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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28~29장 다윗의 위험한 블레셋 망명 생활

LNCK 2023. 3. 29. 15:48

◈다윗의 위험한 블레셋 망명 생활             삼상28~29장           설교녹취

◑배경 설명 및 삼상27장 복습

많은 사람들은, 자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념을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서 색깔 바꾸는 사람들을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우리 안에 원칙주의자기회주의자가 
둘 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정말 원칙 있고 신념이 있는 분들도, 힘든 상황에 몰리게 되면 
평소에는 절대 안 하겠다고 하던 현실과의 타협을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고통스럽습니다. 

블레셋 망명생활을 하는 다윗이 그랬습니다. 
27장에 보면, 다윗이 부하들과 그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블레셋으로 망명 하죠. 

거기로 가야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8년이 넘는 도피생활 동안에 하나님이 그토록 다윗을 철저하게 지켜 주셨건만,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미래를 축복하시는 믿음의 (예언의) 말씀들도 주셨건만 
다윗은 결국 사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광야 도피생활 말기에 '블레셋 망명' 이란 정말 악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다윗 나름대로는 자기가 몸도 책임져야 되고, 식솔들의 안위 문제도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어쩔 수 없이 내렸었겠죠. 

그러나 이 중대한 문제를 제대로 기도해 해보지도 않고 
'두려움에 근거해서' 결정한 것은 다윗의 크나큰 실수였어요. 27:1

블레셋은 결코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 왕 아기스는, 이전에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몰살시켰던 
자기들 입장에서 볼 때 원수라도 같은 다윗의 망명을.. 선뜻 받아주었습니다. 

아기스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1) 블레셋은 이제 곧 이스라엘과 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때 사울왕의 라이벌인 다윗을 도와줌으로써 
이스라엘 안에 내분이 일어나게 하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2) 더 나아가서, 다윗과 다윗의 반란 세력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가 
훗날 전쟁 때 이들을 용병으로서, 블레셋 군대의 최고 선봉에 세우려는 
계산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이스라엘군의 영웅이었던 다윗이 블레셋의 선봉장이 된다면 
이스라엘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것이고
반대로 블레셋 군은 엄청나게 사기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과 아기스는 서로에게서 원하는 게 각자 하나씩 있었어요. 
다윗에게는 당장 사울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했고 
아기스 왕에게는 사울과의 전쟁에 있어서, 용병 다윗의 선봉부대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순전히 각자 필요에 의해서 손을 잡은 
불안한 오월동주 같은 그런 동맹을 맺어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의 수도가 아닌, 남쪽 국경지역에 시글락에 근거지를 두고 살게됩니다. 

시글락은 다윗에게 제대로 된 물자를 공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급자족 하기 위해서 국경지역의 마을들을 약탈 합니다. 

그는 국경지역의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있는 부족들 
그술, 기르스, 아말렉 마을들을 차례로 약탈해서 
사람들은 다 죽이고 물자만 챙겨서 갑니다. 

(사람들을 다 죽인 이유는, 증거 인멸을 위해서였죠.
다윗은 이 일로 인해, 나중에 하나님께 책망 받습니다. 대상22:8)

그리고 아기스 왕 앞에 가서는 
우리가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과 친한 부족 마을들을 공격했다고 속였죠. 27:10 

그 당시 인공위성 사진이나 스파이캠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만 다 죽여 버리면 증거인멸이 완벽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기스는 그대로 속아서 '아 다윗이 이제는 이스라엘 부족과 
철천지 원수가 되겠구나.. 이제는 완전히 내 사람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16개월 동안의 블레셋 망명 기간을 
비교적 안전하게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불안한 평화는 결코 오래가지 못 합니다. 
이 기간 동안 다윗이 육체적으로는 안전했을지 몰라도 
그는 영적으로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들어간 것은, 영적 암흑지대로 들어간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예배자 다윗이, 하나님과 교제의 시그널이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고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예배가 없이, 기도가 없이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 정말 힘든 것입니다.

구약학자들은, 다윗이 블레셋 땅에서의 16개월의 망명생활 동안에 
단 한 편의 시편도 쓰지 않았음을 지적합니다. 

찬양의 사람 다윗이, 예배의 영이 죽어버렸습니다.
찬양의 샘이 메말라 버렸습니다. 

어둠의 권세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안에 있는 예배의 열정을 죽이려 합니다. 
어둠의 권세가 다스리는 땅에 들어가면, 정말 제대로 예배하기 힘들죠. 

예배가 흔들리니까, 다윗의 인생이 피폐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옛 사람의 모습들이 마구 튀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잠깐 살기 위해서 블레셋으로 도피한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망명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 보니까 
점점 자기도 모르게 블레셋 사람들처럼 변해갔습니다. 동화되어 갔죠.   

다윗이 그곳에 있으므로 블레셋이 성화 된 게 아니라 (전도한 게 아니라) 
다윗이 세속화되어 버렸습니다. (전도를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과 가치관에 점점 블레셋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습니다. 
1) 첫째로 진실된 사람 다윗이 거기 가니까 거짓말을 하게 되었어요. 
전에는 그토록 블레셋과 담대히 싸웠던 다윗이 
블레렛 왕 앞에서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27:5
라고 말합니다. 

물론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이죠. 하지만 그 거짓말을 시작해서 
다윗이 국경지역에 마을들을 약탈 하면서 
블레셋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마을들을 약탈 했다'라고 거짓말을 하죠. 27:10

한 번 거짓말 하니까, 2번 3번 계속 거짓말을 해야 
첫 번째 거짓말을 백업을 할 수가 있어요.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별로 안 좋아도 괜찮습니다. 
항상 떳떳하고 평안하고 당당 할 수가 있는데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은 기억력이 비상 해야 됩니다. 
그래야 과거에 했던 거짓말이 흐트러지지 않게 되죠. 

나는 항상 비밀이 많고, 눈치를 보게 되고, 초긴장상태로 살아야만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살았어요. 

2) 또 다윗은 인자한 사람이었는데, 증거인멸을 위해서 
민간인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학살하는 
사실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물론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적들이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자기를 정당화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스라엘의 대적들이지만 *그술, 기르스, 아말렉  27:8~9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그런 끔찍한 학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죠. 

그런데 다윗 안에서 그런 괴물이 막 튀어 나오는 거에요. 

3) 셋째로 다윗은 자기도 모르게 물질주의자로 변해 갔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식솔들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작된 약탈이었는데 
나중에는 아기스왕 에게 전리품을 바치고도 남을 정도에 물자가 됐어요. 

그리고 다음 주에 나오지만, 그러고도 남아 가지고 
많은 물자를 자기들의 근거지 시글락에 쌓아둔 바람에 
아말렉한데 약탈을 도리어 당할 정도가 되어 버렸어요. 

처음에는 먹고 살 수만 있으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한 약탈전이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비축해 둬야 된다는 욕심으로 바뀐 거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돈 욕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아요. 
다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감사하겠다...' 그러다가 
돈 맛을 보고 나니까, 필요 이상으로 쌓아두게 되고 
서서히 '이제 나를 지켜 줄 것은 돈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가게 되는 거죠. 

거짓말과, 폭력과, 황금만능주의 근성..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는 블레셋 인들이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너무 쉽게 환경의 노예가 된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블레셋 세상에서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자기도 모르게 "블레셋 화" 되어가고 있었어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보면 똑같아요.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서 잠시 블레셋에서 괴물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가... 

하나님한테 한 다리 걸치고, 세상에 한 다리 걸치고 
잠시 이중생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지금 블레셋 사람인 척 하는 거지 
진짜 블레셋 사람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지킬 박사가 어떻게 무너집니까? 
왔다 갔다 하다가, 자기 스스로 이중성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잖아요!

극심만 정체성의 혼란이 다윗에게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누구지?' 하고 괴로워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렇게 이중적으로 삽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상 사람인 척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 
다니엘처럼 거룩한 백성으로 우리를 차별화해야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하던 다윗을.. 이렇게 거짓말 잘하고, 폭력적이고, 물질주의자가 되도록 
서서히 유도한 것은 바로 블레셋 왕 아기스 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다윗을 이용할 목적으로 망명을 허락했습니다. 
여러분, 마귀가 100% 주는 손길과 
하나님 아버지의 품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가면, 무조건적인 은혜이지만
마귀는 모든 것을 청구서를 달아서, 반드시 우리에게 비싼 이자 붙여서 들이밉니다. 

블레셋 왕이 그랬어요. 아기스는 다윗의 망명을 받아 주었지만 
먼 남쪽 국경도시 시글락에 갖다 놓고, 보급물자를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이야면 
'다윗 네가 알아서 주변 마을들을 약탈해서 자급자족할 하라'는 거죠.

그러면서도 다윗한테 꼬박꼬박 진상품을 받아 챙겼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어디를 침노 했느냐?' 27:10
이 말은 계속 침노하라는 거죠.

그러면서 약탈하는 다윗을 격려해주고 칭찬해 줬어요.
약탈자로 변한 다윗은, 블레셋 왕의 격려와 칭찬을 받았지만 
그게 어디 좋아할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이 마귀의 격려와 인정을 받아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런 잘못 살고 있다는 뜻이지요. 

다윗은 망명 초기에 아기스왕 에게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말했죠. 27:5
이 말은, 그 환심을 살기 위해서 거짓말한 것이었지만 

오직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해야 될 다윗의 입에서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습니다.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거짓으로라도 하나님의 자녀의 입술에는 권세가 있어서
그 말을 뱉는 순간,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주인은 섬기겠다는 말을 뱉는 순간 

아기스는 다윗의 그 말을 딱 빌미 삼아서
다윗을 진짜 자기의 종으로 부리려고 했습니다. 

다윗의 망명을 받아줘서, 사울의 추격으로부터 보호는 해주었지만 
꼬박꼬박 다윗에게 월세를 받아 챙겼어요. 

블레셋식 가치관으로 살게끔, 계속해서 다윗을 몰아간 것입니다.
이건 조폭두목이, 갈 데 없는 가출청소년을 받아 주었다가 
결국  그를 나중에 부하로 이용해 먹는 것과 똑같은 그런 수법이죠.

우리가 누군가를 주인으로 불렀으면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악한 주인을 선택했으면 
악하게 살 수 밖에 없어요.

아기스의 환심을 살기 위해서 
다윗은 약탈과, 폭력과, 거짓의 삶을 계속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적 암흑지대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교재가 거의 끊어지다시피한 다윗은
속수무책으로 아기스의 악한 리더십에 휘둘렸습니다. 

그는 잠시 살아남기 위해서, 자기가 아기스를 이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교활한 아기스가, 다윗을 이용하고 있었던 거예요. 

아기스는 다윗에게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그가 예전에 골리앗을 물리친 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호의적인 것은
다윗을 이용할 가치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서서히 다윗을 서서히 "블레셋화" 시켜 갑니다.
약탈도 시키고.. 거짓말도 하게 하고.. 
그리고 결정적인 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공격하는 선봉으로 세우려고 
그를 계속 어쩌면 키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이 자칫 잘못하면 다윗같이 이렇게 마귀에게 휘둘릴 수 있어요. 
진심은 아닌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세상 권세를 잠시 주인이라고 부르면서 그의 환심을 사려고 합니다. 

마귀는 이걸 다 알면서도 받아줍니다. 
'그래 궈 교회도 다니고 나한테도 충성해라'
피난처를 제공합니다. 어느 정도 성공도 맛보게 해 주겠죠. 

그러면서 서서히 세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우리를 물들여 갑니다. 
그러면 처음에 우리가 연기만 하다가.. 마귀 편인 척만 하던 것이 
진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이 되어버려요. 

예배의 끈이 약해서 버린 영적인 암흑지대에 있으면
하나님의 사람도 점점 세속화 되어 가고 
자기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가지요.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중적인 삶을 괴리감을 
우리는 결국은 극복할 수가 없고 
어느 순간에는 더이상 그렇게 살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치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다

다윗에게 그 순간이 왔어요. 
삼상28:1 '그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블레셋 군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 군대를 정비합니다. 
이때까지 국경지역에서 크고 작은 국지전이 많았지만 

지금 본문은 블레셋의 모든 병력이 총동원된 
적어도 몇 만 명이 대군이 동원된 가장 큰 규모의 전면전이 시작되었어요. 

그러면서 아기스는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차출해서 
'너희들이 선봉에 서 줘야 되겠다' 하고 요구한 것입니다. (본문에 선봉에 서라는 말은 없지만, 당시 외국 용병 군대는 항상 가장 위험한 선봉에 섰습니다. 지금도 그러하죠)

블레셋 왕은 이전에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궤멸시켰던 다윗의 용맹성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블레셋이 이런 전면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다윗이 이스라엘의 진중에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사울은 매국노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쪽에 있었기 때문이었죠. 
마치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없는 조선 수군을 공격하는 것과 똑같은 거였죠.

그런데 블레셋 아기스의 참전 요구는, 다윗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죠.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28:2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그러면 당신의 종이 행할 바를 아시리이다 하니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그러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 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선봉장이 되어서 참전하면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피를 흘려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는, 다윗의 적이 아니었거든요. 
만약 블레셋 군대의 선봉이 되어서 나온 다윗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쫙 보면, 그 때는 모든 것이 끝나는 거예요. 

훗날 사울 죽고 난 뒤에, 그 어떤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섬기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블레셋에 몸을 맡긴 망명객이
아기스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어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다윗은 말합니다. 
'왕이여, 당신의 종이 행할 것을 아시리이다' 28:2

다윗은 아주 애매한 말로, 자신의 곤혹스러운 심정을 대변하는데 
블레셋 왕은 '다윗이 나한테 무슨 확실한 보상을 원하는가?' 싶어서 

'그래? 네가 나와 함께 참전해서 공을 세우면 
내가 너를 영원히 내 머리 지키는자, 즉 내 시위대장의 자리를 보장하겠다. 
너는 최고의 권력을 누릴 것이다' 이런 상을 딱 약속하는 거예요. 

만약 다윗이 하나님을 모르는 일반 정치망명객이었다면, 
이거는 뭐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그냥 붙잡아야 돼요. 

그런데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이잖아요. 
하나님이 기름 부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사자가 썩은 고기를 먹겠습니까?
하지만 당장 블레셋 왕의 요청을 거절하면 지금 죽을 판입니다. 
하지만 나가 싸우면, 나중에 죽을 판입니다. 
이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다윗은, 참으로 곤혹스러웠을 것입니다. 

 

▲사실 일이 이 정도까지 이르게 된 것은, 다윗 자신의 책임도 커요. 
이때까지 국경지역의 (그술, 기르스, 아말렉) 부족들을 약탈 하면서 
사실은 이스라엘 부족들을 약탈했다고 거짓말 해 왔잖아요. 27:10

그러니까 블레셋 왕은 그 거짓말을 16개월 동안 들어오면서 
'아 그 많은 이스라엘 부족들을 약탈하고 죽였는데 
이제 전면전에서 내 앞에 선봉장이 되는 것 쯤은, 문제가 아니겠지?' 
라는 결론에 도달한 거예요. 

여러분, 마귀는 항상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를 소리 없이 무너뜨려 나갑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했던 작은 거짓말, 작은 타협들을 
마귀는 차곡차곡 다 쌓아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나 큰 청구서를 우리한테 들이미는 거예요. 
파멸의 선택을 하게끔 유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죄라도.. 마귀의 빌미가 될 만한 것을 
쌓아두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모든 병력을 투입해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준비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일단 싸우든/ 안 싸우든 
부하들을 모두 무장시켜 가지고 전쟁터로 출정해야만 했습니다. 

전쟁터에 가면서 다윗도 참 마음이 괴로웠을 거에요...
 
그런데 이때 뜻밖의 돌파구가 다윗에게 열립니다. 

 

29: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5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하니'
 
아마 블레셋 왕 아기스가, 방백들과 의논하지 않고 일단 전쟁터로 
다윗을 데리고 나간 것 같죠. 거기서 무장한 다윗을 보는 순간,
모든 블레셋 방백들이 기절했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냐? 그 옛날 우리의 자랑했던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아니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이라고 하던 
현재 사울 왕보다 더 존경하던 이스라엘의 군사적 영웅이 아니냐? 

저 사람이 만약에 전쟁터로 나가서, 칼을 뒤로 향하여 들이 대면 
우리 군대는 궤멸되고 말 것이다.' 

이 걱정이 괜한 게 아니었던 것이, 오래전 사무엘상 14장에서 
요나단이 이끌던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격돌했을 때 
그런 상황이 벌어졌던 과거가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가 고용했던 히브리 용병들이 
칼끝을 뒤로 돌리는 바람에, (블레셋을 배신해서 도로 공격하는 바람에)
블레셋 군대가 굉장히 빠르게 무너졌던 경험이 있었어요. 

(14:21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하던 히브리 사람이 
사방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진영에 들어왔더니 
그들이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하였고)

그런데 만약에 딴 사람도 아닌, 천하의 다윗이 그렇게 한다면 
블레셋은 처음부터 무너질 거라는 걸.. 방백들은 염려했어요. 

그리고 그 당시 블레셋은 중앙집권 정치체제가 아니라 
5개 도시국가들의 연합으로 형성된 나라였어요. 

그래서 블레셋 왕이 전체를 대표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이 5명이 도시 국가대표들의 결정을 거스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기스는, 방백들이 워낙 거세게 나오니까 
다윗을 출전 시키겠다는 의지를 거두고 만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기가 막힌 결정이었습니다.

28:6~7절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내게 온 날부터 오늘까지 네게 악이 있음을 보지 
못하였으니 나와 함께 진중에 출입하는 것이 내 생각에는 좋으나 
수령들이 너를 좋아하지 아니하니
7 그러므로 이제 너는 평안히 돌아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수령들에게 거슬러 보이게 하지 말라 하니라'

와~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진 고민하던 다윗에게
그 고뇌가 한 큐(싸인)에 해결되어 버렸어요. 

그것도 다윗이 한 게 아무 것도 없고 
블레셋 방백(수령)들 의견 다툼으로.. 어부지리로 이렇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블레셋 방백들이, 다윗을 이 고난에서 빼 주기 위해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에요. 

첫째로 그들은 다윗의 배신을 의심했고 
둘째로 그들은 블레셋 왕이 다윗을 너무 총애하는 것을 질투 했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배신하지 않고, 큰 전공을 세우면, 이것은 더 큰일이에요. 
앞으로 다윗이 블레셋 왕의 절대 신임을 받는 오른팔이 되어서 
그가 자기들 위에 설까봐.. 그게 또 걱정인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다윗에 대한 의심에다, 
플러스 다윗에 대한 견제 심리..
이게 다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다윗을 출전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된 거죠.

과정이 어찌 됐던 간에, 이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다윗은 정말 자기 힘 하나도 안 들이고, 사지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저지른 일을 수습하고 덮어 주시는데 전문가이십니다

블레셋을 위해 싸울 수도 없고, 안 싸울수도 없는 위기에 몰린 다윗을
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도와주셨습니다. 

 

악한 블레셋 방백들의 정치적인 복잡한 동기들을 통해서 일하셨어요. 
너무나 놀라운 일이죠. 

우리가 노력해서 일이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지금 노력해도 안 될 때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그런 위기에 처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는 인맥도 도움이 안 되고, 너무나 무기력한 그런 상황 인데 
그 사태가 그 모양이 된 데는, 여러분도 책임이 있어요.

이럴 때 일수록 잠잠이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아멘 

 

살기 위해서 기도 한번 안 해 보고   27:1
약속의 땅을 떠나 블레셋으로 망명했던 다윗!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동족을 치는 전쟁의 앞잡이가 되어서 그런 끔찍한 상황, 그런 최악의 상황은 
막아주셨어요.

여러분, 우리가 살기 위해 잠시 하나님을 버렸어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주를 떠나 땅끝까지 가서 거할지라도, 주님은 거기 계십니다. 
영적 암흑지대에서 살아 남느라고, 우리가 아기스의 눈치를 보며 세속화
되어 가고 있었을 때도,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을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의 미래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최악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막아 주신다는 거지요. 

▲중요한 것은, 다윗이 이때부터 하나님의 개입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렸습니다. 

만약 아기스의 참전 요구를 받았을 때, 
다윗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거기를 빠져 낳으려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윗이 그 자리에서 No! 그랬다거나 
아니면 밤을 새워서 부하들과 몰래 탈출하려고 했다면 
비극이 일어났을 겁니다. 

다윗은 절대 블레셋 편에 가담해서, 전쟁의 나가선 안 된다는 걸 알았지만 
자기가 인간적인 수를 써서 그 위기를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길을 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다면, 
내 힘과 노력으로 거절할 수 없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거예요. 

7절에, 블레셋 왕은 다윗에게 '너는 평안이 돌아가라'고 합니다. 
기가 막힐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블레셋 왕이 대행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하나님이 지키실 때 
하늘의 평안을 우리는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블레셋 왕은 이스라엘에서 상처받은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려고 했어요. 

상처가 변하여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위기였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셨어요.

비록 하나님을 버린 지도자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이었어요. 

'조국은 나를 버렸어도 나는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말처럼 
다윗은 결코 이스라엘에 칼을 겨누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면초가의 상황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이 절대 넘어서는 선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공격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었어요.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상황을 막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무너뜨리는 것이, 블레셋의 궁극적인 목표였던 것처럼 
마귀의 궁극적인 목표는, 교회를 공격해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 방법을 사용하지만 
마귀가 특히 잘 사용하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영적으로 상처받고 병든 다윗 같은 사람들을 이용하는 거에요. 

 

△마귀는.. 교회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 시험 든 사람들을 부추겨서 
타락시키고, 세속화시키고, 마음을 사납게 만들어서 
칼의 방향을 거꾸로 돌려서 교회를 공격하게 합니다. 
교회를 비판하게 하고, 분열시키는 거에요. 

지금도 보면 가장 앞장서서 한국교회를 문제를 지적하고 공격하고 있는 분들은 
불신자들이 아닙니다. 과거에 한 때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회에서 상처를 입었던 분들이 
앞장 서서 교회를 공격하고 있어요. 

그러나 교회가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아무리 교회에서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우리는 교회를 공격 하는 칼이 되어서는 안 돼요. 
형제들끼리 분열하고 대립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교회라 해도, 우리는 사랑해야만 합니다. 

교부 터툴리안 이나,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한 성도는,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나병환자 라고 해도, 나는 내 어머니를 사랑할 것이다'라는 한 싯구처럼 
교회가 여러 가지 아픔과 문제가 있죠. 그래도 우리는 교회를 지켜야 해요.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함부로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를 박차고 떠나면 안 돼요.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죄인된 교회 구성원인 우리들 때문이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때문에 아닙니다. 

교회를 공격하면, 예수님이 가슴 아파 하세요. 
예수님은 완전하십니다. 그 분이 머리이시기 때문에 교회는 소망이 있는 거예요.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머리이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있으면 
주님께서 고쳐 나가십니다. 

이스라엘을 병들게 다스렸던 사울은 
주님의 때에, 주님이 심판 하셨지 
결코 다윗을 통해서 사울을 죽이게 하지 않으셨어요. 

교회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직접 다루십니다. 
세상 권세 앞에 선 다윗을 통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은 이 위기를 넘겼어요. 할렐루야! 
그래서 이제 그 죽음의 전쟁터에서 부하들을 거느리고 터벅터벅 
시글락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다음 주 설교에서 계속되지만 
시글락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이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돌아옵니다.

전장터 아벡에서 돌아오면서 다윗은 만감이 교차 했을것입니다. 
블레셋 땅에서의 16개월의 망명 생활이 주마등처럼 
다윗의 뇌리를 스쳤을 것입니다. 

푸른초장이 아니라 끝없는 지뢰밭이었어요.
항상 감시의 눈이 사방에서 번뜩그려서
긴장을 풀 수 없는 것이 바로 블레셋 땅이었습니다. 

블레셋 왕의 비위를 맞추기 해서 발버둥 치다 보니까 
다윗은 자기가 괴물이 들어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었어요. 

막 거짓말하고, 약탈하고, 살인도 서슴치 않는 괴물의 모습! 
이건 결코 다윗이 아니잖아요. 

결정적으로 하마터면 블레셋 군대의 앞잡이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할 뻔했어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예배 하며 살았던 다윗은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 고통의 멍에를 어떻게 벗어버리는 거지?'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되지?' 
'내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잘 하게 되었지?' 

'내가 언제부터 사납고 폭력적인 사람이 되었지?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 였는데... 
나는 하나님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이었는데..' 

'왜 살기 위해서 블레셋의 진영에 와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거지?' 
'내가 그들의 비위를 맞추다가, 그들의 방식대로 살게 되었네!'

'여기는 내 자리가 아니야, 
내 자리가 아닌 곳에서 있다 보니까, 내가 이렇게 망가진 거야. 
나만 망가졌나? 
내가 데리고 온 식솔들도 목숨은 부지하고 했지만 
다같이 영적으로 비참해졌어!'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런 생각이 이제 다윗에게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만약 오늘 여러분 중에, 다윗과 같은 심정인 분들이 있다면 
오늘의 설교는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살기 위해서 블레셋 땅으로, 영적 암흑지대로 잠시 들어갔었는데 
거기서 정신없이 세상과 타협하다가, 
예배가 끊어지고, 세속화 되면서, 신앙과 생활이 망가져 있다면 
더 이상 그 고통의 멍에를 지고 살지 마십시오. 

더이상 세상과 하나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지 마십시오. 
이것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일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한번도 여러분을 기다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오늘 영적 암흑지대를 떠나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결단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