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고난을 당하다 삼상19장 설교 녹취
◑서론
오늘 본문말씀은 세상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
하나님 나라의 왕(다윗, 우리 각자)을 어떻게 대우하느냐?
그래서 그 왕이 세상가운데서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되느냐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동시에 오늘 본문은, 그 왕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그러니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삼상19장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왕도
그리고 그 왕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백성도
그 삶에 고난이 있고, 큰 어려움이 있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 오늘 본문은, '고난이 있을 것이다.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라는
것만 말해주지 않고, 또한 그 고난 안에는 유익도 있을 것이다...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신비하게 도우십니다.
다윗이 받았던 고난, 혹은 우리가 받고 있는 고난이 얼마나 큰지를
1절을 한번 읽어 보시면,
19: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그 이전에는 그냥 궁에 있을 때, 사울과 다윗 둘이 있을 때,
사울은 블레셋을 통하여 은근히 다윗을 죽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대놓고 드러내놓고 죽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다윗이 받았던 고난은, 생명이 걸려 있는 거예요.
10절에, 사울이 단창을 던져서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해요.
이제 그는 '사울 앞을 피하였다'고 했어요.
11절에,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서 매복을 시킨 거예요.
그래서 밤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냐면 자기 딸 내 딸 미갈이 거기 있으니까!
난리치면 딸이 상처 받을까봐.. 그래서 밤에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다윗이 아침이 되어서 출근을 하는 길에 집에서 나올 때
그때 잡아 죽여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다윗은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집 대문 밖에, 여러 명이 칼 들고 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다윗이 생존과 관련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제 좀 잘 나가나 싶었는데' 양치던 자기가 사울 왕의 눈에 띄였고
골리앗을 죽임으로써 사람들의 주목도 받고
사울의 사위가 되면서 왕가의 이제 들어가게 되는...
그래서 군 사령관이 되기도 하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었는데
이제 그 상황과 함께 어려움이 찾아왔는데
자기의 생명이 걸려 있는 어려움들이 찾아왔을 때 다윗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시59편은, 이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표제어가 이렇습니다.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그러니까 시59편은, 오늘 본문 삼상19편의 상황
즉 다윗이 자기 집으로 숨었는데
사울이 전령들을 보내서 다윗을 죽이라고 했던 때에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 순간 다윗이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시59:1~4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내가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어 살펴 주소서'
밤새 집밖에서 자기를 죽이기 위하여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그 때에
다윗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여.. 이게 내 죄 때문이 아닌데
'피흘리기를 즐기는 저들에게서부터 나를 건져주십시오' 라고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59:14~17 '그들에게 저물어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다윗은 끝까지 하나님을, 마치 어린아이과 같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 나 지금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를 살려주십시오. 주님이 나의 힘이십니다.
주님이 나의 요새이십니다. 그러니 나를 보호해 주십시오.
나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고난 가운데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가장 큰 유익중에 하나는
바로 그(다윗)가 하나님을 의뢰하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우리 인생이 되어져야 할 모습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스펙도 쌓고,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어서
내가 이거 해결했습니다.. 라고 하나님께 자랑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주의 품에 안겨서
'주여,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지금 덜덜 떨려서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하나님만이 내 인생에 힘이 되시오니 나를 붙들어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은혜!
이것이 바로 고난 가운데서.. (그가 잘 나갈 때가 아니라)
그가 이렇게 낮아진 이 상황 속에서 주어진 은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큰 어려움속에서 다윗에게 있었던 가장 큰 유익,
가장 큰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라는 거죠.
여러분, 하나님 우리 삶 속에 살아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말씀하십니까?
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늘 말씀하세요.
그러나 이것을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그분이 내 삶 속에 함께 계시고
그리고 내게 역사 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야~ 다윗이 진짜 힘들었겠구나!'
이스라엘은 우리나라보다 좁은 공간입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왕이 지명수배를 내려버리니 얼마나 피가 말랐을까요.
사울이 단창을 던지니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기가 가는 곳마다. 따라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가 받는 어려움의 크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한번 쭉 보시면
어려움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냐가 훨씬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죠.
▲먼저는,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도우셨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완전히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했어요.
생존이 걸려 있는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1) 놀랍게도 4~5절을 보면, 옳은 말을 하는 옳은 사람(요나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다는 것을 보게 돼요.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지금 요나단은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가 지금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바르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옳게 이해하고 있어요.
지금 자꾸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꾸 시기심 때문에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에게 '아버지는 왕이시다. 다윗은 아버지의 신하입니다.
('에베드' : 신하도 되지만 종으로 더 자주 쓰이는 말)'
당신은 높은 왕이고, 다윗은 아무리 높이 올라가려고 해도 신하다. 종이다'
라고 올바르게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가 왕께 득죄하지 않았다. 그가 왕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했냐?
왕위를 찬탈하려고 했냐?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 않느냐?
그는 아버지께 유익되는 일을 했다'라는 거예요.
5절에도 보면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을 죽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위하여' 가 아니고
'당신 Saul 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큰 구원을 이루셨다
그리고 당신도 기뻐했지 않느냐' 라고 말하면서
구구절절 옳은 소리, 바른 소리를 하면서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금 도와주고 계십니다.
2) 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시는데, 즉 다윗을 도우시는데,
12절에는 미갈이 등장합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입니다. 그가 다윗을 창을 통해 아래로 달아내렸어요.
밤에 문밖에서 전령들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미갈이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 밤에 도망해야 된다 라고, 창문으로 내려 주었어요.
그의 도피를 도운 것이죠.
그런데 미갈은, 성경에 그리 우호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갈은 거짓말을 하는 옳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했어요. 18:20
그렇지만 미갈은 우상을 섬기는 자였어요.
다윗이 자고 있는 척하는 모습으로, 침상에 우상을 숨겨서 이불로 덮어놨는데,
그 우상은 예전 성경에나 원전에는 '드라빔'으로 나옵니다. 19:13
드라빔은 '가정 수호신'의 우상이죠.
과거에 라헬도 드라빔을 숨긴 적이 있었죠.
라헬의 것은, 낙타 안장 밑에 숨길 정도로 작은 것이었지만,
지금 미갈의 것은, 사람으로 오해할 만큼 큰 것이었어요.
드라빔을 가지고 있으면, '그 가정에 지배권을 가진 자'라는 것을 의미해요.
라헬이 그 가정의 재산권을 내가 이어받을 것이라는 욕심이 있어서,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쳤던 거예요.
아마 미갈도 그때 당시에 가장 인기를 얻었던 언니 메랍보다 더,
그리고 다른 형제들보다 더
그 왕가에서 내가 이 가정에 머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아마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그래서 미갈은 우상을 가지고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리고 25:44절로 넘어가보면요. 결국 이 여인은 어떻게 됩니까?
사울이 그의 딸 다윗의 아내 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내로 줘 버려요.
그러니까 다른 이의 아내가 되어 버려요.
근데 결국 또 나중에 다윗이 왕위를 이어받고 난 이후에 미갈을 되찾아 와요.
그렇지만 나중에 삼하6:16절에 보면,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삼하16: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그러자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다윗이 다시는 미갈을 보지 않아요. 동침하지 않습니다.
씨를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갈을 '다윗의 아내'라고 표현하지 않고
'사울의 딸'이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죠. :23
어쨌든 미갈이라는 여인은 의로운 사람은 아니에요.
그래서 본문 14절에 보면, 그가 다윗을 살리기 위해서
사울이 보낸 전령들에게 '그가 병들었느니라'하고 거짓말을 했죠.
그리고 다윗이 도망간 사실을 알고 사울이 화가 났거든요.
17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다윗이 하지 않았던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옳은 말을 하고 있는 옳은 사람을 통해서도 *요나단
다윗을 건져주시고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거짓말을 하는 옳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미갈
하나님이 다윗을 도와주시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3) 지금까지 잘 등장하지 않았던 한 이름이 등장하는데요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라마 나욧에 사무엘이 살고 있었습니다.
라마는 사울의 활동 무대인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선지자 사무엘의 고향이자, 그의 활동 중심지이죠.
'나욧'은 '거처', '거주지', '초원지대' 등의 의미를 가지는데
오늘날의 기숙사와 같은 숙소 시설을 가리킵니다.
(즉 '나욧'은 사무엘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드는 제자들을 수용키 위해 세운
기숙 시설을 가리키는 특수한 명칭이죠.
'나욧'은 단순한 기숙 시설 이상의 '교육의 집' 또는 '선지 학교'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죠. 사무엘은 역사상 신학교를 제일 먼저 세운 사람인 거죠)
사무엘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실 때에
-옳은 말을 하는 오르는 사람을 통해서도 다윗을 도와주시고
-거짓말을 하는 옳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다윗을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거룩한 사람을 통해서도 다윗을 도와주시면서
그를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셨다.. 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어요.
4) 그런데 본문은 한 단계 더 나갑니다.
이제 라마 나욧까지, 사무엘이 있는 곳까지
사울은, 전령들을 보내고 군사들을 보내서 다윗을 잡으려고 했을 때
세 번이나 하나님의 영이 친히 임해요.
그래서 다윗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영에 취해 가지고
중얼중얼 중얼거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그것도 3번 씩이나!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죠.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그러다가 사울이 화가 나서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사울이 직접 선지학교가 있는 라마 나욧으로 직접 내려와요.
'내가 잡아 죽이겠다!' 라고 하면서요.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라마 나욧에 온 사울이 사무엘 앞에서 왕복을 벗었어요.
그리고 예언하면서 바로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워가지고...
아마 입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사울이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다윗을 도와주셨고
급할 때는, 하나님이 친히 다윗을 도와주심으로써
다윗이 그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큰 하나님의 도움을 만나게 되었고
다윗은 왕위에 앉기 전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 개인 간증
사람이 각자 살다보면 특별한 해에, 특별한 때를 만나게 되죠.
제게 있어서 2008년은 참 특별한 해입니다.
왜냐하면 2008년에 저는 신학대학원에 가서 전도사, 사역자가 되었고요.
2008년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요.
2008년을 마무리하기 전에는 저희 집안에 첫번째 모태신앙인,
아들이 태어났던.. 그래서 제가 아빠가 되었던 해가 2008년 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이 아니었고, 아내도 모태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에 첫 모태신앙인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게 저는 너무 기뻤죠.
구원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사역자로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서
사실은 삶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결혼 전에 제 아내가 직장에서 돈을 잘 벌었습니다.
물론 돈 때문에 아내와 결혼한 건 아닙니다.
7년을 연애하면서 늘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러나 돈 때문에 결혼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사역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역자를 먹이시고 입히시는지 한번 보자!'
그래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었던 돈을 다 제로로 만들었습니다.
뭐 있었던 적금이라든지, 보험이라든지.. 다 정리하고
우리가 쌓아놨던 돈을 다 정리하면서 나눠주고.. 그래서 제로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정말 우리를 먹이시는지 입히시는지 한번 보자!'
하나님의 대해서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2008년에 저희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첫 사역을 제가 시작했었습니다.
처음에는 30만원, 그리고 50만원 그리고 나중에는 60만원 받으면서
이렇게 사역을 시작했는데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60만원 가지고 세 식구가 사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도 해야 되죠. 건축헌금도 해야 되죠. 감사원금도 해야 되죠.
학비도 내야되죠. 밥도 먹어야 되죠.
거의 상식적으로는 되지 않는 삶이지만, 제가 여기 서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상황 속에서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아내가 배가 이렇게 불렀을 때, 저희집 근처에 홈마트가 생겼어요.
하루는 신장개업 세일 한다고 해서, 밤에 아내와 구경하러 갔는데
아내가 과일코너 에서 계속 서성이는 것입니다.
제 기억에는 사과같은데 꼭 마치 선악과를 잡는 하와처럼
그걸 집었다가 놨다가, 들었다가 내려놨다가...
제가 그때 참 철이 없었죠. 돈이 없는지도 모르고
'먹고 싶으면 사!' 그랬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아니야~' 하고, 그냥 아무것도 못 사고
그냥 구경만 하고 나왔어요.
근데 그 다음 날 오전에 아침에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연락도 잘 안 하던.. 예전에 한번 같이 선교여행을 떠났던 집사님이
아침에 뜬금없이 전화가 와서, '전도사님 잘 계세예?' 사투리가 심한 분이셨죠.
근데 그날 새벽 꿈에 제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게 전화를 했던 거죠.
'전도사님, 혹시 필요한 거 없어예?' 그러더라고요.
필요한 게 너무 많았지만, 그런데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몇 년 만에 전화 온 분한테 '뭐가 필요합니다!' 이런 말 못 하죠.
그래서 '필요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끊었어요.
안부 전화인줄 알았어요.
근데 그 분이 오후에 또 전화가 왔어요. 잠깐 길에 내려와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려갔더니 택시가 한 대 서 있어요. 뒷 좌석 문을 열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열어 보니까 거대한 과일 바구니가 거기에 실려 있더라고요.
전화로 '그냥 드시소!' (그 분이 과일바구니만 택시에 실어서 배달하듯 보낸 듯)
그래서 제가 그 무거운 걸 이제 집에 들고 들어갔어요.
(마트에서는 과일을 못 샀지만, 하나님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과일을 주셨어요)
하여튼 아내가 이제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그 과일을 막 먹는데
저는 몰랐어요. 그 전날 밤에 그렇게 그게 먹고 싶었는지...
저는 임신도 안 해 봤으니가, 그걸 잘 모르죠.
근데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나봐요.
근데 하나님께서 그 다음 날 집사님을 통해 과일을 보내주셨던 거죠.
'이건 내가 손댈 게 아니다' 싶어서, 제가 빼앗아 먹지도 않고,
그저 아내가 먹는 것을 지켜 보고만 있었어요.
△또 다른 경우인데, 그때 그 교회 바로 앞에
"북한 빼고 남한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 이런 간판이 붙어 있었어요.
제가 그게 또 그렇게 먹고 싶었어요.
좀 그렇죠. 뭐 좀 거룩한 소원이 아니지만
물질 훈련 받을 때는, 그런 것들도 소원이 돼요.
'저 치킨 한 마리 진짜 먹고 싶다..' 그런데 돈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뜬금없이 어떤 분이 우리 아이 기저귀를 제게 선물한 거예요.
근데 남자 아이인데 여아용 기저귀가 온 거예요.
근데 그 앞에 마트에 갔어요. 남자용으로 바꿔야 되잖아요.
근데 거기서 카운터를 보시던 분이, 사실 제가 진짜 말하고 싶었거든요.
'돈으로 좀 바꿔주시면 안 되냐고'
근데 여기 가게에서 산 것도 아니니까 주저가 되었던 거죠.
근데 그분이 이렇게 보시다가
갑자기 '돈으로 바꿔드릴까요?'
제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말은 못하고... 주저주저 하면서 돈으로 바꿨어요.
그래서 아이 이유식으로 요만큼 소고기를 사서 준비하고,
남은 돈으로 "북한 빼고 남한에서 제일 맛있는 치킨"을 사서
아내랑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등록금을 낼 때마다,
하나님은 어차피 주실 것이지만, 그렇게 애를 태우게 하시고
그렇게 기도를 하게 하시고는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 학기에는 정말로 안 채워지는 거예요.
근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전도사님 이번에는 정말 안 됩니다. 이 기한을 넘기시면 퇴학 당하십니다.
그러니 휴학을 하세요.' 그 행정직원이 정말 간절하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기다리십시오. 알겠습니다. 이번 주 안으로 내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통장 확인하고, 잔고 확인하고
'하나님이 주시겠지' 핸드폰 보고 하는데도
그 다음 날까지 내지 않으면, 휴학계를 내야 되는 형편이었는데,
그 전날 밤에 10시 40분이었는가? 번호도 입력되지 않은 누군가의 문자가
'등록금 다 내셨어요?'
'아니요'
'제가 조금 드리고 싶은데..'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잘 알지도 못했고 친하지도 않았던 어떤 한 분이
등록금을 내주시겠다고...
근데 그분이 멋적이 하시면서
'제가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만큼의 금액만 얘기하셔서
제가 그걸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 통장번호를 알려드렸죠.
그 다음 날 통장을 확인해 보니까
정확하게 그 금액, 제가 채우지 못했던 그 금액이 거기 와 있었어요.
제가 신대원 2학년에 올라갔을 때는
사실 책값은 저에게는 사치였기 때문에
책을 사지 못하고 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봤는데
그걸 몰랐던 교수님이 저에게 한번 핀잔을 주셨고
반 전체에서 수모를 당하고 속이 상했던 그때
그 다음 주부터 임혜경이라는 분이.. 얼굴을 아직까지 못 봤어요.
'가난한 신학생 도와주고 싶습니다.' 하면서
책값으로 매달 졸업할 때까지 십만원씩 그렇게 보내주셨어요.
졸업하는 그때부터 딱 끊겼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했던 분들..
지금은 그런 일들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은 그런 환경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제게 '만약에 그때로 다시 돌아갈래?' 라고 묻는다면
아마 아내하고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때 어려웠지만 하나님이 그때도 도우셨고
지금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니고, 다른 어려움들이 있지만
지금도 하나님이 도우시고 있다..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만약에 고난이 없었고 어려움이 없었다면
그 하나님이 늘 옆에 계셨어도, 경험되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다윗의 어려움속에서
혹은 우리의 어려움속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더니
하나님이 옆에 계심을 그렇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라는 단어를 좋아할 이유는 없고
굳이 고난을 찾아갈 이유는 없지만
그 어려움이 내게 닥쳤을 때는
하나님이 더 명확하게 개입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그 도움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벧전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삶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라고 이미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네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 다윗에게도, 주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에도
그분의 현실 속에는 어려움과 큰 박해가 있었던 것처럼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있는 저와 여러분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박해가 있을 것이지만, 그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