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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07편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

LNCK 2023. 3. 3. 11:27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    시107편         2015년 설교녹취, 정리
[돌파시리즈 #2]

◑도입

"부흥과 확장"이란 주제에 대해서 함께 기도하며 시리즈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여호와의 약속이 실체가 되는 것, 
이것을 놓고 우리가 기도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것이 '돌파' 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가운데 하나님께서 
또 부흥과 확장에 대한 것들을 약속하셔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삶의 돌파가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리고 돌파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 돌파가 일어나는 순간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셨던 것들이 
우리 삶가운데 실제로 경험되어지는 그런 실체들이 되고 
그 실체들을 경험하는 것을 넘어섰을 때 
이 약속들이 계속 하나님의 약속으로 부흥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시107편을 통해서 저희가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어떤 돌파들을 이루시는지 살펴보면서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2015년에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말씀들이
단순한 약속으로 끝나지 않고, 단순한 어떤 표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실제로 경험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기대하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신 것들이 
그냥 계속 약속으로만 계속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니고 
실제로 우리 삶 가운데 경험되어지는, 실체가 되는 그 역사가 있게 되기를 
여러분 기대하시고, 또 그것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107편은 "하나님의 돌파"에 대해서 감사하는 찬양시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8, 15, 21, 31절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8, 15, 21, 31절이 똑같이 이렇게 후렴구처럼 반복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래서 본문 시107편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찬양하는' 찬양시입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여호와께서 우리 인생가운데 어떤 기적들을 행하시는지 
그 기적이 바로 돌파인데 
어떤 돌파들을 행하시는지에 대해서 
3개의 에피소드를 쭉 기록하고 입니다. (1~8, 9~21, 22~31절)

각각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로 마무리 짓죠. 

그렇게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내 인생가운데도 본문과 똑같이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고 본질이에요. 

 

만약에 여호와께서 우리 인생가운데 아무런 기적도 행하실 수 없는 분이시라면 
그것은 종교이고, 이론이고, 철학일 뿐이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거에요.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말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론과 종교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는데 그것은 뭐냐하면 
우리 인생가운데 기적을 행하신다는 거에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뚫어내고 이루어 내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한다는 거에요. 
이것이 본문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오늘날 동일하게 우리 인생가운데도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고 
기적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찬양케 하실 분이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실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세 가지 에피소드를 살펴보면서 
우리 인생가운데도 이런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서 돌파를 이루시는지, 
그리고 돌파를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그리고 그 돌파의 결과로, 하나님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시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삶에 어떤 지침을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1. 첫번째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은 
"광야에서 인도하심"입니다.        1~9절

지금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헤매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그렇죠. 살다가 보면 방황할 때가 있는 거에요.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를 때가 있다는 거죠. 
이 사막(광야)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이 항상 어떤 길이 보이는 게 아니죠.
삶을 살다 보면 마치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지금까지 쭉 걸어 오긴 했는데, 뒤를 돌아봐도 길이 안 보이는 것 같고 
오른쪽으로 가도 길이 없는 것 같고, 왼쪽으로 봐도 길이 없는 것 같아요. 

길이 전혀 안 보이는 때.. 이게 사막이죠. 여러분 사막은요 길이 안보입니다. 
왜냐하면 원래 길이 없어요. 사막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사막은 원래 길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 길이라고 하는 게, 이렇게 한번 길을 뚫어놔도 
하루가 지나면 길이 모래로 싹 덮혀서 없어집니다. 

그래서 사막은 원래 길이 없는 곳이에요. 
'사막에서 길이 안 보인다' 이거는 너무 당연한 얘기인 게 
길이 있는데 안 보이는 게 아니고, 아예 길이 없는 거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사막같은 때가 있다는 거에요. 
길이 안 보이는 게 아니고, 길이 아예 없는 거예요. 

지금 아무리 사방을 살펴 봐도. 
이리로 가도 막혀있는 것 같고, 저리로 가도 길이 아닌 것 같고, 
뒤로 가도 길이 없는 것 같고, 어디를 봐도 길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시즌을 우리가 지나갈 때가 있다는 거에요.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분 살다 보면 이런 때가 반드시 있습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자 이런 상황일 때, 이게 첫 번째 에피소드의 시작입니다. 

▲이런 상황에는, 즉 사막 또는 광야의 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1) 첫째 특징은 뭐냐면 앞서 얘기했듯이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4
길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길이 없는 거예요. 

길이 없기 때문에 소망이 없고 불안합니다. 
길이 보이면.. 소망이 있지요. 

지금은 좀 힘들어도 그냥 이 길로 쭉 따라가면 저기까지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이 있는데 
길이 안 보이고 없으면 소망이 없어요. 

그런데 소망이 없게 되면 그 다음에 뭐가 생겨요? 불안해요. 
'이대로 계속 가다가 내 인생이 파괴되는 거 아닐까?' 소망이 없고 불안합니다. 

2) 또한 이 시즌의 특징으로 성경 본문에서 뭐라 그러냐면 
거주할 성읍이 없대요.   :4

내가 어딘가 좀 안착하고 안정감을 누리고 
거기서 쭉 오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뭐 그런 게 필요한데 

'거주할 곳이 없다'는 거예요. 
어디 마음 붙일 데도 없고, 어디 가서 머물 곳도 없고.. 거주할 성읍이 없는 거죠.
 그래서 불안하고 소망이 없다는 거예요. 

3) 셋째, 그러다 보니까 이 시즌의 특징은 "목이 마르고 피곤하다"는거에요.  :5
왜? 거주할 곳이 없으니까, 
왜? 길이 없으니까 

그래서 이 시즌의 특징은 목이 마르고 피곤하다는 거에요. 

사막에선 당연한 일입니다. 인생에는 이런 사막의 시즌이 있어요.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은..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는.. 
그래서 정말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또 안정적으로 거주할 곳도 없는 이런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시즌에는 당연한 얘기지만, 열매가 없는 시즌이에요. 
그래서 모든 것이 막혀 있는 것 같고 
이렇게 해도 열매가 안 나오고, 저렇게 해도 열매가 안 나오고 
황량한.. 
소망도 잘 안보이고, 비전도 멀어져가는 것 같고, 
그렇다고 풍성한 열매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영혼도 비쩍 매말라가는데 
그런 시즌(시기)들이 있다는 거에요. 

빠져나갈 길을 알면 빠져나갔겠지.. 광야에서 계속 머물러 있었겠어요?
길이 안 보이니까 광야에 계속 머물러 있는 거지요.
하여간 살다보면 이런 시즌이 있다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런 시즌에는 우리가 어떻게 돌파를 이루어야 될까요?

▲1. 이 광야의 시기에 돌파를 이루려면
"원망을 멈춰야" 됩니다.

(본문에 '원망을 멈추라'고 안 나오지만, 행간에 나오고, 민수기에 나오죠)

이 광야와 사막에 들어갔을 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게 뭐냐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하는 거에요. 

'아니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나에게 왜 그러십니까?' 원망하기 시작하죠.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어요. 광야에 딱 들어갔을 때 
끊임없이 했던 게 뭐냐면 원망이었어요.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하고 
고기가 없다고 원망하고 
애굽에서 먹던 반찬과 채소가 없다고 원망하죠.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다 망했어요. 다 망했습니다. 
광야에서 여러분 망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원망하십시오. 

원망은 광야에서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원망한다고, 갑자기 광야에 길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없던 물이 생기겠어요? 사막에서 원망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사막에서 원망하는 건 그냥 망하는 길입니다. 

인생의 사막과 광야도 마찬가지에요. 
원망을 멈추고, 그리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가셔야 돼요. 
그래야 돌파가 일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광야에 시즌에는,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기 원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가야 돼요. 

여러분 광야에서 돌파를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광야에서 돌파되는 걸 보기 원하십니까? 

아니, 광야에서 뭘 감사하라는 겁니까? 감사의 제목이라도 있습니까?
네, 출애굽 했잖아요! 홍해를 건넜잖아요.
그리고 날마다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잖아요... 세어보면 감사할 게 많습니다.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세요. 이것이 광야를 돌파하는 열쇠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광야를 주신 것은 
우리를 벌주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에요. 

그곳에서 우리 믿음의 뿌리를 깊게 하기 위해서 주신 거에요. 
이 광야라고 하는 곳은, 하나님 외에는 바라볼 수 없는 곳이거든요. 
아무것도 소망이 없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로 광야를 지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원망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믿음이 안 생겨요. 

▲2. 광야에서는 "부르짖어야" 합니다.  :6

그러면 원망하는 대신 무엇을 해야 됩니까 
6절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근심중에 부르짖라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원망해봐야 소용없고요. 벗어날 길을 아무리 연구해봐야 소용없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광야가운데 있을 때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왜냐하면 여러분 사막에서는 길을 찾으려고 하면.. 원래 길이 없다니까요. 

그럴 때는 길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헛수고고 
원망하는 것도 헛수고고 
그때는 뭘 해야 된다는 거에요? 여호와께 근심중에 부르짖으라는 거에요. :6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을 바라보고 부르짖으라는 거에요. 

이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경우 인생의 광야와 사막에서 돌파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르짖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아닙니까? 

많은 경우 인생의 사막과 광야가운데 들어가면
사람들이 원망하게 바빠서, 자기에게 피해를 준 다른 사람들 욕하기 바빠서
부르짖지 않아요. 그래서 돌파를 경험하지 못하는 거예요. 

돌파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
부르짖어 기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이 6절 말씀이, 광야를 탈출하는 첫번째 열쇠인 거죠.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신다는 거에요.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가 부르짖을 때 여호와께서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시는데 
어떤 기적이냐 하면 
"고통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는 거에요. 

▲부르짖을 때,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십니다.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사막에는 분명히 길이 없어요. 
그런데 그 사막의 길을 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에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막에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사43:19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 할 때 
없던 길도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우리가 안주하고 거주할 수 있는 곳까지 인도하신다는 거에요. 7

이것이 돌파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런 돌파가 일어나기를 기대한다.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인생에 기적을 행하시는데 
우리의 고통가운데서 우리를 건지시고 
길이 없어 보이는 가운데 길을 내시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 같은 일들 가운데 돌파를 이루시고 
그래서 우리를 거주할 성읍으로 인도하시는 주님... 

그리고 우리가 부르짖을 때 또 뭐 하신데요? 
성읍으로 인도하실 뿐만이 아니라 
근심 대신에, 주린 영혼에게 만족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거에요.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내가 부르짖을 때, 그 주린 영혼가운데 
만족함과 좋은 것들과 풍성함으로 가득차게 채워주신다는 거에요. 

혹시 이 가운데 사막을 지나기 때문에 
영혼이 메말라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영혼이 메말라 있는 사람들은 금요일 예배에 안 나오시겠죠...


◑2. 두 번째 에피소드는,                  10~22절
하나님이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을 경험하는 때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았거나,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을 당하는 것 같은 때에요.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우리 인생에 또 이런 때가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왜 이런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됩니까? 
사망과 곤고의 그늘에 앉게 되는 상황! 
또 쇠사슬에 매여 있는 상황!

뭔가 내가 너무나 하기 싫은데 속박돼 있고, 자유를 뺏기고 눌려있고, 
인생이 어디에 이렇게 제한되어 있고, 갇혀 있는.. 
살다보면 이런 상황이 온다는 거죠.

왜 이런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됐냐는 거예요. 
이런 사망 가운데 처하게 된 이유가 뭘까요?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에' 라는 거죠.
17 '죄악의 길을 따르고 악을 범했기 때문에' .. 고난이 왔다는 거에요. 

인생의 모든 고통과, 인생의 모든 광야나 사막이 
항상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의인이 받는 핍박도 있어요. 
그렇지만 모든 죄가, 사망과 고통을 만들어내는 건 사실이에요. 

모든 죄는요, 우리 인생가운데 사망의 그늘, 어둠을 만들어 내고요. 
우리 인생가운데 속박을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는 속박을 만들어 낸다는 거예요. 10

그래서 이 본문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했을 때 
겪게 되는 그런 상황들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들의 특징이 몇 가지 있어요. 

1) 묶이고 갇힌다는 거예요. 10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그래서 여러분,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무시하잖아요?
그러면 반드시 따라오는 결과가 있는데 
그것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게 되고요. 
곤고와 쇠사슬에 묶임을 당하게 되는 거에요. 

여기서 '흑암'이 상징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이것은 불행, 파멸, 무지, 슬픔, 불분명 이런 거에요. 

하나님을 무시하고 말씀을 거역했을 때 
이런 것들이 우리 삶가운데 이렇게 그늘을 드리운다는 거에요. 

내 삶 위를 뭐가 이렇게 덥냐 하면 
불행과, 파멸과, 무지와, 슬픔과, 악함과, 모호하고, 불분명한 게 
내 위를 마치 천막처럼 덮는다는 거예요.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거죠.

2) 하나님과 그 말씀을 무시하면.. '사망'에 갇혀요.  10

물론 육신의 몸에도 죽음이 찾아오지만 
우리 영이 먼저 죽어요.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게 뭐냐 하면 
'알고서도 안하는 거' 있잖아요. 

분명히 성경에 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는데 
그 계명을 알면서도.. 별 생각 안하고 그냥 범하는 거예요.

'이 정도야 뭐.. 이 정도야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건데.. 이 정도로 별일 있겠어?' 
이게 뭐냐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 영이 점점 죽어간다는 거예요. 

우리 영이 죽어가면서도, 세상에서는 일이 잘 풀릴 때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회개시켜 천국에 데려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 해도, 사방에 길이 막히고, 사망의 그늘 아래 거하게 되고...
자기 영혼이 죽어서.. 늘 메마르고 답답한 삶을 살게 되는 거죠.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우리 영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말씀을 읽어도 우리 영이 반응하지 않고 
예배를 나와도 우리 영이 멍하고 
하나님께 대한 감동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영이 죽어버린다는 거예요.

이게 뭐에요?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무시할 때 따라 오는 결과에요. 
이게 '사망'이죠.

3) 셋째는 곤고에 매이고   :10

곤고.. 히브리어로 '오니'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상태로 받고 있던 고통이 '오니'입니다.

내가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무시하면 
'오니'의 상태가 된다는 거에요. 
뭔가의 노예상태로 갇혀서 고통받는 상태가 된다는 거에요. 

4) 넷째 '쇠사슬에 매임', 즉  뭔가에 속박된다는 거에요.  :10
인생이 묶인다는 거에요. 

기억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을 무시하고 말씀을 거역할 때 그것은 속박을 낳습니다. 

불행, 파멸, 죄, 슬픔, 모함, 영적 죽음.. 이런 것들에 갇히고 메이게 되고 
빠져나가고 싶어서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인생이 얽히고설키고 꼬여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해답이 없습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정말 이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죄가 우리 인생가운데 들어오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거역하면..
그러면 인생이 진짜 꼬여요. 꼬이고 얽혀서
정말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뭘 해도 안 돼요. 사업을 해도 사방으로 갇혀있어요. 
되는 듯 하다 안 되고.. 되는 듯 하다가 안 되고.. 
계속 이것이 반복된다면, 우리가 한번쯤 스스로 질문해봐야 돼요. 
'이것이 영적인 이유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에요. 

사역에서도 계속 막히고.. 되는 듯 하다가 막히고.. 
그렇다면 여러분 그 원인이 영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되는데 '내가 혹시 말씀을 거역한 것은 없는가?, 
내가 혹시 여호와를 무시한 적은 없는가?' 여기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돼요. 
그래야 돌파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냥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그래서 돌파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이 매여 있고 갇혀 있는 상황은.. 영적인 뿌리가 있다는 거에요. 
그걸 먼저 해결해야.. 그 다음에 돌파가 일어나는 거죠.

사람이 사업을 하든지, 사역을 하든지.. 하는 족족 실패하고 망하는..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코로니 같은) 시대를 탓하기도 하고,
또 자기에게 불이익을 준 원수들을 원망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진짜 원인을 파고들어 가 보면, 남을 원망할 일이 아니에요. 
자기가 선택한 일(죄)의 결과라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회개하고 출발해야, 돌파가 일어나는 거예요.

'나를 묶고 있는 속박은 끊어질 지어다!, 
내 앞 길을 막고 있는 장벽은 무너질 지어다!'
그걸 아무리 선포하고 기도해도, 

그 속박과 장벽이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를 무시했기 때문에' 
찾아온 속박과 장벽이라면.. 회개를 통과해야 돌파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 회개가 주님 앞에 받아들여져야 되요. 죄사함의 확신이 올 때까지
계속 회개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제가 단언하건데,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하고 
아무리 목에서 피가 나도록 부르짖어도 
'회개의 돌파'가 일어나기 전에는 
여러분의 '상황의 돌파'는 안 일어나요. 이해가 되십니까?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큰 두 번째 상황에서도 돌파는.. 부르짖을 때 일어난다는 거예요. :13
회개하며 부르짖는 거요.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시는데,
어떤 기적이냐면 
흑암과 사망의 그물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고
우리를 얽어맨 줄을 끊으시는 기적을 이루신다는 거죠.

우리를 가뒀던 속박의 문을 여시고 
우리는 묶였던 묶임에서 자유케 하신다는 거예요. 
중독이 끊어지고... 
그런 환경적인 갇힘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회개의 부르짖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거죠.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놋문과 쇠빗장은 우리 힘으로 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행해주셔야만 풀려나는 거예요.

이거는 여러분, 우리가 노력해봐야 열 수 있는 문이 아니고 
우리가 노력해봐야 끊을 수 있는 사슬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즉 인생은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이 상황 가운데 내가 처해있다면, 그것은 영적인 것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회개하라는 거예요. 
그 때 여호와께서 놋문을 깨시고, 쇠빗장을 꺾으신다는 거예요. 
우리의 삶 가운데 놋문이 깨지고, 죄빗장이 꺾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게 뭐냐면 돌파예요. 
그리고 이 돌파는 하나님께만 속한 거예요. 

우리 하나님은 돌파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여러분, 부르짖어야 돼요. 
내가 회개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돌파를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성도들과 신앙상담 할 때, 제일 답답한 게 이거예요.
그분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막 몸부림치고 너무너무 힘들어하는데,
제가 딱 보면 '이거는 회개해야만 돌파가 일어날 텐데...' 이게 보이는데,
그분은, 다른 수단은 다 강구하지만, 회개는 안 하더라고요...

자기가 회개는 안 하고, 계속 하나님만 원망하는 거예요.
제가 보니까, 문제는 자기 속에 있는데, 하나님 원망하고, 사람 탓하고 있어요...

여러분, 돌파하고 회개는 같이 갑니다.
회개가 안 되어졌는데 
돌파 한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니고, 믿음으로 선포하고, 마귀 쫓아내고... 
그러지 마세요. 자기 힘만 빼는 겁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에피소드는  "광풍을 만날 때'              22~32

세 번째로 하나님이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실 때는 
바다에 배를 띄우고 큰 물에서 일하던 자들이 광풍을 만날 때입니다.

여기서 상징하는 것들은 명확합니다. 
바다는.. 세상을 상징하는 거고요. 
배에서 하는 일은.. 일터를 상징하는 거지요. 삶의 현장! 

뭐냐면, 세상을 살다보면, 직장에서 또는 일터에서 가정에서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광풍을 만날 때가 있다는 거죠.

질병의 광풍을 만나기도 하고, 
재정적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자녀문제, 교회 위기, 예상치 못했던 난관, 예상치 못했던 역경, 
예상치 못한 환경의 변화... 이런 광풍들을 만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까, 메르스 때문에 서울에 있는 병원이 문닫았더라고요.
서울 중구에 있는 병원인데, 메르스 환자가 한번 지나간 거 때문에 
손님이 아무도 안 와 가지고.. 재정난 때문에 문 닫았다고... 
이거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병원 관계자의 잘못도 아니고.. 열심히 일하고 있었던 것 뿐인데 
근데 어느 날 재수 없는 광풍을 만난 거지요. 광풍이 확 불고 지나가니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면서 
인생이 망하게 되는 이런 일들이 있다는 거지요.   *2015년 설교

이런 광풍은, 꼭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냥 일종의 천재지변 같은 거죠.

왜 이런 광풍이 내 인생에 올까요? 
이유는 모른다는 거예요. 
(두 번째 광풍은 자기 죄로 인해 오는 광풍이고, 
세 번째는 이유를 모르는 광풍입니다.)

욥기를 제가 여러 번 정독해서 읽었는데, 
욥의 고난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안 나와요.

욥이 고난을 통해 정금처럼 나왔다.. 이런 건 나오는데, 
왜 욥이 고난을 당했는지.. 그 이유는 안 나와요.

26 그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이 광풍이 불었는데, 여호와께서 광풍을 일으키셨는데,
왜 일으켰다는 설명은 안 나와요.
이렇게 성경에는 '의인이 받는 고난'이 나옵니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의인이 그냥 재수 없이 받는 고난'들이 있죠.

△중세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수도사들이 많이 죽었대요. 
다 도망하고 환자들을 돌볼 사람들이 없으니까, 수도사들이 그들을 돌보다가
수도사들이 아주 많이 죽었대요. 

그래서 중세에 복음이 막 활발하게 퍼져 나가다가 
이게 한풀 꺾이게 되는 계기가 뭐냐면 
수도사들이 많이 죽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어떤 분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그런 섭리가 이해 안 됩니다. 
수도사들이 선한 일을 하면.. 하나님이 살려 주셔야 되고,
또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라도.. 그들을 살려 주셨어야 되었는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섭리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하는 거죠. 설명이 안 되죠.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신비에 속하는 영역이라서
그건 그냥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꼬치꼬치 설명할 수는 없다는 거죠.
이같이 바다에 어느 날 갑자기 광풍이 닥칠 수 있다는 겁니다.
의인이든, 악인이든 광풍을 만날 수 있다는 거죠.
매일 그렇지는 않지만, 광풍이 치는 날이 있다는 거죠.

그 특징은 26~27절에 이렇게 나와요.

광풍이 치면.. 상황이 컨트롤이 안 된다는 거죠.
'하늘로 솟구쳤다가 깊은 곳으로 내려가나니 
그 위험 때문에 그들의 영혼이 녹는도다' :26

이때는 내 인생이 내동댕이 쳐 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게 되죠.
왜냐면 내 인생이 통제가 안 되니까!

'영혼이 녹는대요' 26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광풍을 대적할 의지를 상실하게 되는 거예요.

27 '그들이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거리니 
그들의 모든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는도다'

지각이 혼돈 속에 빠지니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죠.
광풍 속에 들어가면, 그렇게 정신을 잃고, 혼이 빠져나가 버리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잘못하면 믿음 좋았던 사람조차도 
광풍을 맞게 되면 믿음에서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돌파해야 됩니까? 

두 번째 상황 돌파의 키워드가 '회개' 였다면 
세 번째 상황 돌파의 키워드는 '믿음' 이에요.

하나님은 한결같은 분이시라는 믿음! 
내가 지금 보고 듣는 것과 관계없이 
하나님은 최선의 것을 내게 주실 거라고 하는 믿음!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 믿음으로 여호와께 부르짖어라는 거예요

28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 내 인생 가운데, 광풍을 돌파하게 해 주세요, 
질병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으라는 거예요. 
이 때 필요한 것이 믿음의 선포입니다. 

이렇게 부르짖을 때 어떻게 됩니까?
소원의 항구로 인도된다는 거예요. 그 광풍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 광풍도 잔잔케 해 주신다는 거예요.

28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29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30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그들이 바라는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광풍 가운데 있어도,
부르짖는 그 사람은.. 광풍을 극복하고, 소원의 항구로 인도된다는 거예요.
이렇게해서 돌파가 일어나는 겁니다!

 

정리하면, 본문에 3가지 다른 상황이 나오는데,
그 4번의 상황에서 모두 "부르짖으매"가 나옵니다.
그들이 "부르짖으매" 돌파가 일어났다는 거예요...

1~8절 :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 부르짖으라 :6
9~22절 :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았을 때.. 부르짖으라  :13
23~31절 : 바다의 풍랑 가운데 처할 때.. 부르짖으라  :28

(후렴구가 4번 나오면, 4개의 에피소드 라고 여겨지지만   *8, 15, 21, 31절에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후렴구를 두 번 반복을 해요. 
그래서 후렴구를 4번 반복하지만, 총 3개의 에피소드가 나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