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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5장 훈련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LNCK 2023. 3. 22. 19:44

[여호수아 청년부예배] 130922 다윗과 나발  - YouTube

◈훈련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삼상25장      2013.09.22.녹취

본문 삼상25장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나발-아비가일의 만남 사건입니다.

◑1절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사무엘이 죽으매' 
본문에 사무엘의 죽음이 간단한 배경설명처럼 나와 있지만 
결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1:1에 보면 '모세가 죽은 후에' 
삿1:1에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성경은 역사의 분기점마다 주요 인물의 사망소식을 대서특필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는 여호수아가 등장을 했고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사사들이 등장을 했습니다. 

'리더십의 공백 없이 하나님께서 그 다음 단계로 이끌어가셨다'는 것이죠. 
역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셨던 하나님의 역사 운행이고 
또 하나님의 역사 경영이었습니다. 

근데 오늘 본문에는 <사무엘상>의 마지막도 아니고 
<사무엘하>가 시작되는 첫 부분도 아니고 
갑자기 중간(25:1)에 '사무엘이 죽었다'는 거예요. 이런 배치는 의외죠.

성경 전체의 표현 기법에 의하면 '사무엘이 죽은 후에 역사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런 내용이 전개되어야
정상적인 성경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1절에 '사무엘이 죽으매' 라는 어투는, 
'사울은 여전히 날뛰고 다윗은 여전히 광야를 헤매고 있는데,
사무엘은 죽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이런 뉘앙스 입니다.

지금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 입장에서는 
'저렇게 대 선지자님이 훌쩍 떠나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나요?' 
이 다윗의 마음에, 굉장한 영적인 디프레션(우울)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고, 성경이 기록한 최초의 대 선지자였습니다. 
사사시대의 영적인 암흑기를 뚫고 나온 하나님의 사람이었어요. 
시대의 중요한 큰 별이 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다윗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요. 

그를 이끌어 주었던 영적 멘토는 사라지고 
'너는 앞으로 이 나라의 왕이 될 것이다' 그 말을 했던 사람이 사라졌어요. 
그의 말만 남고, 그 말의 주인공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때가 기원전 1017년 경, 향년 83세로 추정됩니다. 
온 이스라엘의 아버지였던 사무엘이 떠나던 날 
'온 이스라엘이 모여 그를 위해서 애곡했습니다.' :1 
온 이스라엘이 국가장으로 사무엘의 장례를 치른 것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의 장례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어요.
자기의 영적인 멘토였던, 자기가 그토록 의지했던 스승 사무엘의 장례식에도 
그는 참석하지 못했어요. 쫓기는 신분이었기 때문이죠.

다윗이 기브아에서 정말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도망쳐 나온 이후로 
라마에 가서 사무엘을 만나고, 즉 19장 이후로 
다윗과 사무엘이 만난 적이 없어요. 

광야를 그렇게 헤매면서 사무엘과 한 번도 다시 재회 해보지 못하고 
그는 황망하게 떠나버린 것입니다. 
다윗의 가슴에 엄청난 상실감이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쌩쌩 불어닥친 것이죠. 

▲그리고 나서 1절에, 그 후에 다윗은 바란 광야로 내려갔습니다.

다윗이 바란 광야로 (남단 끝으로) 내려간 이유는,
첫번째는 두려움 때문이고, 두 번째는 슬픔때문입니다. 

이제 사무엘마저 죽었으니 사울은 더 날뛸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에 더 밑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문상은 가지도 못하는데, 그는 자신의 조국을 등지고 더 멀리 떠나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다윗은 갈 데가 광야밖에 없는 것이죠. 
이 광야를 헤맨 세월이 몇 년째 인지 모릅니다. 

이 구절을 묵상을 하면, 늦가을에 찬바람을 맞으면서 
밤길에 옷깃을 세우고 홀로 쓸쓸이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떠올라요. 

다윗의 영적인 고독이 갈수록 심해져 갑니다. 
이제는 다윗시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인 홀로서기'를 해야 될 시즌이 온 거예요. 

 

△제 개인적으로는, 1절을 묵상하면서, 제 인생에서 가장 존경했고 
또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인생을 사는 본을 보여주셨던 저희 어머님이 
6년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나셨을 때 
'내 어머니의 하나님이, 이제부터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십시오!' 
이 기도를 드리기는 했지만 

또 한 가지는 '아 나는 이제부터 진짜 영적인 홀로서기를 해야 되겠구나!' 
라고 절감을 했던 때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너무나 몰아가십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노년의 사무엘이 그의 대관식을 치러주는 
그런 행복한 모습까지는 아니어도 
다윗의 든든한 지원군을 데려가 버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무엘은 천국으로 가고, 사울은 더 미쳐서 날뛰고 
다윗은 점점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인물이 되어 갑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 입니까? 이렇게 끝나는 것입니까?' 
그런 마음이 그 안에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던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침묵하십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아무런 말씀이 없으세요. 
아무런 대답이 없으신 하나님! 

△그러면 왜 우리의 인생의 고난가운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요? 
그것은 그 지독한 외로움까지도 
바로 그(우리)가 통과해야 되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의 풀무불이죠. 
왜냐하면 다윗이 그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이 연단의 고독, 이 슬픔의 풀무불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그의 밑바닥(민낯)이 드러나는거에요. 오늘 본문에 다윗의 밑바닥이 드러납니다. 

본문은 우리가 생각했던 다윗의 모습이 아니에요. 
'언제 다윗이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은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다윗의 모든 내면에 남아있는 찌꺼기들이 막 올라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그 불순물들을 걷어내시죠. 

△여러분, 인생이 정말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 
이 한 가지를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내 인생의 밑바닥까지 드러난다면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내 인생에 남아있는 더러운 부분들이 드러난다면, 
내 인생의 연약함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수치스런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연단하시고 나를 정금과 같이 만드시는 사건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아직도 훈련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리고 온 세상이 깜짝 놀랄 그 날을 아직도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나는 이제 경기에 나갈 만큼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이죠. 

여러분 훈련 중에 있는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아직 요원하고 
이 훈련은 계속 고되고, 그게 1년, 5년, 10년째 반복되면 
아예 훈련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그때 내려놓으면 안됩니다. 

오늘 다윗이 받았던 훈련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2~3 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
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2절에 '마온'은, '거처'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의 죽음과 더불어 나발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마온은, 북으로는 유대 광야, 남으로는 바란 광야 사이에 있습니다.

그 일대가 다 황무지 광야지만, 그 중간 지점에 사람이 살만한 곳이 마온입니다. 
갈멜은 마온에서 북으로 1.6킬로 떨어져 있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여기 갈멜은, 엘리야의 갈멜산하고는 완전 다르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사람(나발)의 이름을 소개하기 전에 
재산 목록을 먼저 소개했다는 거예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재산이었던 거예요. :2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야기하고 어필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에, 염소가 1천 마리, 양이 3천 마리인데,
동방의 거부 욥과 비교하면, 욥의 소유의 절반이나 1/3되는 수준이었죠.
그렇지만 나발은 당시 그 마온 지역에서는 상당한 갑부였죠.

3절에 보니까 그의 이름이 나오는데, 나발 입니다. 그 뜻은 '바보' 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바보'라고 지을 부모는 없겠죠.
그러니 본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사람을 이야기할 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큰 부자', 또 한 가지는 '그 바보' 이렇게 이야기했던 거죠.

그런데 본문을 전체를 훑어보면, 그는 '바보'라기보다는 '악한 사람'이었어요. 
잠언의 일관된 표현으로 이야기 하자면 
'악인은 자기가 선택한 악이 굉장히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악인이 선택한 악은, 어리석음'이라고 말씀하죠.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그를 '바보(어리석음, 나발)' 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는 아내가 등장을 합니다. 아비가일 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아비의 기쁨'이에요. 

아비가일과 비슷한 이름으로 사사기에 아비멜렉이 나오는데요.  주1)

'내 아버지에게 기쁨이 된다'는 딸이 태어났어요. 
근데 그 딸을 보고 아빠가 너무나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비가일이에요. 

 

그런데 그는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는 인생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3

본문 25장 전체에서, 가장 온전한 인생은 아비가일 한 사람이예요. 
나발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었고, 
다윗은 자기 인생의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아비가일과 나발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열 명의 자기 사람들을 나발에게 보냈어요. 
갈멜에서 양털을 깎던 날, 즉 추수하는 날, 잔치하는 날에
소년들을 보내서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죠. 

이 양털 깎는 날이 얼마나 좋은 날이냐면 
일년에 한번 크게 치르는 잔칫날이에요.

이 날에는 자기의 일꾼들에게 삯을 주고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음식을 나눠주고 
친한 친구들을 불러모아서 며칠 동안 밤낮 잔치를 벌이는 그런 시즌이에요. 

그 좋은 날에 다윗은 사람들을 보내서 
'우리에게도 좀 당신의 친절을 베풀어 달라'고 정중하고 겸손하게 부탁했던 것이죠. 

◑6~8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7 네게 양 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8 네 소년들에게 물으면 그들이 네게 말하리라 그런즉 내 소년들이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6절에, '당신이 장수하기를 빕니다. 당신과 당신 집안이 평안하기를 빕니다. 
또 당신의 모든 소유물도 평안하고 번창하기를 빕니다.' 

히브리 원전을 보니까 '샬롬, 샬롬, 샬롬' 인사를 세 번이나 했어요.
그래서 중동 사람들은 인사를 할 때, 아직까지도 샬롬으로 인사를 합니다. 
(*살라말리쿰 : 당신에게 샬롬이 있기를, 줄여서 '살라임')

지금 마온이나 갈멜 같은 남쪽 지역은 아말렉이 자주 출목해서 약탈하던
지역이었죠. 그래서 다윗 무리가 아주 꼭 필요한 경비를 해 준 것이죠.

그리고 다윗이 6백명의 무리를 다 이끌고, 잔칫집을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장정도 아니고, 소년을 딱 10명만 보냈어요. 상대방을 배려한 것이죠.
10명의 소년이 가지고 갈 만한 음식만 도와달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다윗 자신은 '아들 다윗'으로 낮추었죠.  :8
그러나 나발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10~11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나발이 정말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나불거렸는데 
정말 말끝마다 얼마나 가슴을 후벼파는 기분 나쁜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다윗이 도대체 누구냐,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 :10
넌 별 볼일 없는 친구야! .. 라는 말이죠.
다윗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죠. 군대장관 경력의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그를 그냥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요즘 자기 주인을 버리고 떠나는 종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10
이 말을 줄여서 하면 '너 죄 지었지?' 이렇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도 상당히 불쾌한 말이라고 생각이 돼요. 
그의 인생에 과거를 향해서 '너 주인(사울)을 등 치고 
주인을 배신하고 도망나온 종 놈아, 너 사고 치고 나온 거지?' 
이렇게 이야기를 한 거예요. 

-'내가 왜 내 빵과 물과 양털 깎는 사람들을 위해 잡은 고기를 
 출신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줘야 되냐?'  :11

'너는 그냥 이 바닥에서 방황을 하다가 인생이 끝날 거다. 
너희 같은 것들에게 왜 내 빵과 내 물과 내 고기를 줘야 돼냐?'  :11

다윗이 지금 이렇게 비참하게 구걸할 정도로 폭망하진 않았습니다. 
다윗이 도망자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그는 도적 떼가 되지도 않았고 
반란군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군에게 충성을 다하고, 민족을 섬기면서, 

어려운 (그일라)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꿋꿋이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왔는데 
나발이 다윗을 부랑자 취급 하는거죠. 그러니까 너무너무 힘든 거에요. 

다윗이 나발의 집안을 학살하고 나면, 정말 그 부랑자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만약에 그가 칼을 쓰기 시작하면, 그의 인생은 거기서 망치는 거에요. 

7년을 참았던, 10년을 참았던.. 만약에 그가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그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에요. 

사실은 그런 시험의 날이 온 거예요. 
그의 인생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날이 온 겁니다. 


◑13 '다윗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 하니 
각기 칼을 차매 다윗도 자기 칼을 차고 사백 명 가량은 데리고 올라가고 
이백 명은 소유물 곁에 있게 하니라'

여러분 나발 하나 죽이기 위해서, 지금 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에요. 
'모든 모든 남자에게' 칼을 차라는 것은, 
나발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은 그냥 다 쓸어버리겠다고 흥분해서 날뛰는 거죠.

그의 추종자 4백인들은 (2백인은 남아서 짐을 지킴) 
이게 무슨 말인지 그 뜻을 다 이해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말은 안 하지만 내심 좋아했을것 같아요. 

오늘은 마음대로 우리를 무시했던 인간들을 처리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럼 도대체 다윗이 왜 이런 모습을 보였는가? 라는 것이죠. 

▲본문을 묵상하면서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런 메시지를 주시더라고요. 
'(다윗이 생각하기를)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했다. 
내가 아무리 도망자 세월이 길어도, 어떻게 사람들이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오늘은 도저히 못 참겠다. 나발, 너는 오늘 내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막 일어났어요. 

근데 이런 다윗의 마음을 묵상해보니까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 는 말이 생각났어요.

미안하지만 다윗도 그런 졸장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에요. 
지금 다윗은, 사무엘을 잃고 억한 심정, 
사울왕에게 눌리면서 참아야 했던 모든 것을 
나발이라는 한 사람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사울이나 다윗이나 다를 바가 없는거죠. 
그 사울의 모습이 다윗 안에도 있는 거예요. 

내가 그토록 미워하는 사울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모습이 사울인 것이죠.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어떻게 합니까? 
그럼 하나님과 쇼부(승부)를 보든지 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 매달리든지.. 해야 될 텐데 

그런데 하나님께 거절당한 그 거절감을 
다윗에게 쏟아 놓습니다. 다윗에게 분풀이하는 거죠. 
왕위에서 내려오게 한 것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에요. 

첫번째 살인자였던 가인도 마찬가지 내면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죠. 
동생 때문에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거절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 받은 그 거절감을 힘없는 동생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책망을 듣고 나서 
그들의 마음이 괴로우니까 누구에게 분풀이 하나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분풀이를 하는 것이죠. 
이건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방법이에요. 

지금 하나님이 다윗을 보면서 굉장히 안타까워하실 것 같아요. 
'세상이 변질된 게 아니라, 다윗아, 네가 변질됐구나!' 그렇게 보시는 것이죠.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 네가 나발에게 들은 말, 그런 배신, 그런 무시당함.. 
그게 하루 이틀이냐?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  

'그일라를 목숨을 걸고 구해주었지만, 그들이 너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느냐?' 
'십 사람들 역시 너 다윗을 배신하지 않았느냐?' 

'나발도 사울의 전적비가 있는 갈멜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15:12
떠돌이 다윗이라고 너를 무시하지 않느냐? 세상이 언제는 안 그랬느냐?'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거예요. 
저를 한번 따라 보세요.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왕위에 오르는 그 날에는 사람들이 다 굽신거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빈 들에 있을 때는, 엄청나게 세상은 당신을 무시할 거에요. 

저는 나라의 대표팀이 되는 선수들만 봐도 참 그 일 하기 어렵겠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시합에 이긴 날은 왕자의 자라에 올라가는 거고 
진 날은 무참히 언론에 짓밟히는 거예요. 그렇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늘 그런 것입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모반으로 궁궐에서 쫓겨나자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나와서 티끌을 날리면서 먼지를 날리면서 
다윗 왕을 저주합니다. 세상이 언제는 안 그랬냐고요? 그게 세상입니다. 

당신이 잠시 인생이 우울해지거나, 잠시 인생이 약해지거나, 조금만 실수해도 
조금만 침체가 길어저도... 세상은 당신을 집어삼키려고 할 것이에요. 
그게 세상입니다. 

그렇게 질기도록 변하지 않는 이 세상을 보면서 
이 나발같은 세상앞에서... 결국에는 다윗이 변질된 거에요. 
세상이 변한 게 아니에요. (나발에게 화풀이 하려는) 다윗이 변질된 거예요. 

△'하나님은 도대체 왜 이 광야의 그를 가둬두시는가?' 
저는 묵상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 어차피 십년 동안 다윗이 도망다니면서 한 번도 사울에게 안 잡혔잖아요. 
사울에게 안 잡힐 거면, 기왕이면 주변국가로 망명하게 해주셨으면 
좀 편하게 망명세월을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어차피 사울의 손에 넘겨주실 게 아니라면, 좀 편하게 지내면 안 됩니까?' 

하나님은 안 된다는 거예요. 
사울의 코앞에서 고생을 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누구를 괴롭히는걸 즐거워하실까요? 아니죠. 
그럼 도대체 왜 여기 유대 땅에 그를 붙들어 두시는가요? 

"이 험악한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면서도 
너의 인격이 망가지지 않고, 너의 신앙고백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 
너는 지금 그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기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네 자신을 끝까지 지키는 훈련! .. 그걸 받으라"는 것이죠.

그리고 앞으로 보게 될 부분이지만 
'사람들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훈련' 
'내가 목숨 걸고 선을 베풀었던 그 사람들도 신뢰하지 않는 훈련' 
굉장히 외롭고.. 어떻게 보면 슬픈 거예요. 

그러나 끝까지 마지막까지 신뢰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죠. 
그것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시키신 훈련이었어요. 

△여러분, 아무리 신선한 야채도 아무리 신선한 과일도 아무리 신선한 음식도 
냉장고에서 꺼내서 10일만 밖에 두면 다 상하게 돼 있어요. 그렇죠? 

근데 다윗은 지금 십 년을 그러고 있는 상황이에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 몰라요. 
이런 상황에서 십 년을 살라고 하시면, 마음이 다 망가지고 상해서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깨지는 게 정상입니다. 어떻게 버티라는 말씀입니까?

여러분 인간의 마음은 상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은혜의 방부제'로

기적처럼 
10 년씩이나 냉장고밖에 버려져 있으면서도 
변질되지 않고 살아남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요구하신 훈련이었어요. 

힘들어서 악 소리가 나도 
다윗은 하나님의 희망이기 때문인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면 다 망가지고 다 무너져도 
'넌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넌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다윗을 그렇게 훈련시키시는 거에요. 

△여러분 일탈하고 싶은 날, 나도 망가져 보고 싶은 날, 
'그래 나도 한 번 망가져 보자!' 이런 마음을 절대 품지 마세요.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어요. 
'하나님은 왜 나만 괴롭히시는가?' 
'날 좀 그만 훈련하시고, 날 좀 그만 단련하시고, 
저 사울이나 좀 훈련하시지.. 저 사울이나 좀 바꾸시지?' 

그러면 하나님은 뭐라 그러실까요? 
'사울? 그는 변하지 않아, 난 이미 사울을 포기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희망의 메시지이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무서운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왜 다윗 너를 이렇게 내가 힘들게, 너 하나만 붙잡고 괴롭히는 줄 아니? 
내가 너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는 아직 내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울은 변화하지 않아요. 이미 하나님이 그를 여러 번 콜링하셨지만 
그는 변화되지 않았어요. 그는 이미 악령에 씌인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그를 포기하셨어요. 
하나님이 포기하신 사람을 붙들고 하나님이 씨름하시겠어요?

하나님은 왜 당신을 그렇게 괴롭히는 것처럼 
당신만 붙잡고 씨름을 하냐고요? 
하나님 당신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반칙하는 세상에서, 나는 룰을 지키면서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그 반칙하는 애들보다 잘 돼야 되니까.. 이게 너무나 힘든 거예요. 
두배, 네 배, 10 배로 힘든 거에요. 

그래도 하나님이 힘을 주시므로 
여러분 그렇게 사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 앞에 예배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동일한 마음이 있는 거에요. 

△남들도 다 논문 짜집기 하는데 
남들도 다 공문서 위조하는데 
남들은 일하면서 다 뒷돈 받는데 
남들은 다 술 담배를 하는데 
남들도 다 혼전 순결을 버리는데 
남들도 다 돈에 미쳐서 살아가는데 
남들도 다 쾌락에 빠져서 사는데 

하나님의 영광은 이야기하지만 
성공과 명예와 돈과 권력이 자기의 인생의 비전인데 
신앙생활은 적당히 하는 것이고 
사실은 하나님은 그냥 나의 성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데 

사람들 다 그렇게 사는데, 왜 나만 하는 몰아가십니까?
남들은 다 그렇게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그럼 너는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냐?
너는 사울이냐, 다윗이냐?
너는 나발이냐, 다윗이냐?' 이렇게 우리에게 되물으시는 거죠.

역사에 묻어 가고 
세상의 흐름에 이익이나 얻으면서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고 
당신이 여러분의 가정에 역사를 바꾸고, 세상 역사를 바꿔야 될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예요. 

정말 다윗 같은 인생으로 살고 싶다면, 남들 하는 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만의 부르심에 길을 가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고 살아야 돼요.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희망이고, 하나님의 사람이고 뭐 훈련이 심할 때는 
다리가 후들 거리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어요.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거죠. 이게 다윗이 폭발을 했던 이유인 거죠. 


◑21~22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여러분 그게 (다윗이 지켜 준 일) 소용없는 일(허사)인가요? 아니지요.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21
지금 초점은, 나발이 악으로 선을 갚는게 아니라,
다윗의 대응, 다윗의 신앙, 다윗의 자세입니다.

나발이야, 사울처럼 하나님이 포기한 사람이고,
다윗은 하나님의 종이니까, 나발과 같은 레벨로 행해서는 안 되는 거죠. 

22절의 '남자'는, 원어로 '벽을 향해 오줌 누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아주 경멸적인 표현이죠. 화가 난 다윗이 지금 막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다윗은, 자기가 직접 심판자가 되겠다는 거죠. 
내가 기다리지 않고, 하나님이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에 
내가 칼을 들어서 내가 심판하겠다.. 라고 말하는 거죠. 
여러분 이것은 무법한 학살 행위입니다. 
놉의 제사장들을 다 죽인 사울과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인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 무엇이냐면,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기중심성' 이게 가장 큰 어리석음 이에요. 

사실 나발의 말이 틀린 말이라면, 다윗 자기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돼요.
무시하면 돼요!

저를 한번 따라해 보세요. 
'상처를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에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여러분 주위에 항상 있어요. 

그래서 하목사님이 늘 하셨던 말씀이 
'상처를 유치하지 마십시오!'

상처를 주는 나발이 문제라기 보다는, (그는 늘 그런 사람이고)
그걸 받아들이는 자기 자신이 문제인 거죠. 

'다윗이라고? 그게 누구냐? 너 반역자 아니냐, 부랑자 아니냐?'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면 되는 거예요. 그런 말을 무시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의 마음이 나발의 말에 동의 하고 있는 거에요.
여러분, 상처를 주는 사람의 말에 흥분하고 화를 내는 것은 
당신이 그 사람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화내시면 안 돼요. 

◑아비가일의 등장

다른 설교문들과 중복되므로 후략합니다.




18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아비가일은 나발에게 얘기하지 않고, 급히 음식을 준비해서 다윗을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이 다윗을 설득하는 긴 대화내용이 나옵니다. 

1)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다윗이여 죄 짓지 마십시오

 
 
내 주여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주도 살아 계시거니와 내 주의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보복하시는 일을 여호와께서 막으셨으니 내 주의 원수들과 내 주를 해하려 하는 자들은 나발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이제 곧 주기로 올 것이다. 그리고 17절을 뭐라고 이야기를 하면은 주인 학원은 얘기를 못 한다. 성질이 불 같아서 당신한테 여주인에게 이야기를 하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결을 하라고 그리고는 네 아직 아이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남편에게 보고하지 않고 다윗을 만나러 갑니다. 그 다윗에게 장장장 대사를 하는 장면이 오늘 성경 아직 위인 지면을 하래서 기록이 되어 있어요. 왜 이렇게 길게 나오는가 이게 중요.한 내용이 지 때문이에요. 그 내용을 다. 일진 않겠지만 세 가지 보겠습니다. 26절에 자유롭게 내 주여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피흘리지 않도록 또 당신의 손으로 직접 복수하지 않도록 막아 주셨습니다. 거기 밑으로 것은 첫 번째 이 내용을 이야기를 한다.면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데 이런 것이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데 죄 짓지 마라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켜 보신다.는 그 마음 하나 때문에 풀리지 않고 복수하지 않고 살지 않았느냐 그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흠 없이 살아 왔는데 왜 오점을 남기려고 하느냐 나를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서 당신이 필리지 않도록 하나님 막아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26절에 여호와께서는 거 여호와의 동그라미 주시겠어요. 


두 번째를 29절에 비록 누군가가 당신을 죽이려고 쫓아 온다.고 해도 당신의 생명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생명 보자기에 안전하게 사 주실 것입니다. 거기 여호와께서 생명 보자기에 사 주신다. 여호와의 동그라미 친 거야 하지만 당신의 원수들은 불매로 돌을 던져 던져 버릴 것입니다. 누구예요. 자기 남편 얘기해요. 두 번째 줄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하나님이 지키시는 데 라는 것 당신의 생명은 여호와께서 생명싸개 강서 주시지 않느냐 원수들은 물맷돌 의 맨 돌처럼 날려 버릴 것이다. 여러분 이 장면은 골리앗 사건의 장면이죠. 골리앗을 쓰러뜨린 듯이 당신의 원수들을 다. 쳐다. 날 심판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라 이야기 하는 것이죠. 세 번째는 30일부터 31절 이제 여호와께서 내 주의 약속하신 모든 선한 일을 이루소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로 사무실 터인데 30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동그라미 치시구요. 이스라엘 다.스릴 지도자 사무실 터인데 밑으로 오세요. 31절 말씀 같이 읽어 볼까요. 31절 시작 마음에 거리낄 일을 남겨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당신을 그처럼 손질하시는 날 2호점을 기억해주십시오 

세 번째 하나님이 세우실 텐데 하나님이 당신을 지도자로 세워지는 자리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하나님이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텐데 당신은 왜 그렇게 불안해 하냐 왜 그렇게 무너졌냐 먼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오늘의 수치와 고통을 참아야 된다. 이야기를 하는 거야 제가 다윗의 입장이라서 이 여인의 말을 듣는데 들으면서 내적치유 가 되는 거 같아요. 들으면서 막 눈물이 나고 감동이 있는 것이죠. 아비가일이 참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지혜는 사실 그녀가 이 말을 한 것도 말한 내용 도지 외롭지만 두 가지 지혜가 보입니다. 

첫 번째는 나발을 상대하지 않고 다윗에게 이야기를 했다는 거죠. 
어차피 나발은 얘기를 해 봤자 소용없고, 얘기를 했다면 
다윗에게 가지도 못하게 했을 거에요. 그렇죠. 

여러분의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과 씨름하며 인생을 살지 마세요. 누가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가 분별하는 것이지요. 시작인 것이죠. 두 번째는 다윗의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해석해 줘 따는 거야 나 바른 다윗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네가 뭔데 넌 죄 지은 거 아니냐 너의 무리들은 다. 부랑자 아니냐 내방 내 물 내고기 나와 너와 나와 잘 하면 딱 나와 너 평면적인 관점이 에요. 나는 너한테 너 같은 거한테 줄 수 없다. 다윗이 그 평면적 관점을 얽힌 거예요. 근데 아기가 이러니 관점을 확 바꿔 놨어요. 여호와께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지금까지 안전하게 생명을 지켜 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당신은 앞으로 왕으로 세우실 것이다. 그러면 평면적 관점에 빠져버린 다윗을 입체적인 한쪽으로 바꿔 놓은 거야 할렐루야 

내가 인생의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인생이 힘든 시간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 인생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말이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나만의 관점에서 익히는 것이 아니라 아비가일의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아비가일 보면서 참 훌륭하다. 
날마다. 다윗을 위해서 기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사가 갑자기 어떻게 술술 나왔을까요? 

아마도 다윗을 위해서 중보기도 했던 여인인 거 같아요. 
비극으로 시작했던 25장이 해피엔딩으로 끝납니다. 

다윗이 돌아섭니다. 죄를 짓지 않고 멈춰요. 
그리고 아비가일도 돌아갑니다. 

나발이 밤새 자기 혼자 잔치를 벌이다가 
다음 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몸이 굳어져서 10일 만에 죽어요 
하나님이 그를 치심으로 10일 뒤에 죽었어요. 
다윗이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이했어요. 해피엔딩이에요.

40절에 보면 그의 부하들이 갈매로 가서 아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해서 당신은 아내로 삼기 위해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이런 날에 빨리 와야 되는데 아 참 애들이 아비가일은 영어 이름은 너무나 좋아하죠. 
형제들은 보물을 보면서 이런 여자가 어디 없냐 너무나 아름답고 지혜롭고 영성이 있고 이런 일 만나고 싶지요. 

형제님들 근데 품절녀의 품절녀 
이런 사람 벌써 갔어 

아 우리 자매들은 정반대 케이스 탑 이처럼 잘생기고 용기있고 리더십 있고 찬양 잘 하고 노래 잘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이런 형제를 만나고 싶지요. 

오늘 본문에 다윗도 품절남이 오늘 본문에 묵상하면서 사람들 좋아하지 모르겠지만 






이 다윗과 아비가일의 본문은 재혼하는 분들에게 축복이 되는 말씀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설교를 끝내야 되는데, 이게 좀 오늘도 깔대기로 끝내 주는 건 아니고요. 
제가 오늘 서빙고 1부 예배를 드리는데 너무 혼자 재밌었어요. 

게 뭐였냐면 저희 담임 목사님 이제 같은 본문으로 메시지 하십니까 
거기 이제 서빙고 성인 예배 때문에 거의 다. 결혼하신 분들이죠. 
또 결혼한 지 꽤 되신 분들도 많고 아리가 이리 남편하고 상해 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고 해서 자매님들 아비가일의 모습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서 남편하고 상하지 않고 하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얘길 했더니 빵 터졌습니다. 웃었어요. 

거기까진 즐거웠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이제 설명을 하셨는데 부연설명 하시는데 분위기가 인제 좀 이상한 거야 

그 부연 설명이 뭐였냐면 가발 같은 사람은 이렇게 하고 이렇게 나쁜 사람은 정말 드문 케이스라고 근데 자매들이 조용한 거야 그 중간에 마음에 자매님들이 아 그 드문 케이스가 내 남편 이걸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제가 그렇게 이 말은 하지 않지만 회중들이 그런 느낌 인 거예요. 저 혼자 임옥상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데 그 다.음 순간에 그 남자들 남편들의 내 무쌍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면 너는 아기가 일이냐 이런 거 줘 뭐 이런 어려운 묵상에 됐어요. 
제가 오늘 본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바리 처음부터 이렇게만 하겠느냐 
아 내가 하도 똑똑한 척 하니까 자기 고집대로 더 나가게 된 거다. 
이런 이상 위험한 해석을 하시더라고요. 
교육 차였어 누군지 알려 가지 마세요. 그럴 수 있지 않냐 

그래서 제가 그 교육 자료 보면서 전도사님 혹시 이게 아니냐 그 와이프가 굉장히 똑똑한 거 아니거든 누군지 알려 가지마세요. 혹자는 또 아비가일이 처음부터 지혜로 왔겠는가 남편이 해 본 사고를 치니까 그거 수습하다. 보니까 인생의 제가 생긴 거 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어쨌든 간에 얘기를 하려면 사시 뭐 하니 없ㄴ습니다. 지혜가 어리석음을 만나서 살다.가 어리석음이 죽고 나서 그렇지 내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했어요. 여러분 다.비드 라는 이름의 뜻은 사랑이란 뜻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왕으로 세웠던 사람 다윗이 정 근데 그 다윗을 사랑해 마음이 나 발에 그 말에 그 다.발에 최고의 사랑의 문이 닫혀 버린 거야 그 똑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된 거예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 그 마음을 돌이켜 주죠. 저는 오늘 본문에 보면서 다윗이 잘 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다윗이 잘 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원수의 집 안에 그 안방에 있는 여인을 통해서 다윗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도록 건조 주셨어요. 여러분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 반드시 하나님의 수가 있는 것임 하면 당신을 구원하실 길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제가 오늘 이 설교를 마치면서 제목을 다.시 붙인다.면 투비컨티뉴 훈련 네버랜드 훈련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훈련 이었어요. 다.음 주도 또 훈련이 나올 거야 이광의 훈련은 끝나잖아요. 하나님은 집요.하게 다.이소 문제점을 뽑아내지 꽃입니다. 명희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한자를 배를 개복을 하고 나서 제대로 다. 고치지 않고 덮을 수 없는 거잖아요. 몇 가지 중요.한 건 고치고 덥지 않죠. 깨끗하게 다. 해 놓고 나서 덮을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광야에 몰아 나오시고 도대체 언제까지 입니까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같아 하나님이 정도면 제일 괜찮은 사람 아닙니까 아니 나는 괜찮은 곳으로 만족할 수 없다. 너는 네 인생이 그냥 괜찮은 정도에서 만족할지 모르지만 굿투그레이트 나는 너의 인생의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훌륭한 인생의 되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사람 욥기 23장 10절 말씀 같이 있겠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이런 가슴에 두 손을 얹을 쉬고요. 하나님 좀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달 오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 환경에 문제를 다.룰 쉬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왜 이렇게 집요.하게 나를 탈 오십니까 왜 이렇게 집요.하게 바닥에 찌꺼기들을 끓어오르게 하십니까 하나님만 날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으면 나 그래도 괜찮은 사람인데 나 이 정도면 괜찮은 사람인데 하나님 그걸로 안 된다.는 거야 너 그냥 그저 그런 괜찮은 사람으로 살겠니 나는 네가 그런 사람으로 끝나지 않기를 원한다. 하나님 우리를 단련 하기를 원하는 정금과 같이 나오기를 원 하나님 이 훈련의 시간 동안 내가 고난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금과 같이 나오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사람들이 다. 그 길로 가도 나는 갈 수 없는 부르심에 길이 나만의 부르심에 길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내가 무너지고 잘 때 내가 망가지고 잘 때 하나님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나를 강동 차려 주시옵소서 주여 상처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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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사사기에 나오는 아비멜렉은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이죠.
'멜렉'은 왕이고, '아비'는 내 아버지라는 뜻이죠. 

아비멜렉은 기드온의 아들이었죠. 그런데 자기 아버지는 왕이 아니었어요. 
자기 아버지 기드온은 '내가 왕이 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가 '내 아버지는 왕이다' 라는 이름은 가진 것은 잘못이죠. 
그럼 왜 그런 이름을 가졌는가? 

그는 첩의 자식이고, 자기 신분이 비천하기 때문에 
그 엄마가 그 아이가 태어날 때 '너는 앞으로 큰 사람이 되라' 
'너의 지금의 처지를 벗어나는 인생이 되라' 
그러면서 너무 큰 이름을 지어준 거예요. 
그가 결국에는 자기 형제들 70 명을 다 죽이고 어리석은 인생의 길을 선택하죠. 
엉뚱하게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