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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도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LNCK 2023. 3. 6. 18:58

◈모든 성도는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25:21, 요15:13   추도예배설교

*부제 : 예수님께 칭찬 듣는 삶을 살려면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기독교 명문가 라는 신화 myth

교회 다니는 성도님들이 들으면 누구나 귀가 기울여지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주제의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열심히 믿어 기독교 명문가를 이루자!” 하는 슬로건이죠.

그런 제목의 설교를 들으면, 저 자신부터 가슴이 쿵쿵 뛰고, 
정말 장밋빛 환상에 쉽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기독교 명문가’에 대한 정의, 그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대부분 신자들이 생각하는 ‘기독교 명문가’라는 의미는
그 집안에서 영의정, 좌의정 등 대감들이 배출되고, 
또 경주 최부자처럼 천석꾼, 만석꾼이 나오고,
자녀들중에 노벨상, 퓰리처상, 아카데미 상.. 이런 것을 받는 것,

그런 것들을 이루기는 매우 어렵지만, 예수 잘 믿어 하나님께 복을 받아, 
그런 성공한 자녀들을 키워내는 것.. 이것이 ‘기독교 명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기독교 명문가’의 정의는 과연 어떠할까요?
예수님도 우리 각자가 ‘기독교 명문가’를 이루기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정의에 대해서는, 우리 신자들이 가지는 일반 통념과는 좀 다른
그런 ‘기독교 명문가’를 생각하고 계신다고 봅니다.

여러분, 성경이 과연 집안에서 장차관이 배출되고,
나라를 이끄는 재벌들이 나오고, 
노벨상을 받아 국위를 선양하는 일꾼들을 길러내라고.. 우리에게 독려하는가요?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어하는 말만 골라서 듣는다’는 말이 있죠.
성경을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골라서 보면, 어쩌면 그렇게 보일수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도 우리 가정의 성공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합리적인 반박을 하자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하는 사람은
사실 1천 명 중에 1명, 0.001% 정도입니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연예계에 종사하든.. 그 정도 비율로 ‘셀럽’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데도 99.99%, 그 셀럽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어쩌면 기독교 명문가를 이루지 못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을 안 믿고, 타종교를 믿는데도, 또 셀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기독교 명문가’는
출세한 사람, 성공한 사람, 셀럽들을 배출하는 가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정직하게 읽어보면.. 성경은 ‘성공하라’고 명하지 않죠.

성경이 가르치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작은 일에 충성하라’입니다. 마25:21
이 명령은, 사실 누구나 어떤 성공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 ‘커트라인’입니다.

부자도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고, 빈자도 작은 일에 충성할 수 있죠.
사회 지도층도 할 수 있는 일이고, 사회 저변층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죠.

이렇게 예수님은, 계층에 관계 없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따를 수 있는
그런 명령을 주시지, 사회의 소수 상위 몇 퍼센트만 도달 가능한
그런 명령을 상식적으로 주시지 않으시죠.

▲세상 성공이 신기루임을 알려주는 예화 동화
하루는 개미가 보니까, 같은 개미 수만 마리가 나무 둥치를 떼를 지어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매우 긴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 개미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열심히 기어가서
나무둥치를 기어오르려고 했으나, 너무 경쟁자가 많아서 쉽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그 개미는, 땅을 떠나서, 나무 둥치 위를 향해서 올라가는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기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앞 개미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열심히 뒤질세라 높은 나무를 올랐습니다.
그런데 반대쪽에는 수많은 개미들이 떼를 지어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개미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저기 실례지만, 저 맨 꼭대기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내려오는 개미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거기요? 가 봤자 아무것도 없어요! 괜히 힘들게 올라갈 필요 없어요!’

그 개미는 그의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휩쓸려서, 떠밀려서 계속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뒤에서 계속 밀고 올라오니까요.
드디어 때가 되어, 용케 그 개미는 나무 꼭대기에까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와 보니까, 아까 먼저 올랐든 그 개미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거기엔 뭐 특별한 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개미는 서둘러, 그 꼭대기 자리를 내려와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는 좀 쉽겠지요.

내려오는 길에서 보니, 반대쪽에 수많은 올라가는 개미의 행렬이 보였습니다.
반대쪽 개미가 자기에게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저기 나무 꼭대기 위에는 뭐가 있던가요?’

그는, 이전에 자기가 물었던 질문과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들었던 답변과 똑같은 대답을 해 주게 되었습니다.
‘거기요? 가 봤자 아무것도 없어요! 괜히 힘들게 올라갈 필요 없어요!’

그런데 이전에 자기가, 그 내려오는 개미의 말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똑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기어오르는 개미들은
자기의 말을 전혀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하는 게지.. 자기는 가 봤으니까 저런 말을 하는 게지...’

▲성경은 우리 인간의 야망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가르쳐 줍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인간의 욕심, 인간의 야망은.. 절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만족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영성학자들은 ‘인간 속에는 오직 하나님만 채우실 수 
있는 빈공간이 있다. 다른 것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다’고 말해 왔지요!

성령충만, 은혜충만, 말씀충만, 믿음충만, 기도충만, 사랑충만...
이것이 주님이 설계하신 ‘만족스런 인생’이지,
아무리 성공, 출세, 장차관, 도지사, 노벨상, 미스코리아를 해도
그것은 예수님이 성경에서 가르치신 ‘참 성공’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신화 myth’ 라고 하지요. 
예수를 믿되, 신화를 좇아가서는 안 됩니다.
자기 욕심이 있으니까, 거짓선지자들이 신화로 미혹을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 조나단 에드워즈, 
그 분이 프린스턴 대학 총장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값진 인생이었죠.

"1757년 9월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위이자 프린스톤 대학 학장이었던 
아론 버러가 천연두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으며, 

이사회는 장인인 조나단 에드워즈를 학장으로 초빙했으나, 
이듬해인 1758년 1월 프린스톤 학장직을 수행한 지 두 달 만인 
3월 22일 사망한다. 
심지어 에드워즈 사망 2주 후에는 그의 딸 에스더 역시 사망한다." 영어번역  

너무나 훌륭한 믿음의 가문, 18세기 미국에서 최고 1등 기독교 명문가도
천연두 전염병 피해를, 피해가지는 못 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대학 총장이었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신실한 성도였기 때문에 그 분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복된 사람이 ‘후회 없이 죽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이 ‘후회막심하게 죽는’것을 봅니다.

오늘까지 살아온 내 삶에 ‘진정한 만족’이 있습니다. 
금년까지만 살고 연말에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 할 때 
‘나는 후회가 있습니까/없습니까?’

만약 후회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일평생 예수님을 믿고 살았는데, 내 삶에 참 만족이 없고 
후회의 찌꺼기가 떠나지 않고, 내 삶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큰 일을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해라’고 하셨는데, 
나는 작은 일에는 관심이 없고, 큰 일을 목표해서 큰 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정작 예수님이 명하신 ‘작은 일’에는, 관심도 없고, 투자할 시간도 없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후회있는 삶’과 ‘후회없는 삶’을 가르는 분수령, 분깃점입니다. 

△그럼 그 ‘작은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일입니까?

마25:34~3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우리나라에도 무료급식이 있고, 해외에는 더 많습니다.
그런 주린 사람에게 내가 먹을 것을 나눠 먹는 것,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는 것.. 냉수한그릇 떠 주는 아주 작은 수고!,
제주도 여행을 가서, 버스를 타려고 정류소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분이 명함 크기의 성경구절을 비닐 코팅해서 딱 눈높이에 붙여놨더라고요.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24:44 

요즘 전도가 어렵다고 하는데, 그 분은 아주 기술적으로,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성경말씀을 통해서 전도하시더라고요.

또 어디 숙소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일기장 같은 노트가 한 권 있었고,
그 방에서 묵고 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느낌, 일기 같은 것을 써 놨죠.
보통은 자기 고민, 자기가 여행을 오게 된 계기.. 이런 글들이 제일 많았고요,
거기에 또 신앙 선배들의 진심이 담긴 조언을 수기로 노트에 적어 놨더라고요.
저도 한 글자 적어서 보탰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쭈욱 적어놨죠! 
(목 마른 사람에게 냉수한그릇 떠 주는 예를 든 것입니다.)

어떤 노인들은, 누가 와서 자기에게 손 한 번 잡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환자들은, 누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자기를 관심 가져 주기를 
간절히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작은 일’을 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큰 일’ 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그런 작은 일에는 신경을 끄고 삽니다.

늘 비행기 타고 다니며 해외 컨벤션 참석하고, 
좀 그렇게 출장을 자주 다녀야, 또 뭔가 일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사업을 해도 좀 대규모로 해야.. 뭔가 결혼식, 장례식 때 친척들 만나도 
면이 서는 것처럼 느껴지고요...

심판 날에, 예수님이 우리를 심사하시는 기준은
‘큰 일’입니까, ‘작은 일’입니까?

큰 일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주님이 칭찬하시는 이유는
‘큰 일’했다고 칭잔하신 게 아니라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마25:21

큰 일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은 큰 일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사 기준은 언제나 ‘작은 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마25:34~36에 나오는 6가지 일!

노벨상을 받아도.. 그 작은 일을 무시하고 살았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며,
일평생 동네 수퍼를 운영하고 살았어도, 그 작은 일에 충성했다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요, 영원히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지난 2천년 역사 속에서
‘경건한 성도’를 최고로 존경해 왔으나, 이상하게 20세기 후반부터 
‘부자 성도, 성공한 성도’를 존경하는 분위기로, 그 전통이 (잘못) 바뀌고 있죠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요15:13
위 6가지를 삶속에서 행하는 삶을 살려면.. 날마다 자기 목숨을 버리는 듯한
각오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순교하는 정신이 필요하죠.
나 중심, 내 가족 먼저, 내 민생 안정.. 이것 부터 추구하면, 남을 못 돕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출세와 성공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바쁘게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입니다.

한 40년 지나서, 이제 자기가 늙고 병들고 외롭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자녀가 그 늙은 부모를 배신하는 거죠. 
사춘기 이전에 자녀와 친해야, 여행도 같이 다니고 해야.. 
자녀가 커서 어른이 되어도 친한데.. 그 황금시기를 다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그 나무 꼭대기에 뭐가 있는 줄 알고 기어올라가는 거죠.
그거 하느라 자기 가정을 돌보지 못했을 때...
나중에 자녀들이 필요한 시기에, 늙고 병든 부모를 모르는 체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의 80%는 가족 행복이다’는 말이 참 맞는 것 같습니다.
행복지수를 조사하면, 저개발국 국민들이 다들 자기는 행복하다고 응답하는데,
그 이유는, 가족결속력이 탄탄하고.. 거기서 오는 만족감, 행복감이 사실 크죠!

▲그래서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시우게 하고’
이것을 먼저는 우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 친지들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는 기도해 드리는 것입니다.
친가, 외가, 처가 이렇게 두루 살펴보면, 요양원에 가 계시거나
아니면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매일 중보기도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주 묻기는 실례가 되니, 6개월에 한 번 정도 안부를 물어보는 거죠.

그 다음에 직접 찾아 뵙고.. 식사나 과일도 사드리고 하는 것은
먼저는 기도가 이루어져야, 그 다음 행동이 나오는 거죠.
그 다음 행동(식사대접 등)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앞서 기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제는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삶을 살 것인가?”
그 대답은 “내 주위에 있는 가족, 친척, 지인들에게 기도와 관심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 그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후회없는 값진 삶을 사는 것이고,

주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도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죠. 
세상에서 장차관을 했는데, 너무 큰 일 하느라 자기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지 못했다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내 주위의 사람에게 ‘작은 일’에 충성하며 살 때는, 
내가 중환자실에 가게 될 때.. 결코 후회함이 없고, 
주님을 만나게 될 때에도.. 결코 불안감이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과 앞서 가신 성도님이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는 쉬라’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살았던 모델을 찾아보면 ‘마더 테레사’입니다.
수녀를 존경해서 부를 때, ‘마더’라고 한답니다. ‘영적 어머니’란 뜻이지요.

마더 테레사의 삶의 원칙은 ‘나는 하루에 한 명씩만 돌봅니다.’
그녀는 키도 작고, 직업도 처음엔 교사에 불과했지만, 
나중에 유명해지고 난 다음에도, ‘작은 일’을 버리지 않았죠.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나는 하루에 한 명씩만 돌봅니다.’는 원칙을 지켰고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자기가 만나는 행려병자를 예수님으로
여기며 섬겼습니다. ‘그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25:40

▲정리하면

‘기독교 명문가’가 무엇입니까?
자기 집안에서 유명인사들을 많이 배출한 집안입니까?

그러면 좋겠죠. 그러나 그것이 우리 예수님의 평가 기준은 아니라는 것이죠.
예수님의 평가기준은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큰 일을 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큰 일을 하든지
-작은 일을 하든지
모두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일평생 소원은,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평가를 듣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그가 국위를 선양하고, 타임지에 자기 기사가 뜬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평가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것입니다.

오늘 고 OOO 님을 추모하며 이렇게 온 가족이 기억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고 OOO님은, 지역 유지로서 남들이 감당 못하는 큰일도 많이 감당하셨지만,
그러면서도 정말 작은 일에 충성하시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가족 대소사에, 약혼식, 결혼식, 칠순, 팔순잔치를 다 챙기셨고,
조카들 고등학교 졸업, 대학졸업까지 다 챙기셨고,
수 십 명이나 되는 온 가족들을 집안 어른으로서 챙기시느라
정말 후대에 존경을 받으시고, 후대에 큰 정신적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고인의 위대한 신앙유산을 본 받아서
온 가족들, 사촌, 조카들, 친가, 외가, 사돈의 가족들까지
이웃을 돌아보며,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해드리며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며,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보태어주는...
그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자가 칭찬을 들은 것은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큰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1달란트 받은 자가 칭찬을 못 들은 것은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큰 일’을 못 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평가는, 달동네 사는 할머니도 들을 수 있고, 
인도의 빈민가에 사는 성도님도 들을 수 있는...
그래서 주님은 참으로 공평하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오늘 내 삶의 만족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왜냐면 주님이 내게 시키신 일을 내가 순종했을 때.. 삶에 만족이 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 위로, 따뜻한 마음, 성령의 온기가 있습니다.

마지막 주님의 칭찬도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이런 분은 장래에 걱정이 없는 거죠.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큰 일에 바쁘게 뛰어다니느라.. 작은 일에 무시한, 등한시한 사람’입니다.

‘큰 일’도 주님이 주시는 사명이면 감당해야죠.
그러나 ‘큰 일’을 하더라도.. 주님의 평가는 ‘작은 일’에 있다는 것을,
‘이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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