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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5:14~6:7 속건제 규례

LNCK 2023. 1. 12. 19:38

[수요예배 Live] 속건제 규례(레 5:14-6:7) - YouTube

 

◈속건제 규례              레5:14~6:7           2020.08.12.정리

-번제가 하나님과 화목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제사라면,
-속죄제가 죄의 정결을 가져 오는 것이라면
-속죄제는 죄의 값을 지불해서 배상을 가져온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목과 정결과 배상... 이런 개념들이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속에 담겨 있죠.

속죄제가 하나님의 계명에 분명히 나타난 어떤 율법을 어겼을 경우 
그것을 속함받기 위해 드린 제사인 반면, *주로 대신관계

속건제는 인간 상호간이나 혹은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서 범했을 때 *대인관계 
그것을 속함받기 위해 드린 제사이고, 여기엔 반드시 '(손해)배상'이 따랐죠.

◑레5장

▲'속건제'란 이름의 대하여, 단어의 의미

레5:15a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개역개정 에 '속건제' 라고 부르고 있는데 
새번역은 '속건제사'
공동번역에서는 '면죄 제물'
가톨릭성경에는 '보상 제사' 이렇게 각자 다르게 부릅니다. 
   
속건제를 영어로는 guilt offering, (범죄, 죄책감.. 그때 드리는 제사) 
또는 trespass offering (선을 넘음, 불법 침해라는 뜻.. 그때 드리는 제사)

사실 영어 뜻만으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렵습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영어로 번역한 것은, 히브리어 '아샴'이 guilt 인데, 직역했기 때문이죠. 

 

한글도 '속건'하면.. 무슨 말인지 의미를 알기 어렵죠. 

'속건'의 의미를, 가장 알기 쉽게 한 마디로 풀이하면 '보상'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성경은, 그 의미를 풀어서 '보상 제사'로 번역했죠.

예를 들어, 빚이나 신세를 졌을 때 
이것을 갚을 때 이것을 '보상'이라고 하죠.

또 손해가 손해를 끼쳐서 그 손해를 물어 주는 것을 '배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보상 과 배상의 의미가 속건제 속에 담겨 있습니다.  

속건제를, 속죄제와 한자적 의미로 비교해 보면 

'속죄' 라는 말은, 한자로
'속'은 .. 바친다, 돈을 주고 산다, 해결한다는 뜻.  '되바칠 속 贖'  
'죄'는 .. 허물 '죄'

'속건'이란 말은, 한자로
'속'은 .. 상동
'건'은..  허물 '건'입니다.  

그래서 사실 한자로 속죄나 속건은 거의 같은 의미죠.
'건'이란.. 사전적 의미로 과실과 잘못을 의미하는데,
'죄'는.. 과실과 잘못을 포함해서, 범죄까지 광범위하게 뜻하죠.

그래서 '건'보다도 '죄'가, 좀 더 큰 잘못을 의미합니다. 
한자적 의미가 그렇다는 거죠. 단어의 뜻으로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성경에도 속죄제와 속건제 차이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나옵니다. 두 제사 비슷한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속건제와 속죄제의 차이점은 
-속죄제가 하나님의 계명에 분명히 나타난 어떤 율법을 어겼을 경우 
그것을 속함받기 위해 드린 제사인 반면,   *정결
-속건제는 인간 상호간이나 혹은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서 범과했을 때 
그것을 속함받기 위해 드린 제사이며, 손해배상이 선행되었습니다. *배상

▲속건제의 절차
한글과 영어성경은 70인역을 따랐기 때문에 
'속건제' 본문이 5장 후반부와 6장 전반부로 이렇게 나눠져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은, 5:14~6:7절까지 하나로 묶어서 
5장 한 쳅터로 한데 모아서 구성됩니다.

레위기에서 속건제 본문은, 다른 제사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속건제가 다른 4대 제사에 비해서
중요도가 다소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 이렇게 이해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제사의 절차를 볼 때도, 절차가 상대적으로 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죠. 
그 절차가 어떠냐면, 
속죄제를 염두에 둔 다면, 흠없는 수양을 예배자가 번제단에 가져옵니다. 
그 양을 잡고, 죄를 자복하고.. 
속죄제 같은 경우는 수양의 머리에 손을 얹어 안수를 하는데 

속건제는 '안수를 한다'는 절차가 없습니다. 

속건 제물로는, 거의 숫양입니다. 
5장과 6장에 숫양이 여러 번 나옵니다. 

그런데 구약의 다른 본문을 보면, 경제 형편에 따라서, 속건제도
새 두 마리, 가장 가난한 사람은 곡식가루로 속건제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제물의 피는 당연히 제단에 뿌렸지만 
속죄제는.. 제물의 피뿌림 의식이 좀 복잡했습니다. 

그런데 속건제는, 그런 절차가 간단한 것은, 
그래서 포인트가 '피' 보다도 좀 다른 것(보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양을 해체하고 난 기름, 내장 이런 것들은 
제단의 불살라서 화제로 드릴 수도 있고, 
또 제사장에게는 고기가 주어지고 
제사장은 그것을 성막 안에 구별된 곳에 가서 제사장 가족과 함께 먹습니다. 

이러한 절차가 레5장, 6장, 7장 전반부에도 다소 좀 상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속건제를 드리고자 할 때 한 가지 유념해야 될 것은 
속건제를 드리기 이전에,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좀 잘못하는 거 있으면 
그 사람에게 먼저 가서 배상을 다 충분히 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 이후에 하나님께 나와서 속건제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마태복음 산상수훈 마5:25에 보면
'형제들과 먼저 사화 하고 오라' 하는 말씀에, 이 속건제의 정신이 잘 드러나죠.
  
먼저 끼친 손해 배상을 다 하고, 속전제를 드리라 이렇게 명하신 것을 보면, 
속건제가 배상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레6:1~6

▲어떤 경우에 속건제를 드리는가?
속죄제 와 속건제의 차이는 그렇게 명확하지 않습니다. 
대체로 큰 틀에서는 일치가 되지만, 분명히 두 제사는 다른 제사입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속죄제가 대체로 하나님의 계명, '하나님께서 이거 해라/ 하지 말라'는 
분명한 명시적인 계명을 어긴 경우에, 속죄제를 드렸다면,

속건제는, 

-하나님의 성물을 범했을 경우에   5:15
-또 사람들에 대해서 재물에 어떤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   6:1~5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또 구약의 다른 본문을 보면, 성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때, 
또 나병환자의 정결의식 때도 속건제를 드립니다. 

또 나실인이 서원하고, 부득이한 경우 그 서원을 깰 때, 
이때도 손해를 끼쳤다고 생각이 되는지 
이 때도 속건제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레5:15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이 말씀의 의미는, '여호와의 성물' 이것은 구체적으로는 
백성들이 제사장에게, 제사를 통해서 주는 그런 제물들이 있습니다. 

태우고 남은 고기의 일부분을 제사장에게 주어서 먹게 하는데 
이러한 것이 성물인 것입니다. 

이런 레22장과, 27장을 보면, 성물에 대한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오직 제사장과 그 식구들만 성물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성물(바친 제물)을 부지 중에 누가 모르고 먹어버렸습니다. 
이 때는 그 성물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그 성물 값에 1/5, 
즉 20% 를 추가로 부담해서 제사장에게 줘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속죄제도 추가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를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손해 끼친 성물 값, 
-그것에 20%의 보상액, 합하면  120% 
-속죄제로 드릴 수양 같은 속죄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엄청 손해라는 뜻이죠.

레27장을 보면은, 이 성물은 다양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짐승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하고, 
땅이기도 하고, 또 십일조 이런 것들이 또 성물 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5:15절의 '여호와의 성물'은
제물 뿐만 아니라, 집과 땅과 십일조까지 그 범위가 넓다는 거죠. 

백성들은 제사장의 성물을 범하는 그런 죄를 모르고 행했다면 
반드시 속건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속건제는, 속죄제의 죄 보다는 좀 약하지만 
속건제의 죄도.. 분명히 분명히 허물(약한 죄)입니다.  (굳이 죄의 경중을 논하면)  
이에 대해서 속건제를 통해서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특징을 보면, 제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7장 이후에 가면, 제사장에 대한 말씀들이 또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사 와 제사장, 이것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거룩히 다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 레위기 27장, 레위기의 마지막 장에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경우들이 나오는데, 
주로 이제 하나님께서 서원했다가, 그 서원을 지키지 않는 경우, *나실인 등

또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이것도,

허물 trespass로 여겨서, *죄보다 약하지만 선을 넘음
역시 이런 것들도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그런 죄로 보았습니다. 

▲속건제 제물은, 흠 없는 온전한 숫양 이어야 했습니다. 
5:15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몇 세겔'이란.. 적어도 2~3세겔 인상인 거죠.
1세겔은 약 11.4 그램이라고 참고서적에 나와 있습니다. 
이 정도 가격은, 당시 가치로 적지 않은 비용이었죠.

이것을 범과한 성물의 120%와 더불어 바쳐야 했으니
굉장히 그 비용을 많이 지불 해야 되는 것이 바로 속건제 제사인 거죠.

그러니 아예 속건제를 드릴만한 일이 없게 하라는 거죠.
속건제는 '배상'의 성격을 갖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5:17~19절에 보면, 속건제를 드리는 두 번째 경우가 나옵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의 성물'을 범했을 때 
-여기서는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 중에 범했을 경우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을 부지 중에 범한' 그게 뭔지... 이어서 6장에 나옵니다. 

사람이 부지 중에 범하더라도.. 면책이 되지 않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성물에 대하여 범하는 죄가 치명적 죄 중에 하나였죠.

그런데 문제는, '성물을 내가 범했는지/ 안 범했는지.. 애매한 경우'가 생깁니다.
17절에 '부지 중에'라는 말에, 그런 뜻도 포함됩니다. 애매한 경우!

이때도 최악의 경우를 산정하고서, 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속건제를 드려야 할 정도로, 성물을 범한다는 것은, 
굉장히 당시로서는 두려운 죄였던 것입니다. 

이 때는 숫양, 또는 여기에 상응하는 성전 세겔로 드려야 했습니다. :15

19절에서는, 그가 속건제를 드려 용서함을 받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속건제니 그가 여호와 앞에 참으로 잘못을 저질렀음이니라' :19

이 말씀의 뜻은, '그가 여호와께 배상하였음이니라' 라는 뜻입니다. 

◑레6장

▲6장에, 속건제를 드릴 상황이 구체적으로 이렇게 나옵니다.

6:2~3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3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

'이 모든 일'은.. 그 아래에 보면 5가지가 나옵니다. 
여기서는 "이웃"에 대한 여러 가지 허물의 경우들을 나열합니다.

1) 자기 소유를 이웃에게 맡겼는데, 떼 먹는 경우
은행이 없었던 당시는, 어떤 주인이 멀리 사업 차든지 출타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는 귀중품을 이웃에게 맡기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죠.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이웃이 마음이 바뀌어 가지고 
'나는 그거 맡은 적이 없다' 하며 부인하거나, 일부를 취하는 경우가 있었죠.

2) 또 전당물을 속여서 취한다거나, 
3)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고 한다거나 
4) 또 착취하는 (강제로 빼앗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5) 또 남의 물건을 줍고도, 그것을 부인하고 거짓으로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 상황이 섞여 있지만 
주로 사람 사이에 재물에 관한 문제입니다.  6:1~4

하나님은 당연히 남의 물건을 취하는 것, 
속여 취하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맡아놓고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이 모든 것을 범죄로 규정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물건들을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속건제가 이런 경우인데 
기본적으로 물건들을 주인에게 돌려 줘야 되고, 물건값에 20% 를 
벌금 형식으로 더 얹어줘야 했던 거죠. 

그 다음에 속건제물을 또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래야 이 모든 죄에 대해서 속함을 받는 과정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속건제는, 앞에 나온 제사들과 달리 
'사람 사이에 물질 관계, 재산 상의 문제' 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여호와의 성물(굉장히 광범위)을 침해했을 경우에 
-이웃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쳤을 경우에.. 속건제를 드리는데,
이에 대해 레위기 5장, 6장, 7장이 다루고 있습니다. 


▲속건제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속건제 의미를, 앞서 속죄제하고 잠깐 비교해서 봤는데 
속죄제 나 속건제 둘 다, 
사람의 죄와 잘못과 과실을 해결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습니다. 

속죄제는, 죄로 더럽혀진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그런 세상과 함께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하고, 또 성소의 더러움을 깨끗하게 하는 
이런 정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속건제는, 하나님께 지은 죄의 빚을 갚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릅니다. 짐승의 제물을 바치고, 그 원래 금액도 내야 되고 
거기에 대해서 20% 벌금도 내고... 보상 역할을 합니다.

이걸 보면 속건제는, 
'하나님께서는 물질적인 계산에 있어서 상당히 정확하시다, 분명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굉장히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물질 보상에 대해서 
이렇게 규정을 해놓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5:15절

우리가 회개를 할 때, 회개는 우리 영혼이 회개하고 
자기 마음 깊이 애통해하며, 회개하는 그것이 회개입니다. 

하지만 그 회개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구체적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또한 맺기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본문을 포함해서, 신구약의 여러 본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세례요한은,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너희 이웃에게 옷과 음식을 나눠 줘라. 두 벌 있는 자는 한벌 나눠 줘라' 

또 군인들에게는 '사람들에게 어떤 물건이나 돈을 강제로 뺏지 말라. 
자기가 받는 급여에 만족해라' 

세리들에게도 '강제로 뺏지 마라' 

이렇게 신자들의 실제 삶가운데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고통을 주었던 
그러한 행위를 돌이키라고.. 그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촉구했는데,
다 속건제의 정신이 신약에도 계속 이어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 우리가 아는 세리장 삭개오의 경우를 보면
그는 회개한 이후에,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기도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재산에 절반을 떼어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혹시 자기가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를 갚아주겠다...
   
그래서 회개하는 모습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실질적, 물질적임을 봅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모습들이, 속건제의 정신을 잘 반영한 것이죠.

그래서 속건제란, 구약에서 끝난 것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죠.
그 속건제의 정신은, 예수님의 시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입니다. 
자기도 괴롭게 하지만,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고,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손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악행에 대해서, 이러한 손해 끼친 악행에 대해서는 
마음의 회개도 분명히 있어야 되지만 
반드시 그 값을 실제적으로 지불을 해야지,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번제가 하나님과 화목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제사라면,
속죄제가 정결을 가져 오는 것이라면
속죄제는 죄의 값을 지불해서 배상을 가져온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화목과 정결과 배상... 이런 개념들이 번제, 속죄제, 속건제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속건제와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메시아가 당신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속건제물로 드려, 우리 죄의 빚을 탕감하시고 배상해 주셨죠. 
다 갚아 주셨습니다. *'테텔레스타이, 다 이루었다'가 그런 뜻

이런 예수님의 값비싼 희생 위에 우리의 삶이 지금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약 그 빚을 갚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정말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마치 1만 달란트 빚진 자처럼, 그 빚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그 다리를 미군들이 사수하려다가 
많은 군인들이 죽어가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그 임무를 맡은 존 밀러 대위가 (톰 행크스)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남긴 한마디 단어가 있습니다. 
"어니스트!  Ernest!" 

그 한 마디 단어를 내뱉고 그는 죽어갑니다. 
이 말의 의미는 '진지하게 살아라, 값지게 살아가라'는 뜻이죠.

'라이언 일병, 너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했는데 
너의 삶을 정말 값지게 살아가라!'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건제물 되신 예수님의 값진 희생 위에 살고 있습니다. 
그 '값비싼 희생'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들이, 정말 우리의 삶이 
'값비싼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속건제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값비싼 희생으로 살아났으니 
우리의 삶이 값비싼 삶이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값비싸게 정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우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