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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5장 속건제의 규례

LNCK 2023. 1. 10. 08:40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1769140
 

◈속건제의 규례           레5장          2015.10.25.

◑서론
 
오늘은 레위기의 5대 제사 가운데 마지막 속건제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속건제는 속죄제와 많이 혼동되는 제사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의 책을 봐도 속건제를 속죄제로 착각하고 오인하거나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혼동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속건제를 드리되, 속죄제를 드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레5:6절에 “그 범과를 인하여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양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주1)

   

어쨌든 속건제에 대한 말씀이, 
속죄제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많이 헷갈립니다.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면 속건제를 드리라고 하셨는데, 
속죄제도 똑같은 것입니다.   *레4:27절과 5:17~18절
(속죄제나 속건제가 비슷해 보인다는 거죠)

이와 같이 비슷해 보여도, 속건제를 자세히 공부해 보면 
속죄제와 구별되는 현저한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속건제가 속죄하는 죄의 종류는 
죄의 독특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속건제는 영어로 ‘Guilt Offering’ 또는 ‘Trespass Offering’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아샴’인데, 
‘아샴’은 ‘죄에 대한 책임’(죄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속건제의 죄목은 죄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세 경우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그릇 범과한 경우

레5:14~16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속건제는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한 경우에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그릇’(Unintentionally)은 고의성이 없이 무심코 범과한 경우죠. 

‘짐짓’ 범한 경우가 아닙니다. 고의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속건제나 속죄제로 용서받을 수 없고, 반드시 번제로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속건제는 속죄제와 마찬가지로 부지중에 범한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나 속죄제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히브리어로 ‘죄’는 ‘하타’를 사용하는데, 
이는 여호와의 금령 중 윤리적인 명령을 어긴 경우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범과’는 ‘죄’와 조금 다릅니다. 
‘범과’는 히브리어로 ‘마알’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속건제에서 ‘범과했다’는 것은 ‘하타’가 아닌 ‘마알’로, 
영어로는 ‘침해(선을 넘음)’를 뜻하는 ‘Trespass’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성물, 즉 하나님의 소유물을 침해했다는 의미입니다.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허물’이라고도 번역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기서도 허물과 죄가 구별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영적으로 살려주셨습니다. 

사람의 죄는 윤리적인 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부당하게 도적질하는 
경제적인 허물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마알’은 수7:1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성경은 아간의 범죄를 ‘범과’로 보았습니다. 
마지막 날은 일곱 번 돌고, 함성을 지르면 무너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의 함성 소리에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수6:17절에 보면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이 성에 있는 어떤 것도 취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그 중 우상숭배에 사용되었던 은과 금, 그리고 시날 산의 외투 한 벌을 취해 
자기 장막 밑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이 성 전투 후 
아간은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성물을 도적질한 것에 대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아간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이것이 부지중에 저지른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반항하려는 의도로 저지른 죄였기 때문에 
속건제로 용서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속건제는 처음부터 도적질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것이 도적질이었음을 깨닫는 경우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성물’(Things of the Lord)은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성물이란 하나님의 소유물을 뜻합니다. 

레27:28절에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 모든 것은 여호와의 성물이 됩니다. 
땅, 동물, 자녀 등 하나님께 바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땅을 팔아 헌금하고도 즉사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바친 물건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레27:30절에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땅의 소산 중 십 분의 일은 여호와께 성물입니다. 
내가 고생해서 농산물을 얻었어도 그 모든 것이 농부의 것은 아닙니다. 

왜 십 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냐고 따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농산물을 얻기까지 필요한 모든 양분은 사람이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두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산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90%를 주시고, 나머지 10%를 요구하시는데 
이것을 불합리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십일조 제도가 신약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라진 제도라 주장하죠. 
그렇지 않습니다. (십일조의 원리와 정신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십 분의 일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불신자들은 단 돈 1원도 내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것을 다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땅의 소산물 중 십 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땅을 사용하면서 십 분의 일을 요구하시는데, 
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은 죄입니다.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 분의 일은 여호와의 성물입니다.

레27:32절에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소나 양의 십 분의 일, 즉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열 번째 동물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 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무리 가운데 가장 약하고 못난 것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막대기를 설치해 놓고 지나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 번째 지나가는 것마다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 약한 것도 있을 수 있고, 
힘이 좋은 것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소나 양과 같은 동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 인색하게 드리지 못하도록 정한 것입니다.

또 생축의 첫 새끼도 여호와께 드릴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소유가 됩니다. 
농산물 십 분의 일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모든 산물과 소득의 십 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드린 가축이나 자녀도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알지 못해서 하나님의 소유물을 부지중에 취하였다가 
나중에 죄 인줄 깨닫게 되면 속건제를 드려 용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속건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드려야 합니다. 
첫째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둘째는 수평적으로 제사장에게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몫은 결국 제사장이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기를 드시지 않기 때문에, 취하셔서 제사장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몫을 떼어먹으면 제사장의 먹을 몫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배상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건제의 절차는 레7:1~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는 흠 없는 수양을 가져와서 잡아야 하는데, 
야생동물은 안 됩니다. 자기 양떼 중 죄가 크다고 생각하면 
좋은 것을 가져오고, 그렇지 않으면 작은 것을 가져옵니다.

당사자는 양의 머리에 안수하여 성막의 북편에서 잡고, 
피는 번제단 사면에 뿌린 후 번제단 위에서 기름을 태웁니다. 
그리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이 먹습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하나님의 것 떼먹은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속건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수평적으로 제사장이 차지해야 할 몫이 줄어들기 때문에 
제사장에게 떼먹은 것의 20%를 더해서 돌려줘야 합니다. 
‘배상’(Restitution)을 하는 것입니다.

쌀농사를 지어 백 가마의 수확물을 거두고 
하나님의 소유인 열 가마의 십일조를 떼먹었으면 
용서받기 위해서 먼저 수양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리고 
백 가마의 십일조인 열 가마에 20%를 더해서 총 열두 가마를 제사장에게 
가져다주면 죄를 용서받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복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려는 좋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죄로 가로 막혀 있기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렇게 하나님의 소유와 물질을 범하는 죄는 
하나님께 물질적인 복을 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속건제는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관계에서 용서를 받고, 
제사장을 향한 수평적인 관계에서 배상을 통해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는 것을 매우 어리석은 짓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소유인 십일조에 손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공사를 진행하면서 부정한 뇌물을 받거나 주는 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뇌물을 통해 이리저리 얼마나 많이 떼어 먹는지 모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도 결국 뇌물이 오고 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사할 때 제대로 된 철근을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멘트 10톤을 넣어야 할 것을 5톤밖에 넣지 않으니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삼풍백화점이나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또 군대에서도 많이 떼먹었습니다. 군인들이 안전모를 쓰는 이유는 
총알이 날아와도 머리를 보호하기 위함인데, 
총알이 다 통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안전모를 만들기 위해 
투자해야 할 돈을 다른 곳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에 부임하고 올해로 14년째가 되는데, 
그동안 예배당 이곳저곳을 많이 보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사하는 업주들에게서 커피 한 잔도 얻어먹은 적이 없습니다. 

뇌물을 주려하면 그날로 계약을 파기하고 내쫓아 버릴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뇌물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교회 예산을 떼먹는 것 역시 매우 악한 행동입니다. 
제가 듣기에 어떤 교회가 음향공사를 하는데, 
1억 원에 시공할 것을 할인 받아 8천만 원에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 직원이 시공한 업주에게 1억 2천만 원짜리 영수증을 발급해 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4천만 원이라는 엄청난 차액이 생기는 것입니다. 
같은 공사를 하면서 말입니다. 
속건제는 절대로 하나님의 것에 손대지 말 것을 강조하는 제사입니다.

 
◑2. 여호와의 금령을 부지중에 범하여 양심상 꺼림칙한 경우

레5:17~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너의 지정한 가치대로 떼 중 
흠 없는 수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부지중에 그릇 범한 허물을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이는 속건제니 그가 실로 여호와 앞에 범과함이니라”

성소에 있는 떡상의 떡은 제사장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백성이 그 떡을 모르고 먹은 경우 이 사람은 
부지중에 금령을 범한 것입니다. 
또 일반 백성들은 기름이나 피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잘못해서 기름을 먹었으면 그것 역시 부지중에 범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성물에 관한 금령을 범한 것입니다.

또 화목제물의 경우 가슴 고기와 우편 뒷다리 고기는 제사장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금령을 잘 알지 못한 사람이 좌편 뒷다리 고기를 제사장에게 드리고, 
우편 뒷다리 고기를 먹었다면 이 역시도 성물에 관한 금령을 
부지중에 범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사람의 것을 떼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속건제를 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양심의 깨끗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3. 타인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취하고도 거짓 맹세한 경우
 
레6:1~4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치
못하여 범죄하되 곧 남의 물건을 맡거나 전당 잡거나 강도질 하거나 
늑봉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얻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에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는 죄를 범하였고 죄가 있는 자니 그 빼앗은 것이나 
늑봉한 것이나 맡은 것이나 얻은 유실물이나”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부당하게 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거짓 맹세를 
하는 경우는 속건제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다섯 가지 경우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남의 소유물을 위탁받았는데,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횡령하여 
위탁받은 사실이 없다고 거짓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남의 물건을 전당잡았는데, 사실을 부인하고 
거짓 맹세하여 떼먹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강도짓을 하고도 거짓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강도와 절도의 차이는 칼의 유무로 결정됩니다. 
칼은 들면 강도, 기술만으로 빼앗으면 절도입니다. 

넷째는 이웃을 협박해서 물건이나 돈을 탈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며 
거짓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이를 ‘늑봉’이라고 합니다. 

신문기자가 기업에 와서 세금을 탈세한다는 소문이 들린다며 
(신문에 내겠다고 협박) 봉투를 요구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남이 잃어버린 물건을 주웠는데, 주인이 나타났음에도 불구
하고 돌려주지 않고 거짓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여기 다섯 가지 경우의 공통점은 남의 물건을 부당하게 취한 경우입니다. 
한 마디로 오리발 작전입니다. 이런 경우 속건제를 드려야 합니다. 

이처럼 속건제는 하나님의 것을 떼먹었거나, 
사람의 것을 부당하게 취한 경우에 필요합니다. 
수직적인 관계에서는 흠 없는 수양을 드려야 하고, 
수평적인 관계는 배상해야 합니다.

레6:5절에 “무릇 그 거짓 맹세한 물건을 돌려보내되 
곧 그 본물에 오분 일을 더하여 돌려 보낼 것이니 
그 죄가 드러나는 날에 그 임자에게 줄 것이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되, 20%를 더해서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레6:7절에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속건제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물건을 취하거나, 
사람의 물건을 부당하게 취한 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런 경제적인 죄에 대해 바르게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결론

속건제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죄가 윤리적인 죄, 종교적인 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죄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과 남의 것을 부당하게 떼먹고 착취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100억의 뇌물을 받았다면 옥살이 1년만으로 때우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20%를 더해서 120억을 물어내야 합니다. 
반드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죄를 매우 고약하게 여기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절대로 윤리적인 죄, 종교적인 죄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항상 올바른 양심을 갖고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행24:16절에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딤전1: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배가 제대로 가려면 바른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속건제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속죄의 두 차원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형법적인 면과 민법적인 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형법적으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고 떼먹은 우리의 모든 민법적인 범죄를 사하시기 위해
갚아야 할 모든 것을 대신 배상하셨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담당하시고, 
갚아야 할 모든 빚을 다 갚아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착한 양심으로 응당 갚아야 할 것들을 배상하며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주1)
레5:6절을 개역개정은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라고 번역했죠.

 

원어나 영어성경에는 '속건제' 인데, 개역개정은 '속죄제'로 번역했습니다.

이 경우, 속죄제를 4:1~5:13절까지 끊게 되고,

속건제를 5:14~19로 끊게 됩니다. 이렇게 끊어서 설교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전문가의 연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