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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11:24~47 거룩을 애써야 하는 이유

LNCK 2023. 1. 20. 16:51

◈거룩을 애써야 하는 이유        레11:24~47       설교녹취, 정리

우리는 지금 "일상으로 이어지는 거룩"을 위한 정결법에 대해 살펴보고 있죠. 
-회막에서 얻은 그 거룩을  *레1~10장
-우리 일상으로 옮겨오고   *레11~15장

그것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정결법"을 살펴보고 있는데 

우리는 앞서 레11:1~23에서, 정결을 위해서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 것에 대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거룩을 일상의 삶속에서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먹거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부정하다' 규정한 것은 먹지 말라.. 는 명령을 받음으로써 
정결을 유지하라.. 는 하느님의 말씀을 보았죠.

▲오늘 본문 레11:24~47은, 계속 '음식'과 관련되어 있는데 
근데 특별히 "죽은 것과 접촉하지 말라" 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26 '굽이 갈라진 모든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지금 '정한 것' 과 '부정한 것'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음식이 있는데 
그렇게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동물의 주검, 시체에 대해서 

'너희를 부정하게 하는 것들의 죽은 것, 그 주검에 접촉하면 
너희가 부정해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39절은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러니까 부정한 것들의 주검을 만드는 것도 부정하지만, 
하나님이 정하다 clean 하신 것들, 괜찮다 하신 것들도 
죽은 것이면.. 그 주검을 만지면.. 하나님 앞에 부정 unclean 해진다는 거죠. :39

그리고 32절 '이런 것(부정한 짐승) 중 어떤 것의 주검이 
나무 그릇에든지 의복에든지 가죽에든지 자루에든지 무엇에 쓰는 그릇에든지 
떨어지면 부정하여지리니 물에 담그라 저녁까지 부정하다가 정할 것이며'

그게 부정한 짐승이든, 정한 것이든 
죽은 것과 접촉해서는 (손으로 만져서는) 안 된다.. 

죽은 것에 접촉된 모든 물건(의복, 자루, 그릇)도 다 부정 하니까 
죽음과 접촉하지 말라 .. 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죽은 것과 접촉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죽음이란, 생명과 가장 멀리 있는 것이에요. 
그리고 죽음이란, 죄의 결과물이고, 죄의 역사고, 죄의 응집이기 때문이죠.

죽음이란 결국, 생명과 가장 멀리 있는 것으로서 
죄가 역사한 결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죽은 것과는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명령을 받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죽은 것과 접촉하지 말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우리는 죽은 것을 만질 일이 거의 없는데 
이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해, 무슨 의미가 있나?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인 원리와,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이 "죽은 것과 접촉하지 말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주의해야 될 것은, 

그들 가까이에 죽음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가까이에도 늘 죽은 것이 있어요. 

1) 우리의 죽은 옛 자아가, 우리 속에 여전히 옛 육신이 남아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가까이 있었던 
'죽은 것과 접촉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너희 육신은 죽었다.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너희 옛 사람은 죽었다. 

그러므로 그 옛사람과 관련하여 생각하지 말고 
그 옛사람의 감정을 따라 움직이지 말고 
그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육신을 따라 행동하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단 말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죽었단 말이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그 옛사람과 접촉하여 
옛사람처럼 생각하고, 옛사람처럼 느끼며, 옛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거죠.

2) 또 하나는, 이예 사람이 접촉하던 모든 것(물건)들 
그것도 부정하기 때문에... 그것과 접촉하지 말라는 거죠.

옛사람이 사용하던 모든 것.. 그것도 부정하므로
그것을 만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런 말씀과 관련은 없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쓰던 것들은 대부분 태워서 버리는 관습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옛사람, 
죄인으로 살았던 옛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변화된 새 사람이
옛사람이 만지고, 누리고 했던 그것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거예요.
 
옛사람(자기)이 먹던 술담배를, 여전히 먹고 마시고,
옛사람이 하던 부정한 행실도, 그것도 계속 끊지 못하고, 
옛사람이 다니던 그 곳도, 계속 다닌다면...
그거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막에서, 제사를 통해 거룩을 얻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 순간 쉬울지 몰라요. 

그러나 그들의 일상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이 정결법 대로 살아가는 것은, 상당히 주의를 요하며 어려워요.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 지낼 때 만큼이나, 백성들도 주의해야 되는 거에요.

이 음식이 정한 음식인지. 부정한 것인지.. 
땅에 기는 것 중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말 정한 것인지.. 
하늘을 나는 새도, 바다에 있는 물고기도, 곤충들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부합한지/ 안 한지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면서 먹어야 하고, 

또 살다보면 주검이 사람들 가까이 있는데 
우리 주변에 죽은 것이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옮겨야 될 때도 있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매일 일상을 정결하게 살려고 하면 
이것은 매우 주의를 요하는 것이고, 어렵고, 고되고 힘든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거룩(정결)을, 우리 일상에서 유지되도록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이 (규례대로) 힘겹고 어려운 삶을 살아야 되는 우리에게 
'너희가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가?'에 대한 이유로 
레11장을 마치고 있는데요. *11:44~45

▲1. 첫 번째는 "거룩이 하나님 최종 목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도의 거룩이,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흔히 쉽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나는 주의 뜻대로 살기로 원합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막상 그에게 하나님의 뜻이 뭐냐 라고 물으면..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명확합니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신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한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복잡하고, 어렵고, 고되고, 힘든 '정결한 일상'을 살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뒤에
본문 44~45절은, "왜 너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라고 말씀하시죠.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마지막 목적은 무엇이냐면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 
그분의 거룩이 우리에게로 옮겨져서,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구원(칭의) 자체가 최종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애굽에서 끄집어내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게 최종 목적이 아니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유월절 피로 우리를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성을 경험하게 하신 이유도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광야를 지나는 내내 하나님의 속성을 경험하게 하셨다.. 라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기에 남아있는 옛사람들과 계속해서 싸우게 하셨단 말입니다.

승리가 목적이 아니고, 옛사람들과 싸움으로서 
그들을 밀어내서 그 땅을 거룩하게 하고 
거기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가나안 전쟁을 하게 하셨고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날마다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죄를 지을 때마다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마다 화목제를 드리게 하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날마다 하루를시작할 때 아침 저녁으로 번제와 소제로 드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거룩을 또 다시 얻었다는 거죠. 

제사 드리는 게 근본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매일 번제와 소제를 드리게 하시고, 또 일상생활의 '정결법'을 주셨다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얻은 거룩을 
그들이 일상에서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본분의 '정결법'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거룩한 삶, 정결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한 순간에 한 지점(칭의)에 머물면 안 된다 라는 거죠.
우리의 신앙 목적은, 구원(칭의)에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나님을 경험하며 아는 것에 있는 것도 최종 목적이 아니고요. 
그리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이 모든 것들이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해지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의 근본 목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그것을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되어지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가 
우리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시는 것 ... 이것이 하나님의 근본 목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정결법, 
일상의 정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어려운(까다로운) 법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통해서, 
왜 우리가 이 정결한 삶을 일상에서도 계속해서 살아야 되는지.. 
이 고단하고 까다로운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가 하면, 

이것은 "거룩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이기 때문에" 그래요. 
거룩은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기도 해요. 

거룩이라는 것은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또한 이것은 억지로 거룩을 율법적으로 힘겹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면, 점점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어려서는 세수, 양치하는 것이 힘겹지만, 어른 되면 스스로 하는 것과 같죠.

거룩을 위한 정결한 삶은 
전능하신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거룩)해야하는 단순한 의무가 아닙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요?
회막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제사장들과 함께 양을 잡고 소를 잡으면서 
그 순간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정결하게 사는 것, 
한 순간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사는 것,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에요. 

교회에 와서, 주일이라는 하루를 구별해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그 거룩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우리는 6일이라는 시간 
그 주중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정결하게 살아야 되니까 
이것은 더 주의를 요하고, 어려운 것이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의무를 우리가 행할 때에 
이것을 단순한 의무라고 생각하면, 
이것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 것이고,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되는 이유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를 벌 주실거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본문 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 말씀은 일종의 예언적 선포입니다.

'너희는 그렇게 될 것이다' .. 라고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고 말씀하신 거죠.



▲그런데 바로 이 말씀 앞에, 눈 여겨 볼 표현이 이렇게 나옵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45

죄 가운데 죽었던 우리, 
노예 되었던 우리, 
사망권세 안에 죽었고, 자유함 없이 고통 속에 있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건져내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생명을 얻고, 그 자유를 얻은 
그 은혜를 얻은 너희라면 
마땅히 거룩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거죠.

 

그 은혜에 감사해서, 감격해서

보답하는 마음으로라도 거룩하게 산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던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이 사실이고, 
정말 그것이 내게 실제라면,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내가 저 사람들 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는데...' 
그리고 구원받고 난 이후에도, 내가 지금 나은 것이 하나도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도 구원해 주셨고 

 

내 자식도 구원해 주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구원해주신 것들이 
실제로 믿어졌고, 실제로 내가 구원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너무 감사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우리는 의무 때문이 아니라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요. 

애굽에서 부터, 죄와 사망 권세에서부터 
바로의 폭정에서부터 나를 건져내 주신... 

사단과 죄와 어두움과 죽음에서부터 
나를 건져내 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기 때문에 
그 감사의 표현으로 뭐가 드러난다는 거예요?

성도가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만 하셨습니까? 
지금도 대제사장 된 주님이,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살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어제 받은 구원 때문만이 아니고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대제사장의 사역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세요. 
그리고 그분이, 마치 중력이 우리를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죄와 사망으로 다시 나아가지 못하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고 계시는 
그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축복을 주고 계시기 때문이고
 그 분이 보내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계속 생명을 주기 때문이에요.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아침에 여기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육적인 생명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생명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이 너무 감사한 것 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게 그 은혜가.. 실제로 내게 믿어진다면 

당연히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솟아날 것이고 
그 감사와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으로 표현된다는 거예요?

오늘 하루를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 사람과 감사는 무엇으로 표현되는 거예요? 
돈을 바치는 게 아니에요. 
오늘 하루를 정결하게 사는 것,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표현되어지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다시 한번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아침에 해가 뜰 즈음 대제사장은 번제를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도 하루를 거룩하게 살아야 됩니다. 
이미 유월절 피로 구원받은 그들을, 
오늘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회막에서 매일 또다시 번제 와 소제를 드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하루가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 수 있도록 헌신하는 겁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도, 
잠자는 무의식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또 저녁에 번제와 소제를 드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을 헌신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번제물 되고 소제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십자가를 붙들고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저녁으로 번제와 소제를 드리며 
그 날 하루의 거룩함을 얻었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오늘 정결함을 얻었습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라는 것을 헌신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하루를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신 정결법 대로.. 

부정한 것을 먹지 않고, 죽은 것에 접촉하지 않음으로서 
거룩하고 정결한 살았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얻은 이 거룩이 
내 삶의 일상 매분 매초에 이어지도록,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먹는 것,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 무방비로 풀어놓지 마십시오. 
내 속에 들어오는 생각,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이 모든 것들이 정한 것인지/ 부정한 것인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인지/ 혐오스러운 것인지 아닌지 
구별하며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고 

지금 내가 주검과 접촉한 것은 아닌지?
구원 받기 전 나의 옛 사람, 내 옛 자아가 살았고 생각하고 했던 것에
내가 다시 접촉한 것은 아닌지를 늘 생각하면서 

정결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