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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3:1~15 사울 왕,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게 행동하다

LNCK 2023. 2. 28. 01:10

Saul: Acting Foolishly out of Fear | Ray Fowler .org

◈사울 왕, 두려움 때문에 어리석게 행동하다   삼상13:1~15    영어설교정리

삼상9~12장까지 사울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했으며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지도자가 되는 것을 축복하셨죠. 

그러나 본문 13장부터 사울은 느슨하게 풀리기 시작하고, 
13-15장에서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 거부당하는 사울을 보게 됩니다. 

사울의 이야기는 실망스럽지만 매우 교훈적입니다. 
사울은 시작 때는 아주 잘했습니다. 그는 겸손했고, 책임감도 있었고, 
그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3장부터 사울이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그 모든 것은 사울이 두려움에 굴복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두려움에 굴복할 때,
즉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할 때, 
우리를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려워할 때, 
우리는 복음을 나누는 것을 주저할 것입니다. 

주변 상황이 두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거나 거스르도록 유혹을 받습니다. 

이것이 본문에서의 사울의 문제였으며 
또한 우리 모두가 직면하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두려움은 성도으로서 우리에게 큰 도전이자,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난관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믿음으로 살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그래서 본문의 사울의 두려움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을 얻을까 합니다.


◑나는. 시험의 때가 만날 것입니다. (1~4절)

우리 모두, 내 믿음의 시험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임을 꼭 아십시오. 
학생이 시험을 피할 수 없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시험하는 시기를 겪게 됩니다. 

그것은 당신이 엉망이 되었다거나, 
하나님이 당신을 잊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당신이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고 
아직 천국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시기에 
우리는 특히 두려움과 믿음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합니다. 
본문의 사울처럼요.

두려움에 굴복하여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 나가실 것을 믿을 것인가요? 

이 믿음(두려움)의 시험을 통과하면, 
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승진하게 될 것입니다. 
좀 더 비중있는 일을 주님은 내게 맡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믿음)의 시험에서, 내가 타협하거나 굴복하면
나는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을 받는데 비해, 
나는 몇 년이 지나도 늘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게 될 것입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1-2)

13:1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2년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에서 2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1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 기브아에 있게 하고 
남은 백성은 각기 장막으로 보내니라

왕이 된 사울은, 초기 상비군을 구성하기 위해 3천 명을 만들었습니다. 
그 외 나머지 남자들을 집으로 보냈지만, 
그들은 필요할 때 여전히 대기 중이었습니다. 나머진 예비군 또는 민병대죠.

여기서 요나단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사울은 현실적이었습니다. 그는 다가오는 전투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고 
그 일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오늘 당장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도
늘 전쟁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에게도 준비하고 있으라고 명합니다. 
엡6:10~11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그렇습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믿음의 시험’ 시간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므로 
전투에 늘 대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2. 적과 싸울 때 원수가 반격함을 염두에 두십시오 (:3-4)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사람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이 이를 
들은지라 사울이 온 땅에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온 이스라엘이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함을 듣고 그 백성이 길갈로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위 구절에서 배워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원리는 
적과 싸울 때 적이 반격한다는 것입니다. 

3절에 따르면, 블레셋 사람들을 먼저 공격한 사람은 요나단이었죠. 
(요나단이 게바에 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쳤는데,
이처럼 이스라엘 영토 깊숙한 곳 게바에 블레셋의 수비대가 있었다는 것은 
그당시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의해 많은 압제를 받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게바는 원래 이스라엘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은 땅을 되찾기 위한 공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을 뒤어서, 사울도 블레셋의 수비대를 공격합니다. :4
‘수비대’란 말 역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파견 부대를 두고 있었음을 뜻하죠.

그래서 4절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이 말의 원어적 의미는 ‘가증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 악취가 나게 되었다’
입니다. 저 레이 파울러는 이런 표현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원수 사탄에게서 이런 표현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행24:5참조

이스라엘이 수동적이고 싸우지 않는 한,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신경을 덜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공격하자마자, 그들은 적에게 악취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선제공격이 아니라, 빼앗긴 영토를 탈환하는 수비적 전쟁이었죠)

당신은 적에게 악취가 되고 있습니까? 
당신은 그리스도를 위해 너무 담대하고 완전하게 살아서 
사탄과 그의 세력에게 악취가 나고 있습니까? 

당신이 수동적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성장하지 않는 한, 
원수는 당신에 대해 덜 신경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당신이 성장하고, 하나님 나라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면, 
당신은 ‘원수에게 악취’가 될 것입니다. *개정에 ‘미움을 받게 되었다’ :4

우리는 적에게 너무 나쁜 냄새가 되어서 
그들이 참을 수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사울이
사울이 백성들을 길갈로 불러들인 것을 주목하십시오. 
사울은 여기서 블레셋의 반격을 대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길갈은 사울이 왕으로 확정된 곳이었습니다. (11:15) 
당시 이스라엘에, 거의 수도와 같은 구심점 역할을 하던 지역이었죠.

그렇습니다.
적과 싸우면 적이 반격합니다. 

에베소서 6:12에서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권세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알려 줍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런 말이 있죠. 
"마귀는 당신이 죄 가운데 살고있는 동안 당신을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를 빠져나가려고 하면, 마귀는 당신을 공격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려고 할 때, 
반드시 ‘시험의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차피 치러야 될 전투입니다. 
나의 영토 깊숙이 들어온 마귀의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치러야만 하는 전쟁입니다.

그러니 전투에 대비하면 됩니다.
당신이 적과 (죄와, 육신과, 마귀와) 싸우려 할 때 
반드시 적이 반격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당신은 때때로 두려움에 굴복하도록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5~10절)

▲당신의 문제는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5)

즉각 블레셋 편에서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지금 문제가 보이십니까? 사울의 상비군에는 3천 명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3천 대의 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운전할 6천 명의 마병이 있습니다. 
게다가 해안의 모래만큼 많은 병사들이 싸우러 다가옵니다. 

사울은 수적으로 열세이고 화력도 열세이므로, 
우리는 그가 두려움에 굴복하기가 얼마나 쉬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가서 믹마스에 진을 쳤다고 말한 것을 주목하세요. 
믹마스는 2절에서 사울과 그의 부하들이 진을 치고 있던 곳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과 그의 부하들을 자기 진영에서 쫓아냈습니다! 
다시 말해, 사울과 그의 군대는 이미 1차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영적 삶에서 패배하여 뒤로 물러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한 분야에서 많은 진전을 이루고 나서, 
또 다시 쉽게 옛 습관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척 스윈돌은 <세 걸음 전진, 두 걸음 뒤로>라는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Three Steps Forward, Two Steps Back

그리스도인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전투입니다. 
때로는 세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두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계속 전진하고 계속 발전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인생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압도적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일어나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힘겹고 절망적일 때도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때때로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고후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문제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일 때, 
두려움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울이 본문에서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고, 
우리 각자가 삶의 위기 때에 직면하는 것입니다.

▲2. 내 주변의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사울은 흔들렸습니다. (:6~7)

6~7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단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가되 
사울은 아직 길갈에 있고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

우리가 두려움에 굴복하려는 유혹을 받는 두 번째 이유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상황이 위급하고 
적의 군대에 압박을 받고 있음을 알고는 
동굴과 덤불 속에, 바위 사이에, 웅덩이에 숨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일부 히브리인들은 요르단 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까지 
피신해 갔습니다. 그러니 서쪽에서 전선이 형성되니, 동쪽 끝으로 간 거죠.
이들은 아마 탈영병이거나, 징집을 거부한 도피자였을 것입니다.

사울은 길갈에 남아 있었고, 
그와 함께한 모든 군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불쌍한 사울. 그는 적에게 믹마스 땅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의 지지도 잃고 있었습니다. 
그의 군대들은, 적에 맞서 함께 굳건히 서 있는 대신 
바위와 덤불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원 시스템이 잘 마련되어 있을 때도
전력이 열세이며,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 전투를 치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우리는 쉽게 그들과 함께하고 두려움에 빠지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을 즉시 구원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8)

8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무엘은 사울에게 길갈에서 7일을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혹자는 여기서 7일을 10:8절의 7일과 연관짓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10:8에서의 사무엘의 명령은 오히려 11:14~12:25의 기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고 볼 수 있죠. 즉 다른 7일입니다.) 

7일은 어쩌면 별로 길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 적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매우 초조하고 긴 기간입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도 사무엘이 오지 않자 사울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적은 방금 쳐들어 올 듯이 압박하고 있었고, 
그의 부하들은 흩어지기 시작했고, 사무엘은 여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중 일부 목적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보다 더 크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도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스케줄을 나 위주로만 맞추실 수는 없어서..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때가 바로 믿음의 시험 시간입니다.
내가,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고 선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 삶의 세부 사항에 대해, 그분의 섭리를 신뢰한다면
나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시31:14~15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즉시 구원하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때에’ 당신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에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나를 즉시 구출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주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4. 두려움은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이끕니다 (:9-10)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10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잠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사울은 인내심이 바닥났습니다. 
적이 압박하고 있었고 그의 부하들은 흩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사무엘은 도착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희생제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는 7일을 기다렸지만 일곱째 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0절에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이 말은, 사울은 번제물만 드렸을 뿐, 아직 화목제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때 
사무엘이 마침내 도착했고, 사울은 그를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시험의 시간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때때로 두려움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은 특히 두려움보다 믿음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경우처럼, 
두려움은 당신을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분명한 지시를 듣기 전에,
독단적으로 행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11-15절)

▲1.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전에는,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마십시오! (11-12)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의 첫 질문은 문제의 핵심을 바로 꿰뚫습니다. 
인사말이 없습니다. 잡담이 없습니다. 
전투와 진행 상황에 대한 논의가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사무엘은 사울의 행동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러 도착할 때까지 
7일을 기다리라는 사무엘 제사장의 말을 거역했습니다. 

여기서 7일이란 기한에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제사장 없이 왕이 혼자 독단적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
사울의 결정적 잘못이었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출하도록 
특별히 왕으로 선택된 사울은 
자신의 독자적 권한으로 독립 전쟁을 시작할 자유가 없었으며, 
사무엘이 정당하게 전쟁을 개시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보통 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시작하죠.

앞서 소규모 맛보기 전투가 몇 번 있었으나,

이제는 사울이 길갈에서 백성들을 모아서

블레셋 전체 부대와 이스라엘 간의 본격적인 전면전을 치르기 직전 상황)

그리고 이제 사무엘은, 사울의 잘못된 행동으로 대면하는 것이 
불쾌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네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하고 묻습니다.

이제 여기서 정답은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입니다. 
사울은 여기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고백하는 대신, 다른 모든 사람을 비난하기로 선택합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할 준비를 했다고 변명합니다. 
그는 흩어지는 자신의 부하들을 비난합니다. 
그는 심지어 사무엘이 더 일찍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합니다! 

사울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나는 번제물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다"고 말한 것에 :12
유의하십시오. 
사울은 결코 잘못된 일을하도록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혹을 받을 수 있고, 그 유혹이 강할 수 있지만, 
결코 죄를 짓도록 강요받지 않습니다. 내가 죄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불순종의 행위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위대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It’s not the will of God if it goes against the Word of God.

△사울이 결정적으로 뭘 어떻게 잘못했는지.. 주석가들의 연구가 분분합니다.

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울이...번제를 드렸더니' 
이것은 사울이 자신이 직접 제사장의 역할을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때 이 제사는 엘리의 증손자 아히멜렉에 의해서 시행되었을 것입니다.
(21:1, 22:9, 16). 제사장은 사무엘 말고도, 있었으니까요. 

따라서 사울이 주도해서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추론이 가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출하도록 
특별히 선택하신 사울은 
자신의 독자적 권한으로 독립 전쟁을 시작할 자유가 없었으며, 
사무엘이 정당하게 그렇게 하도록, 하나님의 명을 정확하게 받을 때까지 
사울은 마땅히 기다려야 했습니다. (보통 제사를 드리고, 전쟁을 시작하죠)
그게 7일이 되었든, 1달이 되었든 날짜는 중요하지 않고요... 

어쩌면 사울이 자신을 정당화 한 것도 차제의 문제입니다.
사무엘이 분노한 이유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을 정확히 받지도 않고서,
자신이 독자적으로 ‘여호와의 전쟁’을 시작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림을 신호탄으로 해서, 전쟁이 시작되는 거거든요. 

 

그러니 주님의 분명한 응답이 확신되지 않을 때까지는
모든 일손을 놓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성급하게 자신이 나서지 말고.. 죽치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제사 드림을 통해
‘전쟁 하라!’는 명령을 주실 때까지!

왕이라고 무조건 다 독단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를
세밀하게 따라야 했던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조급하게 행한 사울을... 사무엘은 분노하며 책망한 것이죠!

△「제 스스로 길을 선택한 신학생의 고백
요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draw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그래서 제 과거를 생각해보면, 
모태교인으로서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끌어 주지 않으면’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인도를 받지 않고
제 스스로 일단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경우가
제게 아주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여쭈어보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등의 신앙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지요.

그래서 젊은 시절 제 스스로 발버둥 치다보니
신학교에도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방황했고
길 the way을 몰라서 잠시 불교로 기웃거리기도 했다가,
그 방황은 인도 신비주의자들,
노자와 장자까지로 가는 방황을 이어갔습니다.

한 마디로 ‘성령의 이끄심을 받지 못하였으니’
그만큼 삶이 고단했고, 오랜 기간 허송세월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은혜로 성령님이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방황해서 한 때 신앙공동체를 버리기까지 하였으나

전격적인 하나님의 이끄심을 받아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해주셨고,
그분의 복음가운데서
내 영혼의 방황을 끝내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 불순종의 선택은 장기적인 결과가 뒤따름니다 (13-14)
그 부정적 결과, 여파가 오래도록 지속되어 괴로움을 당한다는 거죠.

꼴랑 사울이 (아히멜렉 제사장과 함께) 제사를 임의로 드린 것을 가지고
13~14절의 큰 징계, 큰 죄의 결과가.. 언발란스처럼 느껴지지만,

사울은 지금 작은 잘못이 아니라, 근본적인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이란,
이스라엘 왕은, 세상 왕처럼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왕이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하나님의 통치의 대행자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펴나가는... 이것이 왕의 역할이었죠.

그런데 사무엘은, 전쟁이란 국가 대사를 앞두고,
자기 임의로 행하자... 사무엘을 통해 대언된 메시지에 의하면
왕의 자격을 박탈당해 버린 것입니다. :14

하나님의 명령이나, 하나님의 의중을 무시하는 왕이라면
교체 카드 이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장에는, 사울의 독단적 행위, 불순종이 이 사건 단 한 건 나오지만
15장에 가면, 아각 왕과 좋은 가축들을 살리는 두 번째 불순종이 나오죠.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작은 예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어서, 큰 불순종 사건 2개만 대표적으로 기록한 거죠.

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지금 이 모든 일이 길갈에서 일어나므로 
사울은 처음에 왕이 된 곳에서 
하나님에 의해 왕직 교체의 선언을 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심은, 결코 과도한 오버액션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서 행한 것을 보십시오.

그는 두려움에 너무 빠져서, 자기 임의로 행한 것뿐만 아니라
질투심에도 너무 빠져서, 자기 임의대로 행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사울처럼, 자기 임의대로 얼마든지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식으로,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행하다가는... 사울처럼 큰 것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말했죠.
“There is no [such thing as a] little sin, 
because there is no little God to sin against.” 

‘작은 죄라는 것은 없다.
왜냐면 하나님이 작은 죄라고 여기시는 게 없으므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당신을 용서하실 것이지만 
장기적인 ‘죄의 결과’가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십시오. 
우리의 행동에는 긍정적이든지/부정적이든지 항상 결과가 있습니다.

▲3.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15)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함께 한 백성...육백 명' 
여기의 '육백 명'은 원래 사울과 함께 했던 '이천 명'(2절)에 비하여 훨씬 
적은 숫자이죠. 이것은 결국 인본주의적 생각에 근거한 사울의 성급한 제사가 
전혀 실효를 나타내지 못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8,9절).

사울은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아니 처음보다 더 작은 숫자로 다시 군대를 정비해야 했습니다.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할 때, 
당신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혹시 잘못된 선택, 임의로 선택해서 그 결과를 내가 책임진다 하더라도 
다시 시작하기는 어렵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두 번째 기회, 세 번째 기회, 여러번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한 두 번에 당신을 내치지 않으십니다.

잠언 24:16 "의로운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고 알려 줍니다. 
그렇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십시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 다시 시작하십시오. 

때로는 세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했을 때만큼 더 심하게 타락하거나 
믿음이 심하게 다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예언적으로 말씀했죠. 
"시몬아, 시몬아, 사탄이 너를 밀까부르듯 체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몬아, 나는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하였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여라." 눅22:31-32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두 다시 시작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은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에게 새로운 시작을 주십니다. 
당신은 새로운 방향, 새로운 목표, 새로운 삶의 힘, 새로운 영원한 운명을 가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복음의 좋은 소식은 그리스도예수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 옛 사람이 죽고, 새 생명으로, 부활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온전한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