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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12장, 출산한 여인에 관한 정결법

LNCK 2023. 1. 23. 04:40


◈레12장, 출산한 여인에 관한 정결법                          설교 녹취  

◑서론

레11장부터는, 일상에서 거룩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가 지켜야 되는, 일상의 삶 가운데 주신 <정결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레11장에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음식과 관련된 정결법"이 나오고요.

이어서 본문 레12장은 '출산한 여인에 관한 정결법' 

레13장은 '피부에 생긴 어떤 악성 피부병(나병)과 관련된 정결법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음식과 관련된 정결법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이 
'외부에 있다' 라고 말해요.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우리가 부정해 질 수 있다.. 라고 
음식의 정결법을 통해서 배웁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레11장의 '출산한 여인의 정결법' 이라든지 
12장의 '나병에 관한 정결법'은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이 내 안에 있다. 내부적인 요인에 있다.. 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래서 내부적 두 정결법, 
-출산과 관련된 정결법과 
-나병(피부병)과 관련된 정결법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깨달아야 될 영적인 교훈 2가지를 주십니다.

◑1. 하나님은 이 정결법을 통해서 
"우리가 원죄적 죄인 임을 철저히 깨닫게 하십니다" 

12:2절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지금 여인이 출산을 한 상황입니다.
이미 경험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여인이 출산을 할 때는
부부가 연합한 그 사랑의 결과가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놀라운 생명이 발현되는 숭고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여인이 출산을 하는 그 순간에 보면 
숭고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진지한 순간이 되어지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순간은, 또한 어떤 순간입니까? 
2절 '여인이 임신하여 아이를 출산하는 그 순간, 그는 부정해진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부정하다' 하실 때는, 죄와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눈에 보시기에 혐오스럽고, 하나님의 눈에 보기에 좋지 않을때도 
'부정하다' 하십니다. 

그래서 산모의 몸에서 피가 흐르는 그 순간을, 하나님은 '부정하다' 얘기하시죠.
왜요?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데, 그 생명이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정하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숭고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출산 순간은 
동시에 죽음의 고통이 있고, 죽음이 역사하고 있는... 
생명이 빠져나가는 순간이, 아주 처참한 순간이기도 하다.. 라는 것이죠. 

이렇게 아름답고 숭고하고 거룩한 순간이 
또한 죽음을 고통 가운데서, 비참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출산은 결국 '우리가 철저하게 죄인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인이 지금 출산을 하고 있어요.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여인이 출산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지금도 출산하다가 죽는 분들도 가끔 있죠. 
과거 그 당시에 출산은, 생명을 바꾸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아니 이렇게 복된 출산이,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셔서 그대로 된 것인고,
아름다운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이땅으로 오는 순간이기도 한데 

왜 여인은 죽음을 경험해야 되고,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아야 되는가요? 
이런 의문을 생기는 거죠.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 출산하고 있는 이 여인의 입장에서는 
왜 죽음과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창3:16절에 바로 그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죄에 대한 책임, 형벌로써
'출산할 때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다'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의 보편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내가 죄인이냐?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에, 왜 내가 죄인 되어야 되느냐? 나는 죄인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출산의 순간만큼, 결국 우리가 아담과 하와와 똑같은 
하나님 앞에서 죄의 책임을 지고 있다.. 라는 것을 경험하는 순간은 없습니다. 
(하와와 똑같은 고통을 받으니까요)

여기서 절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출산하는 이 순간의 이 고통이 
아담과 하와에게 내리셨던 형벌과 똑같다 라는 것을 보면서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나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고, 아담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아담이 죄를 지어 하나님 앞에 가지고 있는, 그의 죄에 대한 책임을 
나도 고스란히 유전 받아 가지고 있는, 
그 원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다.. 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죠.

▲이어지는 레13장은 나병(악성 피부병)에 대한 정결법이 나오는데,

13: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피부에 뾰루지가 생기거나 색점이 생기거나 뭔가 변화가 생겼어요.
성경은 이걸 통칭해서 '나병'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근데 나병은 뭘 상징합니까? 
나병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의 상태를 상징해 주는 병이죠.
이런 점에서 출산하는 여인과 공통적이죠.

나병은 '그 속에 부패함이 있어서 병에 걸린다'.. 라는 것과 
'부정하게 여겨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격리가 되므로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은, 실제적 죄에 대한 결과가 아니고 
'사람은 원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질병입니다. 

왜냐면 나병은, 대개의 경우 외부적인 어떤 접촉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부정한 음식을 먹었거나, 부정한 것이 내게 왔던 것이 아니고 

가만히 살고 있는데, 내 속에서 갑자기 부패함이 피부로 발현된 것입니다.
그래서 피부에 나병이 돋아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원초적으로 부패성을 내부에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병인 거죠.

거기다가 나병은 피부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하거든요. 
근데 이게 어떻게 돼요? 그 사람의 피부에서 점점 퍼져요. 
인간의 죄와 닮았죠. 

한 지점에서, 처음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거기서부터 나병(죄)가 퍼지기 시작하죠. 

근데 자기 안에서만 퍼지는 게 아니라,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옮기기 때문에 
나환자는 격리시키는 거죠.

죄도 마찬가지죠. 죄는 내 속에서 퍼졌나가요. 
그래서 나의 몸 나의 모든 부분에서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거기에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리고 세상에 점점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병은, 내 안에 부패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병입니다.

하와가 첫 출산할 때, 아담이 아마 식겁 했을 겁니다. 
하와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출산 할 때 '아~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우리가 그 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구나!'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만 느꼈을까요? 
그들 자신 속에 '내 안에 죄가 들어왔다'는 것도 피부로 느꼈을 것입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던 그 하와를 보면서 
'당신이 내게 주신 이 여인 때문에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그 속에 실제적으로 부패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을 아담이 경험 하고 나서 

아이를 출산하고 
'나는 하나님께 죄를 가지고 있는 존재야, 
나와 화와는 죄책을 가지고 있는 존재야' 이것만 경험한 아니라 

가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합니까? 
결국 아벨을 돌로 쳐 죽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그 앞에서! 

그래서 이 부패성, 내 안에 있었던 보편성이 
가인에게 흘러감을 보게 되고, 

이 부패성이 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인에게도 있구나.. 라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이것 때문에 벌을 받아서 멀리 쫓겨나잖아요. 
근데 그 때에 쫓겨난 게 두려워 '하나님, 벌이 너무 심합니다' 라고 했더니 

하나님이 '너를 아무도 못 건드리게 할거야, 내가 네게 표를 줄 거야!
 만약에 가인을 건드리는 사람은 벌을 7배 더할거야' 말씀하셨죠.

근데 시간이 좀 더 지났습니다. 가인의 후손이 생겼죠.
그 중에 라멕이 있었습니다.

창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고, '내가 지금 열 받았다' 이 말입니다. 
상처받았고, 짜증났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나의 작은 상처로 말미암아 라멕이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것처럼,  이제는 더 가벼운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근데 거기에 대해서 한 마디 회개도 없이 뭐라고 말합니까?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7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77배이리로다' :24

아벨을 죽였던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죄인이지만 너를 건드리면 벌 받을 거야' 

그런데 회개 한 마디 없는 라멕이, 
'가인을 건드리면 7배지? 나를 건드려봐, 벌이 77배가 될거야!' 라고 말하면서 
그의 교만함과 그의 죄악됨이 훨씬 더 커져 있는 것을 보게 되죠.


▲중간 정리하면,   
하나님은, 먼저 출산과 관련된 정결법 속에서 

우리가 출산하는 순간 
'나는 내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있었던 그 죄에 대한 책임과 
똑같은 죄책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며 

동시에 아담과 하와 안에 역사했고, 그 후손들 안에 역사했던 부패성이
내게도 고스란히 있어서 
나는 상황과 조건만 되면 언제든지 이 부패성이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속에서 발현될 수 있는 

마치 나병환자와 같은, 
지금 실제로 죄의 오염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라는 거죠.

죄는 두 국면을 가집니다. 
-죄는 객관적으로 책임을 가지고 있고 
죄는 실제로 우리 안에서 역사는 오염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출산, 나병) 두 정결법을 통해서 하나님은 
'너는 죄책을 가진 죄인이요. 
너 안에는 언제든지 상황과 조건만 되면 부패성이 드러나고 
오염이 드러나는 죄인이다..' 라는 것을 철저하게 깨닫게 하십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신 것은 정결법이에요. 
그래서 두 번째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임을 확실하게 이 정결법을 지나면서 깨닫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결법을 살아야 되는데 
이 정결법을 통해서 
내가 확실하게 내가 죄인이란 것도 깨달아야 되지만, 

그런데 이 정결법을 우리가 실행함으로써 
내가 죄인인데, '내가 용서를 받았구나' 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는.. 그렇게 깨닫게 하시는 것이 
바로 이 정결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출산하는 그 숭고하고 아름다운 순간에 
피를 보며 죽음을 봐야 되는 그때에 

내 속에서 계속 부패함 드러나서 
더럽고 분냄과 악한 것들이 내 속에서 일어날 때마다
'아~ 내 안에는 원죄가 있고, 오염과 부패성 있는 죄인이구나' 깨닫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결법을 주셨어요. 
그래서 이 정결법을 통해서, 그들이 뭘 깨닫게 되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용서를 받았고,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 안에 있구나' 
라는 것을 이 정결법을 통해서 깨닫게 된다는 거죠. 

왜 우리가 구원받았고,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레12장의 결국 전체 내용을 통해서 "회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출산한 여인에게, 하나님이 회복을 주시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인이 남자아이를 낳으면, 7일동안 부정 unclean 합니다. 레12:2절 
여기서 '부정'이라는 것은
고통이 더해 졌고, 형벌이 더해졌고, 피를 흘리기 때문에 
월경할때 처럼 부정하다는 거에요. 

그런데 7일 동안 부정하고 그 이후에 
여덟째 날에는 남자아이는 할례를 합니다. 
그 여인은 33일 더 부정합니다.

그래서 여인은 도합 40일 동안 
부정한 상태에 있고, 

그래서 그때 동안에는 성물(제사 드리는 제물)도 만지면 안 되고 
또 성전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그 때는 아예 철저하게 격리되어서 40일을 지나야 됩니다. 

그런데  딸을 낳았어요. :5
그러면 14일동안 부정하고, 
66일 동안 더 지내면
전체 80일을 정결케 되는 기간을 가집니다. 아들의 두 배죠.

그래서 왜 하나님은 부정의 기간을 다르게 정하셨을까요? 

1) 어떤 사람은 의학적인 이유를 찾습니다.
딸을 출산할 때는 훨씬 분비물과 피가 많이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라고 보죠.

2) 또 어떤 사람들은, 여자가 유혹을 받아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래서 여아를 출산할 때에, 좀 더 긴 시간동안 정결한 기간을 가진다..

3) 또 어떤 사람은, 남자를 낳으면 8일째 할례를 행하기 때문에 
여아는 할례를 받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정결한 시간을 더 가지는 것이다. 

4) 또 어떤 사람들은, 
여인이 여아를 출산하면, 여자가 두 명이 되고,
그러면 잠정적으로 또 나중에 월경도 해야 되고 출산도 해야 되기에
즉 피를 흘려야 되기 때문에, 두 배로 정결하게 해야 될 것이다.. 라고 보죠.

어느 것도 만족할만한 이유를 못 찾겠어요. 

남아를 낳을 때는 40일, 
여아를 낳을 대는 80일,
이렇게 산모가 정결케 되는 시간을 주신 이유는,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회복의 시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산혈이 깨끗해진다.. 는 것은
그가 흘렸던 피, 죽 생명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거거든요.

어쨌든 이걸 통해서 하나님은 '그를 부정하다' 라고 말하지만 
'출산이 죄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을 정해 주셔서, 그 여인을 보호해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거죠.
여기 "보호, 회복"에 초점이, 중점이 있는 것입니다. 

산모의 육신의 생명, 영적 생명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시는 거죠.

이어지는 6절부터 보시면 뭘 회복시켜 주시는가 하면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셨습니다.

12:6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그러니까 속제라고 하지만,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를 씻는다고 말하지 않고 
'산혈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씀하니까, 

이것은 산모 자신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의 제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여기서 속죄제를 드리면 '죄가 깨끗게 될 것'이 아니라
'산혈이 깨끗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이 정결법 규례를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출산의 순간에 
-내가 하나님 앞에 죄책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지만 
-그러나 정결법 이어지는 40일, 혹은 80일의 기간이 지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완전히 회복"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뭘 근거로 해서 회복되냐는 거예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은, 
나와 상관없는 것 같았던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에 의해서 
내가 하나님 앞에 원죄를 갖게 되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가 용서를 받고, 지금 회복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냐면 

첫째 사람 아담이, 하나님 앞에 하와와 함께 지은 죄 때문에 
내가 죄인되었던 것처럼 

둘째 사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종하심으로써
우리가 용서를 받았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 용서를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이런 복음의 과정을, 이 정결규례를 통해 보여주죠)

우리가 그 회복을 통해서 생명을 다시 얻게 됨으로써 

-내가 시간이 지나서 그냥 몸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내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다시 회복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경험하는 겁니다.
'내가 용서받은 죄인이구나!' 

이 여인의 출산의 정결법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은 단번에 내 죄를 용서하셨구나' 
그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하나님 앞에 다시 회복시켜 주심으로써 
'아~ 나는 용서받은 존재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하나님께, 죄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또 우리 속에는 죄 자체, 부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 
여전히 죄를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게 되냐면, 다음 장인 13장(나병 정결법)을 통해서는
"제사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13:9~10 '사람에게 나병이 들었거든 그를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내가 나병에 걸렸어요. 뭐 접촉한 것도 없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그런데 상황과 조건이 되니까, 
갑자기 내 속에서 부패성을 확 올라오면서 

한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퍼지시 시작합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죄가 내 속에서 막 올라와요. 
분노. 살인, 사기, 살기 거짓, 추악, 분노, 음란... 이런 게 막 올라온 단말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막 표현되기 시작해요. 
'아 내가 죄인이구나!' 깨닫게 되죠.

근데 그 순간에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제사장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삽니다.

그럼 내 앞에 누가 있는 것입니까? 제사장이 있는 것입니다. 

레13장 한 장에만 '제사장'이라는 단어가 56번 나옵니다. 아주 많이 나오죠.
왜 제사장을 그들 앞에 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여전히 부패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고, 용서 하셨다는 것은
'네가 부패성이 드러날 때마다 제사장 앞으로 찾아가라'는 거죠. 

그러면 제사장은, (나병을) 진찰 합니다. 자세히 살펴 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조치합니다. 

죄가 내 삶에서 발현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제사장 앞에 가게 하십니다. 

그랬더니 그 제사장이 자세히 그 나병을 관찰해요. 
그리고 나서 조치를 취하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내게서 퍼지지 않도록, 
그리고 이 균(죄)이 공동체에 퍼지지 않도록 격리시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아지면, 다시 사회로, 일상으로 복귀시켜 주는 것이죠. 

그래서 제사장을 통하여 이 부패성이 관리되고, 통제되게 하심을 통해서 
우리는 죄가 용서받았고, '나는 용서받은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마8장에 보면, 그 구약의 제사장은 
살피고, 조치하고, 기다리고 기도해 주는 것이 다 였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진정한 대제사장은 
마8:2~3 '한 나병환자가 나와서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우리의 대제사장이 오셨을 때 
우리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 예수 앞으로 갔어요. 
'내게 나병이 발병했습니다. 내 속에서 부패성이 발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더럽고 추악해졌으며, 
내가 지금 썩어 문드러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그 분이 
말보다 먼저 행동으로 손을 대시면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됩니까? 
이 마8장에 나온 그 사람이 경험한 그대로 
우리도 대제사장 앞으로 가서 회개합니다.

'주여 내 안에 부패성이 드러나서 
내가 지금이 나병으로 내 몸과 내 삶의 주변을 버렵혔습니다. 
죽음이 내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할 때 

우리의 대제사장이 어떻게 합니까? 
자세히 살피고, 조치하고, 치유함을 통해서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그래서 결국 이 두 번째 정결법인 산모의 정결법은,   12장
첫 번째는 음식에 관한 정결법이었고요   11장
세 번째는 나병에 관한 정결법을 통해서    13장

하나님은 이제 일상에서 거룩을 살아야 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담과 하와와 똑같은 죄책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었고 
그리고 우리는 아담과 하와 속에서 일어났던 그 죄악의 부패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죄인이지만 
그러나 이 정결법을 통해서 우리가 용서를 받는다는 거죠. 

그래서 그분이 단번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죄책은 씻어주셨고 
그리고 나의 대제사장께서 (다음 회 13장) 
나의 죄를 위하여 나를 용서해 주셨던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나의 죄책이 용서 받았고 

이제 나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 나를 관리하시고 통제하시고 돌봄심으로 인해서 
이 죄가 깨끗해지는 역사를 계속해서 주심으로써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받는다) 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안에서 너는 의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참 듣기 부끄러운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사람들 보다 나은 것 별로 없고 
교회 20년 30년 40년을 자녀도 변화를 그렇게 보여주지 못한 우리를 향해
주시는 말씀이기에, 참 부끄럽게 받아야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다시 들으면 '의인이다' 라는 것은 
우리 속에 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서 
하나님께 깨끗하다 라고 인정 받은 사람이다.. 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정결법을 통해) 용서받은 죄인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 죄책을 단번에 용서받은 죄인이고 
여전히 우리 안에는 부패성과 오염이 역사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나의 부패성이 발현 할 때마다 
오셔서 살피시고 고치시는 그러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를 용서하셨다 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단번에 용서받은 죄인인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날마다 우리를 씻어주시는 그 분 앞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래서 '내가 용서받은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