고, 그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번제단 밑에 부음으로서 제사를 지냅니다.

 

4) 네 번째로 평민들의 속죄제사가 있습니다.

27절 “만일 평민에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러므로 이스라엘 평민의 속죄제사도 있는 것입니다.

평민들은 흠 없는 암염소나 어린 암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립니다.

 

신분에 따라 네 가지의 제사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면 복잡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원리는 간단합니다.

신분이 높을수록 값비싼 제물과 복잡한 제사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에 동의하십니까? 송아지와 염소 중에 어떤 것이 비쌉니까?

송아지가 더 비쌉니다. 그리고 제사절차도 더 복잡합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라든가 족장이라든가 하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더 큰 책임과 더 큰 성결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얻고 직장에서도 높이 올라가고

가정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다면 더 큰 책임과 더 큰 성결, 더 큰 주의를

요구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 네 가지의 속죄제사 시스템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분이 높고 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책임이 큰 것입니다.

더구나 예수 믿고 나서 신분과 지위가 높아지면 더 책임이 큰 것이고,

하나님은 더 큰 성결을 요구하신다는 것을

속죄제사의 시스템을 통해서 깨닫고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3. 속죄제의 피뿌림

 

속죄제의 피뿌림은 3개의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1단계는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휘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휘장은 죄인된 인간과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휘장을 가르고

지성소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휘장 앞에 일곱 번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휘장만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다른 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성막의 지성소 안에만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휘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차례만 휘장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고,

일반사람들은 휘장을 열 수도 없었습니다.

그 휘장 앞에 피를 뿌림으로 ‘하나님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사오니

이 피를 보시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하는 의식을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휘장 앞에 피를 뿌린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모든 죄를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 지은 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돈을 떼어 먹어도 그 죄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요

사람과 간음을 했어도 그 죄는 하나님 앞에 지은 죄입니다.

 

그래서 눅15:18절에 탕자가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아버지께 죄를 지었지만 먼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시편 51편 4절에도 다윗의 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 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계신 지성소 앞에서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는 왜 일곱 번을 뿌립니까? 일곱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수입니다.

피의 속죄는 더 이상 붙일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완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죠.

 

이 모든 피 뿌림은 결국은 그림자입니다.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보혈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려진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지성소와 성소를 나누던

그 휘장을 위아래로 찢어 주셨고, 죄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담대히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제사장이 휘장에 일곱 번 피를 뿌리고

한 발짝 물러나서 향을 피우는 금향단의 뿔에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향단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기도도 예수의 피를 통과해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를 의지하지 않는 기도는 소용없는 기도입니다.

그것은 염불이요 중언부언의 기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새는 불교신자들도 기도하러 간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안하는 것보다야 기도하며 반성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가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통과해야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남은 피를 성소 밖에 있는 번제단 밑에 다 쏟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자신을 다 드리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하나님이 그 희생과 헌신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보면 선한 일을 많이 합니다.

양로원도 운영하고, 고아원도 운영하고, 때론 큰 애국심도 발휘합니다.

그런데 피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는 희생과 헌신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죠.

 

그런 선행봉사는 인간의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지

하나님이 천국에서 상을 베풀어주시는 선행봉사는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인은 피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배척하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것이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참된 헌신과 봉사를 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론

 

속죄제사의 결론은 우리는 예수 믿고 난 후에 지은 죄

이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부지중에 무지로 지은 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고 잘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속죄제의 교훈입니다.

 

<오늘의 양식>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비리치 라고 하는 미국의 스턴트맨 이야기입니다.

바비리치라는 스턴트맨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연기를 했습니다.

그는 사전에 이것을 잘 준비해서 성공적으로 떨어져서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몇 년 뒤에 뉴질랜드에 여행을 갔다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귤껍질에 넘어져서 죽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선 살아난 사람이 귤껍질을 밟고 죽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지옥에서 해방되고 천국의 자녀가 된 사람이

인생을 살다가 귤껍질 같은 죄를 처리하지 않아서 넘어져

그의 인생이 망했다고 하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속죄제사의 교훈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 이후의 죄를 잘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무지로 지은 죄도 잘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번제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 줍니다.

즉, 우리의 위치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죄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

하나님과 어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주느냐 하는 것을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번제제물도 되셨고 속죄제물도 되셨습니다.

번제제물인 예수님을 믿어 우리는 영생 구원을 얻었을지라도,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피를 의지해서 날마다 깨끗함을 얻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1768490

 

 

◈속제죄의 규례                   레4장, 레6:24~30                      2015-10-18

 

◑서론

 

레위기의 5대 제사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 다섯 가지 제사가 주는 공통적인 교훈 한 가지는

“죄인이 희생제사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입니다.

 

죄인이 희생제사 없이 자기 힘이나 방법으로

결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희생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인들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한 가지 진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레1~3장까지는 번제, 소제, 화목제에 대해 기록되어 있고,

4~5장까지는 속죄제, 속건제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1~3장까지와, 4~5장까지 사이엔 분위기 상 2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1) 전자의 세 종류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가

시내산 율법 이전에도 존재했던 제사지만,

 

후자의 속죄제와 속건제는, 출20장에 기록되어 있는 율법을 받은 이후에

생겨난 제사라는 점입니다.

즉, 속죄제와 속건제는 여호와의 법령이 주어지기 전에는 없었던 제사였죠

 

성경에 처음으로 ‘속죄제’가 언급되는 구절이 출29:14절입니다.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

 

이는 제사장의 위임식과 관련해서 부지중에 지은 죄를

속죄하는 제사로 언급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후자의 제사들은 출20장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이후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둘째는 전자의 제사들은 제사 후에 나타난 결과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었지만,

후자의 제사들은 죄책이 제거되었다는 점입니다.

 

전자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제거되었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반면,

후자는 죄로 말미암은 오염이 제거 되었다는데 강조점이 있습니다

 

죄는 우리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와 교회도 오염시킵니다.

죄는 오염을 가져옵니다.

 

그런데 속죄제와 속건제가 그 오염을 제거하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번제와 소제, 화목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제거되어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 ‘속죄제’를 ‘정화제사’(Purification offering)라고도 했습니다.

 

속죄제의 규례에 관해서는 레위기 4,5,6장에 기록되어 있고,

민수기 15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반복해서 자세하고 복잡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만큼 사람의 죄를 심각하게 여기신다는 것과

우리 역시 스스로의 죄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를 ‘Sin offering’이라고 하고,

히브리어로 ‘죄’를 뜻하는 ‘하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속죄제의 목적

 

레위기 4:2~3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13절에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22절에 “만일 족장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27절에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속죄제의 목적은 금령을 부지중에 범한 경우

그 허물을 제거하기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금령’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입니다. 율법, 율례, 규례와 같은 하나님의 법 중에

금지 형태로 된 명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 속에는

해야 한다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명령의 의미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 중에는 “네 부모를 학대하지 말라”는

금령이 내포되어 있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 “이웃을 미워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금령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으로 볼 수 있지만,

여호와께서 주신 모든 명령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알지 못하고 어기는 것도 죄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반항적으로, ‘짐짓’ 범하는 죄입니다.

민15장 30~31절에 “본토 소생이든지 타국인이든지 무릇 짐짓 무엇을 행하면

여호와를 훼방하는 자니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쳐지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짐짓’이라는 것은 ‘반항적으로’(Defiantly)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분명히 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반항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범죄하는 것입니다.

 

흠정역에서는 이를 ‘건방진 죄’(Presumptuous Sin)라고 번역했고,

어떤 학자는 이를 ‘고압적인 죄’(High-handed Sin)라고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반항하는 고자세로 죄를 짓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죄를 범하는 경우 죄를 씻는 제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즉각적인 징벌이 찾아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방신들에게 바친 물건들을 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간이라는 자가 그것을 취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성 전투에서 크게 패합니다.

패전 원인을 알아보니 아간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물건을 취했기 때문이죠.

그 때 아간은 즉시로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또 고라, 다단, 아비람의 죄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삼으셨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반항하기 위해 범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과 온 가족들은 땅이 갈라져 산 채로 몰살당하게 되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이었던 나답과 아비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분향단에 향을 피울 때 다른 불로 피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다른 불로 분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불타 죽었습니다.

이는 반항적인 죄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가차 없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된 것이었습니다.

 

2) 둘째는 하나님께 반항하려는 의도가 없이 범죄한 경우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의도적이었지만, 반항하려는 태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부지중의 죄’(Unintentional Sin)라고 합니다.

이런 죄는 번제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3) 셋째는 그릇 (우발적) 범죄한 경우입니다.

‘짐짓’과 ‘그릇’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짐짓’은 ‘반항적’이라는 의미이고,

‘그릇’은 죄를 지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비고의적’ 내지

‘우발적’인 경우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그릇 범죄하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범죄한 경우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는데, 그 순간 잊어버려서 범죄하는 경우입니다.

 

‘무지’(Ignorance)와 ‘망각’(Oblivion)에서 오는 죄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를 ‘그릇 범한 죄’라고도 하고 ‘부지중에 범한 죄’라고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속죄제를 드려서 죄책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속죄제의 목적은 부지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범한 죄를 사함받기 위한 것입니다.

 

잘 알지 못해서 범한 죄에 대한 용서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지로 인한 죄라 할지라도 죄로 인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명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숨은 허물이 있는지 깨닫게 해 주시도록 자주 간구했죠.

시19:12절에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도 다윗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내가 알고 지은 죄가 없다고 해서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큰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지은 죄들이 훨씬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8절에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죄제는 근본적으로 부지중에 여호와의 금령을 어긴 죄에 대해

속죄받기 위한 제사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5장 1~13절에 보면 특별히 속죄제가 요구되는 추가적인

세 경우(Additional Cases)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재판의 증인이 되었는데 본 일이나 아는 일을 진술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거짓말 한 것은 아니지만 아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죄입니다.

이런 경우 속죄제가 필요합니다.

 

둘째, 병든 짐승이나 사체와 접촉해서 오염된 경우 속죄제가 필요합니다.

병든 짐승과의 접촉으로 전염병에 걸렸으면 이 사실을 신고하고 격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속죄제를 드려 오염을 제거해야 합니다.

 

셋째, 입으로 맹세하고 서원했음에도 그 서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지키지도 않았을 경우입니다.

거짓 맹세한 것에 대한 허물을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짓 증인, 오염, 거짓 맹세와 같은 경우는 특별히 속죄제를 드려야 하는

추가적인 경우입니다. 기본적으로 속죄제는 여호와의 금령을 부지중에 몰라서

범한 죄의 경우, 죄를 속하고 그 죄로부터 오는 오염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2. 속죄제의 영적의미

 

레위기의 5대 제사는 1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2차적으로는 성도들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먼저,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알고 지은 죄 뿐만 아니라

모르고 지은 죄까지 모두 속죄하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혹되어 죄를 짓게 됩니다. 또한 무식해서,

잘 알지 못해서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은 부지중에 지은 죄까지

모두 용서받을 수 있도록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혹당해서 지은 죄는 번제를 드려 용서를 받고,

무식해서 지은 죄는 속죄제를 드려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미혹과 무식을 능히 용납하시고 친히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모두 다 속죄하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제물을 잡을 때 반드시 북편에서 잡아야 했습니다.

이곳을 ‘번제소’라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으신 골고다 언덕이 예루살렘 북편에 있다는 사실을 예표합니다.

 

그리고 제물은 반드시 피를 흘리는 방식으로 잡아야 합니다.

목매달아 죽여서는 안 됩니다. 목매달아 죽이면 피를 흘리지 않고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피를 흘려 뿌리거나

바를 수 있도록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제물은 성막 뜰 북편 번제소에서 피를 흘리는 방식으로 죽어야 하고,

나머지 고기나 뼈와 같은 것은 진 밖, 영문 밖에서 불태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영문 밖에서 죽으실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태운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우리의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포함한 완전한 속죄라는 것을 예표합니다.

 

속죄제는 예수님에 관해 적용될 수 있고, 성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알고 있는 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많은 죄가 있음을 알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불신자들은 교회를 향해 욕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훨씬 더 많은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그들이

죄 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칭함 받은 우리를 향해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찍어서 상영한다면

아마 그 자리에 1분도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와 성도를 향해 욕을 합니까?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위선자요, 목사는 가장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그들의 인생을 일일이 살펴본다면 훨씬 더 악할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모르고 짓는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어려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히13:13절에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님을 섬기다 때로는 욕을 먹고 오해도 받고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심하면 순교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왜 네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야 하느냐? 내가 왜 너를 위해 영문 밖에서 물과 피를 다 쏟는 고난을

받아야 하느냐? 나는 너를 위해 영문 밖에서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느냐?”고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마땅한 일로 생각하고

감당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몰라서 죄를 지었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배워서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죄는 언제나 오염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오염되지 않는 정결한 삶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