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13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그 (살아)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지진에 살아남은 터키 국민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종종 살아가면서 지진을 겪습니다. 그래서 또 지진이 일어나면 ‘에이, 살다보면 의례히 겪는 일’ 정도로 간과하며 넘어가기 쉽습니다.
2004년 12월, 인도네시아 해저 지진, 쓰나미 (9.0) .. 23만명 사망
2005년 10월,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지역에 지진이 일어나 사망자만 약 5만~8만 명에 달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8.0) 8만명 사망(추정)
2010년 아이티 지진 (7.0) .. 23만 명 사망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지진 발생 때마다 한국교회는 구호 팀을 급파해서,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도우며 세상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 왔습니다.
최근 2023.02.06. 튀르키예 에서 또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 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으나, 매우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튀르키예는 2천년 전 사도바울이 활동했던 소아시아 지역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도, 튀르키예 지역에 분포해 있었죠. 학자들은 7교회가 있었던 도시들은, 대부분 지진으로 무너져서 현재 폐허로 남아있다고 봅니다.
빌라델비아는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종종 지진이 일어나던 곳이었습니다. AD 17년에 있었던 대지진은 빌라델비아 도시 전체를 파괴해버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빌라델비아에는 계속되는 여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집밖으로 뛰쳐나가야 했습니다. 지붕과 벽에 자기 몸이 깔리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되기 때문에 결코 다시 나가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계3:12
라오디게아는 부자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교통의 요충지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소아시아의 여러 곳을 연결하는 허브 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라오디게아는 금융산업으로 뜨면서 많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계3:17
그러다가 AD60년 대지진으로 도시 라오디게아가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요즘 관광지로 유명한 파묵칼레 근처라고 합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계3:16 그렇게 성경에 예언될 만큼, 그 지역에는 온천수가 많이 나왔던 거죠. 지진 활동이 그만큼 잦은 곳이라는 증거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예수님은 말세에 나타날 재앙적인 사건을 설명하시면서 ‘이 모든 것(전쟁, 기근, 지진)은 재난의 시작’이라 하셨습니다. 그것들은 "해산의 고통의 시작"입니다.
우리 말 ‘재난의 시작’은, 헬라어 원전에 ‘해산의 고통의 시작’입니다. 영어성경 NIV, NASB는 beginning of birth pains 으로 직역했죠.
‘해산의 고통의 시작’은 마지막 종말의 때에 대한 2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마지막 종말이 시작되었다.. 라는 것과 -그것이 아직 마지막은 아니다.. 라는 사실이죠. 마지막 종말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아직 완전한 마지막이 아니라 ‘종말의 시작’이라는 거죠.
어떤 사람은 ‘재난의 시작(해산 진통의 시작, 종말의 시작)’을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7년 환란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흔히 일반적인 종말론 이해에서 종말 사건에 대해 2가지 상반적인 입장을 동시에 취하는데. 그것은 바로 ‘임박성’과 ‘지연성’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이 내일이라도 당장 오리라는 ‘임박성’을 가져야하지만, 동시에 주님의 재림이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지연성’도 가지면서 종말에 대한 건강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경이 둘 다 증언하니까요!
인간은 재앙적인 사건을 직면하면, 곧바로 종말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의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대한 어쩌면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24:3~6절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바는 정반대입니다. 한 마디로, 너무 허둥대거나 소란을 일으키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제자들은 시대의 끝과 그분의 재림을 경고하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24:3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임박했다’도 아니고, ‘느긋하다’도 아닌 ‘재난의 시작이다’ 였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임박성’과 ‘지연성’을 둘 다 의미한다고 보는 거죠.
▲그렇지만 또 요한계시록에는, 이 세상은 마지막에 <지진>으로 무너지고 망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국지적 지진은 ‘종말의 시작’이지만, 마지막 세상 종말에는 ‘전 세계적으로 지진’이 일어나고 다 무너질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계11:13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계11:13절과, 16:20절은 지진이 점층법으로 증폭되었네요.
계16:18~20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 데 없더라’
계6: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계6:14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지진이 나서)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여섯째 인 seal도, 일곱 나팔과 마찬가지로.. 여섯째, 일곱째는 인/나팔/대접 재앙에 있어서 마지막 시기입니다. 그래서 부분적 지진이 아닌 ‘완전 지진’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마지막에는.. 지진으로 끝날 것이 예언되어 있다는 거죠. 국지적 지진이 계속되다가, 종말에는 전 세계적 지진이 일어난다는 거죠.
◑참고로, ‘재난의 시작’ 이후에 벌어질 사건은?
마24장을 계속해서 보면, ‘재난(종말)의 시작’ 이후에 벌어질 사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성도들의 환란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24:9
민족주의, 이슬람원리주의 등이 발흥하면서, 반작용으로 기독교 소수 집단들이, 인도,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 엄청난 핍박과 위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3) 적그리스도의 출현 마24:15
4) 대환란이 시작, 마24:16~21
위의 넘버링은, 성경 순서대로 설명했지만 꼭 그게 시간의 발생 순서를 의미하진 않아 보입니다.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겠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약한 강도로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강도가 앞으로 점점 더 증폭되겠지요.
◑지진 같은 재난의 뉴스를 볼 때, 성도의 자세
▲1. 항상 종말을 깨어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2004년 12월 남부 아시아의 쓰나미 대재난이 있은 지 몇 달 후에 사람이 사는 땅으로서 지진 진원지에서 가장 가까운 시무엘루에 섬의 놀라운 생존 이야기가 밝혀졌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지진 발생 후 반시간 만에 15m 높이의 파도가 들이 닥칠 때 이 외딴 인도네시아의 섬에서는 인구가 7만5천 중에 7명만 죽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 섬의 사람들은 조상들이 이야기한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고 항상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섬은 1907년에 큰 파도가 밀려와서 수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경고하였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바다에서 밀려 올라올 때는 지체 없이 높은 산악 지대로 피신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십 년에 걸쳐서 그 섬의 주민들은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2004년 쓰나미의 이상 징후가 보이자마자 곧바로 조상들의 경고를 기억하고 높은 지대로 피신하여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수많은 위기경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고 종말의 재앙으로부터 재빨리 피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죄가 가져다주는 파멸로부터, 피신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깨어서 준비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마24:42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는 때에 인자가 오리라.’
튀르키예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그 날 새벽 4시에 지진을 맞았죠. 똑같이 우리들도 새벽에 고요히 자다가도, 재난과 부름을 당할 수 있고, 해외여행 중에라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야!’ 하지 말고, 예수님 말씀대로 ‘늘 깨어 있고, 천국 갈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너희가 어찌 이 시대를 분변하지 못 하느냐?” 눅12:56 라는 주님의 책망을 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 튀르키예를 흔드시는 하나님 과거에 중동 이슬람의 맹주는 이란(시아파)과 이라크(수니파)였습니다. 그런데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로, 이라크가 힘을 잃으면서 그 자리를 계승한 나라가 바로 튀르키예 이며,
사실 중동 이슬람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니파 이슬람의 지도자 나라로 자처하고 있습니다. (*전세계 이슬람의 93%, 15억 추산) 인구 수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튀르키예가 수니파의 맹주국이죠.
지금 터키의 기독교 인구는 0.0075%, 약 6천 명이며 극소수입니다, 99% 이상의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상당수는 이슬람교를 표방하는 무신론자로 추정됩니다만, 이슬람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적으로 이슬람 문화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기독교는 핍박 속에 놓여 있습니다. 소수의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드러내기 어렵고,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차별을 받게 됩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터키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소망하며 믿음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가족들과 친구들은 등을 돌리고 그 사람을 멸시합니다. 나아가 직장을 잃거나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죠.
그 가운데 튀르키예에는 한인 선교사가 1백 명 가량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서, 전세계가 튀르키예를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튀르키예를 위해 기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광범위한 피해지역으로 인해 이재민이 1천만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제 앞으로 튀르키예에 대규모 구호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지진으로 마음이 낮아지고 겸손해진 튀르키예 국민들이 기독교에 대해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그곳에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슬프고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닫혀진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면 그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요, 그들의 영생에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계11: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그 (살아)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이렇게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튀르키예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3.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눈여겨 보십니다.
마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2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런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뉴스를 접할 때면 우리는 ‘국가가 해야.. 단체가 해야.. UN이 해야.. 기업이 해야..’ 하고 자꾸 큰 단체에 짐을 미뤄버리고, 그 짐을 나눠질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죠.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일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생각날 것입니다. 아래 글에 보면, ‘구호 대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도 그 중에 포함되겠죠. 구호 활동 하는 일이 너무 위험하니까요!
◑성경에 나오는 “지진”
▲자연 재해로서의 지진 구약성경에도 지진 기록이 나옵니다.
암1:1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여기서 지진이 언급된 것을 보면, 상당히 큰 지진이었던 것으로 봅니다.
▲긍정적 의미의 지진 1)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지진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왕상19:11~12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마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28: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2) 지진은 하나님의 응답, 하나님의 역사 work 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지진은 그야말로 천재지변으로서 지각의 판과 판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지만, ‘때로는’ 하나님이 어떤 역사를 일으키실 때, 지진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계8:5, (땅 위에 응답이 나타남)
행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29: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슥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 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지진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위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종말에 예루살렘에 큰 지진이 있을 것임)
4) 하나님의 징벌로서의 지진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이 지진으로 인해 땅속으로 함몰되어 버렸죠. 민16:31~32
◑그 외 지진 관련글
♣필리핀 레이테 지진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 2017.07.07.
※이번 튀르키예 지진 관련 보도가 너무 적어서, 다른 관련 보도를 통해서.. 현지에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리라 봅니다.
리파토氏 “단 돈 1페소도 들고 나오지 못했어요!” 28세인 농부 리파토 씨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다행히 자기 목숨은 건졌지만, 집에 있던 아내와 아들과 아버지를 잃었다.
그는 2006년 2월 17일 오전 10시 경 풀밭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땅에서 약한 지진을 느꼈고, 이어지는 굉음을 들었다. 눈을 들어보니, 마을 뒷산이 갈라지고, 진흙더미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는 필사적으로 달려서 도망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진흙더미가 돌맹이들을 튀기며 도망치는 그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달린지 십 분이 지났을까?(실제로는 더 짧았을 것)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는 자기 마을이 순식간에 진흙더미에 파묻혔고, 산사태가 난 자리에는 그 흔한 나무들이 단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 집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는 아내와(26세) 아들(2세)과 아버지(50세)가 계셨는데 말이다.
그는 아들 카일이 열이 있어서 약을 사러 나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가, 마침 풀밭에서 풀을 뜯던 자기 집 소를 돌보던 중 산사태를 발견하고는 도망쳐서 구사일생 자기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모든 집들이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군요. 어떻게 한 순간에 집들이 다 이렇게 사라질 수 있습니까? 물로 씻은 듯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는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진술했다.
리파토 씨는 지금 사고가 난 기온사우곤 마을에서 7킬로 떨어진 읍사무소에 마련된 임시대책본무에서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들고 나오지 못했어요, 단 돈 1페소(20원)도요!” 라고 그는 신문기자에게 하소연했다.
또 다른 생존자인 다리오 리바탄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치 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소리가 컸어요.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것이 부서져 쏟아졌어요. 집은 한 채도 보이지 않는군요!”(매몰된 집은 약 4백 가호로 추정)
인근 마을에 사는 또 다른 증인 가베즈에 의하면 산사태가 나기 사흘 전에, 한 낯선 늙은 여인이 그 지역 몇몇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비극적 사건이 곧 발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일은 꼭 있습니다. 911때도 있었죠)
“그 여인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는데, 학교 선생님도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외지인이기 때문 이었다. 도리어 사람들은 그녀를 조롱했다.” 이렇게 증언한 가베즈는 이번에 사고가 난 기온사우곤의 인근 마을에 산다.
가베즈는 집을 나서서 길을 걸어가는데, 땅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즉시로 그는 굉음을 들었는데, 마치 헬리콥터 엔진소리 같았다고 한다. 즉시 소리 나는 쪽을 보니, 그는 큰 산의 일부가 갈라지면서 쏟아져 내렸고, 그것은 이웃 마을인 기온사우곤 쪽이었다.
“흙이 산에서 쏟아져 내렸어요. 산 한 쪽이 패이더니 그것이 천천히 그리고 점점 커졌어요! 저는 당시 우리 아이와 같이 있었는데, 점점 커지더군요. 그것은 불과 몇 초 사이에 일어났어요. 그것을 보자마자 저는 우리 가족들과 함께 도망쳤어요. 그것이 우리 마을에도 일어날까봐 겁이 났던 것이지요.” 라고 가베즈는 말했다. 지진계에 가벼운 지진이 탐지된 것은 사실이었다. 10시 36분 오전이었다.
♣쓰촨성 재난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감사하다! (펀 글) -구호활동에 참가했던 어느 목사님의 간증
나는 이번에 중국 쓰촨성 지진 현장을 구호 방문 하면서, 거기서 많은 죽음의 현장을 보면서, 노아의 홍수 재난을 연계해서 생각하게 되었는데...
내게 생명 있음으로 인해 감사를! 제가 재난의 현장을 찾아다니면서 체험한 것인데,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생명이 있으면... 냄새가 안 난다. 안 썩는다. 생명이 없으면... 고약한 냄새가 난다. 썩는다.
생명이 있으면... 안 무섭다. 생명이 없으면... (시신을 보면) 무섭다.
노아는, 홍수 심판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면서 자신과 가족에게 생명을 주신 것을 보고 너무 감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땅에 내리자마자,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를 드렸다. 창8:20
여러분, 내게 생명이 있음을 인하여, 춤을 추며 감사할 수 있게 되시기 바란다.
미얀마 쓰나미, 중국 쓰촨성 지진... 이런 곳을 방문해 보면, 내게 생명이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절실히 깨닫게 되는데...
(구호 목적으로) 재난 현장에 가보면,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구호팀을 보내더라도, 위해서 뒤에서 항상 기도해 주셔야 한다.
제가 중국 청도에 도착해 보니 *청두 : 쓰촨성 省都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연습이 아닙니다. 진도 6~7도의 여진이 오늘과 내일 중에 발생할 것입니다!”라는 다급한 방송이 계속 TV에서 흘러나왔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 민방위 방송을 연상케 했다.)
청도 공항에서 비행기에 내려서 대합실을 빠져나오려는데, 거기에는 공항으로 이불 싸들고 피신 온 사람들이 청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팀도 (비교적 안전한) 공항에 진을 쳐야 하나?’ 라는 생각에 우리도 얼른 공항 청사 한쪽 구석에 가방으로 우리 영역을 일단 확보해 두었다.
그러다가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고속도로가 참 볼만 했다.
우리가 차를 타고 청도 시로 진입하는 차선은 텅 비어 있고, 반대로 청도에서 차타고 빠져나오는 차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득 찼다.
사람들은 최대한 거기를 멀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데, 우리 일행은 그 물결을 거슬러 들어가고 있었다.
▶5층짜리 숙소를 잡았는데, 손님들은 다 밖에 나와 있었다. 혹시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질까봐... 우리는 로비에서 1층을 달라고 사정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부분 대피하기 빠른 1~2층에 투숙하고 있었고, 3층부터 비어 있었다.
호텔 직원들도 ‘외국인’ 받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혹시 다시 사고라도 나면,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봐 몸 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가장 안전하게 보이는 길바닥(건물은 무너지니까)에서 자려는데, 우리가 소지한 구호금이 문제였다. 길에서 강도 만날까봐... 그래서 할 수 없이 3층에 방을 한 개 빌려서, 짐을 거기에 두고, 우리 일행들은 밖에서 자기로 했다. 그래서 방에 짐을 두러 올라갔는데, L(부)목사는 일이 어떻게 되든지, 자기는 방에서 자겠다고 드러누워 버렸다. 나(담임목사)도 그냥 그 방에서 자기로 했다.
그날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했냐 하면, 자꾸 여진 방송이 나오니까 산모들이 병원에서 나와서, 병원마당에서 밤을 지낼 정도로 모두들 떨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L목사는 옷을 다 입고 자고 있었다. 그는 밤에 여진이 있어서, 자다가 깨서 황급히 옷을 차려 입은 것이다.
그리고 막 저를 흔들어 깨웠다고 한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흔들리긴 뭐가 흔들려? 그냥 자자!” (그런데 나는 전혀 기억 안 난다.)
▶이튿날부터, 우리는 재난 현장을 찾아다녔다. 구호소마다 구호품이 가득 쌓여있었다. 물자는 넉넉하게 보였다.
그러나 비교적 시내와 가까운, 구호대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그렇고, 산길을 타고 올라가서, 도심에서 떨어진 마을에 가 보니까, 거기는 멀어서 그런지, 구호품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다. (가는 길에 쩍쩍 갈라진 길을 보니까, 가슴이 섬짓했다. 방문도 쉽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TV뉴스를 보니, 우리가 다니던 길 조금 위쪽이, 여진으로 인해 산사태가 나서, 도로를 복구하던 군인 2백 명 정도가 흙더미에 매몰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런 지역을 다음 날 차를 타고 다시 들어간다는 것은... 진짜 담력이 필요했다.
TV뉴스를 못 본, 모 집사는 코를 골며 잤지만, 그 뉴스를 본 나는... 그날 밤 머리 속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나는 일단, 일행들에게 그 뉴스 내용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그날 밤에, 나는 평소보다 더 심하게 웃기고 장난을 쳤다. 긴장을 풀고, 두려움을 쫓기 위한 나의 오버액션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날, 우리 일행은 예정했던 산지 마을 구호활동을 감행했다. 언제 도로가 갈라지고, 산이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긴장이 맴돌았다...
이렇게 구호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제 방에 들어가 보니 집이 왜 이렇게 편안하고, 밝고, 좋은지... 새삼 깨달았다.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이렇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 감격스러웠다.
여러분, 무엇보다 <내게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감사함을 느꼈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을 보고,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구호활동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여러분, 시어머니가 좀 힘들게 하시는가? ... 아무 것도 아니다. 남편이 마트에서 장 볼 때 안 따라 가 준다고? ... 아이쿠!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의 절을 열 번 해야 한다. 남편이 좀 늦게 들어온다고? 늦게라도 들어와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거기는 늦게라도 들어올 남편이 지진에 파묻혀 죽어 버렸다)
여러분, 남편이나 아내에게 이렇게 인사해 보시라! “여보, 이렇게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요!”
▶미얀마는 지금도, 아직까지 사람이 죽어 나간다고 한다. 굶어서! 지난 번에 제가 가서 보니, 20분 배타고 가면서 본 떠다니는 시신이 42구였다. 거기 바닷가 120개 마을에 주민들 절반이 살았고, 절반이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용케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 굶어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때 우리가 사건 발생 8일째 갔었는데, 미얀마 정부가 어떤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정부에서 구호활동을 드디어 허락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수송선들, 거기에 담긴 구호물자들이 지금 나눠지고 있다고 한다. 구호단체들은, 너무 급한 나머지 (가장 신속한) 공중투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하루라도 빨리 살리기 위해서다.
▶여러분, 이런 일을 남의 얘기처럼 하지 않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강력한 도구가 있는데, 바로 ‘기도’이다. 한국교회 봉사단등 여러 팀들도 기금이 꽤 많이 조성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미얀마로 갈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어서, 애만 태우고 있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막힌 길을 뚫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뚫릴 것이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이 소중한 일에, 쓰임받게 되기를 바란다. <이 단락, 2008.05.25. 인터넷 설교 중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