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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6:8 노아가 심판하시는 하나님 눈동자에서 발견한 것

LNCK 2023. 3. 27. 21:05

노아가 '심판하시는 하나님 눈동자'에서 발견한 이것!   YouTube

◈노아가 심판하시는 하나님 눈동자에서 발견한 것       창6:8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여러분, 노아가 배를 만들었잖아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노아가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배 만들어라' 그래서 
평생 동안 배를 만들다가 자기 가족만 살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배(방주)에 안탔을까요? 

그때 지구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텐데, 왜 노아 식구만 방주에 탔을까요?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노아 식구 빼고는 다 죽였을까요? 
그런 고민이 우리에게 있잖아요. 

노아 시대 때, 여러분, 심판에 대한 경고가 있었을까요, 없었을까요? 
물론 노아가 심판을 외쳤죠. 그런데 노아만 외친 게 아니에요. 

노아가 살던 그 시대에, 누가 그 동네 최고 고령 할아버지로 계셨는가 하면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의 아버지가 에녹이에요. 

에녹이 왜 우리 성경인물 가운데, 구약에서, 그냥 안 죽고 들림 받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막 너무 너무 사모하는 믿음의 조상이시죠. 
에녹처럼 들림 받아 올라가고 싶어가지고요! 

그런데 에녹이 도대체 뭐 때문에 올라갔을까요? 죽음도 경험하지 않고! 
도대체 얼마나 믿음이 대단하길래, 
하나님이 정하신 게 죽음인데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올라간 분이 에녹입니다. 

여러분, 에녹이 왜 죽지 않고 올라갔나 하면요. 
아들을 딱 낳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주시는 거예요. 

'네 아들 이름은 므두셀라야!' 
그 말이 여러분, 심판의 경고장 이에요. 

'므두셀라'라는 이름의 뜻은 뭐냐 하면
'얘가 죽으면 이 세상은 심판이야' 이런 뜻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부족사회에서) 창을 들고 지키는 자' 라는 의미가 므두셀라인데  
*므두(man) 셀라(spear) : man of spear 

당시에 문지기, 파수꾼이 창을 들고 지키는 자가 없으면/ 만약 죽으면 
그 부족은, 다른 부족이 침입했을 때 다 죽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므두셀라)가 없으면(죽으면)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므두셀라의 이름의 원래 뜻은 '창 들고 지키는 자'인데 
의역하면, 므두셀라가 죽으면, 그 땅을 지키는 자가 없게 되잖아요.
그러면 심판인 거예요. 

그래서 에녹은 알게 되는 겁니다.
'아~ 내 아들이 바로미터구나. 하나님의 시간표의 바로미터'

얘가 죽으면 그날로 심판입니다. 
실제로 여러분, 볼펜 들고 창세기 연대표를 계산해 보십시오.
므두셀라가 죽는 해에, 홍수가 정확히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그러니까 지금 에녹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릴 때 아들 므두셀라가 클 때부터 바라보면서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얘가 넘어져 죽으면, 세상에 그날로 심판이 임하는 거예요. 
애를 키우는데, 그 애가 언제 죽을지 알 수가 없잖아요.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거에요. 

세상을 향해서, 열방을 향해서, 자신의 가정을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그러니 여러분, 날마다 에녹은 시선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을까요? 

'자기 아들이 오늘도 살아있나/ 죽었나?' 
자다가도 눈만 뜨면 '얘가 지금 숨 잘 쉬고 있나?
얘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임하는데?' 

그러니 여러분, 에녹은 각성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의 시선이 
세상에서 비즈니스, 결혼, 농사 일 등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오직 에녹의 시선은 어디에만 계속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느냐 하면
'아들 므두셀라가 지금 살아있나/ 안 살아있나?' 그것만 주목해 보는 거죠. 

왜냐면 얘가 하나님의 심판의 바로미터 라니까요!

그러니까 에녹의 시선이 다른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는 거에 딱 머물러 있으니까 
깨어 있을 수밖에 없죠. 기도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아들 므두셀라 낳고 동행하는 겁니다. 

자기 아들의 이름 뜻이
'그 당시의 시대적 종말의 싸인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으니
에녹이 어영부영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죠. 
정신 바짝 차려 신앙생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종말을 늘 염두에 두면서, 매일 하루 하루를 살았으니까요!

그러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주님께서 '야, 이리로 올라와!' 해서 
에녹을 데려가신 거예요. 


그리고 나서 구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이 므두셀라죠. 
무려 969세를 산 거예요.
그 동안 세상에 오래도록 심판을 지체하신 거예요. 늦추신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야~ 내가 너희들에게 기회를 줄 텐데,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심판이 작정되었거든.. 회개할 기회를 줄 텐데, 언제까지 주느냐? 
구약에서 최고로 오래 사는 사람이 므두셀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심판을 늦게, 오래도록.. 늦추신 거죠.

(므두셀라가 187세에 라멕을 낳았고  ... 187년 경과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으며 .. 누계 369년 경과
노아가 600세에 홍수가 났습니다.   누계 969년 경과
즉 므두셀라를 기준으로 연대를 계산하면, 그의 969세 때 홍수가 난 거죠.

이 때는 그가 사망한 해인데, 사망 시점이 홍수 전이겠죠.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임한다..고 해서 홍수가 터졌으니까요!)

그런데 므두셀라가 심판을 외쳤을까요, 안 외쳤을까요? 
그 당시의 그는 시대적인 메신저인데 
자신의 이름 자체가 예언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런데 노아가 태어났네요. 
노아가 여러분 므두셀라와 동시대에 살아갑니다. 600년을 같이 삽니다.

므두셀라 할아버지가 369세 때, 손자 노아가 태어나가지고 
600년 동안 그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쭉 살아가는 시대를 경험하는데 
여러 사람들이 다 들었을 거 아니에요.

에녹이 하늘로 부름받아 올라간 얘기도 들었을 거고 
므두셀라가 외치는 하나님의 경고도 들었을 거고... 

그런데 노아 외에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당시에! 


지금 하고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세요. 

그런데 사람들은 재림에 관심이 없어요.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 재림'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거예요.

지진이 나도.. 핵폭탄 실험 소식이 터져도 
금융위기가 오고.. 별별 일이 다 터져서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이게 다 주님이 오신다 라는 싸인인데 

그때 당시에도 그랬다는 거죠.
'므두셀라 할아버지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데...
저 할아버지 죽으면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그랬는데... 
저 할아버지 벌써 팔백 살 넘게 살고 있어... 저 할아버지는 죽지도 않아!

세상에 심판이 안 오는 것인지...
아니면 저 할아버지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말이 거짓인지...'
사람들이 이러고 방만하게 살았다는 거죠.

오직 노아만 방주 짓기에 열심이었다는 거죠.
노아에게 하나님이 '방주를 지어라'고 말씀하신 소스도 있지만, 

또 다른 소스를 추정하자면
노아만 '므두셀라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는 예언을
귀담아 들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저렇게 종합하면,
므두셀라는, 홍수가 나기 전에 죽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가 죽고, 세상에 (홍수) 심판이 임했으니까요!


사람들은 그저 세상 종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하고 
다 그냥 자기 할 일 바쁘게 살았던 거예요. 그 당시에도! 
근데 노아는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창6:8절에 개역개정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오해를 하는 게 
'노아가 은혜를 입은 게 하나님이 절대 주권이구나!' 

맞아요. 절대 주권이 맞는데 
그냥 노아는 제 마음대로 살았는데 
어느 날 운 좋게 하나님께 로또처럼 걸린 거예요. 
그냥 하나님의 은혜로, 노아가 노아 되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거예요.
왜냐면 '노아가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구절 때문에.

물론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죠. 
그런데 여러분, 이게 약간 번역이 조금 잘못된 번역이에요. 

원어는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게 아닙니다. 
KJV 가 정확하게 번역했는데, 이렇게 했습니다.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무슨 말입니까? 노아는 그냥 은혜를 입은 게 아니라 
'하나님의 눈동자에서 은혜를 발견한 자더라' 

이게 좀 전과 의미가 완전 다르죠. 
한글 성경은 노아가 수동태적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은 노아를 주어로 하는 능동태 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능동적으로 발견했어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했어요.

노아는 하나님 눈동자를 만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노아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거에요. 

그 당대에 므두셀라를 보면서 
'저 할아버지는 늙어서 지금 죽어가는데 
야 진짜 하나님의 심판이 이제 가까운데 
이제 내가 기도 해야 되겠다. 예배해야 되겠다. 
나 주님 앞에 기도로 집중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노아는 세상 종말을 앞두고 기도했던 거예요. 

하나님이 그 당시에 온 세상을 살펴봤는데 
그 당시에 아무도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는 거예요. 

오래 전에 므두셀라를 세워놓고 '그가 죽으면 세상에 심판이 온다'라고
예언을 주신 이후에,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아무도 세상 종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거죠.
노아만, 하나님의 눈을 응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간구한 거죠.

그 당시에 여러분 네피림들이 나와가지고 
막 혼합된 족속들이 출현해 가지고 
위세를 떨치던 그 골치아픈 시대에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죠.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씨를 지켜야 돼'
'오염되지 않은 여인의 후손을, 하나님이 창조한 씨앗을 지켜야 돼!' 

그걸 지켜야 되는데 
당시에 사람들이 거기엔 관심이 없는 거에요. 
노아 외에는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어요. 예배하는 자가 없어요. 

그냥 네피림처럼 그 땅에 영웅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만 설치고 다녔어요.
'나는 이 땅에서 성공하고 싶다. 이 땅에서 잘 되고 싶다. 
여기서 뭘 한번 누려보고 싶다...' 다 이런 마인드로 살고 있었어요.

그냥 므두셀라가 늙어 가는데도, 죽을 때가 가까워 가는데도 
인간들이 간이 부어가지고 관심이 없는데 
노아는 희한하게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거에요.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들도 보세요. 
전 세계에 많은 한국인들이 있는데 
지금 안 바쁜 사람이 누가 있어요?

지금 사천칠백육십 명이 전 세계에서 이걸 보고 있는데 
안 바쁜 사람이 누가 있냐고요?
이 오전 시간이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인데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선택하신 거에요. 뭘 선택했느냐?

'내가 지금 이 시즌에,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게 뭘까? 
내가 뭐 은행 빚도 갚아야 되고, 이자도 갚아야 되고, 
일도 해야되고, 공부도 해야 되고, 뭐 이것저것 할 게 많은데 

그래도 내가 금년 3윌에 내가 노아처럼 한 번 기도해 보자.
주님의 재림을 한 번 기다려보자!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에 모이시고, 또 온라인으로 들어온게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도 주님을 찾지 않던 그 시대에,
노아가 주님의 얼굴을 찾았다는 거예요.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후에)

막 주님을 찾다보니까, 어느 날 주님을 만난 거예요. 인격적으로! 
노아가 주님의 눈동자를 봤어요. 
그런데 주님의 눈동자에 뭐가 있느냐? 러브가 있는 거예요. 
그레이스가 있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굉장히 이상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눈동자에 "심판"이 있어야 돼요. 
그 시대를 향한! 

노아가 하나님의 눈을 딱 뵈었는데 
심판에 대한 경고의 그 위기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눈을 보니까 
막 이 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이 세상을 내가 다 죽여버려야 되겠다!'

이런 눈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주님의 눈동자를 아이컨택을 해서 딱 보니까 
주님의 눈동자에는 의외로 사랑이 있는 거예요. 

너를 향한 은혜! 너를 향한 그 뜨거운 사랑, 
절대 포기하지 않는 주님의 그 뜨거운 사랑! 
그래서 노아는 순종해서 
믿음으로 방주를 짓기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방주를 보면서도 손가락질하는 거에요. 
왜요? 
그들은 '하나님 눈동자를 안 만나봤기 때문에' 모르는 거예요. 
노아의 그 마음을... 그래서 노아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거죠. 

그런데 므두셀라가 딱 죽는 날! 
기가 막히죠. 여러분, 방주 문이 닫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고 오래 참으시는지
여러분 므두셀라를 최고로 오랫동안 살려주신 거예요. 

숨 넘어갈 것 같으면 주님이 붙잡고 계신 거예죠. 
'므두셀라야, 조금만 더 숨 쉬어! 내가 기다려야 돼!' 

주님의 눈동자는 사랑이니까요! 
그 오랜 기다림가운데 주를 찾는 자를 기다리고 계셨던 거예요. 

그런데 온 지면을 살펴봐도 노아 한 명인 거예요. 
예배하는 사람이! 

노아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딱 만나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그레이스를 발견한 거예요. 

그리고 사십일 밤낮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그 심판의 폭우가운데 
노아는 그 하나님의 눈물을 봤겠죠. 

므두셀라를 태어나게 하신 후에 969년 동안을 참으시고 
인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거룩한 씨를 보존하기 위해서, 여인의 후손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아(우리) 가정을 방주에 태우시고 
이 세상을 지면가운데 쓸어버리실 수밖에 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눈물! 

어떤 겁니까? 아빠가 애를 때리는데 
아기들이 철이 들면, 부모의 눈에서 사랑을 본단 말이에요. 
부모가 날 때린 이유가, 사랑해서 라는 거를 보는 거죠. 

하나님이 지구를 다 때리고 계시는데 
노아는 거기서 하나님의 눈물을 보는 거죠.
노아는 주님의 눈을 보면서, 그 속에서 은혜와 사랑을 발견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