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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8장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LNCK 2023. 3. 11. 22:27

[하루 한 장] 사무엘상18장_다윗을 사랑하였으니 - YouTube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삼상18장            설교녹취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인데, 검토가 필요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친구로 사랑한게 아니라, 자기의 주Lord 로 섬겼다

 

삼상17장에서 다윗은 말도 안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 보면 골리앗을 제압한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엉뚱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골리앗은 덩치는 컸지만, 그의 직업은 장수가 아니라 
'싸움 붙이는 자, 싸움 돋우는 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17:4

그는 장수가 아니라고 했죠. 키는 3미터였지만 
그의 온몸을 다 무거운 갑옷으로 가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싸우기는 더 좋지 않은 형국이었죠. 

그러니까 거대해 보이지만, 힘은 없는.. 
겉은 대단해 보이지만 속은 알맹이가 없는 
그런 허황된 모습이 바로 골리앗이었죠. 

반면에 다윗은 어땠습니까? 다윗은 목자였는데 
그 목자는 언제든지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맹수를 상대해야 되기 때문에, 
양을 노리는 곰도, 사자도 한번에 물리치는 물매가 있었고요. 

그리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늘 양들을 지켜내는 그 목자는 
오히려 더 실전에서 단련된 사람인 것이죠. 

하나님은 실전으로 단련된 다윗을 사용하셔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정말 다윗이 운이 좋아서, 던진 물매가 골리앗을 죽인 거였다면 
그 이후로 다윗은 아무것도 못 해야 정상아닙니까? 

그런데 본문 삼상18장에 보면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친 전쟁영웅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군대장관으로 천부장으로 승승장구합니다. 

이제부터 계속해서 전쟁터에서의 그의 활약은 점점 더 눈부시게 발전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어쩌다 우연히 이긴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18: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자, 이 말은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온 다윗이 너무나 대단해서 
사울이 그를 부른 거예요. '너 대체 누구냐?' 그랬더니 

'저는 이새의 아들입니다' 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이렇게 성경에 기록합니다. :1

여러분 우리가 흔히들 '다윗과 요나단' 그러면 
우정관계, 친구 관계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다윗과 요나단 처럼 '좋은 친구가 되자!' 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일까요?

여러분 성경은 동화책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참 많은 우정의 이야기가 있죠. 

뭐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발견했는데, 금덩이 때문에 서로 마음에 자꾸 욕심이 

생기니까, 차라리 그것을 강물에 버렸더라... 
이런 정말 수많은 친구들의 우정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 친구들의 스토리가 훨씬 더 감동적이에요. 

이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에 비교하면
별로 감동적이지 않아요. 내용을 보면 덜 감동적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리는 '성경에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요나단과 다윗의 이야기를 '친구, 우정의 표본'처럼 말하는 걸까요?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다윗과 요나단은 친구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눈 관계가 아닙니다. 어떤 관계였나요?

1절에 말씀하기를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서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다' 이 말은 친구 삼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친구를 삼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명만큼 사랑 할만한 왕을 
요나단은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사랑하셔서 보내주신다는 왕이 누군가?' 
자기 아버지지만 사울이 아니라는 걸, 요나단은 잘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블레셋이 골리앗을 보내서 40일 동안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민족을 모욕하고 있는데, 
자기 아버지 사울 왕은 무서워서 싸우러 나가지도 못해요. 
싸우기는커녕 고개도 못 내밀어요. 

여러분 요나단이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전쟁은 숫자에 있지 않다'는 믿음이 있어요. 
적어도 요나단은 그런 믿음이 있단 말이죠. 

그래서 자기 혼자서 나가서 블레셋 군대를 쳤던 사람이 요나단입니다. 
그 요나단에게 숫자는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죠. 

그런데 자기 아버지 사울은 어떤 사람이에요? 힘의 철학이에요. 힘! 
자기보다. 힘이 없어 보이면 막 가서 이기고 
힘이 강해 보이면 두려워서 못 싸우고... 

그러니까 사울은,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왕이 아니라는 것을 
요나단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자기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다윗이 나타난 거에요. 
다윗은 적이 나보다. 세냐, 약하냐.. 를 따지지 않아요. 
힘의 논리를 필요하지 않아요. 믿음의 논리만 있었어요. 

'하나님의 함께 하시면 내가 이긴다' 라고 하는 믿음으로 
다윗이 나가서 골리앗과 싸우는 걸 보고.. 요나단은 깨달은 것입니다. 

'아~ 이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차기 왕은 
우리 아버지 사울이 아니라 저 다윗이구나!' 

그래서 그를 마음을 다하여 다윗을 사랑하고 
자기 '생명 같이' 사랑했습니다. :1

'생명'이란 말은 어디에 씁니까? 왕에게 쓰는 말입니다. 
'내 생명 같이 저 왕을 보호하겠다'라고 하는 신하의 마음, 
충신의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1절에 이어, 3절에 한번 더 강조하죠. '생명 같이 사랑했다'
'왕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었다' 

여러분 언약을 누가 맺어요? 친구랑 친구사이에 언약을 맺습니까?
성경에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성경에 개인과 개인이 맺은 언약은 여기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언약이 과연 친구 간의 언약이냐? 
친구간에는 언약을 맺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면 돼요. 

그런데 다윗과 요나단이 왜 언약을 맺습니까? 
왕과 신하가 군신 간의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요나단이 '나는 앞으로 당신을 왕으로 섬기겠습니다. 
당신은 나를 보호해 주소서!' 이게 언약의 내용입니다. 

정확한 언약의 내용은 4절에도 나오게 되는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여러분 교회학교에서 이 부분을 설교하면서 
'요나단이 너무나 친구 다윗을 사랑해서 
자기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친구에게 주었다' 
라고 설교하는 경우가 너무 많이 있어요. 

그러면서 '여러분의 친구에게 뭘 줄 수 있을까요?'
그러면 '아이들이 연필요, 장난감요, 과자요..'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여러분,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줍니다. 군복을 줍니다. 
이거는 왕자의 겉옷이에요. 왕자의 군복이에요.

왕자와 이 신하는 전혀 옷이 달라요. 
지금 요나단이 겉옷을 주었다, 군복을 주었다 하는 이야기는 
왕자의 신분을 주는 것입니다. 

게다가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다' 자기 무기를 줬다는 거죠. 
무기를 주었다는 것은, 고대시대에 
자기의 상관에게 줍니다. 충성을 맹세하는 표시입니다. 

칼을 드리면 '당신이 내 목숨을 가지십시오' 라는 의미로 칼을 드리는 거예요. 
게다가 여기 이 칼이 어떤 칼입니까? 이게 그냥 칼이 아닙니다. 

이 칼이 어떤 칼이냐면, 그냥 칼이 아니라 
그냥 많은 칼중에 하나를 다윗에게 드린 게 아니라 
사울과 요나단만 갖고 있었던 칼입니다. 13:22

블레셋과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었고, 당시 이스라엘 진영에 딱 두 개밖에 없는 칼이었어요. 

왕과 왕자외에는 아무도 칼이 없었어요. 
이때 다른 사람들은 뭘 가지고 있었나요?

13: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블레셋에 벼리러 내려갔었다)'

그냥 농기구 가지고 싸웠단 말이에요. 
그런 와중에 요나단은 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칼로 블레셋에 혼자 들어가서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죠. 

그 승리의 상징인 칼을 지금 다윗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나단이 다윗에게 주는 칼과 군복과 겉옷은 
왕자의 상징이면서, 이것은 다른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왕자밖에 없는 칼과 군복이에요. 

그 칼을 다윗에게 드려요. 왜요? 
'이제는 당신이 나의 왕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 당신의 신하입니다. 당신의 종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왕자고 당신의 신하이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왕이고 나는 신하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거에요. 

아버지 사울이 왕의 자격이 없음을 누가 제일 먼저 알아봤나요? 
아들 요나단이 제일 먼저 알아 본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승리가, 하나님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옮겨간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매 점점 강해져 가는 다윗

 

5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

5절은 다윗이 군대장관이 됐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군대에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그냥 우연히 한번 던진 돌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다면 
절대로 오를 수 없는 자리입니다. 

다윗을 군대장관으로 삼았는데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백전노장들이 보기에도 
전혀 다윗은 군대장관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윗이 
이스라엘 정치계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모습을 볼 때 
다윗이 그냥 물매질을 잘하는 소년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까지 준비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그 사람의 인품이 그 실력에 미치지 못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정말 인간 됨됨이가 뛰어나지 못할 때 
그 사람은 기술만 가지고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다윗은 지금 미천한 신분, 목동 출신이죠.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군대 장관이 되어서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통솔한다? 
여러분 그걸 그냥 사람들이 보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실력만이 아니라, 인품도, 믿음도 훌륭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어떠한 신하들이 봐도 흠잡을 데가 없는 거에요. 

그냥 어디서 나타난.. 계파도 없고, 아무런 줄도 없는 이 다윗이
군대 장관이 되는데 누구도 이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뭘 보여줍니까? 
하나님께서 모두의 마음을 열어주신 거죠. 

하나님이 모두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이 다윗을 다음에 세울 왕이라고 하는 것을 심어주셨고,
백성들이 그것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여인들이 그 당시에 유행하던 유행가를 부른 거에요. 
그런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사울은 아주 불쾌한 거죠.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이미 여론이 넘어갔어요. 이미 백성들의 뜻이 넘어갔어요. 

여러분, 왕은 누구의 마음을 헤아려야 됩니까?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백성들이 길에 나와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무식한 백성들이, 아는 것이 없는 저 흔들리는 군중들이 
아무 소문이나 듣고 지금 아무 말이나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것이 백성들의 뜻이고, 백성의 뜻을 하늘의 뜻으로 깨달아야 
좋은 왕이 되는 것 아닙니까? 

이 당시에 사울은 뭘 깨달았어야 될까요? 
'아 이제 나는 왕으로서 여기까지구나' 라고 깨달았어야 됐어요. 

'아~ 나는 저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위협에 
사십 일 동안 꼼짝도 못하고 얼굴 한번 내밀지 못했던 나는 
더이상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없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저 백성들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고 있구나 
내가 저 백성들의 뜻을 존중해서, 지금 내가 왕의 직을 내려놔야겠구나' 라고 
결심하는 것이 맞죠. 그런데 그는 어떻게 해요?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라고 반응하죠. 
'불쾌하고 심히 노한다' 이 말은 뭐예요? 백성들을 무시하는 거죠. 

'내가 왕인데 자기들이 뭐라고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지?' 
그러면서 점점 더 교만하여, 점점 더 자기의 왕국을 견고하게 만들려는 
마음이 들어가는 거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이제부터 보다 더 적극적으로 다윗을 어떻게든 끌어내릴 생각을 하는 거죠. 
왜 주목합니까?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운 것을 사울도 알아요. 
알기 때문에 주목하는 거에요. 

'아~ 나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나갔는데 
그 영이 저 다윗에게 갔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기 싫으니까 
점점 다윗을 주목하면서 스스로 불쾌하게 여깁니다.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자 이 차이를 보세요. 왕이 악신이 들렸습니다. 
그때 다윗은 수금을 가지고 탑니다. 왜요? 
아름다운 찬양으로 사울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려고 하죠. 

그런데 사울의 손에는 창이 있어요. 
자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은, 평강의 사람입니다. 평강의 왕입니다. 

그래서 악령을 뭘로 다스려요? 수금으로 다스려요. 
아름다운 찬양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다스려요. 

그런데 그때 사울은 창을 들고 있었어요. 왜요? 
죽이려는 마음이 있는 거에요. 살해 의도를 가진 거에요. 

여러분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봐야 되는데 
하나님은 왜 왕을 세웠습니까? 
누군가를 죽이라고, 살의를 가지라고 왕의 손에 창을 쥐어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은 
진정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평강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평강을 얻으려고 들어온 가나안에 평강이 없었어요. 
그래서 기나긴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너무 오랜 (사사시대) 시간 동안 이스라엘은 평강 없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평강을 주시기 위하여 왕을 세우셨는데 
그 왕은 평강의 왕이 아니었어요. 

그 왕은 도리어 분노하고 불쾌해하고 죽이려고 하는 왕이었다는 것이죠. 

자 그래서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다윗이 몸이 빨라서 피했을까요?

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다윗이 몸이 빨라서 피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사울과 함께 계시지 않고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에 피했던 겁니다.
그래면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합니다. 왜 두려워해요?

이건 분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요. 다윗이 죽을 수밖에 없는 거리에요. 
그런데 그 창을 피했어요. 
'아 이건 사람의 피한 것이 아니구나. 
아 이건 내가 던진 게 아니구나. 
아 저건 사람이 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손을 막으시고 
다윗을 구원하셨구나..' 깨닫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죠. 

이것이 사울의 진짜 마음이었어요. 
사울은 다윗을 무시한 게 아니라, 다윗을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를 두려워한 것입니다. 

자 두려워하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를 왕으로 인정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죠. 

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아까는 뭐였어요. 군대장관 이었죠. 
근데 군대장관 에서 천부장으로 지금 갑자기 좌천을 시킨 겁니다. 

'너 군대장관 하지 말고 천부장이나 해'

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라는 말이 지금 반복해서 나오거든요. 
12절, 14절, 28절, 16:18절에 나옵니다.

이게 다 뭡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울 뒤를 잇는 
하나님을 섬기는 왕으로 세우신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렇게 많은 증거가 나타납니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을 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인정을 하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데 

사울만 인정하지 않는 것이에요. 
이제 자기가 하나님의 세우신 왕의 아니라고 하는 것을 
이제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고 하는 것을, 사울만 인정하지 않아요. 

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15~16절은 하나님이 세우신 진짜 왕을 바라보는 두가지 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은 그를 두려워하죠. 
근데 온 백성은 그를 사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 하나님의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람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 가지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에요. 

내 인간적인 욕심을 지키고자 하면, 하나님의 사람을 두려운 마음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기초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