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사울의 ‘반면교사’가 그 교훈입니다. ‘사울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앞서 14:1~23은, 사울이 아니라 요나단의 믿음에 의하여 대적 블레셋으로부터 승리를 거둔 사건이 나왔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이제 내친 김에 우리가 밤새도록 싸워서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하자 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야간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진 일입니다.
◑1. 사울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다 (14:24~35)
본문에서 블레셋과의 전투를 수행하던 사울은 정말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죠.
24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1. 말씀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따르고자 할 때,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24~30)
23절과 24절을 연결해서 읽어보면, 그 대조가 흥미롭습니다. 23절은 "여호와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라고 말하는데, 24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날에 피곤하였으니.."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면, 즉 블레셋과 전쟁에 승리를 주셨으면, 24절에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고 사기충천해야 정상 아닙니까?
지금 전쟁의 승기가 이스라엘로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그 날에 피곤한 이유는, 그 날 저녁까지 이스라엘은 아무 음식을 먹지 말라고, 사울이 명했기 때문입니다. :24
‘사울은 구출(구원)을 고난으로 바꾸는 이상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죠. “Saul shows a strange ability to turn deliverance into distress.”
하나님의 말씀(율법)에는 군인들이 전투 당일 먹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울 개인의 생각이었고, 그런 지도자의 잘못된 결정은 공동체 전체에 피곤함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전쟁의 효율도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의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은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사울이, 금식을 통해, 하나님을 조종하여 승리를 거두려고 했던 것일까요?
종종 지도자가 유혹받는 잘못은 자기 팔로워들을 희생시켜서, 어떤 결과를 얻어내고자 할 때입니다.
그가 얻어낸 결과는, 전투 당일 자신의 군대를 지치게 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그것은 그 전쟁에 결정적 승리를 안겨준 자신의 아들 요나단을 죽을 뻔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25절에서 전투의 현장은 (언덕에서) 수풀로 이동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많은 꿀벌이 있었기 때문에, 군인들은 숲에서 꿀을 발견했죠. 과거에 약속의 땅을 두고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말했던 적이 있었죠. 이스라엘의 숲에는 꿀이 많았나 봅니다.
그곳에는 사울의 부하들에게 지금 당장 절실히 필요한 꿀이 있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사울의 어리석은 맹세 때문에, 꿀을 먹을 수 없었죠.
그러나 요나단은 맹세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꿀을 조금 먹고 :27 즉시 기력이 회복됩니다.
후에 군인들이 그에게, 사울의 맹세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29 그는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라고 말합니다. (*‘이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뜻하는 말)
요나단은 아버지의 어리석은 결정 때문에 이스라엘의 승리가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잠언28:26 ‘자기를 의뢰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지혜로 행하는 자는 안전하다' 고 알려 줍니다. 자기 상식을 따르지 말고, 성경말씀을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 자기 판단을 따를 때, 당신은 사울처럼, 결국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고, 그 결정으로 인해, 전체 공동체까지 어려움을 당할 것입니다.
▲2.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31~35)
33 그 날에 백성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그들이 심히 피곤한지라 32 백성이 이에 탈취한 물건에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끌어다가 그것을 땅에서 잡아 피째 먹었더니
33 무리가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백성이 고기를 피째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믿음 없이 행하였도다 이제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 하고
34 또 사울이 이르되 너희는 백성 중에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사람은 각기 소와 양을 이리로 끌어다가 여기서 잡아 먹되 피째로 먹어 여호와께 범죄하지 말라 하라 하매 그 밤에 모든 백성이 각각 자기의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35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이스라엘 군대는 믹마스에서 서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아얄론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했습니다. 이제 저녁이 되어 사람들은 사울의 맹세에서 풀려났고, 너무 배가 고파서 ‘고기를 피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알고도 너무 배가 고파서, 아마 고의로 무시했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때 사울은 이 문제를 잘 처리합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주님께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는 큰 돌을 세워, 그 위에서 동물들을 도살하고 피를 빼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주님을 위한 제단을 쌓아 하나님을 경배하려는 진지한 열망을 나타냈습니다.
지금 그는 말씀에 따른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있고, *피채 먹지 말라 그 날 아침엔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었죠. *해 질 때 까지 금식해라
그는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성도, 깨어있지 못한 성도는 사울처럼 일관성이 없습니다. 잘했다가/잘 못했다가.. 그때 그때 다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곧게 하시리라." (잠3:5~6)
그렇습니다. 어리석은 결정 대신, 일관성 있게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신뢰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 대신, 그분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내 삶의 일관성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를 때 옵니다.
◑2. 이랬다 저랬다 경솔한 사울의 지도력 (36~46)
▲1.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라 (36~39)
36 사울이 이르되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서 탈취하고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무리가 이르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할 때에 제사장이 이르되 이리로 와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 하매
37 사울이 하나님께 묻자오되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리이까 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되 그 날에 대답하지 아니하시는지라
38 사울이 이르되 너희 군대의 지휘관들아 다 이리로 오라 오늘 이 죄가 누구에게 있나 알아보자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죽으리라 하되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야간 습격으로 전투를 계속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지도자로서 그는 먼저 그것에 대해 기도하자고 제안해야 했지만, 기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제사장이라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36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로 여쭈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하나님이 계속 응답하지 않으시니 그러면 이렇게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고 ‘분명히 우리 가운데 누가 죄를 저질렀구나’ 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고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군지 한번 드러내보자 라고 제비를 뽑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부하 중 하나가 죄를 지었다고 추리하고, 그 사람이 누구이든 자기 아들 요나단이라 할지라도 죽어야 한다고 추가로 맹세합니다. :37~39
‘모든 백성 중 한 사람도 대답하지 아니하매’ :39 요나단이 한 일을 알고 있던 병사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요나단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과 존경심 그리고 사울과 그의 지도력에 대한 그들의 비호감을 보여줍니다.
전5:2절과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서원과 약속에 주의해야 합니다. 내 삶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내 결정에 왔다 갔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지도자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일관성이 없고 왔다 갔다 하기 때문)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함부로 경솔하게 서원하거나 약속하지 않는 것입니다.
▲2. 당신이 틀렸을 때 기꺼이 인정하십시오 (40~44)
40 이에 그가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너희는 저쪽에 있으라 나와 내 아들 요나단은 이쪽에 있으리라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왕의 생각에 좋은 대로 하소서 하니라 41 이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되 원하건대 실상을 보이소서 하였더니 요나단과 사울이 뽑히고 백성은 면한지라
42 사울이 이르되 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뽑으라 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마치 사사기의 입다처럼 *그는 자기 딸을 바치는 올무에 걸렸었지요. 사울은 지금 어리석은 서약을 한 후에, 스스로 자기 서약에 갇히게 된 거죠.
오늘날 우리는 그래서 서약을 잘 하지 않습니다. 서약이든, 약속이든 간에, 만약 내가 그것을 도저히 지키지 못할 상황에 빠지게 된다면, 우리는 조속히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여기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전에 그는 부하들을 맹세로 묶었습니다. 이제 그는 맹세로 자신을 묶습니다. 그는 "요나단이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벌주시기를 빕니다"라고 하죠. :44
지금 팩트는 요나단이 꿀을 조금 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절제 되지 않은 말과 맹세로, 문제를 자꾸 키우고,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사울은, 어찌보면 ‘내가 잘못했다. 내가 괜히 금식을 선포했고, 내가 괜히 제비 뽑자고 했다. 다 내 잘못이다’ 이렇게 말하면 끝날 일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자꾸 ‘경솔한 말로’ 문제를 확대시키고 있습니다.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사울은 요나단의 목숨을 빼앗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제 사울의 부하들은 요나단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울을 반대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사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울은 어리석고 완고함으로 인해 부하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서 충성 faithful 은, 다른 말로 ‘일관성’입니다. 지도자는 충성됨(일관성)을 나타내 보여야.. 팔로워들의 지지를 받습니다.
사울은 처음에 잠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는 듯 했으나 10:10, 11:6 정식으로 왕이 된 후에는, 그는 삐그덕 거리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임한 성령은, 간헐적이며, 계속 내주하시는 성령이 아니었죠. 그래서인지 사울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습니다. 갈3:3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지금 사울과 그의 부하들에게 전황은 유리하게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적을 압박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일을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는 것을 중단했고, 블레셋은 다음 공격을 위해, 무너진 자기 군대를 재편성하고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입니다.
결국 비슷한 장소에서 소위 ‘길보아 전투’에서 블레셋과 사울은 다시 격돌하게 됩니다. 삼상31장 여기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모두 전사하게 됩니다. 31:8
만약 이때, 블레셋을 완전히 발본색원 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한 것은, 사울의 ‘자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의적으로 금식을 선포해서, 전쟁하는 군사들을 힘빠지게 했고 -한참 블레셋을 추격해야 될 시점에, 자기의 어리석은 ‘서원 발표’로 자신과 백성들의 시선을 엉뚱한 데로 돌리게 해서 정작 중요한 ‘블레셋 진멸’에서는,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갈6:9절은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되면 추수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원하든/원치 않든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죠. 우리 주위에는 정작 ‘영적 전쟁에서 우리 관심을 흐리게 하는’ 여러 가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내 체면, 내 말의 올무(나는 꼭 내 말을 지킨다는 고집), 내 자의적 판단
혹시 나는 오늘날, 우리 공동체가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괜히 사울처럼, 내가 지도자랍시고, 내 말을 액면가 그대로 지키려 하다가, 정작 중요한 영적 전쟁의 트랙에서 떠나서, 엉뚱한 길로 가고 있지는 않나요?
◑3. 사람의 평가 vs 하나님의 평가 (47~52)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후 모압, 암몬 사람, 에돔, 소바 왕, 블레셋 등 사방에서 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좋은 전과도 거두었습니다.
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49 사울의 아들은 요나단과 이스위와 말기수아요 그의 두 딸의 이름은 이러하니 맏딸의 이름은 메랍이요 작은 딸의 이름은 미갈이며
50 사울의 아내의 이름은 아히노암이니 아히마아스의 딸이요 그의 군사령관의 이름은 아브넬이니 사울의 숙부 넬의 아들이며 51 사울의 아버지는 기스요 아브넬의 아버지는 넬이니 아비엘의 아들이었더라 52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으므로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모았더라
이것은 사울이 왕으로서 통치한 일에 대한 요약 진술이며, 구약의 다른 왕들에 대한 다른 요약 진술과 유사합니다. 단,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다른 왕들은, 보통 그의 삶의 끝에서 왕의 요약 진술을 합니다. 그렇지만 사울은, 아직 통치할 시기가 많지만 지금 그의 요약 진술이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에 관한 한, 사울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후로 하나님을 기억에서 잊어버린 듯합니다.
아직 그는 왕좌에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습니다. 왕이 아닌 것입니다. 그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여전히 왕으로 지낼 것이지만 그의 남은 날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으며, 하나님은 이미 그의 후임자를 선택하셨습니다.
위 본문에서, 이제 사울이 전쟁에 나가서 거둔 전과만 놓고 보면 사울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북쪽, 남동쪽, 서쪽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는 용감하게 싸워 아말렉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사울에 대한 평가는 모두 꽤 좋게 들립니다. 그러나 사울의 통치에 대한 이 요약에서 무엇이 빠졌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평가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울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착각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무조건 실패하고 잘못되고 망하는 줄 알아요. No!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은총 과 자연법칙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더라도 몸을 잘 관리하고 건강에 신경쓰면, 하나님 없어도 몸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같은 원리로 불신자가 부자도 되고,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뭡니까? 그게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성공이요, 땅에서만 (길면 백년) 누리게 되는 잠시 잠깐 누리는 성공이요, 번영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더 큰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가 되죠. (노블리스 오블리제)
지금 사울이 승리를 했어요. 근데 그 승리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자기의 힘과 자기의 열심과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수고로 인한 승리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불러모아요. :52
그런데 다윗은 달라요. 삼하8: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사울의 수고와 승리는, 자기 혼자 힘으로 한 것이지만, 다윗의 수고와 승리는, 하나님이 강하게 하셨고, 그의 승리를 하나님이 축복해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한 승리였고 하나님이 주신 승리라고 말할 수 있죠.
그리고 사울은 전혀 하나님의 영광과 상관없어요. 그래서 사울은 (가는 곳마다) 자기 기념비를 세워요. 삼상15:12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당연한 결과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은 그렇게 하죠. '내가 이렇게 잘된 게, 내 자식 이렇게 잘 된 게, 우리 사업 이렇게 잘 된 게 내가 피땀 흘려가지고..' 이렇게 공로를 자기 자신에게 돌려요.
그래서 사울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성공과 성취와 업적과 후대를 남기면서 그렇게 걸어가는 인생이 되었다... 라고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비참한 실패자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가늠하기 위해, 당신의 순종과 믿음을 바라보시지, 세상적인 성공을 가늠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을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상기시키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울은 평생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본문에서, 그가 블레셋을 물리칠 기회가 있었을 때 그들을 진멸해 버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나중에 블레셋은 다윗 때에 완전 항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