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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6장 해석 및 주석

LNCK 2023. 3. 4. 19:09

◈삼상16장  해석 및 주석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위를 배척하셨다는 언급은, 
(1) 사울이 선지자 사무엘의 제사 행위를 침해했을 때(13:8, 9, 13, 14), 
(2) 그리고 사울이 이기적 욕심에 따라 아말렉에 속한 것을 잔멸치 아니했을 때(15:23, 28) 나타났었다. 
그러나 첫 번째의 경우 때에만 해도, 사울은 자신의 이후 행위 여하에 따라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거역 행위로 인하여 사울에게 선언되었던 '폐위(廢位) 선고'는 완전히 확정되고 말았던 것이다.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사무엘의 이같은 깊고 오랜 슬픔은 단순히 개인 사울의 비극에 대한 사적(私的) 심정 때문만이 아니라, 사울의 폐위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나타날 부작용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사실 그때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울의 군사적 능력만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은 후일 사울의 전사(戰死)를 슬퍼한 다윗의 애가(삼하 1:19-27)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내가 너를...보내리니' 
여기서 '보내다'(솰라흐)란 말은 '가기를 강요하거나 허락하다'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사명을 주다'란 의미로 봄이 더 타당하다(민 14:36,  신 19:12,  삿 6:14).

'베들레헴 사람 이새'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으로,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 남서쪽 약 16km, 그리고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km지점의 해발 690m에 위치한 유다의 작은 성읍이다(룻 1:1). 한편 '이새'는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났던 오벳의 아들로서(룻 4:17, 22,  대상 2:12,  마 1:5,6,  눅 3:3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사람'이다. 
이새는 그의 할아버지가 부자였으므로, 그 당시 그 역시 부유했었음이 분명하다(룻 2:1). 그러므로 사무엘은 인근 마을의 유력한 가문인 이새의 집에 대해 개략적으로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당시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에 대해서는 몰랐음이 분명하다.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사무엘에게 지시한 여호와의 이 명령은, 여호와께서 당신께 드려지는 거룩한 제사를 사울을 속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명령이 결코 아니다. 실로의 중앙 성소가 훼파된 당시 상황에서,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할 자격과 책임이 있는 선지자 사무엘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일은 지극히 정당하며,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때 사무엘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실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그곳에서 기름 붓는 일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사무엘은 자신이 기름 부으러 간다는 사실을 공개할 필요나 책임은 없었던 것이다. 한편 여기의 '제사'(자바흐)는 (1) 화목제를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단어라는 점(1:3) (2) 제물이 암컷이라는 점(레 3:1-5)등으로 미루어 볼 때 화목제를 가리킴이 분명하다.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여기에 언급된 '제사'는 제사 후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가 동반되는 화목제였기 때문에, 사무엘이 제사에 그 지방의 사람을 칭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9:22). 그러므로 사무엘에게 있어서 사실상 이새를 청하는 것은 그의 아들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러나 그 소식을 듣게 될 사울에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붓는 것은 사울에게 기름 부은 것과는 그 성격, 목적에 있어서 전혀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즉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던 목적은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8:5, 20) 다만 이스라엘의 군사적, 정치적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만(9:16, 17),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하나님의 일'로서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임을 보여 주고 있다.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성읍 장로들이 떨며...영접하여'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의 이같은 태도는 (1) 당시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2) 또한 사무엘은 사사로서 그 직무상 종종 죄 범한 성읍을 방문하여 책망하고 징벌하는 일을 하는 자였기 때문에, 성읍 장로들은 갑자기 방문한 사무엘을 불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스스로 성결케 하고'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몸과 의복을 깨끗케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출 19:10,  수 3:5,  7:13,  욥1:5,  요일 1:7-10).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처음 외모를 중시하여 왕을 선택했던 일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사실을 사무엘로 하여금 회고케 함으로써 그같은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려고 한신다.

'사람은 외모를...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외모'(아인)는 직역하면 '눈'(eye)이란 뜻으로서, 곧 '육신의 눈'(肉眼)을 가리킨다. 그리고 '중심'(레브)은 직역하면 '마음'(heart)이란 뜻으로서, 곧 '마음의 눈'(靈眼)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원문의 뜻에 맞추어 본절을 해석하면,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보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의 눈)으로 보느니라"란 뜻이 된다. 

즉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인간의 척도와 하나님의 척도가 전혀 다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비록 인간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외적 용모, 신장, 배경등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내적 겸손, 신앙, 인격, 진실성 등을 감찰하신다는 의미이다(대상 28:9,  시 7:9,  눅 16:15).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여기서 '아비나답'(Abinadab)은 '아버지는 훌륭하시다'란 뜻으로서, 이새의 둘째 아들이다. 그런데 사울 왕의 둘째 아들이름도 '아비나답'이었다(31:2). 그리고 '삼마'는 '황무지'란 뜻으로서, 삼하 13:3,  대상 2:13에서는 '시므이'로 표기되어 있다.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지나게 하나' 
대상 2:13-15에 기록된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윗까지 포함하면 이새의 아들은 도합 8명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새의 8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이것은 그 당시 이새의 가족들이 다윗을 아직 어른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속으로 볼 때, 어른만이 제사의 초청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왕은 고대 중근동에서 종종 '목자'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여기서 다윗이 양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다윗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예시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 말은 그때까지 사무엘이 앉아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의 '앉지'(사바브)는 '둘러싸다', '에워싸다'란 의미로서(삼하 22:6,  대하 33:14,  시 17:11,  전 9:14), 곧 식사하기 위하여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때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 식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 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그의 빛이 붉고' 
'빛이 붉고'는 머리털 색깔이 붉음을 뜻한다.
대부분 검은 머리털 색깔을 지닌 중근동에서 이 붉은 색 머리칼은 귀한 것으로서, 그 지역에서는 아름다움의 한 조건이었다.

'눈이 빼어나고' 
여기서 '빼어나고'에 해당하는 원어 '야페'는 '아름답고', 또는 '반짝이고'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총기어린 아름다운 눈을 가리킨다. 이것도 뛰어난 얼굴 모습의 소유자가 갖추어야 했던 한 조건이었다(창 29:17).

'얼굴이 아름답더라' 
이것은 단지 외적 아름다움만을 의미치 않고, 내면에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25:3,  창 41:5,  신 1:25,  9:6,  삼하 18:27,  행 7:20). 그러나 여기 '얼굴'(로이)은 분명 '겉모양' 혹은 '외모'란 의미도 있는바, 이는 또한 그 외적 얼굴도 아름답게 잘 생겼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부었더니' 
다윗은 모두 3차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다. 즉 여기 첫번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새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번째의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삼하 2:3, 4) 기름 부음 받았다. 그리고 세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삼하 5:3)받았다.

'그 형제 중에서' 
이것은 형제들이 목격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때 이새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아무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의 형제들은 사무엘의 엄중한 부탁과, 그리고 사울의 보복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한 듯하다.

'이 날 이후로’
이것은 여호와의 신이 다윗에게 즉각적으로 임했고, 또한 영속적으로 임재하고 계셨음을 시사하는 문구이다.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도덕적,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뜻한다. 그 결과 다윗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18절). 

한편, 이처럼 기름을 붓는 객관적 의식(儀式)의 결과로 여호와의 신이 주관적으로 임했다는 이 사실은 사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었다(10:1, 10). 그러나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다윗의 경우는 이같은 일이 (1) 기름 부음의 의식 직후에 있었으며 (2) 임재하신 여호와의 신이 끝까지 떠나지 않으셨으며 (3) 여호와의 신이 임할 때 발작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10:9-12,  11:6, 7) 사울의 경우와는 구별된다. 
따라서 본서 저자는 위의 두 경우를 암시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사울에 대한 다윗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한 듯하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神)을 부어주신 까닭은 (1) 다윗이 왕의 신분에 합당한 도덕성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며, (2) 왕의 고유한 직무를 감당할 능력을 소유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삼하 5:4에 이하며,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된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받을 때, 그의 나이를 레온 우드(Leon Wood)는 15세 가량으로, 그리고 카일은 20세 가량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당시 다윗이 제사 의식에 공식 참여치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만 20세 이상의 성년 남자가 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므로(11절), 따라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마침내 등극될 때까지 약 10-15년 가량을 예비 왕으로서 연단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혹자는 사무엘의 생전에 다윗이 라마의 선지 학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훈련받았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사울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신'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직을 제대로 수행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11:6>. 따라서 이제 사울의 왕위가 폐위된 이상,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원문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악신'(an evil spirit from Jehovah)이란 뜻이다. 여기서 이 '악신'(루아흐 라아)은 인간의 도덕적, 영적 생활을 고양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는 본질상 뚜렷이 대조되는 사단의 영으로서, 곧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억누르고 파괴하는 사단의 사악한 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사단의 영은 하나님과 허락과 지배하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욥 1:12). 따라서 이것은 선악간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주재권 아래 있다는 구약의 전반적 사상과 잘 조화된다(신 13:2-4,  삿 9:23,  삼하24:1,  왕상 22:19-22,  대상 21:1,  욥 1:6-12).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같은 악신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1) 사울의 왕위가 폐위되었다는 사실을 가시화(可視化)하여, (2) 새로이 여호와의 신을 받은 다윗과 대조시키며, (3) 또한 악신에 시달리는 사울로 인해 다윗이 수금 연주자로 성경이 무대에 공식 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15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을 번뇌하게 하온즉 

본절은 사울 주변의 신하들에게도 사울의 폐위가 가시화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16 원하건대 우리 주께서는 당신 앞에서 모시는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하는지라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이것은 사울에 대한 악령의 활동이 간헐적(間歇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가...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당시 사울이 당하던 고통은 원인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정신 심리적 현상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고대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던 음악을 통한 심리적 치료 요법이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10:5,  왕하3:15>. 그러나 사울에게 나타난 현상은 근본적으로 영적(靈的)인 원인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음악을 통한 심리적 요법은 임시 방편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다.

17 사울이 신하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잘 타는 사람을 구하여 내게로 데려오라 하니 
18 소년 중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 하더라 

여기서는 장차 왕위에 오를 자로서, 다윗의 여러 뛰어난 자질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미 어느 정도 널리 인정되기 시작하였음을 시사해 준다.

'소년 중 한 사람' 
이 소년(네아림)도 사울의 신하 중에 있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신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연소함은, 또한 연소했던 다윗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던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에 대한 이같은 호칭은 하나님께서 1절에서 직접 사용하셨던 것으로서, 다윗을 소개하려고 한 그 소년 신하가 다윗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 
다윗에 대한 저자의 이같은 언급은 사울에 대한 다윗의 탁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서 '용기'는 문자적으로 '능력있는 용사'(a mighty valiant man, KJV)란 뜻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다윗이 자신의 가축을 해치려던 사자나 곰 등을 쳐죽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17:33-37).
그리고 '무용'(武勇)은 '전사'(戰士, a man of war,  KJV, RSV)란 뜻이다. 
'구변'(口辯)은 '매사에 분별력 있는'(prudent in matters, KJV), '말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하는'(prudent in speech, RSV)이란 뜻이다. 특히 이러한 자질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귀중히 평가되던 덕목(잠 23:9,  25:9, 11, 15,  29:20)인데, 이것은 시편 기자로서의 다윗의 작시(作詩) 능력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준수한'(토아르)은 '잘 생긴 미남자'(a finelooking man, NIV,  a man of good presence, RSV)를 가리키는 말로서, 특히 이 점에 대한 묘사는 이미 12절에 언급되었었다(25:3,  창29:17,  39:6,  신 21:11,  에 2:7).

'여호와께서...함께 계시더이다' 
기름부음 받은 결과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된(13절) 다윗은, 이후 그의 행적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었다. 즉 내적으로는 겸손, 성실, 진실함으로, 그리고 외적으로는 사자나 곰을 맨손으로 물리치는 호기와 무용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었던 것이다. 아무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게신다는 이 사실은 이후 모든 면에서 다윗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어구이다(3:19,  10:7,  18:12, 14).

19 사울이 이에 전령들을 이새에게 보내어 이르되 양치는 네 아들 다윗을 내게로 보내라 하매 

'사울이...다윗을...보내라 하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던 바대로(8:11-18), 사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백성들을 징집하는 일을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었다.

20 이새가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를 나귀에 실리고 그의 아들 다윗을 시켜 사울에게 보내니 

'이새가...보내니' 
당시 이새는 왕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아들이 왕실의 일에 종사케 되었음을 명예롭게 여겼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기꺼이 사울에게 보냈을 것이다. 특히 이때 이새는 자신의 아들이 미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실(13절)을 상기하고, 자신의 아들이 왕실에서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 
이와 같은 예물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1)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거나(9:7, 8), (2) 또한 상대방에게 감사를 나타낼 때(창 14:18). (3) 그리고 상대방을 진정시킬 목적(25:18) 등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왕에 대한 예의라는 점에서 첫 번째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그 앞에 모셔 서매' 
이것은 (1) 분부를 받기 위하여 가까이서 기다린다(왕상3:16), (2) 또는 본격적으로 신하의 한 사람이 되어 일을 하다(창 41:46)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분명 다윗은 사울이 악신으로 고통당할 때 수금을 타 그의 마음을 위로함으로써 봉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사울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였고, 또한 사울에게 크게 사랑받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23절).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처음 수금 연주자로 사울에게 봉사한 다윗은 얼마 후 사울의 병기 든자(armor' bearer, RSV)로 승격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한다. 즉 (1) 다윗에 대한 사울의 사랑과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2) 또한 사울이 다윗의 무예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병기 든 자'는 주인의 창칼이나 방패 등을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부관으로서, 주인으로부터 가장 신임받는 정예군 중에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14:1,  17:41,  31:4-6,  삼하18:15). 
이처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말미암아, 마치 모세처럼 다윗도 사울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 가운데서 왕실의 보다 고상한 직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왕궁의 여러 법도와 국사를 익히게 하셨는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착실히 준비시켜 나가셨다.

22 또 사울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원하건대 다윗을 내 앞에 모셔 서게 하라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하니라 

본절에서 사울은 다윗을 계속적으로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이새에게 고지(告知)함으로써, 다윗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신임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문자적으로는 '그가 나의 눈에서 은총을 발견하였느니라'란 뜻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이 사울 자신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리킨다(21절). 이처럼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생기기 전에는 그를 진정 사랑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신을 앞지르자(18:7), 이후로 사울은 이전에 다윗을 사랑한 것 이상으로 그를 적대하게 되었다.

23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본절은 다윗이 사울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21, 22절)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