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14장, 나병 환자의 회복 규례 레14장 인터넷 설교 정리
◑나병환자가 회복될 때의 규례 레14:1~20
직전 레13장, '나병 환자의 정결법'에서는
내 안에 있는 부패성이 발현해서 부정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내가 취해야할 행동에 대하여 살펴보았어요.
이 때는, 옷을 찢고 슬퍼하고, 자신을 부정하다고 외치며,
제사장을 만나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죄)의 결과로 찾아온 그 단절, 즉 진영 밖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려야 했죠.
이어지는 본문 레14장입니다.
3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나았으면'
오늘 본문은 나병환자를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셨을 때
그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회복을 받은 자, 치유함을 받은 자가 취해야 될 행동이 무엇인지를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정결예식을 행하라' 입니다.
그런데 예식은 매우 복잡합니다.
본문을 그냥 읽어봐도 매우 복잡하고 매우 정교합니다.
마치 제사장을 세울 때처럼 예식이 복잡하고,
그리고 하루 이틀만에 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긴 기간 동안 예식을 행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이미 눈으로 봐도 그렇고, 제사장이 진단해도 그가 나았어요.
그런데 왜 이런 복잡하고 장황하고 긴 시간을 들여서
정결예식을, 하나님을 하게 하실까요?
그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병이 나은 나환자의, 정결 예식에 담긴 영적인 교훈
▲1. 먼저는 이 정결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각을 바꾸십니다.
14:4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5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새를 잡아, 그 피를 물에 흘려 보냅니다.
'피'를 흘리는 것은, 일종의 속죄 의식이죠. 이것이 준비되면
백향목, 홍색 실, 우슬초를 함께 가져와서, 그 새의 핏물에 찍습니다. dip :6
6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는 모두 붉은 색입니다.
백향목은 아주 진한 향기를 가지고 있고, 잘 썩지 않는 나무죠.
부패성과 반대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홍색실은, 피를 상징하고, 생명을 상징하고, 속죄를 상징하기도 해요.
우슬초 라는 풀의 특징은, 뿌리를 내리면 바위 속까지 침투합니다.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친다' 라는 뜻이죠.
이것이 상징하는 것은 뭐죠?
부패하지 않음, 속죄와 생명, 깊숙한 곳에 침투하는 능력.
참고로, 6절을, 개역은 '피를 찍는다'고 했는데,
다른 대부분 성경들은 '피에 찍는다'고 했는데, 이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백향목(조각), 홍색실, 우슬초를 아마 한 손에 쥐었겠죠.
그걸 새의 피에 찍어서
고침 받은 나병환자에게 7번 뿌리며 '정하다'라는 선포합니다. :7
7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선포)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 이것은 정결예식입니다.
그 다음에는, 살아있는 새 한 마리가 남아있죠.
그 새를 들판에 놓아줍니다.
한 마리 새는, 그의 죄로 인해 죽고 피를 흘렸지만
한 마리 새는, 이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되살아난 구원을 의미하죠.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이유는,
'네가 나았다고, 스스로 각인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냥 제사장이 '나았다'고 한 마디 선포해도 되지만,
그렇게 할 때,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인간의 연약함이 있죠.
그렇지만 이런 의미를 지닌 의식을 길게 행함으로써,
본인 스스로 '내가 고침 받았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되는 거죠.
▲2. 이 정결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각을 바꾸십니다.
8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진영 안으로 들어올 때, 자기 장막(집) 밖에 또 7일을 머물라 하십니다.
사실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가 전염성을 가진 질병에서 나았더라고
바로 맞이하기에는, 좀 힘들 수도 있죠.
그러니까 7일 동안 장막(집) 밖에 있으면서
그의 가족이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7일 동안,
자기가 깨끗해진 것을 확인시켜 주는 거예요.
9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이거 지금 진영 밖에서, 진영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했던 행동이에요.
그런데 7일째 또 다시 하나님께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다시 7일째에 씻고, 빨고, 수염과 눈썹을 밀므로써
그를 받아들여야 되는 타인들의 시각 속에
'아 저 사람이 깨끗해졌고, 이제 우리의 가족으로 다시 들어와도 되겠구나'
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3. 나를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바꾸십니다.
정결예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또 8일째로 계속 이어집니다.
10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이제 하나님은 속건제를 드리게 하십니다.
12 '어린 숫양 한 마리를 가져다가 기름 한 록과 아울러 속건제로 드리되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속건제는.. 빚을 갚는다는 개념입니다.
하나님게 뭔가 빚(죄)을 갚는다는 것인데,
그럼 하나님은 그를 회복시킬 때, 왜 속건제를 행하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죄를 범한 때, 사실은 하나님의 명예와 하나님의 거룩을 침범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큰 빚을 지게 됩니다. (나병이 죄의 결과로 생긴 것을 전제)
그래서 가장 먼저 하나님께 진 빚을, 속건제로 갚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범죄했을 때, 나단이 말하기를 삼하12:14에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다윗의 범죄가, 자기 한 사람의 불명예와 실추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명예와 위신 실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격적 빚을 진 겁니다.
나병환자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하나님께 빚을 갚는 속건제부터 드리는 거죠.
15 '제사장은 또 그 한 록의 기름을 취하여 자기 왼쪽 손바닥에 따르고
16 오른쪽 손가락으로 왼쪽 손의 기름을 찍어 그 손가락으로 그것을
여호와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요'
제사장은 또한 "기름 한 록"(some of the log of oil,KJV)을 취하여
나병환자의 신체 부위에 다시 발라야만 했죠.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기름은
제사장 위임식때 바르던 거룩한 관유(灌油)와는 다른 것으로
그 나병환자가 제물로 하나님께 바친 기름입니다.
이 기름은 하나님 앞에 7번 뿌려 성결케 한 후 사용했는데,
곧 문둥병자를 성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17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 곧 속건제물의 피 위에 바를 것이며
18 아직도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바르고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하고'
여기서 '기름'은 성령의 사역을 상징하고
'피'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피 위에 기름을 바르는 것은
성령의 은총과 성령의 모든 역사가 속죄하는 피의 능력에 근거하여 이루어진다
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속죄와 회개의 역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가 없죠.
'남은 기름은...머리에 바르고'
머리는 한 인간 전체를 대표하거나 혹은 그 인격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사장이 치유된 나병환자의 머리에 기름을 바른 것은,
그 사람의 몸 전체와 온 인격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며,
곧 그가 하나님께 헌신하기에 합당한 자가 될 것을 의미하죠.
이어지는 19절부터 속죄제가 이어집니다.
속죄제는 죄를 씻는 제사죠.
19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20절에는 번제와 소제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빚을 갚고, 죄사함을 받은 후에, 헌신과 봉헌을 결단하는 제사죠.
20 '또 제사장은 속죄제를 드려 그 부정함으로 말미암아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 후에 번제물을 잡을 것이요'
그가 나병에서 완전히 완치되었고,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회복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여덟째 날에,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속건제와 속죄제와 번제, 소제를 드리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 이전 처럼,
마치 죄를 짓지 않았을 때 처럼, 그를 정결하게 바라보신다... 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상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부패하고 부정하게 되었을 때, 나병같은 질병으로 나를 상하게 하세요.
진영 밖으로 내쫓아 주시고, 거기에서 회개의 시간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하게 하신 그를 낫게 하시는,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교회 지도자가, 큰 죄를 저질러서,
사역에서 배제되었고,
그는 하나님과의 단절과, 구원의 기쁨 상실도 경험했죠.
자기 배우자와 자기 자녀까지 큰 상처를 입게 되었죠.
이제 그가 홀로 남겨져서 거기에서 진심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자기는 이제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이 용서와 회복시켜 주심도 믿겠는데,
근데 하나님께서 꽤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일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거죠. 즉 '하나님이 나를 정말 회복시켜 주셨고, 나를 나의 회개를 받아주셨다'
는 것을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꽤 긴 시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용납하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오늘 이 본문처럼, 그 새가 자유롭게 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듯이
자기가 사람들 앞에 '내가 깨끗해졌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들이
너무 길고 힘들었다는 거죠.
그가 깨끗해졌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시더라는 거죠.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다시 자기를, 그 사역으로 부르신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복은, 자신이 하나님께 용서받고 깨끗게 된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깨끗게 된 자로 인정을 받고
하나님앞에서도 깨끗게 된 자로 인정을 받는 것이.. 진정한 회복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복잡한 '회복 규례'를 따르지는 않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여덟째 날의 회복 레14:11~32
하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단순히 그가 나병으로부터 몸이 낫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8일 동안의 정결예식을 통해서, 온전한 회복을 한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본문 14:21~32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부패했다가, 다시 회복을 받는 자의 회복이
진짜 무엇인지... 그 진정한 회복에 대해서 살펴보게 됩니다.
▲1. 그가 회복되었다.. 는 것은, 다시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죄를 지어, 내가 부패하게 되면, 그 결과는 단절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절은, 자기의 삶에서의 단절,
일상에서부터 단절이에요.
그래서 그는 진영(집) 밖으로 쫓겨나게 되죠.
아담과 하와가 죄를 보냈을 때도,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쫓겨나고
에덴동산에서도 쫓겨나가는 거죠.
단절 속에서 쫓겨나가는 것이
죄의 부패성이 우리에게 가지고 오는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결예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회복, 즉 다시 하나님께로 부르십니다.
14:11 '정결하게 하는 제사장은 정결함을 받을 자와 그 물건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세우고)'
앞서는 3절에, 제사장이 진영 밖으로 나가서,
들판에서 정결예식을 치렀다면,
11절부터는, 진영 안에서 8일째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 물건'은 치유된 문둥병자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바친 희생 제물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11절에서 중요한 것은, 나병환자가 여호와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동안 진영 밖에 있다가 진영 안에 들어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임재 밖에 있다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회복인 것입니다.
눅17에 보면 10명의 나병환자가 나옵니다. 그들은 진영 밖에 있었죠.
그런데 그 중에 9명은 그대로 있었고,
단 1명의 다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나머지 9명은 자기 집으로, 즉 진영 안으로 들어갔죠.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하나님(예수님) 앞에 서지 않으면
진정한 회복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한 1명만, 예수님 앞에 나아와, 진정한 회복을 얻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서
회복이란.. 너희가 일상만 회복하는 게 아니라,
결국 쫓겨났던 나의 임재 앞에 다시 서게 되는 것이다.. 를 가르쳐 주십니다.
▲2. 그가 회복되었다.. 는 것은, 다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
14:23 '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그는 나병이 나았다는 판정을 받은 후에
진영 안으로 들어와서 7일을 자기 장막 밖에서 지내고
8일째 되는 날에, 속건제, 속죄제, 번제와 소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제물에 꽤 많은 물질이 투자되어야 되는 거죠.
양을 세 마리 잡아야 되고, 기름도 한 록이 있어야 되고, 소제물도 있어야 했죠.
그럼 가난한 사람은요?
오늘 본문 새 두 마리도 괜찮다는 거죠. :30~31
하나님은 물질의 크기가 아니고, 마음을 받으시는 거에요.
그런데 이 8일째 제사에서 가장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제사가 간단한 제사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 부정했던 자, 나병으로 완전히 부정해져서
진영 밖으로 쫓겨나갔던 자를 지금 회복시키는 게 정말 중요한데
그 속죄함을 받고 정결함을 받은 나병환자를
우리가 이전에 살펴봤던 제사장 위임식과 비슷하게,
하나님이 그를 다루시는 것을 봅니다.
즉 피와 기름을 *제물
오른쪽 귓부리, 오른 손가락, 오른 엄지 발가락에 피를 발라라.. 14, 25
이건 제사장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방식과 같거든요.
그래서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 하나님이
부패하여 부정해졌던 그를,
거룩한 대제사장 제사장을 대하듯이, 그를 대하고 있다.. 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얼마나 그를 지극하게, 거룩하게 대하고 있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25절을 보면, 이 행동은 하나님이 거룩한 대제사장을 세우실 때에
했던 것인데, 이걸 지금 부정했다가 깨끗함을 입은 그 사람에게 하고 있어요.
이건 뭐 하는 것입니까? 피로 정결하게 씻고, 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오직 피를 주신 하나님께 특별히 자기 자신을 헌신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주의 말씀에 헌신합니다.
내 귀를 드려서 주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세상에 소리도, 사단의 소리도, 내 속에 있는 부패한 마음의 소리도..
그 어떤 소리도 듣지 않고, 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나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거룩하게 구별해서, 그 피를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면서
하나님께 헌신을 의미했습니다.
오른 엄지손가락이 피를 바름으로써
나는 오직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만 일합니다.
오른 엄지발가락에 피를 바름으로써
내 발은 오직 주의 길만 가겠습니다...
그렇게 구별해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다시 드리는 것입니다.
28절에는 "기름"을 똑같이 *25절에는 '피'
귓부리, 오른 손가락, 오른 발가락에 바르는데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죠.
피를 발랐던 그 위에 기름을 다시 바르는 거죠. :28
나병에서 나음 받은 그가,
이제는 하나님의 기름, 즉 성령의 통치 아래 있도록,
그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가기 성령의 통치에 순종해서 살겠다는 거죠.
29절 '또 그 손에 남은 기름은 제사장이 그 정결함을 받는 자의 머리에 발라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며'
이제는 자기가 머리 되어 살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살겠다는 헌신을 의미하는 거죠,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회복이라는 거죠.
그러므로 회복이란, 부패성을 제거하는 것에서, 몸이 낫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서게 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 마치 제사장이 봉헌하듯이 (전부를 드리듯이)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병이 낫는 것만 아니라요.
◑집에 발생한 나병 레14:33~57
레위기 11~15장까지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서 거룩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정결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11장은 음식물 정결법,
12장은 출산한 여인의 정결법
13~14장은 나병의 정결법인데,
본문은 나병이, 사람이 아니라, 옷이나 가죽 등 물건에 돋을 때의 정결법입니다.
14:34b~35 '너희 기업의 땅에서 어떤 집에 나병 색점을 발생하게 하거든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가서 말하여 알리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
이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영적인 의미를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우리의 땅과 집에 있는 부패성을 인식해야 된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주신 약속의 땅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기업으로 주신 땅 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세워진 집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부패성이 발현되고 있고,
거기에 부패성이 있다.. 라는 것을 인식해야 된다...라고 것입니다.
34절에,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에'
그냥 땅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 입니다.
그 집은 하나님의 백성들, 거룩한 성도가 살고 있는 집이에요.
그런데 거기에도 나병, 부패성이 발현되고 역사할 수 있다.. 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이렇게 그 땅에 있는 집과, 물건의 부패성의 발현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전체가
부패성의 노출되어 있고, 부패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가정... 거기에도 부패성이 발현될 수 있다는 거죠.
나아가 교회의 제도, 문화 등에도.. 나병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중심에 계셨고
그리고 사도들로 부르심 받은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그 공동체에도
가룟유다 라는 부패성이 발현되었죠.
사도들이 모여서 사역하던 그 초대교회에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같은 부패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안에서부터 처음 이단들이 생겨납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자, 유대주의자, 영지주의자들이 일어났어요.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도 부패성이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을
늘 인식하고 살아야 된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의 땅과 집에 있는 부패성을 제거하라
39~42 '이레 만에 또 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벽에 퍼졌으면
그는 명령하여 색점 있는 돌을 빼내어 성 밖 부정한 곳에 버리게 하고,
또 집 안 사방을 긁게 하고, 그 긁은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에 쏟아버리게 할
것이요, 그들은 다른 돌로 그 돌을 대신하며 다른 흙으로 집에 바를지니라'
그곳에 색점(부패성, 나병균, 죄)이 발견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완전할 수 있겠어?..' 하고 방임하지 말고,
제사장과 함께 어떻게 하라는 거에요?
돌을 빼내고, 그리고 흙을 긁어내고, 버리고,
다른 돌과 흙을 대신 채우라는 것입니다. 부패성을 제거하라는 것이죠.
화목을 생각하면서 그걸 외면하기 쉬운데,
외면하지 말고 적극 대응하라는 것입니다.
44~46 '제사장은 또 가서 살펴볼 것이요 그 색점이 만일 집에 퍼졌으면
악성 나병인즉 이는 부정하니 그는 그 집을 헐고
돌과 그 재목과 그 집의 모든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으로 내어 갈 것이며
그 집을 폐쇄한 날 동안에 들어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
어떤 손해가 있더라도, 그것을 완전히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부패성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그대로 놔 두면.. 자꾸 더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니까요.
우리는 교회안에 있는 부패성을 덮어두기 쉬운데,
근데 하나님은 그걸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라는 거죠.
거기 있는 것들을 다 버리려면 아깝잖아요.
그렇지만 그걸 다 무너뜨리고서라도,
새롭게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부패성을 제거하십시오
근데 중요한 것은 35절부터 자세히 보면,
이 부패성이 발현된 것을 발견한 사람이 뭐부터 해야 돼요?
제사장에게 가서 말하여 알리라고 했습니다.
35 '그 집 주인은 제사장에게 가서 말하여 알리기를
무슨 색점이 집에 생겼다 할 것이요'
그저 우리가 교회나 사회(하나님 나라로서의 사회)를 변혁해보겠다고 뛰어들면
그저 사회 운동가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저 교회를 바꾸겠다고 자기 자신이 마구잡이로 달려들면
오히려 교회를 어지럽히는 한 부류밖에 되지 않는 거예요.
가장 먼저 뭐부터 하라는 거에요? '제사장에게 알리라'는 거죠.
기도가 가장 우선인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제사장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인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41절 '또 집 안 사방을 긁게 하고 그 긁은 흙을
성 밖 부정한 곳에 쏟아버리게 할 것이요'
주어가 누굽니까? 누가 벽을 긁고, 누가 쏟아버립니까?
집 주인입니까, 그걸 발견한 사람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다 함께 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부패성이 발현된 것을 보았을 때에
가장 먼저 우리는 제사장에게 그것을 알리며
제사장의 관점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제사장과 함께 그 일을 해야 되고,
제사장이 그것을 긁어내시는 주체가 되시고
쏟아버리는 그 일에 우리가 제사장을 도와 함께 동역하는 자가 되는 거죠.
▶천국에서 누가 더 큰 상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여수 애양원교회를 섬기시다 천국가신 양재평 장로님 계십니다.
이 장로님은 15세에 한센병(나병)에 결렸습니다.
그 후 한센병에 걸린 부인과 결혼해서 이제 살게 되었는데 26세에 실명까지
합니다. 부모님은 6.25전쟁 때 공산군에게 학살당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양장로님은 여수 애양원교회(지금은 성산교회) 장로님으로
섬기시다가 2007년 84세를 일기로 소천하십니다.
그런데 한센병으로 정상인과 같이 생활 할 수는 없었지만
그는 많은 한센병 환자들을 기쁨과 사랑으로 섬겼어요.
늘 주의 말씀을 묵상해서 신약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말씀을 묵상하였고,
그다음 돌아가실 때 까지 1천명이 넘는 이 한센병 환자를 돌보시다가,
모든 사람이 그 은혜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장로님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한센병에 걸린 것은 하나님이 나를 구체적으로 사랑하시는 은혜였습니다.
이런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쉽게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았을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한센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혹시 누구를 벌주고 재판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센병에 걸리는 바람에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 수 있으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렇게 보잘것없는 죄인이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제가 이 병에 걸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으니
병든 우리까지도 귀하게 보실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으로 행복합니다."
여러분 한센병으로 온몸이 문드러지고 남이 볼 때 참 비참한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 심령천국이 이루어져 있어서 감사하는 거예요.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