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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가겠습네다> P2

LNCK 2023. 1. 19. 10:54


◈도서 <내래 죽어도 가겠습네다> P2                          <지난 회 보기



◑4장. 돌아오는 북한 형제들 

내가 추방되면서 서안 공항으로 나갈 때   *2001년 6월
우리 사역자님들을 체포하는 작전을 총괄 지휘했던 공안이
자기의 명함을 내게 주면서 말했다. 
'후에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무엇인가 도울 수 있다는 암시였다. 

그는 중국 조선족 공안이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그는 북한 형제들을 전부 체포하고 나서, 미안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압니다. 이들은 정말 불쌍한 탈북자들일 뿐이라는걸 말입니다. 
하지만 신고한 사람이, 이들을 무장 조직으로 신고했고 
상부의 명령이니 나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이 이해해 주십시오' 

'북한 형제들을 다 구할 수는 없겠지만, 14명의 팀장들만이라도 꼭 구해주세요. 
그들은 (북한에 넘겨지면) 정말로 죽습니다!' 

그 조선족 공안은 그렇게 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일반 학생들은 강제북송 된다고 해도, 대부분 단순 생계형 탈북자들이고 
사역장에서 한 일도 별로 없어, 큰 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팀장들은 문제가 다르다. 성경을 많이 배운데다가 
주도해서 탈북자들을 모집하였고, 
남한 사람과 함께 성경을 가르쳤다. 

저들을 그냥 내버려 두면, 무조건 정치범수용소에 가게 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처형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팀장들만은, 꼭 북송되기 전에, 중국에서 구출하고 싶었다. 
조선족 공안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팀장들을 살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큰 사건인데다, 북한 보위부에서도 
고도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14명의 팀장 들을 전부 석방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국 공안은 김성근, 이용섭 선생들을 석방시켜 주었다. (*손을 썼으나...)

김성근 선생은, 나를 도와 서안의 모든 사역장을 총괄 지휘했던 형제이다. 
북한으로 잡혀나가면, 이 사건의 최고 주동자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는 처형당하고, 그의 가족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25살의 젊은 청년이 감당하기엔 그건 너무 혹독한 고통이었다. 
이 때문에 김성근 선생을 구출했다. 

 

이용섭 선생은 연변에 거주하면서
4기생 북한 청년들을 연변에서 모집하여 
서안으로 데려온 모집 총책임자였다. 

그래도 이 사건의 주동자 중 한 사람이었다. 

또한 이용섭 선생은, 북한에서부터 비밀 군수공장에서 일했던 사람이기에 
형벌이 더욱더 가혹할 것이라고 중국 공안은 판단했다. 

▲서안에서 우리 사역장 전원이 체포되기 전에, 
연변으로 학생모집하러 나갔다가, 공안에 먼저 체포되어 북송되었던 선생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효선 선생이 돌아왔다. 
효선 선생도, 최순교 선생 팀에 소속되어 파송되어 학생 모집하러 가다가 
연변행 열차에서 체포되었다.  *불심검문, 신분증 없음

효선 선생은 도문 감옥에 갇혔다. 
효선 선생은 학생들을 모집해서 많은 일을 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고 
또 그렇게 많은 기도를 했는데, 연변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강제 북송 된다고 생각하니 허무했다. 

그러나 효선 선생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기로 했다. 
이제 북한으로 끌려가면, 어떤 방식이든 도우심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효선 선생은 서안에서 성경을 배운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감방 안에는, 여러 번 북한으로 잡혀 나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이 북한 보위부의 조사방법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고 말도 맙소. 거 보위부 새끼들한테 걸리면 하나도 숨기지 못함다. 
애기 때 젖먹던 힘까지 몽땅 토해내야 거기서 나갈 수가 있소. 
그 새끼들이 얼마나 교활한지 아오?
그냥 대충 먹을 것이 없어서 중국으로 넘어갔다고 하면 절대로 안 믿어. 
보름 동안 자꾸만 반복해서 중국에서 살았던 일들을 종이에 쓰게 하는데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다시 써야 돼! 

어제 쓴 이야기를 내일 또 쓰고, 그 다음날 또 써야 돼. 
그러다가 어제 쓴 내용하고, 내일 쓴 내용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그 다른 부분을 가지고 파내고 또 파네... 

아무리 머리 잘 굴리는 놈이라도, 짜맞춘 놈들은 틀리게 되어 있고, 
그러면 다 나오게 되어 있어. 결국은 다 토해내게 돼. 거짓말 못 해!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 버리는 게 더 편해! 

그냥 교회 갔던 일, 남조선 사람 만났던 일 숨기려고 잘못 쓰다가 걸려가지고 
몇 달씩 조사만 받다가 숨이 끊어지는 애들이 널렸어!' 

효선선생은 덜컥 겁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짜맞춘 이야기를 며칠씩 계속해서 똑같이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은 잘못 써서 성경공부 한 것이 들키게 되면 
정말 내일을 기약할 수 없어진다. 

효선 선생은 하나님께 의지하기를 했다. 
'하나님, 15일 동안 똑같은 것을 쓰게 해 주십시오. 
저는 기억력이 나빠서 똑같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도와 주십시오. 
그리고 북한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며칠 후 효선선생은 (중국 도문 감옥에서) 북한으로 끌려나가, 
보위부 조사실에서 심문을 받았다. 
놀랍게도 15일 동안 기계처럼 똑같은 이야기만 써 냈고, 
심문을 무사히 통과했다. 기적이었다. 

효선 선생은 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심문 받는 현장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였다. 

▲조사가 끝나고, 단순생계형 탈북자로 처리되었고 
효선선생은 고향으로 내려가 막내동생을 만났다. 

막내3는 효선선생1에게, 또 다른 형제2의 사연을 들려줬다. 

효선선생이 중국에 가 있는 동안, 그의 동생2도 중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성경책을 가지고 북한으로 돌아왔다. 

국경을 은밀하게 넘어가던 동생2은 
불행하게도 숨어서 지키고 있던 북한국경 경비군인들에게 발각되었다.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자, 피할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판단한 동생2은 
군인들과 격투가 붙었다. 

하지만 무리로 달려드는 북한 군인들을 당해낼 수 없어 
붙잡혀 꽁꽁 묶이고 말했다. 

북한 군인들은 그의 몸을 수색하다가, 사복음서로 된 성경을 발견했다. 
(효선의) 동생2은 군인들에게 초죽음을 당할 정도로 몰매를 맞았다. 

북한 보위부는, 동생2이 다시는 중국으로 가지 못하게 한다고 
동생의 두 다리 관절을 꺾어버렸다. 

그리고 추운 겨울날, 보위부 앞마당에 앉혀 놓고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구경하게 했다. 

둘째 형이 중국에서 붙잡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막내3가 보위스를 찾아갔을 때 
보위부 앞마당에는 너무 맞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한 남자2가 앉아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2이 보위부 마당에 들어서는 막내3를 보더니, 활짝 웃기 시작했다. 
막내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자세히 쳐다보니 
그 사람은 바로 자신의 둘째 형이었다. 

그를 알아본 막내 동생은,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형2이 불쌍하다는 생각보다는, 두려움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막내는 그 후, 둘째 형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막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말했다. 
'효선 형, 나도 여기서 살다가는 둘째 형처럼 될 것 같아!' 

효선 선생은 막내를 데리고, 서둘러 다시 중국으로 탈북했다. 

중국으로 넘어온 효선선생은 
금방 감옥에서 나온 용섭 선생을 만나 
서안 사역장 들은 붕괴되었고 
함께 공부했던 모든 선생과 형제들은, 
얼마 전까지 자기가 갇혀 있던 도문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효선은 앞서 연변행 기차 안에서 잡혔다가 북송, 재탈북)

효선선생과 이용섭 선생이 하던 이야기를 듣던 막내 동생이 
갑자기 기절할 것처럼 무서워했다. 

그는 자기 형이 기독교인들의 선생이라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마치 귀신을 만난 사람처럼 놀라 도망가는 막내동생을 붙잡아 달래느라 
효선선생은 참 많은 설명을 해야 했다. 

▲효선선생이 중국으로 돌아온 직후 
최순교 선생도 북한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다가 중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한국에서 최원 목사로 목회 중

 

얼마나 많이 굶었는지, 그의 온 몸이 공기를 가득 채운 풍선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 

사람이 영양실조에 걸리게 되면, 먼저 몸이 퉁퉁 부어 오르다가 
부기가 빠지면서 온몸에 뼈만 남는다. 

하지만 부어 있는 상태에서 잘 먹이면 
부었던 몸이 그대로 살이 되지만 
잘 먹지 못하게 되면 그대로 영양실조에 걸려 죽거나, 정신이 이상해진다. 

순교선생에게는 절대적인 안정과 보양이 필요했다. 

나는 도문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온 조선족 선생들과 (조선족이라서 석방)
효선, 순교 선생이 지낼 사역장을 연변에 다시 만들었다. *한국 체류 중에

그리고 도문 감옥에서 빼낸 김성근 이용섭 선생들이 머물 사역장도 만들었다. 
북한으로 북송된 형제들 중, 일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넘어 올것이다. 
그러면 남아있는 선생들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사역장 들을 회복하고 싶었다.  *연변에서

▲예상대로 두세 달 정도 지나자, 팀장들을 제외한 학생들이  *서안에서 체포된
중국으로 넘어오기 시작했고, 사역장들이 다시 세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활발한 사역을 제기하고 싶었지만, 
상황은 체포되기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우선 내가 추방된 몸이라, 중국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전화로만 사역을 진행하다보니, 불가능한 일들이 많았다. 

북한 보위부는, 서안 탈북자 사건을 조사하다가 
가장 중요한 총책임자들인, 김성근 이용섭 선생이 
중국에서부터 빠져버렸다는 것을 알고 격노했다. 

곧바로 두 선생들을 체포하려고, 북한에서부터 요원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보위부 요원들은 성근 선생의 친척들 집에까지 찾아와서 
그를 찾다가 돌아갔다. 

거기에다 북한 보위부나 중국 공안들은, 이제 우리의 사역방식은 물론이고 
북송되지 않은 나머지 선생들의 신상에서 용모까지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다. 

성근선생은 불안해했고 대부분의 학생들도 마음이 흔들렸다. 
예전처럼 성경학습에 대한 의욕이 살아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 코를 맞대고 앉아 있는 연변 지역에서 
사역을 계속 진행 한다는 것은 위험했다. 

사역장들을 중국 대륙의 안쪽으로 옮기려고 해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일단 북한 보위부의 표적이 되어 있는 김성근, 이용섭 선생들을 
한국으로 빨리 데려와야만 했다. 

▲마침 김권능 선생이 서안 소식을 듣고 나에게 전화를 해 왔다. 
권능선생은 나의 첫 수제자 이다.

 1기때 8명의 북한 형제들이 훈련을 받고 북한 선교사로 세워졌다. 
사역장들이 1기, 2기로 확장되자 
권능선생은 나를 도와 전체 사역장을 관리하다가 연변으로 올라갔다. 
나중에는 성근선생이, 권능선생을 대신해 사역장을 전체 관리했다.

권능선생은, 탈북자들을, 위험한 중국에서 
계속 성경통독 사역을 시키는 것보다는 
남한으로 데려가는 사역이 더 다급하다고 생각하고 
사역의 방향을 돌렸다. 

우리 서안 사역장을 잠시 떠난 권능선생은, 그때부터 (다른 선교사를 도와서) 
탈북자들을 남한으로 보내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사역에 경험이 있었던 권능선생은 
우리 사역장의 선생들과 학생들을 남한으로 보내는 일에 도움을 주었다. 

탈북자 한 사람을 남한으로 데려오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중국을 탈출해서 몽골 등 제3국으로 가야 했다. 

이 과정에는 제3국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알고 있는 
가이드와 브로커가 필요했다. 
위험을 동반하는 여러 과정을 거치는 일이라, 많은 돈이 필요했다. 

브로커는, 한 사람을 데리고 오는데 200만 원을 요구했다. 
헌금 들어오는 돈을 모았다가 2백만 원이 차면 
한 사람씩 순서대로 중국을 탈출시키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보위부의 표적이 되어 있는 팀장들부터 데려오고 싶었지만 
팀장들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지역에 학생들만 남겨 놓고 도망 갈 수 없었다. 

 

결국 학생들이 먼저 출발하게 되었다. 
돈과 안내원이 준비가 되면, 한 팀씩 묶어서 한국으로 보내는 일은 
이용섭 선생이 맡아서 진행했다. 

이때부터 성경통독 사역이 
북한 형제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구출 사역"으로 바뀌었다. 

자기들을 한국으로 데려간다는 것을 알게 된 수십명의 북한 형제들은 
자기들의 순서가 오기를 눈이 빠질 정도로 기다렸다. 

그러나 돈이 잘 마련되지 않아, 사람들을 빨리빨리 데리고 올 수 없었다. 

북한 형제들은, 자기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형제들과 가족들까지 
한국으로 데려가 주기를 요청했다. 
결국 한국으로 와야 하는 인원이 급속히 불어났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은 없었다. 
지극히 불안한 연변에서, 기약없이 돈이 생기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5장. 다시 국경을 넘다. 

김성근 선생과 이용섭 선생은, 브로커와 가이드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기로 했다. 

연변에 새로 결집되는 북한 선생들과 형제들 중에서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성근선생이 유일했다. 

결국 성근선생이 길(탈출 루트 개척)을 찾아 떠나야했다. 
감옥에서 큰 병을 앓다가 석방된 성근선생은, 몸이 채 완치 되지 않았지만 
길을 떠났다. 

중국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가는 길은 
남쪽으로는 베트남을 지나 캄보디아로 갔다가 태국으로 가는 길이 있었고, 
북쪽으로는 몽골 가는 길이 있었다. 

남쪽은 거리가 너무 멀고 돈도 많이 들기에 
성근선생은 비교적 가까운, 중국과 몽골 국경을 안전하게 넘을 수 있는 길을 
직접 찾아 보기로 했다. 

성근선생은 안전하게 몽골로 갈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하얼빈을 거쳐 중국의 북변 도시 만추리 쪽으로 올라가다 

 

서쪽으로 진행하여 몽골 국경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한 시골마을을 찾아냈다. 
기차를 타고 대도시를 경유하게 되면, 공안들의 검문을 피할 수 없기에 
검문이 비교적 느슨한 작은 도시들을 거쳐 가는 길을 골랐다. 

버스나 택시가 들어갈 수 있는, 제일 마지막 국경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초원길을 따라 100리(40킬로)가량 가면, 몽골 국경이 나타난다. 

비록 험란하기는하지만,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 성근선생은 
이 길로 탈북민들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돌아왔다. 

▲이제 개척한 그 길로, 실제로 첫번 째 팀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이용섭선생은, 성근선생에게 말했다. 
'꼭 성공해라! 네 성공 여부에 따라, 뒤에 있는 많은 사람의 생사가 결정된다. 
그러니까 작은 일에도 신중에 신중을 다해야 한다.' 

모두 12명의 북한 형제들과 아주머니들이 출발하기로 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루트를 개척해서 처음으로 가는 길이라, 아무도 이 길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성공 여부도 불확실했다. 

당시 남한으로 떠나는 여정의 성공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2~3팀이 떠나면, 그 중 한 팀은 중국 공안들에게 체포되고 
경험없는 가이드를 만난 경우, 대부분 체포되기 일쑤였다. 

북한은, 한국으로 가다가 체포되어 오는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조국 반역자로 낙인찍고,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 

탈북자들에게 한국으로 가는 길은,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과도 같은 길이었다. 
단 한 번의 시도에 천국과 지옥이 갈리는 공포의 길이었지만 
반드시 가야만하는 길이었다. 

만약 성근선생이 개척한 길을 통해, 안전하게 몽골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이 은밀한 길은, 우리 서안 사역장 형제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고정 통로가 될 것이다. 

실패하는 경우 이 길은, 중국공안에 노출되고 
성근선생과 12명의 탈북자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야 한다. 

떠나는 날 성근선생이, 탈출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안전을 위해 열차와 버스를 계속해서 갈아타야만 합니다. 잡히지 마십시오. 
만약 우리 중 누군가 공안들에게 체포되면, 그 사람은 도움을 바라지마시고 
그냥 혼자 잡혀 가세요.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잡혀가도, 우리는 모르는 체 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의 일행이라는 것을 절대 노출시키지 마십시오. 
함께 움직이되, 같이 행동 하지 마십시오.' 

▲성근선생이 인솔하는 팀은, 흑룡강성 하얼빈 역을 거쳐 몽골을 향해 떠났다. 
추운 11월의 겨울 날씨였다. 

중국 북쪽 지방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비교적 따뜻한 때조차도 영하 20도 정도였다. 

모두가 말 없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기차와 버스를 타고 내리고 하는 동안,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지만, 하나의 움직임이었다. 

버스가 들어가는 마지막 촌락까지, 
일행은 한 사람도 잡히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몽골 국경까지는 걸어서 가야만 했다. *40Km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밤이 되자 팀은 서둘러 출발했다. 
볼을 찢는 것 같은 날카로운 추위 속에서 
12명의 일행은 앞에 사람이 간신히 보일 정도의 거리를 두고 
한 사람씩 걷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는, 아기를 담요로 몇 겹씩 둘러감았고 
남자들은 아기를 교대로 업으면서 걸었다. 

북경 지역이라 간간히 군용 트럭들이 오갔다. 
멀리서 트럭 불빛이 보이면, 길에서 벗어나 숨었다. 

추운 겨울 밤에 인가도 없는 들판에 
사람이 보이면 누가 봐도 수상하게 여길 테니 말이다. 

촌락을 벗어나 몇 시간 동안 걸어나가다가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성근선생이 앞서 와서 보았을 때는, 분명히 지도에 그려져 있는 대로 
들판에 길 하나가 있었다. 

그러나 성근선생이 일행을 데리고 다시 그곳으로 오는 사이에 눈이 왔다. 
국경으로 가는 길은, 마치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 놓은 것처럼 
하얗게 사라져 버렸다. 

위험했다. 백리 밖에 있는 국경을 
길도 없이 개미가 더듬이로 더듬거리듯 찾아간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하루를 채 버티지 못하고 얼어 죽을 것이다. 

겨울의 몽골의 대초원에 잘못 들어섰다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지치고 얼어 죽고 굶어죽은 탈북자들이 많았다. 

성근선생은 자신이 없었다. 
불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오기를 부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미 길을 떠날 때부터 죽음을 각오한 사람들이라 
가는 데까지 가 보자고 했다. 

하나님이 돕지 않으시면, 살 수가 없는 길이었다. 

성근 선생이 제안했다. '하나님을 믿든지/안 믿든지 우리 다 같이 기도합시다. 
도와 달라고 기도합시다. 이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행 중에는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모두가 간절하게, 또 경건하게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다. 살려 달라고 빌었다. 

마지막 마무리 기도를 하던 성근선생은 눈물이 왈칵 나왔다. 
엉엉 울면서 기도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실수하면,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2명이 다같이 죽어야한다. 
거기에다 북한의 가족들까지 함께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야 한다. 

기도가 끝나고 성근선생은, 가만히 서서 마음속에서부터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확신도 평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가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정 뿐이었다. 

성근선생은 어둠 속을 향해, 눈덮힌 겨울 광야의 밤 길을 걸어 들어갔다. 
지도와 나침반을 가지고 방향을 잡으면서 전진했다. 

그의 뒤를 따라 얼마간 거리를 두고, 한 사람씩 뒤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끔씩 모여서 뒤떨어진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서둘러 떠났다. 

얼마나 열심히 걸었는지, 그렇게 추운 밤이었지만, 모두 땀으로 옷들이 젖었다. 
몽골 땅으로 들어가서, (대사관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이 길에서 얼어서 죽든지... 

이제는 이 지겨운 탈북자의 삶, 
북한 보위부에 쫓기고, 중국 공안에 쫓겨다니는 삶을 끝내려고 왔다. 

모두가 초인적인 힘으로 걸었다. 밤이 깊어지자 일행은 지치기 시작했다. 
'연변 아저씨'로 불리던 이가 주저앉아 엉엉 울며 말했다. 
'됐어, 난 더 이상 못 가! 난 여기서 그냥 죽어도 좋으니까 
너희들끼리 그냥 가. 날 두고 가!' 

앞서 가던 남자들이 무작정 거칠고 포악하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손에 죽고 싶어? 일어나, 무조건 일어나! 
안 일어나면 정말로 죽일 거야!' 

탈진한 연변 아저씨를 억지로 잡아 일으켜 세웠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군사 복무를 했던 탈북자들은, 정말 그를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려 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가는 길이라, 인정 사정이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쓰러지면, 얼어 죽든, 공안에 잡혀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서 죽든.. 죽기는 매한가지다. 

공안에게 붙잡혀서 죽게 되면, 일행에게도 위험이 생긴다. 
차라리 맞아 죽는 것이 더 나은 일이다. 

많은 사람의 생명이 걸린 일이라, 탈북자들은 인정사정 없었다. 
군출신 탈북자들이, 돌을 들고 정말 죽이려고 달려들자 
겁을 먹은 연변 아저씨는 다시 일어나 기다시피 따라갔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몽골 국경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대로 왔다면 이제는 나타나야 할 시간이 지났다. 

일행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았다. 
일행은 걷기를 멈추고 모임을 가졌다. 

'성근선생, 지금 가는 방향이 맞긴 맞아?' 
성근선생도 할 말이 없었다. 확신이 없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야밤이라 눈을 감아도/ 떠도 사방은 똑같이 캄캄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돌아가자! 이렇게 가다가는 다 얼어 죽어!' 
라고 연변 아저씨와 여인들이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돌아가도 죽는다!' 
남자들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돌아가기에도 늦었다. 출발 지점까지 돌아가는 동안 날이 밝는다. 
그러면 중국 국경경비 군인들에게 체포된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 갈 수도 없었다. 
성근선생과 제대 군인 몇 사람이, 다시 꼼꼼이 지도를 살펴보는 작업을 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확신을 수가 없었다. 모두가 침울하게 눈 위에 앉아만 있었다. 
추운 겨울 바람이 쌩쌩 불어댔다. 
여인들은 북극의 펭귄들 처럼 서로 몸을 붙이고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걸으면서 흘렸던 땀이 식으면서 
견딜 수 없는 한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추위에 약한 아기가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성근선생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주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하늘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성근 선생은 더 이상 지도와 나침반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꾸 이렇게 해서 서쪽으로만 가지 말고 남쪽으로 가보자' 

답답한지 나이 많은 제대군인 한 사람이 제안했다. 
모두 말 없이 앉아만 있었다. 

성근 선생이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북쪽으로 갑시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누구도 선택하지 못했다.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1시간 정도만 더 가봅시다. 
그래도 국경이 나타나지 않으면, 포기하고 가까운 마을이라도 찾아가 봅시다. 
이러다가 아이가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서쪽으로만 가던 방향을, 북쪽으로 틀었다. 
딱히 그래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서쪽으로는 충분히 걸어왔지만, 국경이 나타나지 않으니 
그저 내키는 대로 방향을 돌린 것뿐이었다. 

다시 2시간 가량 걸었다. 
멀리 달빛 아래서 검은 띠 같은 것이 히미하게 보였다.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국경이 아닐까?' 
확신이 서지는 않았지만, 계속 그 검은 띠를 향해 나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살벌한 가시철조망이 촘촘하게 걸려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대초원을 가로지르며 뱀처럼 길게 누워 있었다. 
국경 이었다. 

'국경이다. 이제는 살았다!' 일행은 흥분했다. 
살인적인 추위 속에서 밤을 세워서 찾고 찾던 국경이 나타났다. 
모두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철조망을 넘고 한동안 계속 걸어가자 강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강은 얼지 않았고,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성근선생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애물이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 무서운 추위속에서, 강이 얼지 않고 흐른다는 것이었다. 
강 상류에 온천수가 있는지, 수면에서는 김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지도를 보니, 분명히 지도에는 강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것을 보아서, 수심이 꽤 깊어 보였다. 

강을 건너려면 물에 빠져야 한다. 
이 추위 속에서 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과 같은 일이 없다. 

아무리 여울목을 찾아 강 아래 위를 돌아다녀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 건널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여울목을 찾는 사이, 날이 밝기 시작했다.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중국 국경 경비대 초소가 보였다. 

인기척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그곳에서 개가 컹컹 짓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강을 넘지 않으면, 중국 군인들이 추격해 온다. 
설상가상으로 잠들었던 아기가 깨어나서 울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모두가 물로 뛰어들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물은 허리까지 차 올랐고,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차가웠다. 

그렇게 강을 건넜다. 이제부터는 몽골이다. 
저기 보이는 중국 국경경비 초소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다들 온몸이 젖었지만 추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성공했다는 기쁨에,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나뭇가지들을 모으고 불을 피웠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과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모닥불 연기 때문에 
고요하던 몽골 국경은 난리법석이었다.

강 건너 중국 국경경비대의 개는 더욱 맹렬히 짖어댔지만, 
이제는 그것도 귀여운 강아지 소리로만 들려 왔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큰 평안이었고, 기쁨이었다. 
일행은 준비해온 음식들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날이 완전히 밝았다. 

성근선생은, 목숨 걸고 걸어와 얻은 이 새로운 세상을, 멀리까지 둘러보았다. 
기쁨이 넘쳐 있던 성근 선생의 얼굴은, 
곧 무서운 것을 본 사람처럼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성근선생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망망대해 같은 몽골의 대 초원이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몽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대 초원의 나라였다. 
자동차를 타고 하루 종일 가도, 작은 마을 하나 만나기 힘든 곳이다. 

이들은 망망대해와 같은 몽골의 대초원에 던져진, 작은 무리들이었다.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지도도.. 경험도.. 안내자도 없었다. 

왜 몽골 땅에 들어가서도, 길을 잃고 죽는 탈북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이제야 성근선생은 알게 되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하늘과 바다 같은 들판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강 너머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은 중국 땅이고, 중국 군인들이 있다. 

모두가 밤새 걸어온 여정에 지쳐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절망에 빠진 성근 선생은, 터벅터벅 초원을 향해 저만치 걸어나가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국경만 넘으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넘으니 광야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을.. 그렇게 멀고 먼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가?' 

너무 오랫동안 중국 공안들과, 북한 보위부에 쫓기면서 살다보니 
그들에게서만 벗어나면, 지옥에서라도 살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로지 중국땅을 탈출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 땅은 탈출했지만, 
중국 공안보다, 북한 보위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추운 겨울 날씨의 몽골 대초원 이었다. 

사람이 너무 큰 절망에 빠지면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다는 것을.. 성근 선생은 이때 경험했다. 

그저 멍하니 서서, 얼빠진 사람처럼, 바다 같은 눈덮힌 초원을 둘러보았다. 

'성근선생! 저기 봐, 저게 뭐지?' 
어느 새 성근선생의 뒤를 따라온 임종철 아바이가 소리쳤다. 

성근선생은 그가 가리키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득히 멀리 보이는 곳에 산이 있었고, 
그 산꼭대기에 조그만 깃발 같은 것이 가물 거리며 보였다.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와락 희망이 다시 살아났다. 

일단 성근선생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성근선생은 그 깃발을 바라보고, 달리고 또 달렸다. 

밤새 걸어온 몸이었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보니 몽골 깃발이었다. 
그 깃발 아래, 작은 몽골 국경경비 초소가 있었다. 

기쁨이 넘쳐 올랐다. 성근선생은 너무 기쁜 마음에 
'와~ 와~'하고 고함을 지르며 몽골 국경경비 초소를 향해 달려갔다. 

'그래 이제 살았다. 주님 고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하고 추운 겨울 날의 대초원에 
갑자기 웬 낯선 청년이 나타났다. 

그가 마치 테러범이 뛰어드는 것처럼 초소를 향해 돌격해 보자 
몽골 군인들은 비상이 걸렸다. 

3명의 군인이 중무장을 하고 말을 타고 성근선생을 향해 달려 내려왔다. 
그들은 성근선생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리곤 뭐라고 알 수 없는 말로 과격하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쏴버릴 기세였다. 

'아차, 여기는 몽골이다. 중국 말이 통하지 않는다'
손을 번쩍 들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은 성근 선생을 향해 
몽골 군인들이 달려들어, 손은 뒤로 꺾고 꽁꽁 묶은 다음 
검은 천으로 성근 선생님 머리에 뒤집어 씌워 놓았다. 

군인들은 성근선생을 초소로 데리고 올라가, 초소에 쳐 넣었다. 
뒤이어 한 무리의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와 
성근선생의 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지도가 나왔고 나침반이 나왔다. 
아뿔싸! 중국인 가짜 신분증도 나왔다. 

성근선생이 열차에서 공안들 만나면 보여 주려고 가지고 다니던 
가짜 중국인 신분증 이었다. 

신분증을 본 군인들은, 성근선생을 중국인이라고 단정지었다. 
순간 몽골 국민들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적개심과 분노가 터졌다. 

몽골 군인들은 고함을 지르면서, 성근선생을 군홧발로 주먹으로 
마구마구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망할 놈의 중국 놈이, 왜 몽골 땅에 들어왔냐?'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후에 성근선생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가서야 
몽골사람들이 중국인들을 
북한사람들이 미국인을 싫어하는 것보다도, 더 싫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내몽골 지역은, 원래 몽골 땅이라고 한다. 
현재 몽골 땅보다 더 넓은 땅이다. 
그 땅을 중국의 마오쩌둥 주석이, 군사력으로 강제로 빼앗아버렸다고 한다. 
국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겼으니,
이 때문에 몽골 사람들은, 중국 사람들을 원수처럼 싫어했다. 

그런데 중국인이 허가도 없이 몽골 국경을 넘어와서 
몽골 국경초소를 향해 돌격해 왔으니 
분을 풀기에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몽골 군인들은 죽여도 좋다는 심정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집단 구타 했지만, 성근선생은 전혀 아프지 않았고, 
어디 한 군데 다친 곳도 없었다. 맞으면서도 아프지 않다는 것이 이상했다. 

성근선생은 중국어로 고함을 질렀다. 
'때리지 마, 때리지 말라 말이야. 나는 북한 사람이야!' 

귀에 거슬리는 중국어로 고함을 지르자, 군인들이 더 화가나서 때렸다. 
급해진 성근선생은 한국어로 다시 고함을 질렀다. 
'때리지 말라 말이야, 나는 북한에서 왔다고!' 

성근선생이 갑자기 생소한 언어로 고함을 지르자 
몽골 군인들도 뭐가 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때리기를 멈췄다. 

이어서 성근선생의 눈을 가렸던 천을 벗기고 
제일 직급이 높은 군인이 심문을 시작했다. 
고함을 지르면서 뭐라고 자꾸 물었지만, 뜻을 알 수도 없었고 말이 안 통했다. 

답답해진 성근선생이 꼬챙이로 방바닥에 세계지도를 대충 그려가기 시작했다. 
먼저 몽골 지도를 그리고, 그 옆에 중국 지도를 그리고 
다시 그 옆에 조그마하게 한국지도를 그려놓고 영어를 썼다. 
I am a Korean 

몽골 사람들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지 알아 들었다. 
이 세상의 끝자락에 사는 사람들에게, 영어가 통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몽골 군인은 성근 선생이 그린 한국지도를 뚫어지게 보더니 
한국 지도의 허리를 뚝 잘라 금을 긋고는,
북쪽과 남쪽으로 막대기로 툭툭 찍었다. 
북한 사람이냐/남한 사람이냐를 묻는 듯했다. 

성근선생은 북한땅을 가기켰다. 
순간 몽골 군인들의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몽골 사람들은, 북한이든 남한이든 한국인들을 좋아했다. 
국가는 달라도, 조상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인들과 한국인들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엉덩이에 시퍼런 멍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몽고반점 이라고 부른다. 
몽골, 한국, 일본, 중앙아시아, 만주족, 그외 시베리아 소수 부족 등에 나타난다. 

성근선생이 중국인이 아니라,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자 
몽골 군인들의 태도가 급변했다. 

묶었던 몸도 풀어 주고, 따뜻한 물도 주고, 먹을 것도 주었다. 
좀 전에 죽일 것처럼 구타했던 일이 미안한 모양이었다. 

성근선생은 그들에게 손짓발짓을 다 동원해 가면서 
국경에 가면 아직 12명의 북한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근선생의 바디 랭귀지를 가까스로 이해한 몽골 군인들은 
말을 타고 가서 나머지 북한 형제들도 다 데리고 초소로 왔다. 

'이제는 살았다. 정말로 살았다!' 
생사가 갈리는 죽음의 여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몽골은 합법적으로 북한 탈북자들을 한국 대사관으로 인계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꿈에서만 바라보면서 살아왔던 나라, 한국으로 가게 된다. 

성근선생과 탈북자들은, 언덕 위에 서서, 밤새 자기들이 걸어온 길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눈으로 뒤덮인 하얀 벌판에는, 백지에 점을 찍어 놓은 것처럼 
이들이 걸어온 자국이 또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방향을 잃고 허둥거리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돌렸던 지점이 보였다. 
그쪽을 바라보던 성근선생과 일행은, 감탄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주님,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와~ 죽다 살았네, 천만다행이다!' 

어젯밤에 방향을 바꾸지 않고 조금만 더 전진 했다면 
그들은 곧바로 중국 국경경비 군인들의 초소로 들어갔을 것이다. 

정확히 더 나아가서는 안 되는 지점에서, 허둥거리다가 방향을 바꿨고 
그 방향은 몽골 국경을 향하는 방향이었다. 

마친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어서, 이들을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성근선생은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눈물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쉬지 않고 올라왔다. 
'이렇게 우리를 도와 주셨군요. 주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성근 선생은 소리 없이 펑펑 울면서 
하룻 밤 동안 12명의 일행이, 어둠과 죽음의 눈덮인 길을 헤치면서 
걸어 나온 길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길없는 곳에서는 길이 생명이구나! 
그래서 주님은 내가 길이라고,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구나' 

몽골 국경경비대 군인들은, 성근선생 일행을 
가까운 초애발산으로 이송하였다. 

그곳에서 간단한 조사를 마친 후, 수도 울란바토르로 데려가 
한국 대사관에 넘겨주었다. 

몽골 국경초소는, 성근 선생의 일행에게, 처음부터 계획에 없던 곳이었다. 
오랫동안 무서운 이리 떼에 쫓겨다니던 한 무리의 양떼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자, 무턱대고 경황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더니 
그곳에 배 한척이 준비되어 있는 것처럼, 몽골 국경경비 초소가 있었던 것이다. 

여호와이레의 기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