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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LNCK 2023. 2. 20. 15:21

 2021년1월1일 송구영신예배 주일설교 - YouTube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눅1:26~33         2021.01.01.설교녹취, 정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1:28
참으로 듣기에 기분도 좋고, 축복이 되는 말씀입니다.

만약 우리한테도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똑같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이렇게 축복해 준다면, 
얼마나 큰 격려가 되겠습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천사가 이렇게 축복한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볼까요?

평안과는 정 반대의 일들이, 마리아에게 계속 일어난 것을 보게 됩니다.

 

▲1. 처녀가 임신해 버렸어요. 
당시에 '처녀가 임신을 했다' ... 이거는 사형감이에요. 
그 전통이 오늘날까지 중동 국가나 인도에 일부 내려오고 있죠.

당시 그 나라 율법에 의하면, 투석형으로 합법적으로 죽입니다. 
이거를 그러면, 마리아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봅시다. 

정말 자기가 바람을 피워서 그랬다면 억울할 일은 없겠죠. 
자기가 지은 죄를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거니까... 

그런데 마리아 입장에서는, 정말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 임신을 한 거예요. 

이게 '은혜를 받은 결과' 입니다.

물론 하늘로부터 신기한 기운이 임해서, 놀라운 천국의 평안이 감쌌겠지만
마냥 그렇게 마리아가 좋기만 하지는 않았다는 거죠.

우리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하나님의 섭리로 예수님의 모친이 된 사실을 지금 다 알지만, 
당시에 그걸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당시 15~17세 정도 되는 여자아이였던 자기 자신도, 그걸 다 알지 못했을거예요.

천사로부터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 말만 들은 거예요. 눅1:31

 

천사가 '평안할지어다!' 했는데, 어떻게 평안해 보이나요?    

억울했을 수도 있겠죠. 물론 평안도 임했지만요.
어떻게 보면 천사가 약속한 그 평안은, 
'앞으로 두렵고 놀라운 일이 닥칠 터인데, 마음 준비 단단히 하고 
어떤 사태가 벌어져도 평안함을 유지해라, 평안을 잃지 말라' 하고
미리 마음 단단히 준비시키는,

그런 '평안'의 의미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당장 무슨 일이 생겼냐면요. 
약혼한 남자친구 요셉한테 사정을 설명해야 했어요. 

그래서 마리아는 설명을 했어요. '이거는 하늘이 준 아기라고'
요셉이 성령의 감화로 절반 믿었겠지만, 또 절반 의심도 들었을 거예요.
요셉도 엄청 당황했을 거예요. 
그런 요셉을 바라보는 마리아가 과연 '평안'했을까요?

요셉은 조용히 끊고자 했어요. 헤어지자는 절교의 선언이었죠.
요셉도 상당한 손해를 각오하고 했던 말이에요. 동네 사람들로부터
'저 놈이 여자를 임신시켜 놓고 버렸네?' 하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었죠.
세상에 진짜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거죠.

 

근데 요셉은 마리아를 살리려고, 그 오명을 다 뒤집어쓰기로 한 거죠.
결국 마리아가 요셉에게 버림받는 모양으로..

가장 무난하게 해결하려고 해요.

그래서 마리아의 결혼은 조용히 깨지게 된 거예요.
요즘도 청춘남녀가 배신을 당해 보세요. 얼마나 절망해 하는지...
정말 '평안'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나날을.. 마리아가 살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다시 개입을 합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천사가 요셉한테 찾아가요. 
'마리아 말이 맞다. 저는 성령으로 잉태된 거야!' 
해서 요셉이  다시 마리아를 아내로 데려옵니다. 그래서 사태는 수습이 됐어요. 

▲2. 연속되는 우환
그래서 '이제 일단락 됐다' 했더니, 로마 황제의 명령이 내려오네요. 
'모든 사람들은 자기 고향으로 가서 호적을 해라!' 

당시 이들은 나사렛이라는 데서 살고 있었고 
요셉의 고향은 베들레헴이에요. 

베들레헴까지 가려면, 몇 백리가 넘는 먼 길이에요.  *약150 Km
그런데 그때가 하필, 마리아가 아기를 출산하려는 그런 시기에요. 
그때는 여인들이 정말 안정을 취해야 될 때잖아요. 
근데 황제의 명령이니까 거역못합니다. 거역하면 죽어요. 

그러니까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또 베들레헴으로 떠나는 거예요. 
그래서 먼 길을 걸을 수는 없으니까, 나귀를 타고 이렇게 천천히 걸어가요. 

그럼 요셉 내외는, 다른 사람들하고 무리지어서 같이 갔을까요/홀로 갔을까요?
홀로 갔을 거예요. 왜냐면 몸이 무거운 마리아는 걷는 속도도 느리고, 
나귀 타서 가는 속도도, 정상 속도보다는 느린 거예요.

당시에는, 여행자들끼리 뭉쳐서 다니거든요. 카라반(대열)을 이루어 다니죠.
왜냐면 광야에서 자주 출몰하는 도적이나 강도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죠.

당시 문화에서 여행 길을 홀로 걷는다는 건, 스스로 죽겠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남자들은 여인들을 가운데 두고 
주변에 남자들이 서서 호위를 해가면서 왔다 갔다 했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금, 두 처녀 총각이.. 나귀도 재산이잖아요. 
강도의 위험을 각오하고서, 둘이서 홀로 그 길을 갈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왜냐면 임신한 마리아가 정상 속도로, 다른 일행을 따라붙일 수 없었으니까요.

어떻게.. 은혜를 입은 마리아가 평안해 보이세요?
이게 천사가 '평안할지어다!' 축복해서, 그 후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꼭 가브리엘에게, '평안할지어다' 라는 말은 못 들어도,
비슷하게 다른 형태로, 하나님 축복을, 성령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있죠.

그게 참 좋은 것이고, 그게 참 신비한 것이고, 그게 너무 은혜스런 것이지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각오해야 돼요!
위로부터 은혜를 받고, 기름부음을 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대개의 경우, 하나님이 그를 만들어 쓰시기 위해서 '고치시는' 작업이 시작돼요.
그래서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환난들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3. 갈수록 태산인 '은혜 받은 결과'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에 도착했는데.. 여관 방이 없네요. 
마굿간에 들어가서 밤 이슬이라도 피하게 돼요. 

그런데 왜 이렇게 하나님은 안 도와주시는 걸까요? 
아니, 하늘이 준 아기라는데.. 하나님이 보내신 아기라는데.. 

 

지금 현실 상황은 어때요? 꼬이고.. 꼬이고.. 형통하지 않아요. 
절대로 평안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정반대로 열리고 있어요.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아기를 낳았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헤롯 왕이 달려들어서, 아기를 죽인대요.

그렇다고 천사가 나타나서 현몽해 줬어요. 빨리 도망가래요.
그래서 두 신혼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가야 했었어요.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나 산모가 절대 안정을 취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헤롯 왕의 추적을 받기 시작해요.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거 뭐 갈수록 태산이고,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사실 사명 받은 자의 삶이 이와 같다고도 할 수 있죠.
오늘날에는 마귀가 그냥 두지 않으려 합니다. 반드시 주의 종들을 괴롭게 하죠. 

이게 지금 남의 얘기니까 그렇지, 내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아무 돈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데,
왕의 추적을 받고, 전국의 군대가 아기와 그 부모를 찾아 뒤지고 있어요.
(물론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당장은 아니고, 얼마 지나서이지만 어쨌든)

그러니까 애굽에 가서서 하나도 편안하지 않은 생활을 했을 거예요. 
그러다가 헤롯이 죽었다는 말도 다시 유대로 돌아오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8세 가량 될 때까지, 애굽에서 사셨다고 해요.

그때가 몇 세냐? 중요한 내용은 아니죠.)  

▲4. 마리아는 은혜를 받았는데.. 생계 유지도 쉽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자녀를 약 8명 정도 낳은 걸로 추정합니다.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많이 낳았잖아요. 
예수님의 형제간이 한 여덟 명이 있는 걸로 봐요. 

그런 후에 남편 요셉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었어요. 
왜냐면 성경에, 요셉의 그 이후 행적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게 추정하는 것입니다.
가장이 죽으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생계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좀 성장해서 아버지 대신 소년 가장으로서 목수 일을 하면서 
이제 좀 밥을 좀 먹고 살겠거니 했는데...
서른 살이 되니까 집을 나가 버렸어요. 

 

예수님의 동생들이 예수님보고 '미쳤다'고 한 이유 중에,
아마 가정 생계를 내팽개치고 떠나버린데서 오는 억한 심정도 들어있을 거예요.

이쯤 되면 '평안할지어다!' ... 이런 말을 하늘로부터 듣기가
이제 우리에게 슬슬 좀 부담스러워지죠. 


◑이런 일은 제자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요14:27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한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 이제 (천국으로) 간다!'
제자들은 완전히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말이었어요. 

이거 예수님한 분만 바라보고, 집도 버리고, 직장도 버리고 좇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가신대요. 

그래서 근심이 가득하게 된 거죠.  
'그럼 이제 우리는 어쩌라고?' 

그래서 다들 '이제 어떡하지?' 하고 앉아 있는데 
예수님이 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평안을 줄게 너희에게!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리아가 평안을 받은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평안을 하사 받았어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대제사장이 보낸 군대(성전경비병)가 와서 예수님을 붙잡아가는데 
그때 제자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가요. 

그래도 베드로는, 자기가 한 말이 있어서 
'내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장담한 말이 있어 가지고 
잡혀가시는 예수님을 멀찍이 뒤좇아가요. 

대제사장의 뜰에 가서는 여종한테 망신을 당하잖아요. 
'이 사람도 예수님의 무리였다' 하니까 
'나는 저런 사람을 몰라!' 하고 부인하고는, 또 펑펑 울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은 잡혀가서 그 비참하게 맞고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 달려서 완전히 진짜 죽었어요. 무덤에까지 들어가 버렸어요. 

지금 우리가 믿는 것처럼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거야' 이런 분위기가 아니에요. 
'진짜 죽었거나.. 이제는 다 끝났구나!' 당시는 이런 분위기였죠.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났냐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시고 난 다음에

일어난 일이에요. 

 

이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평안을 주노라!' 하면 
다 도망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나요? 
'평안할지어다, 평안을 주노라' 하시면.. 이런 환난들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저(김성근 목사)도 중국에서 성경통독 하며 살 때 
신약성경을 한 2백번 읽을 때까지도 결심하고 예수님을 안 믿었죠. 
한 2백 번 읽어도 안 믿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정말 회개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내가 하나님 믿고 헌신해서 살아야지..' 하고 

내가 가진 돈 다 내놓고, 
그리고 진짜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살기로 결심했는데... 제가 붙잡혔어요. 
감옥에 들어가고 북한으로 끌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중국 감옥에서 앉아서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앞날이 창창한 20대 중반이었잖아요.

'왜 내가 바보 같이 성경공부 해가지고..
이런 쓸데 없는 공부해 가지고, 이제 나도 죽고, 내 가족들도 다 죽게 됐구나...'

'내가 그 성경통독만 안 했더라면... 
그냥 돈 벌러 중국에 갔으면 (통독장에 없었으니까) 붙잡힐 일도 없었는데... 

 

괜히 주의 일 한다고 하다가 공안에 잡혀가지고 
이게 북송되어 이렇게 난 죽게 생겼다...'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일이 옵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 다 형통하고, 축복받고, 성공하고... 그 말 믿지 마세요. 
그런 일 보다는, 어려운 일들이 현실적으로 더 많이 일어나요. 

 

그 이유는, 성화 때문이기도 하고, 아래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짜 평안을 가진 성도로 키우시기 위해서예요.

물론 간혹 가다가 그렇게 성공하고 형통한 사람도 있어요. 
그게 한 유형이지,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들이 받은 고유한 사명이죠. 물론 그들도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고요!

 

특히 제가 우리 교회 성도님들 봤더니 
우리는 그런 결과와는 좀 거리가 멀어요. 우리 교회 대부분 성도님들은...  

 

◑그럼 왜 이러시냐? 하는 거예요. 

왜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는.. 정반대로 환난을 주시느냐는 말이에요.

 

'야 축복받으려고 예수 믿으며, 새벽부터 송구영신예배 드리러 나왔는데..' 
거꾸로 된 말씀을 제가 전하니까, 여러분 듣기에 부담되지요?

우리가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르다..' 요14:27

그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우리가 이거를 제대로 받을 것이에요. 

▲자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이 
세상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나빠보입니다. 

정말 가브리엘 천사가 '이제부터 너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이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거든요. 
그러나 마리아는 죽도록 고생합니다... 

진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누가 너희에게 떡을 달라고 돌을 주겠느냐? 
너희 육신의 아버지라도 그렇게 안 준다'

왜 이런 말씀을 하냐면, 그렇게 반대로 주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에요. 
우리는 평안을 구했는데.. 환난이 온다 말이에요. 
그러면 '떡 달라 했는데 돌을 주셨네?' 그처럼 보인다는 거에요. 

'그러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는, 그보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그러는거다..' 하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시죠. 

그러면 어떻게 다른지 이제부터 조금씩 살펴봅시다. 
그래야 우리는 진짜 축복을 누릴 수가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평안은, 세상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평안이에요. 
자 세상은 우리에게 어떤 평안을 가르쳐주셨냐면 
'저 푸는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하얀 집 지어놓고 
앞에는 거울 같은 호수가 있고, 거기서 뱃놀이 하며
아름다운 음악 들으면서 살아가는 것...' 평안해 보이지요? 

이런 게 우리가 어릴적부터 꿈꿔왔던 평안 아닌가요?
세상은 이런 것을 보여주면서 '평안한 삶'이라고 우리에게 주입해 왔어요. 
또 우리는 그런 것들을 원했어요. 

그런데 이런 평안은, 정말 그림자 같은.. 허상같은 평안입니다. 
그 잔잔한 거울 같은 호수면.. 바람만 살짝 불어와도 흔들려요. 

어디서 조그만 돌맹이 하나 날아와도 순식간에 깨져요. 
비가 오면 순식간에 지워지는 평안이에요.

우리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걸 (그 평안이 쉽게 깨진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뭔가 다른 것을 계속 의지하려고 하고.. 계속 붙잡으려 해요. 

돈을 붙잡고, 권력을 붙잡고, 어떤 사람은 자기 능력을 붙잡고 
왜냐면, 세상 평안을 유지해야 하니까요. 
이게 쉽게 깨진다는 걸,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거든요. 

그래서 깨지지 않는 어떤 평안.. 깨지지 않는 어떤 의지할 곳.. 
그걸 찾아서 계속 헤매다가.. 
나중에는 실망하면서 결국은 늘그막에 깨닫죠.  
'아~ 돈도 아니구나, 내 권력도 아니구나, 내 재능도 아니구나...' 

그러면서 우리는 이 거짓말 같은 세상 평안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평안을 몰랐던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한 가지 이걸 몰라요. 
'이 땅에는 참 평안이 없다는 사실!'

평안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오늘 이 순간에도 끝없이 추구합니다. 
평안이 없기 때문에, 갈급함으로 추구를 해요. 돈과 권력과 명예과 쾌락을!

오늘도 찾아다녀요. 사람들은 계속 찾고 찾고 또 찾아요. 
그들은 죽는 날까지 찾아요. 왜 찾아 헤매냐 하면 
'없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없는 것을, 죽을 때까지 찾아 헤메는 거예요. 

저는 이제 더 이상 '세상 평안' 안 찾아요. 제가 어떻게 그걸 알았냐면요. 
제가 하나님으로도 부르심을 받을 때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신학교 가라' 해서 
'제가 저 못 가겠습니다' 하고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제게 직접 주셨던 말씀이 이런 거였어요. 
'네가 원하는 것은, 안정된 삶이잖아! 
그 대기업에 가서 월급이 안정되게 나오는 거잖아. 
그거 받아서 안정된 삶을 누리자는 거잖아..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거 없어.. 
대기업에도 없고, 세상에도 없고.. 아무데도 없어!' 

그때 제가 깨달았어요. '세상에는 평안이 없구나! 
안정된 삶이란 게 애초에 없었구나!'

그리고 봤더니 언제부터 없어졌느냐? 
아담 때부터 없어진 거예요.
여기 이 세상에는 껍데기만 남아 있어요. 마치 계란 껍데기처럼!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한테 정말 주고 싶었던 것이 평안이었어요. 
그래서 평안을 주시려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어디로 데려가냐면
갈릴리 바다로 데려가세요. 밤에 배태워서 바다로 끌고 나가세요. 

제가 갈릴리 바다 가봤어요. 근데 호수 크더라고요.
166 Km2 이니까, 약 가로세로 20 X 8 Km 정도로 보면 돼죠.
그런데 주변 산 위에서 찬공기가 내려와서, 뜨거운 갈릴리 호수의 공기와 

만나서 갑작스런 큰 풍랑같은게 자주 일어난데요. 
 
풍랑이 일어서 배에 물이 들어오고, 배가 뒤집어지게 되었어요.
'이제는 죽겠구나' 하고 예수님을 봤더니, 배 안에서 곤하게 주무시는 거예요. 
그 난리 북새통에!  

그래서 예수님을 흔들어 깨운 거예요. '우리가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너희가 왜 나를 믿지 못하느냐?
이 믿음 없는 자들아!' 하고 꾸짖었어요. 

우리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니까 당연히 옳은 말씀이겠지.. 이렇게 받아요. 
당연한 것처럼 받는데 
사실 그 상황으로 들어가 보세요. 예수님의 말씀이 당연하게 보이나요? 

만약 여러분들이 새까만 밤에 바다에 나가서 
파도가 머리 꼭대기 위에서 넘실거리는데 
예수님이 '왜 무서워하냐?'고 야단을 치면, 여러분들은 억울하지 않겠나요? 

거기서 안 무서워하면 그게 인간이에요? 저는 무서워할 것 같아요. 
당연히 무서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예수님은 '왜 이렇게 두려워하냐? 이 믿음 없는 자들아!' 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었대요. 왜 그랬을까요? 

그래서 이 말씀을 못 알아들으니까, 제자들을 한번 더 데리고 바다로 나가요. 
이번엔 더 무시무시하게... 또 파도 치던 밤바다에 
예수님이 유령처럼 물 위로 걸어오시는 거에요. 

다들 혼비백산해 가지고 이번에는 제대로 죽었다고 다들 벌벌 떨었죠. 
이렇게 계속해서 예수님은 뭔가를 가르칩니다. 

뭘 가르치냐면요, 진짜 평안을 가르쳐요. 
예수님이 그들에게 곧바로 보여주시잖아요.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 하니까, 파도가 순식간에 잠잠해, 조용했잖아요. 
'내가 있는데 이 파도가 어떻게 이 배를 삼키냐?'고 
그러니까 너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두려워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파도를 잔잔케 하는 분,
정말 하나님이 아들이란 걸 알았더라면, 정말 진심으로 알았더라면 
그 파도 속에서 이들은 두려워했을까요? 안 두려워하죠. 

제자들이 정말 그 믿음이 있었다면

'이제 예수님이 말씀 한마디 하시면, 파도가 조용해질거야...' 하고 
예수님 옆에서 놀았을 거예요. '파도가 높아서 보기 좋네!' 하고 즐겼을 거예요. 
그게 진짜 평안 아닐까요?
풍랑이던 파도 가운데서 잠들 수 있는 평안! 

이거 세상이 깰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했던 평화는 이런 거였어요. 


자 그래서 주님이 '내가 평안을 줄게!' 하면 반드시 뭐가 오죠?
파도가 오고, 풍랑이 치는 거죠. 

왜냐면 파도 위에서도 잠들수 있는 그 믿음을 가지라고... 
그걸 주시려고... 파도를 주시는 거죠.   *주제

이건 제가 직접 경험을 했어요. 
제가 아까 예수님 믿고 나서 감옥갔다 그랬잖아요. 

그때 제가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원망했는지 몰라요. 
'하나님 믿었다가 다 죽게 생겼다'  
남한 사람과 만난 것도 큰 죄인데, 그것도 성경공부 한 게 드러나면,

북한에서는 사형이거든요.

 

그러니 제가 20대 중반인데 감옥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팽개쳤죠.

'(나를 감옥에 보내시는 하나님) 이제부터 나는 안 믿겠다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감옥에서 꺼내주신 거예요.
그래서 '아 이제 천신만고 끝에 살았다. 이제 한국 가서 편안히 살아야지!' 

하는데 또 감옥에 집어넣는 거예요. (몽골 국경 넘다가 사건이 생겨서) 
'이제는 죽었구나!' 했더니 
하나님은 또 감옥에서 다시 꺼내주시는 거예요. 

이렇게 모두 세 번씩이나 저를 담금질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와서 너무 화가 나가지고 
'하나님, 왜 저를 그랬습니까?' 했더니 
하나님이 저한테 주셨던 음성이 그거였어요. 

'내가 너한테 뭘 줬는지를 가르쳐 주려고 그랬다!'

(진짜 평안을 가르쳐주려고 그랬다)

 

'너는 어딜 가서 무엇을 하더라도 안전해!, 
그냥 진짜 물이 너를 삼키지 못하고 
불이 너를 삼키지 못한다는 걸 네가 알아야.. 네가 담대할 거잖아! 
그래서 감옥이 너를 삼키지 못한 거야...'

 

반드시 죽어야 될 곳에 가서 세 번씩이나 살아나오는 걸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나는 안전하다'는 걸 깨닫으라고 
그걸 가르쳐 주시려고 감옥에 계속 넣었다 뺐다 하셨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 당시에는 그걸 못 깨달았었죠.   
그래서 이번에 네 번째, 한국에 와서 네 번째로 훈련을 또 받았어요. 

이번에도 '너는 안 죽어!' 
하고 죽음의 질병까지, 진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꺼내주셨잖아요. 
(간경화로 쓰러져 간 이식 수술 받음)

 

그러면서 '야~ 나는 진짜 안전하구나!' 그걸 제가 깨달았어요. 
만약 이제 또 제가 병에 걸려서 죽는다면.. 
그때야 말로 할렐루야죠!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면서, 죽음을 초월하게 된 거죠)
  
'너는 안 죽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있고 
내가 너에게 영원한 생명을 줬는데 
죽고/ 살고 ... 이건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이 걱정할 차원의 문제이고 

너는 이제 그런 차원이 아니야! 너는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어! 
그러니까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했어!'  
(죽고 사는 더 큰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먹고 사는 작은 문제는 자동 해결)

그러니까 이제 '뭘 먹을까, 뭐 입을까?' 이런거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신학생 한 명 더 키울까?' 
'어떻게 하면 탈북민의 한 사람 더 데려와서 예수 믿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좀 북한에 복음을 집어넣을까?' 

이런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보이십니까? 
왜 이런 일을 하면, 세상에 먹고 사는 걸 해결하는 일보다 
더 위험한 일, 무서운 일들이 많이 생깁니까? 

먹고사는 일에서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진짜로 평안한 사람을 만들어 주려고 
진짜로 담대한 사람을 만들어 주려고 
하나님이 극심한 환난을 겪게 하신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깨달은 게, 정말로 평안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온유해져요. 

왜 사람이 사나워지는지 아세요? 거칠고 사나워지는 이유는 
자기 속에 두려움이 있어서 그래요. 

사람은 두려우면, 자기의 두려움을 가리기 위해서, 반대로 행동을 해요. 
오히려 사나워지고, 거칠어지고, 무례해져요. 

근데 마음이 정말 편안해지니까, 화낼 이유가 없는 거예요. 온유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깨달았어요. 

'평화는 이 세상에 없구나!' 그럼 어디에 있죠? 
평화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어요. 

거기 이외에는 세상에 평안이라는 것이 없어요. 
이런 평안 맛 보실래요? 이거를 이미 여러분들에게 주셨어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주셨어요. 
근데 다들 그게 나한테 와 있다는 걸 눈치를 못 채는 거에요. 

제가 그걸 눈치채는데 한 10년 걸렸어요. 
제가 10 년 걸렸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1년도 안 걸려요. 
왜? 나는 어렵사리 터득했기 때문에 
그거를 제가 이렇게 자꾸 설명하기 때문에... 

한번 설명하고, 두 번 설명하고, 한 세 번 설명하면 
몇 년 아니면 금방 터득할 거에요. 남이 간 길을 뒤따라 가면 쉽죠. 

그래서 저를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은 10년 걸려서 깨닫게 하는 거예요. 

세상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것들은 
대기업, 좋은 자동차, 비싼 아파트... 거기 가면 편안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안에 평안이 있을까요? 없어요! 

세상은 우리에게 고급 침대를 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고급 침대 안에서 달콤한 잠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어요. 

구약시대에도 이 평안을 맛본 사람들이 있죠. 
다윗은 사자가 자기 양을 물어 가는데, 달려가서 입을 벌려서 
자기 양을 꺼냈대요. 소년이에요. 이게 제정신이에요?

양때문에 자기 목숨을 내거는 거예요. 근데 안 무서웠대요. 
이게 뭐죠? 그 소년 다윗의 마음 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니까 
사자가 안 두려운 거에요. 

아무리 높은 파도가 와도, 배 위에서 평안히 자는 거예요.
'내 안에 거하라. 그럼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내가 너에게 줄게!' 

자 그러면 이 시각에서 우리 지난 1 년을 뒤돌아봅시다. 
지난 2021년은 코로나 해였어요. 

우리 교회는 이랬어요. 처음에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자신의 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우리는 코로나에 안 걸려!'
큰 소리 빵빵쳤죠. 그런데 사방에서 교회들이 막 걸려서 문 닫고
난리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사람이 다들 움츠려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우리도 걸릴 수 있겠네..' 하면서 막 비대면으로 전환을 하고 이랬죠. 
제가 걱정한 것은 '다 흩어지는 거 아니냐?'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선포를 했잖아요. 
'이 코로나 바람에 우리 그가 쓸려나간다면, 우리는 반석 위에 서 있지 않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반석위에 서 있다면, 이 홍수가 불어와도 
우리는 서 있을 겁니다.' 이러면서 이렇게 힘냅시다 하면서 끌고 가는데 

그 다음부터는 코로나가 1년 계속 진행되다 보니까 
교회들이 생존을 걱정하는 사태가 오기 시작했어요. 
교회들에 사람들이 안 나오니까.. 헌금이 따라서 안 들어오고.. 
그러니까 문 닫는 교회들이 수면 위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당연하죠. 그런데 우리 교회는 안전했어요.  
여러분들이 경험해 봤잖아요. 이때까지 월세 다 냈어요. 
부교육자들 사례비 끊긴 적 없어요. 다 나갔어요. 

그리고 여러분들, 코로나 때문에 좀 어려움을 겪었는데 밥 굶었어요?
이 세상의 어려움이 우리를 건드렸느냐? 하는 거죠. 

그냥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코로나가 안 와도, 
또 다른 형태의 어려움은 옵니다. 

오히려 코로나가 왔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어려움들이 않오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그러잖아요. 

다 마스크 끼고 다니니까, 코로나때문에 감기걸린 사람 없다고.. 
요즘에는 감기로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대요. 다 건강 관리를 철저히 하니까..
오히려 감기 독감에 걸려서 죽을 때보다, 코로나 때에 더 적게 죽었대요...

금년 새해 2021 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내년에 우리에게 어떤 상황이 온다 해도 
여러분들이 이제 두렵습니까? 
아뇨, 우리는 안전해요! 

이거를 가르쳐 주시려고, 특별히 죽을 구덩이에 빠져 있던 우리를 
여기까지 살려서 왔잖아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주신 음성은 '너희는 안전해!' 

 

북한에서 오신 탈북민들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원하는 게 
이거(평안)라는 걸, 저는 알아요. 

그렇게 쫓겨다니며 살고, 그렇게 굶주리면서 가족이 흩어지고 이러면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추구하는 게... 안정된 삶이에요. 

그런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힘이, 돈이라고 믿기 때문에 
다들 지금 돈을 주고 평안을 얻으려 하는데... 그렇게 해서 못 얻습니다.

돈은 우리에게 평안의 삶을 줄 수 있을까요? 못 줘요.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정말 마음으로 의지 하잖아요? 
그럼 그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이 임해요. 

2021년 새해가 됐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새해로 들어갔습니다. 
이 새해에는, 이 예수님을 믿고 정말로 의지해서 평안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말이 안되게 신기한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저 사람들은 가진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웃지? 
가진 것도 없는데 저렇게 왜 편안해 보이지? 
우리는 가진 게 잔뜩 많은데 고민거리가 많고
주식시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웃었다 울었다 막 이러는데 
저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그냥 맨날 깔깔 웃고 왜 저러지?' 
이런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 앞에는 인생의 어려운 일들이 앞으로도 많이 닥칠 것입니다. 
이 어려운 고난을 하나님께서 치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그것을 받겠습니다. 그래서 든든히 서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