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삼상1:1~11 한나가 사무엘을 낳다

LNCK 2023. 2. 24. 14:11

[BREAKTHROUGH] 1. 한나가 사무엘을 낳다. (삼상 1:1-11) - YouTube

◈한나가 사무엘을 낳다           삼상1:1~11          2015년 설교, 정리

[돌파 시리즈 #1]

 

2015년도에 저희가 기도하고 있는 것은 부흥과 확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개인의 삶 가운데, 또 우리 교회 공동체 가운데 
부흥과 확장을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6개월 동안에 
'부흥과 확장'에 대한 말씀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말씀을 가지고 계속 살펴봤는데 
지난 6개월 동안 우리가 내적인 확장에 대한 것들을 살펴봤습니다. 

부흥하고 확장한다고 하는 것은 
어떤 외적인 일들이 먼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서 먼저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에요. 

믿음의 확장이 있고, 
우리 안에 '이건 안 될 거야, 이건 이렇게 돼야 만해!' 하는 고정관념들,
이런 수많은 패러다임들, 수많은 제약들이 있는데 

이 생각의 패러다임에 먼저 부흥과 확장이 일어나야 된다는 거에요. 
이 패러다임이 먼저 확장되고, 거기에 먼저 돌파가 일어났을 때 
외적인 부흥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외적인 부흥은, 그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그건 하나님이 하시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안 하시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우리 안에 일어나는 내적인 확장들은 
그것은 우리가 선택해야 될 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난 6개월 동안에, 
우리가 내적인 확장 inner expansion 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내적 확장 이후에, 실제로 외적 확장을 추구하자!

 

그러면서 주님이 제 마음에 주시는 생각은 
이제 우리가 2015년의 절반이 지났는데 
그런 내적인 확장에 대해 충분히 기도하고 살펴봤는데 
그럼 이제부터는 좀 외적인 확장, 실질적인 부흥과 확장

우리 삶의 경험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흥과 확장에 대해서 기도하고 
우리 내면의 확장이 일어나고, 다 좋은데 
이것이 그냥 내면의 확장에서만 그쳐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좀 작은 거라도, 이것이 구체적인 실체가 되어서 
'와~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이런 역사를 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이런 확장을 일으키시고 계시는구나,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 가운데 이런 부흥을 일으키시고 계시는구나..'

비록 큰 게 아니라도, 구체적인 실체들이 좀 경험돼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도전들을 제 마음에 주셨어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라고 했는데 
우리가 우리 안에, 정말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 
우리 하나님이 우리 인생가운데 행하시는 
부흥케 하시고, 확장케 하시고, 충만케 하시는 일들을 
정말 실제로 보기 원하는 갈망이 있다면 
이것들이 2015년 하반기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작은 거 하나라도, 진짜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들을 경험해 보자는 거에요. 
작은 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 내 인생가운데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그 실체들을 경험하자는 거에요. 

그래서 2015년 하반기 동안에는 
이 일들을 놓고 우리가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님이 제 마음에 주시는 감동은 
분명히 2015년 하반기 동안, 하나님께서 수많은 기적들을 일으키실거에요. 

시107: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는 부르짖는 인생들에게 기적을 행하신다는 거예요.
'부르짖는다'는 말은 6절에 나오고, 기적을 행하신다고 15절, 21절에 나오죠.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가운데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내가 구체적으로 좀 경험돼야 되지 않겠어요?

이걸 놓고 좀 구체적으로 기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 삶 가운데 기도 해왔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응답되는 역사들이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 삶 가운데 우리가 추구해왔던 부흥이 
구체적으로 임하도록 역사하여 주십시오. 

▲제 안에 주신 감동은, 올 한해 동안 하나님이 분명히 이 일들을 행하실 텐데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래서 요단강을 건너가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실제로 밟게 될 터인데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가서 땅을 실제로 밟기 전까지는 
그 땅은 아직 실체는 아니었어요. 

'바라는 것의 실의 실체'라고 했는데, 히11:1
바라기만 했지, 아직 실체는 아니었지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추상적인 믿음이었지 
사십 년 동안 광야를 떠돌면서 
'아직 한번도 밟아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거야!'
라고 하는 막연한 비전이었고, 막연한 어떤 약속의 말씀이었지 
실체가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가서 그 땅을 자기 발로 밟는 순간 
바라던 믿음이 이제 실체로 주어진 것이죠. 실제로 받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실제로 내 발을 들여 놓을 때,
우르르 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씩 발을 들여놓게 될 거예요.
'요단강은 한 사람씩 건넌다'는 어떤 마음의 통찰력이 생겼어요.

제가 군대에서 장교 훈련을 받을 때, 
장교는 무조건 태권도 일단을 따야만 장교로 임관이 됩니다. 
제가 4개월을 태권도를 연마했는데도, 승단 심사에 계속 미끄러지는 거예요.

만약 태권도 1단 증서를 못 따면, 
앞서 통과한 군인들은 다 쉬어도, 자기만 계속 남아서 훈련해야 되는 거예요.

남들 다 통과해서 쉬고 있는데, 자기만 계속 남아서 태권도 훈련을 해야 되니
쉬는 시간도 없고,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인지요...

1주일에 한 번씩 승단 심사를 보는데, 
또 떨어지면, 다음 심사 때끼지 1주일 동안 또 계속 훈련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장교 후보생들 중에 맨 마지막에 땄거든요. 
다른 장교 후보생들은 다 쉬고 있는데 
최후로 두세 명 남아가지고 연습했어요. 

근데 이게 참 불공평한 게, 제 체형이 유도에 적합하지, 태권도와 안 맞아요.
저는 뚱뚱해서 발차기를 해도, 발이 안 올라가요. 폼이 전혀 안 나는 거죠.

그래서 제가 기도 하는데, 그 생각을 나게 하시는 거예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때, 한명씩 한명씩 통과된다'는 거예요.

자기 신앙 생활에 어떤 돌파가 일어나서, (마치 태권도 단증을 따듯이)
빨리 가나안에 넘어가는 성도, 그래서 가나안의 은총을 맛보는 성도가 있고,
그걸 느릿느릿하게.. 그래서 광야에서 고생하는 성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흥과 확장'은 한 명씩, 한 명씩 일어나게 된다는 거예요. 
멀리서 보면 단체로 일어나는 것 같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한 명씩 건너가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이 믿음으로, 빨리 광야 생활을 탈줄 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특징은.. 방황과 방랑이에요.
교회다니고 신앙생활 하지만, '방황과 방랑' 가운데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가나안'의 특징은.. 안정과 안식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이제 더 이상 방황하거나 방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열매를 누리면서, 편안하고 안정되게 사는 거예요.
물론 거기서도 시험과 환난이 가끔씩 엄습하지만.. 대체로 '안정과 안식'인 거죠!
이번 주부터 '돌파'에 대해서, 14회에 걸쳐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든 부흥과 확장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돌파의 시점이 있다"는 거에요. 어떤 타이밍이 있다는 거죠.

이 부흥과 확장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요.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점차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개선되어서
'와 부흥했네!'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부흥 역사들을 읽어보면 
오래 동안 아무것도 안 일어나요. 
오래 동안 사람들이 기도 하고 고통스러워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요.

오죽 했으면 그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하는 신음소리가 4백 년을 올렸는데 
4백 년 동안 아무 것도 안 일어났잖아요.
그러다가 때가 찼을 때, 하나님께서 뭔가 일을 행하시잖아요.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들을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하시는 게 아니고 
돌파하는 어느 시점이 있다는 거에요. 
Break Through (돌파)가 일어나는 시점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전까지는 아무것도 안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아무 가능성도 없어 보여요. 
그 전까지는 이게 현실이 될지... 그 믿음을 갖기가 참 어려워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예요. 아무 징조도 안 보이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부흥은 징조가 있다고 오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부흥의 역사들을 보니까, 부흥은 징조가 있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징조가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suddenly 부흥이 임하는 거예요. 이게 특징이에요. 

하나님의 역사는, 처음부터 징조가 있었어요. 
차근차근 그렇게 되는 것도 가끔 있을지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하나님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나냐면... 징조가 없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돌파가 일어나는 거예요. 
어느 순간에 그래서 우리 삶가운데 정말 부흥과 확장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이 돌파하는 시점들이 있어야 돼요. 
돌파  Break Through 가 일어나는 시점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통과하고 났을 때, 
거기서부터 우리가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역사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거기서 많은 부흥과 확장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 거죠.

돌파가 일어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우리가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내가 좇아가는데, 정신이 없을 거에요. 

▲저는 제 개인적으로는 작년 2014년 9월과 10월달부터 
이 돌파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특별히 저한테 있는 가장 오래된 기도제목은 "선교"잖아요. 

저는 선교에 미친 사람이기 때문에, 
제 가장 오래된 기도제목은 선교이고, 
우리의 소원은 선교, 이렇게 노래 부르며 살아왔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돌파들을 일으키시면서 
여러분 제가 지난 1년 동안은, 정말 제 몸이 분신술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 들 정도로... 몸이 3개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너무 하나님이 정신없이 끌고 가셔서 
'와 정말 부흥시키고 확장시키시는구나..' 

근데 여러분들 가운데도 돌파들이 있게 되기를 주의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개인의 돌파들이 모이고 쌓여서
공동체적인 차원의 돌파가 일어날 거예요. 

▲자 그러면 이 돌파의 시점들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돌파의 얘들을 다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돌파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 예들을 한나씩 한나씩 살펴보면서 
거기에 공통적인 특징은 뭔지, 
언제 하나님께서 돌파를 일으키시는지, 

그 돌파의 성격은 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이런 것들을 살펴보면서 
저와 여러분의 삶가운데도 성경의 수많은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했던 
돌파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을, 그 관점을 가지고 쭉 지난 한 달 동안 읽고 묵상하면서 
참 재미있는 걸 발견했는데 
성경은 창1장부터 시작해서 요한복음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돌파하는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끊임없이 돌파하는 얘기!

성경에 등장하는 우리 하나님은 돌파의 하나님이시죠.
우리 하나님은 끊임없이 돌파하는 분이세요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또 각 개인의 삶을 향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그것은 그들이 부흥케 되고, 충만케 되고, 그들의 인생이 확장되는 거에요. 


◑돌파는.. 장벽이 있는데서 필요한 겁니다.

그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항상 이 하나님의 계획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들이 있어요. 

원수가 핍박을 하던지, 아니면 사람들이 죄를 짓게 해가지고 넘어져 있다든지.. 
아니면은 뭐 원수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든지, 
때로는 개인의 연약함이 있다든지, 질병이 있다든지,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다든지... 
하여간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데 
이 계획이 성취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장벽들이 있어요. 

이것이 항상 이 하나님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스토리의 패턴이에요. 
뭔가 하나님이 계획을 가지고 계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스토리는 여러분들이 아시겠지만 
이 장벽들이 어떻게 무너지고, 이 장벽들이 어떻게 돌파되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성취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가운데도 안 될 것 같은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잖아요. 

'아무리 목사님이 그렇게 얘기하셔도, 난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고, 나는 가정이 있어서 안되고, 애가 있어서 안되고, 
우리 남편 때문에 안 되고, 시아버지 때문에 안되고...' 
안 되는 이유들이 하여간 수십 가지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는 뭐냐 하면 
그런 상황가운데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거예요. 

어떤 하나님의 사람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일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항상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될 때 보면, 
안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서 시작되는 거였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애굽에서 탈출한 것이며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된 것이며 
요셉이 어떻게 총리가 된 것이며
사실은 여러분, 말이 되는 상황은 한나도 없었어요. 

엘리야가 어떻게 사백 명이나 되는 바알 선지자들을 물리친 것이며
사실은 말이 되는 이야기가 한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항상 불가능하고.. 그래서 안 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안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고.. 
좌절되고 절망되고 비전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그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삶가운데도, 
'아무리 목사님이 말씀하셔도 그건 나하고 상관없어요.' 
이렇게 단정짓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성경에서부터 멀어져있다고 하는 걸 아셔야 돼요. 

믿음의 삶이라고 하는 건 뭐냐? 
그런 장애물이 가득한 상황에서, 돌파가 일어나는게 믿음에 삶이지... 
그냥 가만 둬도 저절로 될 일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죠!

여러분의 삶 가운데,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일들이 있다면 
거기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돌파가 일어나서, 그 일이 되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도 될 만한 것들은 다 돼요. 그런 일은 열심히 기도할 필요도 없죠.
그러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보이는 것을 놓고,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가 있는 곳, 
하나님께서 계속 내 속에 갈급함을 주시는 곳,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쉽지 않아 보이는 곳, 
거기서 돌파가 일어나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요즘 한국 땅 가운데도 전도가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저도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5년 전 하고 다르고, 10년 전 하고 달라요. 
정말 전도하는 거 힘들고, 정말 영혼구원 하는 거 힘들어요. 

그렇지만 안될 만 하기 때문에, 우리가 부르짖는 거 아니에요?
안 될 것 같아 보이니까..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간구하는 거 아닙니까?

사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보면, 전도가 안 되어야 정상이에요. 
이런 상황 가운데 어떻게 전도가 되겠어요? 사실 굉장히 어렵지요.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돌파가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야기, 성경의 이야기는 다 여기서부터 시작됐죠.
안 되는..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 시작되었던 것이죠.
뭐 될 만한 상황에서, 일이 된 것이... 성경에 무슨 기록이나 되어 있나요?

그래서 여러분, 항상 부흥과 확장에는 뭐가 필요하냐 하면요. 
돌파가 필요한 거예요. 
불가능한 현실 상황들을 돌파하는 돌파가 필요한 거에요. 

그것이 안 되도록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무너지는 돌파가 필요한 거에요. 
남편 때문에 안 되고... 그럼 남편을 돌파해야지요. 
애들 때문에 안 되고... 애들을 돌파해버려야 돼요. 
하나님이 그 상황가운데서도, 할 수 있는 길들을 열어주실 거라는 거에요. 

상황이 안 되고.. 건강이 안 되고.. 이게 안되고.. 저게 안되고.. 
내 능력이 안 되고... 
죄송하지만 그 패러다임에 계속 갇혀있으면, 그 이상은 절대로 못 넘어가요. 

그냥 거기서 인생 마무리하고 말겁니까?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 가운데로 뛰어들기 원한다면 
이거를 넘어서야 돼요. 장벽과 장애물을 넘어서야 돼요. 


◑그런데 이 장벽을 넘어서려다 보면, 뭐가 나오게 되는 줄 아세요?
부르짖는 기도가 나오게 돼요. 왜? 불가능해 보이니까.. 

평소에 왜 부르짖는 기도가 잘 안 나오는 줄 아세요?
별로 기도할 필요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돌파할 과제가 주어지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그냥 포기하고, 현실의 장벽 앞에서 무릎 꿇고 살고 있으니까 그런 거예요.

원래 나는 부르짖는 기도가, 제 은사가 아니었어요. 
그런 줄로 오래 동안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은사가 없어서, 부르짖지 않는 게 아니에요.
아무리 '나는 점잖게 기도하고, 나는 침묵기도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요, 자기 가족이 암에 걸려봐요. 
그냥 울고 불고 부르짖게 되어 있어요.
불가능한 상황 가운데 딱 부딪치는 사람은, 거기서 부르짖게 돼 있어요. 

왜 우리가 부르짖지 않는가요? 
믿음의 도전을 안 하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있으면.. 부르짖을 일도 없지요. 

그냥 내 삶은 그저 고만고만 꾸려나가는 수준으로 만족하고 있으면, 
간절히 두 손 들고 기도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내가 믿음의 도전을 하길 원하고, 그런 갈망이 있는 사람들은
안 부르짖을 수가 없어요. 

그 일에 동참하려는데, 사방이 막혀 있어요.
사방이 막혀있는데 어떻게 안 부르짖죠?

그리고 솔직히 지금 대한민국 땅에 살면서 안 부르짖는다고 하는 거는요. 
영적 침제에 빠진 사람이에요.

지금 주변을 돌러봐요. 안 부르짖을 상황이냐고요?
교회가 다 죽어가고 있고.. 동성애 합법화한다고 난리를 치고 있고.. 
사방이 다 난리인데.. 여기서 안 부르짖고 있다면,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거죠.
부르짖어야 돼요. 

▲제가 "돌파"에 대한 성경을 연구하면서요, 지난 한 달 동안 제가 연구했는데 
정말 재미있는 걸 발견했어요. 

정말 모든 돌파의 스토리들이 보면, 항상 결론은 한나로 똑같아요.
원인은 수십 가지로 뭐 각자 달랐어요. 

그게 불가능한 원인은 수십 가지예요. 
자녀를 낳지 못해서, 원수가 둘러싸서, 뭐 죽을 병에 걸려서
뭐 골리앗이 나타나서..  그 원인은 수백 가지가 나오는데 
해답은 딱 하나에요. 모든 해답은 똑같아요. 뭔 줄 아세요?
그것은 '부르짖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사..' 라는 거예요.

다른 게 없어요.
우리 삶 가운데 정말 돌파가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성경에 보니까 '부르짖으니 돌파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그거 외에는 다른 예가 없어요.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거예요. 

정말 돌파를 경험하기 원하세요? 
그러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돼요. 

돌파가 일어나지 않는 현실 상황에 대해서 부르짖어야 되는 거예요.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돌파를 일으키실 줄 믿습니다. 


◑돌파를 경험 했던 한나

본문에 보면, 한나에게도 돌파가 필요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뭐죠?
자녀가 없는 거예요. 

당시 사회에서 자녀가 없는 사람들은 굉장히 무시를 당했습니다. 
동시에 브닌나한테 계속 격동함을 당하잖아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나의 돌파가 
이 개인적인 고통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거예요. 이게 참 흥미로워요. 

여러분, 사무엘을 낳는다고 하는 것은 
개인의 자녀 한 명을 낳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스라엘의 다윗 왕국이 시작되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어마어마한 돌파가 일어나는거에요. 

그런데 한나가 그런 원대한 미래 비전을 다 알고, 
그것을 꿈꾸면서 기도했던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한나의 기도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냐면 
그 개인이 갖고 있는 한계와 고통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한 거에요. 
그리고 거기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돌파로 확장되어가는 거에요. 

저는 이것이 오늘날도 동일하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돌파들을 이루실 터인데,

이것을 우리가 처음부터 다 이해하고, 그 크고 위대한 일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식으로 역사와 돌파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이 갖고 있는 한계들을 아신다는 거에요.
각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통들을 아신다는 거에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 각 사람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시고 
그 문제를 알고 계신 분이시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돌파로 확장시키시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나의 개인의 문제에서는 아무런 돌파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크고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돌파만 일어났다... 그런 일은 없다는 거죠.

항상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 삶에 구체적인 돌파들을 일으키시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큰 돌파에 쓰임받도록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밤 그거 놓고 우리 기도합시다. 
우리 삶가운데 구체적인 돌파를 놓고 기도하세요. 

한나의 고통을 가지고 기도하세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기에 돌파를 일으키시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돌파가 일어나도록 역사하십니다. 
 
삼상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의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여러분 모든 돌파를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괴로운 마음입니다.
누군가가 마음이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지금 그 현실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요. 
이것을 갈급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계속 부르짖을 수밖에 없게 되죠.

내가 괴로움, 갈급함, 이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 나는 지금 이 상황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게 다가 아니잖아요. 
하나님, 내 인생이 여기에서 멈추는 것을 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것 이상의 계획이 있으시잖아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것 이상의 계획이 있으시잖아요?

하나님,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여기까지가 아닌 것 제가 압니다. 
이것 이상의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시잖아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서, 누군가 현실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나오는 거예요. 누군가 현실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나는 거에요. 
누군가 마음이 괴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거예요. 

한나의 마음처럼, 계속 그 마음 가운데 괴로움이 있는거에요. 
'하나님, 이게 끝이 아니잖아요? 하나님 이게 다가 아니잖아요?
더 있잖아요? 하나님, 더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이 뭔가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괴로운 거예요. 불만족인 거예요. 

'아닌데, 이거 이상 뭔가가 일어나야 되는데, 왜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여러분, 비로소 돌파가 시작되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만족하고 배부르고 있으면
아무 돌파가 안 일어나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편안해서 그 안정을 누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평안의 시즌도 있고... 그렇지만 또 돌파가 요구되는 시즌도 있는 거예요.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정을 계속 누리다가
또 '돌파의 시즌'이 도래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불편함, 거룩한 불만족, 괴로움'이 분출되는 거에요. 

우리교회 대학부에 부흥이 언제 오겠어요?
만족할 수 없을 때 부흥이 오는 거예요. 

'하나님, 이 젊은 세대 가운데 영혼구원이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캠퍼스가 이대로 죽어가도 되나요?
아니요. 하나님, 난 이걸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습니다...' 
이 갈급함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랬을 때 거기서 부흥이 일어나는 거지요.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교회를 위해서 쭈욱 기도 하면서 
제 안에 큰 위기감이 들었어요. 
그 위기감이 뭐냐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배가 불러진 거예요.

교회가 건물도 생겼죠. 재정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돼 보이죠. 
사실 여러분, 5년 전만 해도요, 그 때는 재정이 정말 말이 아니었어요.
매주 빵구가 안 난게 기적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난 15년 동안, 재정을 한번도 빵구를 안 내셨어요. 
이건 정말 기적이에요. 

그런데 이제 교회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고 그러니까 
옛날처럼 그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아요. 

예배도 비교적 괜찮고.. 예배 경배팀도 잘 하고.. 거기에다 카페까지 있어요. 
부족한 게 없어 보여요. 여기가 천국처럼 보여요. 

'그냥 이대로 계속 갔으면 너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들 수 있어요.
교회 오면 예배도 뜨겁고요. 설교도 괜찮은 것 같고요...
그래서 '이대로가 너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드는데... 여러분, 제 느낌이 틀렸습니까?'
틀렸으면 좋겠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우리 교회.. 뭐 이 정도면 대한민국 평군에 비하면 괜찮은 교회..
이걸로 만족하시겠어요? 이게 여러분이 원하는 전부 입니까? 

아니면 여러분 배가 고프세요?
우리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끝까지 봐야되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으세요? 

'하나님이 이 정도 차원에서 멈추라 그러는 거 아니실거야..'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위해서, 반드시 이루기 원하시는 일들이 있을 거야!'

'하나님,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룰 때까지 계속 나아가야지 
여기서 멈출 수 없어요...' 

이런 한나의 괴로움이 있으세요?
한나도 자녀는 없었지만, 남편 엘가나가 자기를 정말 사랑해 줬잖아요.
브닌다보다도 훨씬 더 사랑해줬습니다. 그러면 만족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러나 한나는 괴로움이 있었어요.
여러분은, 한나와 같은 괴로움이 있으세요?

낳아야 할 자녀를 아직 낳지 못한 괴로움,
사무엘이 나와야 되는데, 아직 사무엘이 나오지 않았어요...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낳으셔야 될 사무엘이 있었는데 
그 사무엘아직 안 나왔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 한나가 아닌 사람들은
사무엘이 없는 것에 대해서 별 문제의식이 없어요.

한나는 애통하며 통곡하며, 자기 마음을 다 쏟아부었는데,
아직 사무엘이 없는데, 왜 우리는 아무 감정이 없을까요?

이런 애통함이 있으세요? 이런 갈급함이 있습니까? 
혹시 이게 다 사라져버린 거 아니에요? 
우리의 야성이 살아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시작되고 나서 지금까지   *수원하나교회
대학부 사역이 지금처럼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2015년 설교

퍼센트로 봤을 때 이렇게 떨어져 본 적 한번도 없었어요.
근데 여기에 대해서 별로 문제의식 안 느끼세요?

'그게 대학교 사역자들 몇 명이 잘못해서 그런 거야!' 
아니에요, 그보다는 우리 교회 전체의 문제인 거예요. 안 그래요?

처음부터 우리 교회는, 캠퍼스 뒤집자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아니었어요?
다음 세대 세우자고 세우신 교회 아니에요? 

근데 캠퍼스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지금 어른들만 모여 있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아무런 불편함을 안 느끼세요, 아무런 위기감을 안 느끼세요?

이제 대학부가 안 되면, 우리 어른들이라도 뛰어들어야 될 거 아닙니까?
이 갈급함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 
아직 사무엘이 안 나왔는데, 이 땅에 (전국) 캠퍼스는 고사하고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캠퍼스도 지금 영적으로 다 죽어 가는데... 

하나님 우리교회를 세우실 때 그렇게 안 부르셨는데... 
이런 심각한 문제들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들이 없다면 
우리 영혼이 죽은 거 아닐까요? 

▲여러분 돌파는요, 한나의 괴로움으로부터 시작되는거에요. 
어떤 괴로움? 
'주님, 이건 아닙니다!' 하는 괴로움!

'이건 아닙니다. 주님, 여기서 끝낼 순 없습니다. 
주님, 우리는 끝까지 가봐야 되겠습니다...'
이 괴로움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혹시 한나가, 남편 엘가나의 사랑에 만족해 버려서 
사무엘이 없음을 괴로워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제가 이 말씀을 읽는데, 정말 그 그림이 저한테 확 와 닿았어요. 
엘가나가, 한나에게 너무 잘해줬잖아요. 
아무리 브닌나가 자식을 많이 낳았어도,
엘가나의 마음은 한나한테 있었거든요. 

그래서 두 배에 분깃을 줬어요.  삼상1:4~5
화목제를 드리고 남은 음식을 나눠 먹는데, 한나에게 두 배의 음식을 줬어요.
두 배의 사랑을 줬다는 거죠. 

근데 제가 이 말씀을 읽는데, 이게 너무나 우리 모습인 거예요. 
너무나 너무나 이 땅의 교회들의 모습인거에요. 

남편의 사랑을 흡족히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예배도 뜨겁고, 우리 남편 되신 하나님의 사랑도 흡족히 누리는 것 같아요.

다 좋은데.. 혹시 그것에 만족해서 
사무엘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갈급함이 없는 건 아니냐는 거죠.
아무 문제의식이 없는 것 아니냐는 거에요. 
사무엘이 없는 괴로움에 대해서는 잊어버린 것 아니냐는 거예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내가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함,
브닌나보다 두 배의 분깃을 주시는 엘가나(남편 하나님)의 사랑에 만족해서
'아이고, 사무엘은 뭐 없을 수도 있지.. 뭐 남편이 나를 이렇게 잘해 주는데.. 
세상에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나? 이 정도로 자족하고 살아야지...'

근데 사무엘이 나오고 있지 않은데 
왜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지 않냐는 거에요. 
우리 삶 가운데 여러분, 사무엘이 있으세요? 

마지막으로 이런 사무엘로 인한 하나님의 열매와 풍성함을 본 게 언제에요? 

셀에 계속 새로운 영혼들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교회에 계속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하나님의 일들이 막 시작되고 있습니까? 

제가 보기엔 잘 안 일어나고 있어요.
작년이나, 올해나, 재작년나 비슷해요... 

그럼 적어도 2년, 3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있지 않고, 
사무엘로 인한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왜 우리는 이 일로, 괴로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걸 그냥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여기에 대한 갈급함을 갖자는 거에요. 
여러분 교회 가운데 브레이크 스루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남편 엘가나의 사랑에 만족해버리는 거에요. 

여러분, 한나가 뭐라 그랬습니까? 10절에 보면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이 한나의 통곡이 있어야 돼요. 이 한나의 통곡이 있어야 돼요... 

돌파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줄 믿습니다.

계3:16~17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 한나의 괴로운 마음, 갈급함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뭐 합니까? 
기도하는 거잖아요. 그게 기도로 인도하는 거예요. 
이게 통곡하는 기도로 인도하는 거에요. 이게 부르짖는 기도로 인도하는 거에요. 


◑돌파하는 기도는, 서원기도와 같이 갑니다

삼상1: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통곡과 부르짖음과 아울러 서원함이 있어야 돼요.

저는 이 서원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믿습니다. 
사도행전18:18절에 보면 바울도 서원하고, 서원한 걸 지켰어요. 
신약에도 서원하는 기도들이 있었단 말이에요. 

우리가 개인적인 기도제목을 가지고, 돌파를 놓고 기도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이루어주시면, 그 다음에 어떡할 건데요? 

남편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울고 불고 힘들다고 기도 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기적적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면 그 다음에 어떡할 건데요? 

많은 경우 우리가 어떤 개인적 장벽들의 돌파를 놓고 
괴로워서 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그 기도가 응답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뭐 하는 줄 아세요?
아무것도 안 해요. 오히려 나태해져요.

그리고 그 다음 문제가 생길 때까지, 그냥 지내요. 
그런 삶의 패턴을 반복하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내가 하나님 앞에 뭔가 서원하고 나가야 된단 말이에요. 
그래서 뭔가 믿음과 신앙이 더 나아지는 게 있어야 된다는 거죠.

저는 우리의 기도에 서원함이 함께 있어야 된다고 믿습니다... 

만약에 한나가 사무엘을 서원하여 바치지 않았다면 
한나의 돌파는 그냥 자식 한명 낳는 돌파로 끝났을 거예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돌파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한나가 자신의 개인적인 아픔을 놓고 기도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해결되는 기도응답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이 아들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치겠습니다' 라고 서원하며, 
그리고 그 서원함을 성실히 지켰을 때 
거기서 개인적인 돌파가 일어남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에 돌파가 일어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