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시42편 영적 뚝심

LNCK 2023. 3. 24. 11:28

[BREAKTHROUGH] 5. 영적 뚝심 (시 42:1-11) - YouTube

◈영적 뚝심         시42편           2015년 설교녹취

[돌파 시리즈 #5]                              *지난 회 보기 

시편 42편을 통해서 "돌파"에 대해서 살펴보고 오늘도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42편의 배경은 아마 바벨론 포로 때였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아마 두 개 중에 하나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공통적인 건, 뭔가 위기 상황이었다는 거예요. 
특별히 바벨론 포로 가운데 있을 때, 이 포로 생활이 70년 이었잖아요?

여러분, 70년이 그렇게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기간이 불과 40년이 안 되지요. 

그런데 거의 2배 가까운 기간을 포로로 살았다는 얘기죠. 
짧은 기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포로로 잡혀 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냐면 
'아마 곧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우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면, 다시 돌이키셔서, 다시 곧 돌아가게 하실 거야' 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2년 지나도 안 돌아가, 5년 지나도 못 돌아갑니다.
20년 지나서 30년 지나서 못 돌아가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늙어서 죽기 시작합니다. 

자기 생애에 고국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30년, 40년이 지나서도 못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포로생활을 끝내고 돌아가는 걸 보지 못하고 죽기 시작하고 
그래서 여러분 70년이 지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떠나오기 전에, 포로로 잡혀 오기 전에 
원래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봤던 사람이,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안 남았을 거예요. 수 십 년이 지났으니까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때 사람들이 지었던 시편 중에 하나일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뭐라 그러냐면 
'우리는 꼭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어!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 
그러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놀리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네가 벌써 이렇게 잡혀 온 지 40년 지났어, 50년 지났어! 
돌아갈 가망이 전혀 없어!' 

'어떤 민족이 나라가 망해서 잡혀 왔는데 
다시 돌아가서 나라를 세운 민족이 어디 있어? 그런 예를 본 적이 있어? 
한 번도 없어!'  하고 비방하고 조롱하고 놀렸다는 거예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너희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네가 다시 팔레스틴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렇게 놀렸다는 거예요. 

그렇게 놀림 당하는 가운데, 히브리 사람들이 
갈급해서 부르짖었던 기도가 본문의 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시편 42편이 "돌파"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고 있는 
아주 중요한 메세지가 있어요.

그건 뭐냐면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주제

 

그래서 오늘 이 시편에 보면,  계속 뭐라 그러냐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살아계신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라(소망하라)' 

이것이 본문의 메시지에요. 
돌파가 여러분 언제 오는지 아십니까? 
낙심하지 않을 때 오는 거에요. 낙심하지 않을 때! 

지난주에도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면 만사형통 할 거라고 했습니까? 

아니요. 천만에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고, 돌파가 갑자기 일어나고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를 시작 하면 뭐가 일어난다 그랬어요?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훨씬 더 힘든 일들이 생길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고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거예요. 

원수의 압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시작할 때는 '그래, 기도 하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거야! 기도하면 다 잘 될 거야!' 

아마 그런 기대를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실 거예요.

우리가 6월 달에 새벽기도를 시작하자고 했을 때 
또 수양회 끝내면서 우리가 다니엘기도회를 시작하자고 했을 때 

아마 많은 분들이 마음 가운데 굉장한 흥분과 기대가 있었을 거예요. 
'기도하면 뭔가 하나님이 일하실 거야' 

또 기도 자체가 우리를 막 즐겁게 하고 
부르짖는 기도가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고 
그러다 보면 뭔가 변화가 일어날 것 같고.. 돌파가 일어날 것 같고.. 
그런 기대들을 가지고 기도를 시작하셨을 거예요. 

와~ 하고 기도하는데, 여러분의 큰 목소리로 부르짖는 기도소리에서
어떤 기대감이 읽혀지더라고요...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하는데 
정말 천군과 천사들이 함께 하는 거 같더라고요.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굉장한 기대가 있는 것을.. 제가 이렇게 보게 되지요. 

근데 이제 수양회가 끝나고 3주째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제가 새벽기도 때 보면, 이제 기도의 피로감 들이 여러분에게서 느껴지기 시작해요. 

이게 어디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느냐?
기도의 목소리가 작아져요. 잦아진다고 하죠.

그 전까지는, 수련회 마치고 첫 주에는 
사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1부터 10까지라 그런다면 
9.5 정도의 목소리를 내시더라고요.
거의 맥시멈 목소리를 내서 부르짖어 기도하시던데, 

둘째 주가 되니까 데시벨이 8.7 정도로 떨어지더라고요. 
그러고 이번 셋째 주간이 되니까, 5.0 이하로 떨어지더라고요. 

자 이게 뭘 보여주는 걸까요?
우리 안에 뭔가 기도의 피로감이 쌓여 가는 거예요. 

어떤 피로감이냐면, 우리가 지금 2주~3주를 부르짖었는데 

아니, 6월 달부터 시작하면 6월 7월 8월 지금 세 달째 부르짖고 있잖아요. 
3달째 부르짖고 있는데 
아직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돌파가 안 일어난단 말이에요. 

기도하기 시작하면, 뭔가 돌파가 있고 
우리 영혼이 깨어나는 그건 있어요. 분명히! 

그래도 그건 이상의 어떤 것들을 기대하며 
정말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돌파를 일으키시고 
부흥을 일으키시고

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일으키실 거라고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막 기도를 하는데 

이게 한 달 되고, 두 달 되고, 석 달 되고... 이러다 보면 
그 가운데 피로감이 쌓이기 시작해요. 

그러면서 우리가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어떤 생각들이 지배하기 시작하냐면 

낙심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가 크게 낙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이게 뭐지? 가만 있어봐, 내가 뻘짓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내가 이렇게 계속 부르짖어야 돼? 언제까지 해야 되지? 
아니 목 아픈데 좀 쉬었다 하면 안 되나? 
이런다고 정말 뭐가 일어날까? 
이거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되는 거지? 
하나님이 이걸 정말 원하실까?' 

이런 생각들이 우리 생각 깊은 곳에, 슬그머니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 거 다 있으실 거예요. 

그래서 그것이 1주, 2주, 한 달, 두 달, 1년, 2년... 그런데 변하는 게 없어요.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 있어요. 

'아니 목사님은 분명히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그러면 돌파가 일어난다고 했는데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돌파를 위해서 여러분 진짜로 중요한 게 뭔지 아세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느냐?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이거를 뛰어 넘어야 되는 거에요.
그때 거기서 돌파가 일어나는 거에요.

다니엘이 위대했던 이유가 뭔지 아세요?
사자굴에 들어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꿈을 해석했기 때문도 아니고, 총리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에요.

물론 그런 것들은 다 좋은 거지요. 
그렇지만 다니엘이 진짜로 위대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뭐냐면 
'10대 때 하루 세 번씩 기도하기로 뜻을 정한 것을 (이렇게 추정)
80세가 넘어서 죽을 때까지 계속 했다는 거에요.' 

다니엘은 오래 살았거든요. 거의 90세 가까이 살았어요. 
그런데 다니엘이 처음에 뜻을 정한 게 10대 때였어요. 

단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위 두 구절을 연결하면 (약간 해석에 비약이 있으나) 
다니엘이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기도했는데'
그 시작 점을 '뜻을 정한' 1:8절의 시점으로 보는 거죠.

그리고 1년지나고, 2년 지나고, 5년 지나고, 10년 지나고 
다니엘 30대가 됐어요. 
그래도 여전히 하루 세 번씩 기도해요. 

40대가 됐어요. 여전히 하루 세 번씩 기도해요.
50대, 60대, 70대, 80대가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게 사실은 다니엘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진짜 비결이에요. 
이것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다니엘 뿐만 아니라, 다니엘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누구든지 다니엘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다니엘과 같은 영광을 얻게 될 거라"는 거예요. 아멘!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발견한 원리 중에 하나에요. 
사람들이 결국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원래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고 
출발은 다 멋있게 해요. 

그런데 중간에 낙심해서 스톱 해 버리는 거예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낙심해서 멈춰버리는 거 아십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멋있게 스타트 하지요.
하지만 1년.. 2년.. 5년.. 가다 보면 
중간에 '이게 뭐지? 왜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가만 있어봐, 내가 뻘짓 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런다고 뭐가 되겠어? 가만있어, 하나님이 정말 이렇게 일하실까?' 

이런 생각들이 슬그머니 우리 안에 들어 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안에 처음에 있던 불들이 다 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안에 불을 지켜야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내 안에 있는 불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거죠.

한번 뜨겁게 타오르다가 확 식는 냄비 말고 
내 안에 진짜 죽을 때까지 꺼지지 않게 계속 타오르는 불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과제입니다.

그래서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보다 
마지막에 훨씬 더 뜨겁게 타오르는.. 그런 불을 지켜낼 수 있느냐고요? 

상황이 변화하지 않더라도, 그 불을 계속 지켜낼 수 있냐는 거예요. 
이게 결국 돌파의 관건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려면 뭐 하라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봐야 된다'는 거예요. 

:5,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래서 이게 기도해도 왜 아무런 변화가 안 나타나는지 아십니까? 
기도의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성도의 기도에 대해서 뭐라 그런지 아십니까? 
'성도의 지도가 금향로에 쌓인다'고 말씀하죠.

계5:8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8:3~4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성도에 기도는, 보좌 앞에 만들어진 금향로가 있는데 
그 안에 기도가 차곡차곡 쌓인다는 거예요. 

기도가 쌓여서 마지막에 가득 차게 되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그 금향로를 쏟아붓지요.

그러면 그 안에 있던 기도가 
이제 하나님의 심판이 되어서 이 땅에 쏟아져 내려오죠. 

계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자 이 이야기를 뭐냐면, 기도는, 기도했을 때 바로 응답되는 것도 있지만 
채워야 될 양이 있다는 거예요. 
그 양을 채우지 않으면 응답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도 제목에 따라서 사이즈가 좀 몰라요. 
어떤 거는 조금만 기도해도, 이런 것은 한 일주일 빡세게 기도하면,
금방 기도의 분량이 차죠. 그러면서 기도응답(돌파)이 일어나죠.

여러분 계시록의 심판을 '마지막 때 심판'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와 악이 관영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뚫고 들어오는 게 심판이거든요. 
여러분의 기도의 돌파가, 세상의 심판으로도 일어난다는 거죠.

그래서 이 금향로가 쏟아져서 심판이 보여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 죄악 세상에 개입하시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죄악된 세상을 뚫고 
막혀있는 장벽들을 뚫고 개입해 들어 오신다고 하는 건데 
이게 될 때까지는 계속 향로에 향이 쌓이는 기간이 있다는 거잖아요. 
계속 기도의 향이 쌓이는 기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지 않기를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금방 응답이 안 되고, 계속 기도가 쌓여가는 기간 동안 답답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시편 42편의 기도와 일맥상통 하죠. 
원수들에게 계속 조롱하는 거예요.
'네 하나님이 어디 있어? 그건 안 이루어질 거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뭐냐면, 금향로에 기도의 향을 채우는 기간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차고, 차고, 가득 차게 되면, 
결국 그때 하나님의 돌파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기도 응답은 어떻게 일어나냐 하면요. 
갑자기 일어나는 거예요.

물이 안 끓다가 갑자기 임계점에 도달하면 끓듯이
기도도 차곡 차곡 차다가, 임계점을 넘으면, 갑자기 응답이 쏟아지는 거죠.

살전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에요. 왜요?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응답도 갑자기 임한다는 거죠.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의 날이란, 주님의 심판의 날입니다. 
그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임한다는 거예요. 
3:9절과 연계해서 보면,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더디지 않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날이 속히 올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날이 도적처럼 온다는 거에요. 

도적이 여러분, 어떤 예고를 하고 옵니까?
사흘 후면 도적이 올 것 같은 징조가 보입니까?
아닙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당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급작스럽게,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도적이 온다는 뜻이죠.

그 직전까지도 몰라요. 갑자기, 홀연히.. 이게 도적같이 임한다는 뜻이죠.

하나님께서도 우리 가운데 돌파하시면서 기도 응답을 주실 텐데 
이거는 홀연히, 갑자기, 창졸간에 일어날 거라는 거죠. 도적같이! 

언제? 금향로에 향이 찼을 때! 
그런데 사람들은, 금향로에 기도가 차 가는 게 안 보이잖아요. 안 보이죠. 

그래서 정말 아쉬운 게 뭐냐면 
한 잔만 더 부으면 되는데, 한 잔만 더 부으면 되는데 
그 직전에서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돌파도 안 일어나는 거죠.

마지막 한 잔의 기도의 향을 그 향로에 부었을 때 
거기서 놀라운 돌파가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 직전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거에요. 


제가 부흥에 대한 주제로 연구해 본 적이 있어요. 
제가 일본에서 메세지를 전하면서 보니까
일본 교인들이 부흥을 굉장히 사모하더라고요.
너무 부흥이 일어나지 않아서, 너무 지쳐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기도했어요. 
'하나님, 여기 일본에서 무슨 메세지를 전해야 됩니까?' 

기도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부흥의 징조를 한번 찾아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부흥의 역사에 대한 책들을 찾아 봤는데 
놀라운 건 뭐냐면 
"부흥의 징조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부흥은 그냥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어느 날 들이닥친다는 것이죠.

그런데 부흥의 징조가 딱 하나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갈급해서 기도하는 것!'

상황이 어렵고 영적으로 침체되면 
다 갈급해서 기도하게 되지요. 
그때 기도가 차면, 하나님이 부흥을 보내주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많은 일본 분들이 힘을 얻었어요. 
'아~ 계속 부흥을 위해 기도 해야 되는구나. 
아무 징조가 없어도, 갑자기 그냥 부흥이 임하는 거구나!'

우리 아이들도  똑같다고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사실은 그 아이들 가운데 돌파의 징조가 
집회 시작 하기 직전까지 아무런 징조가 안 보였대요. 

근데 거기에 누군가가 마지막 잔을 부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누군지는 몰라요. 누군가가 기도했는데,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돌파와 부흥'의 역사를 일으켜 주셨다는 겁니다.
아무런 어떤 사전 징조나 예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은 오늘 설교 제목이 뭐냐면 "영적 뚝심"입니다.
뚝심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기도의 데시벨 소리를 다시 9.0 이상으로 올립시다. 
그건 단지 목소리를 크게 하자는 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을, 갈망을 다시 한번 일깨우자는 거죠.


성경에서 '도적같이 임하리라' 그러면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낙심해 가지고 축 쳐져 있는 사람이 아니고 
깨어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된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