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이 물러나다 삼상12:1~15 설교녹취
우리는 어제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사울을 살펴보았는데요.
암몬과의 승리를 통해, 본격적인 역사에 등장한 사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삼상11장은 소위 말하면 "사울의 취임식"이었죠. ↙
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화려한 취임식이 열려지고, 모든 사람들이 이제 사울과 함께 기뻐하고 있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죠.
그런데 이 때 좀 씁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사무엘이었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젖뗄 때부터 시작하여 그의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온전히 바쳤던 사무엘,
어느 순간인가 하나님께서 그를 뒤로 물러나게 하시고 *마지막 사사
사울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앞장세우고 *초대 왕
이것이 인정되면서 화려하게 취임하고 있는 이 사울 옆에 서 있는 사무엘은
아마 씁쓸한 마음, 또는 허전한 마음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본문 삼상12장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고별설교를 통해서
사무엘이 명예롭게 물러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12장은, 한평생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드렸던 사무엘이
소위 말해서 이것은 "명예로운 은퇴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냥 역사 뒤에 그냥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평생 하나님께 드렸던 그의 삶이
명예롭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도록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은퇴를 하게하는 장면이 바로 삼상12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12장 말씀을 통해서
이 말씀에 나오는 한 평생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던 사무엘이
은퇴하는, 물러나는 장면을 통하여서
우리에게도 사울과 같이 화려하게 역사에 등장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도 반드시 찾아올, 내게 주어졌던 일을 내려놓아야 할 때, 은퇴할 때,
하나님께서 내게, 그 일을 그만두라 하실 때,
그 사명의 마무리의 자리에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1. 사람은 물러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내 인생에 가장 무거운 시기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죽음이다.. 라는 것입니다.
내게 죽음이 있다.. 는 것을 기억하고 사는 것은
참 중요한 인생의 지혜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는 시점도 있다..
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결혼식에 가면.. 남의 결혼식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요.
그냥 결혼식 자체가 뭉클합니다. 근데 제일 뭉클한 순간은
신부가 입장 하는 순간, 늙고 쓸쓸한 얼굴을 한 아버지가
자기의 평생을 들여서 사랑하고 키웠던 그 딸의 손을 잡고
이렇게 앞으로 걸어옵니다.
그러면 건장한 청년이 이제 그분의 딸을 빼앗듯이, 신부를 맞이합니다.
근데 그 순간 신부는 환하게 웃고 있고 아름답게 빛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딸의 손을 내주고, 그 다음에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그 아버지의 뒷모습!
이 세상에는 뭐든지 마치고 떠날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도 스무 살이 넘어가면, 이제 자녀도
점점 떠나보내야 될 것을 연습하게 되고
이제 완전히 내 책임에서, 저 사람의 책임으로 넘겨주는
그런 시점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전부를 드려서, 내가 땀 흘리고 애썼던 나의 희로애락이 있었던
나의 사업, 나의 직장을 그만둬야 되는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함에도 내게 맡겨주신 그 직분을
이제 그만둬야 될 때도 있다.. 라는 것이죠.
그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하고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을 내게서 거두어 가시는 그 순간,
우리는 그 때 물러나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럼 물러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1. 물러난다 라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물러나는 것과
내가 그만두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그만둔다'라는 것은 내가 그 일이 싫거나,
내가 그 일에 환멸을 느꼈거나
혹은 내가 다른 데 관심이 있어서 그것을 내가 주관하여서 멈추는 것,
그걸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하죠.
그러나 '물러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삼상9:15절부터 보면, 사무엘은 그만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러났죠.
(잘못해서 경질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정권이 교체 된 것)
삼상9:15~17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
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블레셋 손에서는 이스라엘을 사무엘이 건졌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사무엘이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아, 이제 그만 두라' 라고 말씀할 때에
사무엘은, 그 일을 자기가 하기 싫어서 관두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만두게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러난다"는 것은
내가 내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멈추는 것, 그것입니다.
그리고 물러난다는 것은요, 쫓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삼상2:30절을 보면, 사무엘 앞에 일했던 엘리가 나오죠.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2:30
엘리는 명예로운 은퇴식없이 그 일에서 쫓겨난 사람이었습니다.
'물러난다'는 것은,
내가 쓸모 없는 자가 되고, 내가 충성하지 않는 자가 되고
내가 그 일을 더럽힌 자가 되고, 내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억지로 그것을 빼앗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서 쫓겨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녹슬어서 그만두거나, 혹은 쓸모 없어서
그 직무에서 내가 쫓겨나가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물러난다"는 것은요. 버티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직 기력이 있고
나는 아직 기력이 쇠하지 않았고
나는 아직까지 은사가 있고
나는 여전히 그 일에 마음이 있다 해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버팁니다.
그러나 명예롭게 그 자리를 두고 나온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들이 어떻게 하게 하셨습니까?
그 일에서 버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순순이) 나오게 하셨다 라는 거예요.
모세는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몰랐어요.
그가 스스로 거기에서 버티지 않고, 내려 왔던 것을 보게 됩니다.
기념비하나 세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던 것을 보게 돼요.
여러분, 아버지가 결혼식장에서, 저기 이제 사위가 될 사람에게
딸을 주지 않고 거기서 버티고 있다면... 얼마나 우서운 꼴입니까?
그리고 결혼이란 "부모를 떠나" 입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아들의 삶에, 딸의 삶에 간섭을 하고
거기에 버티고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죠.
본문의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그 직무를 거두어 가시는 그 순간
쫓겨나거나, 혹은 그만두거나, 거기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명예롭게 물러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면서
우리 또한 이러한 때가 찾아올 때에
영광스럽게 물러날 줄 아는 저와 여러분들시기를 축원합니다.
◑2. 사무엘이 물러나면서 남긴 것
그리고 또 하나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직무를 거두어 가시는 그 순간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이 멈추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요?
두 번째는 바로 "남기기" 입니다.
물러나고 난 이후에 "남기기"입니다.
이제 사무엘이 설교를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은퇴식 고별 설교처럼 느껴지죠.
오늘 이 설교는 사실 매끄럽지가 않아요.
우리가 번역할 때는 잘 이렇게 번역을 했는데요, 매끄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어떤 한 단어가, 어떤 한 구문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거든요.
사람이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말도 또 하고.. 그 단어를 계속 쓰면
그의 말이 매끄럽지가 않게 돼요.
그런데 오늘 이 사무엘의 이 설교는, 매우 반복이 이루어지면서
매끄럽지 않은 설교라는 거예요.
어쨌든 이 설교의 요점이 무엇이냐면
8절을 보면,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끄집어 내는데,
8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너희 조상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사 그 두 사람으로 너희 조상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
하나님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의 인도를 받았다는 거예요.
11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기드온)과 베단(바락)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이제 또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는 여호와께서
기드온, 바락, 입다, 나 사무엘까지
그 사사들을 보내서, 하나님은 사사들을 통해서 일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13 절을 보면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라고 사무엘은 말해요.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13
이제 앞으로는 너희가 구한 왕 사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너희를 인도할 거라는 거에요.
자 그런데 이 설교에서 매끄럽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게 뭐하면
"여호와께서"가 반복됩니다.
그러니까 뭘 이야기하고 싶으냐 하면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사사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셨고"
-이제 너희가 그렇게 구한 왕이지만 사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
이라는 거에요.
'나 사무엘은 이제 리더십에서 물러날 것이다.
사사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왕정시대가 시작될 거야.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고
사실 너희를 인도한 자는 하나님이셨어!
그러므로 누가 리더십 자리에 있든지, 그리고 누가 떠나든지
너희에게는 하나님만 계신 거야! 하나님을 따라가야 돼!' 라고 말하면서
사무엘은 '나를 기억해 줘, 내가 얼마나 성실했느냐?
그리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기억해봐 그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그리고 사사들도 기억해봐!' 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을 기억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5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15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지금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기억해!
그 하나님만이 전부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일을 마무리하고
그 자리에서 이제 내가 주로 하던 그 일에서 벗어나
그들의 눈에서.. 혹은 누군가에서 영향력이 사라져갈 때에
그러나 '나를 기억해 줘요' 라면서 기념비를 세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거기에다 남기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했던 사람들은 그랬습니다.
모세도 가기 전에 마지막 설교를 했고
여호수아도 가기 전에 마지막 설교를 했고
사무엘도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기억해, 하나님을 떠나면 안돼!' 라고 권면하며
하나님을 자기가 떠난 그 자리에 남겼습니다.
▲위대한 신약시대에 사도였던 바울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의 고별설교와 비슷한 장면이 바울에게도 이렇게 나타납니다.
행20:17~32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26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이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섬기던 일을 멈추게 됩니다.
'이제 너희가 내 얼굴을 더 이상 못 볼 거야, 우리 이제 마지막이야!'
바울은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너희가 나 좀 기억해 줄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그 말씀을 기억하라' 고 말하면서 :31
그 말씀을 그들에게 남겨놓고 있는 거예요.
32 '그 은혜의 말씀에 너희를 부탁하노니'
여기서 말씀은 곧 그리스도 예수를 뜻하지요.
즉 바울은, 떠나는 작별하는 순간에
그들에게 자신을 남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자녀들에게서 떠날 때에
-내가 하던 일에서 떠날 때에
-혹은 내가 하던 그 직분에서 떠날 때에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될까요?
바로 지금까지 나를 통해서 일하셨던 하나님을, 또한 그 말씀을
그들에게 남기고
우리가 떠나가야 된다 라는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