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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9~21 말씀의 종 사무엘의 등장을 기대하며

LNCK 2023. 3. 14. 10:20

 

◈말씀의 종 사무엘의 등장을 기대하며      삼상3:19~21      편집장 글

*사무엘상을 한 장씩, 한 절씩 공부해가다가, 여기 저기 흩어진 사무엘 관련 구절을 총정리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젖을 떼자마자 성막에서
강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어린아이에겐 좀 가혹하긴 했죠)
어릴 적부터 사무엘처럼 말씀의 조기교육을 받은 일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면 제대로 배우려면 내용이 너무 방대하니까, 빠를수록 좋죠.

19세기에 사무엘은 찰스 스펄전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도 설교의 황태자 prince of the preachers 로 통하는데,
그의 설교 3,600편이 49권으로 발행되었으며, 
지금 인터넷에도 (약간 현대 영어로 고쳐진) 그의 설교들이 수 천 편 있는데,
하나 같이 '대학원생 수준의 설교'입니다. 

가벼운 설교가 아니란 말이죠. 
한편의 설교 길이도, 짧게 각색한 것이 음성으로 40분이고, 
문서로는 원고가 15~20쪽은 족히 되죠.
내용의 깊이도 있고, 분량도 많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에 컴퓨터도 없었던 시절에, 어떻게 신구약을 그렇게 왔다 갔다
꿰면서 설교를 했는지...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요지는, 그가 5~6살 때부터 ‘조기교육’을 한 것입니다.
누가 시켜서 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그렇게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스펄전의 할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그 분의 서고가 있었습니다.
아이 스펄전은 어려서부터, 그 서고에서
방대한 분량의 ‘청교도 서적’들을 혼자 스스로 탐독했던 것입니다. 

100~150년 전에 살았던 전설적인 설교자들의 책들을 읽고서
스스로 조기교육을 한 셈입니다. 물론 성경도 많이 읽었겠죠.

▲사무엘은 “말씀의 종”이었습니다. 

삼상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사무엘이 독특하고 뛰어난 점은, ‘말씀의 종’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앞서 ‘말씀의 종’은 모세였습니다. 모세 앞서는 없다고 봐야죠.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았던 비교불가능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토라 라고 불리는 모세오경의 대부분을 기록했던 분이죠.
만약 모세가 없었다면 성경도 없었고, 성경을 기초로 하는 기독교도 없었겠죠.

그런데 모세 이후로 여호수아 때부터 약 2백년간 사사시대를 지나옵니다. 주1)
그 사사시대에는 이렇다 할 ‘말씀의 종’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로부터 삼손에 이르기까지
그분들은 거의 다 ‘군사령관’의 성격이었습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회개로 이끄는 ‘설교자’는 아니었죠.

그래서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삼상3:1

말씀이 희귀하니까.. 이상 vision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씀이 왕성해야, 이상도 뒤따라 보이는 셈이죠.

이때 하나님의 긴급 처방은, 여인 한나로 하여금 불임의 시기를 주시고
눈물로 오래동안 기도하게 하여.. 드디어 사무엘을 주셨는데, 
‘말씀의 종’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경을 쓰고, 신학교를 세워 말씀을 가르친 ‘말씀의 종’
사무엘은 모세오경을 열심히 연구해서 다음 세대를 가르쳤던 것이죠.
모세오경이 오늘날까지 전수되어 내려오는 것은
시대시대마다 성경을 필사하고, 다음 세대로 전달해준 사람이 있었던 거죠.

사무엘은 (모세오경에 이어서)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의 대부분을 썼던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역사 최초로 신학교(선지학교)를 만들어서 
선지생도들을 길러낸 인물입니다. 

'선지생도'라는 말은 왕하6장에 엘리야 시대에 성경에 제일 처음 등장하지만,
그러나 사무엘 시대를 처음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서 도피할 때, 라마 나욧의 사무엘에게 찾아가죠. 삼상19:18

'나욧'은 어떤 지명이 아니라, 
'거처', '거주지', '초원지대' 등의 의미를 가지는 말인데,
오늘날의 기숙사와 같은 숙소 시설을 가리킵니다. 

이같은 추정은 이 단어가 항상 특정 지명과 함께 언급된다는 사실로써 
보다 분명해 집니다. 즉 '나욧'은 사무엘이 자신의 주변에 모여드는 제자들을 
수용키 위해 세운 기숙 시설을 가리키는 특수한 명칭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욧'은 단순한 기숙 시설 이상의 '교육의 집' 
또는 '선지 학교'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석에서 인용

한편 '나욧'이 '초원 지대'를 뜻하는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라는 사실은 
이 교육을 위한 기숙사가 목자들이 거주하는 초원지대에 위치했을 것이라 보죠. 

아울러 '나욧'이 복수로 표기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여러 동(棟)으로 구성된 교육용 숙소 시설이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삼상7:16에 ‘(사무엘이)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혹자는 위 구절에 의거, 사무엘이 당시 대표적 도시였던 세 도시를 
순회하면서 말씀을 가르쳤을 것으로 해석합니다. 

왜냐면 ‘다스리다’는 말은, 재판하다, 통치하다는 뜻의 말인데,   
당시 이스라엘은 신정국가로서, 재판과 통치(정치)를
사람의 머리와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곳에 신학교가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기도 하는데요..)  
  
성경에 보면 ‘순회해서 통치했다’는 기록은 없죠.
사람들은 항상 통치자 앞으로 자기 발로 걸어서 찾아 나아왔죠.

그렇지만 ‘순회해서 가르쳤다’는 것은 쉽게 납득 가능합니다.
사무엘이 벧엘, 길갈, 미스바를 그것도 매년 순회한 것은
말씀을 가르치러 간 것이지, 단순한 통치 행사만은 아니었다고 보는 거죠.
(통치는.. 받으러 백성들이 나아오는 것이고,

 말씀은.. 전하러 설교자가 순회하는 것이니까요)

▲삼상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사무엘 하면 삼상7장의 ‘미스바 집회’가 연상됩니다.
그 집회에 앞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7:2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사무엘상 초입은 엘리 제사장, 법궤를 빼앗김 등
거의 사사시대의 연장선장의 혼란한 시대적 분위기 가운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사사시대 같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문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4:1절과 연결됩니다.
사무엘의 말씀사역이 전국적으로 순회하며 말씀의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하니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라는 분위기가 형성된 거죠.

당시 기독교방송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그럼 어떻게 사무엘의 말씀사역이 전국으로 퍼졌을까요?

스펄전은 자기 설교를 신문 한 쪽짜리로 만들어서 매주 전파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인쇄술도 없던 시절이라, 그런 문서사역도 불가능했을 테고요.

그 흔적은 삼상7:16에 ‘(사무엘이)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사무엘이 순회하며 가르쳤던 것입니다. 오늘날 순회설교자의 기원이 된 거죠.
벧엘, 길갈, 미스바에서 배운 선지생도들이 작은 마을들까지 미쳤을 거고요.

△‘미스바 집회’는 ‘회개 집회’로 유명합니다.
7: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미스바에서 백성들이 우상을 제거하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나아왔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 회개했다는 말입니다.

그럼 보통 회개운동이 일어날 때, 그 원인이나 기폭제가 무엇인가요?
하나님 말씀이 먼저 선포되고, 그 말씀의 기준에 어긋났을 때.. 
회개가 일어나는 거죠

▲눅5:4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오늘날 시대에 요구되는 하나님의 종은 ‘깊은 데 그물을 내리는’ 말씀사역자
입니다.  

한 세대 전 과거에는, 40~50년 전에는, 성경 전체가 처음 들어보는 내용, 
완전 새롭게 다가오던 시절이어서, 뭘 들어도 신선함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본문과 제목만 봐도 무슨 설교인지 안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회자될 정도로, 회중들은 아예 설교 자체에 기대를 안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유년 시절부터 성막에서 훈련받은 것처럼
찰스 스펄전이 유치원 나이 때부터 할아버지 서재의 책들을 탐독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성경 조기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성경을 제대로 배우려면 .. 너무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도 신약신학, 구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교회사, 성경신학
이렇게 분야가 나눠져 있는 것 말고도 
(적어도 도널드 거스리의 신약개론, 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은 읽어야죠) 
성경 자체가 1189장 31,039절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하루에 15절씩 공부한다/가르친다고 볼 때, 
매일 약30분을 가르치려면 15절 이상 분량은 어렵습니다.
30분동안 군더더기 없이 부지런히 설명하면 15절은 가르칠 수 있죠.
(근데 보통 서너절 하다가 시간 관계상 중단하죠)

매일 15절씩 가르치려면, 성경전체를 가르치는데 약 2070일 소요되며
5년반 이상 걸립니다. (보통 매일 1장, 긴 장은 2~3일에 나눠서 가르치면 됩니다)
넉넉잡아 10년에 성경 1바퀴 돈다는 목표로 가르치면/공부하면 됩니다.

그 매일 15절을 가르치기 위해서 
설교자가 매일 성경을 연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하기 나름이지만, 알차게 준비하려면 5~6시간 걸릴 것입니다.

보통 목회자가 30년 목회한다고 예상하면 (30~60세)
10년에 성경 1바퀴 돌면서 연구하고/가르친다면
성경을 세 바퀴 돌고, 성경을 세 번 가르치면... 끝나는 것입니다.
이런 셈법으로 계산하면, 인생이 길지 않습니다. 아주 짧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성경 전체의 5% 정도도 커버하지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요.

찰스 스펄전은 19살 때부터 설교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58세에 소천하셨죠.
40년을 사역하셨다고 할 때,                                             (1834~1892)
매년 약88편의 설교문을 작성하셨는데 (남아있는 설교문만 계산할 때)
2주에 세 편의 설교를 작성하신 것입니다.

한 편의 설교가 소논문에 해당될 정도의, 방대한 분량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일반 설교자의 3편 정도 설교를, 몰아서 한 번에 전했다고 보면 되죠.

성경 전체 1189장 31,039절, 모든 구절을 다 해석하고
그래서 10년에 전체 성경을 한 바퀴 연구하고/가르치는 것을 예상하면
30세 때 출발한 사람은 성경 3번 가르치고
40세 때 출발한 사람은 성경 2번 가르치고
50세 때 출발한 사람은 성경 1번밖에 못 가르친다는 것이죠.

그런 30세나 40세때 출발하기 위해서는, (스펄전이 19세 때 출발한 것처럼)
사무엘과 같이 어릴 적부터 ‘성경 조기교육’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거죠.

‘꼭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나요?’ 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지만,
오늘날 회중들이 설교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1장씩이든지, 15절씩이든지 성경 전체를 가르치는 사람은,
본문과 내용이 날마다 새롭기 때문에
적어도 ‘설교가 지루하다. 안 들어봐도 뻔 하다’ 이런 얘기는 쑥 들어갈 겁니다.

너무 발목까지 오는 얕은데 가서 그물 내리지 말고
‘깊은데’ 가서 그물을 내릴 때.. 스펄전 같은, 사무엘같은 말씀의 종이 나올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금 2만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미국에 이어 세계선교 2위국의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1세대 선교사들은 ‘전도 선교, 개척 선교’ 시대였습니다.
(보통 2007년 아프간 피랍 사태를 분수령으로 삼죠)
하드웨어 구축하는 선교에 힘썼습니다. 
불신자들 전도하고, 교회 세우고, 예배당 건축하고, 교두보 마련하고...

2세대 선교사들은 ‘교육 선교’ 시대입니다. 
성경 66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1세대 선교사들이 신학교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거기서 성경 66권을 장별로, 절별로 한 절 한 절 가르치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방향만 올바르면.. 결국에는 열매를 추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강단에서 박사 가운을 입는 이유는, 
개신교는 설교자가 말씀을, 성경 박사처럼 잘 가르치는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D L 무디처럼 말씀을 단순하게, 지혜롭게 전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지만
루터와 칼빈과 존 녹스, 스펄전으로 이어지는 개신교 전통은, 
말씀을 박사처럼 깊이 있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렇게 온 세계를 가르쳐야 하는 시대적 사명이 한국에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가진 영적 지도자 사무엘

삼상4: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 말씀이 어떻게 해서 실현 가능했을까요?
사무엘이 설교해도, 사람들이 안 들으면.. 그걸로 끝이 잖아요.

마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라는 말씀처럼
사무엘의 설교가, 아주 권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근거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북단)에서부터 브엘세바(남단)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사무엘의 ‘말씀 강해’ ... 그는 모세오경을 토대로 가르쳤습니다.
그 증거는, 실제로 삼상8:11~17절에 ‘왕의 규례를’ 사무엘이 가르칩니다.

8: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것은 신17:15~20절에 나오는 구절들에 근거해서 가르친(경고한) 거죠.
사무엘은, 자기 말과 생각을 가르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의 설교는 권위가 있었고.. 그 결과 온 이스라엘에 전파된 것입니다. 4:1

▲사무엘은 사울에게도, 왕의 규례를 개인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이때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붓기 직전 상황입니다. 10:1

삼상9:25 ‘그들이 산당에서 내려 성읍에 들어가서는 
사무엘이 사울과 함께 지붕에서 (밤새) 담화하고’ 

이 때의 담화 내용은 전반적으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는 문제와 
관련된 것임이 분명하며, 더 구체적으로 이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한 것은, 
아마도 그당시 이스라엘의 특별한 정치.종교적 상황에 관한 것과, 
그리고 사울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되었음을 
스스로 인식케 하는 정도의 예비적인 수준의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 말씀으로 제왕수업을 시킨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울이 듣는 듯 하였으나, 차츰 사무엘의 가르침을 따르진 않았죠.

▲무엇보다 믿기 어려운 말씀은 아래 구절입니다.

삼상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사무엘의 말은, 아마 예언의 말이겠죠.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예언한 것은, 어릴 적에 엘리의 가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예언도 다 이루어졌죠.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100% 응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예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무엘이 어떻게 받았는지.. 성경에 자세히 나오진 않죠.
-모세오경을 읽다가 감동받았는지..
-꿈으로 현몽 받았는지..
-어릴 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직접 음성으로 말씀해 주셨는지..
-기도할 때 신비롭게 지혜의 말씀, 지식이 말씀이 떠올랐는지..

아마 위의 모든 경우가 다 해당될 수도 있겠죠.

신18: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위 말씀을 거꾸로 읽으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는 뜻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면
‘다 가짜다’ 라고 낙인찍어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점쟁이나 무당이
신유/방언/예언/환상/기적을 행하면
기독교인은 그들보다 더 큰 능력이 나타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세가 바로의 궁에서 마술사들과 능력대결을 펼쳐서 승리했던 것처럼요.

그런데 누가 신유/방언/예언/환상/기적을 행하면
‘그런 것은 무당들이나 하는 짓이다’ .. 이렇게 낙인찍어 버리면 안 됩니다.
오히려 자기가 더욱 성경적으로 
신유/방언/예언/환상/기적을 행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요지는, 사무엘은 그저 ‘책상신학자’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말씀도 깊이 있게 아는 ‘말씀신학자’였지만,
그의 삶에는 능력도 나타났다는 것이죠
‘그가 예언한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 응하는 예언의 능력!’

그게 얼마만큼 널리 소문이 퍼졌느냐면
청년 사울이 나귀를 찾지 못해서 오래동안 헤매고 있을 때에
사울의 사환이 ‘사무엘에게 찾아가 물어라’고 가르쳐 줄 정도였죠. 9:3~8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이 자기를 찾아오기 하루 전날, 통보를 받았죠.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9:15

모든 이들이 다 사무엘처럼 예언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예언할 수는 있습니다. 
사울도 그래서 두 번이나 (입신상태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고 말들을 했죠. 10:11, 19:24

정통 기독교는 ‘말씀 중심’입니다. 
그렇다고 그게 ‘말씀 이외에 모든 은사는 무시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따르는 표적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죠.  
막16:20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동반되게 (따르게) 되어 있죠.
그렇지만 말씀을 앞세우고, 말씀 중심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지,
그게 말씀만 인정하고, 그 이외에 모든 것은 무시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죠!

사무엘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 땅에 널리 전파된 것은  4:1
그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인데  3:19
즉 그는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했다’는 것입니다. 막16:20

그 표적을 추구할 필요는 없지만,
말씀사역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동반된다는 것이죠!

만약 그 표적이 따르지 않으면요?
그만큼 말씀의 권위나 귄세가 떨어지는 거죠.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지 못하는 거죠!

▲삼상2: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이 예언은 한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의 예언입니다. 2:27)

'내가...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니니' 
장차 예수님을 가리키지만, 당대에는 사무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사무엘은 아론의 직계 후손이 아닙니다.
레위인이기는 하지만, 제사장 가문은 아닌데도, 제사장 직분을 행한 것입니다.

나중에 삼상15장에서 자기 없이 제사를 드렸다고 사울 왕을 호통친 걸 보면,
그가 얼마나 큰 제사장이었는지 알 수 있죠.

사무엘이 제사장 가문도 아니면서 제사장이 된 것은, 
-어릴 적부터 성막에서 제사 일을 보고 배우며 자란 이유도 있지만
-바로 위 구절 2:35절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직접 ‘너는 제사장이다’고 하셨기에
 그는 그 이후로, (선지자겸) 제사장으로 섬긴 것입니다.  주2)

실제로 2:35절의 예언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이 사무엘이 등장합니다. 3:1절 이하. 
 
여기서 중요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2:35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곧 이스라엘의 '왕'를 가리키죠. 
광의적으로 해석하면 ‘다른 제사장, 선지자들’을 다 포함하는 말입니다. 

사무엘의 역할이 얼마나 광범위한가 하면,
그 자신도 선지자, 제사장으로서 기름부음 받은 자이지만,
‘다른 기름부음 받은 자들 앞에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인도하고, 이끌고간다는 거죠.
king of kings 라는 말이 있는데, anointed of anointeds 라는 뜻이죠.

실제로 기독교 역사에 보면, 
왕을 가르치고, 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던 ‘기름부음 받은 자’들도 있었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스코틀랜드의 존 녹스가 그랬고,
가까이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백악관의 자문 목사님 역할을 감당했죠.

꼭 실제로 왕과 위정자들을 가르치진 않았어도
존 웨슬리 등은, 시대의 흐름을 뒤바꾸는.. 사무엘 못지 않은 역할을 했죠.

더욱이 사무엘이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구약에 여러 선지자가 있어서 예언활동을 했지만, 
사무엘처럼 “시대의 흐름을 바꾼” 선지자는... 모세와 사무엘 뿐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예언을 했지만, 사무엘처럼 시대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지요.

그러나 그는 미스바의 회개운동 등을 통해서, 사사시대의 암울한 시대를
“바꾸어” 하나님을 향하는 (왕정시대, 사무엘상의) 시대가 되게 했습니다. 


정리하면, 사무엘이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종인가 하면
-그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었으며, 말씀의 종이었다는 거죠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권위가 있었으며,
-최초로 신학교를 세워 선지생도들을 양육했으며
-기름부음 받은 자들의 지도자였으며,
-자기가 살던 시대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종 사무엘’이 앞으로 등장하여, 이 시대를 구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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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사사시대를 4백년으로 보기도 하나, 중복으로 겹친 역사기록으로 보면
2백년으로 봅니다.
 

주2)
그때 당시에 엘리, 홉니, 비느하스가 하루만에 다 죽고
이가봇 말고 비느하스의 살아남은 다른 아들 아히둡 아래로 
→ 아히멜렉 →아비아달까지 이어지나
엘리 집안의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솔로몬에 의하여 제사장직에서 파면됨으로써 
왕상2:27, 35 엘리 집안에 대한 사무엘의 예언은 성취되었죠.

그러니 제사장 집안에 제사장이 씨가 거의 마르니
대신 레위인 사무엘이 제사장 역할을 감당하게 된 거죠.

하나님은 항상 장자 대신에 차자를 불러 쓰시고,
예루살렘 교회가 미진하자 안디옥 교회를 불러 쓰시고
이스라엘이 불순종하자 이방인을 불러 쓰시는 것과 같은 원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