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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마카데쉬 레20장 7-8 2016.01.17.
(거룩하게 하시는 여호와.. 라는 뜻)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해 주시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이름이 계시된 곳에 하나님의 임재도 있기 때문입니다.
시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사를 전파하나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나타내고,
하나님이 그곳에 함께 계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살펴볼 ‘여호와 마카데쉬’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성경에 세 번밖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레20:8, 출31:13, 겔20:12).
오늘은 흔히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성호(聖號),
‘여호와 마카데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여호와 마카데쉬’ 레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8
본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히브리어로 ‘여호와 메카디쉬켐’ 인데,
여기서 ‘켐’은 ‘너희를’의 뜻입니다.
그래서 ‘켐’을 제외하면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마카데쉬’가 됩니다.
▲먼저 ‘여호와’의 의미에 대해서는 모세가 하나님께 그 이름을 여쭈었을 때
대답해 주신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출3:14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영어로 “I am who I am”(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세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No-Beginning’입니다. 시작이 없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누군가로부터 출생된 존재가 아닙니다.
둘째는 ‘No-Need’입니다.
아무 부족한 것이 없고, 스스로 충족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No-Change’입니다. 하나님은 변화하거나 소멸됨이 없는 분이십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기본적인 의미들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뒤에 ‘이레’, ‘라파’, ‘샬롬’, ‘삼마’와 같이
갖가지 단어가 붙어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마카데쉬’의 기본 동사는 ‘카다쉬’이고,
그 의미는 ‘지속적이며,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1) *피엘
하나님이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작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집니다.
1) 첫째, 이방족속의 가증한 풍속으로부터 구별하십니다.
레20: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당시 애굽 사람이나 가나안 일곱 족속은 몰렉을 숭배하고
자기 자식을 불 가운데 지나게 하며,
박수와 무당을 능력의 종으로 여겨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기도 했고, 성적으로 부패한 짓을 자행했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이런 악으로부터 구별해 내신다는 것입니다.
고후6:17절에도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따로 떨어져서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의 거룩함이란
바로 이런 세상의 부패로부터 구별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둘째,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따로 부르셔서 구별해 놓으신 백성들이라는 의미를 갖죠.
그래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레20:26절에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순종하고 충성하여 그 분을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성화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열정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입니다.
“성화는 성령의 은혜스럽고 지속적인 사역이다”라고 *레20:8 참조
개혁주의 신학자 루이스 벌코프가 말했습니다.
벌코프는 성령의 성화 사역을 통해서 인간이 죄의 오염으로부터 벗어나고,
본성이 점진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는 죄의 오염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며
선행을 하며 사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화를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행하시지만 이것이 성화에 있어서
인간이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도 역시 성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레20:8절도 중요하지만, 7절을 유념해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7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히트파엘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피엘
7절 ‘깨끗하다’ 하다는 표현 역시 히브리 동사 ‘카다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사 변형이 다릅니다. 여기서는 ‘히트파엘’(재귀형)로 사용되었죠.
스스로 거룩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지만
성도들 역시 스스로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이러한 성화의 진리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빌2:12~13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너희의 구원을 잘 가꾸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 안에 내주 하시며
지속적으로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을 행하시지만
성도들 자신도 두렵고 떨림으로 스스로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술과 담배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술을 끊게 해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늘 술 냄새가 나고, 담배 냄새가 나서
예배 드릴 때도 주변 성도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고, 직장에 가면 교회 집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매일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느냐는 소리를 듣고,
당신이 나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말을 듣는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술과 담배를 끊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면서도 계속 술을 마시고,
계속 담배를 태운다면 그 사람은 술과 담배를 끊을 의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신앙과 믿음에 자기 의지적 요소를 배제한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금주나 금연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술을 끊으려면 기도도 해야 하겠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술을 끊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신비하면서도 위안이 되는 진리인 것입니다.
불신자는 노력해도 계획한 바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정말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술이나 담배를 끊을 수 없습니다.
병들어서 마실 수 없거나 피우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여호와 마카데쉬(너희를 계속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의 하나님이 :8
성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를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계획한 일을 승리하게 하십니다.
2016년도에는 스스로 거룩케 하는 노력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7
나쁜 습관도 끊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20:8
◑2. 출31:12~13절 과, 겔20:12절에 나타난 ‘여호와 마카데쉬’
출애굽기와 에스겔을 한꺼번에 살펴보는 이유는
내용이 동일하고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출31:12~13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마카데쉬’가 사용되었습니다. :13
그러니까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 마카데쉬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안식일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대대의 표징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안식일을 지킬 때 이런 의미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겔20:12절에도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하나님 자신이 여호와 마카데쉬 이심을 알도록 하시기 위해
안식일을 주어 표징을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하시려는
‘영원한 징표’(Everlasting Sign)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없어지거나 폐지되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사역을 완성하신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서 주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바꾸신 것입니다.
마1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인이신 예수님이 토요일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셨습니다.
주인이 마음대로 바꾸실 수 있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성도의 안식일은 주일입니다.
막2:27절에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안식일은 하나님이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일을 위해 존재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십계명 제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의 목적이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필요가 있으셨다면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종전에는 토요일로 지키던 것을 주일로 바꾸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데, 십계명 가운데
어느 계명 하나 폐지되거나 무효화된 것이 없습니다.
안식일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이 성도들을 거룩케 하시는 일을
포기하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서 성도를 거룩케 하시는 일을 계속 하십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거룩해지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고 듣고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집에 가셔서도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또 주일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진지한 자세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또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시도록 기도하고, 버려야 할 죄가 있으면 버리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또 성도들 간의 대화와 교제를 통해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격려하는 날입니다. 히10:24~25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안식일에는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서로 격려하는 날인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복으로 돈을 벌었으면
그 중에 일부를 하나님께 십일조 헌금으로, 또는 감사헌금으로 드리는 것이
안식일에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안식일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일이 왕성하도록 복을 주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또 자녀들의 신앙과 믿음이 성장하도록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는 날이기도 하죠.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가지고
하루를 구별해 놓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이러한 은혜의 수단(주일, 기도, 예배, 성찬 등) 을 통해서
하나님이 여호와 마카데쉬이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주신 것은 세상 죄로부터 자신을 구별하고,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어야 한다는 성화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에게 성화의 필요가 있다면 안식일은 여전히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안식일에 놀지 말라, 가지 말라하면서
대단히 귀찮고 괴롭고 피곤한 날로 만드는데,
안식일은 그런 규정을 세우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여호와 마카데쉬 이심을 경험하는 매우 유익한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내가 어떻게 하면 거룩해 질 것인가에 목적을 두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한 발, 하나님께 한 발씩 디디면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둔 한 발을 들어 하나님께 두 발을 디디고
하나님께 헌신되어 살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이를 위해 힘쓰고 애쓰는 날이 안식일인 것입니다.
주일에는 꼭 성경을 읽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날은 성경을 읽지 못해도 주일에는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소설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인류역사 가운데 가장 귀중한 책입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내가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헌신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라도 가르쳐서
믿음의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도 헌신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외면할 수도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되는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두 가지를 질문해 봐야 합니다.
▲첫째, “나는 지난 10년 동안 거룩의 관점에서 얼마나 진보해 왔는가?
아니면 퇴보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10년 전에는 거룩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며 살았는데,
이제는 다 포기하며 살고 있다면 그것은 거룩성에서 퇴보한 것입니다.
지난 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한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있다면 하루 속히 돌아서야 합니다.
▲둘째, “나는 지난 10년 동안 어떤 자세로 안식일을 지켜왔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나를 거룩하게 해 주시려는 여호와 마카데쉬를 경험하는 날로 삼고
살아왔는가라고 질문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께 얻어 터질까봐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왔거나
맹목적이고 습관적인 태도로 지켜왔다면
돌이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질문들은 우리의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인생의 본분을 이루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질문들입니다.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그만큼 거룩성에서 진보를 보이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면 별과 같이 빛나는 스타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거룩한 사람이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권세, 명예, 지식, 물질과 같은 것이 천국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는 것은 우리의 거룩성의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거룩의 진보를 이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안식일을 어떻게 보냈는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안식일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선물입니다.
이 날의 목적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적인 휴식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놀고 주일 아침에 일찍 예배를 드리고 와서
편히 쉬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안식일의 목적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목적은 육신적인 휴식만이 아닙니다.
요즘은 교통체증도 금요일 저녁에 있던 것이 목요일 저녁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목요일 저녁부터 놀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요일까지 계속 놉니다.
즐기고 노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보내야 하는 날입니다.
어떤 성도님이 간증하시는데, 본인은 글자를 읽을 줄 몰라서
그저 성경을 넘기기만 했는데도 넘치는 은혜를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전기를 보면
성도 가운데 글자를 몰라서 성경을 넘기는 것으로 경건생활을 했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주일에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께 진지하게 기도하고
세상일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복을 주십니다.
주일에 돈을 벌지 않아도 하나님은 주일에 벌 것까지 다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주일에 일을 하면 수입이 생겨도 이래저래 다 빠져 나갑니다.
주일에 돈을 벌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안식하시기 바랍니다.
일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오히려 일을 하면 복이 되지 않고 저주가 됩니다.
여호와 마카데쉬의 하나님이 주일을 구별해서 나로 거룩하게 하시는구나
생각하고 안식일의 목적을 바로 깨달아 주일성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은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날입니다.
천국을 맛보는 날인데 엉뚱한 일만 하면 되겠습니까?
창세기 1~2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는 6일 동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만큼은 이런 구절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이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가 되면 더 이상 고통도, 고생도, 질병도, 사망도, 슬픔과 눈물도 없는
영원한 안식과 기쁨과 평안이 있기 때문에
저녁이 될 필요도 아침이 될 필요도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안식일을 여호와 마카데쉬의 하나님을 경험하는 복된 날로 삼아
영원한 천국에서도 기쁨과 평강과 영광을 누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히브리어 ‘마카데쉬’의 기본 동사는 ‘카다쉬’인데,
이는 ‘거룩하게 하다’(Sanctify)는 의미입니다.
‘마카데쉬’는 ‘카다쉬’의 ‘피엘’(Piel) 분사형태로, 현재진행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니까 지속적이며, 점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어 동사는 일곱 개 형태로 변화되는데,
그 중 피엘은 ‘강조 능동’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니까 ‘마카데쉬’는 하나님이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성도들을
지속적으로 거룩하게 하신다는 의미를 갖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