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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8장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LNCK 2023. 2. 21. 20:21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              삼상8장           여러설교정리

◑사무엘의 노년과 그의 아들들

1~3절에, 사무엘이 늙었다.. 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래서 이제 그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보조) 사사로 삼았습니다. 

지금 사무엘이 은퇴하고, 아들들에게 사사직을 승계시킨 게 아니라,
사무엘이 현직에 있으면서, 두 아들을 사사로 삼은 거죠.
그러므로 사무엘 자신의 보조 사사로 임명했던 것입니다.

2절에, 그 아들들이 이름이 나옵니다. 요엘과 아비야 입니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었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남단에 속하는 지역이며,
사무엘의 활동무대인 라마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된 이유는,
1) 사무엘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통치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2) 그리고 이곳에 사사를 둠으로써 인접국인 블레셋의 간섭을 배제 시키기 
위함이었죠. 
아무튼 사무엘의 통치 중심지인 라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가나안 남부 
지역까지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별도의 보조 사사가 반드시 필요하였던 것이죠. 

3절 '그의 아들들이 자기 아버지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그런데 이 사무엘의 삶의 마지막 부분에서 
노년의 엘리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참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엘리에게 두 아들이 있었고 
엘리의 두 아들은 엘리의 (제사장)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도 늙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도 똑같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두 아들 다 제대로 사사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던 거죠.

근데 또 한편 사무엘은 엘리와 같지 않았다.. 라는 것을 좀 보게 돼요. 
성경은, '엘리에게 그의 두 아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라고 말하지만,
사무엘에게는, 두 아들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를 볼 때, 한 편으로 위로가 되는 점은,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도 
'자녀 교육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내 자식은 내가 망쳤구나. 
내가 사무엘처럼 똑바로 못 살아서 그래..' 라고 자책하는데,
사무엘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부모가 바로 살아도 
그 자녀들이 빗나갈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위로를 받죠.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한 이스라엘

이때 이스라엘을 사무엘과 함께 다스리고 있었던 장로들이 
사무엘의 아들들의 잘못을 계기로,
나라 전체가 바뀌는 개혁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4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나아가서
5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런데 왕을 요구하는 것이 잘못입니까?  No
'우리에게 왕을 세워주소서!' 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왕(그리스도)을 통해서 우리를 다스리는 나라잖아요. 
그러니 하나님도 사실은 '왕의 통치'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신명기 17:14~17절에 보면, 하나님은 왕제도를 허락하고 계십니다.
왕정제도 자체를 반대하신 것은 아닙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이르러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에 만일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민족들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이어지는 신17:18~20절은 각자가 찾아서 읽어보세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장차 왕정국가가 될 것을 내다보시면서
그때 왕제도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주고 계십니다.
즉, 하나님은 왕정 제도 자체를 반대하신 것은 아니라는 거죠.

문제는 '백성들이 요구하는 왕'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과 다른 것입니다.
왕 제도는 잘못이 없으나, 그 왕의 성격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6
사사인 사무엘이 왕 제도를 질투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 하나님도 백성들의 태도를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7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그럼 '백성들이 요구하는 왕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여건을 소유했으면서도 
이미 왕을 갖고 강력한 왕정 제도를 실시하고 있던 
모압. 암몬. 에돔 등을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이때 지파 차원의 부족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왕정 국가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주변 이웃 나라들과 동등한 차원의 군주국이 되길 원했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속적 개념의 왕'을 원했고,
사무엘과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이 세워지길 원했던 거죠.
그래서 지금 백성들과 사무엘 사이에, 약간의 불협화음이 생긴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신17:15

그런데 본문 18절에 보면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18

위 두 구절의 차이점이 보이십니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안 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왕을 세울 것이냐
-내가 택한 왕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나를 잘 살게 해 주는 왕)
을 세우려고 하는 것 ... 그 차이인 것입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아니라,
부패한 내 마음에 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줄 왕이
우리를 전쟁에도 이기게 해 주며, 
다시 말하면, 내 소원을 이루어줄 왕을 원한 것이죠.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
완전 자기 이기적인 목적의 왕을, 백성들은 요구하고 있었죠.

▲하나님은 말씀을 잘 가르치고 먹이며
은혜와 진리로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할 왕을 세워주길 원하셨던 것이죠.

그래서 목동 다윗을 택하여,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를 일컬어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죠. 행13:22
다윗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로서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던 거죠.  신17:15

참고로, 세상 사람들이 점쟁이를 왜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목사들은 싫어하지만, 점쟁이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점쟁이는 절대 나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네가 신앙인격이 변화되어야 된다. 회개해야 된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너는 가만히 있어도, 귀신이 다 알아서 해 준다는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이 요구하는 왕의 이미지도, 
자기들을 대신해서 싸워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마치 점쟁이 같은.. 그런 복만 주는 왕을 원하고 있습니다. 20절 참조.

이어지는 구절들을 보면, 11~22절까지의 내용은
'너희는 지금 왕을 이용해서, 너희가 원하는 소원을 이루려 하지만 
그러나 왕이 세워지면, 반대로 너희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될 거야'
라고 하면서, 그에 따르는 대가를 쭈욱.. 사무엘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11~17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자기의)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적용

▲1. 우리가 원하는 세상 왕을 세우면, 우린 그 왕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11~17절까지 사무엘이 경고하는 바였죠.

'결국은 너희가 원하는 왕은, 자기를 추구할 거야. 
그래서 너희는 그의 종이 될 수밖에 없어!' 

오늘날 우리가 원하는 나의 왕이 있습니다.
물질이라든지, 세상 쾌락이라든지, 권력이나 명예욕이라든지, 사치 등

하나님 이외의 것을, 우리가 나의 왕으로 섬기게 될 때 
우리는 그 '왕'의 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사무엘이 경고한 대로, 남왕국도 그렇지만
특별히 북왕국은.. 악한 왕들이 세워져서, 결국 백성들은 수탈되고 말았죠.
 
근데 하나님은 어떤 왕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추구하고, 자기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왕을 준비 하고 계셨습니다. 

당시로는 다윗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나는,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을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는 믿음이 떨어지면.. 자기 스스로 왕이 되려고 발버둥칩니다.

우리가 섬기는 왕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추시고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 오히려 종들을 섬기시는.. 그런 겸손한 왕이세요!

그런데, 그런 선한 성품의 왕을 섬긴다는 종들이
오히려 세상 왕처럼 군림하려고 하는 못된 성품을 지닐 수도 있어요.

왕은 종이 되려고 하시는데,
종이 왕이 되려고 하는... 참 이상한 아이러니 입니다.
 
그런 '못된 종'의 특징은 자기가 주인이 된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자기 왕국>을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참 불행하게도, 목회를 하면서도 
목사님들이 자기 왕국을 만드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 친구 목사님들 사이에서 목회성공담을 이야기할 때, 평가를 할 때 
기준이 뭔지 아세요? '저 목사는 교회에서 제 마음대로 다 한다'
이게 성공한 목회자의 (잘못된) 척도가 될 때가 있어요. 

'장로님들 무슨 말해도 안 듣는다. 목사가 제 마음대로 다 한다. 
대접 잘 받는다.' 이게 목회성공한 사람이에요. 잘못된 예죠.

하나님 앞에서 보면, 이건 망한 사람이에요. 저주받은 사람이에요. 
목회를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해요? 하나님 뜻대로 해야지요. 

방해가 있고, 고통이 있고, 문제가 있고, 
엎드려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가야지...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 먹은대로 그냥 술술 풀리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하세요?
 
과거에 우리는 625 전쟁을 통해서 모든 걸 다 잃었습니다. 
한국 교회는 부산까지 밀려가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 모든 목사님들, 장로님, 권사님들이 부산 초량교회에 모였습니다. 

모여서 다같이 하는 말이 '북한에는 돌아서면 다 교회인데 
남한에 와서 주일날 예배드리려고 하니까, 교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서 회개하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가 전도를 안 했다. 우리가 선교를 안 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셨다.' 

거기에서 회개해가지고, 부산에 신학교를 세우고 
대구으로 와서 대구신학교를 세웠어요. 

우리 어릴 때 큰 교회는 거의 다 이북출신 목사님들이 셨어요. 
장로님들도 거의 다 이북 분들이었어요. 

고난은 축복이에요. 고난이 있어야 회개해요. 
승승장구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못된 자기 왕국이나 세우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지 못한다고요! 


▲2. 하나님께서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을 기뻐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주변 이방 나라와 같아지기 위해서, 왕을 요구했기 때문" 이에요.

왕이 아직 세워지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12부족 연합체' 였죠.
그러니까 자꾸 주변 국가들, 강력한 왕의 통치 아래 부족들이 연합해 있었던
모압, 암몬, 에돔 등을 보면서... 그들을 부러워하며, 따라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5절과 20절에 그 증거가 나옵니다.
 
5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한지라'

20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 하는지라'

결국 그들을 왕 제도를 통해서 세상 나라들처럼 되고 싶어했죠. 
그래서 사무엘이나, 하나님이 그들을 책망 조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를
세워가려고 하시는데... 백성들은 '세상 나라'를 본받으려 왕을 추구한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도 마찬가지죠.
하나님은 교회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거룩한 나라, 
구별된 나라가 되기 원하시는데,
세상 나라를 전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셨는데,

오늘날 일부 교회는 
'세상 나라와 같아지기 원하고, 세상 나라를 본 받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TV 뉴스에서 이런 멘트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한 뉴스앵커는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였던 리처드 핼버슨 목사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뼈아픈 말이지만, 귀담아 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런데 슬픈 것은, 이러한 역사가 신약에 고스란히 반복된 것입니다.

요19:14~15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하나님이 준비하신 왕을 주셨는데 
그들 이스라엘이  뭐라고 말합니까?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들 마음은 이랬습니다. 
'우리는, 우리 소원을 이루어 줄 힘있는 통치자가 우리 왕이길 원합니다.
가이사 같은 왕을 우리는 원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예수를 '없이 하소서!' 라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거부하고 있는 이런 모습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더 슬프게 하는 것이고 
이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고 있죠. 

오늘날 일부 교회들이 계속해서 원하는 예수, 증거하는 예수는
'힘 있는 왕 같은 예수, 내 소원을 성취해 주는 왕이신 예수' 이런 분을 원해요.

그래서 '거룩한 예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
이런 왕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섬기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한 번 살펴 보십시오.
오늘날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왕을 원하고 있는지...

여러분, 우리가 선거 때, 어떤 정치 지도자를 원하시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정말 우리는 세속적 가치관에 의해서, 투표를 하고 있지 않는지요?

그저 국가예산을 많이 끌어올 능력자, 
우리 경제의 GDP를 상승시켜줄 전문가,
이런 세상 가치로 선택하지, 성경적 기준을 따르는 지도자를 등한시하고
또 그런 지도자가 출마하지도 않습니다.

△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

오랜 교회 역사 안에 참 회심자의 대표격인 성 어거스틴은 
지난 죄로 인해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 
또한 다가올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과거는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십시오.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미래는 하나님 섭리의 손길에 맡기십시오.” 

김대중 전 대통령 남긴 일기 중, 5월 2일자의 글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어느 쪽을 택하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내게 있는 것,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기보다 
내가 없는 것, 하나님께서 내게는 주시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는 것을 세느라 
우리는 스스로 지치고 좌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내를 보면서, 남편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의 좋은 점은 거의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웃었던 것, 행복했던 순간, 편리했던 것은 다 잊은 채, 
세어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의 약점, 모자란 부분, 나를 힘들게 한 것만 끝없이 헤아리면서 
스스로 무너집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른 교회에 비하면 모자란 부분, 약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좋은 것, 자랑스러운 것도 매우 많습니다. 
어떤 점을 세며 사느냐에 따라 교회 생활이 행복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