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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18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LNCK 2023. 2. 17. 08:20

https://blog.naver.com/karamos/220662532866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삼상3:1-18   2005-10-23
                                                                            사무엘상 설교모음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택시를 타면 앞 유리창 쪽에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의 그림이나 액자 따위가 흔히 있었습니다.

통통하고 여자애처럼 예쁘장하게 생기고 또 잠옷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사무엘이 어렸을 때부터 입었던 세마포 겉옷을 의미하죠.

그 사무엘의 그림은 하루 종일 택시를 운전할 때 아무 사고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 운전기사나 가족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었다고 짐작됩니다.

이처럼 ‘어린 사무엘’하면 다들 기도하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성경에 
나타난 어린 사무엘의 가장 유명한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습입니다.

물론 사무엘이 어릴 때부터 기도도 열심히 했겠지만, 
정말 사무엘이 어린 시절에 남달리 탁월하게 보여 준 것, 
어린아이였으면서도 어른보다 오히려 잘 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말씀을 듣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어린이 선교원 헌신예배를 함께 드리면서 
우리가 가르치고 키우면서 전도하고자 하는 이 어린이들이 영적으로 
어른에 조금도 못지않고 오히려 더 잘하는 아주 중요한 것 두 가지가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1. 어린이는 하나님 말씀을 순수하게 듣는 일을 
어른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1~10절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를 섬길 때”란 것이 과연 사무엘이 얼마나 어릴 때
인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아까 말했던 택시 기사들의 차안에 흔히 붙어 있던 사무엘의 그림은 
갓 걸음마를 시작했을 법한 어린 아이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또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성전의 공적 직무를 수행할 만한 성년으로 간주
되기 위해서는 통상 12살 이상은 되었어야 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혹은 앞에서 사무엘이 막 젖을 떼었을 때에 한나가 그를 성전에 데려가서 
하나님께 바쳤고, 2:11절에 보면 바로 그때부터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고 오늘 본문 1절과 꼭 같은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사무엘은 예외적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성전의 일을 수종들었던 
것이 틀림없고, 따라서 본문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꼭 열두 살 이후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사무엘의 보호자요 스승이요 선배 목회자와 같았던 엘리 제사장에게는 
그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욱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제사장으로 섬기던 시대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1

여기서 “이상 vision”이라는 것은 꿈이나 환상 등을 통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모스 8:11~12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그것을 들으려고 달려 
왕래하여도 구하지 못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기갈”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가 희귀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 상태에 있음을 가리킵니다.

엘리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사명을 감당했어야 할 것인데 
그에게는 그 중요한 계시가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귀한 여호와의 말씀, 그 보이지 않던 이상이 뜻밖에도 
그 아이 사무엘에게 찾아왔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시점은 “하나님의 등불” 즉 성소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때라고 했으므로 아직 새벽이 이르지 않는 밤중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그때 엘리 제사장은 “자기 처소” 즉 성막 주변에 설치된 제사장의 처소에서 
자고 있었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 했는데 
이 말은 사무엘이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지성소 안에서 잤다는 뜻이 아니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곧 달려갈 수 있도록 
성막 아주 가까운 곳에 잤다는 뜻입니다.   주1)

▲그 어느 밤에 여호와께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순진한 어린 사무엘은 그 소리가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소리인 줄 알고 
즉시 달려갔습니다.

7절에서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고 밝히고 있듯이, 
사무엘은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는 있었지만 
아직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을 만큼 자라지는 못했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에게 달려간 사무엘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무슨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라는 자세로 그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이미 영력이 둔화된 상태였는지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 소리인 줄을 두 번째까지도 깨닫지 
못하다가 세 번째 가서야 겨우 깨닫고서,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요령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네 번째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셨을 때, 
어린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에게 배운 그대로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적극적인 수용과 
순종의 자세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지금 참으로 놀랍고도 기가 막히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는 참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회, 하나님의 성민으로 자처하던 그 백성들 전체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3:1

아니, 제사장마저도 하나님의 계시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어둡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아직 신앙고백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어렸던 아이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셨고, 불러 주셨고,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어서는, 
그 어린 사무엘이 모든 이스라엘의 성인 신자들보다도, 
무감각하고 불충한 제사장보다도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들을 귀가 없는 것’과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인간이 저주 상태에 있는 죄인임을 극명하게 반영해 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이 완전히 타락한 상태에 있는 까닭에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그렇게도 싫어하며 
자기를 전도하려는 말 듣기를 그렇게도 귀찮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오직 당신께서 택하신 사람에게는 
성령의 감화감동을 통하여 그 말씀이 들리게 하시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게 만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처럼 말씀을 듣게 되는 은혜를 누릴 줄 아는 면에 있어서는 
어린아이라고 해서 어른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어른보다도 어린아이들이 훨씬 더 잘 받아들입니다.

이미 죄 지을 것 다 지어보고 그 인생이 닳을 대로 다 닳은 어른들은 
전도를 받아도 자기 머릿속에서 먼저 계산해 보기 마련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란 것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듯이, 
어른들은 복음을 듣고도 그것이 자기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인지, 
자기 경험과 논리에 맞는지부터 먼저 따지고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런 영적인 선입견이 전혀 없습니다.

그냥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기억하고 
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중에는 어린이 선교원을 운영하고 
주말에는 ‘어린이 새소식반’을 백 수십 곳에서 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꽉 막고 있는 어른들의 귀를, 전도에 대하여 꽉 닫아걸고 있는 
어른들의 마음을 그 집의 어린아이들의 귀와 심령을 통하여 
먼저 뚫고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자세와 능력에 있어서는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월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택자를 부르실 때 
절대로 어른만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까지도 부르고 계시며, 
어린아이들을 어른들보다 더 많이 부르고 계시며, 
어린아이들이 실상 어른보다도 훨씬 더 쉽게 
그리고 더 빨리 그 복음을 영접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어린이를 통한 전도와 선교를 귀중히 여기고 힘을 모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어린이는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일을 
어른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11~18절

당신의 말씀 앞에 귀를 기울이고 선 어린 사무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라고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3:11

암3:7절에서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장차 행하실 일을 당신의 택하신 선지자를 통하여 
반드시 먼저 예고해 주신 후에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은 어린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의 어른들과 제사장까지 제치고서 
바로 그런 특권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라만 바로 
엘리 제사장의 가문에 내리실 심판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경고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회개가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는 그 엘리 제사장 자신이 “아는 죄악”에 대한 벌과 
그 아들들이 “자청한 저주”가 임하게 된 것이며, 

그것은 이제는 돌이킬 길 없이 확정된 사실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루게 될” 순서만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경고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던 하나님께서 
일단 저주하시게 되면 그때는 이미 끝장입니다.

예수 믿도록 권유하는 성령을 끝내 거부하고 
자기 죄를 용서해 줄 십자가를 끝까지 모독하면, 그 죄는 
그 어떤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게” 될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은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릴” :11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두 귀가 울린다’ 함은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고 충격을 받게 될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사무엘 같은 어린아이가 전달해도 
그 강도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그대로 전달되어서 
그것을 전해 듣는 어른들로 하여금 충격적인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사무엘은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했죠”
즉 엘리 제사장이 그 말을 들으면 괴로워할 것을 
자기 혼자서 머리 염려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 제사장은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과연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불러 놓고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하나도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자기에게 말해 주지 않으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어린 사무엘에게 거의 위협과 협박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제사장이면서도 자기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불안과 초조함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자기가 들었던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18

아마도 사무엘은 어린아이들만의 특유한 기억력을 발휘하여 
단어 하나, 말씨 하나도 바꾸지 아니하고 
그대로 엘리 제사장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내용은 바로 지금 자기 앞에 있는 엘리 제사장 가문이 멸망당하게 될 것
이라는 무서운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도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대로 어른에게 전달했던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 말을 듣고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한 것은, :18
회개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체념하는 자세를 반영하는 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입술은 그 귀를 통해 들은 대로 정확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잘 전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마21:16

▲그런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도에 있어서도 
더 없이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교원이나 새소식반을 통하여 예수 이름 가르치고 교회 나오도록 가르치면, 
그 말 곧이곧대로 전하는 일에 있어서는 
어떤 어른도 어린아이를 따라올 수 없습니다.

어른들은 사람이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전도할 때에는 사실 그런 말하기를 쑥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은 그런 말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직 교회는 다니지 않으시지만 우리 경향 어린이 선교원에 
보내어 주시는 자녀와 함께 이 자리에 함께 앉아계시는 부모님이 계십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어린 자녀들이 “아빠, 우리 가족도 다 같이 교회에 나가요.”
라고 말하면, 절대로 그 말을 어린아이가 그냥 철없이 하는 말이라고 
넘겨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그 아이가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그 자녀에게 직접 들려주신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까닭에 
여러분의 자녀들의 밝은 귀과 정확한 입술을 통하여 전달해 주시는 
실로 소중하고도 특별한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린이 선교원을 다녀온 여러분의 귀여운 자녀들이 
“엄마, 우리 선교원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대요.”
라고 말하면, 여러분들께서는 우리 선교원 선생님들이 애들에게 
이상한 세뇌교육시킨다고 절대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어른들이라면 오히려 잘 전달할 수 없는, 
어쩌면 우리교회 전도사님들이라 할지라도 여러분의 면전에서는 
좀 거북해할 말이지만, 여러분 자녀들은 실로 깨끗한 마음과 순전한 양심을 
간직하고 있는 까닭에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그대로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전달해 주는 아주 귀중한, 
여러분의 생명을 살려 줄 경고인 줄로 알고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녀들의 그런 말이 여러분에게 ‘두 귀가 울리는 듯한’ 충격을 주고 
여러분의 얼굴이 새빨개지게 만든다면,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하나님께 장차 반드시 행하실 큰 심판을 한 마디도 가감하지 아니하고 
100퍼센트 순수하게 그대로 여러분에게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 엄마, 우리 가족 모두 다 예수 믿고 천당 같이 가요.”라고 하는 말은, 
정말 여러분의 자녀가 아니면 아무도 전달해 주지 못할 말, 
실로 여러분의 온 가족을 사랑하시고 아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을 불러 주시는 하나님의 육성 바로 그 자체인 줄로 깨닫고, 
꼭 온 가족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온 가족이 함께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교회 어린이집을 위한 이런 모든 개인적인 희생과 교회적인 지원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이 선교원을 통하여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이 어린이들이야말로 어른들의 귀에 막혀 있는 복음의 돌파구요 
아파트의 철문에 막혀 있는 전도의 활로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 원로목사님의 그 유명한 말씀, “닫힌 아파트 문을 열어 주는 열쇠는 
그 집 어린아이에게 있다.”라는 기가 막히게 멋있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 선교원이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무수한 구령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귀가 열려 예수 이름을 듣을 때에 그 어린영혼이 감동되고 믿게 되고 
구원받게 되는 실로 놀라운 역사가 벌어집니다.

그 어린이들의 입이 열려 예수 이름을 전하게 될 때 
그 어린 심령의 순전하고도 정확한 전도로 인하여 
온 가족이 함께 구원받게 되는 실로 위대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이 어린이 선교원을 통하여, 주말마다 열리는 어린이 새소식반을 통하여, 
그리고 주일마다 모이는 주일학교를 통하여, 
이처럼 어른보다 더 말씀을 잘 듣고 잘 전하는 어린이들을 통하여 
더 큰 전도와 구령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가는 모든 교사님들과 부모님들과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주1)
'사무엘은...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이 말은 사무엘이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봉사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성막(tabernacle)안에 머물고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여기서는 '여호와의 전'(헤칼 예호와)은 법궤 또는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the Ho, y of Holies)나 분향단이 있는 성소(the Holy Place)를 의미하지 않고, 단순히 건물로서의 성막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시 11:4).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맛소라(Masoretic Text)는 1:9에 이어 여기서도 성막을 '궁전' 또는 '궁궐'이란 뜻의 '헤칼'로 취한 듯하다.
이것은 사무엘이 지성소(支聖所, theHolies)안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언약궤가 지성소 안에 안치된 것은 사실이지만(출 26:33), 그 언약궤는 넓게 생각하면 또한 '전'(殿, 헤칼)안에 안치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한 차례씩 들어갈 수 있었다. 사무엘은 여호와의 전 뜰 주변에 제사장, 레위인, 헌신자들을 위해 지어놓은 거처에서 잠을 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