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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2

LNCK 2023. 3. 10. 11:10

[Ep2.오디오북]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실화 | 내래죽어도순종합네다 | - YouTube

◈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2                  <지난 글 보기> 

◑3장 낯선 사랑을 받다

김광신 목사님께서 황금종교회 청소년들을 데리고 '은혜 동산'에 참가하라고 
권하셨다. 은혜 동산은 미국 LA은혜교회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뜨레스디아스 영성훈련이었다. 

 

처음 은혜동산에 참석했을 때 
나는 이것이 딱히 대단한 집회 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탈북자들을 위해 진행하는 수많은 집회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래동안 북한선교를 하면서, 탈북자들이 최소한 1년 이상은 성경통독을 
하고 말씀과 사랑으로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아야만 
이런 수준 높은 집회에서 뭔가 배울 수 있고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광신 목사님의 말씀이라 신뢰하고 참석해 보기로 했다. 

나는 황금종교회 주일 예배가 끝나고 집회를 광고했다. 
'4박 5일 동안 은혜동산 집회가 있으니 다들 참여하세요.' 

대부분 청소년들은 예배시간 실컷 졸다가 깨어나서 관심없다는 눈빛으로 
나가 버렸다. 전도사님들은 말이 통할만한 녀석들을 붙잡아

'가야 한다, 꼭 가야 한다'고 일일이 권했다. 

민혜가 물었다. '은혜동산? 그게 뭐예요?' 
은혜동산 집회는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야 신선하고 충격적인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도사님들은, 은혜동산 집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얘기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이렇게만 얘기했다.

'4박 5일 동안 가서 풍성하게 먹고 놀고 오자. 
진짜 재밌는 집회야, 가 보자!' 

성의없는 대답에 민혜가 삐쳤다. 
'나는 돈 벌어야 돼요. 시간이 없어요.' 

여전도사님이 설득했다. 
'민혜야, 거기 가면 돈 보다 더 좋은 것을 줄 거야!' 

'돈 보다 더 좋은 것이 뭐지?' 
궁금해진 민혜는 한 번 가 보기로 했다. 

몽땅 이런 식으로 데려갔다. 말 안 듣는 유진이 녀석은 
협박하다 안되니 질질 끌고가다시피 해서 데려갔고 
어떤 녀석은 선물 많이 준다고 꾀어서 데려갔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탈북민교회 들에서도 몇 명씩 사람들을 보내 왔다. 
출발하는 날 대형버스에 올라 보니, 대부분 교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처음 나오는 탈북자들이 무슨 말을 듣고 왔는지 
짜증이 잔뜩 실린 얼굴들을 하고 앉아 있었다. 

버스는 한나절을 달려 경기도 연천군의 깊은 산속에 있는 

GMI 선교사훈련원 으로 들어섰다. 
버스에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사방이 시끄러워졌다. 

웬 낯선사람들이, 막 도착한 우리를 빙 둘러서서 두 팔 벌려 축복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출발할 때, 미국에서 온 한인들을 만날 것이라고 들었기에 
좀 유별날 것이라고 짐작은 했더랬다. 

그래도 예상보다 훨씬 커다란 환대에 다들 놀랐다. 
익숙하지 않은 환영에, 탈북자들은 등록을 마치고 나서 
도망치듯 각자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LA은혜교회 교인들은 다들 활짝 웃는 얼굴로 열정적으로 축복송을 부르면서 
들어오는 한 사람, 한 사람 탈북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사랑합니다 형제님, 사랑합니다 자매님!' 

나이 많은 탈북자들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청소년들은 당황했는지 쭈뼛거리다가 구석으로 몰려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언제 봤다고 사랑이야?' 
'미국 사람들은 반갑다는 말을 이딴 식으로 하나 봐!' 

아무래도 이런 환대와 친절이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자매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이 사람들 왜 이래? 우리가 뭐 해줬다고 이래?' 
'어머, 다들 왜 이러지?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들 같아!' 

오후부터 일과가 시작되었다. 
레크레이션을 진행하고, 자기 소개를 하고, 
여러 가지 행사가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갔다. 

대부분 중국에서부터 고정된 직업이 없이 자유롭게 살던 사람들이라 
계속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힘들어했다. 
게다가 하나님에 관해서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 
어떤 강의나 간증에도 무관심하게 반응했다. 

에스더는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서 혼자 투덜거렸다. 
'이게 무슨 은혜동산 이야? 고역 동산이지!' 

나는 점점 걱정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얼핏 봐도 엄청난 정성과 자금과 인력을 동원하고 오랫동안 준비해서 하는 
행사인 것 같은데, 이러다가 아무 열매없이 끝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식당에 들어 갈 때면, 눈처럼 하얀 식탁보를 깨끗이 빨아 놓은 식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위에는 정성스럽게 만든 요리와 손으로 일일이 적은 쪽지들이 붙어 있었다. 

마치 고관대작의 연회장에 초대되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식사 때마다 하얀식탁보는 교체되어 있었고 
또 다른 작은 선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의 꾸밈도 매일 달랐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섬기러 오신 분들이 
각종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웃겨 주었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첫날 식사 때는 다들 말도 하지 않고, 바쁘게 밥만 먹고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식사를 마치고 로비로 나가면, 아름다운 장식들로 꾸며져 있는 간식 테이블이 
다시 그들을 맞이했다. 

강의실로 들어가면, 갖가지 선물들이 생일날 받는 선물처럼 예쁘게 포장되어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각각의 선물 들에는 이름표가 붙어있었고 
옷과 생필품들이 나이와 성별에 딱 맞게 갖추어져 있었다. 

대량 생산하듯이 쭉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한 명씩 정성들여 파악해서, 따로 따로 챙겨놓은 선물들이었다. 

강의할 때 쓰라고 깨끗한 공책과 단정하게 깎여 있는 나무 연필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침실로 들어가도 놀라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대충 벗어놓고 나왔던 옷과 침구들은 어느새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다. 
침상 위에도 단정하게 놓인, 작고 아담한 선물들이 웃으며 나를 올려다 보았다. 
아침에 숙소에서 강의실로 들어가는 길에도, 그들은 두 줄로 늘어서서 
긴 터널을 만들어 놓고 탈북자들을 기다리며 환대해 주었다. 

새벽이라 어둡다고, 길에 불빛을 켜들고 참가자들이 지나가는 길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탈북자들이 (너무 황송해서) 죄 지은 사람들처럼 어려워하며 
머리를 숙이고 그 사이로 지나가면, 그들은 말없이 기도해 주었다. 
    (*이 모두가 뜨레스디아스 진행 방식)

비가 내려도 그들은 비를 맞으면서 그 자리에서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한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밝고 따뜻한 어떤 느낌이 
사방에서 묻어 나왔다. 

요한이는 아무래도 뭔가 못마땅하고 불편했다.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러지?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뭘 했다고 이러지?' 
이 돈으로 차라리 북한학교나 교회들에 헌금이나 좀 하지, 
뭐 하러 이런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을 하는 거지?' 

탈북자들은, 이 낯선 사람들이 아무 말도 없이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요한이부터 시작해서 모든 탈북자들은, 
난생 처음 받아보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에 떨떠름해 하고 있었다. 

저만치 한 편에서는, 나이 든 탈북자들이 모여서 떠들었다. 
'얘들 뭐냐? 뭐 하러 이런 미친 짓들 하냐? 
이거 (우리가) 뭔가 홀려 다니고 있는 것 같아... 
뭔가 속이 신숭생숭 해지고.. 야 이게 막 간지럽다야' 

'넌 이게 싫으니?'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그럼 좋아?' 
'아 그게 글쎄...'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소리 지르면서 깔깔 웃어댔다. 

그리고 이튿날 식사 때부터는 (적응되어)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짝꿍 들끼리 서로 소개도 하고, 나와서 이야기도 즐겁게 나누면서 
이 열렬한 환영 분위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삐딱한 녀석이다. 항상 엉덩이가 뒷 무릎까지 축 늘어져 내려온 
바지를 입고 다녔다. 자기들끼리는 '똥싼바지' 라고 부르면서 좋아했다. 

늘 해골무늬를 앞뒤에 대문짝만하게 그려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다가 싫증 나면 박쥐날개 같은 것이 달린 옷을 입고 너풀댔다. 
꼭 광대 같이 눈에 확 띄는 빨간 옷 아니면 노란 것만 입었다. 

길고 긴 장발로, 눈은 물론이고 코와 입까지 커튼처럼 가려놓고 다니던 녀석이 
은혜동산에 온다고 갑자기 머리를 잘랐다. 

이곳에서 녀석을 보니 벌써 피곤해 하고, 짜증을 내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규율 생활이라면 딱 질색을 하는데다, 강압적인 것은 도무지 참지 못하는 녀석이다. 

벌써 도망가야 할 녀석이지만, 아침에 숙소를 나오면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호위하듯이 안내하기에, 어쩔 수 없이 강의실로 끌려 들어왔다. 

거기다가 외딴 산골이라 도망갈 PC 방도 없었다. 
그는 돌아가는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무례하지 않고 공손하기에 대들 수도 없었다. 

그저 이상하고 야릇한 분위기에 몰려 자꾸만 끌려다니다 보니 잔뜩 부아가 
치민 것이다. 밥을 대충 먹고 로비로 나온 녀석이 으르렁거리듯이 서 있었다. 
중년의 한 여집사님이 활짝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가 음식을 권했다. 
'간식 좀 드세요!'
녀석이 일부러 다른 쪽을 보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랑합니다. 형제님!' 집사님은 오히려 즐겁게 웃으면서 돌아갔다. 
유진이는 약이 올랐는지, 집사님의 등 뒤에 찌를 것 같은 눈길을 보내면서 

투덜거렸다. '쳇, 뭐야?' 

얼마 있다가 대학생으로 보이는 자매가, 간식접시를 들고 유진이에게로 갔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하듯 간식 접시를 불쑥 내밀면서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초콜릿 안 좋아해?' 
유진이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인사하듯 머리를 가볍게 숙이면서 접시를 받았다. 

'아~ 예, 먹을게요.' 

다음 날 보니 잔뜩 찌푸리고만 다니던 녀석이 빙글빙글 웃고 
집회 때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다녔다.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이 집회의 영적 리더는 미국 LA은혜교회 당회장이신 한기홍 목사님이다. 
처음 탈북자들은 한기홍 목사님의 영성 강의를 들으면서 '정말 그런가?' 
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북한을 위한 기도 모임 시간에 한기홍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통해 
탈북자들은 성령을 체험 하기 시작했다. 
많은 탈북자가 그 자리에서 방언을 받았고, 환상을 보았고, 음성을 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세족식을 했다. 탈북자들은 한 줄로 늘어선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들 앞에는 깨끗한 물이 담긴 세숫대야가 있었다. 

여태껏 말 없이 섬겨 주고 찬양을 불러주던 분들이 
비장한 각오를 다지는 사람들처럼 한 줄로 걸어 나와 
서로 친구가 된 탈북자들의 발을 씻어주기 시작했다. 

모든 분이 정성을 들여 섬세하게 씻고 닦아 주었다. 
어떤 분들은 울면서 씻어주었다. 

탈북자들은 '이번에는 또 뭐 하나?' 하는 눈으로 바라보다 곧 멍해졌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부풀어 올랐다. 

남자들의 얼굴이 눈물을 참느라 벌게 졌고 
나이 많은 탈북자들은 입술을 씰룩거리다 손사래치며 그만하라고 만류하였다. 
감당하기 힘든 무엇이 마음 속에서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여기저기서 울음이 터졌다. 힘들게 참던 울음들이라
한번 터지면 주체하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어른들이 체면을 팽개치고 울었고, 청소년들은 발을 씻어주는 분들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 사방에 온통 울고, 통곡하는 소리 밖에 없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요한이는 울다가 주저앉아 버렸다.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하고 강렬한 것이 그를 허물어 놓았다. 

살면서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울면서 발을 씻어주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다. 
북한에서 가족들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했던 사랑이었다. 

탈북자들은 울지 않는다. 정말 모질게도 울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너무 힘든 삶을 살아 오면서 
온갖 설움과 상처, 수치, 분노에 시달리던 그들의 마음은 바위처럼 굳어졌다. 
웬만해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표현도 잘 안 한다. 
이 날 탈북자들은 평생 숨겨왔던 눈물 샘을 열었다. 

숙소에 가서 다음날 아침까지 울었다. 
마치 오랫동안 고아로 살던 아이가, 갑자기 그리워하던 엄마를 
다시 만난 것처럼 울었다. 온갖 설움과 아픔을 다 토해내면서 울었다. 

유진이도 울었다. 화가 났을 때보다 더 많이 얼굴을 (우느라) 찡그리고 있었고 
부끄러움 때문인지 머리를 박고 꿇어앉아 울었다. 

이날 크고 무섭도록 오래된 바위가 탈북자들의 마음속에 깨져 버렸다. 
그 틈으로 맑은 샘물이 하염 없이 솟아올랐다. 

다음 날 탈북자들의 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열렸다. 
에스더가 그랬다. 
예쁘게만 보이던 책상 위 소품들이 자신에게 뭔가 말을 걸어 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거 천천히 보니 대충 만든 것이 아니네? 쉽지 않았겠네' 
'사람(참가자)마다 모두 다르네. 이걸 다 손으로 만들었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무연필들은 강의가 끝나고 휴식시간에 들어와 보면 
다시 깨끗하게 깎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소리 없이 자기들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섬기는 분들의 정성과 수고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마움도 느껴졌다. 

휴식시간에 에스더는 화장실에 가다가 미국에서 오신분들이 저쪽에서 
걱정스러운 듯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어떡해? 나 비행기 값이 없어서 집에 못 가요.' 

에스더의 마음이 찌르듯이 아파왔다. 
'이 사람들이 부자들이 아니구나. 근데 이런 섬김을 받는 우리가 막 짜증을 냈구나.. 
여기 정말 은혜동산이 맞구나' 

탈북자들 속에 이런 이야기들이 퍼져나갔다. 
'저 사람들 다 자기 돈 내고 오는 사람들이래 
교회 돈으로 온 사람들이 아니래 
비행기값이 몇 백만 원이나 된대 
그리고 이 행사 한 번 하는데, 수 억이 깨진대! 
이 행사비도 다 저 사람들이 낸 돈 이래, 저 사람들 다 부자들이 아니래, 
다들 직장다니는 사람들이라 시간이 많이 없는 사람들이래...' 

여자들은 저마다 눈을 크게 뜨며 놀랬고 
남자들은 '어 그래?' 하고는, 입을 꼭 다물고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은혜 교회 사람들은 떠나는 날에도 이렇게 인사를 했다. 
'사랑합니다. 형제님! 사랑합니다. 자매님!' 

이제는 탈북자들도 그렇게 인사를 했다. 
'사랑합니다. 형제님! 사랑합니다. 자매님!' 

그때부터 탈북자들의 마음 속에는 분명하고도 지워지지 않는 느낌 하나가 남았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구나!' 

황금종교회에 출석하는 탈북청소년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고 
교회 활동에 깊이 참여하지도 않았다. 
사역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도 안 했다. 
그저 장학금만 받으러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은혜동산'에 다녀 온 이후부터는 서서히 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받은 은혜들을 나누게 되었다. 
덕분에 눈에 띄게 교회가 안정되어 갔다. 


◑4장 통독 학교 시작 

민애는 한국에 온 지 4년 정도 됐다. 
몇 년을 교회에서 생활했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16살에 부모를 떠나 한국에서 홀로 살다 보니 
모든 것이 힘겨웠고 잘 풀리지 않았다. 

그럭저럭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19살 어린 나이에 회사에 들어갔지만 
마음을 붙일 수 없었다. 
결국 이리저리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다가 사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많이 먹으면 위험하니 적당량을 지키라고 의사가 신신당부 하던 약을 
입안에 한 줌이나 털어넣고 삼켰다. 
그런데 다음날 멀쩡하게 살아서 눈이 떠졌다. 

다시 한 줌을 털어 먹었지만, 다음날에도 죽지 않았다. 
기어이 죽는다고 세 번째로 털어 먹고 눈을 떠 봤더니 
병원에서 링거 꽂고 누워 있었다. 죽는 일 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와 황금종교회 로 왔다. 
민혜가 교회 왔을 때는, 마침 내가 교회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통독학교를 해야 한다고 강권할 때였다. 

'민혜야, 통독 해야지!' 
민혜는 난처했다. 통독이 뭔지 알아봤더니 
진짜 재미 없고, 엄청 고통스러운 훈련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안 하려고 하니 마땅히 할 것도 없었다. 
민혜는 그렇게 자꾸 대답을 미루다가 '은혜 동산'에 가게 되었다. 

세족식을 하는 날, 민혜도 하염 없이 울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한참 울고 나니 '통톡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민혜에게 불쑥 생겼다. 

그런데 마지막 날 은혜동산에 참석한 소감을 간증할 때였다. 
자신도 모르게 새롭게 생긴 엉뚱한 마음이 민혜의 입밖으로 튀어나와 
그만 모든 사람의 귀로 들어가 버렸다. 
'아 엄청 고맙고요. 교회에 돌아가면 이 은혜 잊지 않고 
꼭 성경통독학교 들어가서 통독을 하려고 합니다.' 

다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민혜는 자기가 한 말에 자기도 놀라 어쩔 바를 몰랐다. 
'내가 왜 이러지? 이제 어떡하지?' 
자기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말을 했으니 꼼짝없이 통독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다. 

 

설경이도 17살에 집을 떠나 탈북했다가, 다음에 2010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그리고 불교재단 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를 나와서 미용실에서 일했다. 
내가 설경이 에게 권했다. '설경아, 너 성경통독을 해서 북한선교사 되거라! 
그러니까 아까운 나이에 일한다고 그러지 말고, 성경통독 해라!' 

설경이는 미용 쪽으로 쭉 나가서, 몇 년 안에 최고가 될 꿈이 있었다. 
그 꿈을 포기하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라니, 당연히 싫어했다. 

내게는 통독 하겠다고 대답해 놓고, 한 달 동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나타나 통독을 시작했다. 

유정이는 백석대학교 선교학과 학생이다. 
중국에서부터 예수님을 영접 했기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다. 

'은혜동산'에서 하나님은 유정에게 비전을 주셨다. 
'나는 너에게 열방을 줄 것이다'  시2:8

유정이의 꿈은 북한선교사 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은 그보다 더 큰 것이었다. 

'너는 북한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땅 끝까지 가야 한다.'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용하려고 하시는구나!' 

이 음성을 들은 후 지나간 시간들은 생각해 보니 
이미 유정이는 황금종교회 청소년 대표로 미국을 다녀왔고, 대만까지 갔다왔다. 

그렇게 발전된 여러 나라들을 다니다 보니 
유정이는 자기의 마음이 변화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그의 마음엔, 한없이 넓은 것들을 보고 있었고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있었다. 

유정이는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래, 빨리 신학교를 졸업하는 거야, 나는 절대로 휴학 하지 않고 
4년 만에 대학교를 졸업할거야! 
그리고 온 세상을 뛰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거야!' 

나는 유정이에게 말했다. '유정아, 너도 통독 학교 해야지!' 
'그럼 대학교는요?' 
'휴학해라, 통독 학교 다 하고 다시 복학 해라!' 

유정이는 웃기만 했다. 거절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전도사들 부터 시작해서 집사님에 이르기까지 
사방에서 유정이에게 통독 학교를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계속 듣다 보니, 유정이도 어느새 휴학을 하고 통독하러 들어와 있었다. 
들어와서도 유정이는 가끔 구시렁거렸다. 
'내가 왜 이러지? 친구들한테는 절대로 휴학 하지 않고 대학 졸업하겠다고 
장담을 해 놨는데 이게 뭐야?' 

온 나라를 뒤지고 털어서 탈북자들을 모집 했더니 
27명의 북한 청소년들이 모였다. 

여학생들은 진한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들을 입고 왔다. 
머리 들도 갖가지 색깔들로 물들였다. 

남학생들은 몸에 새긴 문신을 과시해 잔뜩 드러내고 왔다. 
말과 행동들도 사납고 거칠었다. 마치 문제아들만 모이는 학교 같았다. 

다들 20살 언저리의 어린 청소년들이었고 
한국에 온지 2년에서 3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GMI 탈북민 성경통독 100독 학교>를 2013년 7월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당장 학교로 사용할 건물이 없기에 황금종교회 건물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주말에는 교회로 쓰고, 주중에는 통독 학교로 쓰기로 했다. 

지하실에 있는 교회는 50평 정도의 공간이었다. 
일반 가정집으로 설계했던 공간이라, 약 25평의 큰 거실이 있고 
부엌이 있었고, 작은 방 두 개가 있었다. 

거실은 일과 시간에는 통독 학교 교실로 쓰고 
밤에는 남학생들의 침실로 사용했다. 

주말이면 그곳은 그대로 예배 처소가 되기도 했다. 
작은 방 하나는 사무실로 쓰고, 하나는 여학생들의 침실로 사용했다. 

아침 6시반이면 기상했다. 남자들은 이부자리를 치우고 그 자리에 책상을 폈고
8시 부터 12시까지 오전 통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2시 반부터 저녁 6시 까지 통독 했다. 
그러면 하루에 신약 1독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저녁 7시 부터 10시까지 기도 모임 시간을 가졌다. 
사역자들이 장을 봐 오고, 학생들은 식사 당번을 짜서 돌아가면서 밥을 했다. 

 

김성근 선생과 최순교 선생이 격주로 돌아가면서 통독학교 일과를 진행했다. 
두 선생 모두 내가 1998년 중국에서 탈북민 성경통독 사역을 진행할 때 
2기생으로 들어와 훈련받은 선생들이었다. 

15년 전에 벌써 중국에서 성경통독 100독을 하고 북한 선교사가 되었고 
탈북민들을 모집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그들을 북한선교사들로 성공적으로 양성한 분들이었다. 

그러다가 김성근 선생은 중국 감옥에까지 갇혔다가 석방되었고 
최순교 선생은 중국공안에 체포되어 북송 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분이었다. 

두 선생님들 모두, 내가 성경통독 사역을 통해 키워낸 오래된 제자들이었고 
베테랑 사역자들이었다. 또 김성근 선생은 2002년에 한국으로 와서 
장로회 신학 대학원 을 졸업하였고, 한국 교회들을 두루 다니며 
목회 경험을 10년 이상 쌓은 경험 많은 전문사역자다. 

두 선생들은 학생들과 함께 숙식을 함께 했다. 
이 때문에 두 선생은 월요일~금요일까지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살다가 
주말에야 집으로 갔다. 

정식 통독을 시작하기 전, 김성근 선생이 통독반 학생들을 일일이 만나 상담을 했다. 
통독을 할 때 나타나게 되는 어려운 점과 영적 공격들, 
그러나 그것을 이겨 냈을 때 유익한 점을 설명해주고 
끝까지 잘해 보자고 독려했다. 

처음 몇 주는 내가 진행했다. 첫날부터 거의 모든 학생들이 졸았다. 
평소에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본 적이 없는 청소년들이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통독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전 내내 졸기만 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아예 대놓고 자기 시작했다. 
자갈을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부어 놓는 것처럼 
쏟아져 나오는 성경 속독사의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으면 알아 듣지 못한다. 

그 소리에 익숙해지려면 최소 한 주간 정도는 걸렸다. 
처음에는 많이 피곤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들으려고 노력해야 빨리 익숙해질 수 있기에 
나는 간간이 힘껏 손뼉을 쳤다. (잠깨라는 신호)

그러면 꾸벅꾸벅 졸면서 앉아 있던 학생들이 후다닥 놀라 깨어나고 했다. 
다시 중간중간 손뼉을 치면서 찬양을 불렀다. 손뼉을 최대한 힘껏 치게 했다. 
온몸에 힘을 두 손바닥에 모아서 치게 했다. 
찬송가 한 번만 부르면, 두 손바닥이 얼얼 해지고 빨갛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졸았다. 유진이는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자다가 졸다가... 부엌으로 화장실로 들락거렸다. 

철명이, 인성이는 손뼉을 쳐도, 찬양을 불러도, 그때 뿐이었다. 
마치 수면제를 먹은 사람들처럼, 통독만 시작하면 비실비실 하다가 
쓰러져 깊이 잠들어버렸다. 

가서 잔등을 힘껏 때리면, 잠시 후다닥 깨어났다가는 
금방 눈의 초점이 풀리고 졸기 시작했다. 

심각한 병에 단단히 걸린 사람들 같아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통독 시간만 끝나면, 아이들은 두 눈에 영롱한 빛을 켜고는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고 떠들어 댔다. 

휴식 시간이 되면 무리를 지어 골목길로 몰려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여기저기에 꽁초를 버리는 탓에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왔다. 

저녁 기도회 시간에는 기도가 뭔지도, 왜 기도해야 하는지도 몰라 
잠시 앉아 있다가, 어느새 그 자리를 깔고 누워 
기도가 모두 끝난 후에야 일어나곤 했다. 

저녁기도회 후 일과가 끝나면, 곧바로 PC방이나 술집을 찾아 나갔다가 
밤을 새우고는 새벽에 되어서야 들어왔다. 

탈북청소년들은 인사를 잘 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도 인사하지 않았고
어른들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그저 건성으로 얼굴 한번 들어보고는 
다시 돌려 버렸다. 

친한 사람이면 그저 대충 웃어주는 정도였다. 
표정들도 다들 내일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들처럼 근엄한데다
말투도 거칠고 억양이 강한 북한 말들 뿐이었다. 

어른들이 열심히 섬겨주며 다가가 말을 걸어도, 대꾸도 잘 하지 않았고 
거만한 자세로 대했다. 때로는 막 화를 내고, 신경질도 부리자 
탈북자들을 처음 대하는 성도님들이 힘들어했다. 

매일같이 학교를 찾아 와서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해도 
모든 청소년이 무덤덤한 얼굴로 인사를 받지도, 하지도 않자
무서워하고 잔뜩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경계하는구나, 우리가 뭘 잘못했나?' 
'우리가 남한사람이라서 거리를 두나?' 

남한에서 오래 살아 인사성이 밝은 영려 전도사가 설명해 주었다. 
'아이고 아니에요. 우리 애들이 그만하면 다 착한 애들이에요. 
여러분을 미워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우리 북한에서는 인사를 하지 않아요. 
여기서는 이상하게 어제 만났다가 오늘 또 만나도, 자꾸만 인사를 하네요. 
북한에서는 한 1년쯤 헤어졌다가 만나야 인사를 해요.' 

그제야 이들의 태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섬기는 분들은, 아이들의 태도와 상관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적극적으로 인사했다. 

학교로 들어 올 때면, 일부러 '안녕, 안녕 유정아! 안녕?' 
'권철아 오늘은 기분이 어때?' 하고 이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때마다 통독반 학생들은 못 알아듣는 사람들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쳐다보기만 하거나 얼굴을 돌려 버렸다. 

천지 사방을 홀로 뛰어다니면서 되는대로 거칠게만 살아가던 탈북청소년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 자랑스럽게 혈기를 부리면서 살기 시작했다. 

광철이는 노란 장발을 하고 왔다. 
유진이는 똥싼바지에  *바지 엉덩이 부분이 아래로 축 처진 바지 
가슴 한복판에 입을 크게 벌리고 음산하게 웃는 큰 해골을 달고 왔다. 

광수는 할아버지들이 쓰는 중절모를 쓰고 나타났다. 
다들 살면서 처음 해보는 공동체 생활의 규칙과 통제로 인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곧바로 아무에게나 면도날 같은 말들을 뿌려 댔고 
서로 베이고 분노하고 싸우면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예배시간에 패싸움이 일어났다. 인천에 사는 남학생이 한 여학생을 희롱하다가 
그의 남자친구와 시비가 붙었다. 

인천에서 온 학생들이, 무리로 그 남학생을 몰아붙이다가 패싸움으로 번졌다. 
서로 고함을 지르고 날 뛰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전쟁터에 영웅처럼 되고 싶어했다. 

전도사들도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다. 
그 사이에 한 여학생이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와서야 가까스로 싸움을 그만두었다. 

 

순교 선생은 성질이 급했다.
거기에다 북한에서 군인생활을 10년 이상 했던 사람이라 
칼처럼 모든 것이 분명해야 하고, 철도가 있어야만 했다. 
절대로 뭔가를 봐 준다는 것이 없었다. 녀석들이 졸면 봐 주지 않았다. 
깨어날 때까지 손뼉을 치다 보니, 쉴새 없이 손뼉을 쳐야만 했다. 

막무가내로 잠들어버리는 녀석들 때문에, 옆에서 열심히 통독 하던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참고 참다가 결국 뚜껑이 열려버린 인철이 형제가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아~ 거 손뼉 좀 치지 마시오.' 
안 그래도 깨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 녀석들 때문에 
열이 잔뜩 받아 있던 순교 선생이 꽝 하고 폭발해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 심하게 다투었다. 
통독 시작부터 선생과 학생이 싸워버리니 난감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아무리 졸아도 손뼉을 치지 않기로 합의했다. 

탈북자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다같이 거칠고 공격적인데다 질투도 많았다. 
인사성 밝고 어른들과 친하려는 여학생이 있으면 
다른 여학생들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너는 어른들에게 그렇게 알랑 거려서 뭐 하냐? 너 그만 까불어!' 
뒤에서 서로 험담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들키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났다. 

유정이와 순실이 이모가 한바탕 붙었다.
별 말이 아닌 걸 가지고 말싸움이 붙었다. 

순실 이모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나운 중년이다. 
성질나면 눈에 불을 켜고, 앞뒤 가리지 않고 온갖 욕을 다 퍼부어댔다. 

그 거친 남학생들도, 순실 이모가 한 번 눈을 부릅뜨면 다들 기가 주고 도망갔다. 
독오른 고양이가 무기력한 토끼를 사정 없이 마구 두들겨 패고 할퀴어 대듯이 
순실 이모는 유정이에게 온갖 상스러운 욕을 퍼부어댔다. 

유정이는 몇 마디 대꾸하다가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화장품을 땅에 팽개치고 엉엉 울면서 뛰쳐나갔다. 
통독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앞으로 안 한단다. 

배짱 좋은 남자들도 떡이될 정도의 폭언으로 난타를 당했으니 이해가 되었다. 
성근 선생이 유정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차근차근 상담을 했다. 
'힘들지? 억울하지? 막 때려 주고 싶지?' 
유정이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숙이고 말을 못 했다. 

'이기는 방법 가르쳐 줄까?' 
성근 선생이 재밌는 구경하듯이 유정이를 보며 짓궂게 물었다. 

유정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 순실이모 이기지 못해, 저가 어떤 사람인데... 
그러니까 다른 방법을 써 봐' 

유정이가 찌푸린 눈을 내리깔고 물었다. '그게 뭔데요?'
'말 씨름으로 순실 이모를 이기려고 하지 마! 이긴다고 해도 아무 의미 없어! 
네 마음 속에 있는 선함으로 악한 기운을 이겨 봐! 
내가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볼래?' 

성근 선생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지금 네 마음 속에 있는 분노가 너에게 많은 것을 원하고 있을 거야. 
온갖 복수할 방법과 이유를 설명해 대겠지.
그것은 네가 아니야, 우리 인간을 우롱하는 어둠의 영이거든! 
그 자의 음성과 딱 반대로 행동해 봐! 

순실 이모에게 가서 복수 하지 말고, 오히려 그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해 봐!
나가서 커피 한잔 사서 순실이모이게 주면서 네가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해 봐 
그러면 왼뺨 맞으면 오른 뺨을 대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될 거야!' 

유정이는 그렇게 했다. 차 한 잔을 사서 들고 왔다. 
순실이모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통독하고 있었다. 

유정이가 다가가 차를 드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이모 미안해요.' 
통독 하던 사람들이 다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순실이 이모도 놀란 눈으로 유정이를 보다가 안아 주면서 화해했다. 
오후에 유정이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선생님, 진짜 쑥스러웠지만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게 어떤 건지 해보고 싶어서 했어요. 
정말 기뻐요. 악한 영이 우리를 농락했지만, 나는 악한 영을 이기는 방법을 얻었어요.' 

이후로도 크고 작은 전쟁은 매일 일어났다. 
작은 농담에도 총알같은 경고가 날아다니다가 결국은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5장 애들 간뎅이 키우라 

통독 학교 겨울 수련회는 강원도로 가서 스키를 타기로 했다. 
다들 '스키? 그게 뭐야?' 하는 눈으로 따라왔다. 

김광신 목사님과 사모님도 함께 해 주셨다. 
마침 그날은 김목사님 생신이라, 서울은혜교회 목사님부터 
미국은혜교회 당회장 목사님까지 나서서, 피곤하실 텐데 가지 마시라고 
만류했지만 김목사님은 계속 아이들과 함께 하셨다. 

통독반 학생들에게 김광신 목사님은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였다. 
그날이 그 할아버지의 생신 이라는 것을 알고, 
아이들은 케이크 사 오고, 축복 송도 불러 드리면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김목사님은 그 애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웃으시며 지켜보고 있었다. 

수련회 마지막 일정은 스키장 이었다. 다들 스키는 처음이었다. 
성철이가 투덜거렸다. '난 스키 타기 싫어! 쪽발기 타고 싶어요.
선생님, 쪽발기 타러 가면 안 됩니까?' 
북한에서 타던 '쪽발기'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쪽발기는 두발을 모아서 쪼그리고 앉으면, 딱맞는 크기의 작은 나무판자 아래에 
한 뼘 정도의 두꺼운 철판을 칼날처럼 세로로 세워서 붙인 '외날 썰매'이다. 

날이 외날이다 보니, 그 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쪼그리고 앉아야 한다. 

양손에 스키 폴대 같은 나무 지팡이로 균형을 잡으면서 밀고 다니면 
스케이트 만큼은 아니라도 제법 빨리 달리고 신이 났다. 

그러니 학생들은 마지못해 스키장으로 가기로 했지만 
여기저기서 스키를 타지 않겠다고... 다들 비호감이었다.
여학생들은 '무서울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물론 호기심에 빨리 스키 타러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도 일부 있었다. 

스키장에 도착해서, 나는 스키강사 한 분을 모셔왔다. 
먼저 강습을 받게 할 계획이었다.

학생들은 익숙하지 않은 스키며 장갑을 착용한다고 부산을 떨다가 
장내가 소란해서 지시를 듣지 못한 모양인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 위로 오르르 올라가 버렸다. 

스키 강사는 할 일 없이 서성거리다가 돌아가 버렸다. 
아침에는 다들 오지 않는다고 뻗대던 녀석들이 
정작 스키장에 와서는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신나게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빨리 타고 싶어 마음들이 급해졌다. 

'스키는 배우고 타야한다'는 나의 고함소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다들 코스로 올라가버렸다. 

성철이와 광철이는 프로 스키선수들이나 올라가는 제일 고급 코스로 올라가버렸다. 
그들의 뒤를 따라 남학생들이 따라 올라갔다. 

나도 잔소리를 해대다가 녀석들의 꽁무니를 좇아 올라갔다. 
스키를 처음으로 만난 겁도 없고 상식도 없는 엉터리 청소년들 한 무리가 
출발 코스에 왁자지껄 떠들어대면서 나타났다. 

내려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급경사를 향해, 이 엉터리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덤벙덤벙 뛰어들어 내려갔다. 성철이는 조금 내려가다가 그대로 뒹굴뒹굴 
구르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못하고 계속 뒹굴며 내려갔다. 

다른 녀석들도 다 그렇게 뒹굴며 내려갔다. 
애들이 뛰어들기에 나도 덩달아 뛰어들었다가, 애들과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몇 번 뒹굴고는 엉덩이로 썰매를 타면서 내려왔다. 

 

사방에서 굴러다니고 쳐박히고, 엉덩이로 썰매를 타 버리는 사람들로 
슬로프가 뒤덮히자, 빠른 속도를 즐기는 스키어들은 
슬로프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 보기만 했다. 

썰매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의기양양하게 뛰어들었던 광철이는 위기에 몰렸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무서운 속도가 붙은 스키가 
생각처럼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다. 

광철이는 쏜살같이 직진으로만 내려가다가 둘레 쳐놓은 안전그물 속으로 
그대로 날아들어가 쳐박히고 말았다. 그물에 빨래처럼 널려 버린 광철이를
건져냈더니 다리도 팔도 다 부러졌다. 

주변에서 구급차를 불러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자 
광철이 시끄럽다고 손을 휙휙 저으면서 간신히 기어 내려갔다. 
광철이는 그 후 몇 달 동안 절뚝거리면서 다녔다. 

여학생들도 빨리 타고 싶은 마음에 강사를 팽개치고 올라갔지만 
남자들처럼 무모 하지는 않았다. 경사가 완만한 초보 코스에서 
하루종일 엎어지고 자빠지고 뒹굴면서 다들 그런대로 스키 타는 법을 대충 터득했다. 

다들 집사님들과 전도사님 들이 만들어 준 저녁을 먹은 후 
지치지도 않았는지 또 탄다고 스키장으로 달려갔다. 

김광신 목사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황금종교회 건물을 지어야 해, 돈이 얼마나 들지?' 

나는 큰숨을 한번 내쉬고 천천히 말했다. 
'한 20억 원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 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셨다. 
'부담스러우시구나, 내가 너무 많이 불렀나?' 

한동안 뜸을 들인 후 김목사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입을 좀 크게 벌리지?' 

나는 뭔가에 띵하고 얻어맞는 것 같았다. 
목사님이 다시 말씀했다. 
'밑에 사람들 간뗑이도 좀 키워라!' 

나도 나름대로는 북한선교 영역에서 간이부었다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살았고 
배짱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다. 
하지만 이 때부터 한없이 작은 나를 느껴야만 했다.

홍우철 장로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김광신 목사님이 남미 선교를 시작하실 때였다. 

아르헨티나에 가셔서 남미지역 수 백 명의 선교사들을 모아놓고 물으셨다. 
'우리가 뭘 좀 지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지원하면 될까요?'

남미 각 지역 선교사님들이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말씀했다. 
'우리 교회는 주차장이 필요합니다. 
교회 앞에 있는 작은 공터를 구입 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우리 교회는 지붕이 너무 낡아서 교체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동부 교실이 필요합니다.' 

김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같이 가신 분에게 물으셨다. 
'이 나라에서 제일 좋은 식당이 어딘지 아시죠? 안내해 주세요.' 

시골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이 그 나라에서 제일 좋은 고급식당으로 안내되었다. 
가격표를 보니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한 사람의 한 끼 식사 비용이 39불 이상이었다. 

그 돈이면 당시 아르헨티나 노동자 반달 지 월급이라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나라의 국회의원들, 유명한 영화배우들, 장관들이 눈에 띄었다. 

다들 기가 죽어 버렸다. 들어 오지 말아야 할 곳을 들어온 사람들처럼 
한인 선교사들은 숨을 죽였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한 시간쯤 보내고서는, 식당을 전세라도 낸 것처럼 
왁자지껄 떠들면서 신나게 먹고 놀다가 나왔다. 

식당에서 돌아온 다음 김광신 목사님이 다시 이 분들을 모아놓고 물으셨다. 
'우리가 뭘 해주면 되겠습니까?' 

선교사님들이 빛나는 눈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우리 지역을 완전히 복음화 하겠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교회는 많지만 신학교가 없습니다. 신학교 가 필요합니다.' 

그제야 김목사님이 웃으셨다. 
함께 따라갔던 분들도 고급 식당에 들어가셨던 목사님의 의도를 읽었다. 

김목사님은 단돈 39 불로 사람의 마음을 바꿔 놓았다. 
그들의 낮은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홍우철 장로님은 이야기의 끝에 이런 말씀을 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할 만큼 큰 분입니다.' 

처음 은혜교회 성전을 건축할 때의 일이었다. 
김목사님이 교회 재정 집사님과 함께 교회 건축을 위해 부지를 사려고 
땅을 보러 가셨다. 재정 집사님이 보니 1,400만 불짜리 땅이었다. 

당시 은혜교회 건축예산은 총 3만불이었다. 
아무리 봐도 살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그런데 김목사님은 열심히 둘러보시면서 이것저것 계획을 하고 계셨다. 
답답해진 집사님이 말씀드렸다. 
'목사님, 지금 우리 교회 예산 잔액이 3만불 이라는 걸 알고 계시나요?'

김목사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 하셨다. 
'김집사, 하나님이 자네 호주머니 보고 일하시겠나?' 

김 집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얼마 후 그 땅은 은혜교회 건물부지로 매입되었다. 

김목사님은 말이 없으신 분이셨다. 
일주일 내내 함께 다녀도 두 마디 이상 안 하실 때도 많았다. 

하지만 통독 학교에 오실 때는 달랐다. 
북한 청소년들에게 큰 꿈을 심어주려고 많은 말씀을 하셨다. 

김광신 목사님이 통독반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러시아가 처음으로 문이 열려 그곳에 들어갔을 때 
그 곳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꿈이 없는 것이,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서 정말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고 계속해서 가르쳤습니다. 

얼마 후 그 청소년들은 점차 다들 큰 꿈을 가지게 시작했읍니다. 
변호사가 되고, 나라의 장관이 되어, 하나님의 큰 일을 하려는 꿈들을요.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요. 

러시아 선교 20년이 지나자, 그때 그렇게 큰 꿈을 가진 청소년들 대부분이 
그 꿈을 이루어 냈습니다. 여기 통독반 학생들도 큰 꿈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꿈을 꾸는 청년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꿈을 꼭 이루어 주십니다.」 

통독반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꿈을 꾸기 시작했다. 
'나는 북한의 가장 큰 고아원에 세웠으면 좋겠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평양에 신학교를 세울 거야' 
'오대양 육대주를 뛰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될 거야' 
'그래 내가 일할 곳은 세계야!' 

너무 거창한 그림인 것만 같아 당당히 꺼내지는 못 했지만 
다들 김 목사님 앞에서는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김목사님은 좋아하시며,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꺼내 놓은 꿈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 공개하였다. 그리고 간곡히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꾸는 꿈은 꼭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꿈을 크게 가지세요.' 

통독반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하늘의 꿈을 그리고 있는 동안 
학교에 좋은 일이 생겼다. 

미모의 서울태생 자매가 순교 선생과 결혼하기로 작심하고 
통독 학교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순교 선생은 40대 후반 이었지만 가정이 없었다. 
젊어서는 신학공부를 하느라 여유가 없어 혼기를 놓쳤고 
이제는 나이까지 많아졌기에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전설에서나 들었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현실에서 본다고 생각했는지 
통독반 학생들의 눈이 있는 대로 커지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그 여자분이 전도사님 이시고 영어강사도 하시고 피아노 강사도 하셨대!'
'이야~ 순교 선생님 꿈을 너무 크게 꾸는 거 아이가?' 

여학생들도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말했다. 
'이건 분명히 꿈이야! 그러니 제발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니야 하나님과 함께 꾸는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어! 
우린 꿈을 미래에 그리고 있었는데 
순교 선생님은 급하시니까 현실에다가 그렸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