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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4

LNCK 2023. 3. 16. 11:18

[Ep4.오디오북]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실화 |  - YouTube

 

◈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4                           <지난 호 보기

◑8장  늪에 빠진 탈북자들

유진이가 머리를 온통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옷도 노란색 티에다, 
빨간색 바지를 맞춰 입고 통독 시간에 뒤에 앉아 쿨쿨 자고 있었다. 
술 냄새가 많이 났다. 
술이 떡이 되어서 학교에 들어오는 것이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남학생들의 술 마시는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학교라고, 우리 앞에선 술 안 먹는 것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절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녀석들이 점점 노골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밤 12시에 하루 일과가 끝나면, 몰래 나가서 먹고 마시고 들어오더니 
이제는 아예 새벽까지 마시다가, 곤드레만드레 취해서는 아침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제일 뒷자리에 앉아 통독 시간 내내 잠을 자기만 했다. 

정철이는 평소에 참 성격이 순했고, 모든 일과에도 열심히 따라오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완전히 미친 사람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이 다 자는 새벽 3시에 들어와서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이 사람 저 사람 욕을 해대다가, 결국은 시비를 걸어 싸움질을 했다. 

싸워도 그냥 주먹으로 몇 번 치고 박는 정도가 아니었다. 
살이 터지고 찢어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싸워 댔다. 

억지로 붙들어 재워 놓으면, 어떤 날에는 이부자리에 오줌까지 싸 놓고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 했다. 
아침이 되면 이불 들을 거두고 책상과 걸상들을 깔고 통독을 해야 하는데 
정철이가 깨어나지 못하면 아예 이불 채로 들어다가 여자들 방에 던져버렸다.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었다. 

 

별이 아빠는 더 심했다. 
학생들은 거의 20살 전후이지만, 별이 아빠는 50대 초반이었다. 

나이가 너무 많이 차이가 나기에 청소년들과 같은 대우하기 불편해서 
'별이 아빠' 라고 불렀다. 
별이 아빠는 술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할 정도로 좋아했다. 

통독 학교에 들어오면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주먹을 흔들면서 굳은 맹세를 했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술을 마시고 통독에 참가했다. 

정철이, 광수, 유진이 같은 녀석들은 술을 마시면 혼자서 미쳐 돌아갔지만 
별이 아빠는 술을 마시는 이들을 부추겨 모임을 만들어 놀았다. 

주말이면 이 무리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마셔대고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통독학교로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학생들을 괴롭혔다. 

심지어 여학생들이 자는 방에까지 들어오겠다고 문을 꽝꽝 두드리곤 했다. 
결국 나와 성근, 순교 선생이 주말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교대로 학교에 남아 숙직을 서기로 했다. 

어느날 별이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와, 예배전 찬양 준비를 하는 
이순중 전도사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싫다고 뿌리치는 이 전도사의 손을 자꾸만 잡고 끌어안으려 했다가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제지당했다. 

순교 선생이 화가 나서 펄펄 뛰면서 욕을 해댔다. 
별이 아빠도 지지않고 빨개진 눈을 꼿꼿이 세우고 
순교 선생에게 대들며 욕을 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는 거야?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나는 그냥 저 여자가 좋다는 것 뿐인데...' 

순교 선생이 더욱 성이 나서 외쳤다. 
'저 여자라니.. 전도사라고... 
이 사람이 전도사님한테 어디다 대고 저 여자야?'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는 바람에, 두 사람의 싸움은 겨우 가라앉았다. 
예배가 끝나고 별이 아빠는 분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오히려 나를 찾아와 따졌다. 
'아니 목사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럽니까?' 

내가 꾸짖었다. '당신 한번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당신 아내를, 다른 남자가 싫다는데 막 손을 잡고 비벼대고 안으려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당신 같으면 그런 남자를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별이 아빠는 입을 다물어 버리더니 씩씩거리며 나가 버렸다. 
그는 자기의 행동이 얼마나 나쁜지 알지 못했다. 

선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악한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런 일을 저질러놓고도 별이 아빠가 아무런 제제도 받지 않는 것을 본 
성근 선생이 분노해서 거칠게 항의했다. 

'별이 아빠를 내쫓아야 합니다. 목사님 이번 일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안 된다. 참아라!' 

'왜요? 여기는 학교입니다. 
북한 선교사들을 양육하는 학교이지, 저런 깡패들을 교화시키려고 만든 
교도소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참아야 한다!' 

 

'지금 저 깡패때문에 모범적인 학생들이 다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학생들은 이 학교를 계속 다닐지 말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런 사람 한두 명 때문에 학교가 흩어지게 생겼습니다.' 

'그럴 일 없다. 참아라' 

결국 성근 선생이 들고 일어났다. 
'별이 아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무조건 내쫓아 버릴 겁니다! 
목사님이 못 쫓아내면 나라도 쫓아낼 겁니다.' 

나(최광 목사)도 화가 나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이 사역에 내 가족, 내 아이들, 내 미래를 다 드렸다. 
나는 목숨까지도 이 사역에 걸었다. 너는 그렇게 했나?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라!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네 가족까지 희생하면서 이 사역을 한다면 
그렇게 해도 좋다!' 

성근 선생은 아무 말 못 하고 나갔지만 
다시 이 문제를 가지고 정식 회의를 요구했다. 

나와 성근 선생, 순교 선생이 모여앉아, 이 안건으로 오랫동안 토의했다. 
순교 선생은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성근 선생은 '별이 아빠 뿐만 아니라 술을 먹고 학교에 거리낌없이 들어오는 
학생들은 전부 다 내 보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나는 고집스럽게 이들을 설득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이곳은 지식만을 배우는 곳이 아니다. 
사랑하는 법, 용서해 주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곳에 사람들을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 북한에 가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다 별이아빠, 유진이, 정철이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를 환영하고 예의를 지키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저 북한에서 가난과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보다는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루기 쉽다. 
만약 우리가 이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북한 땅에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품을 수 없다.' 

두 선생들은 인정하지 못했고, 회의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끝났다. 
며칠 후 순교 선생과 별이 아빠는 다시 싸움이 붙었다. 

별이 아빠는 코피를 줄줄 흘리다가, 분하다고 벽을 주먹으로 꽝하고 쳤다. 
칸막이 벽에 큰 구멍이 뚫렸다. 

성근 선생도 잘못된 행동이 보일 때 별이 아빠를 몰아부쳤다. 
나는 별이 아빠에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훈계하고, 
벌을 주고, 시간을 주었지만.. 그는 바뀌지 않았다. 

별이 아빠의 술주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많은 노력 끝에 알게 된 것은, 별이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 라는 것 뿐이다. 
이 문제로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했다. 

통독학교 전원이 별이 아빠를 위해 3일 금식을 시작했다. 
학생들 대부분 원하지 않는 금식이었기에, 첫날부터 고통스러워했다. 

다들 얼굴을 찌푸리고, 별이 아빠와 말을 하지 않았고 
그에게 가까이 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별이 아빠는 그날에도 술을 마셨다. 
그래도 사람 하나 살린다는 각오로, 열심히 금식기도를 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듯이 빨리 지나가던 시계바늘이  
학생들이 금식을 시작하자, 생각을 바꿨는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가기만 했다. 

한 시간이 지난 것 같아 시계를 쳐다보면 겨우 10분 정도 지났다. 
다들 지나가지 않는 시간을 빨리 가게 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다. 

통독시간에 항상 졸기만 하던 학생들이, 배가 고프니 잠을 자지 못했다. 
시근덕 거리면서 (씩씩거리면서) 통독에 집중하려 애썼다. 

쉬는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통독학교의 자질구레한 심부름들을 서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치웠다. 
그래도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금식 3일째 되는 날 밤 12시에 음식을 먹기로 했다. 
3일째 되는 날 저녁 6시부터 학생들은 시계만 노려보면서 버텼다. 

유진이는, 눈빛으로 시계바늘을 획획 잡아 돌릴 기세로 올려다 보았다. 
유정이는 애원하듯이 시계를 하염 없이 쳐다보다가.. 체념한듯 성경 만화에 
눈길을 주었지만 금방 다시 시계를 올려다 보았다. 

12시가 가까워오자 사역자들이 동태 국을 끓여 놓았다. 
구수한 동태국 냄새가 학생들의 뱃속을 뒤집어놓았다. 

남학생들은 병든 강아지처럼 여기저기 머리를 틀어 박고 낑낑거렸다. 
'아이고 미쳐 버리겠다,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노?'
'이제 12시만 돼 봐라, 동태국을 사발로 먹어버리고 말테다. 
치킨도 열 마리 먹어 버릴 거야' 

민혜랑 에스더가 맞장구쳤다. '나는 피자 10판을 먹을 거야.' 

12시10분 전에 상을 차리고 음식들도 다 올려 놓았다. 
다들 숟가락을 꼬나 들고 앉아 시계만 쳐다보았다. 

시계 바늘이 정각 12시를 가리키자 일제히 환성이 터졌다. 
'야~ 살았다. 됐다. 먹을 수 있다.' 
허겁지겁 마구 먹어댔지만, 다들 한 그릇 이상 먹지 못하고 늘어져 버렸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힘들었지만 
금식을 처음으로 끝까지 이겨냈다는 만족감이 충만했다. 

하지만 별이 아빠는 술을 끊지 못했다. 여전히 술을 마셨다. 
다만 몰래 몰래 마시고, 마신 후에도 들키지 않으려고 행동을 조심했다. 

취하나 안 취하나 늘 비틀거리던 사람이 
술만 마시면 여자처럼 조심조심 걸어다녔고, 말도 상냥하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이상한 행동들 때문에 
오히려 별이 아빠는 술 마신 것이 더 잘 드러났다. 

학생들은 여전히 통독 시간에 많이 졸았다. 
그래도 학생들은 졸음을 참고 성경을 읽으려고 애를 썼지만 
몇몇 남학생들은 아예 책상에 엎드려 자 버렸다. 

선생들이 훈계를 하면, 막 대들고 야유까지 했다. 
결국 제일 심하게 자고 말 안 듣는 인성이, 철명이 등 학생 몇몇을 학교에서 내보냈다. 
다른 남학생들에게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다음 날 밤 새벽, 모든 통독학교 학생이 잠자고 있을 때 
인성이가 칼을 들고 학교로 들어왔다. 술에 잔뜩 취해있었다. 

인성이는 나와 사모를 찾기 시작했다. 
나와 사모는 일과를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간 후였다. 

인성이는 잠자고 있는 순교 선생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다행히 이불을 덮고 있었기에, 칼은 몸에 박히지 않았다. 

놀라 깨어난 순교 선생의 심장을 향해 인성이는 다시 칼을 찔렀지만 
순교 선생이 피하는 바람에 어깨를 찔렀다. 

정신을 차린 순교 선생이 달려드는 인성이를 제압하여 
더 이상 칼을 휘두르지 못 했다. 
칼을 빼앗기자 인성이는 분노의 이빨을 덜덜 떨면서 절규했다. 

'최목사 어디 있어? 사모 어디 있어? 
둘 다 찔러죽이고 나도 갈 거야! 나 살고 싶지 않다고! 나를 왜 내쫓았어?' 

내가 달려와서 인성이를 만났더니, 인성이는 펑펑 울면서 말했다. 
'목사님, 나도 통독하고 싶습니다. 왜 나를 내쫓습니까? 기회를 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통독을 하고 싶어하는 인성이의 마음이 읽혀졌다. 
나는 인성이를 다시 받아 주기로 했다. 

순교 선생도 인성이를 용서해 주었다. 인성이는 기쁜 마음으로 일단 돌아갔다. 

하지만 성근 선생이 길길이 날뛰며 반대했다. 
'여기는 학교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저런 깡패들을 데리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인성이는 교육 차원에서라도 벌을 받아야 합니다. 
자기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그들은 자기가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근 선생은 순교 선생에게 단호하게 요구했다. 
'인성이를 경찰서로 보냅시다.' 

순교 선생이 말했다. 
'나는 이미 용서했습니다.' 

성근 선생이 고함을 질렀다. 
'이건 기독교의 용서가 아닙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용서해 줍니까?
이런 식의 용서는,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더 악하게 만들 뿐입니다. 인성이를 경찰서에 보냅시다.' 

순교 선생이 고집을 부렸다.
'나는 그렇게 못 합니다.' 

다음 주에 인성이는 또다시 술을 마시고 통독학교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여자친구까지 데리고 들어와서 재워 달라고 했다. 

성근 선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여기서 공부 못 한다. 나가라!' 

인성이는 눈에 불을 켜고 펄펄 뛰었다. 
'야 임마, 네가 뭔데 나를 내쫓아? 
목사님이 다시 들어오라고 했단 말이야.' 

'그래도 나가! 목사님이 받아도, 나는 너를 못 받아, 나가!' 

 

인성이는 독이 오른 눈으로 성근 선생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 새끼, 너도 칼 맛 좀 볼래? 그래야 너도 정신 차리지? 
너 이 새끼 기다려, 내가 칼을 가지고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꼼짝 말고 여기 기다려!' 

인성이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인성이는 자기 패거리들을 몰고 왔다. 
성근 선생을 두들겨 패서라도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나는 지방에 강의가 있어 내려갔다가 다급히 학교로 올라왔고 
경찰이 와서야 사건은 진정되었다. 

나는 다시 인성이를 꾸짖고, 내일부터 통독학교에 참가하라고 했다. 

 

이번에는 성근 선생이 절규했다. 
'인성이를 받으면 내가 나갑니다! 나는 이런 사역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학생의 칼에 굴복해서 성경을 가르칩니까? 나는 그렇게 못 합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사역을 해야 한다면, 나는 못 하겠습니다!
인성이를 받으세요. 나는 나갑니다!'

성근 선생이 짐을 싸 들고 나가 버렸다. 하나님도 침묵 하셨다. 
나는 힘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분명히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시작한 사역인데, 왜 이렇게 안 되는가?' 
성근 선생이 하도 완강하게 나오기에 어쩔 수 없이 
인성이 문제는 전체 학생회의에 맡겼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용서해 주자고 했고 
어린 청년들은 용서 못 한다고, 내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렬하게 논쟁하던 끝에, 주말에 황금종교회에만 출석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며칠 후 인성이는 또다시 사고를 쳤다. 
정철이와 함께 술을 먹고 술주정하는 정철이를 구타했다. 

그저 화가 난다고 주먹으로 몇 번 때린 정도가 아니었다. 
큰 화분을 들어 정철이 얼굴을 이십 번이 넘게 내리찍었다. 

성철이는 얼굴에 살이 모조리 벗겨져 뼈가 드러났고 
땅바닥에 피가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정철이는 병원에 실려 갔고, 그 사건을 본 여성 사역자들과 여자아이들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공포에 질렸다. 

이런 일을 저질러놓고도 다음날 인성이는 교회로 나와 장난을 치면서 놀았다. 
비겁하게 술에 취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사람을 그렇게 해 놓고 
영웅이나 된 것처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고 
여학생들과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 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인성이를 보고 동우가 말했다. 
'내가 이런 환경에서 무슨 공부를 할 수 있습니까?' 
동우는 월요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성근 선생이 순교 선생에게 발끈했다. 
'거 봐요. 그 때 쟤를 경찰서로 보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순교 선생도 힘들어했다. 
성근 선생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통독 사역을 회의감을 가지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과연 이 학생들이 변화되어서, 북한선교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될 날이 올까?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9장  흔들리는 아이들 

설경이와 별이 아빠가 대판 싸웠다. 
설경이가 부엌에서 삶은 계란 몇 개와 과일을 들고 위층에 있는 여자 기숙사로 
올라가는 것을, 별이 아빠가 보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야 여기 너희들만 사니? 밑층의 사람들도 좀 먹게 그만 가지고 올라가라!' 
설경이는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북한 사람들 모두 먹는 것에 대한 상처가 많다. 
북한 사람들에게 음식 가지고 욕을 하는 것은 
칼로 오래된 상처를 휘저어 놓는 것과 같은 일이다. 

설경이는 그 자리에 허물어져 앉아 엉엉 울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다른 학생이 그랬다면, 악을 쓰며 어떻게 하든지 사과를 받아 냈을 테지만,
나이 많은 별이 아빠이니 어떻게 할 수는 없고, 참자니 분통이 터진 것이다. 

설경의 통곡 소리를 듣고, 사무실에 있던 순중 전도사가 뛰쳐 나오고 
성근 선생이 뛰어 나왔다. 설경이는 서럽게 한참을 울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이거 먹으라고 가지져다 놓은 거잖아? 
그래서 갖고 올라 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설경이는 며칠 동안 앓아 누웠다. 
별이 아빠는 도리어 그런 설경이를 향해 신경질 부리고 욕질을 해대면서 나가버렸다. 

별이 아빠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털어놓기 힘든 자신의 고민을 나에게 
털어 놓았다. 별이 아빠는 북한에 있을 때 보위부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직업상 많은 사람을 감옥에 보냈고, 심지어 죽이는 일도 많이 했다. 
그의 손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한국에 온 후부터는, 그가 죽인 사람들이 계속해서 꿈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악몽과 큰 두려움에 끝도 없이 시달렸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별이 아빠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그만 중독이 되어버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위로의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는데도 
그는 나에게 다 털어놓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해했다. 

 

광철이는 열등감이 많았다. 글도 모르고 학교도 전혀 다니지 않던 그가 
통독반에서 공부 하려고 하니 많이 힘들어 했다. 

거기에다 대학을 다니는 옥향이가 그만 실수로 '오빠는 그것도 몰라?' 하고 
핀잔을 주자, 그 말에 광철이가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 

'어린 것이 나를 무시해? 너 죽고 싶어? 이걸 오늘 콱!' 
드세기로 화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옥향이지만 
화가 난 광철에게는 꼼짝도 못 했다. 

몇 번 사과를 시도했지만, 광철이는 들은 척도 안 했다. 
광철이는 며칠이 지나서도 화가 내려가지 않는지 계속 씩씩거렸다. 

보다 못해 내가 한 마디 했다. 
'네가 오빠 아니냐? 참아라!'

'저게 한 두번 그랬으면 나도 참겠는데 
맨날 혼자 다 아는 척하고 사람 업신여기는 데 어떻게 계속 참습니까? 
이제 한 번만 더 까불면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겁니다!'

북한 사람들 대부분은 참 단순했다. 
기분이 좋으면 웃었고, 나쁘면 잔뜩 찌푸리고 다녔다. 
걸핏하면 화를 냈고, 대화부터 시작해서 장난치는 것까지 공격적이었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장난치면서 하는 말도 꼭 싸우는 것처럼 들렸다. 

 

 

며칠 후에는 정철이와 유진이가 교회에 술 먹고 들어와서 
또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하도 통독 시간에 졸고 딴짓만 하기에, 학교에서 내 보냈더니 
그게 분한 것이다. 

자려고 누운 영민이를 발로 차서 깨우고, 주먹으로 툭툭 때리며 시비를 걸어댔다. 
영민이가 싸움에 응하지 않자, 부엌에 있는 설경이에게 가서 또 행패를 부렸다. 

 

보다 못해 성근 선생이 정철, 유진 두 녀석을 내쫓고 문을 잠가 버렸다. 
그것이 또 분하다고 고함을 지르며서 발로 문을 차고 
복도에 있던 화분들을 들어서 문에다 던졌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참다 참다 뚜껑이 열려 버린 성근 선생이 경찰을 불렀다. 

경찰들은 적당히 말려 놓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두 녀석들은 경찰들에게도 행패를 부렸다. 

화가 난 경찰들이 그녀석들을 체포해 하자 
유진이는 도망가고 정철이만 유치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유진이는 화분을 깬 죄로 영등포경찰서에 불려 다녔다. 
유진이는 성근 선생(보호자)과 함께 경찰서에서 돌아오면서 항의했다. 

'화분은 둘이서 같이 깼는데, 왜 나만 경찰서에 가서 벌금 내야 합니까?' 
성근 선생이 한 말이 그의 비위를 건드렸다. 

'정철이는 통독 하지만 너는 통독 안 하잖아?' 
'통독 안 하면 이렇게 해도 됩니까? 이건 공평하지 않습니다. 억울합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시키는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은 공평하냐?' 

'그럼 나도 통독 하면 될 것 아닙니까?' 
'할 거면 제대로 해!' 
유진이는 씩씩거리며 다시 통독 하기로 했다. 

 

 

화요일 산기도 날, 나는 가끔 통독반 학생들을 데리고 
관악산 정상 국기봉을 올라갔다. (*매주 가지만 정상은 가끔씩)

야밤에 관악산 정상에서 불꽃의 바다와 같은 서울을 내려다보며 기도하는 것은 
참 멋진 일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밤에만 올라가다보니 
아이들은 이곳에 낮에도 한번 올라 와 보고 싶어 했다. 

하루는 따뜻한 날을 잡아 오후에 관악산으로 올라갔다. 
다들 묶여 있다가 풀려난 송아지들 같았다. 

그 높은 산을 펄쩍펄쩍 뛰면서 올라갔다. 
어른들이 아무리 같이 올라가자고 소리질러도 
도망가듯이 산 위로 올라가 버렸다. 

산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간식도 먹으면서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내려 왔다. 
그런데 돌아가려고 차에 타고 보니, 춘혁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다들 겁이 났다. '혹시 내려오다가 벼랑 같은데 굴러 떨어진 건 아닐까?' 
'내려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산속에서 헤매는 건 아닐까?'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순교 선생이 말했다. '다들 다시 올라가서 춘혁이를 찾아보자!' 
산은 올라갈 때도 힘들지만 내려 올 때가 더 힘들다. 

금방 산에서 내려와 맥이 빠져 후들거리는 다리들을 겨우 진정시키고 있는데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는 말에, 사방에서 불만이 아우성 쳤다. 

'좀 기다리면 내려 오겠죠. 다 큰 놈이 길을 잃어 봤자 
고생 좀 하고 돌아올 거예요. 그냥 내버려 둡시다' 

순교 선생이 고집을 부렸다. '여자들은 남고, 남자들은 다시 올라가자!' 
남자들이 마땅찮은 얼굴로 다시 산을 타면서 고함을 질렀다. 

 

'아 이놈은 산에만 오면 왜 이 난리를 치는 거야?
찾기만 해봐라, 꼭대기에서부터 데굴데굴 굴려서 내려오게 할테다.' 

정상까지 올라가서 샅샅이 뒤졌지만, 춘혁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별수 없이 다시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산을 내려왔다. 

며칠 후 춘혁이는 빨갛게 달아오른 토끼 눈을 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화가 난 성근 선생이 물었다. '어딜 갔다 이제 오는 거니?' 

대답은 요한이가 했다. '눈 보면 모르겠어요? 
PC 방에서 며칠 밤을 새우다가 왔죠. 뭐!' 

춘혁이는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으며, 작은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펴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이곳은 학교이고 성경통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선생들은 기가 차서, 누워 있는 춘혁이를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앙이라는 새로운 힘이, 내면에 임하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많이 흔들렸다. 
오늘은 술이 빠졌다가, 내일은 PC 방에 빠졌고, 친구들과 노름에 푹 빠졌다. 
그러다가도 기도 시간에 엉엉 울고 하나님께 돌아와 
한동안은 열심히 착하게 살아 보기도 했다. 

그들에게 신앙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라 많이 힘들 것이다. 
나는 그들이 흔들리도록 내버려두었다. 사람은 흔들리면서 강해지기 때문이다. 


◑2부◑    희망, 다시 함께 한 걸음 

북한 사람들은 가난과 폭력, 미사여구로 포장된 속임수,  
인간에 대한 증오와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재앙들을 거쳐오면서 
두려움에.. 마음을 꽁꽁 닫고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굳게 닫힌 저 나라를 열어가는 하나님의 방법은 
전쟁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었다. 
바로 그곳에서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워야, 굳게 닫힌 저 나라의 문도 열게 될 것이다. 


◑1장, 소리 없는 기적

민혜가 일일 팀장을 맡은 날이었다. 
팀장은 제일 앞쪽에서 학생들을 마주보고 앉는다. 
조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깨우고, 통독 시간에 중간 중간 휴식 시간들을 

끼워 넣으면서 최대한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렇게 하루 '신약성경 일독' 이라는 과제를 끝내야 했다. 

뒷 자리에 앉은 광수가 자고 있었다. 민혜는 못 본 척 해 주었다. 
다들 조금씩은 졸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봐 주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광수가 소리를 내며 코를 걸기 시작했다. 
민혜가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이렇게 잘 거면 그냥 방에 들어가서 자!' 

민혜는 자기 딴에는 최대한 살뜰하게 말한다고 했지만, 
원래 까칠한 성격인데다, 아까부터 힘들게 참았다가 나오는 말이라 
짜증스러운 말투가 튀어 나왔다. 

광수가 흠칫 놀라며 깨어났다. 기분이 상했는지 광수는 
재판관에게서 10년 판결을 받은 죄인처럼 얼굴을 떨어뜨리고 앉아있었다.

민혜는 후회와 함께 마음이 아파왔다. 자기가 좀 너무한 것 같았다. 
메모지에 '미안해!' 하고 써서 웃으면서 광수에게 가져다 주었다.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메모지를 보낸 것은 아무래도 쓸데없는 짓 같았다. 
다시 가서 메모지를 빼앗을 수도 없고, 그냥 두기에는 너무 창피했다. 

괜한 짓을 한 것 같은 마음에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데 
마침 저쪽에서 졸고 있는 정철이가 보였다. 
가서 정철이에게 기분대로 욕을 마구 해 버렸다. 

끄덕끄덕 졸다가 바늘 같은 욕들을 한 바구니 뒤집어 쓴 정철이는 멍해졌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저게 코를 골면서 자는 광수에게 가서는 
예쁜 얼굴로 아양을 떨더니만, 자기는 아주 잠깐 졸았는데 
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처럼 몰아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철이는 천천히 뜨거워지는 밥솥처럼, 얼굴이 벌게 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정철이는 휴대전화를 열어, 민혜에게 거친 욕설들을 몇 자 적어 보내고 
휴식 시간에 밖으로 나가버렸다. 

휴대전화를 열어본 민혜는, 자기에게 가차없이 쏟아져 있는 거친 말과 욕들에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민혜는 강해 보였지만 사실 매우 여리고 섬세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고생을 한지라, 마음 속에 두려움이 컸다. 
그것을 가리고 싶어서 언제나 강한 척 했다. 

때문에 조금이라도 강한 이한테 당하면 쉽게 허물어졌다. 
탈북 학생들 대부분이 다 상처가 많기에 
조금이라도 공격받으면, 쉽게 폭발하고 쉽게 허물어졌다. 

휴식 시간, 작은 방에 들어온 민혜는 
불도 켜지 않고 컴컴한 방에 우는 것처럼 쪼그리고 앉아 버렸다. 

민혜는 이 통독을, 계속 해야 할지 말지 고민 하는 데까지 갔다. 
성근 선생이 옆에서 보다가, 그대로 뒤서는 안 될 것 같아 정철을 붙잡고 따졌다. 

'임마, 너 남자지? 그럼 너 힘이 좀 세다고 약한 여자들을 막 괴롭히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해?' 

'난 그런 적 없습니다' 정철이가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럼 너는 기분 나빠서 몇 마디 얘기 했겠지만, 민혜는 완전히 KO 당했어. 
그리고 통독 학교 그만두겠대. 이게 네가 원했던 결과니?'

정철이가 펄쩍 뛰었다. '아니요. 난 그런 건 바라지 않습니다.' 

'그럼 가서 사과해! 네가 분해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서 죽게 생겼다고!' 

정철이 한동안 앉아서 씩씩거리더니 에이씨 하고 일어나 
민혜가 울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있더니 민혜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나와 다시 통독학교 일과를 진행했다. 
정철이의 사과로 둘은 싸우기 전보다 사이가 더 좋아졌다. 
화해가 가져다 주는 기쁨을 맛본 정철이는 만족했다. 

민혜가 식사 당번 을 할 때 설거지도 해 주었다. 
'용서는 죄를 아름다운 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체험하기 시작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지만, 죄를 지었을 때, 사과하고 용서할 때 
더욱 더 아름다운 관계로 발전한다. 
이 힘을 알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못한 형제를 용서하라고 했다. 

 

통독학교 건물 앞에는, 큰 길을 사이에 두고 영등포구청 사무실과 
큰 회사 사무실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매일 저녁이면 일을 마친 공무원들과 회사원들이 
길 건너 이쪽 동네로 몰려와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다. 

그러다 보니 통독학교 건물 쪽 골목은 
온통 술집, 노래방, 다방, 식당들이 빼곡히 모여 있다. 

빌딩 지하로 내려 오면, 항상 성경통독 하는 소리, 하나님을 향해 
통곡하는 소리, 부르짖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거룩한 공간이었지만 

한 발짝만 바깥으로 나가 보면 온통 술판, 놀이판, 먹자판에 
밤이 쫓겨가버리는 세상이었다. 

학생들은 통독학교 바깥쪽을 보고 '소돔과 고모라' 라고 불렀다. 
가끔씩 바깥쪽 소돔과 고모라에서 엉뚱한 사람들이 지하실로 내려오곤 했다. 

 

하루는 한국 청년 세 명이 술을 잔뜩 먹고 혈기가 충만해서 지하실로 달려 내려왔다. 
신발도 그대로 신은채 통독실로 들어와서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까 그 새끼 나와! 어디 갔어?' 
휴일이라 여기저기 이불을 깔아 놓고 누워서 공부하던 남학생들이 
놀란 얼굴로 일어났다. 세 명이 덩치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자기들이 화가 난 이유를 설명했다. 

정철이가 학교로 들어오면서, 길을 공손하게 비켜주지 않고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유를 듣던 남학생들이 화가 났다. 

저쪽 방에 있던 정철이, 광철이, 성철이를 비롯해서 
남학생들이 통독실로 몰려나와 그들을 가운데 몰아넣고 애워 쌌다. 

다들 한국에 와서 오랫동안 무시당하면서 쌓인 설움들이 많았는데 
스트레스를 풀 날이 온 것처럼 여겼다. 

 

건장하고 결코 순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20명이나 몰려 나오고, 
예전에 들어 보지 못했던 살벌하고 거친 북한 말들이 마구 날아왔다. 

거기에다 그들이 손 보겠다고 찾는 정철이는 
얼굴 사방에 칼자국이 지렁이처럼 기어 다닌다. 

무례한 세 명의 덩치들이 당황했다. 
아마 교회라는 간판만 보고, 착한 청년 몇 명 쯤 모여 있는 곳으로 알고 
뛰어들어온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다들 한바탕 해보려고 떠들썩하더니 
갑자기 마음대로 바꿔 먹고 겁에 질려 가만히 서 있는 덩치들에게 
정철이가 손을 내밀면서 점잖게 말했다. 
'여기는 교회니까 우리 밖에 나가서 말 좀 해 봅시다.' 

덩치들이 정철이와 함께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작은 일에도 서로 거칠게 폭언하고 칼을 들고 난리를 부리던 남학생들이었는데,
그저 험악한 망나니 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뭔가 달라진 것 같았다. 

 

기도 시간 분위기도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맨날 뒤에서 눈치보다가 슬그머니 빠져나가 실컷 놀다가 들어오던 설경이가 
기도 시간에 울면서 기도했다. 

여느 때처럼 슬픔과 한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었다. 
은혜받고 기뻐서 우는 눈물이었다. 

예지도 뒤이어 성령체험을 하면서, 기도시간에 펑펑 울면서 기도했다. 
앞쪽에서 성령체험 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나도 
뒤쪽에 앉은 말썽꾸러기들은 여전히 천장만 올려다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광철이, 유진이는 소가 닭 쳐다보듯 
통곡하면서 기도하는 앞쪽 사람들을 한참씩 바라보다가는 
벌렁 넘어져 코를 골면서 잤다. 

기도 시간이 끝날 때가 되자 광철이 는 부엌에 나갔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누군가를 향해 열심히 '쌍놈, 나쁜 놈' 하고 욕을 하면서 
수제비를 끓여 놓았다.

기도시간이 끝나자 수제비 냄새를 맡은 학생들이 달려들어 
광철이 끓여놓은 수제비를 몽땅 먹어버렸다. 

광철은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내(최광 목사)가 위로하듯 한마디 했다. 
'괜찮아?' 

광철이는 그냥 씩~ 하고 웃었다. 
왠지 그 순간 광철이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기도시간에 은혜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민혜에게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민혜의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이 들어 왔다. 

'최광 목사님은 가정 형편이 어렵고, 자녀들 사정도 힘든데 
우리가 뭘 먹고 싶고, 하고 싶다고 하면 다 해 주시고 있잖아. 
교회운영비가 없어서 쩔쩔 매면서도, 학생들이 체육대회를 하고 싶다고 하니까 
그것도 들어준다고 날을 잡았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러지?' 

민혜가 나를 찾아와 걱정스럽게 물었다. 
'목사님, 돈도 없으면서 체육대회 어떻게 해요?'

금방 말하는 법을 배운 아이가, 아빠의 주머니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에서 나온 웃음을 참고 대충 설명해주었다. 

'하나님을 믿어 봐, 하나님이 채워 주실 거야!' 
나의 설명을 듣고 민혜는, 하나님이 어떻게 돈을 채워 주는지 
꼭 지켜 보기로 했다. 

오병이어 같은 무지 신기한 방법으로 채워 주실지..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날 저녁 기도하는 민혜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민혜야, 너 적금 뒀다 뭐 하니?' 
'혹시 하나님이 주신다더니 내 돈을 쓰시려고 했나?' 

다음날 민혜가 사무실로 찾아와 돈 봉투를 내놓으면서 말했다. 
'체육대회에 보태 쓰세요!' 
봉투안에는 거금 8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북한에 있는 엄마 데려 온다고 모으던 적금이었다. 
나는 살면서 처음 돈을 만져보는 사람처럼 들떠 버렸다. 
'그래 이거야, 돈지갑이 열리면 진짜 은혜 받았다는 증거거든!' 

선생들이 놀랐다. 민혜에게 가서 따지듯이 물었다. 
'무슨 정신에 그 돈을 헌금 했니?' 

민혜가 말했다. '정말 신기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이 정말 아까웠는데 
지금은 그 돈이 하나도 아깝지가 않구요. 오히려 기분이 좋아요.' 

주일 날 광고 시간에 이 일을 자랑스럽게 광고 했더니 
민혜가 민망한지,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소리 없이 작은 기적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철이는 한글을 열심히 배우더니, 웬만한 글을 다 자신 있게 읽고 쓰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일반 책을 주면서 읽어 보라고 하면, 
더듬거리면서 읽기 힘들어 했는데 통독은 잘 했다. 

그렇게 빠른 통독사의 목소리와 어려운 성경 말씀들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따라 읽었다. 
아무리 봐도 기적이었지만, 본인은 느끼지 못하고 심드렁했다. 

읽다가는 졸고, 졸다가는 깨어나서 읽고 
그러다가 지겨우면 밖에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와서 또 통독 했다. 

광철이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담배도 열심히 피웠다. 
이상하게도 광철은 어려서부터 꽃제비로 살았지만 술은 별로 즐겨 하지 않았다. 

5시간 기도를 다 채우지 못한다고 내가 자주 꾸중을 했지만 
그래도 하루 평균 두세 시간은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에 관한 체험도 제법 많았다. 자기가 받은 은혜들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사모해도 받기 힘든 은혜인지 모르기에, 

받아도 놀라지 않았고, 떠들지도 않고 시큰둥했다. 

아직도 추운 겨울이었지만 꽝꽝 얼었던 얼음 밑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