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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22장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LNCK 2023. 2. 6. 17:45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레22장                2022.08.08.녹취


레21장과 22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사장들을 향해서 주신 규례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동시에 이 시대의 사람들 앞에, 세상앞에 
제사장으로 세워진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죠.

22장은 이렇게 열고 이렇게 닫는데, 
22장 전체를 시작하는 말씀이 뭐냐면  

2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성호 : 거룩한 호칭, 이름

32절을 보면 똑같은 말씀을 하면서, 22장이 마치고 있습니다.
32 '너희는 내 성호를 속되게 하지 말라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거룩하게 함을 받을 것이니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구약시대든, 신약시대든 제사장은
'여호와의 이름'을 속되게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먹칠을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죠.

동시에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드러나도록 살아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경을 받도록 살아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드러날 수도 있고, 욕됨이 드러날 수도 있으므로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이, 합당한 대우를 받도록 살아야 된다.. 라는 거죠.

◑그럼 구체적으로 본문은 어떤 교훈을 주고 있나요?

▲1.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해 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하셨죠. 

그래서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입지 못하는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 의복과 에봇을 입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래서 멀리서 봐도 '저 사람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구별 되었어!' 
라는 것을 알아요. 그리고 제사장에게는 관유를 부어서 거룩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들도 그 향기를 통해서 
'저 사람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자야' 라는 것을 알게 하셨어요. 

그런데 제사장이 한번 거룩하게 구별되었다고 
그 이후에 어떤 상태로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을 계속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에봇과 관유로 구별된 자가 하나님을 섬기는 내내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어야 되었죠. 

그래서 그 깨끗함, 그 정결함, 그 거룩함, 그 구별됨이
처음에 딱 한 번 제사장 임명 받을 때, 얻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로 하나님을 섬기는 내내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되는데 
살다보면 부정 unclean 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부정하게 되는 때를 
말하고 있는데 

3절 '그들에게 이르라 누구든지 네 자손 중에 대대로 그의 몸이 부정하면서도 
이스라엘 자손이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에 가까이 하는 자는 
내 앞에서 끊어지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부정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봉사를 계속 하면.. 끊어진다는 거죠.
이 말은, 제사장 직무에서 해임 당하든지, 아니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4절 '아론의 자손 중 나병 환자나 유출병자는 그가 정결하기 전에는 
그 성물을 먹지 말 것이요 시체의 부정에 접촉된 자나 설정한 자나

5 무릇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벌레에 접촉된 모든 사람과 무슨 부정이든지 
사람을 더럽힐 만한 것에게 접촉된 자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되었지만 
그냥 일상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질병이 들 수도 있고 
나도 모르게 부정 unclean 한 상태가 되어지기도 하고 
무엇인가에 접촉되어 내가 부정하게 될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정하게 된 순간에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일시적으로 중지해야 된다는 거죠.
그게 3절이고, 

4절과 6절에도, 부정한 상태로 '성물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죠.

6절 '곧 이런 것에 접촉된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니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 성물을 먹지 못할지며
7절 해 질 때에야 정하리니 그 후에야 그 성물을 먹을 것이니라 
이는 자기의 음식이 됨이니라'

그래서 부정하게 되었으면, 자기 몸을 씻어서
다시 정결하게 되어야 한다.. 라고 말씀합니다.

만약에 제사장이 거룩하게 구별되었지만 
그 거룩의 상태를 잃어버린 상황이 되었으면 
하나님을 섬기면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가 해야 되는 가장 최우선적인 일은 무엇인가 하면 
다시 정결하게 되도록 몸을 씻는 것이며,

그리고 정결해지기까지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된다는 거죠.
저녁때, 부정하다고 말씀하신 그 시간까지, 봉사를 쉬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정결함을 회복해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제사장들의 성결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잠깐 부정하게 되었다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멈추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최선을 다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음 참 거룩하신 분이구나!' 하고 배우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함부로 아무 때나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 라면, 
'늘 그의 삶이 깨끗하고 청결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제사장이 섬기는 섬김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교육이 되는 거죠.

'아~ 하나님은 정말 거룩하신 분이구나, 우리가 함부로 
그 분을 섬길 수 없구나, 깨끗함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거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쉽게 더러워지는지 아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에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살아요. 

그러면 부지중에 우리도 모르게 더러운 것에 접촉할 수도 있고요. 
내가 육신을 좇아서 더러워질 수도 있고, 
내 입이, 내 눈이, 내 생각이 쉽게 더러워 질 수 있죠.

그때 우리가 해야 되는 최우선 순위는 무엇일까요?
그래도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그때는 먼저 정결하게,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돼요. 

그것이 우리 최선임을 깨닫고, 
세상 가운데서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 거룩하신 분이구나' 
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있어야 됩니다. 

▲2. 두 번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사장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스러운 분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영광'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립니다. 영광을 그 분께 드립니다. 영광 받으소서'
이렇게 말하는데 영광이 무엇입니까? 

'영광' 이라는 단어는 카보드 인데, *honour, splendour, dignity, reputation
히브리어로 카보드 라는 단어의 어근은 '무겁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에 누군가에게 '영광을 돌린다' 라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그 존재를 무겁게 여기는 것입니다. 

즉 가치있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기고, 최우선으로 여기고 
가장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되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될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존재 자체가 신이요, 창조주, 구원자 이시기 때문이죠.
우리가 기도할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기도하죠.

그 말은, 땅에 사는 우리하고는 존재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고 
땅에 있는 우리 와는 차원이 완전히 다른, 거룩하게 구별되신 
놀라우신 분이시기 때문이죠. 

△미국 뉴욕 맨하탄에는 그 유명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습니다.
관광 안내인의 설명에 의하면,
이 빌딩이 특별히 102층으로 지어진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1620년 9월 7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66일 동안 대서양을 횡단해서
신대륙을 향해 출발한 이들이 102명이기 때문에
그들을 기념해서 특별히 102층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반면, 북한 평양에 가면 대동강변에 주체사상탑이 있는데,
거기에 가면 안내인이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이 탑은 25,550개의 돌로 지어졌는데,
그것은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에 365일을 곱해서 지은 것이라 하죠.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빌딩 하나를 지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짓고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무슨 건물 하나를 지어도 
자기 이름, <사람의 영광>을 위해서 건물을 짓게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의 섬김, 우리의 예배도.. 그럴 수 있는 거죠.
   
△18절 '아론과 그의 아들들과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 중에 거류하는 자가 서원제물이나 자원제물로 
번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려거든

19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20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그래서 뭔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19절에 보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으로 드려라... 

너희가 하나님께 뭘 드리려 거든 
최고의 것을 드리라.. 이게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는 (영광 돌리는) 거죠.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0~21절, 흠 있는 것은 드리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이 안 기뻐하신다는 거죠.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죠.

20 '흠 있는 것은 무엇이나 너희가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21 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영광 받으시도록)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22절 너희는 눈 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습진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이런 것들은 제단 위에 화제물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구체적으로 눈먼 것, 상한 것, 지체 중에 베임을 당한 것, 
종기 있는 것, 습진 있는 것, 비루 먹은 것(상처가 아물어 종기가 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는 거죠.

왜 이렇게 말씀하실 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종 그렇게 했거든요. 
제물로 바칠 때
'흠 있는 것, 쓰다 남는 것, 내가 이거 드려도 별반 나한테 손해 안 되는 것'
하나님께 드렸다 라는 생색은 내는데 
나한테 소중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면 영광을 돌리지 못하는 거죠.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는 것이 아닌 거죠.

25절 '너희는 외국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음식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과거에 제가 아내와 교제할 때, 경주에 데이트를 갔어요. 
경주에는 불교 유적지가 많잖아요. 
거기서 아내와 사진을 찍을 때, 무슨 탑이 있더라고요.
알려지지 않은 유명하지 않은 탑이었어요.

그 탑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석이 있었는데,
제가 아내한테 '거기 앉아 봐라' 해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 주변에서 탑을 돌던 몇 분이 계셨는데 
여자분 한 분이 갑자기 저한테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어디 거기 앉는 거야?'

깜짝 놀랐죠. 참 무례한 것 같아서 기분도 나빴죠.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지만 한 가지 배운 것은,
저 분에게 있어서는 '여기가 우리하고는 다른 곳이구나!
저분에게 이 탑은, 다른 의미가 있는 거구나!'

그래서 이후로는, 그런 조형물이나 유적지에 가면 조심이 되더라고요.
'저분에게 있어서는 여기가 참 거룩한 곳이구나' 라는 것을 배웠죠.

△예전에 보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헌금을 할 때는 보면, 
항상 구별해서 다리미로 다려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정신은 배울만 합니다. 똑같은 돈이 아니다 라는 거죠. 
그걸 거룩하게 구별하겠다고, 깨끗하게 하겠다고 다림질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뭔가 필요가 있을 때는 
그들이 가장 좋은 것들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드렸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걸 보면서 우리는 뭘 깨닫습니까?  
'내게는 그렇지 않더라도, 내 할머니에게는, 내 어머니에게는 
하나님이 굉장히 영광스런 분이구나!' 하는 것을 배우게 되죠.

그래서 부모님들은, 가장 귀중한 첫 시간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드렸어요. 
우리가 아이 때, 우리는 쿨쿨 자고 있는데도, 그 기도소리를 듣지 않았습니까.

근데 부모가 된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우리는 내 쓸 시간 다 쓰고, 남으면 자투리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습니까?

내 쓸 것 다 쓰고, 남으면 하나님께 드리는데,
내 마음이 아까워 하면서 드리기도 하고, 생색 내려고 드리기도 했고... 
남는 거 드리기도 하고.... 

그래서 보면 요즘에는 하나님을 섬길 때
내가 남는 시간이 혹시 생기면, 
내가 할 일 다 하고 나서, 시간이 내어지면 
비로소 하나님을 섬기는데.. 요즘은 그것도 잘 한다고 칭찬 들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볼 때 
기쁘게, 영광스럽게 받지 못할 것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특히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아 하나님은 그런 분이구나, 
저 사람에게 저렇게 여기시는 분인 것을 보니 
나도 하나님을 그렇게 대해도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하루를시작할 때, 가장 소중한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걸 보고 자란 자녀들은.. 후에라도 깨닫게 될 거예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고 
TV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하루를 주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기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 
최소한 우리 자녀들이, 또한 내 주변인들이 
'하나님은 정말 무거우신(영광스러운) 분이시구나!'

내가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과 내 주변 사람들이 
'아~ 하나님은 참 무거우신, 거룩하신 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우리 제사장들의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하신 분>임을, 우리는 드러내야 됩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구절처럼 보이는데요,
이런 말씀을 왜 하셨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27~28절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태어)나거든 이레 동안 그것의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 
여덟째 날 이후로는 여호와께 화제로 예물을 드리면 기쁘게 받으심이 되리라
암소나 암양을 막론하고 어미와 새끼를 같은 날에 잡지 말지니라'

지금 우리는 산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백성들은 짐승을 드렸어요.

그런데 구약 당시에는 이스라엘만 하나님께 짐승을 드려 제사드렸던 게 아니라
이방 사람들인 그들도 짐승을 잡고, 피 흘리고, 자기 우상에게 제사 했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수소나 양이나 염소가 태어나거든' 27절에 보니까 
이것들이 제물로 정해졌다면, 어차피 오늘 도살해서 제물로 바칠 수도 있는데,

'새끼가 태어났으면, 최소한 7일 동안은 어미와 같이 있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28절에 보면 '어미와 자식을 한 날에 같이 잡지 slaughter 마라' 

이 말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짐승의 생명 정도는 하찮게 여겼고, 
어미와 새끼 짐승을 한 날에 같이 잡았고요... 
새끼가 태어나도 그냥 바로 어미와 떼 놓고 바치는...  
그런 잔인한 제사를 드렸어요. 

근데 하나님은 이 제물을 받으시지만 
그러나 최소한 짐승이라도 그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귀하게 보신다는 거죠.

그래서 최소한 7일은, 그 태어난 새끼가 어미와 같이 있을 수 있도록... 
그래서 드려질 제물이라 할지라도.. 그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은 한낱 짐승이라도 
그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짐승 어미와 새끼를 한 날에 같이 드리면, 
이건 재산에도 막대한 손실을 가져 온다는 거죠.

우리 성도 가운데 소 키우는 분들도 있는데요, 
어미소와 송아지가 있는데, 둘 다 없어져 버리면.. 타격이 크겠죠.

만약 어미 소를 팔았으면, 남은 송아지를 잘 키워서
어미 소를 대체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짐승의 생명도 소중히 생각하시지만 
이 제물을 드리는 그 사람의 재산, 그 사람의 생명까지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죽을 만큼 헌신하라고 
우리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 
그냥 막 하나님께 드리기를 바라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거죠. 

△어떤 성도를 보면,  빛내서 교회에 헌금 하신 분들이 있어요. 
그 후에 오랜 기간동안 빚을 갚고 계세요.

무리해서 십의 2조를 드리는 분도 간혹 있습니다. (십일조 작은 게 찝찝해서)

그런데 헌금의 일반적 원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 중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잔인하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화목제(감사제)를 드릴 때도, 은혜를 받았으니 화목제로 드리라는 거죠. 

그러므로 우리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성호,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그렇게 아름답게 드러내야 한다는 거죠. 


제사장인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드러내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 길을 열어주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구원의 길만 드러내는 자가 아니고, 
창조하시고 심판하시고 섭리하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우리 평소 삶을 통해
드러내는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 영광스러우신 분, 선하신 분으로
우리가 늘 드러내며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선하신 분이심을
내 삶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거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호를 거룩하게 하는, 우리 성도의 삶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