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28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블레셋...이스라엘을 쳐서 싸우려고' 여기서 '블레셋'은 가드 왕 아기스를 포함한 그들 모든 족속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전투는 블레셋의 다섯 부족들의 연합군에 의해 발발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5:8, 29:2, 3). 그때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 전투(에벤에셀 전투)(4:1-11)이후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번번히 패전한 데 대하여 일대 복수를 하기 위해 대규모의 군사력을 총동원하였을 것이다(14, 52, 17:50-53, 18:6,30)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이같은 아기스의 요구는 그로서는 당연하였다. 왜냐하면 바로 이같은 일을 위하여 아기스는 위험 부담을 안채 다윗을 자신의 수하에 두었기 때문이다(27:6, 12). 더구나 아기스는 이미 다윗이 자신의 동족을 침략함으로써 그들과 원수지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27:10, 12)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아기스는 다윗을 완전히 자신의 수하에 예속시키려 했던 것이다.
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당신이 종의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이 말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하고 있는 다윗의 애매한 답변이다. 다윗이 이같이 애매한 답변을 한 까닭은, 그는 아기스의 요구대로 자신의 동족을 공격할 수도 없고, 또한 그 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들켜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안전히 피할 수 있는 훌륭한 은신처를 잃을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 저자는 이와 같은 애매한 표현을 기술함으로써, 다윗이 극도의 심리적 갈등을 느끼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내가...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이것은 아기스가 다윗의 애매모호한 답변을 (1) 그가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2) 그리고 그가 전쟁에 참여하는 일에 대한 어떤 대가를 요구한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머리지키는 자'는 '경호 대장' 또는 '시위 대장'을 가리킨다. 한편 하나님 나라 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위대한 전사(戰士) 다윗이 한낱 이방 왕의 경호를 맡게 된 것은 다윗 스스로가 자초한 비극적 결과였다. 즉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을 전적 의뢰하여 조국 이스라엘 땅을 끝까지 떠나지 말았어야 옳았다. 따라서 당장 목전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 다윗이 우상의 나라 블레셋 땅으로 스스로 찾아든 것은, 기근을 피해 언약의 땅 가나안을 등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의 경우와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창 12:10-20).
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사무엘이 죽었으므로...장사하였고' 이 사실은 이미 25:1에서 언급되었다. 그런데 본서 저자는 이같은 사실을 여기서 다시 언급함으로써, 사울이 이미 죽은 사무엘의 혼(魂)을 불러내려는 노력을 한 사실과 연결시킨다(8절).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쫓아내었었더라'
이같은 종교적 숙정(肅正) 행위는 분명히 사울의 집권 초기에 이뤄졌을 것이다. 이같이 볼수 있는 까닭은 (1)사울은 왕위에 오르는 예식이 행해질 때에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좇을 것을 명령받았으며(12:14), (2) 무당과 박수를 쫓아내는 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에게 강력히 요구되던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출 22, 18, 레 19, 31, 20:27, 신18:10-14)인 바, 처음 사울은 율법 준수에 대한 열심으로 이러한 일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박수(이드오님)' 이것은 '알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야다'(*)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점(占) 또는 마술 등의 방법을 통하여 미래에 관한 지식을 알려주는 자, 곧 점장이나 마술사를 가리킨다.
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그 위치는 침공해 오던 블레셋 군을 및이하여 사울이 진을 쳤던 '이스르엘'(29:1, 수 19:17, 18)의 북쪽 약 5.6km 지점이었다.
'사울이...길보아에 진 쳤더니' '길보아'는 사마리와와 갈릴리 사이의 에스드렐론 평지 동쪽에 있는 길이 약 12.8km, 그리고 폭 약 8km 정도의 산악 지대이다. 그곳 중 가장 높은 지대는 해발 약 565m 정도이다. 이 길보아 산악지대의 특징은, 서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해발 약 10m의 에스들렐론 평지에 다다르며, 반면 북쪽과 동쪽은 급격한 경사를 이루어 요단강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때 사울은 바로 이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이스르엘'(Jezreel)에 진을 쳤다(29:1).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은 불과 수 마일 거리에서 진치고 있는 블레셋의 엄청 많은 군대로 인하여 심히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보고(라아)' 미세한 것을 들여다 보듯이 세심하게 탐색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16:6, 23:23, 25:15, 왕하 7:13).
'두려워서(야라)' 이 말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점층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갖게 되었던 사실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18:29). 본 저자는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블레셋의 많은 군대를 보고 사울이 얼마나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는지를 강력히 시사한다.
'떨린지라(하라드)’
힘의 원천이요 전쟁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께서 더이상 자신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묻자오되' 여기서 '묻자오되'(솨알)는 '요구하다' 혹은 '문의(問議)하다'란 의미로서, 사울은 이때 블레셋 군대를 물리칠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 하였던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15:26, 16:14)을 잘 알면서도, 이처럼 사울이 허둥지둥 여호와를 찾는 모습은 블레셋 군대로 인한 사울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 준다.
'여호와께서...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이같은 결과는 말할 나위없이 사울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희귀는 어느 인물 또는 어느 시대의 사악성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3:1).
'우림으로도' 여기의 '우림'(Urim & Thummin)의 약칭이다(출 28:30 주석 참조, 민27:21). 그런데 사울이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은 철저히 사울의 자업 자득(自業自得)이었다. 즉 사울은 우매한 판단으로 놉(Nob)의 제사장들을 몰살시킴으로써,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아비아달'로 하여금 '우림과 둠밈'이 들어있는 '에봇'을 갖고 다윗에게로 피신하도록 한 것이다(22:18-20, 23:6).
그러나 당시 사울에게 '우림과 둠밈'이 없었고, 또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할 대제사장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추측컨대, 사울은 놉(Nob)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8,19) 이후 성막을 기브온 자기 궁성(宮城)으로 옮긴 다음 엘르아살 계열의 아히둡의 아들 '사독'(Zadok)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했던 것 같다(대상 16:39).
그리고 이에 덧붙여 본래의 것을 본뜬 모조 '우림과 둠밈'도 만들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사울 사후 다윗 시대의 두 명의 대제사장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로써도 입증된다(삼하 8, 17, 15:24, 29, 35, 대상 15:11, 18:16).
한편 사울의 이러한 시도는 (1) 놉 제사장 학살 사건 이후 민심(民心)을 수습하고, (2) 자신의 측근들로 제사직을 독점하고자 한 정치적 계산 또는 왜곡된 종교적 열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울의 '우림을 통한 문의'에 여호와께서 대답하실 리 만무한 것이다.
'선지자로도' 하나님의 대선지자 '사무엘'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3절, 25:1). 또한 그밖의 선지자들도 이미 하나님께서 버린(13:13, 14, 15:26, 16:14) 사울의 왕국을 떠나 망명객 다윗에게로 도망을 쳤다(22:5).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사울은 선지자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뜻을 얻을 수 없었다. 아무튼 꿈과 우림과 선지자는 모든 구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저냐 받는 방편이었다(15:10, 11, 23:9-12). 하지만 사울은 그 어느 것으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미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다(15:1-23).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만날 만한 때에', 즉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기회가 지나가지 전에 하나님을 찾아야한다는 교훈을 절실히 암시해 준다(사 55:6, 고후 6:1, 2).
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이같은 사울의 명령은 하나님께서 금하시고(레 19:31), 또한 사울 자신이 세워놓은 규범(3절)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의 계시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비신앙적 인물인 사울이 필연적으로 택할 수 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한편 여기서 '신접한'(바알라트 오브)은 문자적으로 '혼령을 다스리는'이란 의미로, 곧 '신접(新接)한 여인'이란 죽은 자의 혼령을 통해 미래의 일을 알아보는 자를 가리킨다(Keil, 레 19:31).
'엔돌에...있나이다' '엔돌'(Endor)은 '거주의 샘'이란 뜻이다. 그 위치는 다볼산(Mt. Dabor) 남쪽 약 6.4km, 소(小) 헬몬 산 북쪽 경사 지대이다. 그리고 '수넴'으로부터는 북동쪽으로 약 6~7km 정도의 지점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도 소 헬몬산 경사 지대에 '엔돌'이란 마을이 있는데(수 17:11), 무당들이 거처하기에 좋은 많은 동굴들이 있다고 한다.
8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사울이 이르되 청하노니 나를 위하여 신접한 술법으로 내가 네게 말하는 사람을 불러 올리라 하니
'사울이...변장하고' 옷은 곧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는 점(18:4)에서, 사울은 왕의 표시가 되는 일체의 복장과 장식물을 제거하고 완전한 평민의 복장을 취했던 것같다. 즉 아무도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 사울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사울이 위와 같이 철저히 변장을 한 까닭은 신접한 여인이 살던 엔돌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사울은, '엔돌'이 블레셋의 진영과 인접한 곳이었으므로, 혹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두려워한 것이다. 즉 만일 변장을 하지 않는다면, 블레셋 사람들의 눈에 뜨일 경우 그 의복에 의하여 그가 이스라엘 왕 사울임이 밝혀지고, 이에 따라 그들의 맹렬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왕상 22:30).
'밤에...이르러' 사울은 변장한 것과 동일한 이유 때문에 일부러 밤 시간을 택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다. 이렇듯 변장한 채 엔돌의 신접한 영인을 찾아가는 사울의 모습에서 그의 철저한 타락상을 볼 수 있다. 한편 미신적인 발상에서 무당이나 점장이를 찾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바 있는 영적 간음 행위이다(레 19:31, 신 18:9-14). 그러므로 성도들은 급박한 상황이 닥칠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고 성경 말씀에 근거한 상담과 기도에 힘쓰는 등 끝까지 신앙적인 자세를 지켜야만 할 것이다.
'신접한 술법으로' 히브리 원문대로 번역한다면 '유령' 혹은 '그것을 불러내기 위한 도구'를 의미한다(3절). 한편 '술법'(카삼)은 '점을 치다'란 의미가 있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로(겔 21:29, 미 3:6), 바로 이 동사에서 본서 6:2에서도 나타나는 '복술자'라는 단어가 나왔다(신 18:10, 사 3:2, 슥 10:2). 따라서 사울은 지금 신접한 여인에게 '복술' 행위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술 행위는 하나님께 가증한 행위로서, 율법에서 철저히 금지시킨 행위였다(신 18:10-14, 레 19:31, 20:27).
'사람을 불러 올리라' 즉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11절 주석 참조.
9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 땅에서 멸절시켰음을 아나니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는지라
'어찌하여...올무를 놓아...죽게 하려느냐' 이 말은 신접한 그 무녀가 변장한 사울을 몰라봤음을 말해 준다. 즉 이때 그녀는 사울 일행을 자신과 같은 점치는 사람들을 적발하여 죽이기 위하여(출 22:18, 레 20:27, 신 18:11) 왕의 명을 받고 그곳으로 온 왕의 사신들로 알았던 것이다. 이같은 그녀의 판단은 (1) 이전에 사울이 복술 행위를 엄히 금지시켰으며(3절), (2) 사울 일행은 무녀의 눈에 매우 낯설었기 때문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한편, 비록 밤늦게 방문한 낯설은 사울 일행에 대해서는 그 무녀(巫女)가 이같은 반응을 보였을지라도, 그당시 그녀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통한 복술을 베풀어 유명한 무녀로 통했을 것이다.
10 사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로는 벌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본절에서 사울은 자신이 복술 행위를 적발키 위해 찾아온 사람이 결코 아님을 밝힘으로써 그 무녀를 안심시킨다.
11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하니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하는지라
'내가 누구를...불러 올리랴' 이같은 무녀의 질문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음부관을 반영하고 있다. 즉 고대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일단 모두 '스울'(Sheol) 즉 '음부'(陰部)라고 부르는 지하 세계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시체가 땅 속에 묻히는 것과 관련되어 파생된 단순한 개념인 듯하다(창 27:35, 반면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나 천사는 땅 위의 어느 공간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세계 또는 죽은 자의 혼과 교통할 수 있다고 믿는 접신녀(接神女)는 '스올'(음부)로부터 죽은 자의 혼(魂)을 불러 올릴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사울이 많은 사람 중 하필 사무엘의 혼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사무엘은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사람으로서, 계속적으로 자신의 조언자 역할을 담당했었으며(10:1, 15:1), (2) 또한 사무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7:10-12), 블레셋의 침공으로 인하여 고민하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사울은 그때 이같이 사무엘을 부름으로써, 그로부터 블레셋과의 싸움과 관련해서 자신이 취할 행동에 대하여 조언을 받고자 하였던 것이다. 물론 사울은 다윗과 관련된 자신의 미래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한편 사울이 접신녀(接神女)를 찾아가서 문의한 이 사건은, 사울의 집권 초기에 그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모든 박수와 무당들을 쫓아낸 것(3절)이 그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다. 사무엘의 권고를 그저 수용한 것이다.
즉 사울은 (1) 하나님의 계명(출 22:18, 레 19:31, 20:27, 신 18:10-14)을 충실히 지켜야 된다는 신념이나, (2) 또는 초혼술(超魂術)은 철저하게 미신적이어서 신뢰의 대상이 못된다는 신념 등에 따라 박수와 무당을 축출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울은 다만 이스라엘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무엘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으로 막 발돋음해 가던(7:2, 5-11) 이스라엘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인간적 목적에 따라 그같은 정책을 시행했다고 볼 수 있다.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이 접신녀(接神女)가 실제로 사무엘을 보았는지에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그러나 그 해석은 크게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된다.
1) 실제로 사무엘의 혼이 임한 것을 무녀가 보았다는 견해,
2) 거짓 혼이 사무엘의 혼인양 행세하면서 나타난 것을 보았다는 견해,
3) 본문의 '사무엘'(쉐무엘) 앞에 '이름'(쉠)이라는 단어가 필사자의 실수로 탈락됐을 것으로 간주하고, 그 무녀(巫女)는 사무엘의 어떤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다만 사울의 입에서 나온 '사무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뿐이라는 견해,
4) 그냥 아무것도 본 것이 없으나 거짓으로 본 척했을 뿐이라는 견해 등 네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네가지의 견해 중 (1)의 견해는 첫째, 하나님께서 성도 특히 선지자의 영혼을 무당의 술수에 이용되도록 하실 리 없으며 둘째, 혼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13절의 언급은 성도들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간다는(전 3:21, 눅 16:22, 23) 성경적 개념과는 배치되며, 오히려 접신술(接神術) 등과 같은 거짓 사상과 합치된다(사 29, 4)는 점 등에서 잘못됐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3)의 견해는 뚜렷한 근거 없이 원문 중 '보고'를 '듣고'로 변경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또한 (4)의 견해는 첫째, 12절의 '사무엘을 보고'는 무당의 말이 아닌 본서 저자의 언급이며 둘째, 영매(靈媒)등은 주관적 혹은 심리적으로 어떤 형상(혹은 환상)을 보기도 한다는 점 등에서 볼 때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본절에서 그 무녀가 본 것은, (2)의 견해대로 실제 사무엘의 혼이 아닌 사무엘을 가장한 사단의 어떤 형상을 봤음이 분명하다.
'큰 소리로 외치며...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이같은 무녀(巫女)의 언급은, 그녀가 그때까지는 자신에게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한 인물이 사울인 줄 몰랐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 비록 사울은 거구의 소유자여서(10:23) 타인의 눈에 쉽게 띄일 여지가 많았으나, 그래도 당시 사울은 밤에 변장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8절), 무녀의 눈에 의해서 간단히 분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여기서 어떻게 자신에게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한 사람이 사울인 줄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 추측컨대, 그때 그 무녀(巫女)는 사울이 사무엘의 혼을 불러달라고 요청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사울인줄 몰랐으나, 사무엘의 형상을 보는 순간 그가 사울인 줄 깨달았을 것이다. 즉 그 무녀는, 블레셋의 침공이 격렬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사무엘의 혼을 부를 사람은 그 전쟁으로 인하여 최악의 곤궁에 빠져있을 사울 밖에는 달리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사울의 큰 키를 이미 본 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3, 9절) 두려움과 공포에 차서 즉각 큰 소리를 내지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영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는지라
'왕이...이르되 두려워 말라'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무당과 박수를 축출시켰던 장본인이다(3절). 따라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현장을 그 사울에게 목격당한 그 무당 여인으로서는 큰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9절).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사울은 그 무녀(巫女)에게 '두려워 말라'라는 말로 안심 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사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중히 여기시는 복술(卜術) 행위 조차도 서슴없이 독려하는 자아 모순적인 작태를 드러내고 있다.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이 질문은, 그때 사울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 사실 그 무녀가 어떤 형상을 본 것은 초자연적 혹은 심리적 현상이었기 때문에, 사울이 아무것도 못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여기 사울의 이 질문은 사울이 무당이 위치했던 곳과 어느 정도 격리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울과 무당이 각기 다른 방에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여기의 '신'(엘로힘)은 형태상으로는 복수이나 단수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그 무녀는 자기가 본 어떤 형상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반영하기 위하여 한 혼의 형상만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복수 곧 '장엄 복수'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신'이란 단어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신'은 항상 어떤 '신'(god) 자체만을 의미치 의미치 않는다. 즉 이말은 '신적인 존재' 곧 '영'(靈)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어떤 '영적인 존재' 곧 '유령'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더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의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그 모양이 어떠하냐' 사울의 이같은 질문은, 무당이 실제로 사무엘의 형상을 보았는지의 여부를 확인키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때 사울은 무당이 사무엘을 봤다는 언급에 대하여 일말의 의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사무엘이 83세에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25:1 주석참조), 사단적 유령이 이같이 '노인'의 모습으로 무당에게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여기서 '겉옷'(메일)은 발목까지 내려오는긴 망토식 가운으로서,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구별하여 나타내기 위하여 입었던 옷이다(출 28:4, 레 8:7, 삼하 13:18, 대상 15:27), 사무엘도 생전에 선지자의 외투로서 이같은 겉옷을 입었었다(15:27). 결국 그 무당은 자기가 본 형상의 주인공이 '노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이같은 '겉옷'을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그가 사무엘임을 넉넉히 느꼈을 것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줄 알고...절하니라' 이것은, 그때 사울이 사무엘의 형상을 직접 봤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울은, 그 접신녀가 '노인'과 '겉옷'을 언급한 사실로 인하여, 그녀가 실제로 사무엘을 본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사울은 무녀가 사무엘이 올라온 곳이라고 암시하는 곳을 바라보며 경외와 존경의 표시로 넙죽 절을 한 것이다.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를 성가시게 하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다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기로 내가 행할 일을 알아보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하더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성경 기자는 여기서 마치 실제의 사무엘이 등장하여 말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성경 기자는, 사무엘을 흉내내어 나타났고 그 이름을 빙자하여 말하고 있는 악령을 편의상 간결하게 '사무엘'이라는말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때 악령은 초혼술(招魂術)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영매(靈媒)인 접신녀(接神女)의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사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23:17).
'선지자로도 꿈으로도...대답지 아니하시기로' 이러한 계시(啓示)의 단절은 악한 인물 또는 악 다 시대에 대한 징벌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서(6절, 3:1), 여기서는 곧 하나님께서 사울과 함께 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주는 객관적 증거이다.
16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네 대적이 되셨거늘' 이 말은 칠십역(LXX)의 번역대로 '네 이웃의 편이 되셨거늘'이란 의미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말이다(15절).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만일 하나님께서 사울에게서 등을 돌리셨다면,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인 사무엘에게 묻는 행위는 가당치 않다는 뜻의 반문(反問)이다.
17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는 사울이 왕이 된 후 하나님께 불순종한 여러 사건 중 '아말렉 진멸 명령'(15:3)을 어긴 사실이 가장 치명적인 사울의 범죄 행위임을 시사해 준다. 아마도 출애굽 후 가나안으로 향하는 선민 이스라엘의 여정을 최초로 그리고 비겁하게 방해하고 적대한(신 25:17-19) 아말렉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회심(會心)의 복수전을 사울이 그의 사악한 탐심으로 말미암아 망쳤기 때문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행하셨고' 본절은 이때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을,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15:3)을 이행치 않음으로써(15:9) 나타난 결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15장에서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사울에게 왕위(王位) 박탈 선언을 했다는 점(15:26)과 연결하여, 여기서 사울이 당한 어려운 상황은 사울을 왕의 자리에 더이상 앉아 있지 못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추진하시는 작업중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붙이시리니' 여기서 '붙이시리니'(나탄)란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적인 의지로 어떤 당사자나 나라에게 확실한 승리를 부여할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나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은 사무엘처럼 '죽은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는 뜻으로, 곧 '죽을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네 아들들'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사울과 함께 죽을 사울의 세 아들, 곧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가리킨다(31:2, 대상 10:2).
20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사울이...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무릎을 꿇고 있던 상태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쓰러져버린 것을 가리킨다. 즉 사울은 자기 앞에 나타난 악령을 진짜 사무엘의 영으로 착각하고 그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14절). 그러다가 자기가 기대하던 해결책은 얻지 못하고 대신 악령으로부터 자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듣게 되자(16-19절), 그는 (1) 큰 두려움의 엄습과 (2) 육체적 탈진으로 땅바닥에 길게 엎드러지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자행 자지하던 타락자 사울 왕이 머지 않아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에 대한 하나의 전조(前兆)였다.(31:1-6).
'종일 종야에...먹지 못하였음이라' 사울은 전투에 앞서 금식을 하곤 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14:24). 이와 유사하게 당시에도 (1) 사울은 엔돌의 이 접신녀에게 자신이 행할 바를 묻기 위하여 (2) 그리고 엔돌로 향하는 과정에서 블레셋의 수비망을 뚫고 가야한다는 어려움을 예상하여(Klein) 일부러 금식을 하였던것 같다. 그러나 그러나 이 견해와는 달리, 먼거리를 오느라고 식사를 하지 못했으리라는 가정은(1) 당시 이스라엘의 진지인 이스르엘(29:1)에서 무당이 거주하던 엔돌까지의 거리는 불과 8km 정도(Aharoni), 즉 두 시간 거리밖에 안되며 (2) 23절에서는 사울이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먹기를 거부한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성립되지 아니한다.
21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가 심히 고통 당함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여종이 왕의 말씀을 듣고 내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왕이 내게 이르신 말씀을 순종하였사오니
'그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러' 이같은 언급은, 그 접신녀가 사울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사울은 접신녀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을(15절) 마치 사무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말로 속아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접신녀는 자신과 사울 사이의 시계(視界)를 흐리게 할 목적으로 향을 피웠을 가능성도 있다.
'나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사무엘을 불러내라는 사울의 명령(11절)은 초혼(招魂) 행위가 엄격히 금지된 그당시 상황으로 인하여(3절), 무녀에게는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계책으로 들렸을 것이다(9절). 그러므로 그 무녀가 그같은 사울의 명령을 이행한 것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일종의 모험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는, (1) 사울로부터 목숨 보장에 대한 맹세를 이미 받았고(10절) (2) 또한 당시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물을 통로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사울이 자신을 찾을 수 밖에 없었음을 알고 있는 마당에서, 그 무녀(巫女)가 사울의 명령을 이행한 것은 결코 생명을 건 모험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라는 무녀의 말은 자신의 공을 자찬(自讚)하는 거짓말임이 분명하다.
22 그런즉 청하건대 이제 당신도 여종의 말을 들으사 내가 왕 앞에 한 조각 떡을 드리게 하시고 왕은 잡수시고 길 가실 때에 기력을 얻으소서 하니
본절에 언급된 무녀의 행동은 사울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접신녀의 이같은 동정도 사울로 하여금 고통을 당하게 하는 정신적이며 근본적인 원인을 결코 제거할 수는 없었다.
23 사울이 거절하여 이르되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까 하니라 그의 신하들과 여인이 강권하매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내가 먹지 아니하겠노라' 이것은 당시 만사가 귀찮은, 그리고 거의 자포 자기의 상태에 있는 사울의 탈진한 심리 상태를 잘 반영해 준다.
'땅에서 일어나 침상에 앉으니라' 이것은 사울이 자신의 낙담한 정신 상태를 어느 정도 수습했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따라서 사울은 지금까지 땅바닥에 엎드려져 있던 자신의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았던 것이다.
24 여인의 집에 살진 송아지가 있으므로 그것을 급히 잡고 가루를 가져다가 뭉쳐 무교병을 만들고 구워서
'살진 송아지...잡고' 이것은 사울에 대한 무녀의 정성이 극진했음을 잘 시사해 준다(창 18:7, 눅 15:23).
'무교병' 이것은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으로, 급히 장만할 수 있는 음식이다(출12:8, 15-20). 이때 그 무녀는 보다 먹기 좋은 유교병은 시간이 없었던 관계로 준비하지 못한 듯하다.
25 사울 앞에와 그의 신하들 앞에 내놓으니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그 밤에 가니라' 날이 밝을 경우 (1) 블레셋 군대에게 발각될 위험과, (2) 그리고 블레셋의 공세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사울은 이같 이급히 서두렀을 것이다(Klein). "실로 사울은 자신과 아들들과 백성들의 죽음과 패배를 괴로워하고 슬퍼하기에는 그 양심이 죄로써 너무 둔감해져 있었다. 따라서 사울은 그의 강퍅한 심령을 이끌고 자신의 운명을 맞으러 갔다. 즉 한때 여호와의 신이 임했으며, 기름 부음을 받아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되는 축복을 누린 자' 사울은 이처럼 절망감 속에서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맞으로 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