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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3

LNCK 2023. 3. 2. 11:14

[Ep3.오디오북]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실화 | 내래죽어도순종합네다 | - YouTube

◈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3            <지난 글 보기>

◑6장 마음이 주린 아이들 

나는 통독반 탈북민 학생들에게, 통독 못지 않게 말씀 암송도 많이 하게 했다. 
항상 예배 드리기 전에 말씀 암송을 반복했다. 
예배 전에, 모든 사람들이 암송 페이퍼를 들고 
앞에 선 사람의 선창에 따라 큰 소리로 따라 읽었다. 

백 절을 읽어야 말씀 읽기는 끝이 났다. 
이 때문에 황금종교회 예배는 독특한 풍경이 되었다. 

한 두 달정도 계속 반복해서 진행하니, 100절 정도는 쉽게 암송했다. 
그리고 나면 다시 200절,  300절로 계속 늘여갔다. 

마지막에는 찬양시간 보다 말씀암송을 반복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이 예배 방식이 특이하다고 해서 '크리스찬투데이'를 비롯해 
많은 기독 언론사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또 한 주에 1~2일 정도는 오전 시간을 따로 내어, 암송하는 시간을 잡았다. 
암송하는 방법도 조금 특이했다. 

책상에 앉아서만 암송 하지 않고, 걸으면서도 암송하게 했다. 
영등포구 당산동에 위치한 통독학교를 출발해서 여의도공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학교로 오면 10 KM가 넘는다. 

그 먼 거리를, 학생들은 페이퍼를 들고 중얼중얼 말씀을 암송하면서 걸었다. 
걸으면서 암송하는 비법은, 내가 직접 암송하면서 터득한 나만의 비법이었다. 
이렇게 걸으면서 계속 반복하고 되새기면, 잘 잊혀지지 않았고 
반복하면서 수많은 말씀의 의미가 서로 연결되어 깨달아졌고 
그것은 영혼의 깊은 곳을 울렸다. 

성경통독 못지 않게, 말씀암송 에도 큰 비중을 두었기에 
암송하는 날은 내가 직접 인솔했다. 

내가 제일 앞서 걸어가면서 암송을 하면 
마치 어미 닭을 따라 병아리들이 졸졸 뒤따라다니는 것처럼 
학생들이 뒤에 따라오면서 암송했다. 

암송 결과는 통독학교 벽에 큰 도표를 만들어서 
암송한 구절 숫자를 기입하는 방법으로 표가 올라가게 했다. 

선생들이 검열하지 않고 스스로의 양심에 맡겼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 있게, 암송한 구절들만 도표에 올리라고 했다. 
암송과 인내, 정직을 가르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신학교를 간다고 벼르던 영실 자매가 제일 열심이었다.
매일 꼬박꼬박 올리더니 어느새 도표에 끝까지 다 올려 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열심히, 한 달에 100절 이상씩은 올렸다. 
그러나 정철이는 한 절도 올리지 않았다. 

내가 꾸짖었다. '너는 왜 암송 안 하고 있니?' 
'저거 말입니까? 중국에서 이미 다 하지 않았습니까!' 

정철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러면 도표에 올려라!' 
하룻밤 사이에 정철이의 도표는 끝까지 올라가버렸다. 

성근선생이 미심쩍은 눈으로 도표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정철이 너, 정말 이거 다 한 거 맞나?' 
'예!' 
'그럼 한번 암송해 봐라!' 

성근 선생이 시켜 봤더니 정말 다 했다. 줄줄 나왔다. 
중국에서 신물이 나도록 통독하고 말씀 암송을 하고 온 녀석이라 
이런 것은 대수롭지도 않아 보였다. 
정철이는 말씀암송 시간이 되면, 책을 들지도 않고, 눈을 감고 따라 읽었다. 

▲가끔 내가 없는 날에는, 순교 선생이 데리고 다니면서 암송을 시켰다. 
어느 겨울 날, 순교 선생이 통독반 학생들을 데리고 여의도로 길을 떠났다. 

날이 추웠다. 진눈깨비가 내리면서, 겉옷들이 젖기 시작했고, 바람까지 많이 
불었다. 들고 나간 우산이 자꾸 뒤집어지고 걷기 힘들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젖은 옷 속에 한기가 밀고 들어왔다. 
암송하려고 들고 있던 종이도 다 젖어 버렸고, 손이 시려서 잡지도 못 했다. 

제일 뒤에서 투덜거리면서 마지못해 따라오던 광수가 순교선생을 향해 말했다. 
'아~ 이거 사람이 살자고 하는 공부인데, 이런 날은 좀 일과를 바꿔서 
그냥 방안에서 통독하면 안 됩니까?' 

순교선생은 '이게 뭐 춥다고 그래? 그냥 따라 와!' 

한번 한다고 정하면, 앞에 벼랑이 나타나든, 산이 나타나든 
무조건 밀고 나가 버리는 순교선생이라, 날씨 따위는 개의치 않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거 너무 춥습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이제 그만 좀 돌아갑시다. 선생님!' 
광수가 다시 애원했지만, 순교선생은 무시하고 저만치 앞으로 가 버렸다. 

광수가 뚜껑이 열려 버렸다. 펄펄 뛰면서 고함에 질러대고 욕을 해대기 
시작하더니 혼자 학교로 돌아와버렸다. 

젖은 옷을 벗고, 대충 씻고 덜덜 떨면서, 이불안에 들어가면서도 
순교선생을 향해 원망을 해댔다. 
'에이 씨 추워, 순교선생 때문에 감기 걸렸잖아? 
이게 뭐야, 살겠다고 하는 짓이 뭔 꼴이야?' 

▲통독반 학생들은 다들 가난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쭉 가난하게 살았기에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급하고, 이렇게 저렇게 돈이 생기면 
알뜰하게 저축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늘 장학금을 받으면, 한 주도 지나지않아 다 쓰고 
'목사님, 전도사님, 돈 좀 주세요. 돈 좀 빌려주세요!' 하고 헤매고 다녔다. 

아무리 꾸짖고 야단을 쳐도, 듣지도 않았고 무서워 하지도 않았다. 
대부분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꽃제비로 살거나 
집을 떠나 홀로 험한 삶을 살아왔기에.. 마음이 주려 있었다. 

마음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은, 외모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대부분 싼 옷을 입지 못했다. 

언제나 비싼 브랜드 옷과 신발들만 신고 다녔다. 
얼핏 외모만 봐서는, 키가 작은 것을 빼고는, 남한의 왠만한 집 자녀들 같았다. 
휴대전화도 자주 바꿨다. 고지서를 보면, 보통 두 세 대씩 할부금이 밀려서 
수십만 원씩 나오고, 매번 체납 독촉장이 날아왔다. 

그러다가 휴대전화가 아예 끊겨 버리면, 다른 사람 명의로 개통을 했다. 
여학생들은 그냥 내버려 둬도 충분히 예쁜 애들이 툭하면 성형수술을 했다. 

오늘 이 학생의 코가 바뀌고, 내일은 저 학생의 눈이 바뀌었다. 
비싼 돈을 들였다고 자랑을 하는데, 아무리 봐도 원래보다 이상했다. 

남보다 뒤쳐지거나 소외되는 것을 견디지 못 했다. 
거기에다 질투가 심했고 공격적이었다. 

남학생들은 조금만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달콤한 잠을 자는 사자를 건드린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하루는 식사 당번을 해야 할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순교선생이 광수에게 말했다. 
'광수야, 오늘 네가 대신 식당 섬김이를 해라!' 

다같이 빙 둘러 앉아 열심히 암송하던 광수의 눈이 꼿꼿해졌다. 
'아니 왜 난데요? 며칠 전에도 했는데 왜 또 합니까?' 

'그냥 시키면 해! 또 하면 안 돼?' 
군인 기질이 몸에 밴 순교선생이 고함을 질렀다. 

광수도 폭발했다. 벌떡 일어나 손가락을 쳐들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왜 난데? 왜 나보고 그러는데? 난 안 해, 네가 해라, 왜 나에게 시켜?' 

광수는 분하다고 발로 벽을 꽝꽝 차고, 주먹으로 기둥을 치고, 발로 문을
걷어차면서 뛰쳐나가 버렸다. 잠시 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다시 뛰어들어와 순교선생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광수뿐만 아니었다. 정철이, 광철이, 유진이도 그랬다. 
조금만 화가 나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납게 날뛰었고 
상대가 아무리 나이 많은 선생이라고 해도, 상관하지 않고 폭언을 퍼부어댔다. 

▲한번은 다른 선교단체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유럽을 거쳐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가는데, 많은 사람이 가다보니 
한 사람은 무료로 갈 수 있는 티켓이 생겼다고 했다. 
이 티켓으로 탈북민 한 사람을 섬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철명이를 보내려 했다. 그런데 철명이가 안 간다고 했다. 
많은 돈을 내도 얻기 힘든 기회를, 철명이는 쌀쌀맞게 거절해 버렸다. 

큰 혜택을 주어도, 감사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냉정한 거절이 되어서 돌아오자 
내 마음이 힘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대체 왜 안 가는지 물었더니 
이유가 이랬다. 

'내가 뭐 남 먹다 남은 것만 먹는 사람입니까?' 

내가 처음에 봉철이에게 가지 않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봉철이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하기에 
두 번째로 철명이에게 물었더니, 녀석이 자존심이 상해 버린 것이다. 

마음이 상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며칠이 지나서 다시 권고해도 
철명이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옆에서 보다 못해 전도사들이 사정하면서까지 등을 떠밀어도 
철명이는 끝내 성지순례 여행을 가지 않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잃고 꽃제비로 살아왔다. 
사랑과 관심, 따뜻한 보살핌과 배려 속에서만 얻을 수 있는 평안함과 만족을 

자기 마음에 채워 본적이 없기에,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했다. 
다들 마음속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마음 속에 두려움을 감추고, 자기가 강하게 보고 싶어 한다. 
마음 속에 큰 두려움을 가진 사람일수록 
외형적으로는 더욱더 거칠고 난폭했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분노하고 폭발했다. 

내가 볼 때 이들은,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라, 마음이 주린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굶주린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이들에게, 교육과 훈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다. 
일단 잘 먹이기로 했다. 먹는 것으로 마음까지 채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노력에서도 정성과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학생들이 먹고 싶다는 것은 다 사 주었다.
소고기는 너무 비싸 머뭇거렸더니, 남서울교회 여전도회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섬겨 주셨고, 
양가표 권사님은 한동안 빵을 보내주셨다. 

부엌에 나가면 아무 때나 과일과 간식, 빵을 먹을 수 있게 했다. 
사과는 제일 좋은 것들로, 늘 떨어지지 않게 사 놓았다. 
몇 달을 그렇게 먹였더니, 녀석들이 사과를 먹지 않고 무를 먹기 시작했다. 

반찬을 하려고 무를 한 포대씩 사 놓으면, 새파란 머리 부분은 모조리 잘라갔다. 
통독 하면서도 무를 깎아 먹고, 방에서 얘기하면서도 무를 깎아 먹었다. 

'왜 사과랑 귤을 안 먹고, 무를 먹니?'
내가 신기해서 물었더니 설경이가 대답했다. 
'목사님도 한번 드셔 보세요. 이게 더 맛있어요!'

'어떻게 사과보다 무가 더 맛있니?' 
설경이가 무의 파란 부분을 먹기 좋게 잘라서 내밀었다. 

내가 받아 먹어봤더니 그런대로 먹을만 했지만 사과 보다 더 맛있지는 않았다. 
'거 참 희안한 놈들이다. 왜 사과랑 빵을 안 먹고 무를 먹지? 
사과를 너무 많이 먹어서 싫증이 났나?
무를 먹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사과로 오겠지..' 

그런가 하면 얼마 후부터는 반찬거리로 사온 멸치를 씹어먹기 시작했다. 
멸치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구워서는 간식처럼 먹었다. 

그 작은 고기들을 하나씩 붙들고 노려보면서 
정성 들여 뼈를 바르고 살만 떼어내서 먹었다. 

철명이는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여전히 통독시간에 삐딱해서 졸고 딴 짓을 했다. 

옆에 같이 앉아 있던 유진이 녀석은, 휴대 전화를 들여다 보다가 
선생들이 뭐라고 하자, 자리를 뒤로 옮겨 숨어서 잤다. 

통독이 두달 이상 지나고, 통독 횟수도 신약 20독을 넘어가면서 
학생들이 속독 소리에 익숙해졌다. 
스피커에서 쏟아져 나오는 속도와, 
눈으로 성경을 따라 읽고 내용을 이해해 나가는 속도가 비슷해졌다. 

중국에서의 경험 대로라면, 이때부터는 내용들이 머리에 들어오기 때문에 
통독 시간에 조는 현상들이 점점 없어져야만 했다. 

그러나 인성이를 비롯한 말썽꾸러기들은 여전히 열심히 졸았다. 
어떤날에는 하루종일 졸았다. 

학생들이 학교 일과에 적응하자, 곧바로 일일 팀장제를 도입했다. 
매일 일과를 진행하던 두 선생들은 뒤로 물러나 감독을 하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하루씩 일과를 책임지고 진행하게 했다. 

하도 선생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 
자기들이 한번 선생을 해 보게 하는 것도 교육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어차피 이들에게 언젠가는 사역장을 이끌어갈 훈련들을 시켜야 했기에 
예정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다. 

두 선생들이 말할 때는, 절대로 죽지 않던 녀석들이 
팀장을 맡아 일과를 진행해 보더니, 학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더 화를 냈다. 

그러면서 두 선생들이 자기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천천히 깨달아갔다. 

광철이는 중국에서 통독장에 와서야 한글을 배웠고 
꾸준히 못 배우다보니 아직까지도 한글이 서툴렀다. 

성근선생이 따로 데려다가 여러 번 한글을 가르쳐 주었다. 
그 때마다 조금씩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능숙하지는 못했다. 

그에게 속독으로 진행되는 통독은 고역이었다. 
버티다 못해 지쳐버린 광철이는 뛰쳐나갔다. 
'에이씨, 나가서 알바해서 돈이나 벌어야지!' 

다시는 안 돌아올 것처럼 화를 벌컥벌컥 내고 나갔지만 
며칠이 지나면 곧 벙실벙실 웃으면서 다시 들어왔다. 

통독시간에 지독하게 졸면서 성경공부에 의욕을 보이지 않던 정철이가 
새로운 친구 진하를 데려왔다. 키가 작고 얌전하게 생긴 24살된 탈북 자매였다. 
주변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서 물었다. 
'여자친구가?' 
'통독시키려고 데리고 왔니?'

정철이가 아무리 열변을 토하면서 자기 둘은 연인 사이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다들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녀석들은 심술을 부리면서 장난 했다. 
'뭘 그리 숨기나? 맞으면 누가 잡아 먹나?'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겠나?' 

마지막에는 막 화를 내면서.. 다들 두고보자는 식으로 관심을 거두는 척 했다. 

 

진하는 교회에 처음 와 보았다. 
통독학교는 신앙이 웬만큼 있는 사람도 적응하기 쉽지 않았지만 
진하는 통독과 기도, 찬양, 암송 등 모든 일과를 열심히 따라오기 시작했다. 

진하는 말이 별로 없었다. 다른 학생들 같으면 훈련이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거나 싸우곤 나는데.. 
힘들다는 말도 안 하고, 그렇다고 좋다는 말도 안 했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앉아서 따라오기만 했다. 

그런데 진하가 들어오고 부터는, 정말 정철이의 행동이 확 달라졌다. 
기도시간에 맨날 제일 뒷자리에서 코를 골면서 자던 녀석이 
이제는 앞으로 나와 앉아서 열심히 기도했고, 
찬양 시간에도 일어나 춤을 추면서 찬양했다. 

얌전히 앉아 있는지 진하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서는 
함께 춤을 추고 찬양했다. 진하에게 잘 보이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었다. 

성근선생은 그런 정철이를 보며 재미있어 했고 
다른 녀석들은 수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찌 됐든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순교선생이 서울 태생의 이순중 전도사님과 결혼식을 올렸다. 
김광신 목사님과 주변의 많은 사람의 후원과 축복속에서 
서울 은혜교회 에서 예식을 진행했다. 

통독반 학생들과 황금종교회 청소년들이 무리로 몰려가서 축복송도 불러주고,
맛있는 음식도 잔뜩 나눠먹었다. 

순교선생은 예식 중간에 하객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까지 하면서 감사했다. 
'제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드렸고 목숨까지 드렸더니 
하나님이 제게 아내를 주시고, 평안하고 복된 가정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새신부 이순중 전도사님은 
북한선교에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결심하고 
열방빛선교회 간사로 사역하기 시작했다. 

김성근 선생이 눈에 호기심을 불처럼 달궈서 물었다. 
'도대체 순교 선생님의 어디에 그렇게 반했나요?'

이순중 전도사님이 웃으며 설명했다. 
'참 많은 분을 만났어요. 그런데 다들 정말 많은 것에 매여 살더라고요. 
스펙, 학벌, 경제력 같은 것에... 
그런데 순교선생님은 정반대 였어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도, 오히려 자유롭게 살더라고요. 
처음 봤어요. 이렇게 단순하고 열정적인 사람은..' 

성근 선생은 남학생들에게 가서 짓궂게 말했다. 
'니들도 40일 금식기도를 해라 그러면 하나님이 색시고, 집이고, 자동차고 
한 방에 다 해결해 준다!' 
남학생들이 열정적으로 화답했다. '아멘!' 


♣산 기도의 힘 

충혁이는 게임 중독이다.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앉은 자리에서 먹고 자면서 
며칠이고 몇 주고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한다. 

돈이 다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통독 학교로 찾아온다. 
통독은 건강한 사람도 쉽게 피곤을 느낄 정도로 힘든 훈련이다. 

성경 말씀이 꿀처럼 느껴지는 사람도, 하루에 6~7시간을 집중하면 
몹시 피곤하다. 상혁이가 피곤해 절어서 
토끼처럼 빨갛게 충혈 된 눈으로는 통독을 할 수 없었다. 

통독 자리에 앉으면 조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절한 것처럼 자 버린다. 
나부터 시작해서 교회 사역자들이 돌아가며 충혁을 붙들고 앉아 
상담하고 꾸짖고 달래고 나중에는 협박까지 했지만, 통하는 법이 없었다. 

안 그러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가도, 장학금을 주면 사라져 버렸다. 
내가 PC 방 까지 좇아가서 데려 왔다. 
그러면 다른 PC 방으로 가 버렸다. 

이번에는 성근선생이 애들을 구슬려 알아내서 
충혁이가 숨어 있는 PC 방에 찾아 가서 꾸짖었다. 
'정신 차려라 이놈아! 열심히 살아도 힘든 이 남한 땅에서 뭐 하는 짓이야?' 

충혁은 게임 독이 올라 빨개진 눈으로 노려보면서 말했다. 
'나 통독 하지 않을 테니까, 이제는 상관하지 말고 가시오!' 

성근 선생이 힘이 풀려서 돌아오자, 요한이가 웃었다. 
'충혁이 그냥 내버려 두세요. 며칠 지나면 또 옵니다.' 

'이제 통독 안 한다는데?' 
'돈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돈만 떨어지면 또 옵니다. 걱정 마십시오! 
돈이 있을 때는 호랑이가 달려들어도 충혁이를 끌고 오지 못합니다.' 

요한이의 말이 옳았다. 며칠이 지나 충혁은 다시 나타났다. 
너무 피곤해 입술까지 다 부르트고, 햇빛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한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중독자에게 는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힘들게 깨닫고 
다들 기다려 주기로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욕도, 꾸중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니.. 충혁은 더 괴로워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은 통독학교 산 기도 날이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관악산 중턱에 올라가 
밤 10시까지 기도하고 내려왔다. 

영등포에서 관악산까지,

학생들은 집사님들과 전도사님들의 자가용으로 이동했다. 

 

자리가 모자라면, 광철이를 자가용 뒤 트렁크에 짐짝처럼 싣고 갔다. 
그렇게 해도 자리가 모자라면, 택시를 타고갔다. 

그러다가 집사님 한 분이, 어린이집 봉고차를 화요일마다 빌려 주셨지만 
여전히 자동차는 부족했다. 

나는 산기도 때마다 학생들과 함께 
자동차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를 빼놓지 않고 했다. 

얼마 후 박병해 권사님이 12인승 스타렉스 차량 한 대를 기증했고 
성근선생이 500만 원을 헌금하여, 또 한 대의 스타렉스 차량을 사는데 보탰다. 

그렇게 차량 문제가 해결되었다. 

우리는 산기도 날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켰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치고 눈이 와도 
화요일 저녁이면 학생들을 이끌고 산으로 올라갔다. 

2013년 여름에는 전례없는 큰 태풍이 한국에 왔다. 
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어, 창문 유리가 깨질 것 같다고 
TV 등 매스컴에서는, 창문 유리에 테이프를 붙이라고 계속해서 방송했다. 

그 정도로 강한 태풍이 왔다. 모든 사람이 이 날만은 산 기도를 쉬자고 했지만 
나는 그날에도 학생들을 이끌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했다. 

그날 일심이와 몇몇 학생들은, 세차게 부는 비바람과 폭우를 피하지 않고 
맞으면서 2시간 반을 통곡하면서 기도했다. 

'하나님, 나도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요. 나 좀 만나 주세요!'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일심을 위해 중보하던 나도 통곡했다. 
'그래요. 하나님, 저런 아이들을 만나 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만나 주실 건가요? 이제 하나님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세요!'

통독반 학생들은 산기도를 좋아했다. 습하고 답답한 지하실에서 지내다가 
공기 좋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니 더욱 즐거워했다. 

산으로 올라가면, 오두막 앞에 빙 둘러서서 잠시 선교회를 위한 기도 모임을 
가지고, 대부분의 시간은 숲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개인기도를 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여기저기 숲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고함을 지르고 
찬양을 하고 방언을 하면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었다. 

온 산에 학생들의 기도 소리와 고함소리로 충만해 지면 
산 중턱 아래에 무당들이 기도하는 곳에서도, 북과 꽹과리 치는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 지고 떠들썩해졌다. 
우리는 개의치 않는데, 그들은 우리가 굉장히 신경쓰이는 모양이었다. 

이 날은 학생들이, 자기 마음속 깊은 소원을 하나님께 내보여드리는 

시간이었다. 충혁이도 산에 가서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보통 비가 오면, 비를 피해 산속에 있는 정자 밑에 들어가서 기도했지만 
충혁이는 일부러 정자 밖으로 나갔다. 남들이 보지 않는 숲 속으로 들어가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기도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온 몸과 얼굴을 적셔가면서 하나님을 향해 기도했다. 
충혁이는 헤어날 수없는 게임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열심히 통독해서, 신학교에도 가고 싶고,   
정상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추운 겨울 날에 산기도는 더욱 즐거웠다. 
다들 겨울점퍼 안에 핫팩을 덕지덕지 붙이고 
담요를 뒤집어쓰고 숲속으로 뿔뿔이 흩어져 들어가 기도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는, 근처 오두막으로 달려 들어왔다. 
오두막 안에는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이 
운동 하다가 들어와 따뜻하게 쉬려고 만들어 놓은 난로가 있었다. 

난로 옆에는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이 
함부로 난로에 불을 피워 놓고 책임지지 않고 가 버리는 것을 막으려고 
난로 뚜껑을 쇠사슬로 꽁꽁 비틀어 매놓았다. 

공구가 없으면 절대로 쇠사슬을 풀 수 없었지만 
학생들은 도구도 없이 맨손으로 그 강한 쇠줄을 비틀어 풀었다. 
따뜻한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난롯가에 둘러앉아 
학생들은 웃고 떠들고 장난치면서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끝나고 내려갈 때면, 다시 원래대로 쇠사슬을 비틀어 매어놓고 내려갔다. 

남학생들이 늦게 내려오면, 여학생들도 맨손으로 쇠사슬을 비틀어 풀어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어느 날 올라와 보니, 난로 뚜껑에 열쇠가 꽁꽁 잠겨 있었다. 
화요일 밤만 지나면 계속해서 장작들이 없어지자 
동호회원들이 누군가 밤에 올라와서 불을 피우다 가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쇠사슬이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뚜껑의 열쇠구멍을 만들어 놓고 
큼직한 자물쇠로 잠가 버린 것이다. 
나는 잠긴 자물쇠를 바라보며 장작불 피우는 것을 단념 했지만 
학생들은 전혀 상심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오늘은 자물쇠가 잠겨 있네? 
주변을 찾아 봐, 어딘가에 열쇠가 있을 거야!' 

남학생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켜들고, 오두막 여기저기를 들추더니 
1분도 되지 않아 지붕 밑 은밀한 구멍 속에 있는 열쇠를 찾아냈다. 

내가 놀라서 물었다. '여기 열쇠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니?' 
다들 웃으며 말했다. '목사님, 우리가 누굽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올라올 때마다 열쇠를 숨겨두는 위치가 바뀌었지만 
마치 고양이가 생선 냄새를 맡고 따라 가는 것처럼 
아이들은 얼른 열쇠를 찾아내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곱게 자물쇠를 다시 채워놓고 내려 갔다. 
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동호회 회장님에게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가 쓰는 장작만큼 사례를 하면 안되겠느냐고 요청했다. 
회장님이 그러지 말고 그냥 마음대로 쓰라고 하셨다. 

 

겨울철 산기도는, 고구마와 난로 때문에 늘 따뜻했고 즐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남학생들이 심각한 얼굴로 여학생들에게 말했다. 
'충혁이가 갑자기 이상해' 
여학생들은 장난으로 알고 무시하고, 잘 익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었다. 

남학생들이 정색을 하고 다시 말했다. 
'충혁이가 정말 이상해! (영적으로 공격받은 상황)  
아까부터 자꾸만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른대...
근데 그 소리 난다는 곳에는 아무도 없어!' 

수다 떨던 여학생들에 입이 뚝 다물어졌다. 
'그 소리를 충혁이만 들었어?' 
'아니, 옆에 있던 영민이도 들었어. 
영민이는 무서워서 도망갔는데, 충혁이는 그 소리에 끌려 갔어!' 

'어디로 갔는데?' 
'몰라!' 
'충혁이를 찾아 봐야 하는 거 아냐?' 

산에서 내려 갈 시간이 되어 모였지만, 충혁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학생들과 전도사들이 무리를 지어, 충혁이가 있었던 쪽으로 좇아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충혁이를 위해 열심히 중보기도 하기 시작했다. 
모두 목청껏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충혁이가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어둠속에서 충혁이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질문들이 쏟아졌다. 
'괜찮아? 어디 갔다 왔어? 누가 너를 찾아서 부르니?' 

충혁이는 자기 이름을 부르는 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충혁이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 소리에 빨려들 듯이 끌려갔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지치지도 않고 이 산 저 산을 뛰어다니다가 
결국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아찔한 벼랑 끝이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오두막을 향해 달려 내려왔다. 
그를 향한 기도가 조금만 늦었다면, 충혁이는 벼랑에서 떨어졌을 것 같았다. 

갑자기 민혜가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온몸이 덜덜 떨면서 울기 시작했다. 
'무서워 무서워!' 
여전도사들과 집사님들이 품에 꽉 안아 주었지만, 민혜는 계속 떨면서 울었다. 
학생들이 말씀은 많이 외우고 알고 있었지만 
정작 영적 싸움이 실제로 펼쳐지자 그저 무력했다. 

나는 다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열심히 악한 영을 쫓는 대적 기도를 했다. 
민혜는 통독학교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두려움에 기가 죽어 다녔다. 

사실 민혜는 마음이 여렸고 섬세했다. 
그것을 숨기고 싶어서, 일부러 강한 척 하고 다닐 뿐이었다. 

북한에서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근선생과 순교선생은, '매일 신약성경 일독'이라는 과제를 
어김없이 밀고 나갔다. 계획대로라면 1년에 신약성경 1백독, 
구약성경 20독을 하게 된다. 

이 정도의 다독을 하게 되면, 누구라도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틀과 이해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영적으로 무력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기도 시간을 더 늘리기로 했다. 매일 3시간씩 하던 기도시간을 
5시간으로 늘리기로 했다. 

'정작 기도에 빠져들면, 5분 이든 5 시간이든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이제부터 5시간 기도를 5분처럼 느끼게 해 달라고 기도 하세요!' 

내가 광고를 하자, 반발이 심할 줄 알았던 학생들이 투덜거리면서도 따라왔다. 
매일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하던 기도시간이, 12시까지로 늘어났다. 
저녁 7시가 되면, 통독하던 책상과 걸상들을 다 뒤로 밀어놓고 
긴 방바닥에 방석 들을 줄을 맞춰 놨다. 

불을 끄면 지하실이라 정말 깜깜했다. 
강대상 십자가에서 나오는 붉은 빛만이 희미했다. 
기도 음악을 귀가 먹먹 울릴 정도로 크게 틀어 놨다. 

아무런 기도 제목도 주지 않았다. 그저 어둠 속에서 부르짖으면서 
5시간 동안 각자 기도해야 한다. 쉬운 훈련이 아니었다. 

신앙생활을 지식적으로 머리로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이었지만 
정말 성령 하나님과 교감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역자들과 성도님들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 큰소리로 방언을 하면서 
기도모임을 이끌고 나갔다. 

 

그들 옆에는 언제나 순교선생이 박자에 맞춰서 특이한 춤을 추면서 기도했다. 
찬양에 박자에 맞추어 성냥개비처럼 가늘고 긴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고 
두 손은 기분에 따라 앞을 막 때리기도 하고, 좌우로 흔들거리며 춤을 추었다. 
다들 이 희한한 춤을 '순교 댄스'라고 불렀다. 

착한 모범생 에스더, 유정이, 예지, 요한이가 
그 뒷줄에 앉아 열심히 방언을 하면서 따라갔다. 

나머지 학생들은 1~2시간 정도 기도하다가는, 뒤쪽으로 가서 방석을 깔아 놓고 
누워 잤다. 어떤 날에는 다같이 순교선생을 흉내내면서 '순교댄스'를 추었다. 
그럴 때면 꼭 나이트클럽에 온 것 같았다. 

앞에서는 깔깔거리고 웃고 춤을 추고 
스피커에서는 머리가 퉁퉁 올리는 큰 음악이 터져 나와도 
뒤에 누운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잤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통제하지 않았다. 그저 내버려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저 말 안 듣는 학생들을 만져주셔서 
기도하는 사람들로 바꿔 주시기를 기다렸다. 

성도들과 전도사들이 힘들어 했다. 
'목사님, 저들을 어떻게 좀 혼을 내서라도, 기도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기다려 줍시다.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통제 하는 것보다 기다려 주는 것이 훨씬 더 힘들었다. 

통독반 학생들은 문제가 많았다. 
다들 어려서 부모를 떠나 나 홀로 살다보니 
어느것 하나 바르게 습관 되고 다듬어진 것이 없었다. 

다들 제멋대로 였고, 내키는 대로 행동했다. 
아침 기상 시간이 되면, 두 선생들이 학생들을 깨우느라 늘 전쟁이었다. 

'일어나세요. 시간이 되었어요!'
말소리와 동시에 천장에 수십 개 형광등 불이 켜졌다. 

지난 밤 격투라도 벌인 것처럼, 여기저기 널부러져 자던 남학생들은 
눈부신 빛을 피해 돌아누우며, 두들겨 맞은 강아지들처럼 낑낑 걸었다. 

성근선생은 잠자는 남학생들을 철썩 철썩 때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여학생들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남자선생들이라 여학생들의 방에 들어갈 수 없어 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질렀다. 
'일어나세요. 시간이 됐어요!'

그리고 한참 후 남학생들과 실랑이를 하다가 와보면 
여학생들의 방은 불도 켜지지 않고 있었다. 

'일어들 나라고! 유정아 일어나, 민혜야 일어나! 
안 일어나면 문 열고 들어간다!'

두 선생들이 여학생들을 깨울 때면, 늘 유정이의 이름부터 불렀다. 
유정이가 제일 온순하기도 하지만, 유별나게 잠이 많아 깨우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늘 유정이의 이름은, 꿀 잠을 깨우는 알람 소리처럼 
여자들 방으로 날아 들어갔다. 

'일어나요. 지금 일어난다고요'
유정이는 몸부림을 치면서 고함을 질러 놓고는,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냥 자버렸다. 

조금 있다가 또 두드렸다. 
'유정아, 빨리 일어나! 옆에 여자애들도 빨리 다 깨워서 나와!' 

방 안에서 성난 외침이 도로 튀어 나왔다. 
'아 정말, 아 왜 나만 가지고 그래요? 쟤도 자고 있잖아요?'
그렇게 고함을 질러 놓고는 또 잤다. 

다들 혈기도 많고 잠도 많은 아이들이라, 아침에 일어나기 참 힘들어 했다. 
남자들은 빨리 일어나 이불들을 거두고, 책걸상 등을 펴야 했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민철이는 이불을 들고 사무실로 도망가, 그대로 엎어져 자 버렸다. 
정철이와 유진이 녀석은 항상 여자들 방으로 쳐들어가 뻗어 잤다. 
거기로 도망가야 선생들이 쫓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침 통독 시작할 때까지 그대로 뻗어 잤다. 
통독이 시작되면 그제야 일어나 씻고 샤워하고 나왔다. 

두 녀석은 여학생들이 막 화를 내면 
오히려 자기들이 무서운 얼굴을 해대고 으르렁거렸다. 

학생들은 배가 고프면 식당을 뒤져서 이것저것 꺼내먹고 그대로 도망가버렸다. 
여자들이고 남자들이고, 자기가 먹은 것을 설겆이 해야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항상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빵도 한 입만 뚝 베어 먹고 여기저기 버려 놓았고 
비싼 사과도 대충 한두입 먹다가는 팽개쳐 버렸다. 

권사님 들과 집사님들이 쉴새없이 설거지하고 방을 정리하고 해도 
한두 시간이 지나면 언제 치웠나 할 정도로, 다시 어질러져 있었다. 

끝이 없었다. 빨래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한 곳에 산처럼 쌓아놓기만 했다. 
학생들이 너무 사납고 공격적이라 사모(아내)도 그들 눈치를 봐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너무 무거워 혼자 들 수 없으면 
눈치를 보면서 부탁해도 되는지 한참씩 궁리하면서 사람을 골라야 했다. 

지쳐버린 사역자들도 사모에게 하소연했다. 
'사모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뒤따라 다니면서 닦아줘서는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네요..' 

같은 탈북민 출신인 미순 자매도 오래 참다가 흥분해서 말했다. 
'사모님, 저따위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아 이거는 같은 북한사람이 봐도 말도 안됩니다.' 

사모가 그들을 달랬다. 아직은 우리가 가르칠 때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받아 주고 수용해 주고 그럽시다. 

다들 '이럴 수가 있냐고.. 가르쳐야 한다'고 분분했지만 
나는 오히려 애들과 같이 손바닥을 맞추었다. *하이파이브

여름에 에어컨을 빵빵 틀어 놓고, 춥다고 방문을 닫아 놓고 자는 것을 보고 
전도사들이 기가 막혀 한 마디 하려고 하는 것을 막았다. 
'괜찮아 괜찮아 내버려 둬!' 

애들 보고는 그랬다. '얘들아 에어컨 많이 틀어서 춥지? 
나는 보일러를 틀면서 전도사들에게 말했다. 

'우리 교회는 장로님이 있으면 힘들 거야. 
장로님이 있으면 이런 꼴을 어떻게 봐 줄 거야?'

전도사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화를 냈다. 
'아니 여기가 그래도 학교인데, 기본은 가르쳐야 하지 않습니까?' 
'내버려 둬! 네가 가르친다고 해봐야 방귀나 뀔 놈들 같아? 
잔소리 해서 말을 들을 놈들 같으면 내가 벌써 했지!' 

교회 집사님이 세탁실에 들어갔다가 어이가 없어 하며 나왔다. 
유진이가 대형 드럼 세탁기 안에, 달랑 자기 옷 3개를 집어넣고 돌리고 있었다. 
'아이고 사모님, 이거 한번 보세요.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사모님이 애들한테 말씀 좀 해 보세요!'

사모님이 부르자, 유진이는 빨간 뿔이 두 개 달린 모자를 쓰고 달려왔다.
사모는 유진이를 불러 놓고, 성난 고양이 어루만지며 달래듯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진아, 이런 건 물이랑 전기랑 얼마나 낭비가 되니? 
이 세탁기는 전기 많이 먹는 거 너 알지? 
여기 있는 애들 다 이런 식으로 빨래를 하면, 전기세를 어떻게 감당하겠니? 
유진아 어차피 세탁기 돌리는 거, 네 것만 돌리지 말고 
다른 애들 거하고 같이 가득 넣어서 돌리면 어떨까?' 

사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저놈이 막 들이받으면 어쩌나 했더니, 오늘은 안 하네!' 

며칠로 유진이가 통독실에 실신해서 쓰러져 있었다. 
입에서 거품이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있었고 
그 옆에는 수십 개의 약봉투들이 흩어져 있었다. 

학생들이 모여들어 떠들어댔다. '왜 이래? 이게 무슨 약이야?' 
앰뷸런스가 달려오고, 병원에서는 다급히 유진이 위안에 들어간 약을 꺼내려고 
호스를 밀어넣기 시작했다. 유진이 거품을 토하면서 호스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날 내버려 둬! 나 살고 싶지 않아!' 
성근선생이 그의 팔을 꼼짝 못 하게 붙잡고서야 겨우 호스를 들이밀고 
약물을 빼낼 수 있었다. 

고통이 가라앉고 마음도 진정된 후, 성근선생이 달래면서 물었다. 
'죽고 싶으면 그냥 북한에서 굶어서 죽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죽겠다고 그러니?' 

유진이는 공허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선생님, 한국에 오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한국에 오면 모든 고생이 끝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고, 앞길이 암담하고.. 
이 지겨운 삶을 언제까지 왜 계속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