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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2. 15. 16:34

◈삼상2장 해석 및 주석                                      HANGL NOCR - 한글 주석

<개요>
1~10절에는 한나의 기도,
11~36절은 사무엘과 엘리의 아들들의 대조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진정 '마음이 슬픈 여자'(1:15)의 기도를 기억하사 아들을 허락하신 여호와께 자기 아들을 영영히 드린 후(28절), 한나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내적 감정을 토로한 이 기도는 단순한 감사의 찬양을 넘어 예언적이고 구속사적 성격을 지닌 찬양의 노래요 성령의 감화시였다. 따라서 이 노래는 기도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주에 대한 감사의 증거요, 주의 영광의 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나의 기도’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기도-테필라)는 '기도'(prayer)란 뜻 외에 '찬가'(hymn),'기원'(supplication)이란 뜻도 지닌다)
'한나의 기도'는 후일 '마리아 찬가' (눅 1:46-55)의 예표가 되며, '사가랴 예언'(눅1:67-79)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구약 시대에 이와 비슷한 감사와 구속의 찬가로서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삿 5:1-18, 21)와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삿5:1-31)가 있다.

'한나의 기도'는 사무엘서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다. 
삼상2:10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이 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하고, 왕정시대를 내다보며 
그리고 메시아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시이다. 

'내 마음...내 뿔..내 입' 
그녀의 '마음'은 괴로움(1:10)과 슬픔(1:15)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뿔'은 먼지 가운데서 짓밟힘을 당하던 비참한 처지에서(1:6) 다시 높아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녀의 '입'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처량한 신세에서(1:13)다시 크게 열려져 자신의 원수에 대하여 여호와의 은예를 마음껏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뿔'은 이것 달린 동물이 자신의 머리를 높이 쳐들고 힘을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다니다는 점에서 '힘', '능력', '권위', '자부심', '긍지', 등을 상징한다(신 33:17,  시 75:5,  89:17 등). 따라서 무자시(無子時)에 대적 브닌나에 의해 무참히 이 뿔을 짓밟힌 한나는 이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뿔을 다시 높이 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혹자의 생각처럼 여기서 이 뿔은 '교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이는...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이 구절은 한나의 기쁨, 곧 앞에서 언급된 3중적 대구법으로 표현된 한나의 벅찬 감격과 희열이 궁극적으로 '주의 구원'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구원'(예슈아)은 
1)일차적으로는 무자시에 당한 온갖 수모와 멸시로부터의 구원이겠지만, 
2)그 구속적 의의상, 사무엘을 통한 타락한 종교적 상황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구원이며, 
3)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있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의 '신실성'(信實性)을 노래한다. 왜냐하면 '반석'(Rock)이라는 단어는 구약 전체를 통하여, 언제나 변함없이 성도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이루시는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상징적 명칭으로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신 32:4,  시 19:14,  합 1:12).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교만한 말...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은 한나의 대적 브난나가 그랬듯이(1:6),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이나 섭리를 무시한채 자신의 소견대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멸시하며, 또한 자신을 높이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은 마음이 슬픈자의 마음을 더욱 짓밟으며,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의 심령에 못을 박을 뿐 아니라, 나아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말이므로 마땅히 금지되어야 했다. 한편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은 동의어인데, 여기서 이처럼 두 단어가 반복 사용됨으로써 그 의미가 한결 강조되고 있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 이시라' 
'지식의 하나님'(엘 데오트)은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연 법칙과 인간 사회의 이성적 법칙, 그리고 그 법칙들에 따라 벌어지는 원인. 과정. 결과까지도 완전히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분임을 시사해 주는 말인 것이다.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이말은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한 어떤 행동의 내변적 특성까지도 철저히 파악하고 계심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실 한나의 대적 브닌나는 한나의 불임(不姙)을 그녀의 사악성 내지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증거로 오판하여, 그녀를 얕잡아 보고 격동시켰다<1:6, 7>. 또한 브닌나는 자신의 의도대로 한나가 격동됨을 보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교만한 말을 사람들에게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브닌나의 그러한 사악한 속 마음과 행도의 성격을 파악하셔서, 당신의 공평하고도 의로운 기준에 따라 그녀를 판단하셨을 것이다(잠16:2,  21:2,  24:12).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본문에서 한나는 인간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홀로 주관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거룩성과 전지성을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

'용사의 활은 꺾이고' 
'활을 거머쥔 용사'로 상징된 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며, 또한 그러한 자신의 힘을 괴시하기를 일삼는 교만한 자들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징벌에 따라(3절), 완전히 쇠망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시 34:21,  37:35, 36,  잠 14:32).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넘어진 자'는 힘이 없고 연약하여 힘센 악인들 곧 활 가진 용사들에 의해 무참히도 짓밟혔던 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힘으로 띠를 띠도다'란 말은 넘어진 자가 이제 일어나 전쟁을 준비하고 출전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힘을 다시 회복한 활기차고 강건한 상태를 가리킨다(엡 6:14).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이 말은 일차적으로 한나 자신이 체험한 기쁜 감격을 노래한 것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여기서 '일곱'은 '신적 충만(완전) 수'를 상징하는 숫자이니 만큼, 이는 곧 자녀 출산과 간련해서 한나가 받아 누린 하나님의 최대 축복을 상징한다(룻 4:15). 비록 당시에 한나는 사무엘 한 명만을 자식으로 낳았지만, 그러나 그 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 가운데 낳은 자식이었으므로, 그 당시 한나는 마치 '일곱' 아들을 낳기라도 한듯이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이전에 한나가 당했던 것처럼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슬픈 마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하시고 큰 기쁨으로 축복해 주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이것은 분명히 브닌나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즉 브닌나는 한나가 아들을 낳음에 따라 이제 교만한 말을 더 이상 떠벌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된 것은 실로 그녀가 쇠약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더 나아가 이 말은 브닌나와 같이 자신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그렇지 못한 자들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모든 악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자랑하던 것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더욱 쇠약하게 될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그런데 많은 성경 주석가들은 본 구절 속에서 영적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즉 브닌나와 한나의 관계를 사도 바울이 구속사적으로 서술한 바 하갈과 사라의 관계로 이해하여(갈 4:21-31), 곧 브린나는 많은 자녀가 있으나 약속을 받지 못한 소망없는 여인으로, 그리고 한나는 비록 처음 잉태치 못했으나 약속을 받은 소망있는 여인으로 각각 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나를 장차 많은 열매를 맺을 기독 교회의 모형으로 이해하고 있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본절은 동의적(同意的) 대구법 방식의 표현이므로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와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는 동일한 의미이다. 이같은 수사학적 표현은 동의적 내용을 반복 엄급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히브리 시(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시 1:1,  2:1). 
따라서 여기 한나의 기도 속에서 '음부에서...올리기도'라는 언급이 있다고 해서, 한나가 부활 사상에 대하여 말했다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본절을 대구법적 표현으로보고 그 의미를 고찰할 때,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라는 표현도 그 앞부분처럼 단순히 모든 인간의 생사(生死)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빈부(貧富)의 문제 및 귀천(貴賤)의 문제 역시 전적으로 주장하시는 분임을 증거해 준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진토...거름더미' 
이 표현들은 극도의 수치와 천대 가운데 있는 비천한 자의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서는,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겸허한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그러한 비천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영화롭게 면류관을 쒸우신다. 그 실례로 우리는 요셉과 모세, 다윗과 다니엘 등을 들 수 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노예 상태의 감옥으로부터 귀족 상태의 궁궐로 인도하셨고, 또한 보잘 것 없는 목자의 지팡이 대신 영광스러운 왕의 홀(笏)을 쥐어 주셨던 것이다.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이것은 이 세상이 기둥에 받쳐져서, 공간에 달려 지탱되고 있다고 보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과 잘 부합된다(욥 26:7). 결국 위와 같은 사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것은 곧 이 세상의 기초를 놓았을 뿐 아니라, 그 기초 위에 만물을 조성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 만물을 유지. 운행. 섭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후일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발을 지키실 것이요' 
성경적 표현상 '실족' (신 32:35)과 '넘어짐'(시 116:8)은 곧 패배나 차락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따라서 '발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패배나 타락으로부터의 안전한 보호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Klein).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이 표현은 (1) '흑암'이 성경에서 종종 '음부'(6절)처럼 죽음 혹은 멸망을 상징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에서(시 31:17), 이 말은 악행자들에 대한 죽음 또는 멸망의 심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성군(다윗)을 통한 모든 이방 세력의 정복을 암시하고(삼하 8장), 궁극적으로는 메시야(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를 통하여 모든 사단의 세력을 꺾은후 이룩될 하나님 나라의 의(義)의 통치(고전 15:25)를 가리킨다.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이것 또한 앞의 문구와 같이 (1) 근시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의로운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실 것과 (2) 원시적으로는 영원한 평강의 왕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이런한 점에서 '한나의 기도송' 은 메시야적 사상을 담고 있는 복음적인 예언의 노래요, 성령의 감화송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불을 높이시리로다' 하
나님께서 당신이 세우신 왕의 권위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은자'(마시아흐)는 왕을 가리킨다(왕상 1:30). 그런데 성경은 왕 이외도 또 다른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 대하여 언급하다. 즉 선지자(오아상 19:16)와 제사장(출 40:13)이 바로 그들인데' 이들 모두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구별되어 임명된 자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 선지자, 제사장은 장차 영원히 기름 부음을 받을 자, 곧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서 완전히 실현시키실 '메시야'(Mes-siah)-헬라어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들로 볼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한나의 기도는 한나 자신의 뿔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기도<1절>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왕의 강성은 곧 온 백성의 번영과 안정, 그리고 윤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로 왕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을 때 백성들 개개인들도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케됨을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성도들은 그리스도(메시야)안에서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그 아이는...여호와를 섬기니라' 
'섬기니라'(솨라트)는 특별히 제사장적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다(18절,  3:1,  출 28:35, 43,  29,  30,  민1:50). 그런데 여기의 '섬김'은 결코 일순간적인 의미가 아닌, 엘리의 사망 때까지 혹은 사무엘의 전생애 기간 동안의 봉사를 가리킨다.

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관습은 이러하니 곧 어떤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냄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실로에서 그 곳에 온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여기서 '제사'(peace-offering)에서는 제물중 기름 부분만을 번제단에 태우고 (레 3:3-5), 살코기 부분은 제사장과 제주(祭主)가나누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여기의 '고기'는 제사장과 제주에게 나뉘어질 수 있는부분을 가리킨다. 이것은 삶아진 다음 제사장과 제주에게 각각 모세 율법에서 지정한 몫에 따라 분배되어야 했다.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자기 것으로 취하되' 두 아들들의 이러한 행동은 제주(祭主)에게 당연히 돌아갈 몫까지 침범하는 분명한 죄악이었다. 레위기 율법에 따르면 제사장은 제사 후 제물의 가슴과 오른쪽 넓적 다리를(레 7:28-36), 그리고 신명기 율법에 따르면 앞 넓적다리 즉 어깨부분, 부 볼, 그리고 위(胃)를 (신 18:3) 자신들의 몫으로 취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나머지 부분은 마땅히 제주(祭主)에게 돌려져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몫만을 정확히 취하지 아니하고,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조건 자신의 몫으로 삼은 것은 결국 제주(祭主)의 몫에 대한 침범 행위이며, 나아가 하나님께서 명하사 세우신 율법을 무시하고 범하는 망령된 짓이었다.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날 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히브리 원문(Masoretic Text)에는 본절 초두에 그 의미를 강조하는 불변사 '감'('더구나', '게다가'란 뜻)이 나와 두 아들들의 극한 죄악상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고기를 내라' 일반 다른 제물로도 물론이거니와, 화목제의 희생 제물도 반드시 여호와의 몫인 기름(fat) 부분이 먼저 번제단 위에서 태워져 여호와께 바쳐져야만 했다(레 3:3-5,  7:23-25,  17:6). 그리고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제사장 자신들의 몫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의 두 아들들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의 절차와 규정을 정면 부인하고 무시하는 극악한 범죄 행위였다.

'그가 네게...원하신다' 이것은 엘리의 두 아들들이 자신의 아버지 엘리 대제사장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음을 보여준다.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지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원하는대로 취하라' 
제사장의 횡포에 대하여 오히려 제사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먼저 제물이 바쳐져야 한다는 원칙을 설명한다. 아울러 자신의 몫에 대해서는 포기하겠다는 뜻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은 강제로 고기를 빼앗아 자신의 탐욕을 채운다. 이것은 당시 엘리와 그의 두 아들에 의해 주관되던 실로 성소 제사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 준다. 정녕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도자가 간절히 요청되던 시기였다.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의 두 아들들의 죄악은 단순히 제사 제물을 탐내어 그것을 탈취한 강도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맺은 언약과 구속의 제사 제도를 파괴하고 어지럽힌 신선 모독죄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18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앞서 언급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방자한 행동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저자는 이같은 대조를 통하여 (1)엘리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2) 새로운 지도자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편 '에봇'(eEphod)은 일종의 앞치마로서 소매 부분이 없는 긴 조끼 모양으로 생겼는데, 제일 겉에 입는 공식 제사 복장이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에봇'은 갖가지 아름다운 실로 수 놓아진 화려한 것이었으나(출 28:6-14), 일반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은 단순히 흰 색의 '세마포 에봇'(a li-nenephod)을 입었다(22:18). 그리고 이러한 세마포 에봇은 주요 종교 행사 때에도 사용되어진 것 같다(삼하 6:14,  대상 15:27). 아무튼 본절은 사무엘이 이제 본격적으로 제사 직무에 참여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19 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20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매 

본절에 언급된 한나에 대한 엘리의 축복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한다'(1:18)는 한나의 바램에 대한 엘리의 응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엘리의 응답은 서원을 변치 아니하고 귀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소에 바친 엘가나와 한나 부부의 신실성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제사장적 축복 행위일 것이다. 또한 엘리의 축복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한나에게는 사실상 자기와 함께 생활할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돌보시사 그로 하여금 임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권고하사...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한나는 사무엘 외에 3남 2녀를더 잉태하게 되었는데, 이는 시로 불임(不姙)과 무자(無子)의 설움을 겪은 한나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하나님의 크신 위로요, 풍성한 축복이었다.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여호와 앞에서'는 곧 '여호와의 면전에서'(in thepresence of the Lord)란 의미로서, 이는 사무엘이 육체적 성장 뿐 아니라 영적 성숙도 아울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 
여기서 '수종드는 여인'은 당시의 성소 규례를 따라 성소 내에서 일정한 직무를 부여받았던 헌신된 여인들이었음이 틀림없다(출 38:8). 그러나 성경은 이 여인들이 성소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자주 반복되는 희생 제사시에 반드시 수반되는 일, 곧 식기세척 및 그밖의 음식물 장만들의 잡다한 일에 종사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이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되어 성소의 일에 전념한 여인들이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동침하였음을 듣고' 
여기서 '동침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브는 원래 '눕다' 혹은 '잠자다'의 뜻이지만, 성경 용례상 대개의 경우 비합법적인 성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완곡한 단어이다(창 19:33,  35:22,  레 15:33,  18:22,  20:11).그런데 여기 이 단어는 강간 행위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홉니와 비니하스의 음행은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의 합의 하에 이뤄졌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일은 일면 이방 민족의 음란한 제의(祭儀) 풍습이 이스라엘 사회, 심지어 제사장 사회에까지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민 25:1-5>. 
그런데 이같은 악행은 이스라엘의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계속된 듯하다(왕하 23:7). 아무튼 제사장의 신분으로서 하나님께 헌신된 여인들을 더럽힌 엘리의 두 아들의 이 사악한 행위는 하나님을 심히 욕되게 한 것임이 분명했다(25절). 아울러 일반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그들로 실족케 한, 실로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었다(24, 25절).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범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찌할 권리나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관련된 문제에 중재자로 나서서 그 문재를 헤결할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범죄 행위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두아들에 대한 엘리의 책망 요지는 (1) 그들의 죄가 신성 모독죄에 해당되는 중대한 대신(對神) 범죄 행위라는 것이고 (2) 따라서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이 말은 여호와께서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회개할 가능성마저 고의적으로 배제 시켰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엘리의 두 아들의 나쁜 여론, 영적 지도자로서의 신분 등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마음이 완악해져 타락과 방종에 눈멀게 되자, 여호와께서 그들의 그러한 마음을 방치해 두셨고, 따라서 이제 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여호와의 무서운 심판만이있을 뿐임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더이상 개전(改悛)의 정을 보이지 않는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그들을 완악케 하셨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출 9:12 주석 참조.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여기서 본서 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악케 되는 징벌을 받은 엘리의 두 아들(25절)과 하나님에 의해 택함 받은 사무엘을 예리하게 대조시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와 인정받은 자의 특징을 날카롭게 부각시키고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는 하나님과 사람들로 부터 미움과 멸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눅 2:52).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하나님의 사람'(이쉬 엘로힘)이란 칭호는 사사기, 사무엘소, 열왕기서 등에서 약 40회 가량 나오는데, 대부분 '선지자'란 말과 동격으로 사용되었다(9:6,  삿 13:6,  왕상 12:22,  13:1-14,  왕하1:9-13,  5:8등). 한편 사악한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을 두 차례 대조시켰던(11,12, 25, 26절) 저자는 이제 '익명의 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의 신진 대사를 의한 서막(序幕)을 본격적으로 연다.

'너희 조상의 집' 이것은 엘리 가문이 속한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특히 제사장의 직분을 위임받은 아론의 가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익명의 선지자는 엘리 가정의 죄악을 책망하고 심판을 선언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셨던 크신 은혜를 먼저 언급한다(신 5:6).즉 그 은혜는 (1) 엘리 가문의 뿌리인 아론의 일가가 애굽의 바로 치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이며(출 4:27,  7:8), (2)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구출하셨을 뿐만 아니라(출 12:41, 42),특별히 모세와 더불어 유월절 규례를 준비케 하심으로(출 12:1-28), 장차 제사장 가문으로 삼고자 하셨다는 점이다(Keil, Fay).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내 제사장으로 삼아 그가 내 제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이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모든 지파 중에서...택하여' 이 선택은 특별히 아론의 일가에게만 베풀어진 하나님의 주권적인 귀한 은혜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조상 가문인 아론의 가문 위에만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출 28, 29장).

'모든 화제를...주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각종 제사 제물 중에서 제사 후 제사장들에게 돌아갔던 일정량의 분깃(응식)을 가리킨다. 이외에도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에게 돌려진 백성들의 십일조 중의 십일조를 받았다(민 18:26-29).이같은 각종 혜택에 의하여 제사장 가문은 모두 유족했고 부유했다.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대제사장으로서 엘리는 그 누구보다도 신본주의적 삶을 살아야 했고, 또한 성소의 규례를 유지시키는데 그 누구보다도 거룩한 열정으로 불타올라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신성한 제사 제도를 짓밟는 두 아들의 행위에 대해 점잖게 타일렀을 뿐(24절), 별다른 제재 조치를 취하지않았다. 이는 분명 엘리가 대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유기했음을 의미하며, 또한 인본주의적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두 아들의 범죄 행위에 엘리가 결부되어있듯이, 그들이 저지른 죄악도 이중적이다. 즉 (1) 응당 하나님의 몫인 가장 좋은 것을 자신들이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대신(對神) 범죄를 저질렀을 뿐 아니라 (2) 가장 좋은 것으로 여호와께 드린 백성들의 정성어린 마음까지 강탈함으로써 대인(對人) 범죄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전에 네 집과...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론의 가문만으로 특별히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시면서 그들에게 맹세하셨던 내용을 가리킨다(출 27:21,  29:9). 그리고 이 맹세는 후일 아론 가문의 후손인 비느하스에게 다시 갱신되었다(민 25:12, 13). 그런데 여기의 '네 집'은 엘리의 가문을 가리킨다. 물론 하나님께서 엘리의 가문에게 직접 위와 감은 맹세를 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엘리의 가문도 아론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아론 가문 전체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는 마치 그 후손들인 엘리의 가문에게 하신 맹세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익명의 선지자에 의해 엘리 가정에 선포된 여호와의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자들에게 공히 적용되는 대명제이다(벧전 5:1-10). 즉 생사 화복과 빈부 귀천의 유일한 근거가 오직 하나님인 줄 바로 깨닫고 모든 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행할 때, 하나님께서도 역시 그를 높이드사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고 그분의 말씀을 멸시할 때, 하나님께서도 역시 그를 끌어내리사 만인의 경멸거리로 만드실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리가 조만간 엘리 가정에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났으니, 곧 제사 규례를 어기고 성소를 더럽힘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한 엘리 가정은 역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 중에 경멸거리가 되었으나,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신실히 좇음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 사무엘은 역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높이 들림받았던 것이다.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본문은 엘리의 가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결국 멸절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이예언은 (1)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터에서 한날에 죽임 당한 것을 표징으로(4:11) (2) 엘리의 후손들인(14:3, 8,  22:9) 놉지역의 제사장들이 사울 왕의 사주를 받은 에돔인 도엑에 의하여 대량 학살되고(22:11-23) (3) 또한 엘리 집안의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솔로몬에 의하여 제사장직에서 파면됨으로써 (왕상 2:27, 35) 성취되었다.

'팔을 끊어' 
성경의 수사학적 용례상 '팔'은 주로 '힘'또는 '권세'를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이다(욥 22:9,  시 10:15,  37:17). 그러므로 본절은 엘리 집안의 권세를 꺾고 빼앗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엘리의 두 아들이 권세를 남용한 대가이다.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본절은 해석상 어려움이 있는 구절이다. 
1) 엘리 이후 이스라엘이 사무엘이 사무엘, 사울, 다윗, 솔로몬의 통치로 이어지면서 날로 번영해 가는 중에서도 엘리 집안은 조사(早死), 학살, 폐위 등 비극적인 각종 재난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 
2) 엘리 시대로 부터 하나님의 처소, 곧 성소가 블레셋을 비롯한 각종 대적들로 말미암아 피폐해질 것이라는 의미 등이다. 
아무튼 본절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의 모든 후손, 나아가 하나님의 성소까지 각종 재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임에는 틀림없다.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내 단에서...슬프게 할 것이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의 후손들로 제사장의 직분은 계속 수행하게 하되, 그 세력이 하도 미약하고 비참하여 보는 자로 하여금 슬픈 마음이 들 정도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 구체적인 예가 36절에 언급되어 있다.

'젊어서 죽으리라' 
한 예언 속에 조사(早死)에 관한 저주가 3중 반복되어 있다. 즉 "노인이 하나도 없게"(31절),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32절),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3절)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한 저주는 실제로 실로(4:11,20, 21)와 놉(22:11-19)에서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후일 제사장 가문 중 18세 이상을 살지 못하는 조사(早死)의 집안이 있었는데, 확인 결과 엘리 가문의 후손들이었다고 전해진다.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여기서 '표징'(오트)은 곧 '표시'(mark), '증거(evdence), '암시'(sign), '징조' (omen)등의 뜻이다. 그런데 엘리 생전에 닥칠 두 아들의 동시적 죽음은 익명의 선지자가 선포한 심판이 하나도 어김없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보여 주는 뚜렷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이 표징은 실제 블레셋과의 전투 중 그대로 일어나고 말았다(4:11).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내가...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니니' 

이것은 사무엘, 사독 그리스도에 대한 삼중적인 예언으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이 예언이 사무엘(Samuel)에 대한 것임이 확실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비록 그가 제사장 및 제사장 가문의 후손은 아니었디만, 제사장 및 제사의 권의를 회복했고(16:22) 

2) 또한 실제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기도했으며(7:9,17) 

3) 그리고 본절의 예언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이 사무엘이 등장한다는 점(3:1이하) 등이다).

 

둘째로, 이 예언이 사독(Zadok)에게 해당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그는 정통적인 왕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왕상 1:45)

엘리의 후예인 아비아달 대신 대제사장에 임명됐다는 점(왕상 2:27,35)등이다.

 

셋째로, 이 예언이 그리스도에게 해당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는 예표로서의 희생 제사를 폐기 완성시키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점에서 궁극적으 이 예언의 성취자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히 10:1-14).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하나님께 성실치 않았던 엘리의 가정이 파멸에 이른 것과는 달리, 새로이 세움을 받을 제사장 가정은 커다란 축복을 받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곧 이스라엘의 '왕'를 가리킨다(10절). 그러므로 이 말은 왕과 제사장의 과두(寡頭)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다스려질 것이라는 예언이다(렘 33:14-26). 즉 지금까지와는 달리 백성들의 소원에 따라 별도로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세워져야 하는 마당에, 제사장은 그 왕과 함께 하나님의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잘 다스릴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상 사무엘과 사독 그리고 사독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을 도와 제사장의 직분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