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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장 사울 왕의 최후가 주는 교훈

LNCK 2023. 3. 31. 16:03

◈사울 왕의 최후가 주는 교훈        삼상31장           사무엘상 

◑1. 나도 사울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마칠 수 있습니다

1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망 하다가/ 엎드려서/ 죽었다. 
이 3가지 동사로 그들의 운명이 증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버리신 왕 사울!
이스라엘 사람들은 왕을 세우면 
열방이 자기들을 공격할 수 없고 
왕이 있으면 든든할 거라고 생각하고서
인간의 뜻으로 세웠던, 인간의 욕심으로 세운 왕은 
이토록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2절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

2~3절에는, 이스라엘의 수많은 장수들의 이름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본문은, 오직 사울과 그 아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이스라엘이 왜 졌는가?
사울과 그의 가문 때문에 졌다.. 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왕조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조는, 인간의 욕심으로 세워진 왕조입니다. 
인간의 요구와, 인간의 바램으로 세워진 인간의 왕조입니다. 

인간이 세운 왕조.. 그 결말과 끝이 너무너무 비참하다는 거죠.
사울은 40년을 통치했지만, 
그의 집권 말기에 한 일은.. 하나님을 따르지도, 섬기지도 않아요. 
오직 한 일이란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밖에 없어요. 
자기의 왕조를 지키고자 했던 사울은, 이렇듯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여러분,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삶의 환경이 너무 힘들고 각박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취직이 되면, 결혼을 하게 되면, 승진이 되면.. 무조건 잘 됐다,
무조건 경사가 났다고 생각하고, 복을 받았다고 여깁니다. 

그건 사울이 왕이 된 것과 똑같은 거죠.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마냥 좋아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뉴스에서도 종종 보듯이
차라리 그 자리에 안 올라갔으면 좋았을, 별 탈 없었던 사람들이 있죠.
괜히 그 자리에 올라갔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죠.

무조건 취직이 되어서, 결혼을 하게 되어서, 승진을 하게 되어서
잘 된 게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못 하고, 내 내면과 신앙인격이 아직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취직이 되고, 결혼이 되고, 어려운 시험에 합격이 되는 것은 
완전히 '사울의 길'로 가는 것이고, '사울 같은 최후'를 맞이하는데
첫 발을 내딛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왕이 된 사울은.. 그게 정말 복이 아니었고
어렵고 힘들게 왕이 된 다윗은.. 그게 정말 복이었던 거죠! 

▲왕으로 살다가 비참한 최후, 종으로 살다가 영광스런 마침,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영원한 삶에서는 누가 승리자일까요?

사울과 대비되는 삶, '종으로 살다가 영광스런 죽음'으로 마친
세례요한, 문준경 전도사님.. 두 분의 삶을 살펴보겠습니다.

솔직히 세상의 어느 부모님이
자기 자식이
바람도 피할 수 없는 들에서 생고생하는 것을 원할 것이며,

메뚜기로 허기를 때우고
꿀통을 만나야 배를 채우는 꼴을 보면서
‘이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은총이다!’라고 할 수 있을런지요?

이리 저리 인간적인 생각을 굴려보면
굳이 굳이
세례요한의 부모님을 연로한 노인으로 택하신
하나님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는 듯싶습니다.

늙어서 자녀를 얻은 연로한 부모님이셨던 만큼
세례요한이 고생하는 꼴을
(젊은 부모보다는) 널리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며 
(늙으면 다 초월하잖아요..)

또 늙어서 얻은 그 귀한 외동아들이
광야에서 막 고생하다가, 참수되어 죽는 최후도
보지 않고
삶을 마감하셨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이렇게 함부로 추측을 남발하는 이유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이 (특별히 호강하지 않고)
‘특별히 괴롭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친 마리아처럼요!

그러니까 ‘은혜.. 그거 조심해서 받고!’ 
물론 강권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만

또 ‘은혜 받았다고.. 앞으로 팔자 펼 것이라고..’
그런 착각은 하지 맙시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되겠기 때문이다." 눅1:15
라고 말씀하신 "큰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누가 큰 인물인가요?
여러분의 무남독녀가, 세례요한 같은 ‘큰 인물’이 되기 바라시겠습니까?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참수당하는 ‘큰 인물’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큰 인물이란
출세하는 사람, 돈을 많이 버는 회장님,
국회의원, 장관, 대학총장.. 뭐 이런 분야에서 ‘큰 인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은혜 주셔서 세우시는 ‘큰 인물’은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는 그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
큰 인물’입니다.

성경에서 큰 인물의 기준은 "주님 앞에서"입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눅1:15 

따라서 세상 관점에서 말하는 큰 인물도, 
주님 앞에서는 아주 작은 인물이 될 수 있고
세상 관점에서 아주 작은 인물이..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주간 교역자들과 함께 국내 성지순례를 다녀왔는데, 
증도에 도착하니 말로만 들었던 문준경 전도사님의 신앙 흔적이 
또한 눈물겹도록 감동적이었습니다. 

증도는 주민의 90%가 신자입니다. 
섬인데도 우상 제단도 없고 미신도 사라지고 
제사드리는 집도 없고 다른 종교도 없습니다. 
섬으로 들어서니 이 섬은 담배 연기 없는 섬이랍니다. 
담배 판매점도 없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 신안군 일대 섬마다 전도하여 세운 교회가 
100교회가 넘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전도하다가 
6.25 전쟁 중에 공산당 무리들에 의하여 비참하여 순교하였습니다.

문준경전도사님이 사역하셨던 증동리교회 김상원목사님께서 
뒷산에 전도사님이 늘 기도하셨던 바위가 있다는 말에 
단숨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눈 앞에 한반도 모양의 숲이 펼쳐져 있는 영감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상원목사님께서 저를 그 바위에 무릎꿇리고 
두 목사님을 불러 제 두 팔을 잡게 하고 중보기도를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제목이 정확히 우리가 매일 새벽기도회 때마다 드리는 
세 가지 중보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지, 기도하면서 마음이 두렵고 떨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계시다는 것을 
제게 확증시켜 주시는 사건이었습니다.
   
◑2. 내가 다윗처럼 대기만성 하는 것도, 은총일 수 있습니다 
 (빨리 되면 좋지만, 내가 취직이 잘 안 되고, 결혼이 느린 것도 은총일 수 있죠)

이것은 성경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왕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은혜이고 
그 자체가 감사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어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사울이/다윗이 되느냐.. 이게 중요하죠.

내가 그저 왕(하나님의 자녀)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이 되어져야 하는 거죠.

지금 우리는요... 이 세대가 지금 너무 어려우니까 
무조건 잘 되면 다 좋은 쪽으로 생각해요. 

무조건 취업만 하면 되고/ 무조건 결혼만 하면 되고...
본문에 의거해 생각하면, '무조건 왕만 되면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해서 생겨난 왕이 사울 입니다.
백성들은 '무조건 우리 한테 왕만 있으면 좋은 것이다' 라고 생각한 거죠.
 
근데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왕만 되면 다 끝난 겁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에요. 성경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말합니다. 
'왕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왕이 될 것인가?'
그게 중요한 거죠.

우리가 뭐 취업하고, 결혼하고.. 그래서 왕이 되는 것은 좋은데
사울처럼 되어버리면
취업하고 결혼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자신도 망하고, 
내 동족들도, 내 주위 사람들도 함께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원하는 목적이 다 이루어졌습니까?
그게 좋은 것인데,
혹시 백성들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는 것과 같이, 소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아직 내 소원(직장, 결혼, 승진 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 했는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 하는데 
쉽게 쉽게 그 꿈이 다 이루어져요... 그러면 사울 왕 되는 겁니다.
나중에 자기도 패망하고, 가정도 패망하고, 나라도 망하게 되는 거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그 꿈이, 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요?
혹시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 

내가 아직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아직 내 안에 사울의 모습이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그 자리에 올라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알고 (사울이 그랬죠)
내가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고, 분노하고, 화내고 
내가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 사울의 패전과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변화"됨의 예 (펀 글)
「며칠 후면 회사 창립 23주년이 된다.  
23년 동안 많은 직원들을 겪었는데, 
그 중 세 사람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A는 초기에 들어온 사원이었다. 
왜소한 나와 다르게, 덩치가 큰 그는, 힘이 세고 일 감각이 있어
조그만 회사에서 금방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고집이 세고, 보스 기질이 있어서, 나와 수시로 충돌하게 되었다.
조그만 배에 사공이 둘이니, 그 배가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내보냈다가
집에서 여러 달 놀고 있는 그가 안쓰러워 다시 회사로 데려 왔는데
문제는 다시 시작되었다.
몇 년 씨름한 결과, 그는 회사와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B는 큰 회사에서 근무하다 전직한 사람이었다. 
나이도 많은 편이었고, 있던 회사에 비해 우리는 작은 회사였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 왔더니 책상 배열이 갑자기 바뀌어 있었다.
변화를 준 그의 말에 따르면, 대기업 책상 배열은 이렇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과도 쉽지 않은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C는 가장 강적이었다. 
정식으로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은 나에 비해, 

최고 수준의 MBA과정을 공부한 그는 나를 학문적으로 마구 몰아 세웠는데,
내 경험과 직관으로 아닌 듯 싶은 일에서도 
그의 강한 성격과 뛰어난 경영학 이론 앞에, 내가 당할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신입사원 강의를 맡겼는데
회사의 경영적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해 놓아 
수 백 명에게 생겨진 부정적 인식을 수습하는데.. 나는 매우 애를 먹었다.

1990년 어느 날, 지나온 10년을 회고해 볼 기회를 가졌는데
이 세 사람의 큰 변화를 생각하며.. 뿌듯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때 마음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이 떠올랐다.
‘그 중 누가 가장 많이 변한 것일까?'’

놀랍게도 그 답은 그 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수고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 가장 크게 변하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나는 조그만 공격에도 견디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쉽지 않은 사람도 품을 수 있게 성장한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경영 이념 중 세 번째 항목인 ‘직장은 인생의 학교이다’는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내게는 회사가 성장의 학교였던 것이다.

요즈음 나는 또 다른 쉽지 않은 상대와 씨름하고 있다.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그를 쓸만한 리더로 변화시키는 것 외에
이것을 통해 나도 더 큰 그릇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씨름에 임하는 것이다.」

◑3. 마지막 회개의 기회마저 놓쳤던 사울

4절 '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지금 사울의 마지막 생각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이 지경이 되었어요. 사울 한 사람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가 지금 전부 도망가고, 패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렸을 때 
그때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치고 
이스라엘이 그 뒤를 쫓아 그들을 따라 죽이던 모습과는 정반대가 아닙니까. 

블레셋은 달라진 게 없어요. 이스라엘 군대도 달라진 게 없어요. 
뭐가 달라졌습니까? 그 왕이, 지도자가 달라졌어요. 

블레셋을 맞서 싸우던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렸을때 
다윗이 선봉에 있었을 때, 도망가는 블레셋을 뒤쫓아 가서 섬멸했지만,

하나님이 떠나신 사람 사울이 선봉에 있으니까, 사울도 중상을 입고 
그 아들들은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은 도망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었다면, 사울이 죽기 전에 뭘 해야 됩니까?
단번에 죽지 않고 중상을 입은 이 상황에서 사울은 무엇을 해야 됩니까? 
마지막으로 회개 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 저를 왕으로 세워 주셨는데 
저는 평생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지 못했습니다. 

저 하나 때문에 이스라엘이 이렇게 크게 어려움을 당하고 
저 하나 때문에 이렇게 약속의 백성이 지금 큰 환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용서하시고, 부디 도와주소서!' 라고 회개했다면 
아마 이 전세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끝까지 사울은 뭐만 생각해요?
자기 자신이에요. 자기 자존심이에요. 

'내가 저 할례 받지 않은 백성에게 죽을 순 없다. 네가 나를 죽여라!' 하는 거죠.

무기 든 자가 주저하자, 사울은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집니다.
사울이 스스로 자결하고 맙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자복하지 않고 
끝까지 어떤 돌이킴도 시도하지 않고 
사울은 자기 자존심 지키기에만 급급하다가.. 이렇게 인생을 끝내버리고 맙니다.

아마 이스라엘의 톱 리더인 사울이, 자기의 최후의 시간에, 
그 전장에서라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였더라면
그를 따라 이스라엘도 각자 다 회개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을 것입니다.

사울은 단 번에 죽지 않았습니다. 중상을 입고서.. 자기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시간을, 즉 회개할 기회를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시간에도, 회개는커녕
자기의 체면을 지킬 것만 생각하다가.. 허망하게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영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준거집단의 질투심을 극복하지 못한 사울.. 최후까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사회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에 준거집단(準據集團)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비교하고 참고하는 집단이 있다는 거지요.
대개 비슷한 나이,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집단을 말합니다.

학생은 학생과 비교하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니스트와 비교하고,
축구 선수는, 같은 축구 선수와 비교하지요. 

가끔씩 어떤 분이 저더러 누굴 닮았다고 하는데,
누구냐 하면 젊었을 때의 더스틴 호프만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제가 그런 얘기 들을 때 저는 별 느낌이 없습니다.
제가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기분이 밋밋한 것은,
그 사람은 나와 동종업종(同種業種)이 아니잖아요. 준거집단이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영화배우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안 씁니다.
그러면 제가 비교하는 대상은 누구겠습니까?
같은 목사들입니다.

저와 비슷하게 시작한 동기 목회자들이 있는데, 정말 목회를 잘 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3초간 짧은 순간이지만, 시기심과 질투가 일어납니다.

참 한심하지요? 그런데 어쩔 수 없더라구요. 자동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죄인된 우리 마음의 습관입니다.
아마 저만의 얘기는 아닐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보다
내 이웃, 내 형제들을 통해서 더 잘 드러나신다면,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경우, 저는 항상 이렇게 생각하며 시기하는 제 마음을 다잡습니다.
'골을 누가 넣든지 상관 없어!, 우리 팀이 이기는게 중요한 거지!'

한국과 외국팀이 축구를 할 때, 사실 어느 선수가 골을 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혹시 내가 국대로 뛴다 하더라도, 내가 골을 못 넣더라도, 동료 선수가 골을 넣어서
우리 팀이 이긴다면..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준거집단인 내 친구, 내 동료, 내 경쟁자, 내 동업자가 '골을 넣으면'
기뻐해야 당연하지 않은가요!
하나님의 나라와 마귀의 나라가 일대 결전을 벌이고 있고,
우리 아버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기기를 간절히 응원하고 계십니다.

골을 누가 넣든지 그건 크게 상관할 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덧붙여, 한 야구감독이 이렇게 말헸습니다. 그 날은 자기 팀이 아깝게 패했습니다.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결정적으로 9회에 역전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마음이 불편한데, 정말 그 날 얄미운 선수가 있답니다.
모두 의기소침해서 라커룸을 빠져 나오는데, 
어느 선수가 핸드폰으로 이렇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보, 나 오늘 홈런 쳤어! 굉장하지?'

그런 선수는 특히, 제일 얄밉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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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예화 / 왕이 잘못해서 망한 나라 
루이지애나의 역사와 관련된 왕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1세라고 말합니다. 
그는 시골 (코르시카) 사람으로서 출세를 했습니다. 
아내 잘 만나서 프랑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국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미국에게 프랑스의 땅을 팔아먹었습니다. 

지금은 루이지애나 주가 조그만 하 주에 불과하지만 
당시에 나폴레옹이 팔아먹은 루이지애나는, 미국의 중남부 일대의 광활한 영토였죠. 

옛날에는 미시시피강을 양쪽으로 끼고 있는 한국의 50배도 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을 
불과 1,500만 불로 미국에 팔아먹은 사람이 바로 나폴레옹입니다. 

만약에 프랑스가 그 땅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쯤 프랑스는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이 지배하는 바람에 프랑스라는 나라는 
결국 어마어마한 땅을 미국에 팔아먹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 역사에, 미국이 아주 흥정을 잘해서 이익을 얻은 대표적 케이스가 되었죠)


♣관련 예화 / 물질도 그렇구요. 권세욕도 그렇고요. 
우리나라 사람들 마인드는, 
올라가는 것은 무조건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하향억제 능력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올라는 가되 내려가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올라가면 더 올라가려고 하고, 
마구 뇌물을 주면서라도 끝없이 오르려고 하지,
내려오는 것은 죽어도 안 내려오려고 하는 거예요.

내려오면 실패요, 내려오는 것은 불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려오는 일은 절대로 허용치를 않는 겁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는, 국무총리 하다가 장관을 하기도 하고
다른 곳에 가서도 기꺼이 일을 하는 것은,
그 지위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봉사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대통령 카터는 대통령을 그만두고, 열심히 목수 일을 하고, 
다른 할 일이 많아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거예요.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여러 일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느 분이 말하기를
국무총리를 한 분이, 장관 한 일은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세계에 이런 일이 없다고 합니다.

장관을 하면 또 다른 것을 하고
총장을 하면 다른 것을 경험을 살려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몇 개월, 총리를 하면, 그 몇 개월 때문에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경험이 끊임없이 봉사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가
‘내려가는 것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내려는 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정신 사고는, 문제가 있다 라는 것이지요.

근본적으로 ‘봉사’의 개념보다는, ‘출세’의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올라는 가지만, 내려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집에서 쉴지언정 말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장군이 그만 둔 후에 초등학교 교사도 하고
어떤 분은 경비도 한대요. 그런 것을 개의치 않는데요.

좋은 일,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일을 하는데

우리는 과거에 명예스런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
그런 일을 하면 부끄러움으로 생각하고 실패로 생각하니까
내려가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평생 잘 입어야 되고, 평생 잘 먹어야 되고,
평생 잘 살아야 되고, 조금 못 살면 부끄러워하고 숨든지,
심한 경우는 자살한다든지 하는 것이지요.