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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7:1~14 미스바의 부흥

LNCK 2023. 2. 20. 22:35



◈미스바의 부흥           삼상7:1~14          설교 녹취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법궤는 7개월 만에 이스라엘 땅 기럇여아림으로 이제 돌아오게 됩니다. :1 
근데 원래 법궤가 있던 지역은 기럇여아림이 아니고 실로 라는 곳이에요. 

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20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번역상 의역인데, 직역하면 '애통하니라' 는 말이에요. 
울며 애통하면서 사모하는 거죠.

뭔가에 기갈과 목마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통했다 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느낌상 "아직도 뭔가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완성되지 않은 느낌"을 
이 본문에서 받습니다. 

왜 법궤는 기럇여아림에 20년 동안을 지체하여 머물러 있었을까요? 
왜 원래 법궤가 안치되어 있던 '실로' 라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학자들은 아벡 전투 4:1 에서 실로가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봅니다. 
그때 이후로 실로는 성경에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애통(사모) 했을까요? *아래에 설명함

이때 이제 드디어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 앞에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고전의 원인은 '우상숭배'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조금씩 희미하게나마 지금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실제적인 상황이 
안개가 거두어지듯이 구체적으로 점점 드러나죠. 

법궤는 20년 동안 기럇여아림(헤브론)이라는 곳에 방치돼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문제 앞에서 여호와를 사모(통곡)하니라.. 고 했어요.

보니까 아직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2~3절이 보여주는 거예요.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3
이 표현은, 아직도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영향력 밑에서 신음속에, 고난의 역사속에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것이 무슨 고난이고, 어떤 억압의 모습일까요?
보니까 여기 3절에 우상문제가 나와요. 

'아스다롯'..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던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흉내내어 섬기던 유명한 여신입니다. 

그런데 아스다롯이라는 여신의 남편 신이 있어요. 
고대 신은 항상 부부가 있습니다. 그 남편 신은 바알 이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안 믿는 것도 아니에요. 
신앙고백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믿어요. 
그리고 자칭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 이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과 인식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것은, 

바로 바알신과 아스다롯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 였어요.
거기서 발을 못 빼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 두 신이 그 고대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던 실질적인 약속은 뭐냐? 

바알신은 남성 신으로서 능력과, 전쟁에서 승리와, 풍요를 가져다줘요. 
그래서 바알 신에게 접근하려면, 아내 신인 아스다롯을 같이 섬기게 됩니다... 

이것을 오늘날 현대인들의 언어로 풀이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좀 더 매력적이고, 좀 더 생산적이고, 좀 더 확실해 보이는 
그런 현세적 가치들에게 사람들은 자기 삶의 무게추를 두고 있었다'

그 말이에요. 

그럼 하나님은 안 섬기느냐? 동시에 섬긴다니까요. 
예배시간마다 예배드리고, 십일조 드리고, 또 선교 때 헌신하고... 

그런데 실질적인 현실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영업의 현장에서, 또는 아이들을 양육하는 교육 현장에서 
결혼의 문제 앞에서, 직장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 앞에서 
그때 사람들을 지배하는 모든 사고체계는 
철저하게 바알과 아스다롯의 가치를 따르고 살았다.. 하는 말이에요. 

신앙 따로, 현실 따로.. 철저하게 이중적 구조로 사는 거에요. 
이것이 블레셋의 영향력 아래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독한 영적인 곤고한 상태의 이유, 원인이었어요. 

그리고 아직도 물리적으로 블레셋 영향력 아래 
그들이 실질적으로 볼모로 붙들려 있는 상태입니다. 

(중간 정리하면,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정신적, 영적으로
또한 물리적으로 지배를 당하고 있어서.. 아주 곤고해서 울고 있는데..
물리적 지배도 괴롭지만

그보다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영적 지배를 더 받고 있었다는 거죠. :3
우상숭배는 블레셋이 강요한 게 아니라, 그 매력에 붙들려서

이스라엘이 스스로 못 빠져나오는 거죠.)

이것이 깊어갈수록 그들에게는 
'더 큰 고통과 애통함이 하나님을 향하여 커졌더라' 그 말이에요. 

▲이때 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무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듣고  :3

백성들은 정말로 돌이킵니다.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그러니까 사무엘 선지자의 회개에 대한 촉구에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서히 

영적인 길고 깊은 잠에서 이제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우리 백성들의 삶에서, 어디가 문제였는가?' 
이것을 이제 정확하게 파악하고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밤이 깊을수록 여명의 새벽이 밝아오듯이 
죄악의 밤이 깊어갈수록,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과 기갈을 통해 회개하자 
점점 은혜의 새벽이 이들 앞에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러면 이게 사실은 어디서 건너 뛴 본문인가 하면 
삼상4:1에서 건너뛴 본문이에요.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4:1

본문 7:1절이, 사실은 4:1절에서 연결되는 내용이라는 거죠. 

 

그 사이에는 4장, 5장, 6장 전체는 삽입구 라고 볼 수 있는데,
전부가 "언약궤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언약궤에 관한 이야기를 석 장(4, 5, 6장)에 걸쳐서 길게 했어요. 
그걸 삽입구로 보면, 4:1절에서 본문 7:1절이 연결되는 거죠.

언약궤 얘기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석 장에 걸쳐서 언약궤 얘기를 길게 했을까요?
'언약궤를 그들이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상태와 수준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사무엘상> 처음부터 사무엘 얘기를 쭈욱 하다가 
가운데 석 장을 언약궤 얘기를 (삽입) 해버리는 겁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신앙의 가치관이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라는 거죠. 

언약궤만 갖다 놓으면 전쟁에서 이길 줄 알았죠. 
그랬더니 법궤를 가져오기 이전인 1차전에서 패한 것보다   *4천명 사망
법궤를 메고 온 후인 2차전에서 더 엄청난 패배를 맛보지 않습니까. *3만명 사망

급기야는 그 아벡 전투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 땅으로 
전리품으로 넘겨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래서 블레셋 땅에서 7개월을 머물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법괘가 이스라엘 땅에 기적 가운데 돌아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도 신앙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어요. 

20년 동안 기럇여아림에 법궤는 방치되고 
여전히 블레셋이 섬기던 가나안 지방의 그 우상의 가치를 
한 측면에서 자기 삶의 축으로 삼고... 
그렇다고 하나님을 버린 것은 아니고... 
이렇게 양다리 걸치고, 어정쩡하게 이중적인 삶을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하여 제일 먼저 선포한 말씀이 뭐냐 하면 
'우상을 제거하라!'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선언한 겁니다. :3

회개라는 게 뭡니까? 회개는 성경 어디에서도 
윤리나 도덕적인 개념으로 먼저 접근한 적이 없어요. 
회개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얘기합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걸, 회개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들이 제일 먼저 감행했던 게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 속에, 우상을 제거하는 일들을 여기서 드러냅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4


▲사무엘의 언약 갱신
그리고 나서 사무엘은 미스바로 백성들을 소집 명령을 내려요.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미스바'라는 이름 뜻은, '망대, 파수대', '높은 곳에서 지켜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 소집이, 굉장히 중요한 언약적 흐름이 그 속에 감춰져 있어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성경속에 보면 
이런 지도자들을 통해서 몇 차례 소집한 경우들이 있습니다. 

 

1) 모세 언약 
제일 중요했던 소집이 출19장의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부르시죠. 소집하셨어요.
그건 모세에게 율법을 수여하시고 
그 율법으로 이스라엘과 언약식을 맺게 하기 위해서, 소집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 밑에 전원 소집했어요. 
하나님은 그때 백성들에게 율법(계약서)을 수여하죠. 출19장

거기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하나님이 계약을 했어요. 
계약 내용은 '내가 너희들 반드시 지킬 것이고, 함께 할 것이고, 인도할 것이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왜냐면 내가 너희를 구속했다.' 

그러고 나서 언약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백성들을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여보냅니다. 

그리고는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하나씩 하나씩 다 점령해 들어가요. 
모든 땅의 정복이 마칠 즈음에, 세겜이라는 지역에서 
다시 백성들을 여호수아가 전체로 소집해요. 

2) 여호수아 언약 
이제 여호수아가 이제 죽음이 얼마 안 남겨졌을 때 입니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같은 명령을 하나 내립니다. 

'내가 너희 앞에 복과 저주를 두겠다. 너희는 오늘날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택하겠노라!'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기 전에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 백성과 맺었던 언약을 갱신했던 겁니다. 

'갱신'이란, 모세의 시내산 언약이.. 여호수아 대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무슨 전화기 같은 거 계약기간 연장 하고, 계약 갱신도 하잖아요.)

3) 사무엘 언약 
이런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본문의 미스바 집회에서 '사무엘 언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언약 갱신(언약 연장, 언약 재확인) 식'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언약을 갱신한 거예요. 
언약을 갱신한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과거 언약을 재확인하고, 재언약하고, 기간 연장하고, 재헌신 하는 거죠.

본문에 '언약' 이나 '언약 갱신'이란 단어가 안 나오지만
6절에 백성들이 회개했다는 구절에서.. 언약 갱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거죠.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은 사람이 바뀌어도 역사가 지나가도 변함없이, 
흔들림없이 지켜질 것이고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내 언약만 붙들면 
너희에게 반드시 복이 될 것이다.' 그거를 갱신(재확인)하는 거에요. 

▲사무엘이 언약을 갱신하게 된 배경
여호수아 사후, 이스라엘은 불행하게도 사사시대로 접어듭니다. 
가장 칠흑 같은 영적인 암흑기로 접어드는 거에요. 

그리고 한 2백 년(사사시대)을 말씀이 끊어진 채 지냅니다.
그 때 당시의 분위기를 이 한 구절이 잘 대변해 주죠. 
'말씀이 희귀하던 때라'  3:1

사무일이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던 때는 
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도 않고, 말씀이 끊어졌던 때에요. 
그래서 말씀이 희귀하던 때였죠. 

그래서 어린 사무엘도,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조차도 처음엔 못 알아들었어요. 
여러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재앙의 시대였는지 아십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난 이러한 현상들이 (삼상1~6장)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게 아니란 말이에요. 

말씀 없이 살다가, 자기 소견대로 옳은 대로 살다가 
그게 쌓이고 축적되고 팽창돼서 드디어 폭발하고 터진 결과물이에요. 

지금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에 지도자로 세워지면서 
실질적으로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로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시 미스바에 전체로 소집하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언약의 갱신입니다. 
모세언약, 여호수아 언약의 바턴을 이어받아서, 사무엘 언약으로의 갱신이에요!

'시대는 달라지고 사람은 바뀌었어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의 언약과 
그분의 성실하심과, 그분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시대를 살지만, 
이 말씀(모세 언약, 율법)을 붙들어야 삽니다!' 라고 

사무엘이 나서서 하나님과 관계 개선, 즉 언약의 갱신을 해주는 거에요. 

어느 시대에든지 이 언약에 대한 갱신은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등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미스바에서의 소집은, 그냥 단순한 소집이 아니에요. 
두 가지를 명령하죠.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니라' :6 
여기서 '다스린다'는 말은,  *샤파트
'재판한다, 통치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미로는 '말씀을 먹인다, 목양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말씀을 가르치며 재판하고 통치하는 거죠.

우리 교회의 목자, 목사님들이 목양을 하지요. 
목양에 가장 핵심적인 가치가 뭐에요? 말씀을 먹이는 거에요. 

부모의 가장 핵심적인 책임이 뭐에요? 
애들을 먹이는 거예요. 

6절에 '사무엘이 다스리니라' 라는 말은 
말씀이 끊어졌던 그 시대에, 언약의 (갱신)식을 통해서 
모세로부터 내려왔으나 사사기에 그 끊어졌던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다시 계승해서 먹이기 시작했다... 는 말이에요. 

그리고 백성들은 '물을 부었는데' 
그것은 자기들의 마음을 다 쏟아내서 기도했다는 뜻이고,

또 '금식했다'다는 말은 
낮아지고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언약의 갱신식'이 완전히 이루어진 셈이지요.
(비유하자면, 관계가 소원해지고 별거 처럼 살던 부부가, 
언약 갱신식, 즉 심령부흥회를 통해서.. 관계가 다시 합쳐진 것이죠)

그리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였어요. 
여러분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날카로워져요. 신경질들을 내고 짜증들을 내요. 

근데 일단 배가 부르면 마음이 이상하게 넉넉해져요. 여유도 생기고... 
그래서 무슨 회의를 하든지, 일단 밥을 먹고나서 해야 효과가 있어요. 

사무엘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6
그 핵심적인 가치가. 바로 백성들에게 
과거에 사사기때 '끊어졌던 말씀을 다시 먹이기 시작했다'는 말이에요. 


◑이때 뜻밖에도 전쟁이 벌어집니다. 

7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로 소집령이 내려서 다 모였어요. 
그런데 그 모인 목적이 뭐예요? 언약의 갱신인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사무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인 거 아니에요. 
그러면 그건 신앙적 동기와 목적이죠. 

그런데 블레셋 쪽에서 볼 때는 오해를 한거에요. 
블레셋은, 저 이스라엘 사람들이 왜 높은 곳 미스바로 다 모일까? 
'우리의 압제에서 반역을 일으키려 하나보다.. 
이 놈을 다시 한번 혼이 좀 나야 되겠구나!' 하고 전쟁을 치러 올라온 겁니다. 

왜 하나님은 회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필 전쟁을 또 맞닥뜨리게 하냐? 그 말이에요. 
이게 좀 흐름이 맞아요. 이상하잖아요. 

이들이 실질적으로 금식을 하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물을 붓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고 있는데 
또 하나님의 말씀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고 있는데 
이 마당에 왜 하필 전쟁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느냐는 말이에요. 

여기에는 하나님이 어떤 매듭적 차원에서의 섭리가 있습니다. 
보세요. 
아까 블레셋 사람들의 그 가치와 종교와 문화 속에 
이스라엘 공동체가 물들어서, 신앙을 이중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랬어요. 

하나님을 안 믿는 건 아닌데 
현실에 들어가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는 것이죠. :3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요즘 젊은이들의 제일 메인 이슈가 결혼인데,
'어떤 형제를 놓고 기도 하십니까?' 물어보면
'신앙만 좋으면 됩니다!' 말은 그래요. 

그리고 이제 정말 신앙만 좋은 사람을 소개를 하면 
5분만에 일어나서 나가버리고 
화장실 간다고 했다가 안 들어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이건(돈) 있어야 될 거 아니냐?' 하는 거죠. 

어떤 자매는, 어떤 자매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정말 꼬질꼬질한 가난한 형제인데 
옷을 사계절 안 바꿔입고 다니는 형제 였어요. 바꿔 입을 옷이 없으니까. 

옛날에 미군 군복을 꺼멓게 물들여 가지고 
그거를 사계절 입고 다니는 그런 형제였는데 
그 형제의 뭘 보고 반했는가 하면 

자매가 늘 기도실에 기도를 하러 들어가면 
그 형제가 이렇게 구부정하게 
늘 그 잠바를 입고 마루마닥에 엎드려서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 하는 등짝, 그 모습에 반한 거에요. 

거기에 그 기도 하는 등(짝) 하나 보고, 그 자매가 결혼을 한 거에요. 
이 자매가 바로 저희 집 사람이에요. 결혼 후에 얘기해 주더라고요.

△여러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실존이 무슨 문제인지 아세요? 
전쟁이에요. 
전쟁 나면 다 죽는 거고, 전쟁 나면 다 거기에 휘말리게 되는 거예요.

우리 부모님 세대는 625 라는 참혹한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그 전쟁의 전율과 공포와 끔찍함과 참상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아무리 젊은 층이 레프트로 가도 
공산주의를 몸으로 겪은 나라이기 때문에, 쉽게 좌경화가 안 됩니다. 

우리나라 진짜 문제는, 좌파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없어서 문제에요. 

어쨌든 전쟁이라는 것은,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적 실존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다가.. (복을 받은 게 아니라)
전쟁을 끔찍하게 겪게 되는 거예요. 

근데 보통 전쟁이라는 것은 몇 가지 요인에 의해서 승패가 갈라지죠. 
병력 숫자, 무기, 전략, 제일 중요한 사기.. 
이런 몇 가지 핵심 요인들에 의해서, 전쟁의 승패가 갈라지죠. 

그런데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니까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지 보세요. 

10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보세요. 전쟁이 서로 상대방의 어떤 조건에 의해 승패가 났습니까? 
엉뚱한 외부 요인에 의해서 승패가 났습니까? 
10절에, 외부의 조건으로 승패가 났어요. 이게 뭘 말하고 싶은 걸까요? 

그러면 이 외부의 조건을 누가 움직이신 거예요?
하나님이 하신거에요. 

보세요. 가장 본질적인 실존의 문제(전쟁)에 
실질적으로 누가 지금 개입해 들어오신 겁니까? 하나님이세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이제까지 어두운 역사를 살아왔었습니까? 
하나님 믿는 신앙고백 달랐고, 삶은 또 달랐다는 말이에요. 
신앙은 신앙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은 바알과 아스다롯이다 한 거죠.
그렇게 살아왔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이들이 회개하는 현장에 
하나님이 뜬금없이 전쟁을 겪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여, 진짜 참된 실존이 뭔지 아느냐? 
하나님이 실존이시다!' 본문은 그 얘기를 가르쳐주는 거에요. 

그거를 백성들 뼛속 깊이 각인되도록 
하나님께서 확인시키는 겁니다. 

▲적용하면

'복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실제 현실에서도 복음으로 충분한 거예요. 
거기에 토를 붙이지 말라 말이에요. 

말은 '하나님께 다 맡겼습니다' 그러는데 
또 현실에서는, 자기가 주판 놓고, 또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게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거죠.

기도가 실존이에요. 실존이란 '가장 실제' 란 말이에요.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우리가 믿는 그대로, 그게 내 삶 속에 실제가 돼야 되고, 
실존이 되어야 된다는 그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실패해 있었어요. :3
그래서 하나님을 손 놓은 건 아닌데 
현실에서는 나에게 풍요를 주고, 먹거리를 주고, 이 땅에 물질을 가져다준다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것도 따로 섬기고...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서) 블레셋에 압제를 당하는
고달픈 생활을, 사무엘 6장까지 온 거예요. 

4장의 전쟁에서도 패하고요. 이 전투를 '아벡 전투'라고 부르는데,
법궤를 빼앗겼고,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블레셋이 여세를 몰아서, 실로를 초토화 시킨 것으로
학자들은 그렇게 이해합니다. 왜냐면 그 이후로 '실로'가 성경에 안 나오거든요.
그리고 7개월 후 법궤가 돌아왔으나, 실로에 안 가져갑니다. 
거기는 성막이 이미 무너져 있었기 때문이죠! 대신 기럇여아림으로 가져왔죠.

△과연 우리 신앙인의 삶 속에, 정말 그런 비슷한 일들이 안 벌어질까요?
벌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교회에 와서 깜짝 놀랐는게 
이 청년들이 말씀대로 손해보고, 어려운 길을 각오하고 걸어가는 것을 
많이 봐요. 참 목사인 저를 부끄럽게 하는 청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청년들이, 결혼을 할 때도, 또 하고 나서도 
그 신앙의 기개와 푸르름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나라를 바꾸고 시대를 바꾸는 것은 
어떤 집단이 바꾼 적이 없어요. 늘 한 사람이 바꿨어요. 한 사람이! 

하나님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그 시대를 바꿀 때, 다수를 쓴 적이 없어요. 
여기 지금 사무엘이라는 한 사람이 준비될 때, 나라에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란 뜻이죠.
에벤에셀은 앞서 4:1에 먼저 나왔었죠.

4장에서 '에벤에셀까지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왔을 때' 참패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힌 광경은 
그 에벤에셀에서 하나님의 법계가 아스돗으로 옮겨가버려요. 빼앗깁니다. 

그 에벤에셀은 매우 치욕의 장소였어요. 
그런데 이들이 참된 회개와, 하나님 앞에 자복하여 은혜를 구하자 
그리고 사무엘의 말씀이 선포되자.. 이들은 이제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에벤에설이, 그 실추되었던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장소가 되었어요. 여러분들이 걷는 인생의 길목마다
이런 '하나님의 기념비'가, '에벤에셀(도움의 돌)'이 세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15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16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17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다스렸으되, 다스렸고, 다스렸으며' 
'다스렸다'라는 말이 뭐에요? 말씀으로 목양을 했다는 말이에요. 
그 의미가 그렇다는 거죠. (신정통치 국가 아닙니까)

목양의 핵심은 뭐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고 가르쳤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리더들, 모든 간사들, 모든 진장들의 
가장 첫번째이자 마지막 과제는 
양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거에요. 

그게 우선 되지 않으면, 그 모든 나머지 행위는 그냥 종교행위에 불과합니다. 
믿습니까? 

본문에 미스바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이스라엘의 부흥에
몇 가지 요인이 있는가를 살펴 보세요. 

첫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참된 회개입니다. 

물을 쏟듯 통곡으로 회개하고, 금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을 때 
그것은 치욕의 에벤에셀이 아니라, 새로운 회복의 에벤에셀이 됩니다. 

여러분들의 앞길이 그런 탄탄대로로, 시온의 대로로 이어지고,
복락의 강수가 흐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미스바광장에 새롭게 시작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몇 가지 중요한 초점을 확인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바른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목이 말라야 됩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올해는 우리가 말씀에 목이 마른 심령으로, 
내 심령이 먼저 부흥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거기서부터 세워지는 바른 가치관과 바른 상식과 바른 판단으로 
우리의 모든 신앙의 삶의 실존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게 하소서. 

빵이 없어 기갈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름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그렇습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에, 주님의 말씀에 목말라 있는가요? 
내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소리 내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