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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16:23~31 다시 한 번

LNCK 2023. 1. 29. 08:11

[AGAIN 1907] 평양대부흥회 | #20 | 설교 - 김권능 목사 - YouTube

 

◈다시 한 번              삿16:23~31           설교 요약

저는 북한에서 학교 다닐 때는 자칭 '사냥꾼'이라고 불렀어요. 
왜냐면 학교다닐 때 산에 올라가서 산토끼를 잡으러 다녔거든요.

친구들은 못 잡는데, 저는 올무를 놓아서 산토끼를 잡았어요.
산토끼를 잡아서 집에서 잘 끓여 먹고 그랬는데 
제가 그걸 하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산토끼는 그 평지나 양지 쪽에는 잘 다니지 않습니다. 
가는 곳, 가고 싶은 곳에 다니면서,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습니다. 

눈이 많이 쌓이고, 산세가 험하고, 나무들이 빼곡히 있어서 
다니기가 힘든 곳에 자기길을 만들고 거기로 다녀요. 
사냥꾼은 그걸 알고, 거기에 올무를 놓거든요.

▲제가 이번 집회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5박 6일의 'Again 1907 집회' ...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긴 기간의 집회입니다. 
1박 2일, 2박 3일 보통 이렇게들 집회를 하죠. 정말 길면 3박 4일!

그런데 2023년 신년벽두에 5박 6일 동안이나 장기간 집회를 한다는 것은
제가 들어본 경험도 없고, 상식적으로 안 맞아서 
'(최 광) 목사님 안 됩니다' 제가 이렇게 얘기를 했죠. 

그런데 그러다가 갑자기 제 입을 다물었어요. 
왜냐면 산토끼 사냥하던 생각이 나더라고요.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곳이, 
우리가 올무에 걸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곳인줄 여러분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늘 다니던 곳으로만 다니면, 올무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사람들은 위험에 처할 때, 정말 환경이 힘들 때, 
자기가 쉬운 것, 자기가 경험했던 것만 고집합니다. 

'이것이 맞아!' 그리고 다른 곳은 위험하다고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우리 (교회) 팀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나는 이 5박6일 집회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제는 입을 다물겠다. 
지금까지 우리 최광 목사님과 같이 사역을 해 본 경험에 의하면,
거기에 또 다른 은혜가 있더라. (썩 내키지 않더라도) 우리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따라왔습니다. 

그 결과, 저만 은혜 받은 줄 알고 궁금해서 옆에 쭉 물어봤더니 
모두들 은혜 많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앞두고, 마음으로 준비를 하는데, 
왜 그런지 자꾸 삿16장 이 본문이 자꾸 떠올랐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삼손이 들릴라에게 유혹 받아 눈이 뽑힌 이야기'는
사실 쉽고 편하게 설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기도하고 묵상하는데, 또 계속 이 말씀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말씀을 펴서, 사실 삼손은, 제가 볼 때는 
기울어져 가고 있는 이스라엘.. 
그리고 사사의 모습들이 점점 더 타락해가던 시절에
가장 마지막 사사요, 가장 최악의 사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또한 삼손이 마지막에 '죽는' 모습...
죽는 얘기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제가 중국 감옥에서 마지막 시기를 보낼 때...  *탈북자를 한국에 보낸 위법 
이제는 10년 형기가 다 차면, 바로 그 날 북송이 되는데, 북송이 되면 죽음인데..

거의 (그 끔찍한) 북송이 점점점 날짜가 다가올 때에 
'이제는 말씀을 읽어야 되겠다' 
물론 그 전에도 계속 말씀을 읽고 있었지만, 

'정말 내게 힘과 용기를 주는 말씀을 한번 택해서 읽어야 되겠다.' 
그래서 택한 성경이 <여호수아서> 였습니다.

왜냐면 거기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라는 말씀이 떠올라서 
'내가 북송되기 전에 다 읽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읽었습니다. 
북한에 가면 성경도 못 읽고, 가져갈 수도 없으니까요.

마지막 여호수아 24장에 보니까, '여호수아가 죽다..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다'로 끝나더라구요. 
뭔가 용기를 얻으려고 성경을 펴서 읽었는데
'아이고, 나는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본문 삿16장도, 묵상을 하는 과정에 
'하나님께서 이것은 나에게 주신 말씀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삼손은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악행을 저질러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넘겨져서 블레셋의 다스림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잉태 못하고 있는 마노아의 가족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태어날 터인데, 나실인으로 키워라..
그렇게 예언을 받아서 태어난 사람 입니다. 날때부터 사명을 갖고 태어났지요. 
그렇게 그는 자기 시대에 특별한 부르심 속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은 그렇게 녹록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 누구도 그와 함께, 다른 사자들처럼 
'우리 함께 합시다' 하면서 삼손을 모셔오고.. 따라 주고.. 그런 사람도 없어요. 
근데 삼손이 처음 등장하는 삿13:25에 보니까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그렇게 삼손이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의 움직이심을 따라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사명의 길을 걷기를 시작하죠. 

그래서 뭐 결혼하는 문제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을 쳐 죽이기도 하고 
나귀 턱뼈로 블레셋 사람 1천 명을 죽이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그의 동족들은,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그를 묶고, 그를 원수들에게 넘겨주는.. 항상 고통만 주는 존재들이었죠.

제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보면 삼손이라는 사람을 
제가 옛날에 성경을 읽을 때는 그냥 멀리 했다면 
이제 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그를 좀 이해를 하게 되었어요. 

'얼마나 삼손 본인은 외로웠을까? 얼마나 본인은 고통스러웠을까?' 

그런 놀라운 기적을 행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던 삼손이
또 계속적으로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생집에 다니고 거기에서 들릴라를 만나죠.
그런데 이번에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특별히 들릴라를 통해서
'이것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하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도 들릴라가 있습니다.

삼손의 이름 뜻은 '태양'이고, 들릴라의 이름 뜻은 '밤의 여인'입니다.  주1)

‘들릴라’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왜냐면 삼손과 관련된 여자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죠.

참고로 삼손의 인생에는 4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 이름이 기록된 것은 들릴라 뿐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사는 여자’라고만 언급할 뿐이죠. 

심지어는 삼손의 어머니도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소라 땅에 사는 마노아의 아내”(삿13:2)라고만 기록되어 있죠. 

들릴라는 ‘밤의 여인’이고, 삼손이  ‘작은 태양’이라면, 
태양이 밤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요? 빛을 잃고 맙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들릴라’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경계 했어야죠...

그런데 여기에서 '들릴라를 사랑하매' 라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 집에 다닐 때, 블레셋 방백은 들릴라에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줘서
들릴라를 매수합니다.
방백들이 각각 은 1천1백개를 주겠다고 했죠. 16:5

그래서 삼손의 힘의 근원, 힘의 비결을 캐내서, 
그를 어떻게 결박할지, 그를 어떻게 제압할 지를 도모했던 것이죠.

그런데 들릴라가 삼손의 힘의 근원을 캐낼 때, 
새 활줄 일곱, 새 밧줄, 자기 머리털 일곱가닥을 베실에 엮어 짜기 등
삼손은 거짓으로 둘러대어, 자기 비밀을 누설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들릴라는 마지막으로 삼손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립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식으로 압박했고, 삼손은 굴복하고 말죠.

16: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당신이 어찌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로써 세 번이나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게 당신의 진실을 토로하라'는 뜻이었죠.

삼손은 그 말에 엄청나게 번뇌를 했다고 했습니다. 

16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결국 삼손은 사랑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진심을 드러내어'는, 자기 속마음의 모든 것을 다 얘기했다는 뜻입니다.

신6: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삼손은 '자기 온 마음을' 들릴라에게 바쳐버린 것입니다.
   *삿16:16과 신6:5는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 '콜-레바브' all your heart

삼손은 자기 진심을(온 마음을) 결국 '밤의 여인'에게 내어놓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삭도를 되지 않았는데, 삭도로 내 머리를 깎으면 
그때는 나는 다른 사람과 같아지리라' :17

이 말씀을 보면서, 제가 참 많은 회개를 했습니다.
우리가 뭔가 세상을 사랑하게 되어서, 세상에 내 마음을 다 내어주면..
결국 (머리가 깎이고) 다른 사람과 같이 된다는 거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능력을 다 잃어버리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좀 자세히 해 볼게요.

저는 22살에 탈북을 했어요. 오로지 생계와 생존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탈북을 해서 뭐 가족을 위해서 산다고 나름대로 돈벌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떠돌아다니다가... 

그리고 성경통독반을 만나서, 거기서 예수 믿고 나서 
그때부터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산다고 떠돌아다니다가 

제가 (탈북자들을 한국에 보냈다는 관계로, 중국법을 위반했다고) 감옥 갔는데 
감옥에서 한 7개월 정도 바깥 세상을 전혀 못 보고 
재판을 받기 위해서, 호송차를 타고, 7개월만에 잠깐 바깥 세상 구경을
한 적이 있었죠. 법원으로 오가는 길에요.  *2002년

창밖을 내다보니까, 출근시간에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얼마나 부러웠던지 모르겠어요. (부러워할 수는 
있는데,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내 마음을 줘버려서는 안 된다는 얘기 하는 중)

재판을 받고 또 호송차를 타고, 저녁에 유치장으로 돌아가는데, 
창밖에 또 퇴근하는 사람들이 보여요.

그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제 마음이 정말 그들을 사모했던 것 같아요.
(내가 주의 일을 하지 않았으면.. 저렇게 평범하게 소소한 기쁨을 누리며
살았을 것 같은... 지금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그래서 결국 10년을 중국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기적적으로 북송되지 않고
한국으로 오게 되었어요. 제 청춘 10년 (27~37세)을 거기서 보냈죠.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대한민국에 왔을 때 
저는 최광 목사님한테 그랬어요. 
'저는 조금 나 자신을 찾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는 좀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라는 뜻이었죠. 

왜냐면 사역자에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엄청난 유혹인 거 여러분 아십니까?'

저는 그랬어요. 
제가 한국에 오자마자 트럭을 한 대 사서 트럭 운전을 했다면
지금 집 한 채 샀을 수도 있어요.

제가 한국에 와서, 총신대학원에 갔는데, 그때 부러웠던 게 있었어요.
하루는 새벽기도를 가는 길에 보니까, 
두 부부가 트럭을 타고서 어디 일터로 가는 모양인데,
운전석 앞자리에서 김밥을 서로 나눠먹으면서 일하러 가더라고요.
저는 그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평범하게 돈 벌며 사는 것!'

그래서 제가 저희 집사람한테 그랬어요. 
'언젠가 우리 목회를 하나님께서 쉬게 하실 때는 
트럭을 사서, 당신 옆에 타고 애들을 다 태우고 전국을 돌아다니자'
(물론 그 때는 애들이 커서 부모를 안 따라오겠지만, 부부라도 가는 거죠)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것이 사역자에겐 그렇게 간절한 소망이요, 유혹입니다.
들릴라에게 마치 온 마음을 줘버리는 것처럼, 
평범하게 돈 벌며 자기 앞가림하고 사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결국 모든 능력을 다 빼앗기고 '다른 사람처럼 되는 거죠' 힘을 다 빼앗기고요!
머리 깎인 삼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물론 이게 자기 꿈대로 또 다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탈북 하기 전에 제 동생은, 황해남도에서 나름대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뭐 갈 데도 없고 
뭐 식량도 부족하고, 그래서 동생이 장사하는 데로 갔지요. 

그런데 저는 공부도 좀 했고, 내 동생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인지라 
'이렇게 하면 돈을 더 잘 벌 거야' 라고 했는데... 다 망했어요. 

그 이후로도, 제가 손대는 사업이나 직장은 다 망했어요. 다 실패했어요.
다 주님의 섭리였죠. 그 때 돈 잘 벌었으면, 주님을 믿지 않았겠죠.
제 동생까지도 저 때문에 다 망했어요.

중국으로 넘어와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저는 중국의 농촌에서 막일도 하고, 부업도 했지만, 
그저 밥만 얻어먹었지, 월급은 거의 못 받았어요. 

그런데 제 동생은 한 곳에서 착실하게 일을 해서 
매달 450 위안씩, 당시 중국 노동자아 같은 수준에서 임금을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하도 돈을 못 벌고 다니니까, 하루는 동생이 저를 데리러 왔어요. 
자기가 자기 공장 사장님한테 말해 주겠대요. 
그래서 저는 '그럼 거기로 가자. 이젠 나도 돈 많이 벌 수 있겠다'해서 갔는데 
그 종이 공장으로 이직한지 13일 만에, 그 공장이 문을 닫았어요. 
하나님이 다 막으시는 거죠.

왜 그렇게 하는 일마다 안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그 때 일을 말하지만, 
그때 저는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평범하게 사는 삶!'
어떻게 보면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특별히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로망이요, 소원인지 모릅니다. 세상적인 부러움이 되기도 할 거예요.

그러나 그게 바로 '들릴라의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거죠.
거기에 '내 마음을 다 빼앗겨 버리면' 안 됩니다.
거기에 '내 진심을 다 말해버리면' 안 됩니다.
들릴라의 무릎에서 꿀잠을 자면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머리 깎인 삼손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거죠!
물론 나중에 삼손도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기는 했습니다만... 

중략

▲삼손은 자기가 부름 받은 자리로, 너무 늦게 회귀했습니다.
자기가 부름 받은 자리로, 일찍 회귀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삼손이 부름받은 곳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입니다.
삿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그런데 삼손이 묻힌 곳도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입니다.  *블레셋과 국경 지역
삿16: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여러분 각자의 부름 받은 곳은 어디입니까?
혹시 부름 받은 곳이 없습니까?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인지할 때,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될 때는

내가 처음 부름받은 자리로 즉시 돌아가야 됩니다.
삼손처럼, 죽고 나서 돌아가면.. 너무 늦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손이 자기 부름 받은 곳으로 돌아와 묻혔다는 것은
그나마 자기 사명을 다 하고 죽었다는.. 하나님의 보증일 것입니다.

▲제(김권능 목사)가 부름 받은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지금 대한민국에 온 지 10년이 됐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열심히 열심히 살았어요. 
학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삼손이 하나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한 때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였는데,  삿13:25

저는 10년 전에, 중국에서 성경통독할 때, 
그때가, 하나님의 영이 저를 움직이기 시작한 때라고 봅니다.

내가 돌아가야할 곳,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곳, 
그리고 어떤 곳에서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가야 될 원점... 
그곳은 바로 중국의 성경통독 사역장이었습니다.  *1998~2000

그때는 사역의 현장이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언제나 위기, 언제 공안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거기에다가 사역비 부족으로.. 늘 금식했죠.
그러면서도 성경을 읽을 때는.. 늘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가 넘쳤어요.

지금의 생활을 그때와 비교해 보면, 정말 하늘과 땅차이 인데도
오히려 그때 제 삶에, 감사가 더 많이 넘쳤던 것 같아요.

나에게 뭐 삶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없었어요. 
그때는 '우리 함께 순교합시다!' 라는 각오를 다지고, 
북한을 위한 '순교자의 노래'도 종종 불렀어요. 그렇게 살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이 제가 돌아가야 할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라는 거죠.

그 때 저는, 내 생명에 대한 존엄성, 존재가치도 전혀 없었어요. 
내 장래의 삶에 대한 어떤 근심도 없었어요.
노후에 대한 어떤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살면서 해를 더할 수록
'나는 어떻게 더 의미를 더하며 존귀하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한하게 살 것인지..'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고, 나의 마음을 나누었던 것들이었죠.

내 마음을 그런 세상 것들에 전적으로 '다 내어줄 적에'
그것은 들릴라에게, 내 마음을 빼앗기는 것들이었다.. 는 말입니다.

 

지금 탈북민이 이제 3만 5천명이 넘었는데,

그 중에 여기서 예수 믿은 사람은 6%도 안 되는

2천명이 될까 말까 합니다.

 

우리가 몽골을 거쳐, 태국으로 라오스를 넘어서 한국으로 올 때는

모두 하나님께 기도하고 왔을 거예요.

그런데 혹시 우리가 '들릴라를 너무 사랑해서'

처음 신앙을 잊은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처음 부르신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