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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2장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LNCK 2023. 2. 4. 08:54

[ 2016. 1. 24 주일설교 ] 3부 -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레 22:31-33)  - YouTube

https://blog.naver.com/karamos/222142708742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레22장      2016.01.24.

◑서론

레위기 21장과 22장에는 제사장, 대제사장, 성물과 제사에 합당한 제물에 
관한 규례 등 아주 복잡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규례들을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의식법 뿐만 아니라 도덕법적인 요소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살펴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22장을 보면 복잡한 여러 가지 규례들이 기록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중심이 되는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2절에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호 : 거룩한 호칭, 이름

‘내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32절에도 “너희는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22장 처음에 해당하는 구절과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구절들에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22장은 전체적으로 “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21장도 마찬가지입니다. 

21:6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 것이며 
그들은 여호와의 화제 곧 그 하나님의 식물을 드리는 자인즉 거룩할 것이라”

레위기 21장과 22장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3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복잡해 보이는 여러 가지 규례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레위기 21장과 22장에 중요한 두 개의 동사가 있습니다. 
첫째는 ‘Profane’(욕되게 말라)입니다. 
레위기 21장과 22장에 6번 사용되었습니다. 

둘째는 ‘Hallow’(거룩하게 하다, 깨끗하게 하다)입니다. 5번 사용되었습니다. 
레위기 21장과 22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거룩하게 할 것인가?”라는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과 사상과 언어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거룩하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마구 모독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불경스러운 짐승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Jesus!’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뉘앙스가 좋지 않은 말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3계명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인데, 
성도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로 모독하면 안 됩니다. 

설령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거나 
비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불신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고 싶지 않으니까 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21~22장은 불신자들을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지도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제사장과 대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중심에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다가 이곳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14년째가 
되었는데, 지금도 목사라고 사람들이 한 수 깔고 봅니다. 
목사, 장로, 권사를 포함해서 교회 안에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는 짓을 하니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레위기 21~22장의 말씀은 불신자들을 향한 말씀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향해,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라는 규례가 제사장, 대제사장, 성물, 제물에 
관한 순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지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규례들

레위기 21장 1~9절은 제사장의 성결규례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네 가지 사항의 경우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셨습니다.

1. 가족, 형제, 자매, 친족 등의 장례에 참석이 가능하지만, 
타인의 장례에 참석해서 시체와 접촉하는 경우입니다. 
제사장이 시체와 접촉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2. 이방종교를 믿는 사람들처럼 머리를 대머리로 밀거나 수염 양편을 깎고, 
살을 베는 행위입니다. 
이방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로 머리를 깨끗하게 밀고 광을 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장이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추는 것이 
성도의 정상적인 모습니다.

3. 기생, 부정한 여인, 이혼 당한 여인과 결혼하는 경우입니다. 
과부나 정당하게 이혼한 여인과는 결혼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제사장이 가정적으로 깨끗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4. 제사장의 딸이 행음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아비를 욕되게 하는 것이므로 
불 태워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규례들은 의식법에 속하기 때문에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 없죠. 
그러나 이것은 제사장, 즉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들보다 훨씬 거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레위기 21장 16~24절에 아론의 자손들 중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 
성물을 먹을 수는 있지만, 제사를 드릴 수 없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체적 결함이 있는 사람은 제물을 들거나 자르기 어렵고, 
불태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하지 못하도록 금하셨습니다.

또 레위기 22장 1~16절에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데, 
그것도 부정한 상태에서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체적인 정결 조건이 잘 갖춰진 상태에서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소제물을 먹을 수 있고, 화목제물 중에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고기는 
‘흔든 가슴’과 ‘든 우편 뒷다리’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성물을 먹을 때, 
제사장이 나병이나 성병 등 부정한 요소가 있으면, 깨끗하게 될 때까지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거룩한 성물이 더럽혀지는 것을 방지)

또한 부정한 벌레에 접촉한 자는 정결할 때까지 먹을 수 없고, 
저절로 죽은 짐승의 고기나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또 제사장의 가족들도 먹을 수 있는데, 
돈으로 산 품꾼도 제사장의 가족으로 대우를 받아 같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이나 임시로 고용된 품꾼, 외국인에게 시집간 제사장의 딸은 
성물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성물도 거룩히 대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레위기 22장 17~30절에 제사를 드리는 예물은 
반드시 흠 없는 수컷이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새끼를 제물로 드릴 때에는 8일째부터 제물로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새끼가 태어난 지 7일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제물로 드리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고 해서 금하셨습니다. 

또 어미와 새끼를 하루에 모두 잡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서로의 죽음을 보지 못하도록 금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참으로 은혜로운 율법입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규례는 일면 복잡해 보여도 한 마디로 하면 
일반 백성들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더 높은 거룩성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의 규례는 21:10~15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제사장 규례보다 더욱 엄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심지어 부모나 형제의 장례조차도 참여할 수 없으며, 
정당하게 이혼한 여인과도 결혼할 수 없고, 
오직 이스라엘의 처녀와만 결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모두 거룩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제사장은 더욱 거룩해야 하고, 
대제사장은 그보다 더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법들은 거의 모두 의식법 ritual law 이기 때문에 
오늘날 문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법 속에 도덕법적인 요소(영적인 교훈)가 세 가지 있습니다.

1) 첫째, 교회 안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일반 성도들보다 일상생활이나 가정생활에서 더욱 거룩해야 하고, 
덕을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해야 할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딤전3장과 디도서 1장에 보면 감독과 장로의 자격이 기록되어 있는데, 
자격요건을 자세히 보면 ‘개인의 능력’보다 
‘성결’이 더욱 중요시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가 되려면 개인적인 성결, 가정적인 성결, 사역적인 성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는 일반 성도들보다 훨씬 거룩해야 하죠. 
절대로 여호와의 이름에 욕이 될 만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대제사장은 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지상에 이런 대제사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런 대제사장은 어디에 계실까요?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며 
완전하고 절대적 거룩성을 지닌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조차도 
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성결을 지닌 분이시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주1)

3) 세 번째 영적인 교훈은 거룩한 것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더러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들이 거룩합니다.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구별해서 쓰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먹으라고 하신 성물도 거룩하고, 
하나님이 대제사장을 만나주시는 성소와 지성도도 거룩한 곳이고, 
하나님의 말씀도 거룩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도 거룩하기 때문에 
이 역시 모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백성의 지도자들은 
절대로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해야 해야 할 이유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거룩하지 않은 분을 거룩하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분리된 분이시고, 피조물로부터 분리된 분이시기 때문에 
본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당연히 하나님을 거룩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악한 자로 여기는 것이고, 
피조물과 같은 차원의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레22:32절에 “너희는 나의 성호를 욕되게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우리를 마귀와 지옥으로부터 건져내신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대해야 합니다. 

레22:33절에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자니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마귀와 지옥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종입니다. 
마귀에게 이끌려 사는 것이고, 귀신을 숭배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마귀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구원자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은 
참으로 배은망덕한 짓인 것입니다.

속담에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니 보따리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남에게 선한 일을 하기가 겁이 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따리까지 달라고 하는 일이 실제로 있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덕을 베풀면 나중에는 더 큰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선을 베풀고 덕을 베푼 사람들을 욕되게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주 배은망덕한 짓입니다.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게 됩니다. 
레22:3절에 “그들에게 이르라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에 
그 몸이 부정하고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끊어진다’는 것은 히브리어 ‘카라트’라는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제사장 직분의 파면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큰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모독하는 사람은 나중에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한 두 번은 참으시지만, 때가 차면 큰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 

레22:9절에 “그들은 나의 명을 지킬 것이라 그것을 욕되게 하면 그로 인하여 
죄를 짓고 그 가운데서 죽을까 하노라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죽을 지도 모른다고 하십니다. 레위기 10장에 기록된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 
그 예가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계속해서 모독하면 
결국 그 사람의 삶에 고통이 임하게 되고, 심판을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이유만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해야 할 근거가 충분합니다.

 
◑3. 오늘날 우리가 거룩하게 대해야 할 일곱 가지

우리가 거룩하게 대해야 할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아야 합니다. 십계명의 제3계명은 
지금도 유효한 말씀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망령되이 일컫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요5:23절에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직접 섬기지 예수님은 믿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수님을 섬기지 않을 방법은 전무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인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님이 받아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중보자를 통하지 않고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하 인간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조직신학 교수님이 어느 시골에 살고 있는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남편이 매일 술 마시고 교회에 가는 아내를 때리고 방탕하게 살았었는데, 
성경책을 다 잘라서 화장실에 못으로 꽂아 휴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성경을 그렇게 불경스럽게 사용한 남편은 
일주일 만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성경을 거룩하게 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스라7: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대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구별해서 정하신 주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만드신 날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자기의 안일과 쾌락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두 주일성수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이런 간증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복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이 복을 많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평생 어려서부터 주일성수 하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범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생 주일예배를 충성스럽게 드렸더니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간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여겨야 합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수단들입니다. 
먼저는 예배, 그리고 침례와 주의만찬과 같은 교회의 의식을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배 도중에 밖으로 나가시는 분이 계십니다. 
결혼식을 가셔야 한다고 가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업신여기는 자는 하나님이 고약하게 여기시리라 생각합니다.

예배시간에 뒷자리 앉아서 스마트폰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은 예배 태도죠. 
하나님을 거룩한 자세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설교를 하더라도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시간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서 
은혜를 받고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대해야 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핏 값을 
주고 사신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어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존귀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그가 더 이상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한 사람, 가지지 못한 사람, 학벌이 낮은 사람, 가난한 사람, 직분이 없는 
사람들도 존귀히 여겨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 즉 교회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교회를 해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눈동자를 찌르려는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절대로 교회를 해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들을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일곱째는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입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서 교회에 말씀을 주십니다. 
천사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죽은 마틴 루터를 데려다가 말씀을 전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기관입니다.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할지라도 
목회자를 통해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기관으로서 존중해야 합니다.

목회자를 향해서 막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거룩한 것은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가 비록 나이가 어려 아들 벌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말씀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말씀을 받고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살전5:12~1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도바울에게 “글은 힘이 있는데, 말은 잘 하지 못한다”
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저런 정도의 설교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식의 비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차원은 천지차이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구리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자에게 
그것은 우상이라고 한 사도 바울에게 해를 끼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딤후4:14장에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행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론
 
여러분, 우리는 지난 주일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마카데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성호를 공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는데,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고 거룩하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며느리가 “나는 저런 시어머니가 다니는 교회
라면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한다거나,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료가 “교회 장로라고 하면서 저렇게 이상한 사람은 
처음 본다. 저런 사람이 다니는 교회라면 절대로 다니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고(Profane), 
거룩하게 여겨야 할 줄로 믿습니다(Hallow). 

말씀의 결론은 사무엘상 2장 30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이 말씀은 불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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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예수님이 완전한 성결을 지닌 분이시라는 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죄가 없으셔야 우리 죗값을 갚아주실 자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속죄는 점이 없고 흠이 없는 분이 하셔야만 합니다. 완전한 성결을 지닌 분만 
우리의 죗값을 갚아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완전한 의를 전가해 주셔야 
그 의의 옷을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 공로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착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천국에 들어갈 만큼 착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의 옷을 입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허물이 있어도 예수님 의의 옷을 입고 있으면 당당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의로운 존재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시는 
중보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중보자는 죄가 없는 분이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중보기도라고 하지 않고 
도고기도라고 합니다. 

중보기도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왜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보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해 중보기도한다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에게는 완전한 거룩이 요구되는데, 
이를 갖춘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