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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0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3. 26. 17:31

◈삼상30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다윗...시글락에 이를 때.' 이것은 다윗과 그의 일행이 블레셋 방백들의 거부로 인하여 (29:3-5) 이스라엘과의 전투에 참여치 않고, 블레셋 군대를 떠나 다시 자신들의 본거지인 '시글락'에 돌아온 사실을 가리킨다(27:6).

'제 삼일에' 여기 '삼일'은 다윗 일행이 블레셋 군대로부터 떠난(29:11) 제 3일을 가리킨다. 이 기간 동안 다윗과 그의 군사들은 '아벡'으로부터 '시글락'까지 약75km를 행군 했음이 분명하다(29:1).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남방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아말렉 족속들의 이같은 행위는 
(1) 이전에 다윗이 자신들에게 행한 침노 행위(27:8, 9)에 대한 보복의 성격을 지니며, 
(2) 또한 생존을 위한 약탈물 확보 등이 그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아말렉 족속이 시글락을 침범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곳을지키던 다윗이 북쪽 '아벡'으로 이동함으로써, 그곳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기서 '남방'은 유다의 남부 지역을 통칭하는 '네게브'(Negeb)를 가리킨다(27:10). 그런데 원래부터 이곳은 항상 아말렉 사람들로부터 침략의 위협을 받던 지역이었다(14:48). 

2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거기 있는 대소 여인들' 다윗 일행의 가족들인(27:3) 이들은 여자들인 관계로 다윗과 함께 전투에 참여치 않고 시글락에 계속 남아 있었다. 한편, 3절은 이 여자들 외에도 자녀들까지 아말렉 사람에게 모두 잡혀갔음을 말하고 있다.

'하나도 죽이지 아니하고...끌고...갔더라' 아말렉 사람들이 이같이 사로잡아 간 까닭은 그들이 결코 인정이 많아서가 아니었다(15:2). 다만 (1) 무장하지 않은 연약한 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공격에 대항치 않았으며 (2) 애굽에 노예로 팔 경우(창37:25-28)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실리(實利)를 추구하는 이방 아말렉 족속의 관행을 오히려 선하게 이용하심으로써, (1)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셨으며 (2) 다윗 가문을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계획을 차질없이 계속 진행시켜 나가셨다. 실로 세밀한 구석까지 친히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느낄 수 있다.

3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아내와 자녀들' 이들은 그때 시글락에 남아 있던 자들로서, 다윗과 그의 군사들에게 딸린(27:3) 모든 식구를 가리킬 것이다.

4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울었더라' 다윗의 이같은 비탄은 비단 자신의 아내들을 빼앗겼다는 사실때문만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즉 다윗은 시글락을 무방비 상태로 비워 놓고 경솔히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나아간 자신의 실책으로 인하여, 자신의 모든 부하들의 아내와 자녀가 포로로 잡혀간 그 엄청난 사실로 인하여 큰 슬픔에 잠긴 것이다. 
한편, 다윗에게 닥친 이러한 큰 재난의 궁극적 원인은 목전의 안전과 정착을 도모코자 언약의 땅 이스라엘을 떠나 우상의 나라인 불레셋 땅으로 이주한 데 있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비록 고생과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언약의 땅에서, 언약의 백성과 더불어, 언약의 주를 바라고 믿으면서 울고 웃어야 한다.

5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본절은 다윗도 자신의 부하들처럼 동일한 환난을 당했음을 말해 준다. 저자는 이같은 언급을 통하여 (1) 다윗도 다른 부하들처럼 동일하게 슬퍼할 수 밖에 없었으며, (2) 그리고 동일한 피해자인 다윗을 돌로 치려고 한 백성들의 태도는 잘못된 것임을 암시하려는 듯하다(6절).

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백성들이 이처럼 말한 이유는 재난의 책임이 전적으로 다윗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1) 다윗이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아말렉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려 놨으며(27:8, 9), (2) 또한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의 말을 좇아 시글락을 비워 둔 채 군사들을 모두 북쪽으로 이동시키는 등, 백성들의 보호자 혹은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치 못했다고 본 것이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여기서 '다급하였다'(야차르)는 '답답하다', '곤란하다'란 의미로서, 어떤 원인에 의하여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느끼게 되는 답답한 감정 상태를 가리킨다(창 32:7, 삿 2:15, 10:9, 삼하 13:2).

'힘 입고' 엄밀히 말하여 '...안에서'란 의미이다.

'용기를 얻었더라(이트하제크)' 
'힘을 내다', '견고히 하다'란 의미를갖는 '하자크'(*)의 재귀적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 말은 '(여호와 안에서)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힘을 내다'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삿 20:22, 대하 12:13, 17:1, 겔7:13). 
즉 이것은 여호와를 의뢰하는 확고한 신념에 근거하여 적극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새로이 먹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난관에 대처하는 다윗의 신앙을 엿볼수 있다. 즉 이때 다윗은 휘하 군사들을 회유하는 설득이나 구구한 변명 대신 하나님께 그 어려운 문제를 맡기고 그분의 도우심을 전적 바라는 신앙인의 모습을 견지했던 것이다. 이처럼 성도는 환난을 당할 때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 문제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실로 신앙인이 불신자보다 월등한 점은 고난에 처했을 때 환경과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그 상황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데 있다. 그리고 당신만을 소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위로를 제공하신다(시 50:15, 사 40:31).

7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아히멜렉의 아들...아비아달' 아비아달(Abiathar)은 자신의 아버지 '아히멜렉'을 포함한 놉 제사장들이 사울에 의하여 집단 학살됐을 때(22:18-20), 단신으로 다윗에게 피신해 온 제사장이다. 그런데 그는 당시 다윗에게 도피할 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계시 수단인 '우림과 둠밈'이 부착되어 있는 에봇을 갖고 갔었다(23:6)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이는 '우림과 둠밈'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함이었다<14:18, 23:9>. 이는 당시 다윗의 신앙적 행동의 출발이 어디서부터인지를 잘 보여 준다. 즉 다윗의 신앙적 행동의 출발점은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에 있었다. 즉 그는 대제사장의 에봇을 통하여 하나님과 신령한 교신(交信)을 했으며, 결국 이것이 올바른 행동과 승리의 관건이 되었다. 이처럼 성도들이 항상 복되고 의로운 길을 걸을 수 있는 방책은 매사에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서 생활하는 것이다(롬 12:1, 2, 엡 5:17). 

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 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우림과 둠밈'(출 28:30)은 항상 어떤 질문에 대한 '가부'(可否)의 응답만을 했다. 따라서 '우림과 둠밈'이라는 계시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들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대제사장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전달될 뿐이었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계시가 중단되었으나(28:6), 다윗에게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이 계속적으로 계시되고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같은 대조를 통하여 본서 저자는, 이제 사울의 왕권은 완전히 쇠퇴하고 반면 다윗의 왕권은 일취월장 흥왕하게 될 것임을 강력히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9 이에 다윗과 또 그와 함께 한 육 백 명이 가서 브솔 시내에 이르러 뒤떨어진 자를 거기 머물게 했으되 

이 부분은 다윗의 지도자적 역량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을 돌로 치려 하는 큰 소요가 바로 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를 일순간에 반전시켜 그들 모두로 하여금 자신을 좇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성들 모두가 다윗을 좇은 것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긍정적인 답변(8절)으로 인하여, 아내와 자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한 육백 명' 이것은 한 명의 항명자도 없이 다윗의 부하 전원이 다윗을 좇았음을 시사해 준다(27:2).

'브솔 시내' '시글락' 남쪽 약 24km 지점으로, 유다 산악 지대에서 발원하여 '가사' 남서방을 통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시내이다. 헤르츠베르그(Hertaberg)는 나름대로의 어원학적 분석을 근거로 하여, '브솔 시내'의 뜻을 '좋은 소식의 시내'로 본다. 

'뒤떨어진 자를...머물렀으되' 이같은 결과가 나타나게 된 까닭은 
(1) 다윗과 그의 휘하 군사들은 '아벡'으로부터 '시글락'까지 약 삼 일 길을 이미 행군하였기 때문에 매우 피곤한 상태였으며(1절), (2) 거기다가 쉬지도 못한 채로 온 힘을 다하여서 아말렉 족속을 밤낮 추적한 관계로 몹시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힘들어하는 200명을 브솔 시내에서 쉬게 하였던 것이다. 물론 추격의 시급성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지친 자들에게 무리한 강행군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신앙에 기초를 둔 다윗의 인도적 조처였다. 

더욱이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남은 400명과 함께 하신다면 600명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대하 14:11, 12). 이와 같은 다윗의 신념은 하나님의 구원이 사람의 숫자에 있지 않음(14:6)을 입증하듯 다윗에게 큰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16-20절).

10 곧 피곤하여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이백 명을 머물게 했고 다윗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 

'곧 피곤하여...머물렀고' 이것은 다윗이 육백 명 중 사백 명만을 데리고 아말렉 족속을 쫓아갔던 이유를 제시해 주는 구절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쫓아가니라'라는 말 다음에 놓고, 본 구절의 초두에 나오는 '곧'(웨)을 '왜냐하면'이란 뜻으로 봄이 좋다(이러한 해석이 히브리 원문에 충실한 해석이다).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는' 여기의 이 '브솔 시내'(Besor Brook)는 유다 남방의 산악 지역에서부터 흘러 가사(Gaza) 지역을 통과한 후 지중해로 빠지는 하천이다. 그러나 이 시내는 '와디'(Wady) 즉 '건천'(乾川)이기 때문에 우기(雨期)를 제외하고는 항상 강바닥이 말라있었다. 바로 이같은 점에서 이때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강물을 건너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그 '브솔 시내'는 험한 골짜기를 따라 흘렀기 때문에, 비록 강바닥이 말라붙는 건기(乾期)라 할지라도 그 골짜기를 건너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므로 지친 군사들은 그 골짜기를 건너지 못하고 낙오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들은 이때 뒤에서 짐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24절:25:13).

11 무리가 들에서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로 데려다가 떡을 주어 먹게 하며 물을 마시게 하고 
12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 

'애굽 사람' 이 사람은 아말렉 사람들이 애굽의 어느 변방 지역을 노략하면서 노예로 붙들어 온 자였을 것이다<13절>.

'무화과 뭉치' 이것은 무화과를 재료로 하여 만든 과자를 가리킨다(25:18).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틴 지방의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랄 정도로 매우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식물이다(민 13:23). 그러므로 바위와 돌이 많은 곳에서도 약 9m의 높이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열매는 그 속에 꽃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자르지 않고서는 꽃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화과'(無花果)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1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에게 속하였으며 어디에서 왔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애굽 소년이요 아말렉 사람의 종이더니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애굽 소년이요' 이것은 다윗의 '어디로서냐'(어디 출신이냐 ?)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한편 '소년'(나아르)은 완전한 성인(成人)은 아니지만, 전투를 감당할 만큼 나이 든 젊은 남아(男兒)를 가리킨다(14:6).

'아말렉 사람의 종' 이것은 다윗의 '뉘게 속하였으며'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사흘 전에 병이 들매' 여기서 '사흘 전'은 다윗이 아벡 근처에서 시글락을 향하여 출발할 즈음이다(29:10, 11, 30:1). 이때 아말렉 족속들은 시글락에 대한 노략질을 마치고 자신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말렉 사람들의 시글락 노략은 다윗이 아벡의 집결지에 도착했을 무렵에 이루어진 듯하다(29:1, 2). 한편 '병이 들매'(*, 할라)는 '약해지다', '쇠약하다' 등의 의미로서, 병으로 인하여 움직일 기력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킨다(삿 16:7, 사 57:10).

'주인이 나를 버렸나이다'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다. 즉 주인은 병들어서 노동력을 상실한 이 종에게 치료를 해주고 먹을 것을 주는 등 보살필 경제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마치 물건 버리듯 들에 내팽개쳐 버린 것이다.

14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락을 불살랐나이다 

'그렛 사람의 남방' '그렛 사람'(the Cherethite)은 그레데(Crete) 섬 출신의 가나안 이주 민족이다. 이와 같이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그렛'과 '그레데'라는 단어는 상호 매우 유사하며, (2) 호머(Homer) 시대에는 그레데에서 '그렛'이라는말이 사용되었으며, (3) 그리고 또 다른 그레데 출신의 민족들인 블레셋(4:1)과 매우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 언급되기 때문이다(겔 25:16, 습 2:5). 그러므로 우리는 '그렛 사람'들이 블레셋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하여, 이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용병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그런데 이들의 일부는 후일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그의 친위대가 되어서, 다윗에 대한 여러 번의 모반이 있을 때마다 항상 다윗의 편에 서서 온갖 충성을 다하기도 하였다(삼하 15:18, 20:7, 왕상 1:38). 
한편 이 민족의 거주지는 가나안 땅의 남서쪽 해안(海岸)지대였다(습 2:5). 그렇다면 '그렛 사람의 남방'은 어디를 가리킬까 ? 이곳은 대체적으로 블레셋 사람의 영토 중 남부 즉 시글락 주변 지역으로 추측된다.

'유다에 속한 지방' 이곳은 유다 땅의 남부 지역을 가리킨다(1절).

'갈멜 남방' 개역 성경의 '갈멜'은 '갈렙'(Caleb, KJV)으로 번역해야 한다<25:3>. 이 '갈렙'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기에 그나스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분배되었던,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유다 남부 지역에 해당된다(수 21:12). 결국 아말렉 족속이 침범했던 지역으로서 애굽 소년에 의하여 언급된 세 지역 즉,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멜 남방'은 팔레스틴의 모든 남쪽 지역을 망라하여 가리키는 것이다.

15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도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리이다 하니라 

'네가...그 군대에게로 인도하겠느냐' 이같은 다윗의 요구는 아말렉 족속이 일정한 거처를 갖지 않는 유랑 민족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물론 그들도 목적상 일정기간 동안 잠정적인 거처를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도시를 형성하고 살지 않는 유랑 민족으로서, 언제든지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부족이었기 때문에, 어떤 정보 없이 그들의 발자취를 추정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따라서 병든 애굽 소년의 정보는 다윗에게 매우 필요했던 것이다. 한편 하나님의 세심한 섭리가 여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만일 이 부족이 다른 부족처럼 도시를 형성해 살아갔다면, 다윗은 안내자 없이도 그들을 공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애굽 소년의 이 말은, 적군의 패잔병을 안내자로 이용한 후 그 효용 가치가 없으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 미련없이 죽여버렸던 고대의 전쟁 풍습에 기인한다. 즉 그 애굽 소년은, 다윗도 자신을 안내자로 이용한 후 목적이 달성되면 자신을 죽일 것으로 염려한 것이다.

'주인의 수중에 붙이지도 아니하겠다고...맹세하소서' 만일 다윗이 종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준다면, 그 종은 이적(利敵) 행위를 한 혐의로 인하여 분명히 무참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그 애굽 소년은 다윗에게 맹세를 요구하였다.

16 그가 다윗을 인도하여 내려가니 그들이 온 땅에 편만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땅과 유다 땅에서 크게 약탈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그가 인도하여 내려가니' 비록 애굽 소년은 병들어 버림당했지만 삼일 전까지만 해도 아말렉 족속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진행 방향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더욱이 다윗 일행은 맹추격을 한 반면, 아말렉 족속에게는 여자, 어린이, 가축 등 많은 약탈물이 딸려 있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다윗 일행은 애굽 소년의 안내로 쉽사리 아말렉 족속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한편 애굽 소년의 이같은 인도 장면은, 이스라엘의 미래 왕 다윗에게는 장차 국내외적으로 많은 협력자들이 있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사울에게로부터는 국내의 협력자들까지 떠나가지 않았던가(22:2)!

'그들이...편만하여' 여기의 '편만하여'(나타쉬)는 무질서하게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편만하여'란 말은 당시 아말렉 족속들이 방심한 상태에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블레셋 사람의 땅과 유다 땅' 14절에서 애굽 소년에 의하여 언급된 여러 지역들을 말한다.

'먹고 마시며 춤추는지라'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유랑 민족(베드윈)에게서 흔히 볼수 있듯이, 성공적인 약탈 행위 이후 방탕하게 베푸는 주연(酒宴)을 가리킨다. 이때에는 경계심을 푼 상태에서 모두 정신없이 먹고 마시며 취하기 때문에, 기습 공격은 그대로 주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는 소수의 병력을 지닌 다윗의 공격 작전이 주효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었음이 분명하다(삿 8:11).

17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 그들을 치매 낙타를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외에는 피한 사람이 없었더라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 저물 때까지...치매' 여기서 '새벽'(네쉐프)은성경의 어떤 문맥에서는 '황혼' 혹은 '밤'을 의미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분명히 '새벽'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욥 7:4, 시 119:147). 만일 이것을 성경의 다른 문맥에서 처럼(사 5:11, 렘 13:16) '밤'으로 이해하게 되면, (1) 본절의 '저물 때까지'라는 말과 잘 조화되지 아니하며, (2) 간밤의 만취로 인해 완전히 저항 불능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새벽 무렵에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전술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매우 적절치 않다. 한편 '이튿날 저물 때'(하에렙 레마하라탐)는 문자적으로는 '다음 날 저녁'이란 뜻이다. 그런데 만일 이 말을 문자적으로 취한다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이틀간 아말렉과 싸웠다는 곤란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는, 저녁 시간부터 하루를 계산하는 히브리 사람들의 날짜 계산 방식을 이해한다면 능히 해소될 수 있다. 따라서 다윗과 아말렉 간의 접전은 새벽 무렵부터 그날저녁 무렵까지 하루동안 진행된 것이다. 아무튼 '다윗이 새벽부터 이튿날저녁까지...치매'라는 말은 다윗이 저항하는 아말렉 족속을 얼마나 철저하게 진멸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언급이라 할 수 있다.

'약대 타고 도망한 소년 사백 명' '약대'는 팔레스틴 남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 많이 사용한 동물이었다(삿 6:5). 한편 여기 소년들은 가축 관리의 임무를 맡은 자들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약탈한 가축들에게 먹이와 물을 주기 위하여 연회장으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이고, 그 결과 다윗의 기습 공격을 당하여 자신들의 약대를 타고 도망침으로써,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18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도로 찾고(나찰)' '건지다', '구원하다'란 의미로서, (1) 처음처럼 원래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삿 11:26), (2)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하는 것(출 2:19, 민35:25, 삼하 12:7)을 가리킨다.

'구원하였고(나찰)' 앞의 '도로 찾고'와 동일한 단어이다. 이는 다윗의 '완전한 회복'과 '더욱 풍성한 회복'을 강조한다. 즉 다윗의 아말렉 공격 사건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교훈이 깃들어 있다. (1) 이전에 탈취당했던 모든 것을 되찾았다(18, 19절). 

이와 같이 신앙으로 살아가는 자는 과거에 죄악으로 상실했던 모든 것을 회복하게 된다(요 8:32, 14:27, 15:11). (2) 전리품을 노획했다(20절). 말하자면 다윗 군대는 시글락 사건 이전보다 더욱 풍성한 소유를 누리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오직 신앙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전화 위복의 은총을 보게 된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께 나아오는 자를 위하여 풍성한 은총을 예비해놓고 계신다(요 10:10, 엡 3:20).

19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도로 찾아왔고(하쉬브)' '돌아오다', '보답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슈브'의 사역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 '돌아오게 하였고'란 뜻이다.

20 다윗이 또 양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무리가 그 가축들을 앞에 몰고 가며 이르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이 가축떼들은 전에 다윗이 빼앗겼던 가축들이 아니다. 그 원래의 소유자는 알 수 없지만, 당시 아말렉이 다른 부족들에게서 빼앗아 자신들의 소유로 삼은 가축떼가 분명하다. 만일 다윗이 잃었던 것을 다시 찾았다면 18,19절에서 나오는 '나찰'이나 '슈브'(*)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같은 사실은, 다윗이 이 가축들을 전리품으로서 유다 사람에게 나눠주었다는 사실(26-30절)로써도 분명해진다.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이것은 '그 가축을 앞에서 몰고 가며'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을 잘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연스럽다(AV).

'이는 다윗의 탈취한 것이라' 이는 다윗의 업적과 무공(武功)을 환호하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돌도 다윗을 쳐죽이려 했던 그들의 행동과는 매우 대조적이다(6절). 그러므로 후일 다윗은 왕이 되었을 때 이처럼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보다는, 바위나 산처럼 늘 변치 않는 하나님만을 전적 의뢰하였다.

21 다윗이 전에 피곤하여 능히 자기를 따르지 못하므로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에게 오매 그들이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을 영접하러 나오는지라 다윗이 그 백성에게 이르러 문안하매 

'이왕에...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인' 이들은 먼 거리를 급히 행군한 까닭에(9, 10절) 낙오된 자들이었다. 대신 이들은 짐을 지키고 있었다(24절).

22 다윗과 함께 갔던 자들 가운데 악한 자와 불량배들이 다 이르되 그들이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 우리가 도로 찾은 물건은 무엇이든지 그들에게 주지 말고 각자의 처자만 데리고 떠나가게 하라 하는지라 

'악한 자와 비류들' 직역하면 '악하고 무익한 남자들'이란 뜻이다. 여기의 '비류'(벧리야알)는 본서에서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2:12), 사울의 왕권을 부정하려 들었던 자들(10:27). 그리고 다윗의 요구를 모욕적으로 거절했던 나발(25:17,25) 등에게 적용됐던 단어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마땅히 행할 바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이전에(6절) '다윗을 돌로 치자'라고 선동했던 자들도 바로 이들이었을 것이다.

'함께 가지 아니하였은즉...주지 말고' 이같은 비류들의 제안은 (1) 전투에 참여치 아니한 사람들에게도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던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례와 상충되며(민31:27) (2)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에 따른 것이었으며(8, 23절) (3) 후방에서 소유물을 지키는 일도 작전상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는 점(25:13) 등으로 볼 때, 뒤에서 소유물을 지키던 자들에게 돌려져야 할 그들의 분깃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 곧 그것을 자신들만 나누어 갖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

23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나의 형제들아' 이처럼 부름으로써 다윗은, 전쟁에 참여했던 자들이나 뒤에 남아있던 자들이나 다 한 아버지로부터 나온 같은 형제들이라는 공동체 사상을 불러 일으켰다.

'여호와께서...보호하시고...그 군대를...붙이셨은즉' 이것은, 다윗이 비류들의 제안(22절)을 부당하다고 판단했던 논리적 근거이다. 즉 탈취물을 얻을 수 있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탈취물의 처분에 대해서 왈가 왈부할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다윗의 생각과 행위는 (1) 전쟁의 승리는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2) 전리품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23절) (3) 따라서 전쟁에 불참했던 용사들도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같은 형제라는 연대 의식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 아래 모인 공동체는 '나눔'과'사랑'의 실천장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행 2:44-47). 한편, 여기서 '보호하시고...붙이셨은즉'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군대에게 금번 아말렉 전투에서 허락하신 모든 은혜를 통틀어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4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이 일에...너희를 듣겠느냐' 이것은 비류들의 제안(22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을 시사해 주는, 다윗의 거부적 반문(反問)이다.

25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이...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전리품 분배의 규례는 이미 광야 시절 모세 때로부터 있었다. 즉 당시 모세는 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여호와의 명을 좇아 노획한 전리품 중 절반은 싸움에 참전한 '군인들'에게, 그리고 절반은 진(陳)에 머물러 있던 '백성들'에게 분배하도록 하는 규례를 세운 바 있었다(민 31:27). 그런데 본절에서와 같은 다윗의 규례 제정은 그러한 광야 생활의 규례에 근거하여, 그 규례의 폭을 군인들 중 전투자와 비전투자 사이의 구별을 없애는 등, 확대 제정한 것이다. 한편 이같은 규례 제정은 앞으로도 이같은 경우가 매번 발생할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에,구속력을 지닌 구체적인 규범의 필요성을 느낀 결과였다.

'율례와 규례' 성경 다른 곳에서는 '규례와 법도'라는 말로도 번역된 단어로서, 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신적(神的) 명령이나 규범 등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 표현이다. 신 4:1 주석 참조.

'오늘까지 이르니라' '오늘'(하욤 하제)은 본서의 기록 시기까지를 가리키는 관용어구이다. 한편 '이르니라'는 다윗의 규례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여 계속 지켜졌음을 시사해 주는 말이다.

26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전리품을 그의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르되 보라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하고 

'탈취물을 그 친구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어' 이에 대한 해석은 다음과 같다. 즉 (1) '친구'와 '유다 장로'를 동격(同格)으로 보고, 그때 다윗은 유다의 많은 장로들 중에서 오직 친구들에게만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 
(2)'친구'와 '유다 장로' 사이에 접속사 '그리고'(웨)가 생략된 것으로 보고, 그때 다윗은 모든 유다 장로들 뿐만 아니라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 
(3) '친구'(레레에후, 문자적으로는 '친구에게')를 '성(城)에 따라'(레에레우)의 오기(誤記)로 보고, 그때 다윗이 유다 모든 성의 장로들에게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
(4) '유다 장로'는 모두 다윗의 '친구'였던 것으로 보고, 그때 다윗은 모든 유다 장로들에게 탈취물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NIV)등이 있다. 

그러나 26-30절을 보면 첫째, 특별한 성읍들을 언급함으로써 그때 다윗은 모든 유다 성읍의 장로들에게 탈취물을 준것은 아니며 둘째, 또한 다윗과 그의 일행이 자주 드나들었던 지역의 사람들을 특별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30절)에서, 위의 네 견해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아무튼 다윗이 이같이 선심(善心)을 베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자신이 비록 블레셋 땅에 망명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며, (2) 사울에게 쫓기는 동안 물심 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준 성읍의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며(30절), (3)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 앞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닦아 놓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독일의 주석가 크룸마허는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미구(未久)에 이루어질 '왕적 하사(下賜) 행위의 전조'로 보았다.

'여호와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 '여호와의 원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즉 (1) '여호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계약의 신실한 이행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명칭이며 (2)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라는 점에서, 곧 '여호와의 원수'는 이스라엘의 원수였다. 여기서 다윗은 자신의 선물을 바로 이같은 자들로부터 '탈취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1) 적지(適地)에서 망명 생활을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사랑하며 (2)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늘 함께 하셔서 자신을 승리로 이끌고 계심을 암시하고 있다.

'선사하노라(베라카)' 원문대로 직역한다면, 다만 '선물이다'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의 이 '베라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축복을 가리키는 명사로서, 특별히 '하나님의 축복(은총)의 선물'(a gift of blessing)이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은 바로 이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선물이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임을 분명히 시사하려고 한것이다.

27 벧엘에 있는 자와 남방 라못에 있는 자와 얏딜에 있는 자와 

'벧엘에 있는 자' 여기의 '자'(者)는 복수이다. 즉 이것은 한 성읍에 여러 명의 장로가 있었던 사실과 잘 부합된다(16:4). 한편 '벧엘'(Bethel)은 그 이름은 같으나, 오늘날 '베이틴'(Beitin)이라 불리우는 유명한 베냐민 지파에 속한 성읍(10:3)은 아니다. 이같이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1) 27-30절에 나오는 모든 성읍들이 유다 땅 남부에 위치하는 것들이며, (2) 당시 유다 지파의 선무(宣撫)가 시급한 다윗이 베냐민지파에게까지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벧엘'은 '호라마'와 '시글락' 근처의 '브둘'(수 19:4,5)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방 라못' 브엘세바(8:2) 남동쪽 약 30km 지점에 위치한 시므온 지파의 성읍으로 추정된다(수 19:8).

'얏딜' 에스드모(28절, 수 15:50)의 남서쪽 약 8km 지점으로, 유다 지파에 속한(수15:48) 제사장의 성읍이다(수 21:14).

28 아로엘에 있는 자와 십못에 있는 자와 에스드모아에 있는 자와 

'아로엘' 브엘세바 남동쪽 약 10km, 헤브론 남쪽 약 13km 지점에 위치한(대상11:44), 

'십못' 유다 남방(네게브)에 위치한 한 성읍 정도로만 알려질 뿐이다. 다른 사본들에는 '시브못'으로도 표기 되었다.

'에스드모아' 오늘날 '세무아'(Semuah)라고 하는 폐허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유다의 산악 성읍으로, 헤브론 남서쪽 약 16km 지점에 위치한다(수15:50, 21:14, 대상 6:57).

29 라갈에 있는 자와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겐 사람의 성읍들에 있는 자와 

'라갈' 이 성읍은 헤브론 남동쪽 약 11km, 에스드모아 북동쪽 약 6.5km 지점에 위치한 '갈멜'(25:2)로 추정되기도 하나, 확실치는 않다.

'여라므엘 사람의 성읍' '여라므엘 사람'은 유다의 손자이자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의 장자, '여라므엘'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듯하다(대상 2:4,5, 9). 이들은 브엘세바의 남쪽 지역(네게브)에서 살았다<27:10>.

'겐 사람의 성읍'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들로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안내자들이 되어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온 후 그곳에 정착하였다(15:6, 민 10:29-32, 삿 1:16). 이들은 유다 남방, 아말렉 사람들의 거주지 북쪽에서 거주했었던 것 같다<15:6, 27:10>.

30 홀마에 있는 자와 고라산에 있는 자와 아닥에 있는 자와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홀마' 브엘세바 동쪽 약 11km 지점이다(수 15:30). 이곳의 원래 지명은 '스밧'이었으나, 유다 사람들이 이곳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시킨 후 '진멸을 위하여 헌신된'이라는 의미의 이름인 '홀마'(Hormah)로 바꾸었다(삿 1:17).

'고라 산' 네게브 지방의 변두리에 위치한 세펠라 지역의 한 부분인 '아산'과 동일한 곳이다(수 15:42). 처음 시므온 지파에게 소속된 성읍이었으나(수 19:7), 후일 제사장의 성읍으로 지정된 곳이다(대상 6:59).

'아닥' 이 성읍은 헤브론 북서쪽 약 24km 지점에 위치한 시므온 지파의 '에델'(수15:42, 19:7)과 동일 성읍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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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헤브론에 있는 자에게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왕래하던 모든 곳에 보내었더라

'헤브론' 예루살렘 남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성읍으로(수 10:3), 일찍이 아브라함이 거주했던 곳이다(창 13:18, 23:1). 오늘날의 지명은 '엘 칼릴'(El- Khalil)인데, 그 뜻은 '벗' 또는 '친구'이다. 다윗은 나중에 이곳을 자신의 잠정적인 왕도(王都)로 삼았다(삼하 2:1-4, 5:3). 삼하 2:1 주석 참조.

'왕래하던 모든 곳'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피 생활을 하던 여러 지역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억울한 도피자 다윗에게 먹을 것과 숨을 곳을 은밀하게 제공하여 주는 등 분명 다윗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을 것이다(Fay).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본서의 기자는 이들을 다윗의 '친구'라고 기록하였다(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