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5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사무엘이 죽으매' 사울의 추격과 다윗의 도피가 계속되는 상황 가운데서, `라마나욧 사건'(19:18-24) 이후 중단되었던 사무엘의 기사가 나타나는데, 곧 그의 사망 소식이다. 한편 사무엘의 사망 연도는 83세 때인 대략 B.C. 1017년 경으로 추정된다. 우리가 이같이 볼 수 있는 근거는,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은 때는 `미스바 전투'(7:5-11, B.C. 1055년)가 있은지 5년 후 즉 사무엘이 약50세 때인 B.C. 1050년 경이며, 따라서 사무엘의 출생 연도는 대략 B.C. 1100년 경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제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최후의 사사요 최초의 선지자인 사무엘은 자신이 하나님에 의하여 소명된 목적, 곧 신정(神政) 왕국의 건설을 준비하는 직무의 수행을 완료하고(16:13)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에 따라 세상을 하직하고 열조에게로 돌아간 것이다(창 25:8, 35:29, 49:33, 민 20:26).
'온 이스라엘 무리가...애곡하며' 사무엘의 죽음에 대한 백성들의 슬픔은 마치 아비의 죽음에 대한 자식의 슬픔과도 같았다. 즉 이스라엘 온 백성이 하나같이 애곡과 애통의 날을 보냈던 것이다. 실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슬픔은 (1) 선지자로서 영적, 정치적으로 완전히 쇠퇴했던 이스라엘을 회복시켰던 사무엘의 업적(7:3-16), (2)사사로서 청렴 결백했던 사무엘의 인품(12:1-5) 때문이었을 것이다(1:1, 7:16).
그리고 `집'은 문자적 의미의 `가옥' 그 자체라기 보다는 집(가옥)에 딸린 공지(空地)나 정원 또는 뜰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따라서 혹자(Klein)의 생각처럼 이를 `고향'이란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
유대 전승은 사무엘의 장지(葬地)가 미스바의 고지(高地)라고 주장하나, 지리적 여건상 타당성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무엘의 장지를 그가 살던 집에 딸린 정원의 공지나 뜰로 이해함이 좋을 것이다. 사실 이와 같은 장사법(葬事法)은 당시 고대 중근동 지역에 흔히 있었던 관례로서,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다윗이...바란광야로 내려가니라' 여기서 `바란 광야'는 시나이 반도의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서(창 21:21, 민 10, 12, 12:16, 13:3, 26), 아라비아 반도의 최남단부에 있는 오늘날의 `엘-티'(El-Tih)광야이다.
`바란 광야'는 팔레스틴의 최남 도시 `브엘세바'와 뚜렷한 경계선 없이 인접한 광야로서, 역시 유다 광야와 경계선 없이 이어지는 광야이므로, 당시의 여건상 다윗이 이곳까지 도피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실, 당시 사울 왕을 견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인 사무엘이 죽자, 그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바 있는(16:12, 13) 다윗은 사울에게서 더욱 멀리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튼 다윗과 그 일행이 `엔게디 황무지'를 떠나서 `바란 광야'로 내려갔다가, 자신들이 이전에 머물렀던(23:24, 25) `마온 광야'로 다시 올라 온 것은 식량 문제의 해결을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8, 11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