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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2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3. 17. 07:15

◈삼상22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다윗이...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아둘람'은 '피난처', '보호처'란 뜻이다. 이곳은 성경 다른 곳에서 가나안 족속의 왕도(王都)중 하나로 언급된다(창 38:1,2,  수 15:35). 그 위치는 가드와 베들레헴의 중간 곧 가드 남동쪽 약 14km 지점으로, 본래는 유다의 영토였으나, 그 당시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최근의 성서 고고학자들은 그곳을 탐사하던 중 아둘람 성의 한 산중턱에서 약 400명 정도가 살기에 적합할 듯한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의 '도망하매'란 말은 앞장의 사건(21:10-15), 곧 '아기스 왕 앞의 거짓 광인(狂人) 사건'의 결과로, 본장이 앞장과 밀접히 연결되어있음을 잘 보여 준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그에게 이르렀고' 
역모(逆謀)에 관한한 한 사람의 범죄때문에 온 가족이 처벌당하는 일은 고대의 흔한 관습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사울의 보복을 피하여 다윗의 가족이 이같이 도피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편 '아둘람 굴'은 다윗의 가족이 살던 베들레헴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졌다는 점에서, 다윗의 가족들은 적어도 약 네 시간 정도 걸려 그곳에 도착했을 것이다.

'내려가서(야라드)' 이 단어는 베들레헴에 비하여 아둘람 지역이 상대적으로 저지대라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환난 당한 모든 자' 
여기서 '환난당한'(마초크)은 '억지로 시키다', '강요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추크'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단어의 어근이 갖는 의미를 통하여 추론해 볼 때, '환난을 당한 자'는 그 당시 사울의 학정으로 인하여 주로 정치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사 51:13).

'빚진 자' 
이들은 사울 왕국의 부당한 세정(稅政) 또는 채주의 강압적인 고리(高利) 등으로 인하여 주로 경제적으로 억눌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음이 원통한 자' 
이와 같은 성구가 무자(無子)로 인해 브닌나로부터 애매히 고통 당했던 한나의 경우에도 적용되었다(1:10). 따라서 아마도 이들은 사울 왕국의 비도덕성 또는 비종교성 등으로 인해 심적.영적 상처를 입고 고통을 느끼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모였고(이트카베추)' 
이말은 '모이다'(카바츠)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자신들 스스로 모여들었다'란 의미로 이해해야한다(수 9:2,  삿 9:47,  삼하 2:25). 한편, 이처럼 스스로 뜻을 세우고 다윗에게로 모여든 여러 사람들 중에는 많은 용사들과 선지자, 그리고 지사(志士)들이 있었다(5절, 대상 12:1-18).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점점 타락하고 쇠퇴해가던 사울 왕국에서 침묵하고 안주하기 보다는 장차 이스라엘을 새롭게 할 자로 부름받은 다윗과 더불어 고난당하기를 기뻐하여 이처럼 모여든 것이다.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으로는 여자와 어린 아이는 항상 계수(計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기의 이 '사백 명' 역시 전투에 참여할 만한 용사들만을 의미함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 숫자는 얼마 안가서 결국 육백 명으로 불어난다(23:13,  25:13,  27:2,  30:9, 10).

3 다윗이 거기서 모압 미스베로 가서 모압 왕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지를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가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다윗이...모압 미스베로 가서' 다윗이 '아둘람 굴'<1절>로 간 것은 일시적으로 피신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추종자가 많아짐에 따라 블레셋 사람들과 사울에게 자신의 위치가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다윗은 보다 안전한 피신처를 찾아 '모압'으로 간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자신과 자신의 부모들의 피신처로 모압을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증조모 룻이 모압 여인이었으므로(룻 1:22), 다윗은 모압 민족과 어느 정도 혈연적 연관성을 갖고 있었으며(룻 4:13-22,  마 1:5, 6), (2) 당시 사울 왕국과 적대 관계에 있었던 모압 민족이 사울 왕의 경쟁자인 다윗 자신을 후원할 것으로 기대했으며(14:47). (3) 일단 피신하였다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기에 적당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편 '미스베'(Mizpeh)는 '망대'(watch-tower)란 뜻으로, 현재까지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지명이 갖는 의미로 볼 때,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 평지 가운데의 비스가 산(신 3:27,  34:1) 근방 혹은 그 인근의 고지대로 추정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어떻게 하실 것을...알기까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앞길을 밝히 보여주사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확고히 믿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다윗은 자신의 고난이 결코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는 해결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와 능력으로써만 해결된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시 27:10).

'나의 부모로...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다윗은 노쇠한 부모와 함께 자신의 험난하고 고달픈 도피 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요청을 한 것이다.

4 부모를 인도하여 모압 왕 앞에 나아갔더니 그들은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다윗의 요새에 있을 동안에' '다윗의 요새'에 대해서는 (1) 모압이나 이스라엘 땅을 막론하고 다윗이 돌아다녔던 여러 요새라는 견해(Smith), (2) 자신의 앞날을 관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던 모압 땅의 한 요새라는 견해(Keil, Lange)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여기의 '요새'(메추다)가 단수라는 사실 둘째, '갓' 선지자가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했다는 사실<5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2)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5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다윗이 떠나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선지자 갓' 성경 주석가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이 선지자의 출현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들을 제시한다. 즉 (1) 갓은 그때 다윗에게 직접 오지 않고 사람을 시켜 하나님의 뜻만 전했다는 해석(Lange), (2) 갓은 사무엘이 지도하는 선지 학교 출신으로서, 사무엘의 명을 받아 다윗에게 와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는 해석(Smith, Keil),(3) 다윗이 아둘람 굴에 있을때 모여든 사백 명 중의 한 사람으로서, 모압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 다윗에게 전했다는 해석(Wood) 등이다. 

그런데 본서가 사무엘을 통한 다윗의 왕국 건설을 대주제로 하는 책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2)의 견해가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한편 '갓'은 '행운'이란 뜻인데, 이와 동일한 명칭의 지파 즉 갓 지파가 있다는 점에서, 이 선지자는 그 지파 소속의 사람인 듯하다. 향후 이 선지자는 다윗의 도피 생활 중 그의 조언자 역할을 한 것 같고, 다윗이 왕이 된 후에는 궁전 선지자로 봉사하면서(대상 21:9) 다윗의 범죄를 지적하기도 하고(삼하 24:11-19), 다윗의 행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대상 29:29).

'유다땅으로 들어가라' 이같은 명령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애굽 땅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다시 불러내셨던 사건과 신학적 동일선상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창 12:1, 10).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언약의 땅 가나안을 지켜야 했듯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도 어떠한 위험과 역경이 기다린다고 하지라도 언약의 땅과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로 다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사실 다윗은 유다로 돌아가서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등 자신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백성들로부터 지속적인 인정을 받을수 있었으며(18:7, 28-30), 바로 이같은 일이 왕좌(王座)로 나아가기 위하여 다윗 자신이 준비해야 할 일이었다.

'헤렛 수풀에 이르니라'

'헤렛'은 오늘날 '카라스'와 동일한 지역으로 추정된다. 그 위치는 '십'(23:15) 남쪽 약 3.2km, 헤브론 남서쪽약 8-9km지점으로 '그일라'(Keilah, 23:1)와 인접 지역이다.

6 사울이 다윗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그 때에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손에 단창을 들고 에셀나무 아래에 앉았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곁에 섰더니 

'사울이 다윗...나타났다 함을 들으니라' 본서 저자는 놉의 제사장들이 대량 학살을 당하는 사건의 초두에서 이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다윗이 유다에 나타난 이 사실이 대학살 사건이 벌어지게 된 한 요인이었음을 암시하려고 했다. 

'사울이 기브아 높은 곳에서' 여기의 '높은 곳'은 산당(山堂)을 의미치 않는다. 다만 자신의 왕적 권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사울에 의하여 선택된 높은 곳의 자리를 가리킬 뿐이다.

'손에 단창을 들고'

'단창'은 사울이 항상 소지하던 것으로서(18:10,  19:9, 10, 26:7, 8, 11, 12, 16,  삼하 1:6), 왕들이 흔히 지참하는 홀처럼 왕의 위엄을 상징(히1:8)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이 홀 대신에 '단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수행하던 왕직(王職)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9:16, 17).

'에셀 나무 아래 앉았고' '에셀나무'(tamarisk tree)는 보통 사막 지역의 와디(Wadi, 건천)에서 자생하는 연질(軟質)의 나무이다. 이 나무는 수많은 가느다란 가지에 비늘과 같은 잎이 달려있으며, 꽃의 색깔은 하얗다. 그런데 이것은 고지대에서 특히 귀하다는 사실 때문에, 대부분 산지에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매우 소중히 여겨졌다.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사울은 이 에셀 나무 아래서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Klein). 더구나 여호와 숭배와 관련하여 아브라함이 이 나무를 브엘세바에 심었다는 사실 또한 이 나무를 소중히 여기도록 한 한 가지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창 21:33). 또한 후일 사울이 이 나무 아래에 장사되었다는 사실은(31:13), 그가 이 나무를 특별히 좋아했다는 증거도 된다.

7 사울이 곁에 선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들으라 이새의 아들이 너희에게 각기 밭과 포도원을 주며 너희를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너희 베냐민 사람들아' 사울의 신하들이 이처럼 사울의 지파와 동일한(9:1, 2)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준다. 즉 (1) 사울의 민족 단합 정책이 거의 실패로 돌아갔으며, (2) 사울이 자신의 병적인 피해 의식에 따라 편중된 인사(人事) 정책을 실시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새의 아들'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호칭이다<20:30>.

'너희에게...밭과 포도원을 주며' 여기의 '밭과 포도원'은 왕에 대한 봉사, 충성의 대가로 하사받는 토지를 가리킨다(8:14). 그런데 사실 여기의 '밭과 포도원'은 왕권(王權)을 이용하여 백성들로부터 거의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임이 분명하다. 바로 이같은 사실은,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경고했던 바(8:11-18), 곧 왕이 백성들의 토지를 강제로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들에게 줄 것이라는 예언이 사울에 의해 그대로 성취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8:14>.

'천부장, 백부장을 삼겠느냐' 사울의 이 말도 역시 사무엘이 예언했던 왕의 직권 남용이 사울에 의하여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8:12>

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알리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니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이것은 실제로 사울의 신하들이 사울을 모해(謀害)하기로 음모를 꾸몄음을 가리키지 않는다. 다만 신하들이 다윗을 체포하고 처치하는 데 적극성을 띠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나아가 이 말은 자신의 신하들이 다윗과 공모하여 고의적으로 자신에게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피해 의식에서 비롯된 의심의 말이기도 하다.

'맹약하였으되' 당시 다윗과 요나단 간의 우정과 사랑의 맹약은 너무도 진솔하고 탄탄한 것이었으므로, 사울 뿐만 아니라 있었던 듯하다. 따라서 다윗의 도피 생활에 분명 요나단이 개입되었을 터인데, 그러한 정보를 신하들 중 한 명도 자신에게 고발하지 않고 있다고 사울이 격노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들이...나를 치려 하는 것' 이는 다윗에 대한 사울의 피해 의식이 점차 심화되어, 신하들은 물론 자신의 아들까지도 자신을 죽이려 하는 모해자(謀害者)로 의심하는 사울의 병적 증세를 보여 준다.

9 그 때에 에돔 사람 도엑이 사울의 신하 중에 섰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는데 
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음식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도엑이...신하 중에 섰더니'

여기의 '도엑'은 사울의 목자장 또는 사울의 근위대장 정도의 지위였던 것같다(21:7 주석 참조).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 21:1 주석 참조.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이것은 실제로 다윗이 놉에 갔을 때 일어난 일을 언급하고 있는 21:1-9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도엑의 이말은 사실이다(15절).즉 도엑이 사울에게 고발한 바 아히멜렉이 다윗을 위하여 여호와의 뜻을 묻고, 식물도 주고, 칼도 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도엑은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왕명 수행을 핑계로 그러한 요구를 했다는 사실(21:2)은 말하지 않았다. 만일 그러한 사실까지 말했다면, 정황을 모른 아히멜렉은 무고히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18절)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엑은 혀가 지닌 간사성과 위험성을 가장 잘 보여 준 대표적인 악인이었다(시 52:3-5,  약 3:2-6).

'식물' 성소의 떡상에서 물려냈던 진설병(21:5, 6)을 말한다.

11 왕이 사람을 보내어 아히둡의 아들 제사장 아히멜렉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 곧 놉에 있는 제사장들을 부르매 그들이 다 왕께 이른지라 

'아히둡' 대제사장 엘리의 손자이며, 사악한 제사장 비느하스의 아들이다(14:3).

'놉에 있는 제사장들' 원래 '놉'은 제사장의 성읍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이 성읍에서 집단 거주하게 된 까닭은, 실로가 블레셋에 의해 파괴되는 과정에서 엘리 제사장의 후손들이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던 바로 이 성읍으로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 엘리의 후손들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성막을 다시 재건했을 것이다(21:1).

12 사울이 이르되 너 아히둡의 아들아 들으라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3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새의 아들과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여 그에게 떡과 칼을 주고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게 하려 하였느냐 하니 

'네가 어찌하여...공모하여' 간신 도엑의 말(9, 10절)에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사울왕은 정황을 자세히 살피기에 앞서 먼저 제사장 아히멜렉을 반역 공모죄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모세 율법에 따르면(신 19:15,  민 35:30) 판결에는 반드시 두사람 이상의 증인(證人)이 요구되었는데, 사울은 단 한 사람 그것도 자기 심복이었던 도엑의 증언만을 듣고 재판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이라도...나를 치게 하려' 다윗에 대한 사울 왕의 피해의식과 강박 관념이 잘 드러난 말이다. 사실 사무엘로부터 폐위 선언(13:13, 14,  15:23, 26)을 듣고 곧이어 다윗이 출현하게 되자, 사울은 다윗으로부터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14 아히멜렉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의 모든 신하 중에 다윗 같이 충실한 자가 누구인지요 그는 왕의 사위도 되고 왕의 호위대장도 되고 왕실에서 존귀한 자가 아니니이까 

'왕의 호위대장'

(미쉐마아트)은 어원학상으로 볼 때 '순종해야 되는 자', '듣는 자', '청중'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시종' 즉 '옆에서 모셔서는 자'란 말로서, 왕의 개인 보좌관 내지는 조언자를 가리킨다(삼하 23:22, 23,  대상 11:24, 25).

15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까 결단코 아니니이다 원하건대 왕은 종과 종의 아비의 온 집에 아무것도 돌리지 마옵소서 왕의 종은 이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관하여 아는 것이 없나이다 하니라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처음이니이까' 성경은 다윗이 사울의 중신(重臣)이 된 이래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은 경우를 언급치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있을 때마다 대제사장이 전장(戰場)으로 나아가서 전투 최고 지휘자의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관례였다는 점에서 볼 때(14:3). 다윗이 지휘했던 전투에 아히멜렉도 함께 가서 다윗의 요구에 따라 '우림과둠밈'(출 28:30 주석 참조)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16 왕이 이르되 아히멜렉아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 너와 네 아비의 온 집도 그러하리라 하고 

본절의 내용은 사울이 그릇된 재판을 행하는 등 하나님의 공의를 파기한 불의한 폭군임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신 16:18). 즉 사울의 재판은 (1) 모세 율법에 명시된 바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세우지 않았으며(신 19:15), (2) 간결 명료한 진술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던 아히멜렉의 증언을 오히려 자신의 독단으로써 일언지하에 무시하였으며(14, 15절,  신 19:16-19), (3) 분명한 이유도 없이 온 가문(家門)을 몰살시켰다는 점(신 24:16)에서 볼때 분명 폭군의 불의한 횡포일 뿐이었다.

17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의 신하들이...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이같은 반응을 보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죽여야 하는 대상이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 신분에 있는사람들이며, (2) 이들 제사장들에 대한 사울의 재판이 완전한 독단과 조작에 의한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아가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왕이 도엑에게...죽이라 하매' 사울은 자신의 다른 신하들이 제사장을 죽일 수 없는 필연적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 '이방인' 도엑(21:7)을 시켜 제사장을 죽이려고 했다.

'그날에' 무고한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이 지체없이 시행되었음을 시사해 준다.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 오 인을 죽였고' 

'놉 제사장 학살 사건'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즉 (1)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 직무를 맡고 있는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무고한 혐으로 가혹하게 처단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모독한 처사요, 따라서 그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8:7)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반역 행위였다.(2) 일찍이 대제사장 엘리의 가문에 내려졌던 심판적 예언의 성취였다(2:31-36, 3:11-14). 즉 제사장 아히멜렉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써 심판적 경고를 받았던 엘리의 증손자로서(14:3). 조상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의 불의한 재판을 통해 이루어진 셈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대소사(大小事) 및 길흉(吉凶)의 사건들이 모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하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한편 여기의 '세마포 에봇'은 일반 제사장들이나 성막 봉사자들이 입던 옷으로서, 대제사장들이 입는 에봇과는 분명히 구분된다(2:18).

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제사장들의 성읍' '놉'(Nob)은 분명히 모세나 여호수아에 의하여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되지 아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놉'은 이같이 표현한 까닭은, 그당시 놉이 제사장들의 거주지였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었다.

'남녀...젖 먹는 자들과 소...양을 칼로 쳤더라' 제사장을 죽이라는(17, 18절) 사울의 명령보다 더 심하게 이처럼 행한 것은 분명 '도엑' 자신의 독단적 판단에 따른 행위로는 볼 수 없다. 틀림없이 이것은 '놉'이라는 성읍 전체를 '진멸'해야 하겠다고 판단한 사울의 또다른 명령에 따른 행위였을 것이다. 일찍이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15:3)을 제대로 이행치 않음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15:18, 19, 23). 그러나 이제 사울은 그때 휘둘렀어야 했을 '진멸의 칼날'을 오히려 선량한 놉의 제사장들에게 사용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20 아히둡의 아들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그가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아히멜렉의 아들 중...아비아달' 여기의 '아들 중'이라는 말은 당히 '아히멜렉'에게 여러 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또한 여기서 '아비아달'(Abiathar)은 '아버지는 뛰어나시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아비아달은 제사장들이 모두 사울에게 호출됐을 때에 성막에 혼자 남아 있다가, 사울에 의한 비극적 학살 사실을 전해 듣고 급히 도주할 수 있었던 것 같다(Smith). 특히 이처럼 아비아달이 성막에 있다가 도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가 '에봇'(21:9)을 갖고 다윗에게로 도망갔다는 사실에 의하여(23:6) 그 정확성이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도망하여 다윗에게로 가서' '아비아달'이 이같이 다윗에게로 도망간 까닭은, 다윗이 사울에 의해 쫓기는 등 사울과는 적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역시 사울에게 쫓기는자신을 기꺼이 받아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21 사울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인 일을 다윗에게 알리매 

'죽인 일을 다윗에게 고하매'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는 다윗의 시편으로는 17, 35, 64, 109, 140편 등이 있다. 즉 후일 다윗은 이러한 시편들을 통해 악인의 잔인성과 그 말로(末路), 자신의 범죄및 여호와의 긍휼 등을 진솔히 읊었다.

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사람 도엑이 거기 있기로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말할 줄 내가 알았노라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 죽은 것이 나의 탓이로다 

'반드시...고할 줄...알았노라' 

다윗은 바로 이같은 판단에 따라, 황급히 '놉'을떠나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갔었다(21:10). 그러나 그때 다윗은 자신으로 인하여 제사장들이 엉뚱하게 다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네 아비 집...죽은 것이 나의 연고로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같이 유감을 표명한 까닭은, 아비아달의 아비 아히멜렉의 가문이 사울로부터 화를 당하게 된 것은 자신이 그에게 거짓말을 해서 그로부터 도움을 받게된 사실이 주요한 원인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21:2>. 따라서 다윗은 이처럼 아히멜렉을 위시한 제사장들의 죽음의 궁극적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였다(시 32:5).

더욱이 그는 자신의 거짓말 범죄(21:2)에 대한 인정과 회개의 표시로 긴급 구조를 요청한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을 자신의 무리 안에 받아들이기까지 하였다. 이같이 비록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참된 회개를 통하여 신앙을 회복하는 행위야말로 다윗을 다윗답게 한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삼하 12:13).

23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아비아달을 확신시키는 다윗의 이 말 속에는 (1)하나님께서 자신과 늘 함께 계실 것이라는 신앙과 (2) 이스라엘의 왕권은 결국 자신에게로 넘어올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