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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3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3. 19. 07:47

한글 주석 - HANGL NOCR

◈삼상23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 

'그일라'는 헤브론 북서쪽 약 13km, 아둘람 남쪽 약 5km 지점으로서, 가나안 정복 후 여호수아에 의하여 유다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이었다(수 15:44). 이곳은 당시 다윗이 머물고 있었던 '헤렛 수풀'에서는 북쪽으로 약 9km의 거리로 추정된다. 그리고 '아둘람' 지역이 그당시 블레셋의 영토였다는 점에서 볼 때(22:1), 그곳과 인근했던 '그일라'는 블레셋과의 국경에서 매우 가까운 위치였을 것이다.

'타작 마당을 탈취하더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침공한 목적 및 이유를 보여 준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1) 추수된 양곡을 탈취할 목적으로, (2) 전투 상대가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농민들이라는 이유에 따라 그곳에 침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틴의 밀을 베는 시기가 대략 5, 6월 정도라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블레셋 사람의 침공 시기는 아마도 밀 베는 시기가 좀 지난 6, 7월 경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높은 곳에 위치한 평평한 마당 또는 바위 위에서 타작이 행해진다고 한다. 왜냐하면 바람이 많이 부는 고지대가 (1) 알곡을 건조시키기에 좋으며, (2) 또한 쭉정이를 제거하기에도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작하여 쭉정이를 제거한 알곡은 집의 창고로 옮겨갈 때까지 타작 마당에 쌓여지게 되는데, 절도 또는 약탈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파수꾼을 둔다고 한다. 아무튼 이러한 시기에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 성읍의 타작 마당을 습격한 것이다.

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당시 이러한 문의는 대제사장의 에봇에 있는 '우림과 둠밈'(출 28:30)을 통한 질문 방식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 볼 때, '아비아달'이 에봇을 갖고 다윗에게 온 것은(6절,  22:20) 다윗에게 대단한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그일라를 구원하라' 여기서 '구원하라'(야솨)는 말은 이스라엘을 침략자들의 손에서 구출했던 사사들에게 많이 적용되었던 단어였다(삿 2:16,  3:9,  6:15, 7:7). 결국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윗으로 하여금 사사가 수행했던 직능을 행하게 하는 등 그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로 강력히 부각시키려고 한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이같은 뜻은, 당신께서 요단 건너 모압땅에 있던 다윗을 유다 땅으로 불러내신 의도와 완전히 부합된다(22:5).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다윗 추종자들의 이 말은 그 당시 그들은 사울을 자신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사울의 추격이나 위협으로부터도 안전치 못한 상황에서 사울보다 더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과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요 굉장한 부담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의 군대' 여기서 '군대'(마아르코트)는 잘 정렬된 군사의 '대열'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의 이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훈련이 매우 잘된 강력한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문구이다. 한편 여기의 이같은 '군대'라는 단어는 블레셋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었던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17장에서는 무려 10회나 사용되고 있다.

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이처럼 다윗의 재차 문의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믿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2절)에 따라 행하기를 두려워하며 주저하는 부하들을 격려하며 확신시키려는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네 손에 붙이리라' 이같은 표현은 여호와의 전쟁 곧 성전(聖戰)과 관련된 문맥에서, 이스라엘의 완벽한 승리가 신적(神的)으로 보장될 때 종종 사용되었다(14:10, 17:47,  수 6:2,  8:7,  10:8,  11:8 등). 따라서 다윗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이같은 응답은 다윗의 부하들을 안심시키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니라' 이것은 그일라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던 것들을 다시 찾아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본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타작 마당에서 건조시키던 중 빼앗겼던 곡식들(1절)도 틀림없이 되찾아 왔을 것이다.

6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시간적으로 볼 때 22장의 후반부(20-23절)에 언급되어야 할 본절이 여기에 놓여진 까닭은 다윗이 그일라에 침범한 블레셋과의 싸움에 앞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본 문구는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헤렛 수풀'(22:5)에 있던 다윗에게로 도망했을 것으로 언급하는 22:20과는 분명히 모순된다. 이같은 모순의 해결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된다. 즉 (1) 아비아달은 최초에 다윗이 피신했던 아둘람 굴로 도망갔으나(22:1), 다윗이 모압으로 가는 바람에 그와 헤어져 있다가 다윗이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와 블레셋을 치기 위하여 그일라로 갈 때에 그리로 함께 갔다고 보는 견해, (2) 아비아달은 다윗이 헤렛 수풀에 있을 때 그에게 도망했고(22:5), 다윗이 그일라로 향할 때 그와 함께 간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등이 제시되었다. 

'에봇' 소매 부분이 없는 긴 조끼 모양의 옷으로, 금색, 청색, 자색, 홍색, 흰색 등 다섯 가지 색상의 실로 만들어진 대제사장의 의복이다(21:9).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내 손에 붙이셨도다' 이것은 성전(聖戰)에 임함에 있어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완벽한 승리를 예상할 때 사용되는 술어 '나탄'(4절,  14:10, 37)과는 다르다. 여기의 '붙이셨도다'(나카르)는 원래 '거부하다', '따돌리다','소원하게 하다'란 의미이다. 결국 이 단어는 여기서 수동형으로 사용되어, 다윗이 지극히 위태한 상황에 떨어졌음을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70인역(LXX)은 이 말을 '파셨다'(페프라켄)란 말로 의역하였다.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에...갇혔도다' 사울이 다윗을 체포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게 된 이유를 말해 준다. 한편 '문과 문빗장이 있는 성'은 그일라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임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유다 광야와는 달리, 다윗이 그 성(城)안에 들어가 있는 이상 사울의 추격망을 벗어나기 힘들 것은 당연하였다. 더구나 사울에 의하여 그 성이 장기간 포위 공격될 경우(8절), 그 성의 주민들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버릴 것이 뻔한 이치였다(12절).

8 사울이 모든 백성을 군사로 불러모으고 그일라로 내려가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더니 

'사울이...백성을 군사로 불러 모으고' 이러한 징병 행위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적(모압, 아말렉, 블레셋 등)을 치려고 할 때마다 취했던 행동이다(11:7,  15:4). 따라서 여기서도 사울은 아마 외적을 치려한 것처럼 징병의 명분을 거짓으로 세웠을 것이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군대를 악용하여,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다윗을 대적하는 사악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9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사울의...계교를 알고' 사울이 거하던 궁성(宮城) '기브아'로부터 당시 다윗이 임시 머물고 있었던 '그일라'까지는 약 35km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사울의 군대가 그일라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사울의 군대가 그일라로 향한다는 소문이 먼저 다윗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에봇을...가져오라' 이는 대제사장의 '에봇'(출 28:6-14) 안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우림과 둠밈'(출28:30 주석 참조)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한 명령이다(2, 4절).

10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여호와여...주의 종이...들었나이다'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경건과 의뢰심이 잘나타나 있다. 실로 다윗은 모든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경건한 신앙적 기도를 잊지 않았다. 한편, 이처럼 에봇의 '우림과 둠밈'을 통한 문의(問議)는 진솔하고도 경건한 기도와 함께 드려졌던 것 같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그일라 사람들' 여기서 '사람들'(바알)은 '주인', '지도자'란 의미이다(사 16:8). 따라서 이는 곧 그일라의 장로들을 의미함이 분명하다(16:4).

'그가 내려오리라' 본절에서 다윗은 (1) 그일라 주민들이 자신의 일행을 해롭게 할지의 여부, (2) 그리고 사울이 그일라로 쳐들어올 지의 여부 등 두 가지 질문을 하나님께 했지만, 이처럼 다윗은 한 가지의 대답만을 듣는다. 이와 같이 다윗이 한가지 대답 밖에 듣지 못한 것은 다윗은 한꺼번에 두 가지의 질문을 하나님께 한 반면, '우림과 둠밈'은 한 사안(事案)에 대하여 '예'(yes)와 '아니오'(no)로 한 가지만 대답하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Keil).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의 질문 중 논리적 우선 순위를 갖는 사울의 침공 여부에 대해서 먼저 답을 주셨다.

12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사울의 손에 붙이겠나이까' 11절에서 이미 언급된 이 질문은 하나님께로부터 이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으므로 본절에서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13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여기의 '육백 명'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신했을 때 그의 주변에 모여들은 숫자 '사백 명'(22:2)보다 약 '이백 명'이 늘은 숫자였다. 그러나 이 숫자의 병력은 사울의 대군에 비하면 지극히 보잘것 없었다. 한편 본서 저자는 여기서 '육백명'이라는 숫자를 특별히 언급함으로써, (1) 다윗이 그때 이리저리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암시하고 (2) 아울러 그러한 도피 생활 가운데서도 다윗의 세력이 점차 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14절의 언급을 통해 볼 때, 이것은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을 뜻한다. 즉 당시 사울에게 쫓기고 있던 다윗이 일정한 노정(路程) 없이 그때 그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여호와께서 이끄시는대로 일행과 함께 이곳 저곳으로 방랑하는 생활을 하였음을 가리킨다.

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황무지 요새' 여기서 '황무지'는 유다 광야를 뜻한다. 즉 유다 지역 중앙의 산지와 사해 사이에 있는 광야를 가리킨다(수 15:61, 62). 그리고 '요새'는 산과 수풀 등 자연적 지형 지물 등으로 형성된 안전한 은신처를 가리킨다.

'십 황무지 산골' '십'(Ziph)은 유다 지파에 속하는 성읍이다(수 15:55). 그 위치는 그일라 남동쪽 약 21km, 헤브론 동남쪽 약 8km 지점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산악 지대에 있는 산 중의 하나가 19절에서 언급되는 '하길라 산'이다.

'사울이 매일 찾되'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실(15, 25, 26절,  24:2,  26:2)을 총괄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사울이 평생에 다윗의 대적(對敵)이 되니라'라는 19:29의 기록과 일맥 상통한다. 실로 다윗에 대한 시기와 증오심을 버릴 수 없었던 사울은 그가 죽을 때까지 하루도 평안과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붙이지 아니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경건한 성도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시 31:20,  46:1,  145:20). 즉 그들을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시 17:8). 진정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허락없이 인간은 참새 한마리의 생명 조차도 어찌할 수 없다(마 10:29-31).

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요나단이...다윗에게 이르러' 요나단의 이같은 행동은, (1) 사울에게 쫓겨 심한 곤경에 빠져있을 다윗을 위로하며, (2) 다윗과 자신간에 맺어진 언약(20:12-16)을 재확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로 하나님을...의지하게 하였는데'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도록 한 위로와 격려의 말은 구체적으로 17절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그말의 핵심은 다윗의 왕권에 대한 인정과 보장이었다.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결국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사울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15:26,  18:15). 그러나 여기 요나단의 이 표현은 위와 같은 부친 사울의 생각이 점차 굳어져서 확신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나는 네 다음이 될 것' 요나단의 이 말은 다윗이 등극한 후 자신에게 제 2인자의 지위를 보장해 달라는 소망이나 부탁이 결코 아니다. 요나단의 이 말은 단순히, 자신에게 부친 사울의 왕권이 승계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이같이 보아야 할 까닭은, 왕조가 바뀔 경우 전(前) 왕조의 후예들은 추방 내지는 죽임을 당하는 풍습이 보편화 되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20:14), 사울은 자신의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갔을 때 자신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의 은총을 입어 제 2인자로서 존립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두 사람이...언약하고' 다윗과 요나단 간에 이미 맺었던 언약(20:12-17)을 새롭게 갱신한 사실을 가리킨다.

'여호와 앞에서' 저자는 계약적 측면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 '여호와'를 사용함으로써 다윗과 요나단 간의 언약의 공고성을 부각시키려 한다(20:13, 14, 16). 한편 둘 사이에 맺은 이와 같은 언약은,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전사한 요나단(31:2)에게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요나단의 후손들에게는 다윗에 의하여 그대로 성취되었다(삼하9:11).

19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십 사람들이...사울에게...가로되' 십 사람들의 이같은 밀고(密告) 행위의 동기는(1)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1-19)에 겁을 집어먹은 그들이, 사울로부터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누명을 쓰지 않고 오히려 사울로부터 칭찬을 받을 목적과(21절), (2) 다윗이 사울의 손에 결코 붙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뜻<14절>을 알지 못하는 영적 무지 때문이었다.

'광야 남쪽' 이는 유다 광야의 남쪽, 즉 사해(死海)의 서쪽 황무지를 가리킨다. 한편 흠정역(AV)은 여기의 '광야'(예쉬몬)를 유다 광야의 한 부분에 위치한 특정 지역으로 본다(민 21:20,  23:28). 아무튼 이곳은 후일 침례요한이 머물던 곳으로서(마 3:1), 그 동쪽으로는 사해로 내려갈 수 있는 석회암 절벽이 있어 가히 천연적 요새지라 할 만한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은 오늘날에도 각종 피난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길라 산 수풀 요새' '하길라'는 '건조한 언덕'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 '하길라 산'은 '십 황무지 산골'(14절)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하길라 산'은 15절에 언급된 '십 황무지 수풀'의 구체적인 또다른 명칭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산은 높이 서 있는 관계로, 이 산에서 기거하던 다윗의 일행은 이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평지에서 생활하던 십 사람들에 의하여 쉽사리 발견될 수 있었다.

20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내려오소서' 이 말은 당시 사울의 궁성이 있던 기브아는 고지대에 위치한 반면 십 황무지는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를 왕의 손에 붙일 것' 여기서 '붙일 것'(하스기로)은 '닫다', '가두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사가르'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는 상대방을 강제로 감금함으로써 궁지에 빠뜨리는 것을 가리킨다(레 13:4,  시 31:8). 또한 이 단어는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에 대해서 취하려 했던 행동을 표현할 때도 사용되었다(11절). 본서 저자는 본장 안에서 이 단어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다윗이 성읍 거민의 무지한 밀고와 배반등으로 위기 상황에 계속 봉착되는 안타까움을 암시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21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알아보고(야다)' 다윗에 관한 첩보 수준이 아닌 정보를 입수하라는 뜻이다. 즉 이것은 다윗이 십 사람들에 의해 목격된 곳 이외의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23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탐지하고' 22절의 '더 자세히 살펴서'와 동일한 단어이다.

24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여기의 '광야 남편'은 19절에서 언급된 '광야 남편'과 동일하다. 그리고 '마온'은 '거주', '거처'란 뜻으로서, 헤브론 동남쪽 약 13km, 십 남쪽 약 7km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다. 
한편 '아라바'(Arabah)는 '황무지' 또는 '사막의 들'이란 뜻으로서, 갈릴리 호수로부터 사해에 이르기까지 요단 게곡을 따라 좌우로 펼쳐져 있는 저지(低地)의 광야 지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보통이 말은 넓게는 유다 광야 전체를, 좁게는 유다 광야 중 사해(死海) 인근의 지역 혹은 요단 계곡 중 사해와 가까운 곳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유다 광야 중 사해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5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여기서 '바위'(셀라)는 '마온'(Maon)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 또는 '절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26절). 즉 다윗은 그 산에서 평지 곧 '마온 황무지'(wilderness of Maon)로 내려온 것이다. 다윗은 그때 산 바로 아래의 동굴 또는 수풀 등으로 피신하려고 했을 것이다.

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더라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여기서 '산 이편'은 마온에 있는 거대한 바위 협곡의 한편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협곡은 매우 깊어서 먼 거리를 돌지 않고서는 반대편으로 갈 수 없다고 한다(Conder). 그러므로 사울은 그때 '산 이편'에서 '산 저편'으로 도망치고 있는 다윗의 일행을 빤히 바라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27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본절은 절대 절명의 위기 속에 갇힌 다윗이 하나님의 섭리로 극적인 보호를 받는 장면이다. 우리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미처 예측하지 못하는 방법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베푸신다(행 9:1-9) : 사실상 블레셋 군대가 침입한 것은 결코 다윗을 도와주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일어나는 시기와 장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그 사건으로 하여금 거의 생포될 위기에 놓여 있었던 다윗을 구출케 하는 역할을 하게 했던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미 7:7, 8) : 다윗은 극한 상황에 처해서도 계속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신뢰함으로써 마침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었다(시 63편). 이것은 매사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는 신앙인의 승리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인간적인 잔꾀보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참된 신앙이 요구되어진다(시 146:5,  마 24:13).

28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당시 사울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맺어져야 했을 합당한 관계는 무시했으나, 이방의 왕들처럼 왕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의무인 외적으로부터의 국가 방어에 관해서는 충실했다. 이같은 점에서 사울은 신정 왕국의 왕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열방의 왕과 같은 세속적 군주일 뿐이었다(8:5,20).

'셀라하마느곳' 사울에게 쫓겨 더이상 피할 곳이 없었던 다윗은, 그 절대 위기의 순간에서 구원받은 그 장소를 기념하여 '셀라하마느곳'이라 명명했다. 어원상 그 이름의 뜻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즉 (1) '미끄러운 바위'를 가리킨다는 견해, (2) '분리의 바위'를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셀라'가 '바위', '절벽'등을 가리키는 확실한 단어인데 반해 '하마느곳'의 기본형 '할라크'는 (1) '미끄러움', '순탄함' (2)'분리', '구획'등 두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6-28절의 문맥으로 미루어볼 때, 이 말은 '분리의 바위'(The Rock of Division)란 뜻으로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즉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분리시켜 다윗의 도피를 성공하게 해준 바위란 뜻이다(Koeheler, Baumgarten). 이런 의미에서 RSV, Living Bible 등의 영역본은 '도피의 바위'(the Rock of Escape)라고 번역했다.

29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본절은 엄밀히 말한다면 다음 장으로 분류됨이 타당할 것이다.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여기의 '거기서'는 다윗이 사울에 의해 쫓겨 도망간 최종 지점으로서 마온 황무지의 바위 산을 가리킬 것이다. 비록 사울의 추격은 중지됐지만, 다윗은 십 사람들이 자신을 계속 탐지하고 밀고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났다. 즉 다윗과 그의 일행은 마온 협곡을 완전히 건너 올라갔던 것이다.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 '엔게디'는 '염소의 샘'이란 뜻인데, 이곳은 다윗이 앞서 은신해 있었던 '마온 황무지'의 동북방 약 17km정도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편 '엔게디 요새'는 한 지점만이 아닌 약 20여km의 거리에 걸쳐 있는 산맥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여기의 '요새'(메차도트)가 복수라는 점에서 볼 때, 당시 다윗은 그 지역의 어느한 곳에서만 머물지 않고 여기저기를 옮겨다니면서 은신했던 듯하다
특히 이같은 요새 지대는 동쪽으로는 사해로 내려가는 석회석 협곡 및 벼랑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협곡과 벼랑은, 흙은 석회질이지만 바위는 백악(白堊)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많은 자연적인 굴들이 있어, 현재에도 도망자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협곡의 벼랑으로 내려가다 보면 이 지역의 명칭을 낳게 한 수온 약 30도의 '샘'이 있다고 한다(시42편의 배경). 그리고 이 엔게디는 유다의 여러 지역중 국방상 가장 취약한 곳이었기 때문에, 암몬, 모압, 에돔족들에 의하여 유다를 침범키위한 통로로 이용되었었다(대하 20:1 이하). 
한편 엔게디 요새지는 사해 수면에서 약670m이며, 엔게디의 샘은 약 200m에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 지명에서 암시되어 있듯이 지금도 들염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