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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8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2. 21. 15:39

◈삼상8장 해석 및 주석

1 사무엘이 늙으매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 사사로 삼으니 

'사무엘이 늙으매' 
이때 사무엘의 나이는 약 50살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되어진다. 이렇게 추정할 수 있는 까닭은 사무엘이 소명받은 때가 12살 때인 B.C. 1088년이라고 보고(2:26, 3:1-14), 당시를 사울이 왕으로 취임한 해인 B.C. 1050년으로 본다면, 그의 나이는 50살로 추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미스바 전투(7:5-14)가 있은지 약 5년 후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한편, 유대 탈무드는 이 당시 사무엘의 나이를 52살로 보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학자들은 그들의 연대 추정법에 근거하여 당시 사무엘의 나이를 70세 정도로 보고 있다.

'그 아들들로...사사를 삼으니' 
이것은 사사직(士師職)의 안전한 이양이나 계승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사무엘은 자신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두 아들들을 보조 사사로서 임명한 듯하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사사직이 세습 계승된 일은 전혀 없었다. 물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왕(사사)으로 자처하기는 하였으나(삿 9:16), 그러나 그것은 사사직의 합법적 승계는 절대로 아니었다.

2 장자의 이름은 요엘이요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라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브엘세바'(Beersheba)는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으로, 족장 시대로부터 유서 깊은 곳이었다(창 21:31). 또한 고대로부터 이곳은 근동과 애굽의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요충지로서, 이스라엘의 최남단 곧 라마로부터 약 80km나 떨어진 먼 곳이었다. 
바로 이러한 곳에 사무엘은 두 아들보조 사사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1) 사무엘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2) 그리고 이곳에 사사를 둠으로써 인접국인 블레셋의 간섭을 배제 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사무엘의 통치 중심지인 라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가나안 남부 지역까지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사무엘 외에 별도의 보조 사사가 반드시 필요하였던 것이다. 한편, 그런데 사무엘이 한 지역에 왜 두 명의 사사를 임명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따라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사무엘의 두 아들중 한 아들은 가나안 북단의 '단'에 배치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근거는 확실치 않다.

3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여기서도 엘리 가정에서와 같은 비극적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2:12). 그러나 여기의 사무엘의 경우는 엘리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르다. 즉 성경은, 엘리가 아들들의 신앙 교육을 게을리했다는 점을 강력히 암시하지만(2: 29), 사무엘의 경우에 대해서는 그러한 암시를 전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자식 교육을 위한 사무엘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만 아들들이 거기에 순종치 아니했음을 시사해 주는 말인 것이다. 결국 사무엘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보여준 신앙과 삶의 본은 말할 나위없이 대단히 훌륭했음이 분명하다(12: 3).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利)의 추구(출 18:21), 뇌물수수(출 23:8, 사 1: 23, 5:23, 암 5:12). 판결의 왜곡(출 23:2, 6, 8, 신16:19, 24:17, 사 5:23) 등은 특별히 성경이 지도자된 사람들에게 절대로 금지시킨 조항들이다. 따라서 사무엘의 아들들의 이 같은 행위들은 그들이 사사의 본분을 망각한, 대단히 타락한 지도자들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출23:6-8, 신16:19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개역 성경에는 번역이 안되었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그래서'(so, NIV)의 의미인 '와'로 본절이 시작됨으로써, 3절의 내용이 본절의 내용을 유발시켰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모든 장로'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대표자들이다(15:30, 삼하5:3, 왕상 8:3).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본절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 장로들은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워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고 있다. 곧 그 이유는 (1) 사무엘의 노쇠에 따른 불안감, (2) 사무엘의 아들들의 악행과 무능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사사 사무엘의 생전에 그의 권위로써 자신들의 왕이 세움받기를 강력히 원했던 것이다.

'열방과 같이...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여기의 '열방'은 특히 이스라엘과 혈통적 연관성이 있었던 모압. 암몬. 에돔 등 주변 국가들을 가리킨다. 물론 애굽에도 왕이 있었으나, 당시 그 나라는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여건을 소유했으면서도 이미 왕을 갖고 강력한 왕정 제도를 실시하고 있던 모압. 암몬. 에돔 등을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이때 지파 차원의 부족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서 왕(王)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왕정 국가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주변의 이웃 나라들과 동등한 차원의 군주국(君主國)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한편, 그런데 이처럼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 자체가 악하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 왕정 제도는 이미 모세에 의해 예언된 바 있었고(신 17: 14), 따라서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도 필연적으로 왕정 제도로 발전할 수 밖에 없을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방법대로 행해져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경륜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인본주의적 욕구를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왕을 세우고자 했다. 바로 이 점이 지금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점이었던 것이다.

6 우리에게 왕을 주어 우리를 다스리게 하라 했을 때에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매 

'사무엘이 기뻐하지 아니하여' 
그러나 이때 사무엘은, 자신의 노령과 아들들의 실정(失政)을 들먹이면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왕을 요구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같은 악감정을 품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무엘은 그러한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워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장로들의 근본 동기를 파악 했기 때문에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즉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 동기는 신정(神政) 정치를 불신하는 그릇된 왕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사무엘은 그들의 요구에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주변 국가에 압제당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범죄와 불신앙과 우상 숭배 행위에 있는 줄 깨닫지 못하고, 사사(士師)제도와 같은 신정정치의 결함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태도는 이제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로, 곧 선민으로서의 고유한 특권과 사명을 포기하는 이른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독립 선언과 같은 방자한 행위였다. 사무엘은 이러한 점을 바로 파악하고 백성들의 요구에 깊이 괴로워한 것이다.

'여호와께 기도하매' 
이것은 사무엘이 자신의 판단에 혹시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지나 않았을까 염려하여,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물어보는 진지한 태도이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즉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열방과 같이 왕을 세워 주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음을 보여 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고 인간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인 허용일 뿐이다(호 13:11).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러한 백성들의 요구에 응하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인간 왕이 가져다 주는 온갖 폐해를 깊이 체험케 하여,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왕이요 유일한 통치자임을 깨우쳐 주려고 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장로들이 공식적으로 왕을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일면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여 자신의 사사직(士師職)을 사임케 하려는 것으로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여호와의 말씀은 백성들의 요구가 그러한 단순한 동기 이상의 것임을 분명히 지적해 준다. 즉 백성들은 단순히 사무엘 이후 자신들을 다스릴 신정적(神政的) 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열방의 뭇 왕과 똑같은 정치적(政治的) 왕을 요구한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의해 예언된 바(신17:14-20) 신정적왕, 곧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율법을 보존. 전수하고 우상 숭배 행위를 척결하며 여호와 신앙으로 단결시켜 국력을 튼튼하게 하는 일 등을 주임무로 하는 그러한 왕을 요구했더라면, 오히려 그것은 사무엘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러한 정치적이고 무력적인 절대 군주를 원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는 일로서 곧 여호와를 버린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성경은 도처에서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을 강조하고 있다(출 15:18, 신 33:5, 삿 8:22,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자신들을 강력하게 다스릴 또다른 왕을 요구한 것은 곧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치 않는 것과 동일한 행위였다(10:19, 12:12). 나아가 이 행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신 여호와를 저버리고, 대신 절대적으로 의뢰할 또다른 그 무엇을 섬기고자 하는 우상 숭배 행위와 다름없었다.

8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 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한 행위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며, 또한 당시 성실히 사사직(士師職)을 수행하던 사무엘에 대한 반역임을 말하고 있다.

9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엄히 경계하고...알게 하라’
이스라엘이 스스로 택한 왕으로 인하여 후에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점을 못박고 있다(롬 3:25, 26).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본문은 백성들의 요구대로 왕정 제도가 실시될 경우 필연적으로 야기될 문제점에 대해서 사무엘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것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1) 젊은 남녀의 징집(1-13절), 
(2) 곡물과 가축의 징세 및 징용(14-17절),
(3) 그외 왕의 폭정으로 인한 온갖 고초(18절) 등이다. 
즉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왕은 열방과 똑같은 형태의 권력형 군주로서, 사랑과 공의의 왕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스라엘이 그 우심을 따라 스스로 택한 지상 왕의 생생한 모습이다.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백성들이 세우고자 하는 왕은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는 전제 군주가될 것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왕 개인을 위해 백성들이 치러야 할 희생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말이다.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여기의 '밭'은 왕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왕실의 농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왕이 자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백성들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리란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같은 일은 백성들의 원성을 극심하게 할 수 밖에 없었다(렘 22:13). 후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됐던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이같은 강제적인 노동력 착취 때문이었다(왕상5:13-16, 12:10, 11). 한편, 여기서 '밭을 가는 일'과 '추수하는 일'은 곧 농사의 전과정을 가리킨다.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그가...딸들을 취하여' 
왕이 백성들 중 젊은 남자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젊은 여자들까지도 징집하여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향료 만드는 자' 
여기의 '향료'는 몸에 뿌리는 향수 및 몸에 바르는 향기나는 연고를 모두 가리킨다. 이것들은 고대 중근동에서 주로 궁중의 호화로온 사치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물품들로 간주되었다. 한편 이것의 원료는 침향, 창포, 계피 등으로서,이 원료들에 대한 무역은 그당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었다(창 37:25, 왕상 10:10, 겔 27:22).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이것은 왕의 궁전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식사 준비를 위하여 백성 중 특히 젊은 여자들이 징집될 것을 말한다. 그런데 후일 솔로몬 왕 당시 궁전에서 하루에 소용되었던 식량이 가는 밀가루 삼십 석, 굵은 밀가루 육십 석, 소 삼십 마리, 양 일백 마리 등이었다는 점에서 (왕상 4:22, 23), 왕의 궁전으로 징집되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받았을 여자들의 수효는 실로 엄청났을 것이며, 또한 그들의 고초도 대단했을 것이다.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너희 밭...취하여' 
왕이 백성들의 토지 또는 그 토지의 좋은 소산물들을 임의로 빼앗는 것은 명백히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다(민 36: 7, 왕상 21 :3). 본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권력을 가진 왕들은 온갖 교묘한 방법을 다 동원하여 백성들의 토지 또는 그 토지의 소산물들을 빼앗을 것임을 경고한다(왕상 21 :1-16).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이와 같은 하사(下賜)는 고대 중근동의 국가들에서 널리 시행되었던 봉건 제도적 관습 중의 하나였다. 특히 이와 같은 일은 왕이 선하들에게 보다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기 위하여 시행되었다 (22:7).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십일조를 취하여' 
여기의 '십일조'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여호와께 바쳤던 것(레 27:30) 이외의 별도의 십분의 일(1/10) 을 말한다. 한편 우가릿 문서들은(Ugaritic Texts) 왕에게 바쳐졌던 이와 같은 십일조 제도가 고대 중근동 지역에 널리 통용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같은 제도는 틀림없이 백성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 노비' 
'너희 노비'는 원문대로 하면 '너희의 남자 노비와 너희의 여자 노비'란 의미이다. 한편 이 '노비'는 전쟁 포로로 잡혀와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 팔린 외국인 노예들을 가리킨다(출 12:44, 레 22:11, 25:44, 전 2:7).

'가장 아름다운 소년' 
여기서 '소년' (바하르)은 (1) 칠십인 역(LXX)이 '황소'(타 부콜리아)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2) 문맥상 '소년'보다는 '황소'가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필사자가 '황소'라는 의미의 바카르를 바하르로 잘못 옮긴 듯하다(Keil, Fay, Smith). 이같은 추측은 본절의 '노비', '황소', '나귀' 등이 모두 토목. 건축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는 사실에서 보다 확실해진다.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이것 또한 종교적 목적으로 바쳐진 십일조 이외의 왕실 유지용 세금과 같은 성격의 십일조였다(15절). 한편 모세 율법에서도 여기서처럼 곡식의 십일조와 가축의 십일조을 따로 분리하여 언급 한다(레 27:30, 32).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이것은 11-17절에서 길게 언급한 왕의 제도(권력)의 결론이다. 즉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와 같은 절대 군주 밑에서 사는 생활은 곧 노예의 생활과 다름없음을 말해주는 두려운 경고이다(9, 11절).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그날에...부르짖되...응답지 아니하시리라' 
본절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즉 (1) 본래 하나님께서는 열방과 같은 왕 제도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9절),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과 같은 왕 제도를 허락하신 것은 그 자체가 곧 형벌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 등이다. 
한편 개역 성경에는 생략 되어 있으나, 히브리 원문에는 '택한 왕'을 수식하는 말로 '너희 자신들을 위하여'(라켐)란 말이 나타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응답지 않으시는 이유를 한마디로 보여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세속적 욕심에 따라, 자신들의 유익만을 추구키 위하여 왕을 요구했다는 점 때문에 그들의 부르짖음에 귀기울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왕으로 인한 이와 같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부르짖음은 후일 왕국 시대에 빈번히 일어났고, 특히 북왕국의 여러 폭군 치하에서 많이 터져 나왔다.

19 백성이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분명 이스라엘 장로들은 사무엘의 경고를 듣고 나름대로 숙의하고 논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욕심과 아집에 귀가 막히고 눈이 먼 그들은 자신의 요구를 철회하고 반성하기는 커녕 더욱 더 강력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내세우기 바빴다. "아니로소이다! 우리도 우리 왕이 있어야 하리니".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와 같은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던 불순종적인 일과 관련 하여 성경에 자주 나타난다(왕하 17:17, 렘 11:10, 13:10).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우리도 열방과 같이 되어' 
'열방과 같이 된다'는 말은 보다 조직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왕정 국가가 됨을 가리킨다(5절 주석 참조).

'우리 왕이...싸움을 싸워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암히해 준다. 즉 그들은 타민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변 열방처럼 조직력을 갖춘 군대와, 또한 그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강력한 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이 훈련이 잘된 이방 군대의 강력한 힘과 짜임새 있는 조직, 그리고 그러한 조직을 지휘하는 위풍당당한 왕의 모습에 매료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따라서 본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지금껏 싸워오셨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대신하여 싸워주실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출 14:14, 신 20:1-4, 수 10:14, 42, 23:3, 10, 삿 4 :14, 삼하 5:24) 믿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죄악성을 분명히 보여 준다.

21 사무엘이 백성의 말을 다 듣고 여호와께 아뢰매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놓고 사무엘이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제사장적 선지자로서 중보적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이로 볼 때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에 관한 문제는 이스라엘과 사무엘 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왕을 요구하는 백성들의 그릇된 동기를 지적하여 이르기를 "그들이...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22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하시니 사무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하니라 

'그들의 말을 들어 왕을 세우라' 
사무엘을 통한 여호와의 강력한 경고(11-18절)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집을 굽히지 않는 백성들의 요구에 응해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왕정 제도를 허락하셨다. 이러한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대한 하나님의 허락은 방임적 성격을 띤 것으로서 일종의 심판이 되어진다(롬1:24, 25). 이러한 사실은 후일 호세야 선지자에 의해 설파된 바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호 13:11)는 메시지에 의해 알 수 있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왕정 제도'를 통하여 당신의 구속 역사를 펼쳐나가셨다. 결국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은 늘 실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실패까지도 당신의 구속 섭리 가운데로 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F.R.Fay).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마침내 사무엘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각 지파 각성읍으로 돌려보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왕을 위한 백성들의 요구가 완전히 수락되었으니, 이제 이 소식을 각 성읍에 알리고 재소집의 시기를 기다리라는 의미가 있다. (2) 왕을 세우기 위한 제반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