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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9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3. 26. 17:02

◈삼상29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본 절의 내용은 28:1, 4에 대한 또 다른 각도에서의 언급이다.

'블레셋 사람들은...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블레셋 사람들의 1차 군사 집결지는 '아벡'(Aphek)이었다. 블레셋 족속은 특별히 다섯 방백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부족 연합 성격의 정치 체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5:8), 이처럼 집결지를 정해 그곳으로 각 부족의 군사들이 총집결했던 것이다. 
한편 '아벡'은 '요새'란 뜻으로, 이와 동일한 지명이 팔레스틴 여러 곳에 있다. 혹자들은 여기 '아벡'을 잇사갈 지파에 속하는 오늘날의 '엘 아풀레'(el-Afuleh)로 추정하여, '수넴'과 멀지 않은 곳이라고 보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어쩌면 엘리 제사장 시절,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블레셋 족속에 의하여 이미 병력 집결지로 사용되었던 '에벤에셀' 근처의 '아벡'일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4:1).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이스르엘'(Jezreel)은 '하나님께서 씨를 뿌림'이란 뜻이다. 이곳은 길보아 산악 지대의 북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28:4), 기손 강의 영향으로 토지는 비옥하고, 길게 평원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편 여기의 '샘'(아인)은 '이스르엘'동남쪽 약 2.8km 지점에 있고, 길보아 산지 북쪽에 수원(水源)을 갖고 있는 우물이다. 
그런데 이 우물은 화강암 절벽에서 흘러 내려온 물에 의하여 형성된 큰 웅덩이의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2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그 뒤에서 나아가더니 

'블레셋 사람의 수령들' 여기서 '수령들'(세렌)은 본서의 다른 부분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이다(5:8, 11, 6:4, 12, 18, 7:7). 즉 이들은 블레셋의 다섯 부족들을 그들의 수도 곧 가사, 가드,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수 13:3)을 중심으로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들을 가리킨다(5:1-12).

'수백씩 수천씩 인솔하여 나아가고' 이것은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 밑에는 천부장과 백부장이 있어서, 병력이 그들에 의하여 관리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이같은 언급은, 블레셋의 군대가 병력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잡혀 있었음을 강력히 암시해 준다. 
그렇다면 이때 블레셋의 군대는 어디서 어디로 가는 중이었을까? 이때 블레셋 군대는 자신들의 1차 집결지인 '아벡'<1절>을 떠나 자신들의 진(陳)칠 곳인 '수넴'<28:4>으로 가는 중이었다. 

우리가 이같이 보아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나아가고'(아바르)라는 동사는 먼 거리를 진행하는 행동을 나타낼때 주로 사용되며(창 33:3, 민 13:32, 신 29:16), 
(2) 다윗이 '아기스'를 제외한 다른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에 의하여 회군(回軍)하였을 때, 그 당시 그 자신이 위치했던 지점에서 '시글락'(27:6)까지 삼일만에 도착했다는 사실(30:1) 때문이다. 만일 다윗이 그 당시 '수넴'(Shunem, 28:4)에 있었다면, 자신의 거주지인 시글락까지 결코 삼일만에 도착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벡'에서 '시글락'까지는 약 75km 정도이므로, '아벡'에서 '수넴' 쪽으로 조금 진행한 지점에서 다윗의 군사가 다시 시글락까지 회군(回軍)하는 데 삼일 걸렸다는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윗...아기스와 함께...나아가더니' 다윗의 이같은 행동은, 다윗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있던 아기스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28:1). 가드 왕 아기스는 그때 다윗을 자신의 영원한 신하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27:12).

'그 뒤에서' 다윗과 그의 일행은 아기스의 후군(後軍)이 되어 본전투에 참여하였음을 암시한다.

3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하니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에게 이르되 이는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여러 날 여러 해로되 그가 망명하여 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 히브리 사람들' 다윗과 그의 휘하 병력을 가리킨다. 여기서 블레셋 방백들이 이들을 이같이 '히브리 사람'(이브림)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방백들이 이들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3:7).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 아기스의 이 말은 다윗이 전에는 사울의 신하였으나 지금은 그와 원수가 되어 아기스 자신의 신하가 되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블레셋 사람들까지도 다윗이 사울과 원수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같은 사실로 인하여, 아기스는 자신의 말이 다른 방백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나와 함께 있은지 여러 날 여러 해' 여기서 '여러 날 여러 해'란 표현은 다윗이 충실한 신하로서 아기스 자신과 함께 오래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독특한 표현이다. 실제로 다윗이 아기스와 함께 한 기간은 '일 년 넉 달'이었다(27:7).

'내가 그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노라' 이는 아기스가 그때까지, 다윗이 자신 몰래 그술, 기르스, 아말렉 등 이스라엘 적대 세력들을 침노했던 사실을 알지 못했음을 시사해 준다(27:8, 12). 그리고 사실 다윗은 이러한 남방 민족들을 아기스 몰래 침노한 사실 이외에는 아기스에게 충성을 다하여 큰 신임을 얻었던 것 같다.

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이는 다윗을 두둔하는 가드 왕 아기스에 대한 블레셋 방백들의 반발이다. 즉 블레셋의 다른 네 방백들은, 아기스가 자신들의 말보다 다윗을 더 신뢰하는 데 대하여 이같이 날카로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편 여기의 '방백'(사르)은 '군주', '우두머리', '지휘관' 등의 의미로서, 왕보다는 낮은 계급의 소유자를 지칭할 때 사용된다(창 12:15, 출 1:11, 삼하 2:8). 아무튼 본절은 블레셋 방백 회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당시 블레셋에는 5인의 방백이 있었으며, 그 방백들 중에서 한 명이 블레셋 연방 체제(聯邦體制)를 대표하는 왕이 되었다(6:4,16, 수 13:3, 삿 3:3). 
하지만 이 왕은 절대적 왕권을 갖지 못하고 방백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따라야 했으며, 방백들의 제의를 무시하고 자의(自意)로 통치권을 행사하지는 못했다(6:1-16). 여기서 아기스는 가드의 방백이면서 위와 같은 제한적 왕권을 지닌 블레셋의 왕이었다. 따라서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 문제에 거세게 항의하면서 아기스 왕의 뜻을 꺾고 다윗을 되돌려 보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블레셋의 독특한 통치 체제에 기인한다. 그러나 다윗이 길보아 전투에 참전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때문이었다.

'왕이...정하신 그 처소' 즉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식읍(食邑)으로 부여한 '시글락'을 가리킨다(27:6).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이 말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군대가 진치고 있는 곳의 맞으편 언덕에 위치할 자신들의 진지에서, 전투를 위하여 이스라엘 군대와 자신들의 군대 사이의 계곡 혹은 들판으로 내려가는 행위를 가리킨다.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이 말은 다윗이 막상 싸움에 임하여서는 블레셋을 배반하고 사울의 편에 서서 오히려 블레셋을 역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아마도 블레셋 방백들은 이전에 믹마스에서 이스라엘과 전투할 때(13:5)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투항하였지만, 그들이 다시 블레셋에 대항했던(14:21) 뼈아픈 경험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는 다윗이 사울의 편에 다시 서기 위하여 어떤 예물을 그에게 가져갈 것이라는 확신적 질문이다. 여기의 '화합하리이까'는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울을 즐겁게 하는 것, 즉 블레셋을 배반한 후 도리어 사울을 도와서 블레셋에 역공(逆功)을 펼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또한 여기서 '그 주'는 사울 왕을 가리키는데, 이는 블레셋 방백들이 사울 왕에 대한 다윗의 신실함에 대해 의혹을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그리고 이같은 사실은, 아기스가 다윗을 자신의 '영원한 사역자'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과는(27:12) 크게 대조된다.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아니하겠나이까' 이것은 다윗이 사울과 화해하기 위하여, 즉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많은 블레셋 병사들의 머리를 그에게 예물로 바칠 것이라는 뜻이다. 이전에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기 위하여, 즉 사울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이백을 그에게 바친 일이 있었다(18:27). 아무튼 블레셋 방백들의 이같은 언급은 그들이, 만일 다윗을 전쟁터로 데려가면 그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손실을 입힐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본절은, 다윗이 전에 골리앗을 꺾은 엘라 골짜기 전투(17장)에서 사울과 함께 블레셋에게 군사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혔던 장본인이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언급이다(21:11). 이전에도 가드 왕 아기스는 바로 이같은 언급을 부하들로부터 전해 들음으로써, 자신에게 망명왔던 다윗에 대하여 의심을 품기 시작하였었다(21:12). 아무튼 다윗의 무공을 칭송하는 이스라엘 여인들의 이 노래는 당시의 민심이 반영된 채 이스라엘 인근 지역의 국가들 사이에도 익히 알려졌던 것 같다.

6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네가 정직하여'와 동일한 의미이다. 아기스는 이같은 동의어를 반복 언급함으로써 다윗의 의로움을 강조적으로 칭찬하고 있다. 한편 아기스의 이러한 말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방 사회에 거주하던 다윗이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비록 이방 땅으로 피신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신중하게 생활했다. 
이 사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성경적 삶의 원리를 일깨워 준다. (1) 성도의 어느 곳에 처하든지 정직하고 진실한 삶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마 5:13-16). (2)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한 까다롭게 대하는 상전들에게도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듯 진실하게 봉사해야 한다(벧전 2:18). 이처럼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실천적 삶으로써 하나님을바로 섬기는 자가 산 믿음을 소유한 자요(약 2:26),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자이다(롬 14:18).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사실 이 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에게는 매우 기다려지던 바였다. 사실 다윗은 그때 블레셋 군대와 합세하여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절대로 싸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전투에 참여치 않으려 노력했었다(28:2). 그러므로 그때 다윗을 시글락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하여 이같은 말을 하는 가드 왕 아기스는 다윗에 대하여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겠지만, 그 당사자인 다윗은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였을 것이고, 내심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장관들에게 거슬려 보이게 말라' 문자적으로는 '장관들의 눈에 악함이 보이지 않도록'이란 뜻이다. 이러한 당부는 아기스가 다윗을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사역자'로 삼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즉 만일 다윗이 다른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더이상 눈 밖에 나게 된다면, 아기스도 다윗을 계속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더라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8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내가 당신 앞에 오늘까지 있는 동안에 당신이 종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내가 가서 내 주 왕의 원수와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하니 

본절에 나타난 바 다윗의 이 항변은 분명히 그의 양심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사실 다윗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할 수도 없었고, 또한 전투를 하고 싶은 마음도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같은 거짓된 말을 한 까닭은, (1)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고, (2) 또한 아기스가 한 말의 진실성을 시험해 보기 위함이었다(Keil). 만일 그때 다윗이 잠잠히 있었다면, 아기스는 다윗을 고소한 다른 방백들의 말(4, 5절)을 참말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9 아기스가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방백들은 말하기를 그가 우리와 함께 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하니 

'하나님의 사자 같이 선한'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는 '하나님의 천사'를 의미하는데, 아기스의 이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는 항상 인간들을 위하여 좋은 일만 한다는 일반적 관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다윗의 정직함과 의로움을 강조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그가...전장에 올라가지 못하리라' 이것은 블레셋의 집결지 '아벡'으로부터 그들이 진을 칠 곳인 '수넴'까지 진군하는 것을 가리킨다(28:4). 한편 '올라간다'는 말은 북상(北上)한다는 뜻과 아울러 블레셋의 진지인 '수넴'이 '모레 언덕'이라는 고지대(高地帶)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10 그런즉 너는 너와 함께 온 네 주의 신하들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라 너희는 새벽에 일어나서 밝거든 곧 떠나라 하니라 

'네 주의 신하들'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다윗의 휘하 병력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을 이와 같이 표현한 까닭은, 다윗의 추종 병력들이 원래는 사울의 휘하에 있었으나 이후 다윗에게로 넘어온 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22:2, 23:13, 대상12:19-21).

'새벽에 일어나라' 이는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의 참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때가 거의 밤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밝거든 곧 떠나라' 이같은 아기스의 명령은 다윗으로 하여금 블레셋의 다른 방백들의 눈에 더이상 띄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즉 날이 밝은 그 다음날 아침에도 다윗이 블레셋 방백들에 의하여 발견된다면, 다윗은 또다시 그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되고, 급기야는 블레셋 땅에서 완전히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도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7절).

11 이에 다윗이 자기 사람들과 더불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떠나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돌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르엘로 올라가니라

'다윗이...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가고'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과 싸우지 않고 시글락으로 되돌아가게 된 것은, 블레셋 방백들로 하여금 다윗의 참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심으로써, (1) 다윗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장애가 없도록 하셨으며, (2) 또한 때마침 아말렉의 침공에 의하여 납치되었던 자신의 가족등을 구출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일찌기 아침에 일어나서 떠나' 다윗은 진퇴 양난의 위기에서 결국 동족 이스라엘에게도 전혀 죄를 짓지 아니하고, 또한 아기스 왕에게도 전혀 의심받지 않은 상태로 자신의 거처인 시글락으로 떠났다. 한편, 본절은 B.C. 1010년에 발발한 길보아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전투를 계획했던 블레셋 왕 아기스는 그당시 다윗을 상당히 신임하고 있었던 터라 다윗을 그 전투에 참가시키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든 결과는 반역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뜻을 저버리고 이방인의 신하가 되어 있던 다윗이었지만,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용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표시로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던 다윗에게 그 전투에 참전할 수 없도록 섭리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같은 사실들을 통해 (1) 인간의 실수와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성취해 가신다는 것(마 26:14-29)과 (2) 당신이 택하신 자를 결코(그가 범죄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뿐 아니라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신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다(고전 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