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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2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2. 25. 08:39

HANGL NOCR - 한글 주석

◈삼상12장 해석 및 주석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본절은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지만, '그리고'(와)로 시작한다는점에서 11장 끝부분(14, 15절)의 직접적인 연속이다.

'너희가...한 말을 내가 다 듣고' 
'너희가...한 말'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했던 사실을 가리킨다(8:5,20).

'너희 위에 왕을 세웠더니' 
사무엘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사울을 왕으로 세운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뻐하셨기 때문이 아니었다(8:6-8). 다만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요청을 허락하심으로써, 오히려 그 왕을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8:11-18), 따라서 진정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계셨다(8:9, 22,  9:16, 17).

2 이제 왕이 너희 앞에 출입하느니라 보라 나는 늙어 머리가 희어졌고 내 아들들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너희 앞에 출입하였거니와 

'왕이...출입하느니라' 
'출입하다'(할라크)는 원래 '걸어다니다'란 뜻이지만, 성경의 여러 문맥상 그 의미는 자신의 고유한 직무, 특히 백성을 여러모로 돌보고 다스리는 공적(公的)직무의 수행을 표현하는 말로서 사용되어진다(9:6, 민 27:17, 삼하 2:29, 왕상 3:6, 대하 6:16). 한편 스미드(R.Payne Smith) 박사에 의하면, 이 말은 목자가 양떼를 인도하고 감독하면서 앞서 '가는'(walking) 목자적(牧者的) 생활 풍습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이라 한다.

'내 아들들도...함께 있느니라' 
사무엘의 아들들의 부패는 사무엘의 노령(老齡)과 함께 이스라엘 장로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왕을 요구하게 만든 구실이 되었었다(8:1). 그러나 사실에 있어 이같은 것들은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요구하게 된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무엘이 자신이 늙었음과 자신의 아들들이 함께 있다는 두 가지 사실을 특별히 언급한 까닭은, 왕을 요구한 이유를 사무엘 가문(家門)의 문제 때문으로 제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직치 못함을 암시적으로 꾸짖기 위함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사무엘의 이같은 언급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士師)로서 자신의 모든 행실이 백성들에게 낱낱이 알려져서 더이상 드러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이스라엘의 왕들은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 행위가 사무엘과 비견되어 시험되어져야 할 것이었다.

3 내가 여기 있나니 여호와 앞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내게 대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내 눈을 흐리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사사로서의 자신의 청렴 결백함을 담대히 주장하고있다. 아울러 사무엘은 연속된 질문을 통해 자신의 이스라엘 통치가 공명 정대했음을 입증시키고 있다. 한편, 사무엘의 이같은 자기 변호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의 신정(神政) 통치를 거부하고 열방과 같은 왕을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기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4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이로써 백성들은, 세속적 왕을 구한 자신들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되고 말았다.

5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아낸 것이 없음을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며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오늘 증언하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가 증언하시나이다 하니라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세우시며 너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는 여호와이시니 

여호와께서 과거에 베푸셨던 특별한 은총을 언급하고 있는 본절과 같은 내용(출20:2, 신 5:6)은 고대 중근동 지역의 종주권(宗主權) 조약 문서에 흔히 나타난다. 즉 이와 같은 사실들을 언급함으로써, 왕은 봉신에 대하여 계속적인 충성심을 요구하였던 것이다(출 20:3-17, 신 5:7-21). 여기서도 사무엘은 출애굽 구속 사건에 근거하여, 과거 미천했던 이스라엘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크신 은총을 언급함으로써, 백성들이 자신들의 참된 왕을 버리고 또다른 왕을 요구한 사실(8:5, 20)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행위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7 그런즉 가만히 서 있으라 여호와에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에 대하여 내가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가만히 섰으라(야차브)' 
이 단어는 중요하고도 특별한 토론에 임하기 앞서, 먼저 필요한 마음 자세를 갖춰야 함을 시사하는 말이다(출 8:20, 9:13, 신31:14, 욥 33:5).

'모든 의로운 일' 
여기서 '의로운 일'(치드코트)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일'이란 의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일이 '의로운 일'인 까닭은, 그 모든 일이 하나님 당신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의로운 언약에 근거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삿 5:11, 미 6:5).

'여호와 앞에서...담론하리라' 
3, 5절에 이어 여기서도 여호와 하나님이 '증인'으로 언급되어진다. 한편 '담론하리라'(이솨페타)는 '재판하리라','판단하리라', '국문하리라'의 의미이다(신 17:9, 시 67:4, 겔 11:10,11). 그러므로 사무엘은 3, 5절에서는 피고(被告)의 위치에 섰었으나, 이제는 백성들을 피고의 위치에 올려놓고, 자신은 재판관의 위치에 서서 그들을 심문하려 하고 있다. 이같은 행위를 통해 사무엘은 그릇된 동기(8:7)에서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을 정죄하려는 것이었다.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 

이같은 사실, 즉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복 사건은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 능력과 간섭에 의해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신 일이었다. 따라서 그때 모세와 아론은 다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졌을 뿐이었다.

9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너희를 치매 

'그들이...여호와를 잊은지라' 
적어도 여호수아의 생전과, 가나안 족속들과의 전쟁을 겪었던 세대가 살아 있었던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경외하였을 것이다(수24:31). 그러나 세대가 바뀌고 가나안 땅의 물질적 풍요에 점차 빠지게 되면서, 이스라엘은 과거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위해 베푸셨던 놀라운 역사를 잊어버리게 되었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이스라엘의 이러한 배은망덕함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이방의 압제하에 시달려야 했다.

'하솔 군장 시스라' 
'하솔'은 납달리 지경에 속하는 북부 팔레스틴의 주요 성읍으로서, 갈릴리 호수 서북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하였다(수 11:1 주석 참조). 사사 시대초기에 그 지역을 다스렸던 가나안 왕 '야빈'은 철병거 구백승을 보유한 강력한 군대의 소유자였다(삿 4:3). 한편 '시스라'는 하솔 왕 야빈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20년 동안이나 괴롭혔던 당사자였다(삿 4:2). 이들은 결국 여사사 드보라와 사사 바락의 활약에 의해 패퇴되고 말았다(삿 4:4-24).

'블레셋 사람' 
역사상 블레셋 족속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족속들이었다. 이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공격은 사사기 3:31에 언급되는데, 이때 이들은 사사(士師) 삼갈의 활약에 의해 격퇴되었다. 또한 이들의 두번째 공격은 사사기 13-16장에 나타난다. 이때는 사사 삼손의 활약이 있었다. 그러나 삼손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때로부터 이스라엘은 다윗 즉위 초기까지 블레셋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삿13:1).

'모압 왕' 
'모압 왕'은 '에글론'을 가리킨다. 사사 시대 초기에 그는 암몬 족속 및 아말렉 족속과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약 18년간 지배하였다(삿 3:12-14). 그러나 이들은 결국 '에훗'이라는 사사에 의해 격퇴되었다(삿 3:15-30).

10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하는 사무엘의 메시지 속에는 특히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에서 적나라하게 반복되어 나타는 바, 독특한 역사 철학이 깃들어 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길 때에는 평안과 번영을 구가한 반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길 때에는 반드시 이방의 압제와 핍박으로 시달림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맥락에서 여기 본절도 이스라엘이 환난을 당한 까닭은 하나님을 망각한 그들의 영적, 도덕적 범죄 때문이었으며, 그들이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요인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회개였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7:3-6). 결국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이방에 대한 자신들의 패전 원인을 열방과 같은 왕과 조직된 군대의 부재(不在)에서 찾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사무엘은 9절에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실제로 징치했던 도구 중 일부만을 언급했듯이, 본절도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원했던 여러 사사 중 일부만을 언급하고 있다.

'여룹바알' 
이 사사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한 사사였다(삿 6,7장, 히11:32). 이 사사의 본래 이름은 '기드온'이었으나, 그가 바알 신상을 훼파한 연고로 '바알에게 대항하다'라는 의미의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삿 6:32).

'베단'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이방의 압제로부터 구원한 이 사사(士師)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베단'(Be-dan)이라는 이름은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1)사사로서 이스라엘을 위해 활약하기는 했지만, 단지 그 이름이 생략된 유명한 사람일 것이라는 견해, (2)대상 7:17에 이 이름이 마길의 후손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길르앗의 '야일'(삿 10:3)을 가리킨다는 견해, (3)베단이란 이름을 압돈의 압축형으로 보고, 곧 사사 '압돈'(삿 12:13)을 가리킨다는 견해, (4)'베단'을 '벤-단'(단 자파의 아들)에 대한 표기로 보고, 곧 단 지파의 '삼손'(삿 13:2,24)을 가리킨다는 견해, (5)'베단'을 '바락'에 대한 필사자의 오기(誤記)로 보고, 곧 이스라엘을 하솔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손으로부터 구원한 사사 '바락'(삿 4:6)으로 보는 견해(LXX, the Syriac, the Arabic)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사사들의 업적이나 전체 문맥, 그리고 문법적인 상황등을 고찰해 보면, 이들 견해 중 다섯번째의 견해대로 '베단'은 곧 사사 '바락'을 가리키는 것같다(히 11:32). 즉 대부분의 학자들(Keil, Fay, Smith)은 사본 전승 과정상 필사자들이 그 단어의 유사성 때문에 '바락'을 '베단'으로 잘못 베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사사는 여사사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였다(9절, 4:4-24, 히 11:32).

'사무엘' 
사사로서 '사무엘'은 미스바 전투(7:7-11)의 승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블레셋의 압제에서 구출하였으며(7:13), 또한 아모리 족속의 외침(外侵)으로부터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였다(7:14). 

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본절은 이스라엘에 대한 암몬 족속의 침략 위협이,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기 이전에도 이미 존재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결국 이 사실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열방과 같은 왕을 요구하게끔 만든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 
이 말은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의지할 경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친히 싸워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 준다(8:7). 사무엘은 여기서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열방과 같은 왕을 세워 외적과 싸우도록 한 것은 곧 여호와를 자신들의 왕으로 더이상 인정치 않는(8:7,8) 영적 배신 행위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13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본절은 자신들의 세속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열방과 같은 왕이 되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인본주의적 기대와, 율법의 말씀에 근거한 당신의 대리자적 왕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신적 기대가 엇갈린 가운데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등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너희의 구한 왕...택한 왕' 
이 말은 이스라엘의 왕이 결코 하나님의 뜻에 의해 배출되거나, 사무엘 자신의 개입에 의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력한 요구(8:19,20)에 의해 세워진 것임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여호와께서...왕을 세우셨느니라'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정(王政) 제도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기쁘신 섭리와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니다(17절). 이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충분한 만류와 경고(8:11-18)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백성들의 강력한 왕 요구를 결국 추인(追認)하셨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인 만큼,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충실히 좇아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좇을 때, 하나님께서도 그 왕들을 통해 역사하실 것이었다.

14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15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왕이 '열방과 같은' 왕이 되기를 바라는(8:5, 20)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 동기에서 왕을 구하고 세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왕이 당신의 뜻을 구현시키고 펼치는 신적 대리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셨다. 이에 따라 선지자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과 왕에게 축복과 징계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왕이 될 수 있는 길을 보여 준다. 그 축복과 징계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즉 (1)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헌신했는가의 여부, (2)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는가의 여부, (3)하나님의 인도대로 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가의 여부 등이다.

'여호와의 명령' 
문자적으로는 '여호와의 말씀'이란 뜻으로,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리킨다.

16 너희는 이제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행하시는 이 큰 일을 보라 

'가만히 서서' 
특별한 사항을 언급하기에 앞서 먼저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성이 있을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출 8:20, 9:13, 신 31:14, 욥 33:5). 7절 주석 참조.

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오늘은 밀 베는 때' 
팔레스틴의 경우 '밀 베는 때'는 대개 4월~6월까지로서(6:13), 이때는 비가 전연 내리지 않는 건조기이다. 따라서 사무엘의 이같은 언급은 다음에 나오는 기상 이변이 오직 여호와의 초자연적인 형상임을 입증코자 함이었다.

'우뢰와 비' 
여기서 '우뢰'(콜)는 고대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의 목소리로 여겨져,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출 9:23, 시 18:14, 29:3). 아무튼 여기 우뢰와 비는 하나님의 이적 현상으로, 이는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청종치 아니하면(15절),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언제 어느 때라도 그 백성들 위에 내릴 것이란 사실을 현시하는 전조적(前兆的) 현상이었다.

18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 아뢰매 여호와께서 그 날에 우레와 비를 보내시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여호와와 사무엘을...두려워하니라' 
밀 베는 때에 내린 큰 우뢰와 비의 현상은 백성들을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즉 그때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이러한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푸신 당사자였으며, 또한 사무엘은 여호와로 하여금 그같은 기적을 일으키시도록 간구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여호와'와 '사무엘'을 함께 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경외)은 백성들이 여호와는 물론, 여호와의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였다. 사실 모든 백성들에 의해 두려움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던(수 4:14) 모세도 자신과 같은 선지자의 출현을 예언함으로써(신18:15), 모든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백성들에 의해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할것을 암시하였다.

19 모든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기도하여' 
백성들을 위한 중보(中保) 기도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담당했던 중요한 사역이었다선지자의 모범으로 봐야 할 모세는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심지어는 대제사장 아론이 범한 죄의 용서를 위하여서도 하나님께 종종 중보 기도를 했었다(민 11:1,2, 12:13, 14:19, 20, 신 9:20). 한편 선지자로서의 사무엘도 이미 백성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한 일이 있었다(7:5, 8).

'우리가...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사무엘의 감화력 있는 메시지와 여호와의 초자연적인 이적 현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침내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동기에서 집요하게 왕을 구한 (8:5, 19, 20, 12:12)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다. 그러므로 향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록 왕정 체제하에서 왕을 두고 있다고 할지라도, 진정 자신들의 참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했다.

20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그릇된 동기에서 왕을 구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사무엘은 위로와 권면, 그리고 경고의 말을 함으로써 왕을 세우는 문제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최종 마무리 짓는다.

21 돌아서서 유익하게도 못하며 구원하지도 못하는 헛된 것을 따르지 말라 그들은 헛되니라 

'돌이켜(수르)' 
이는 '떠나다', '제거하다', '옮기다'란 의미로서, 의지적 행위가 수반된 적극적.전인격적 회개를 뜻한다(왕하 10:29, 대하 15:17, 느9:19). 그런데 히브리 원문에는 본 단어 뒤에 '왜냐하면'(키)이라는 의미의 접속사에 이끌리는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이켜'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주고 있다.

'유익하게도...구원하지도 못하는'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경제적.정치적 목적에 따라 계속적으로 우상을 섬겼으나(왕상11:5, 호 2:5), 그 우상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오히려 망하고 말았다(대하33:11, 36:11-17).

'그들은 헛되니라' 
여기서 '헛되니라'(토후)라는 단어는 '텅비다', '가치없다', '공허하다'란 의미로서 우상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이는 또한 이 세상의 창조 과정 초기에, 창조될 것이 아직 창조되지 않아 공허하며 혼돈스러웠던 지구의 상태를 가리킬 때에도 사용되었다(창 1:2). 한편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바울도 이 단어를 '우상'에 적용시켰다(사 44:9,10, 57:12, 고전 8:4).

22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앞서 사무엘은 백성들이 축복을 받는 길은 백성들의 순종적인 행위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한 반면(14절),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보다 신적(神的)인 두 가지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신적인 근거는 곧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그 크신 이름'이다. 한편 후일 다윗은 '하나님의 선택'과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삼하 7:23,24).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이것은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들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신 7:6, 14:2, 27:9, 왕하 11:17). 한편, 이같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언약(창12:1-3, 15:3-6, 17:4-8)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선택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유익을 위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제사장적 나라로 삼아(출 19:6), 열방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선택하셨을 뿐이다(창 12:1-3).

'그 크신 이름' 
구약 성경에서의 '이름'(쉠)은 특정한 인물이 지닌 인격의 총체를 가리킨다(히 1:4). 따라서 여기의 '그 크신 이름'은 하나님의 절대적 속성 및 인격을 뜻함이 분명하다(민 23:19). 그런데 특별히 여기의 '이름'은 선택(election)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불변성 및 신실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수 7:9, 사 48:9, 렘44:26, 겔 20:9,14,22, 36:23).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이 결코 취소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구원될 것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롬 9:13,2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집단적으로 선택하셨지, 그 민족에 속한 한 개인 개인을 개별적으로 모두 선택하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의 신앙과 불신앙 여부에 따라 개인은 구원 혹은 멸망을 당하되, 민족은 비록 징계는 당하나 결코 완전 멸망당함 없이 계속 남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갈 것이었다.

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본절에서 선지자 사무엘은 지금까지도 그래 왔거니와 앞으로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기로 작정한 바를 두 가지 언급하고 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범치 아니하고' 
중보(中保)의 임무를 띤 선지자로서 사무엘은, 중보의 기도를 게을리하는 것은 분명 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 사무엘은 왕을 요구한 이스라엘의 범죄가 자신이 그들을 위해 좀더 열심히 중보 기도하지 않음으로 야기된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선하고 의로운 도로...가르칠 것인즉' 
여기서 '선하고'(토브)와 '의로운'(야솨르)은 거의 동일한 의미의 단어들로서, 하나님의 율법의 성격을 보여 주는 말이다. 특히 여기서 사무엘은 이같이 비슷한 단어를 중복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렘 40:4). 한편 '도'(데레크)는 '행실', '도리'란 의미이다. 결국 이것은, 사무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 가운데로 인도하겠다는 신앙 교육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수1:8, 시 25:4, 딤후 3:16,17).

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여기서도 사무엘은 먼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덕을 말한 후, 이어 백성들이 그러한 크신 은혜에 대하여 '경외'와 '섬김'으로써 여호와께 응답해야 할 것임을 말한다.

'여호와께서...행하신 그 큰 일' 
이것은 18절에 언급된 초자연적 기상(氣象) 이변 현상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리고 카일(Keil)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을 주신 일을 가리키는 것 같지도 않다. 여기서는 '큰 일'이 복수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해 베푸신 모든 은총으로 봄이 타당한 듯하다.

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여전히 악을 행하면'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범죄를 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아마도 여기서 사무엘이 염두에 두고 있는 백성들의 범죄 내용는, 그들이 열방과 같은 세상 왕을 요구함으로써(8:5,19,20) 그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통치하신 하나님의 왕권을 무시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19절). 나아가 그 악(惡)은 20-24절을 고려할 때, 왕을 구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패역한 마음 자세로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아니하고 헛된 우상들을 좇는 그러한 악을 가리킬 것이다.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사무엘의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처럼 왕이 그들을 이방의 모든 압제와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비록 이스라엘이 왕정 제도하에서 강력한 왕과 중앙 정부를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흥망 성쇠 여부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그 왕을 중심으로 여호와를 신실히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 깨달아야만 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왕의 운명은 진정 이스라엘의 참 왕이 되시고, 또한 만왕의 왕 되시는 여호와께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