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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10~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의 의미

LNCK 2023. 2. 7. 14:08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요한복음 05] - Tube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의 의미    요1:10~12         요약, 정리  

[New Start 5강]

◑서론

우리 인생 가운데 새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새 일은, 어떤 시대적인 거나 또는 환경적인 것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행하시는 것이 새 일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을 충분히 경험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복음안에 있으면 늘 새로운 존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늘 새롭게 하시고, 내 속에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2023년에는 예수를 새롭게 만나게 되고 
예수께서 행하시는 새 일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새롭게 알게 될 때 '아~ 예수께서 이러신 분이시구나, 
예수님은 이런 권능과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구나'

이렇게 새롭게 예수님을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될 때 
우리 가운데 그것만큼 새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알게 됩니까?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성경말씀을 읽고 깊이 묵상함을 통해서 한 해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깊이 알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1:1~18절은 중요한 구절입니다. 
왜냐면 1:19절부터는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누구를 만나시고, 
무슨 일을 행하셨는지.. 이런 행적들을 기록하고 있는 데 

1~18절까지는, 원래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리지널리 어떤 분이신가? 
하늘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거를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 
요한복음의 서론에 해당하는 1:1~18까지 말씀입니다. 

이 땅에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행적을 설명하기 이전에 
그분은 원래 누구였는가, 본질적인 예수는 누구신가? .. 라는 것을 전해 줍니다. 

-그 분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시고 
-세상의 빛이시고 
-말씀이시고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을 지으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이런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우리 가운데 함께하셨습니다. 
이게 예수님의 본질이에요. 

이 주님의 본질을 새롭게 대면 할 때 
내 영혼에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고 

예수를 아는 이 지식이 
내 영을 깨워서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1:10~12절 말씀을 살펴 볼 텐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 ...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영접한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깊게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또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는데, 
그 말씀의 의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려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말의 의미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0

예수께서는 세상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지었다 made'는 말은
세상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왕이시라는 거예요.

단순히 생명으로 오신 분이 아니시고 
단순히 빛으로 오신 분이 아니시고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시고, 세상의 왕이시라는 거예요.

그 주인께서 자기 땅에 오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오셨는데 
그들이 자기 왕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너희는 '예수님, 왕을 영접하라' 라고 권면하는 거죠.

 

▲'영접'의 단어적 의미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 receive>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 receive>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주1)

그렇다면 '예수를 영접한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주제

우리가 '영접기도 했다, 예수님을 영접해!' 많이 쓰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영접이란 무슨 뜻일까요? 

1) 영접(헬. 람바노)은 '취하다, 내 소유로 취하다' 이런 뜻인데요. 영어로 receive

성경의 용례를 보면, 
-떡을 취하다
-잔을 잡다
-명령을 받다
-직분을 받다
하여간 내것으로 취하다, 내것이 되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어요.

2) 반면에 인격체 대해서 이 단어(람바노)가 쓰였을 때는, 의미가 조금 다른데 
-예수를 영접하다 할 때 
-성령을 받다 할 때도 '람바노'를 씁니다.

그래서 예수를 '영접하다'는 말과 성령을 '받다'는 말이 
우리 말로는 표현이 다른데,
헬라어로는 '람바노' 같은 단어예요.  *'영접하다'

결국 '예수를 영접하다'는 말과 '성령을 받았다'는 말이 사실은 같은 말이에요. 

삼위일체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니까요.

그 외 '다른 영을 받다'고 할 때도, 람바노 receive 가 쓰입니다.
고전2:12 '세상의 영을 받다'
고후11:4 '다른 영을 받다'

3) 람바노가 쓰인 세 번째 용례를 잘 살펴보면
'예수님을 영접한다' 라는 게 이런 뜻이구나... 하는 것은 잘 알 수 있습니다. 

람바노(영접하다)에는 '아내를 취하다. 결혼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람바노는 
물건이나 명령 등 비인격적인 것은.. '가지다, 받다, 취하다 receive'란 뜻이지만

인격체에 대해서는 '취해서 결혼하다'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란 말이죠. 

그래서 한 인격체를 영접한다 라는 것은 
단순히 물건처럼 내 소유로 삼는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그럼 무슨 뜻이냐면, 나의 인생 전체와 
저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하나로 묶였다.. 라는 뜻입니다.

▲1. 하나로 묶이고, 엮이고, 융합되어 버린 것.. 이게 '영접하다'의 의미입니다.
즉 '전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 하는 게 그런 뜻이라는 거죠.

'전인격적인 관계'란 뭐냐면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 라는 뜻입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삶의 모든 부분에 내가 영접(람바노)한 그녀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집에 있을 때만 내 아내가 아니고, 
직장에 나가서 일할 때도, 아내는 내 곁에 없지만, 여전히 아내와 묶여있는거죠.

집 밖에 나가서 직장에서 일할 때도 나는 유부남/유부녀입니다.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전인격적인 관계는(부부관계는), 내 삶의 방향과 목적, 직장의 선택, 
거주지 결정하는 거.. 당연히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죠. 
어디 살지를 나 혼자 정하겠습니까? 결혼했으면 배우자하고 같이 정해야죠. 

잠자는 시간도 바뀝니다. 
저는 원래 올빼미 스타일이고, 집사람은 새벽형이거든요.
저는 모든 일은 밤에 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잠들어야 
그때부터 일을 시작할 수 있거든요. 평생을 이렇게 살았거든요. 

근데 저희 집사람은 새벽형이에요. 그러니까 어떡합니까. 
이건 서로 조율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잠자는 시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취미생활 등 모든 삶의 모든 부분에서.. '영접하고 나면' 영향을 미칩니다. 
왜냐면 배우자를 제가 영접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할 때, 
자기 평소에 자주 만나던 친구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고려 하십니까? 
'이민갈 때 내 친구도 데리고 가야지' 하면 이상한 사람이죠. 
이런 관계는, '전인격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전인격적인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접(람바노)'에 담긴 뜻입니다. 

나와 전인격적인 관계에 있는, 결혼한 배우자는 
모든 영역에 걸쳐 나와 함께 하고, 모든 영역을 나와 함께 고려합니다. 

이민갈 때도 당연히 같이 가지요. 
'따라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마라' .. 이건 나쁜 사람이죠. 
내가 '영접한' 예수님과의 관계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미국의 유명한 프로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란 사람이 있죠.
제가 농구 보는 것을 좋아해서 잘 압니다. 
이 선수가 몇 년 전에 다른 팀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이 선수가 어디로 갈지, 기자들과 팬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결국 LA 레이커스 로 갔는데, 그때 했던 인터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LA 레이커스 로 옮기면서 '내가 이 팀으로 옮긴 이유는, 
우리 가족이 너무 LA에 살고 싶어 한다'고 했어요. 
그게 다른 팀으로 이적한 이유였어요.

이 농구 슈퍼스타가 팀을 정한 이유가, 자기 가족이 
LA에 살고 싶어서 그랬다는 거예요. 

르브론 제임스도 아내를, 자녀를 람바노(영접) 했기 때문에 
자기 가족이, 자기 소속 팀을 정하는 미래까지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죠.
이게 '예수님을 영접한다'라는 말의 의미라는 거죠.

영접하는 것은, 나의 인생 전체와 예수님의 인생 전체가
하나로 엮이는 거예요. 
예수를 내 삶의 전인격적인 관계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알기 쉽게 표현하면, 마치 결혼관계 처럼 되는 거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비유가 '결혼 관계'입니다. 
그게 제일 비슷하기 때문에, 전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요.

영접하는 것이.. 그저 '지적 동의'가 아니라는 것이죠.
정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그 예수님이
내 삶의 구석구석 영향을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 하셨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를 영접하는 것은, 교회에서만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집이나 직장에 가서는, 내 맘대로 살고... 이렇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나, 회사에서 일할 때나, 컴퓨터 앞에 있을 때, 
취미생활 할 때, 먹을 때, 잘 때도... 그 분은 내 삶의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분입니다. ... 그게 영접한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두 인격체의 삶이 엮여서 하나가 되는 거에요. 
완전히 융합되어 하나가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이상 독립된 나 하나.. 라는 건 없어요. '우리'만 있는 거죠!

▲2. '영접한다'는 것에는 포지션이 있습니다. 
그 관계를 규정하는 호칭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결혼을 했어요. 그러면 남편, 아내 라는 호칭이 있지요. 

또는 내가 세상에서 누구를 영접했다면 '왕, 회장, 상사' 등의
호칭을 새로 갖게 되는 거죠. 내가 그를 영접해서 새로운 관계가 됐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어떤 포지션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일까요?

신랑도 되고, 왕도 되고, 구세주도 되고, 친구도 되시는데...
그러면서 전혀 새로운 관계로 예수님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예수님이 나에게 누구이신가?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깨달아 갈 때마다
내 인생에 새로운 삶이 계속 열리게 되는 거예요.

-구세주로서 예수님과 관계를 맺다가
-아버지로서 예수님과 관계를 새로 맺게 되고
-으로서 관계를 맺게 되고
-나의 모사로서 관계를 맺게 되고
-친구로서 예수님과 관계를 더해서 맺게 되고
-신부로서 관계를 더해서 맺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덩달아 나의 위치도
-구원받은 자, 
-왕의 자녀
-나의 모사(카운셀러, 조언자, 전략가)
-왕의 신하
-왕의 친구
-왕의 신부.. 로 이렇게 자꾸 새로운 삶이 점점 더 열리는 거죠.

사9:6에는 예수님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묘사되어 있죠.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기묘자 Wonderful 이시고, 모사 Counsellor 이시고, 
하나님이시고, 아버지시고, 왕이 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친구'로 묘사합니다. 
요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또 예수님을 '신랑'으로 묘사하십니다.
막2: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그 외에도 많죠.
그러니까 성도는 예수님을 만날 때, 
굉장히 넓고 다양한 관계로, 우리가 만나가고, 알아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평생 우리가 알아가도, 계속 새롭고, 또 새롭고, 더 새로운...
내가 주님과 아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는 거예요.

물론 영접하는(요1:12) 그 순간에, 이 모든 관계를 한꺼번에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이후로 일평생.. 그 예수님과 전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영접한다'는 말에 담긴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그 이후로 예수님과 전혀 (구주, 왕, 모사, 친구, 아버지, 신랑) 관계로 
발전해 가지 않는다면, 계속 사귐이 없어지고 심지어 사귐이 중지된다면..
그건 '영접한 것이 아닌' 게 되죠. '지적 동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결과를 보면, 그때 예수님을 진짜 영접했는지/못했는지.. 아는 거죠)

▲3. 예수님을 왕으로 진정 영접한 성도는
반드시 '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왕이신 그분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거예요. 
순종하지 않는 신자들이 많죠. 그것은 '영접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나중에 요한복음을 계속 보면 알겠지만,
요한복음이 굉장히 강조하는 주제 중 하나는
"예수가 왕이시다"는 거죠.
그 말은 '너희가 순종해야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뒤에 가서 살펴 볼 텐데, '믿는' 것과 '순종'하는 것을 동일하게 봐요.
순종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거라고 봐요.

왜요? 
믿는다는 것은 왕으로 영접하는 것인데,
그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왕으로 영접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거죠. 왜냐면 왕이시니까!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기를 거부한다.. 는 뜻이 되는 거죠.

▲4. 또 왕과 비슷한 개념으로, 예수님은 '주 Lord'가 되십니다.
'주(주인)'라는 건 뭐냐면, '내 모든 소유는, 시간과 심지어 생명까지
다 그 분 것이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영접한다'고 하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그분 앞에 드리고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는 
내 모든 것을 예수 앞에 드린다..고 하는 것을 포함하는 거예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어떻게 처음에는 전도지를 통해 전도를 받고, 
단 3~5분만에 예수님을 인스턴트 하게 '영접'했다 하더라도,
그게 진짜 '영접'이 되려면.. 차츰 주님의 '주님되심 Lordship'을
내가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죠. 그게 '영접'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접'은 강압적인 게 아니에요. 
비인격적인게 아니에요. 

왜냐면 그 분은 왕이고 주인이시고, 동시에 아버지, 신랑, 친구, 모사가 되세요. 

예수는 왕이시기에, 우리는 그분께 순종합니다. 
그런데 이 순종은, 단순히 힘의 논리에 의해 강압적으로 하는 순종이 아니죠.
그 은혜와 사랑이 너무 고와줘서, 자발적으로 하는 순종인 거죠.

'너무 싫은데 하여간 왕이니까 내가 해야지.. 안 하면 벌 받겠지!' 
이런 순종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치 자녀가 아버지를 신뢰하기 때문에, 
지혜로운 모사이시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분이니까
제일 좋은 것을 주시겠지... 그래서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순종은, 왕이라서.. 어떤 주종 관계에서 순종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아버지, 동시에 신랑이시고, 동시에 친구가 되시니까
어떤 상호 인격적 사랑과 신뢰에 기초해서 자원해서 '순종'하는 것이지요.

왕이지만, 동시에 아버지 라는 거죠. 주종관계의 의무적 순종이 아니라
신뢰관계에서 나오는 자원하는 순종이라는 거죠.
 
△그렇기에 영접하는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닙니다. 
단순히 종교를 새로 하나 갖는..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예수 영접 한다는 것은, 예수의 이름에 나의 온 인생을 다 묶는 것입니다.
살아도 예수와 함께 살고, 죽어도 예수와 함께 죽는 거에요. 

나의 모든 것은 예수님의 것이고 
나의 모든 소유도, 나의 모든 건강도.. 다 예수님과 함께 공유하는 거죠.

여러분, 어차피 결혼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이 결혼하기 전에 누렸던 
개인생활, 사생활은 없어지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게 억울하거나 불편한 게 아니라, 새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잖아요! 
굉장히 축복된 선택(동시에 받아들여짐)이라는 거죠.

△그래서 '영접'이 부담스러우십니까? 
여러분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어요. 

나의 모든 것이 예수님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예수님 모든 것도 다 내 것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아주 의무와 순종만 있는 게 아니에요. 
여기에 놀라운 비밀이 있습니다. 

내 생명이 예수님 거면, 예수님의 생명은 내 거가 되요. 
내 소유가 예수님 거면, 모든 예수님의 소유도 내 거라는 거예요. 아멘! 

▲5.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과 가족이 됩니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멘! 
가족이 된다는 거죠.
이게 하나님이 우리가 맺고 싶어 하시는 관계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관계를 맺으시는데 어떻게 관계를 맺으시냐면
사랑과 신뢰를 기초로 완전히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너하고 나의 구분이 안 된다는 거죠.

왜냐면 서로를 람바노(영접) 하셨어요. 
인격과 인격이 그냥 이렇게 하나로 묶여져 버렸어요.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도 그렇다는 거죠.
예수와 하나가 되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족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거에요.
와우!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그래서 모든 하나님의 능력이, 소유가, 영광이, 존귀가  
나의 모든 능력, 소유, 영광, 존귀가 되는 거예요. 아멘! 

그래서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롬8:16~1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주님의 권능도 내 거고, 영광도 내 거고, 능력도 내 거고, 다 내 거라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그분의 고난도 내 것이라는 거예요. 위 말씀이 그 뜻이죠.

△예수님이 가지셨던 '부드러움'의 권세 (펀 글)
복음서에서 우리는 악령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악령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갖춰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영을 보기 위해서, 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영적인 사람은 영이 ‘맑은 사람’입니다. 삶이 영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신 바처럼 어린이들입니다.
또는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어린이들이 지닌 맑음, 
영혼의 순수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영적으로 변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눈빛은 더욱 맑아집니다. 인품이 더욱 고결해져만 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매는 점점 따뜻해져만 갑니다.

주변 사람들을 아주 편안하게 해줍니다.
지극히 겸손해서 적당한 때 물러날 줄 압니다.

결국 따지고 보니 이 시대 최고의 권위는 순수함입니다. 
맑음입니다. 정직함입니다.
겸손함입니다. 따뜻함입니다. 부드러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놀랍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권위는 세상 사람들이 권위와는 
철저하게도 그 맥을 달리 합니다.

그분의 권위는 경직, 뻣뻣함, 강요, 힘, 법에 의한 권위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인내, 긍휼히 여기는 마음,
결국 하나님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 권위입니다.

이런 사랑의 권위였기에.. 악령조차도 
예수님 앞에서 고개를 숙였던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전인격적으로 영접할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가족이 됩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 속으로  들어가게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영접하는 방법 자체는 어렵지는 않습니다. 방법이 어렵지는 않아요. 

나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그 십자가를 믿으며 
예수님을 진실로 나의 주님이 되어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그때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사람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 같은, 
태초에 어둠 가운데 빛이 비췄던 것 같은... 신비하고도 놀라운 변화이고,
이제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사람이 됩니다. 고후5:17

그 결과와 혜택은 엄청납니다. 
위에서 5가지만 정리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가장 알기 쉬운 예를 들면, 결혼해서 사는 것과 똑같아요. 
결혼하는 방법 모르시는 분 없잖아요. 그렇게 어렵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결혼의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은 거죠.
두 사람이 인격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니까요.
예수님을 영접해서 같이 사는 게, 쉽지만 ... 또 쉽지 않다는 것이죠.

많은 포기, 치르는 대가, 헌신, 양보, 순종, 따름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해서... 그런 동행하는 삶이 따른다는 거죠.

오늘날 이 땅에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진정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정말로 이 땅에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왕으로, 아버지로, 친구로, 남편으로, 모사로, 주 Lord로 
그렇게 영접한다면... 자기도 달라지고, 공동체도, 사회도 크게 달라질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가운데, 이 땅 가운데 나타날겁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축복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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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흥미로운 것은 11~12절에서 '영접'이란 말이 두 번 나오는데,
한글이나 영어로는 똑같은 말이지만, 헬라어는 약간 다릅니다.

요1:11절의 '영접'은, '취임한다' 이런 뜻입니다.    *파라람바노
기독교 신앙적 의미로서의 '영접하다'는 뜻이 아니고, 
그저 (왕이나 사절단을) '영접하다, 맞이한다' .. 라는 뜻이고요.

예수님은, 그저 랍비, 그저 율법교사.. 그런 분이 아니라 
'창조주'이시고, 창조주 라는 말의 뜻은   :10
'왕'이시라는 거예요. 만드셨으니까 모든 피조물의 왕이신 거죠.

주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는 '나는 아무 관심 없으니까 그냥 알아서 해' 
이런 게 아니라,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려고 창조하셨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왕으로 취임하려고 오신 거예요.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려고 오신 거예요. (*말씀과 섬김과 십자가로 통치함)

문제는 자기 백성이, 온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취임을 인정하지 않은 거예요. 
그게 '영접하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11

예수님은, 개인의 구주 이전에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으로서, 세상의 주인으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재림하실 때는 이 의미가 훨씬 강해질 거예요. 

그런데 12절에서 사용된 '영접'은 (비슷하지만) 조금 의미가 다릅니다. 
한국말은 '영접', 영어로는 receive로 11절과 12절에 똑같이 번역되었는데 
원어는 단어가 약간 달라요.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절에서 왕이 이 땅에 취임하러 오셨는데 
그 백성이, 온 인류가 그 왕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12절에서  우리 말로 '영접',    *람바노, 취하다, 받아들이다 

무슨 말이냐면, 창조주 왕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세상은 그 왕을 거부했어요. 
그러면 사실은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것은.. 심판입니다. 
그게 당연한 수순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을 행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신 거예요. 
이제 우리에게 각 사람의 선택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예수를 영접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