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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8장 제사장의 위임식

LNCK 2023. 1. 14. 19:11


https://blog.naver.com/karamos/80050893773
 
◈제사장의 위임식          레8장 

레위기 8장에 기록된 제사장의 안수식은 
출29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가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서론

레위기 8장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받는 위임식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이 위임식 장면은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식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시킬 때에는 어른을 가르치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 유치원식 교육방법을 쓰셨습니다. 
그림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의사들이 아이들에게 주사 놓기란 참 어렵습니다. 
아이들에게 주사를 가지고 가서 “너 이 주사 맞을래 안 맞을래?” 하면 
아이들은 대부분 안 맞는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작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큰 모형 주사기를 만들고 작은 진짜 주사기와 함께 가지고 아이들에게 가서 
“너 이 큰 것으로 맞을래? 작은 것으로 맞을래?” 하면 
아이들은 모두 작은 것으로 맞겠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의사들은 성공적으로 주사를 놓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어른들에게 쓰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른을 교육시키는 방법과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방법은 좀 달라야 하는 거죠.

▲오늘날 우리는 성경진리의 실체를 배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사해 주셨고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천국 가는 유일한 길이다.”라는 
진리의 실체로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체로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실체로 배우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죠. 
영적으로도 장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림자로, 그림책으로 
그들을 교육시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에 보면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까지 이런 방법으로 교육을 시키시는 것입니까? 
히9:10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질서가 올 때까지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교육을 시키신다는 거죠. 

그렇다면 새로운 질서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대가 오고 난 이후부터는 하나님은 실체로 교육을 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그림자요, 또 그림책으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한번쯤 읽어본 사람은 여기 레8장에 오면 지겨워서 덮어버릴 것입니다. 
‘아니 제사장 구약시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되는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며 덮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큽니다. 
그것은 성경 진리의 실체를 그림책으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사장 위임은 7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모세가 온 회중을 회막문 앞으로 모읍니다. 
제사장은 은밀하게 위임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위임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물로 완전히 목욕을 시킵니다. 

세 번째 제사장에 합당한 의복을 입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그들에게 특별히 만든 기름을 붓습니다. 

다섯 번째로 그들도 제사장이지만 우리와 같은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그들을 위해 제사를 드립니다. 
속죄제를 먼저 드리고, 번제를 드리고 위임제사를 드립니다. 

여섯 번째는 제사장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음식을 먹습니다. 
그들은 장막 안에 칠일동안 머물렀다가 팔일째 되는 날에 밖으로 나갑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신약의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들 자신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오늘날 제사장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왕 같은 제사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제사장으로 위임된 사람들인 것입니다. 목사만 제사장이 아닙니다. 
신부만 제사장이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가 위대한 종교개혁을 한 원리 가운데 한 가지는 
모든 성도는 다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전신자의 제사장 직분”이라는 것이 
개신교를 지탱해주는 하나의 큰 기둥이 된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성직 폐기론을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주1)

구약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이었지만 
오늘날 신약에는 우리 예수 믿은 성도들이 바로 왕 같은 제사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서 오늘날 왕 같은 제사장된 우리들은 
어떤 확신과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장과 신약의 제사장과는 4가지 일치점을 두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으로 두신 것입니다.

◑1.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셨다.

첫째로 구약의 제사장과 신약의 제사장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셨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제사장은 모세가 아론이 자기의 형이기 때문에 
특혜를 주어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또 아론이 자기가 자원해서 제사장이 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여 세우셨습니다. 

제사장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제사장은 모든 종교에 다 있습니다. 
어느 종교나 국가나 제사장이 없는 종교는 없고 제사장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인류 사회에는 제사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사회에는 제사장이 필요하고, 제사장이 존재하며 
지금까지 모든 종교에서 제사장을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왜 인류사회에 제사장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까?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우리 인류가 간격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담 때부터 죄에 빠져서 현재 인류의 상황은 
하나님이 본래 의도하신 본래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에 빠져서 방황하고 유리하며 하나님이 계신지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섬기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도 없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영혼은 진리를 모르고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계자가 필요한데 
이 중계자가 바로 제사장입니다. 

여기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이 되지만 
그 이전에는 인간들이 스스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도 자기 스스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도 스스로 각종 제단을 쌓았습니다. 

노아도 자기 아들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렸고 
욥도 자기 아들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레8장에서 제사장으로 위임되기 전에는 
인간 스스로 제사장이 되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법을 따라 드려서 
하나님이 열납하신 것도 있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아서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은 제사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출애굽기 28장 1절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계시를 받죠. 
“너는 이스라엘 자손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3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 했습니다. 
그때에 모세가 시내산에 오르자 6일 동안 시내산에 구름이 가득합니다. 

칠일 째에 “모세야 구름 속으로 올라오너라”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됩니다. 
구름 속에서 사십일 사십야를 거하며 십계명의 계시도 받고 
성막에 관한 계시도 받고 제사장에 관한 계시도 받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제사장은 너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워라 
내가 그들을 택하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지금 모세는 그 말씀을 따라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위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 석 달째에 시내산에서 이 계시를 받고 내려와서 
성막을 아홉 달 동안 지었습니다. 세 달과 아홉 달을 합하면 1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출애굽한지 둘 째해 1월 1일에 건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건설된 성막문 앞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모으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위임한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기 8장의 스토리입니다.

▲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모세가 택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세가 자기 형이라고 특혜를 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세 아론 너희들이 다 해먹느냐?” 하면서 반역을 했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론도 자기 스스로 
그 아들들도 스스로 자원해서 제사장이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누가 택하셨다구요? 하나님이 택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인본주의의 종교는 언제나 인간이 하나님을 택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종교는 언제나 하나님이 인간을 택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제사장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서 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 영혼 속에서 
요동치 않는 진리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은 영적으로 씻음 받은 존재이다.

두 번째로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은 어떤 점에서 동일합니까? 
이들은 영적으로 이미 씻음 받은 존재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여기 세 가지로 정결의식을 행합니다. 
6절에 “아론과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물로 그들을 씻기고” 
물로 씻기는 것은 어느 한 부분만 씻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목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위임할 때에 목욕을 했습니다. 
이것은 의식적인 목욕입니다. 그들은 완전히 몸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손발을 씻습니다. 
목욕한 사람이 손발을 씻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진리를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예수님이 세족 목요일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겠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말합니다. 
“예수님 내 발은 절대로 못 씻기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너와 내가 상관이 없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 그렇다면 나는 목욕을 시켜 주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는 이미 목욕을 했기 때문에 손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목욕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씻음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되기 위해서 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명되어서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목욕하셨습니까? 예수 믿은 사람은 목욕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예수 믿어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세상을 살며 자주 죄를 범하기 때문에 손발은 매일 씻어야 합니다. 
손발을 씻으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을 안 씻으면 어떻게 됩니까? 냄새가 납니다. 
손을 안 씻으면 어떻게 됩니까? 눈을 비비면 눈병이 생깁니다. 
음식을 먹어도 병균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욕한 사람도 손발을 씻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첫째 물로 씻은 바가 되었고, 
둘째로는 피로 씻은 바가 된 것입니다. 제사장 자신들도 죄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개자가 되기에 부족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자신의 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여기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해서 세 가지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는 속죄제사요, 두 번째는 번제요, 세 번째는 위임제사입니다. 

속죄 제사를 위해서는 수송아지를 드리고 
번제와 위임제를 위해서는 수양을 드립니다. 

수송아지와 수양 두 마리를 각각 제사의 방식대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피는 제단 뿔에 바르고 제단 밑에 뿌리거나 부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제사장들은 일반적인 죄, 부지중에 지은 죄와 같은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존재가 되어 제사장의 사명을 다합니다.

어떻게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피로 씻음 받아야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히9:13-14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아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끗한 양심으로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신체의 일부분에 발랐습니다. 
그래서 귀에도 바르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에도 바르고 
오른발 엄지가락에도 발랐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물과 피로 씻어 영적으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물과 피로 정결함을 받았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뜻과 의지를 따라서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따라서,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를 따라 씻음 받고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속에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은 적합한 의복을 입어야 한다.

세 번째로 구약의 제사장은 적합한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 의복이 있습니다. 7-8절을 보겠습니다. 

“아론에게 속옷을 입히며 띠를 띠우고 겉옷을 입히며 에봇을 더하고 
에봇의 기묘하게 짠 띠를 띠워서 에봇을 몸에 매고 흉패를 붙이고 
흉패에 우림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관위 전면에 금패를 붙이니” 

제사장의 옷은 특별하게 하나님의 계시로 제작된 옷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겉옷위에 에봇을 입습니다. 에봇은 조끼입니다. 
그리고 조끼 앞에 흉패를 두고 주머니를 두어서 우림과 둠밈이라는 돌을 넣죠. 

이 돌은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쓰는 돌입니다. 우림, 둠밈을 넣고 
그 머리에 관을 쓰고 관에 금패를 붙였습니다. 
제사장은 반드시 이런 옷을 입고 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 것이나 입고 제사를 드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렇다면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가 
오늘날 입어야 할 옷은 무엇입니까? 
아무것이나 입고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골3:12-1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가 입어야 할 옷도 있고 우리가 매어야할 띠도 있습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은 첫째 긍휼의 옷입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옷은 자비의 옷입니다. 남에게 친절히 대하는 마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고 약자를 누르고 무시하고 짓밟는 행동은 
제사장이 입을 옷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겸손의 옷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만하게 세상 궤휼과 
권세를 가지고 그런 얼굴을 하고 다녀도 안 되는 것입니다.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온유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온유해야 합니다. 거칠고 욕설이 심하면 안됩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또 오래 참음을 옷 입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조그만 것이라도 캐서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흔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남의 약점을 알고 있어도 참아줘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약점을 붙들고 치고받으면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게 됩니다. 

우리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우습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 이런 것으로 옷 입지 아니하고 
제사장의 의복을 제대로 입고 다니지 않으면서 “주께서 말씀하셨지만 
나는 내 마음대로 입고 다닐 것이다.” 하는 사람은 죽고 살지 못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처럼 서로 용서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헐뜯지 마시고 서로 물고 뜯어 넘어뜨리지 마시고 용서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허리띠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있으면 
그것이 성도가 입는 옷을 제대로 입고 사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허리띠를 매어야 합니까? 사랑으로 메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사랑으로 하지 아니하고 시기와 원망과 다툼으로 하게 되면 
그 사람은 허리띠를 안 하고 바지를 입은 것과 같은 꼴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이 합당한 옷을 입고 제사의 직무를 감당했듯이 여러분 모두 
골3:12-14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옷을 입고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4. 구약과 신약의 제사장은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되어야 한다.

제사장이 일하다 말고 “아이고 오늘은 바빠서 제사장일 못하겠네.” 
이러면 되겠습니까? 
제사장은 하나님이 명하신 일에 온전히 헌신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하다가 실수로 잘못하면 속죄 제사를 통해서 
속죄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99%의 헌신이 아니요 100%의 헌신이 되어야 하죠. 
여기 제사장 의식을 보면 
레위기 8장의 제사장들은 두 가지로 헌신의식을 행했습니다.

▲1. 먼저 23-24절 “모세가 잡고 그 피를 취하여 
아론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르고 
아론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가락과 
오른발 엄지가락에 그 피를 바르고 또 그 피를 단 주위에 뿌리고”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행한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위임제사를 드릴 때에 그 수양을 잡아서 그 피를 제사장의 
귓부리, 오른손 엄지가락, 오른발 엄지가락의 세 군데에 발랐습니다. 

귀에 바르는 것은 듣고 생각하는 것을 거룩한 것에 집중하라는 말씀입니다. 
못된 말, 거짓된 말, 더러운 말은 듣지 말아야 합니다. 

오른손 엄지가락에 바른 것은 손으로 행하는 것이 거룩한 것이 되라는 말, 
오른발 엄지가락에 바른 것은 발로 가는 곳이 거룩한 장소가 되라는 것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인 우리들은 내 귓부리에도, 내 오른손가락에도, 
내 엄지발가락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라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가지고 도둑질을 하려다가도 ‘예수의 피가 있는 손가락으로 
도둑질을 어떻게 하는가?’ 

나쁜 짓을 하려다가도 ‘예수의 피가 발라져 있는 손으로 어떻게 
나쁜 짓을 하는가?’ 

발을 가지고 나쁜 짓을 하려다가도 ‘예수의 피가 발라져 있는 발로 
어떻게 나쁜 곳을 갈 수 있는가?’ 

귀를 가지고 나쁜 것을 들으려다가도 ‘예수의 피가 발라져 있는 이 귀로 
어떻게 나쁜 것을 들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고 기억하면서 
거룩한 것에 헌신되어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두 번째의 헌신의식은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몫으로 주신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화목제의 경우에는 제사장의 몫이 흔든 가슴과 든 뒷다리입니다. 

가슴고기는 흔들어서 요제로 드리고 먹게 되고, 
뒷다리는 거제로 드리고 먹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십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셔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사장들은 성막에서 일주일간 하나님과 먹고 마시며 교제하다가 
8일째부터 밖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레위기 8장의 제사장 위임식의 전모인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왕 같은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름부음을 주셨습니다. 

그 기름부음은 성령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령을 우리 마음에 받은바 된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 기도하다 보면 방언도 오고 예언도 오는 것이지 
성령을 못 받은 사람에게는 그런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방언을 했다고 해서 
비로소 그 때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을 때에 이미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 것이고, 
그 예수를 믿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기도하다 보면 
방언도 있고 체험도 있고 능력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체험이 있으면 좋지만 그런 것들의 여부를 떠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내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20-21세기는 오순절의 역사가 강하고 소위 은사운동이 강해서 방언이 
많지만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방언의 현상은 1세기와 20세기의 현상이죠. 
그 중간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기름부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에게 이미 임하여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기도해서 날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충만을 받고 살아야 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그러므로 오늘 레위기 8장 제사장 위임식을 통해서 
첫째, ‘나는 하나님이 택하셔서 왕 같은 제사장을 삼아 주셨다’
두 번째로 ‘나는 이미 물과 피로서 영적인 깨끗함을 받았다. 
나는 이미 영적으로는 목욕한 존재요 나는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별하신 왕 같은 제사장이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나는 제사장 같은 옷을 입고 섬겨야 되겠다.’
골로새서 3장 12-14절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내 듣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나 내 발로 행하는 것이나 
모든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발라진 
거룩한 삶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 넷이 모두 다 제사장의 위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론의 아들 넷이 전부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 둘,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 위임을 받고 10장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론의 아들들 중에서 엘르아살과 이다말과 
그의 후손들만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답과 아비후처럼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엘르아살과 이다말처럼 하나님이 기쁘게 쓰시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쓰시는 
왕 같은 제사장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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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 제사장 제도의 역사와 기능

일반적으로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세워지기 전에는 
제사장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장의 반열이 레위지파의 후손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레위지파 이외의 반열도 존재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역사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창14장 18~20절에 보면 멜기세덱이라는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연합군을 쫓아가서 빼앗긴 재물과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데려오며 그를 만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살렘 왕이라는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자신을 영접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고,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본문에 멜기세덱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멜기세덱은 레위지파 사람이 아니라 살렘 왕인데, 
그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한 것입니다.

시편 110편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예언하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히5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레위지파가 아닌데 어떻게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지 논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론의 반열을 좇은 대제사장이 아니라 
레위지파보다 훨씬 이전에 있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멜기세덱을 보면 모세 이전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시기 이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제사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출19:22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24절에도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돌파하고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돌격할까 하노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시내산에 올라올 때 너만 올라오고 제사장들은 올라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제사장에 관한 율법이 기록된 20장 이전의 
19장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말씀을 받기 이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이미 제사장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제사장에 관한 계시는 
오직 아론과 그의 후손들에게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아무나 제사장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직 아론과 그 아들들만 참된 제사장이 되게 하라시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이스라엘에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아닌 다른 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제사장이 되도록 
하셨다면, 이미 제사장 노릇을 하던 사람들은 실직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론과 모세의 리더십을 잘 따르는 자들이 되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야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따랐겠지만 
후일에 언제든지 모세와 아론에게 반역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니까 나중에 고라 자손이 반역할 때 앞장섰던 사람들은 
이때 제사장 노릇을 하다가 하나님에 의해서 직분을 잃게 된 사람들도 
틀림없이 포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 제도는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에도 있었죠. 
요셉의 장인이 이방인 제사장이었습니다. 
창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니라”

또 출3:1절에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모세의 장인도 이방인 제사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아내는 십보라였는데, 그녀는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시내산 위에서 주신 모세 언약은 
제사장 제도를 새롭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제도에 대해 
그 대상을 국한하시고, 활동에 대해 정확한 계시를 주셔서 
그것을 따라 활동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 제도를 정형화하고 규격화하셨다는 것입니다.         

..................................

주1)
어떤 사람들은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이 성직의 폐기를 의미한다고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루터가 말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불신 세상에 대하여 
복음을 전함으로써 세상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사명을 가진 제사장이라는 거지, 
교회에서의 성직의 무용함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말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 그리고 이것의 신약 버전인 
베드로서의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라는 선언은 
불신 세상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전체 공동체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사명을 말한 것입니다. 성직 폐기론을 말한 것은 아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